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47화 (47/170)

# 47

47화 내 편 (2)

OBC 방송국에 도착을 하니 김남규 팀장이 자연스럽게 대기실로 나를 이끈다.

“어? 우아…….”

대기실 문 앞에 선 내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OBC 방송국에 온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상파의 대표 음악 프로그램 <음악의 중심에 서다>에서 정식 데뷔 무대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촬영만에 대기실이 확 달라졌다.

“이제 1위 후보니까 단독 대기실은 당연한 거야.”

내 표정을 읽었는지 김남규 팀장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1위 후보지만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이니까 선배들한테도 방송국 사람들한테도 인사 잘하고. 아니다! 무조건 눈만 마주치면 인사하도록 해. 어떻게든 트집 잡아서 끌어내리려는 사람들 천지인 연예계니까, 건방지다는 소리 들리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겸손해야 해.”

말을 이으며 싱글 앨범을 잔뜩 챙겨든 김남규 팀장이 내게 고갯짓한다.

“가자! 인사하러.”

보이는 대기실마다 들어가서 앨범을 돌리며 인사하던 나는 한 마리의 앵무새가 되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신인 가수 주시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나의 인사가 끝나면 김남규 팀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챙겨 온 내 앨범을 한 장씩 돌렸다.

마치 인사 원정대 느낌.

“후배님. 노래 잘 듣고 있어요. 앞으로 좋은 활동 부탁해요.”

“어머, 재킷 사진 너무 잘 나왔네요. 노래도 너무 좋던데요.”

사실, 이렇게 예의상으로라도 반갑게 맞아주는 가수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막 치고 올라오니 후배들 무서워서 은퇴해야 하겠네.”

“요즘 신인들 무섭네? 우리 때는 선배들 눈도 못 마주쳤는데.”라며 비꼬는 가수들이 대부분이었다.

‘네가 너무 잘돼서 배 아파서 그런 거야.’라며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김남규 팀장이 다독였지만, 나는 이미 상처받았다.

정말 이 바닥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구나.

시기와 질투가 사람을 참 추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인사 차 들른 예능국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아! 시후 씨 왔어요? 오늘 1위 후보던데. 긴장하지 말고 잘해 봐요.”

“우리 프로도 게스트로 한번 나와야지? 언제 나올 거야?”

“그저께 우리 방송 엔딩에 시후 씨 뮤비 틀어 준 거 알지? 절대 잊으면 안 돼. 언제 방송 한번 같이 하자고.”

모든 PD들이 아주 우호적이었다.

덕분에 내 긴장감도 좀 풀어졌는데, 김남규 팀장이 대기실로 돌아오며 히죽거린다.

“밉보였을까 봐 걱정했는데, 역시 PD들은 너한테 우호적이네. 아무래도 요즘 네가 핫하다 보니 섭외하려면 잘 보여야겠지?”

“에이. 이제 데뷔한 지 2달 정도밖에 안 됐는데, 너무 오버하시는 거 아니에요?”

내 말에 김남규 팀장이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친다.

“네가 몰라서 그래. 회사로도 나한테도 문의 전화가 얼마나 많이 오는데? 두고 봐. 곧 섭외 1순위 가수가 될테니.”

음…….

김남규 팀장은 나를 많이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어? 아까 와 보니까 없던데 어디 갔다 왔어?”

대기실 문이 열리며 블랙 타이거의 래퍼 태곤이 들어섰다.

“형! 예능국에 인사 다녀왔어요. 언제 오셨어요? 아까 대기실 비어 있던데.”

나는 반가움 마음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태곤에게 다가갔다.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아군을 만난 것 같은 느낌.

“뭐얏! 떨어져. 오늘 우리는 적이다!”

대기실 안으로 막내 진우가 들어오더니 태곤과 내 사이에 서서 갈라놓는다.

그런데 다짜고짜 적이라니. 무슨?

“시후가 오늘 1위 후보라며? 야, 이거 뒤통수 맞은 느낌인데?”

따라 들어온 리드 보컬 성운이 씩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아……. 내가 1위 후보에 올라서 놀리는구먼.

“그렇다면, 제가 오늘 1위를 해서 뒤통수 맞은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리더 동혁이 배꼽을 잡고 웃는다.

“하하하. 시후 너 그렇게 웃기는 애였어? 그래 그래. 1위 너 해라.”

“동혁이 형 오셨어요?”

“응. 1위 후보 오른 거 축하해. 한 회사에서 두 명이나 1위 후보라니. 대표님 입이 귀에 걸렸겠다.”

“그러게요.”

“그런데 내가 볼 땐 오늘 시후가 1위 할 것 같아. 음원 차트에서도 우리 밀어냈던데?”

태곤에 말에 성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내 생각도 그래. 근데 그래도 괜찮아. 우리는 「플리즈」 그 곡으로 1위는 할 만큼 했어. 이제 물려줄 때가 됐지. 그게 시후여서 다행이고.”

성운의 말을 듣자 갑자기 마음이 울컥한다.

