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44화 (44/170)

# 44

44화 반갑지 않은 사람 (1)

역시나 이변은 없었다.

우승은 당연히 나였다.

나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신의 반지를 끼고 우승 못 하는 것이 더 놀랄 일이었으니.

“<슈퍼 K-POP 스타 챌린지> 시즌 4의 우승자는 B&M 엔터테인먼트의 주시후 연습생입니다. 축하드립니다.”

MC 김상주의 축하 멘트와 방청객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폭죽이 무대 전체를 가득 메웠다.

조훈과 함소은이 환호하며 손뼉을 쳐 주었고 하상훈은 내게 달려들어 끌어안더니 울고불고 난리다.

무대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향했다.

이 순간 내가 이 공간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보다 5억 원이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팻말을 받은 게 더 감동적이었다.

‘역시 수고한 보람이 있었어.’

수상 소감 후, 생방송 종료 사인을 받고 무대 밑으로 내려오자 김남규 팀장이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끌어안았다.

“징짜. 흑흑. 넘나. 자래써. 흑흑.”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폭풍 오열 중이라 뭐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잘했다고 하는 거겠지?

임준석 실장은 여기저기 전화를 걸며 내 우승 사실을 알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급히 통화를 마무리했다.

“시후야,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잘했어.”

내 등을 토닥이던 임준석 실장은 여태껏 울고 있는 김남규 팀장을 째려보았다.

“자네는 인제 그만 좀 울지? 이게 울 일이야? 웃을 일이지?”

“맞아요, 팀장님. 남자가 그렇게 눈물이 헤퍼서 어쩐대요?”

내가 말을 거들자 김남규 팀장이 그제야 끅끅거리던 걸 멈추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아니. 너무 좋아서 그렇지. 참, 시후야. 오늘은 임 실장님이 법카 가져오셨으니까 가족들 다 함께 축하 파티 하러 가자.”

“정말요? 법카니까 진짜 비싼 거 먹을 거예요. 실장님 감사합니다.”

“그래. 가자! 가서 많이 먹어보자! 까짓거 내 돈도 아닌데 뭐!”

임준석 실장이 분위기에 동조한다.

“그렇다면 실장님. 제가 잘 아는 일식집이 있는데 어떠십니까? 아니면 한우로 할까요? 시후야, 뭐 먹을래?”

김남규 팀장이 비싼 음식점은 죄다 나열할 기세다.

“랍스타 정도는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래. 가자!”

대기실에서 짐을 챙기고 가족들과 함께 대기실을 빠져 나와 임준석 실장이 준비해 준 밴에 올라탔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동안 꺼 두었던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밴 안에는 누나와 엄마, 김남규 팀장과 조카들까지 합류해서 수다를 떨고 있다.

어휴…….

휴대폰 전원이 켜지자 내 입에서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너무 많이 와 있는 탓이었다.

나중에라도 모두 답장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텐데.

그것도 그나마 메신저 톡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 메신저 톡 새 메시지 786개.

읽기만 해도 한나절 걸리겠네.

그래도. 참 고마운 일이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우승을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런데 그 많은 메신저 톡 중에 단연 눈에 띄는 이름이 하나 보인다.

* * *

“이번 드라마 끝나면 푹 쉬면서 유럽 여행이라도 다녀오려고 했더니, 다 틀렸네. 어휴.”

드라마 관련 관계자들을 만나고 회사로 돌아가는 차량 안에는 한숨 소리가 가득하다.

쌍꺼풀이 깊게 진 깊은 눈, 긴 속눈썹을 가진 여인은 약간 굵은 콧대를 손가락으로 긁적인다.

반쯤 열어둔 창문으로 11월의 찬바람이 여인의 머리카락을 엉클어 놓았다.

그녀는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도톰한 입술 사이로 한숨을 토했다.

“어쩔 수 없지. 내년 하반기로 잡혀 있던 방송 편성이 그렇게 당겨질 줄 어떻게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 드라마는 곧 끝나잖아.”

매니저의 말에 한숨을 푹푹 쉬던 여인은 반쯤 포기한 얼굴로 대꾸했다.

“박은숙 작가님의 드라마 아니면 안 한다고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진짜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데…….”

“이번 달에 드라마 끝나면 당분간 스케줄 잡지 않을게. 조금 쉬던가. 가까운 동남아 정도는 다녀올 수 있게 시간 만들어 줄 테니까.”

“알겠어요. 오빠.”

푸켓에 가 볼까? 괌도 괜찮은데.

