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45화 (45/170)

# 45

45화 반갑지 않은 사람 (2)

“아니, 보험 부른 건 부른 거고! 뒤에서 박았으면 일단 다친 데는 없냐? 괜찮으시냐?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니냐고! 내리기 싫으면 창문을 다 열고 똑바로 말하던가. 내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고작 1, 2cm 열어 놓은 차창 틈으로 빽빽 소리만 지르다니, 예의가 없구만!”

“내 차까지 걸어와서 소리 지르는 거 보니까 멀쩡한 거 아니에요? 헛! 갑자기 뒷목은 왜 잡는데? 저거 자해공갈단 같은 그런 거 아니야?”

“뭐, 뭐야?! 이 여자가 미쳤나? 야! 너 내려 당장 창문 내려 봐! 얼굴 좀 보게 내리라고! 안 내려?”

사고 난 곳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집중하던 나는 김남규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앞에 사고 난 것 맞네요.”

“아 그래? 어떻게 알았대?”

“갓길로 렉카 다니는 것 보세요. 원래 사고 나면 제일 빨리 출동하잖아요.”

“그러네. 빨리 가야하는데 앞이 저렇게 막혀서 어쩌냐.”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저 앞에 채설아가 있거든요.

어떻게 알았냐고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버티는 여자가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고 있어서요.

이렇게 김남규 팀장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는 모른 척했다.

어차피 사고 난 지점이 가까워서 지나가다가 곧 보게 될 텐데.

“추워 죽겠는데, 보험 불렀으면 됐지. 어디서 창문을 내리라 말라야??”

“재수없어! 지가 뭔데 천하의 채설아한테 왜 명령이야?”

“그나마 차에 보험증서가 있어서 다행이지. 재수 없었으면 매니저한테 전화할 뻔했잖아.”

“감독한테 사과받기 전까지는 절대 촬영 안할 거야.”

본가에 다녀오다 사고가 난 건가? 뭐, 내 알바 아니지.

그런데 듣자 듣자 하니 완전 개망나니네.

뒤에서 그냥 받아버린 것 같은데, 그래도 일단 사과라도 할 것이지.

완전 비호감에 고구마 캐릭터다.

저 앞에 있는 것이 톱스타 채설아인 건가? 내가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닌가?

나는 신수 카이엘의 능력을 해제시켰다.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고 괜히 들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한 톱 클래스인 여배우가 저런 사람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았고.

김훈이 운전하는 우리 차는 슬금슬금 움직여 어느새 사고 지점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썬팅이 짙게 되어있어 차량내부가 잘 보이질 않았는데, 이쯤이면 알려야 했다.

“어? 팀장님. 저 차 안에 여자! 그 여배우 아니에요?”

“응? 어디? 저 차? 잘 안 보이는데?”

“에이! 맞다니까요. 채설아 씨 맞아요. 잘 보세요.”

“그래?”

정체가 심한 구간이라 조수석에서 내려서 급하게 사고 차량으로 뛰어간 김남규 팀장이 썬팅이 약한 앞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이내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하늘을 보며 허! 하고 한숨을 토한다.

채설아의 차에 붙어있던 또 한 사람, 사고의 피해 차량 차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김남규 팀장이 뭐라고 말하며 일단 차로 돌려 보낸다.

차 안에서 지켜보던 나는 이 상황이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운전석의 창문을 두드리며 문 열라고 닦달하는 것이 마치 악덕 채무자를 찾아낸 채권자의 표정이랄까?

완전 꿀잼 영화. 팝콘이 필요한 상황.

김남규 팀장은 급하게 휴대폰으로 채설아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고 이 상황을 알렸다.

곧이어 창문을 조금 내리 채 통화 내용을 듣던 채설아가 차문을 열어 주었고, 김남규 팀장이 보조석에 올라탔다.

잠시 후 김훈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 팀장님. 먼저 출발할게요. 이따 뵈요.”

통화를 마친 김훈이 나를 바라본다.

“팀장님이 사고 수습하고 저 차 타고 오신다네. 먼저 가자.”

상황 종료.

사고 지점을 벗어나자 차는 다시 시원시원하게 고속도로 위를 질주했다.

* * *

다음 날.

그동안 방송 출연료에 대한 정산이 되었다고 해서 오랜만에 회사에 방문한 나는 1층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20잔이나 주문했다.

어떻게 들고 올라갈까 잠시 고민을 한 것이 무색하게도 직원이 넓고 긴 캐리어에 커피를 담아 준다.