진짜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착한거야?

험한 연예계에서 이런 사람들과 호형호제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니 나도 참 큰 복을 받았구나.

진한 감동에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을 열었다가는 목소리가 떨려올 것 같다.

금세 내 눈가가 촉촉해지는 걸 느꼈다.

눈물아 나대지 마!

다행히 허공을 바라보며 눈을 여러 번 깜박거리자 이내 눈이 건조해졌다.

나는 블랙 타이거 멤버들을 한 번씩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이번 1위는 감사히 제가 할게요.”

뭔가 감동적인 멘트를 기대했던 블랙 타이거 멤버들이 어이없다는 듯 탄식을 내뿜는다.

“와. 이거 봐라. 우리가 호랑이를 키웠네.”

“그러게. 우리 팬클럽 애들도 다 빼내 가는 걸 봐줬더니 어쭈! 우리를 밟고 일어서려고 해?”

"으악!! 살려주세요!”

네 명의 멤버가 팔로 내 목에 초크를 걸고 머리를 헝클이고 장난스레 발길질한다.

* * *

나는 호언장담한 것처럼 <음악의 중심에 서다> 무대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다른 누구보다 블랙 타이거가 가장 크게 축하해 주었다.

정식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지 두 달만의 일이었다.

이날 방청객석에는 내 팬 카페인 ‘주슈’의 많은 회원이 플랜 카드와 피켓을 들고 응원을 왔는데, 기가 세기로 소문난 블랙 타이거의 팬클럽인 ‘블랙 클라우드’ 회원들도 그들과 같이 나를 축하해 주었다.

블랙 타이거와 같은 소속사인데다가 우리의 친분이 워낙 유명한 것이라 그랬을 테지만.

그 날 이후로 김남규 팀장은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물밀 듯이 들어오는 섭외 전화 때문이었다.

얼굴만 알릴 수 있다면 이곳 저곳 무조건 내보낼 것 같았던 김남규 팀장은 승낙보다 거절을 훨씬 많이 했다.

이미지에 마이너스가 될 것 같은 프로그램은 묻지도 않고 알아서 커트해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케줄이 한가한 것은 아니었다.

각종 행사들과 음악 방송, 토크쇼 등 음악에 관련된 활동에 섭외가 들어오면 거의 출연했다.

스타 메이킹과 같은 연예인 패널단 출연이 고작이었지만, 간간히 지상파 프로그램에도 나갔다.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인데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바쁜 스케줄 사이에는 팬클럽 ‘주슈’ 창단식도 있었다.

소속사에 팬 마케팅 부서가 따로 있기 때문에 창단식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팬클럽 초대 회장과 팬 카페의 마스터가 같은 것도 순조로운 이유 중 하나였고.

그때 나는 팬클럽 회장 강소미를 처음 보았다.

이 작은 소녀가 내 팬덤의 맨 앞에 서서 팬클럽 창단을 추진하고 팬 카페를 만들었다는 게 대견스럽고 감사했다.

화보 촬영이 있던 어느 날은 크리스마스도 반납한 채 어마한 눈발이 날리는 야외에서 촬영해야 했다. 팬클럽 ‘주슈’에서 따뜻한 차를 보내주며 응원해 주었다.

마치 성탄절 선물을 받은 느낌. 스태프들 앞에서 어깨가 쭉 펴지는 날이었다.

‘이래서 많은 연예인이 그렇게 영광을 팬들에게 돌리는구나.’ 하고 새삼 깨달은 날이기도 했다.

* * *

지상파 방송국인 SAS 방송국에 가는 길.

처음으로 프로그램 단독 게스트로 출연하는 날이다.

<뮤직 토크>. 심야에 하는 음악 토크 프로그램이었는데, 블랙 타이거도 데뷔 5년 차가 되어서야 출연할 수 있었다고 말한 진입 장벽이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차량으로 이동 중에 조수석에 앉은 김남규 팀장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린다.

뭘 보길래 저렇게 혼자 웃어?

“팀장님, 뭐 하세요?”

“어? 아니야. 그냥 팬 카페에 올라온 글 보느라.”

김남규 팀장이 내게 넘겨준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사진 게시판]

- 팬클럽 창단식에 다녀왔어요. 인증샷! (sky3870).

- 그저께 방송국 들어가는 시후오빠 직찍! (rkdxorhd21).

“이게 웃겨요? 어느 시점에서 웃으신 거예요?”

내가 휴대폰을 다시 넘겨주며 물어보자 김남규 팀장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대답한다.

“아니, 그 옆에 나도 찍혔잖아. 잘 나온 것 같아서.”

“아, 네……. 팀장님, 오늘 스케줄은 이거 하나만 하면 되나요?”

내 질문에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김남규 팀장이 나를 돌아보았다.

“응. <뮤직 토크> 갔다가 훈이가 데려다주면 집에 가서 쉬어. 나는 오늘 촬영 끝나고 뮤직토크 PD랑 송년회 겸 술 한잔하기로 했어.”

