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57화 경연 (3)
윤도형이 첫 번째 경연 팀을 공개하자 조명이 페이드 아웃되었다.
곧바로 MC석 위쪽 천장에 설치되어 있던 화면에서 영상이 하나 재생된다.
먼저 나온 것은 안순이의 사전 인터뷰 영상이었다.
방송 출연 계기, 경연에 임하는 마음가짐, 파트너는 어떤 가수였으면 좋겠다. 뭐 그런.
바로 신인가수 홍소망의 셀프 카메라 영상이 이어졌다.
교복을 입고 등하교를 하는 모습, 충실히 소화해 내는 학교 생활,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장면, 아웃튜브에 업로드 할 영상을 녹화하는 모습 등.
그리고 첫 녹화 때 안순이과 홍소망이 대기실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
그 이후 두 여성 가수의 곡 선정과 편곡 과정을 담은 영상까지 고스란히 다 보여주고 나자 무대에 조명이 다시 켜졌다.
밝아진 무대 위에는 캐주얼한 차림의 안순이와 홍소망이 나란히 서 있다.
스타트 모션을 취하고 있고, 뒤에는 백업 댄서들이 여러 명 올라와 있는 모습에 청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둔탁한 드럼 소리가 무대의 시작을 알리자, 환듀밴드의 신나는 연주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어우. 안순이 누나는, 나이 들어도 성량이 줄지를 않아. 목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기에 저런 파워가 나와?”
“소망 씨도 노래 잘하네요? 예쁘고 얌전한 스타일이라 발라드 부를 줄 알았는데, 락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대기실에서 노래를 듣고 있는 김건무와 내가 감탄을 내뿜으며 음악을 즐기는 사이.
어느덧 안순이 팀의 첫 무대가 끝나고 두 번째 무대의 주인공으로 윤종실 팀의 공이 뽑혔다.
“지금 이동하셔야 합니다.”
윤종실의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조연출이 우리를 공개홀로 보낸다.
“부담 갖지 말고 해. 오케이?”
복도를 걸어가며 김건무가 내게 한 말이다.
“네. 오케이요.”
윤종실 팀의 공연이 우렁찬 박수와 함께 끝나고 윤도형의 소개가 이어졌다.
“자. 마지막 팀은 기록적인 밀리언 셀러! 국민 가수 중의 국민 가수 김건무 씨입니다.”
곧바로 무대가 페이드 아웃되며 영상 화면에 김건무의 인터뷰 장면이 재생되었다.
“안녕하세요. 김건무입니다. 출연하게 된 이유요? 음, 저는…….”
“지금 올라가시면 됩니다. 어두우니까 조심하세요. 바닥에 붙은 형광 테이프 보고 이동하세요.”
조연출의 말에 김건무가 어둠 속에서 말을 건넸다.
“자. 가자.”
암흑 속에서 무대 위에 오른 나는 몇 개의 클립 영상이 재생되는 것을 보고 있다.
나에 대한 간단한 소개, 김건무와의 첫 만남.
작업실에서 함께 곡을 선곡하는 장면, 각자 편곡해 온 곡을 들어 보는 장면.
경연 곡을 함께 연습하는 장면까지.
편집된 영상을 보고 있자니, 김건무와의 우정이 끈끈해 보인다.
저 형도…… 참 괜찮은 형이야…….
상념이 꼬리를 물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바로 무대의 조명이 환하게 켜진 그 순간이었다.
* * *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응. 너도 수고했어.”
“제가 뭘요. 선배님이 다 하셨죠. 저는 화음만 얹었죠.”
“짜식. 편곡은 지가 다 해 놓고, 겸손은…….”
그렇게 1차 경연 무대를 마친 김건무와 나는 대기실로 돌아왔다.
첫 곡은 사실 그렇게 공들인 편곡은 아니었다.
진짜 피날레를 장식할 공들인 노래는 따로 있었으니…….
김건무의 노련한 무대 경험과 보컬 실력으로 보았을 때, 충분히 결승에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계속해서 감동 펀치를 날리는 것보다는 잽을 날린 후에 들어간 강펀치가 더 무서운 것이라며, 김건무도 동참했고.
이것에 내가 화음 정도만 넣어도 되는 「서울의 달동네」를 첫 곡으로 정한 이유였다.
