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58화 (58/170)

# 58

58화 섬마을 삼총사 (1)

현장 관객 평가단이 모두 공개홀을 빠져나간 후, 출연자들은 각자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표를 집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선배님, 좀 괜찮으세요? 메이크업 다시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아직도 코를 훌쩍이는 김건무가 나를 향해 손을 휘휘 젓는다.

“괜찮아. 근데, 마지막 무대 말이야. 망해서 어쩌냐?”

김건무의 미안해하는 얼굴을 보자 떠오른 조금 전 상황.

우리 팀의 마지막 노래가 끝났고 의도한 바와 같이 청중 평가단은 공개홀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펑펑 눈물을 쏟아 내는 걸 보니 무대는 성공적인 듯 보였다.

그런데, 방송은 망한 상태였다.

노래가 끝난 후 에로스의 기운을 거둬들인 것이 30초쯤 지났을까?

모든 사람이 갑작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먼저 청중 평가단은 우렁찬 박수와 함성을 보내주는 대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제 질세라 연예인 패널 평가단은 리액션 대신 대성통곡을 시작했고.

스태프들은 슬픔이 복받치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고.

무대 위에 서 있던 김건무는 말없이 눈물을 훔치며 무대 밑으로 내려가 버리니.

정확히 말해서 정상은 아니었지만, 다들 정신은 돌아온 듯 보였다.

그러나 과연 저것들을 방송에 쓸 수 있을까?

“나 때문에 우승 날아가면 어떡하냐?”

고개를 푹 숙인 김건무는 아직도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 곡은 사랑했던 연인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야 했던 김건무의 실제 이별 스토리였다.

오늘은 더욱 아프게 다가왔겠지.

그런 사정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선배님. 분명 우리가 우승합니다. 걱정 마세요.”

김건무는 반신반의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확실해?”

“아마도요?”

청중 평가단이 이전에 들었던 노래들을 깡그리 잊어버렸기를 바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현장 관객 판정단과 연예인 패널 평가단이 모두 떠난 자리.

스튜디오에는 MC 윤도형과 윤종실 팀 그리고 우리 팀만이 무대 위에 남아 방송을 녹화하고 있다.

윤도형은 큐시트를 손에 들고 결승을 치른 모두에게 물었다.

“두 팀 모두 오늘 무대는 어떠셨어요? 100% 역량을 다 발휘한 만족할 만한 공연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윤도형의 질문에 윤종실이 먼저 마이크를 잡고 경연을 마친 소감을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큰 박수를 받는 무대에 서니 즐거웠고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뒤이어 김건무의 짧은 소감 발표도 끝이 나자 윤도형이 이번엔 신인 가수들에게 질문한다.

“주시후 씨와 임효준 씨 서로의 무대를 어떻게 보셨는지 소감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느 팀이 우승할 거라고 예상하시나요?”

이에 임효준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주시후 씨의 노래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국민 가수이신 김건무 선배님 옆에서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 무대를 보여 주셨고요. 하지만 저희 팀도 정말 열심히 준비한 경연이기 때문에 우승 한번 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주시후 씨는 임효준 씨의 무대를 어떻게 보셨나요? 우승은 양보하실 생각이 있나요?”

윤도형이 나를 바라보며 묻자 임효준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내게 넘겨준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관록이 쌓여 그런지 보컬이 너무 탄탄하시더라고요. 저희 팀도 경연 준비를 열심히 하면서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많이 가졌지만, 오늘 상대 팀의 무대를 보며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승패를 떠나 오늘 선배님들께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우승은……. 마음 비웠습니다.”

내 말을 들은 윤종실과 임효준의 얼굴이 환해진다.

칭찬엔 장사 없으니까.

그런데 김건무를 힐끗 보니 표정이 좋지 않다.

‘뭐야? 우리가 우승한다며?’ 이런 표정.

“소감 잘 들었습니다. 자, 그럼 오늘의 우승 팀을 발표하기에 앞서 우승 팀의 특전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승 팀의 국민 가수에게는 상금 백 만원이 주어지고 우승 팀의 신인 가수에게는 K.net에서 방영하는 <작은 마을 콘서트>의 출연 특혜를 드립니다. 신인 가수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죠.”

참 좋은 기회다.

신인 가수들이 곁다리가 아니라, 온전히 자신만의 무대를 가질 기회.

실제로 환상의 듀오 우승 팀 신인이 <작은 마을 콘서트>로 인해서 제 2의 전성기를 가지게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내가 만일 작마콘에 출연하게 된다면 앨범에 수록된 세 곡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미니 콘서트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방송 시각이 매우 늦은 밤이고, 시청 연령층이 40, 50대가 많아 나를 알리기에는 딱이었다.

출연 동기가 그것이기도 했고.