워낙 직원이 많은 회사다 보니 20잔 정도의 커피는 일도 아니라는 표정이다.

김남규 팀장이 홍보마케팅본부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7층에 도착한 나는 안으로 들어섰다.

“이거 한 잔씩 드시면서 …….”

말을 하다 말고 멈칫한 나는 양손으로 들고 있던 커피 캐리어를 빈 테이블 위에 내려 놓고 10잔을 꺼내어 테이블 위로 옮겨 놓았다.

알아서들 드시겠지.

여기저기서 울리는 전화 벨소리. 다다닥! 다다닥! 컴퓨터 키보드를 치는 소리. 종이를 들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

나만 한가하게 마실 것을 들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에 살짝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홍보팀 안쪽으로 자리 잡은 영상제작팀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곳은 홍보팀에 비교해 비교적 한가해보였다.

“어, 왔어?”

영상제작팀과 미팅을 하고 있던 김남규 팀장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긴다.

“안녕하세요.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커피 캐리어는 테이블에 내려놓자 김남규 팀장이 한 잔을 쏙 하고 빼간다.

영상제작팀 직원들도 커피를 한 잔씩 가져가며 인사를 잊지 않았다.

“잘 마실게요.”

“그렇지 않아도 시원한 게 마시고 싶었는데 고마워요.”

김남규 팀장도 빨대로 커피를 한 번 쪽 빨고는 내게 묻는다.

“잘 마실게. 근데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커피를 이렇게 샀어?”

“에이. 오늘 정산 받으러 왔잖아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아 맞다! 상금 5억까지 받으면 나보다 더 부자잖아.”

해맑게 웃던 김남규 팀장이 내 앞으로 노트북 화면이 잘 보이도록 돌려 놓는다.

대한민국 최강 포털 사이트, ‘누리버’.

나뿐 아니라 전 국민이 애용하는 누리버의 메인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쨌다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남규 팀장이 검색어에 내 이름을 친다.

“어? 프로필이 생겼네요?”

인물 정보 - 주시후 (가수)

신체 : 184cm

소속사 : B&M 엔터테인먼트

취미 : 승마

“이게 다예요?”

많이 비어 보인다.

내 질문에 김남규 팀장이 웃으며 대답한다.

“앞으로 채워 나가야지.”

“그런데 취미는 저게 뭐예요?”

“아. 원래 연예인들은 승마 이런 거 많이 적어. 고상해 보이기도 하고 당장 검증도 안 되는.”

“음…….”

“참! 온 김에 이거 봐봐. 뮤비 기획안이야.”

김남규 팀장이 내민 뮤직비디오 콘티.

“우아, 웹툰 같아요. 엄청 잘 그리셨는데요?”

한 장, 한 장 넘기며 꼼꼼하게 콘티를 체크하던 나는 촬영 씬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는 김남규 팀장에게 물었다.

“원래 장소가 이렇게나 많이 바뀌는 거예요?”

“보통 3, 4군데에서 전체적으로 촬영하는데, 「I want you」는 여섯 군데서 해야 하니까 많긴 하지. 근데 버스킹으로 청중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달한다는 콘셉트라서 장소 이동은 불가피해. 보안에 많이 신경 쓸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김남규 팀장이 자신에 찬 대답을 해온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에 대한 일은 자신의 일처럼 확실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니까.

뭐든 나 좋은 쪽으로, 내가 편한 쪽으로 일을 봐 줄 것이 확실했다.

나는 콘티 확인을 마치고 9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비상구로 향했다.

2층만 올라가면 되니 슬슬 걸어 올라갈 참이었다.

9층에 있는 전략기획본부에는 재무회계팀이 있었는데 그곳이 내가 오늘 회사에 온 진짜 목적지다.

B&M 엔터테인먼트에 들어와서 처음 받게 되는 정산금.

비록 얼마 되지는 않을 테지만 들뜨고 신나는 마음으로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

9층에 다다르고 비상구 문을 열려고 하는데 멀리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비상구 계단에서 말하는 소리는 아니고, 10층은 대표실인데?

아무래도 비상구가 열려있나 보다. 10층 소리가 이곳까지 새어 나와 들려오는 것이.

웅성웅성.

응?

뭐라고 하는지는 잘 안 들렸지만 분명히 들은 이름은 ‘설아’였다.

어제 채설아가 사고 친 것 때문에 대표실에서 말이 나온 모양이다.

뭐. 내가 알 바 아니지.