곧장 대기실로 돌아온 우리는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공개홀에서는 1차 투표 결과를 집계하느라 한창 바쁜 상황이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집계가 끝난 것일까?
대기실의 모니터로 MC 윤도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세 팀의 환상적인 무대! 잘 보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환상의 듀오 1차 경연 무대의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윤도형의 투표 집계 결과 발표 후.
“미안해서 어쩌지? 꼭 작마콘에서 무대를 갖게 해주고 싶었는데 결과가 이래서…….”
“아니에요, 선배님. 제 롤 모델인 선배님과 함께 공연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선배님이랑 언젠가 꼭 다시 무대에 함께 설 거예요.”
안순이와 파트너 홍소망은 서로 깊게 포옹했다.
1차 경연의 투표 결과는 그랬다.
안순이 팀의 탈락.
이제 우승 무대에는 우리 팀과 윤종실 팀이 올라갈 것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재개된 우승을 가리는 경연.
“환상의 듀오 결승 무대는 평가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판정단 여러분들께서는 입장하실 때 두 장의 카드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이제 팀별로 두 곡의 무대를 보여드릴 텐데요. 여러분들께서는 네 곡의 무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실 때 가장 좋았던 두 곡을 뽑아, 복도에 준비되어 있는 상자 안에 카드를 넣어 주시면 됩니다. 물론 한 곡에 두 개의 카드를 모두 넣으셔도 무방합니다. 우승 팀은 현장 관객 판정단 투표 결과가 100% 반영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여 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환상의 듀오 우승 팀을 가리는 경연을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윤도형의 멘트가 끝나자 조연출이 대기실로 각 팀의 가수들을 데리러 왔다.
한 곡씩 번갈아 가며 경연곡을 불러야 해서 두 팀 모두 무대 뒤편에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결승 무대의 선, 후를 가리는 것은 1차전에서 평가단에게 받은 득표수로 정했는데, 표를 더 많이 획득한 쪽이 나중에 공연하게 되어 있었다.
우승자를 가리는 첫 결승 무대.
윤종실의 첫 번째 무대가 끝나고 우리 팀도 순식간에 첫 번째 무대를 끝냈다.
이게 참. 무대 하나를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은 엄청나게 긴데, 눈 깜짝할 사이에 노래를 끝내고 무대 밑으로 내려올 때는 항상 ‘더 부르고 싶다’는 갈증이 난다.
첫 곡은 「나의 아들」이라는 재즈풍의 빠른 템포 곡인데, 내가 일렉트로니카 댄스곡으로 편곡한 노래였다.
신나는 안무와 함께 김건무와 주거니 받거니 부르는 노래에 흥이 났을까?
노래를 부르다가 몇 명의 평가단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광경도 보게 되었다.
진행 요원이 곧 자리에 앉히며 제지하기는 했지만…….
사실 장시간 녹화 방송에 ‘이쯤이면 지루해지지 않았을까?’ 하고, 청중 평가단의 심리를 노렸던 댄스곡이라 모두 즐거워하는 것에 만족했다.
이제 남은 곡은 두 곡이었다. 양 팀 모두 한 곡씩.
윤종실 팀의 피날레는 「지친 오늘 하루」.
처음 <환상의 듀오>에 캐스팅 되었을 때 「아주 오래전 그날」을 꼭 부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하던데, 이 곡은 끝내 선곡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내가 리메이크를 해버려서, 내 곡이기도 했으니…….
이제 곧 우리 팀도 「겨울이 오게 오면」 한 곡만을 남겨 놓고 있다.
* * *
마지막 노래를 끝내고 밑으로 내려오는 윤종실과 임효준은 홀가분한 표정이다.
반면에 김건무는 긴장한 것인지 표정이 조금 굳어 있다.
무대 위는 겨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세트로 교체 중이고, 한쪽에선 스태프들이 그랜드 피아노 한 대를 밀고 들어온다.
“연주자 먼저 무대 위로 모실게요. 계단 조심하세요.”
조연출의 말에 섭외된 팝 피아노 연주자가 계단을 통해 무대 위로 오른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나도 마지막 피날레를 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런데, 그때.
“아!”
무대 위로 올라가던 중 계단에서 살짝 넘어진 연주자가 조그맣게 비명을 내뱉었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올라갈게요.”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조연출이 놀란 마음에 달려갔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나 보다.
나도 걱정스런 마음에 피아노 연주자를 바라보았다.