말을 하는 김남규 팀장의 입에서 벌써부터 술 냄새가 풍기는 듯하다.

뮤직 토크 담당 PD가 그렇게 술고래라고 하던데, 비위 맞추려면 속이 남아나질 않겠다.

요즘 들어 굵직한 방송 스케줄이 많이 잡혀 있었는데 이게 다 김남규 팀장이 뒤에서 힘 써주는 덕분이겠지.

내 스케줄이 늘어남에 따라 김남규 팀장도 피곤할 것이 분명했는데, 차 안에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먹고, 함께 새우잠을 자도, 대기실에서 온종일 기다려도 힘든 내색하지 않았다.

“참, 시후야 내일은 스케줄 빼놨으니까 오후나절에 회사로 나와. 내일 회사 송년 파티 있는 거 알지?”

“네. 알겠어요. 내일 또 술 드시려면 오늘 많이 드시지 마세요. 팀장님.”

나는 진심으로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어이구? 내 걱정해 주는 거냐? 아직까지는 괜찮아. 뭐, 나도 술은 좋아하는 편이고. 참! 혜경아, 이따가 시후 소품 꼭 챙겨라.”

“네. 아예. 지금 챙겨 줄게요.”

스타일리스트 김혜경이 작은 상자에서 무언가 꺼내 내게 내민다.

“시후야, 이거 협찬 들어온 거야. 분실하면 큰일 나니까 지금 차도록 해.”

김혜경이 건네준 상자를 열자 팔찌 3개와 투명한 반지 케이스가 들어 있다.

이게 그렇게 비싼 거라고?

팔찌 3개를 손목에 몽땅 차고 나서 반지 케이스를 열었다.

족히 7, 8개는 되어 보인다.

“오늘 <뮤직 토크>에서 네 피아노곡 연주할 거잖아. 손가락 노출이 많을 거라서 다 차야 해.”

“이걸 다요?”

“응. 그러라고 협찬해 주는 건데?”

끙…….

반지라면 내 왼손에 끼워져 있는 이 엑스트라 링 하나면 충분한데…….

“시후야, 원래 차고 다니는 반지는 잠시 빼면 안 될까? 오늘 의상이 블랙 콘셉트라 액세서리도 전부 블랙 실버로 가져온 건데, 그 반지가 유독 튀네?”

나는 왼손을 눈앞에 들어 반지를 쳐다보았다.

내가 반지를 빼지 않고 뜸을 들이자 김혜경도 반지를 유심히 쳐다본다.

“누나, 이 반지는 뺄 수가 없는 반지라……. 죄송해요.”

“어? 아. 그래? 사연 있는 반지구나.”

“네. 뭐……. 사연이 좀 깊어요.”

“그럼 할 수 없지. 협찬 받은 반지는 오른쪽 손에 몽땅 레이어드 해서 끼도록 해. 노출만 되면 되니까.”

“네. 그럴게요.”

나는 협찬 받은 반지를 주섬주섬 손가락에 끼우며 왼손에 있는 엑스트라 링을 힐끗거렸다.

이게 뺀다고 빠지는 반지였으면 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이제 와서 반지가 빠진다고 해도 딱히 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덕분에 이 자리에 앉아 있으니.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고, 반지가 중급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고급 각성은 또 언제 하려나 자꾸 기대하게 된다.

반지가 영롱한 노란빛을 띠는 지금도 아주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어! 훈아. 여기 약국에 잠시만 들렀다가 가자.”

“네. 뭐 사시게요?”

“응. 이따가 술 마실 거라 미리 약 좀 사두게.”

김훈이 등촌동의 한 대로변, 약국 앞에 잠시 차를 정차했다.

날씨가 상당히 춥긴 했지만, 다리라도 잠깐 펴 볼까? 하고 나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약국으로 뛰어 들어간 김남규 팀장은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하필 소아과 병원이 있는 약국에 왔데?’

약국 건물의 2층을 보니 ‘소아 청소년과 의원’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항상 어린 환자들로 붐비는.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길거리에 서서 찬 공기를 코로 들이마시며 지나가는 아기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어차피 모자를 눌러쓰고 춥다고 마스크까지 썼으니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저 아기는 아주 엄마랑 판박이네?’

아이 엄마가 우람하게 생긴 여아를 안고 약국 안으로 들어선다.

그 뒤에는 5살이나 되었을까?

병원에서 주사라도 한 대 맞았는지 아직까지 눈 밑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사내아이가 품에 공을 안고 약국 안으로 따라 들어간다.

그러고 보면 나도 주사 맞는 거 참 싫어했는데.

잠시 후 공을 안고 약국 안에 들어갔던 사내아이가 밖으로 나오더니 공을 가지고 논다.

‘저. 저. 엄마는 애 단속을 잘해야지. 저러다가 미아 생기는 거라고.’

그 순간, 아이가 던진 공이 차로도 떼구르르 굴러간다.

아……. 이 쎄한 느낌.

이런 예감은 꼭 들어맞는다.

사내아이가 벌써 도로에 발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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