가는 분야도 다르고, 안 엮이면 그만이지.

나는 곧바로 재무회계팀에서 정산금을 확인하고 영수증을 받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내일 있을 뮤직비디오 촬영에 대비해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쉴 예정이었다.

영수증에 찍혀 있는 금액은 소소했지만 난생처음 방송으로 번 돈이었기에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물론 슈스챌 상금 5억원이 곧 들어오면 더 부자가 될 테지만, 그 돈은 금액이 너무 커서 이질감이 들었고, 부모님께 드릴 예정이라 더더욱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궁금하기는 하다. 세금 떼면 얼마나 들어오려나?

이런저런 생각은 띵! 하며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에 멈춰졌다.

“앗?!”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 안에 채설아가 타고 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사람을 보면 무조건 인사부터 하라는 김남규 팀장의 잔소리가 몸에 베여서 였을까?

나는 대뜸 채설아에게 인사를 먼저 했다.

“탈 거야? 말 거야? 왜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는 채설아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잠시라도 기다리지 못하는 참을성이라니.

얼굴에 표정은 없지만 날이 선 듯한 말투에서 그녀가 짜증이 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 둘이 타고 내려가긴 싫은데. 먼저 가라고 할까?

에이. 그래 봤자 몇 초만 참으면 되는데 뭐.

“아, 지금 탑니다.”

내가 빠르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자 채설아가 신경질적으로 닫힘 버튼을 마구 누른다.

나는 그녀를 힐끗 곁눈질했다.

냉랭한 공기가 이 공간을 얼려버릴 것 같은 그때 채설아가 옆에선 나를 돌아봤다.

“저기.”

“네?”

“혹시 여기 직원?”

“아니요.”

“그럼 아티스트?”

“네.”

“하긴 그 외모로 다른 일 하기는 아까웠겠지. 뭘 해도 돈도 안 되고?”

채설아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저 여자랑 절대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불과 10분 전인데, 왜 자꾸 말을 거나 모르겠다.

띵! 소리와 함께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채설아가 먼저 내려서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다.

“어우. 숨 막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저 여자의 본색을 알고 있어서일까?

잠시라도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불편했다.

후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던 그때.

“시후야.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한숨만 쉬어?”

로비에서 로드 매니저 김훈이 내게 다가오며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별거 아니에요. 근데 형이 왜 여기 있어요? 어디 가요?”

“너 집에 데려다 주려고. 기타도 찾아왔거든.”

“아, 정말? 진짜요? 고마워요. 형.”

김훈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채설아가 사라진 1층 정문을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 * *

며칠 후.

“팀장님, 이 차도 우리 회사 차예요?”

나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내 얼굴에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 손길을 고스란히 받으며 입술만 달싹였다.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꽃단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응. 영상제작팀에서 가지고 있는 차야. 회사에 딱 한 대밖에 없어.”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은 이동식 분장 차량이었는데, 탕비실과 탈의실, 화장실까지 두루 갖춘 개조 차량이었다.

신기한 듯 내가 눈알을 굴리자 전담 스타일리스트인 김혜경이 내 머리를 꾹 누른다.

“시후야. 움직이지 마. 아이라인 나간다.”

“네, 누나.”

김남규가 내 모습이 흐뭇한지 입술을 길게 찢으며 웃는다.

“보통 신인 가수한테는 내어 주지 않는데, 이사님이 허락하셨나 봐. 회사의 지원이 좀 넘치는 편이지. 시후한테는.”

“팀장님, 시후한테 자꾸 말시키지 마세요. 시후 얼굴 흔들려요.”

“알았어. 알았다고.”

김혜경에게 핀잔을 듣고 잠시 가만히 있나 싶더니 곧 김남규 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낮 촬영 끝내고 한강으로 이동할 거야. 한강 시민 공원은 밤에 버스킹 해야 제 맛이 나잖아.”

김남규 팀장이 분장 차량의 문을 열고 밖을 살피더니 다시 차문을 닫았다.

“왜요? 팀장님? 밖에 사람 많이 몰렸어요?”

“응. 생각보다 많네. 촬영 스태프들 차라는 건 딱 보면 아니까. 궁금해서 몰린 거겠지. 걱정하지 마. 시민들은 스태프들이 다 통제할거야. 버스킹 장면 촬영 때는 단역 배우들이 동원될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잠시 후 스타일링이 끝나고 나는 차 밖으로 내려 섰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누가 타고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던 시민들이 꺅! 하고 환호성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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