괜찮다던 연주자는 뭐가 불편한지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이를 본 내가 다가가서 다시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손가락 아프신 거 아니에요?”
빤히 쳐다보며 묻자 연주자가 머뭇거리며 대답한다.
“사실은 넘어지면서 손으로 땅을 짚었는데 약간 삐끗한 것 같아요. 조금 통증이 있네요. 아앗!!”
내가 손을 뻗어 연주자의 손가락을 살짝 누르자, 그녀는 손가락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한다.
“안되겠는데요?”
나를 바라보던 김건무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를 지켜보던 조연출이 무전기로 신영미 PD를 호출했고.
신영미 PD는 장내 방송을 통해 청중 평가단에 잠시 양해를 구하고 중앙 통제실에서 내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조연출에게 상황을 물어보는 신영미 PD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김건무에게 다가왔다.
“어쩌죠? <판듀> 밴드에 연주 부탁할까요?”
김건무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 신 PD. 악기라고는 딱 두 개 들어가잖아. 스트링은 따라오는 거라 밴드에서 소화할 수 있지만, 팝 피아노는 리드라서 안 돼. 지금 세션이 악보를 본다고 해서 단번에 칠 수 있는 곡도 아니고.”
김건무의 대답을 듣고 신영미 PD가 팝 피아노 연주자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가락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어본다.
“하실 수 있겠어요? 많이 아프세요?”
“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제대로 말씀해 주셔야 해요. TV 방송에 나가는 건데 실수가 있었다가는 네티즌들한테 크게 질책받을 수도 있어요.”
신영미 PD가 힘주어 얘기한 ‘네티즌’이라는 말에 겁을 먹은걸까?
연주자가 이번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힘들 것 같다고 한다.
한 손은 허리에 두고 한 손으론 얼굴을 쓸어내리던 신영미 PD가 곤란한 듯 한숨을 토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이내 눈을 크게 뜨고는 내게 턱짓했다.
‘네가 칠래?’ 이런 눈빛으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에 피아노 연주까지 한다고 해서 노래에 집중을 못 할 내가 아니고.
어차피 피아노 실력은 연주자보다 내가 더 나을 것이니.
상황이 정리되자 무대 위에 세팅된 그랜드 피아노 앞에 추가로 마이크가 한 대 놓여 졌고 나는 깜깜한 무대 위로 올라섰다.
피아노 앞에 앉은 나는 품계 4품의 운백, 감성을 지배하는 신 에로스를 소환하였다.
그리고 울림이 공명되어 들려왔다.
“에로스가 소환을 허락합니다.”
* * *
지난 겨울은 내게 너무 길었어. 너를 내게서 데려갔기에…….
마이크를 입술 가까이에 댄 채 조용하게 시작된 나의 노래.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며 나를 비춘다.
내 목소리를 감싸듯 부드럽게 시작된 피아노의 선율이 공개홀에 점차 스며들었다.
에로스의 기운이 장내를 지배하자, 웅성웅성하던 청중 평가단이 깊게 집중한 듯 작은 미동도 보이지 않는다.
하얀 눈이 내리면 다시 걷고 있겠지. 너의 흔적이 남겨진 거리를…….
담담하게 옛 연인을 추억하는 노래 가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점점 클라이맥스로 접어들면서 에로스는 청중의 마음을 거세게 공격했다.
올해 겨울도 나는 왠지 너무 길 것만 같아. 내 곁에 네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무대 위의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움직이질 않았다.
숨 쉬는 것조차 잊은 듯 모두가 내 목소리에 피아노 연주에 집중했다.
그런데,
‘아니, 왜 노래를 안 해?!’
김건무가 내 노래에 넋이 나가서는 본인의 파트도 잊고 멀뚱하게 서 있다.
마치 무대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잊은 듯 그렇게 서 있었다.
‘밴드는 또 왜 저래?’
심지어는 스트링 건반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던 밴드의 세션도 멍하니 손을 놓고 있다.
마이크에 대고 정신 차리라며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은 답답한 마음.
에로스의 기운을 부분적으로 거둬들일 수는 없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노래를 이어 나갔다.
견딜 수 있을 거야. 지난겨울의 너는 추억으로 남겨질 테니.
우리 팀의 마지막 노래가 끝이 났다.
그런데, 노래가 끝났는데도 관객석에서 손뼉을 치기는커녕 미동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이씨! 망했다. 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