“그럼 정말로 우승 팀을 발표하겠습니다. 오늘, 500명의 청중 평가단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각 두 곡을 선정하여 투표해 주셨는데요. 먼저 윤종실 팀의 첫 번째 무대인 「오직 너뿐이야」가 받은 표수는 총 1000표 중 43표입니다.”

모인 가수들의 눈이 커졌다.

43표. 환상의 듀오 역사상 기록적으로 낮은 수였다.

이 최저 표를 받은 윤종실 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똥 씹은 얼굴들.

“자 다음은 두 번째 무대를 꾸며 주신 김건무 팀의 「나의 아들」 득표수는, 아……. 환상의 듀오 역사상 이런 표수는 처음인데요. 득표 수는…… 21표입니다.”

“허!”

윤도형의 발표에 똥 씹은 얼굴의 주인공은 김건무로 바뀌고 윤종실 팀은 환호했다.

“씨…….”

김건무는 욕을 내뱉을 뻔하다가 방송 중임을 인지하고는 입을 꾹 다문다.

그리고는 내게 몸을 기울여 귓속말했다.

“평가단 점수가 너무 짠데? 좀 불안하다? 종실이네 팀 마지막 곡 반응 좋았잖아.”

“그러니까 왜 무대에 서서 노래를 안 하셨냐고요. 으으!”

속삭이는 내 말에 김건무가 말없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가격했다.

“세 번째 무대는 윤종실 팀의 「지친 오늘 하루」.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반응이 아주 좋았던 곡이죠. 「지친 오늘 하루」의 득표 수는……. 어? 잠시만요. 이거 대박인데?”

윤도형이 큐시트를 보더니 갑자기 진행을 멈추며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는 무대 밑에 서 있던 신영미 PD에게 걸어가 귓속말한다.

신영미 PD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윤도형은 마이크를 잡고 입을 뗐다.

“윤종실 팀의 「지친 오늘 하루」와 김건무 팀의 「겨울이 오게 되면」. 이 두 곡의 득표 수를 같이 발표하겠습니다. 음……. 제가 환상의 듀오 MC를 맡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정말 이런 몰표는 처음 봅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윤도형은 우리 팀과 윤종실 팀을 번갈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자,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지친 오늘 하루」의 총득표수는 76표! 「겨울이 오게 되면」의 총득표수는 860표입니다. 기권 표는 한 표도 없습니다. 오늘의 우승 팀은 김건무, 주시후 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펑- 펑-

MC 윤도형이 우승 팀을 발표하자 무대 위로 축포가 터진다.

“김건무 씨, 주시후 씨. 우승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 * *

“아우, 내가 시후 너는 일을 내도 한번 크게 낼 줄 알았다니까?”

“그러게 노래를 어쩜 그렇게 잘해?”

집에 오신 큰 이모와 작은 이모의 칭찬이다.

“삼초온! 나랑 사진 찍어줘. 반 애들한테 우리 삼촌이라고 자랑했단 말이야.”

“나도 나도! 나도 찍을래.”

이건 내 조카들이고.

이 녀석들은 아직도 블랙 타이거라면 환장한다.

언제 한번 만나게 해 줘야 하나?

“야! 삼촌 괴롭히면 집에 보내버릴 거야. 시후야. 넌 방에 들어가서 좀 쉬고 있어. 밥 다 되면 부를게.”

누나가 이렇게 말하며 조카들을 내게서 떼어내 준다.

“너 군대에 있을 때 내가 면회 가서 용돈 준 거 기억하지? 그거 잊어버리면 안 된다. 응?”

개인 택시를 영업하시는 큰 이모부.

군대에 있을 때 간혹 엄마와 이모들을 모시고 와서는 뒤에서 용돈을 찔러주셨다.

꽤 여러 번인 것으로 기억한다.

“알죠. 이모부가 용돈 주신 거. 그 은혜를 친필 사인으로 갚겠습니다. 어떠세요?”

“야 인마. 장난하냐?”

소파에 앉아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는 그저 흐뭇한 표정이시다.

<환상의 듀오> 경연이 끝난 다음 날.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서 하루를 고스란히 쉬기로 했다.

그런데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오전 수업만 하고 와서는 사진 찍어달라고 달려드는 조카들.

점심 식사를 준비하며 계속 간을 보라고 하시는 엄마.

자꾸 노래를 시키는 이모들.

모처럼 집에서 쉬는 날 부모님과 외식이라도 하고 저녁엔 친구들을 만나 맥주 한잔할 계획을 세워 놓은 터라 이 모든 상황이 번거롭고 귀찮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회사라도 나갈걸.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오랜만에 모인 외가댁 식구들.

간만에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를 보러 일부러 시간을 내주신 것이 고마웠다.

내가 핑계 거리가 되어서라도 이렇게 자주 모일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

“아우! 얼마 만에 집에서 먹는 점심이야?”

상다리가 부러지게 점심이 차려졌다.

내가 신이 난 목소리로 잡채를 집어 들자 모두 흐뭇해 하는 표정이다.

화기애애한 점심 식사가 끝난 후.

터질 것 같은 배를 텅텅 두드리며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어제 있었던 <환상의 듀오>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직 방송은 나가지 않았지만, 연예부 기자들이 올려놓은 최신 뉴스의 댓글을 보면 네티즌의 호응도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톱스타의 뉴스’ 편곡은 신인 가수 주시후가 다했다. 김건무 직접 밝힌 스토리…….]

[‘LPK 뉴스’ <환상의 듀오> 역대급 전무후무한 반응.]

[‘포토77 라인’ <작은 마을 콘서트>의 출연 티켓 손에 쥔 주시후.]

[‘뮤직 포스트 잇’ <환상의 듀오> 역대 최저표들의 행렬. 그 끝은?]

⤷ [환듀 역대 최저표가 발표된 가운데…….]

[<환상의 듀오> 피아노의 신 주시후. 한국 클래식 협회에서 인정하는 피아노 연주 선보여…….]

반응이 나쁘지 않다.

아니 참 좋다.

그 밑에 달려 있는 댓글들 또한 기대한다는 말과 함께 우호적이다.

나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 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모든 것이 행복한 날이다.

그리고 이 행복의 정점을 찍듯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징- 징징-.

컴퓨터 옆에 엎어 놓은 휴대폰이 진동한다.

김남규 팀장의 전화.

“네, 팀장님. 말씀하세요.”

나는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야! 야! 시후야!! 어?? 어…….”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들떠서 내 이름을 부르던 김남규 팀장.

내 차분한 목소리를 듣더니 이내 체면을 차리며 나긋한 목소리를 낸다.

아마도 저렇게 들뜬 건…….

“시후야. 너 됐어. 네가 됐다고.”

내가 드라마 오디션에 붙었다는 거겠지?

* * *

그렇게 합격 통보를 받은 나는 삼 일 후 드라마 <황금 벌판>의 감독님을 만날 수 있었다.

“어서 와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까 반갑죠?”

청룡 스튜디오에 도착하여 만나게 된 전승원 PD였다.

“물론입니다. 감독님.”

“자 일단 앉아요. 문영호 씨도 앉으시고요.”

같은 소속사인 문영호도 이번 드라마에 캐스팅이 되어 같이 온 참이다.

‘허인’ 역은 내 것이므로 문영호는 세자를 호위하는 익위사의 다른 무사로 캐스팅되었다.

조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역도 아니다.

박은숙 작가가 그간 해온 것을 보았을 때, 카메라 앞에서 확실하게만 보여 준다면 대본 분량은 늘어날 것이었다.

실제로 연기 실력이 모자란 주연배우가 드라마 속에서 점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거나, 누가 봐도 조연이라고 생각했던 배우가 드라마 끝에선 주연 급으로 이어간 적도 있으니.

문영호도 크게 불만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작은 배역이라도 따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 했다.

“오늘은 얼굴이나 보자고 모인 거니까 편안하게 앉아서 이것 좀 마셔요.”

편했다.

몸도 마음도.

어차피 계약에 관련된 것은 회사에서 알아서 할 것이고, 연기자와 얼굴을 맞대고 감독이 할 이야기라는 것은 그저 앞으로 잘하라는 격려와 전달 사항 정도겠거니 생각했다.

의자에 앉은 나와 문영호를 바라보던 전승원 PD는 우리 앞으로 커피를 밀어 놓으며 입을 열었다.

“뭐 딴 건 없고. 앞으로 잘 해 보자고요. 그리고 대본이 나왔는데, 그건 돌아가실 때 매니저 편으로 보내드릴게요. 대본 보면 아시겠지만 <황금 들판>이라는 제목은 가제였고요. <왕의 신하>로 정해졌어요.”

나는 편안한 표정으로 앞에 놓여 있는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전승의 PD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두 분한테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 특히 주시후 씨는 스케줄이 많으셔서 좀 힘드시겠지만…….”

뭔데 저렇게 뜸을 들이실까.

스케줄을 거론하는 걸 보니 시간 잡아먹는 일이 분명했다.

“파주에서 훈련을 좀 받았으면 해요. 특히 문영호 씨는 액션이 조금 약해서 많이 배우셔야 할 것 같고요.”

“파주라면……?”

대충 감을 잡은 내가 확인 차 되묻자 전승원 PD가 웃으며 답했다.

“아트 액션 스쿨이요. 정두훈 무술 감독님이 대표로 계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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