역시 따뜻한 나라는 이렇게 추울 때 가야 제맛이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차창 밖을 바라보던 강화영이 불현듯 무언가가 떠오른 건지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오늘 슈스챌 마지막 날인데. 끝났을까?”

“아, 화영이 네 친구 슈스챌 TOP 4 올라갔지? 주시후였나? 지금쯤 우승을 발표하지 않을까?”

“헤헷. 봐야겠다.”

휴대폰으로 K.net 생방송 채널에 입장한 강화영은 뚫어지라 화면을 응시한다.

백미러로 강화영을 지켜보던 매니저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창 바쁜 여배우가 대본도 아니고, 챌린지 프로그램을 꼭 챙겨보다니. 이런 건 팬들은 알려나 모르겠다.”

“TV 보는 건 개취라고요. 오빠.”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강화영이 입술만 달싹인다.

“개취가 뭐야?”

“개인 취향이요. 그런 것도 모르나?”

“아……. 너는 말 줄여서 하는 버릇 좀 고치라니까. 인터뷰하다가 튀어나올까 봐 겁난다, 화영아.”

“칫. 이건 요즘 예능 트렌드라고요.”

한참 말이 없던 강화영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린다.

매니저가 핸들을 돌리며 목소리에 집중하니 제발, 제발 하는 소리가 들린다.

“꺄아!!!!!!”

난데없는 비명에 매니저가 화들짝 놀라서 강화영을 째려본다.

“야! 놀랐잖아. 사고 날 뻔했네. 후유.”

가슴을 쓸어내리는 매니저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화영이 신나서 운전석 의자를 툭툭 친다.

“오빠! 오빠! 시후가 우승했어요.”

“그래. 네 비명 들어 보니 안 봐도 알겠다. 의자는 그만 치렴. 신경 쓰인다.”

“아, 뭐라고 하지?”

“뭘?”

“축하 메시지 보내려고요.”

강화영의 말에 매니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뭐? 하지 마! 관둬. 여배우는 걷는 것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했어? 안 했어?”

“에이. 동창끼리 어때요? 당연히 축하해 줘야지.”

매니저의 말을 귓등으로 들은 강화영은 다짜고짜 메신저 톡을 켰다.

“됐다! 아주 심플해.”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더니 한참 만에 전송한 강화영의 얼굴에 만족의 웃음이 걸렸다.

* * *

- 시후야. 우승 축하해. 너와 친구라는 게 자랑스러워.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여배우 강화영의 축하 메시지였다.

답장해야 하나?

에잇. 나중에 몰아서 한 번에 다 보내지 뭐.

지금은 함께 있는 가족들과 회사 식구들과 이 시간을 온전히 함께 보내고 싶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눈을 반쯤 뜬 채로 인터넷 기사를 살펴보던 나는 잠에서 확! 깼다.

[슈스챌 시즌 4 우승자 주시후는 기부 천사?]

[프로듀서 박준영, 주시후에게 스카우트 제의. 회사 이적하나?]

[주시후의 다음 행보는 싱글 앨범. 이미 홍보 시작.]

[5억 상금 받은 주시후, 과연 기부할까?]

수많은 기사 중 눈에 띄는 것들은 단연 돈에 관한 것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내가 기부 천사가 되었네.

그런데 상금으로 받은 5억 원을 사회에 기부할지 이것이 관심사인 모양이다.

기부하기는 할 생각이다.

당연히 우리 부모님께.

* * *

슈스챌이 끝난지 한 달이 지났다.

나는 한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슈스챌 쪽에서 특전으로 내걸었던 아시아 최대 K팝 콘서트 'BIG MAMA’ 무대에서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무대를 마쳤고, OBC 방송국에서 매주 방영 중인 <음악의 중심에 서다> 프로그램에서 정식 데뷔 무대도 가졌다.

타이틀 곡 「I want you」는 디지털 싱글을 먼저 발매해서인지 음원 사이트에서의 순위가 꽤 높았는데, 방송을 한 번 타고 나니 10위권 안으로 훌쩍 올라가 버렸다.

“시후야. 오늘도 고생했어. 어디로 데려다줄까?”

부리부리한 눈매에 큰 코를 가진 잘생긴 형.

올해 26살이라는 로드 매니저 김훈의 질문이었다.

한 달 동안 내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먼저 로드 매니저가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김남규 팀장도 언제나 함께였지만, 내가 점점 바빠면서 운전보다 전화를 받는 횟수가 늘어났기에 회사에서 배려해 준 것이다.

또, 개인 스타일리스트도 생겼다.

방송이 잦아져서 중간중간 메이크업이나 헤어를 손봐야 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긴 것 중 가장 짜증 나는 것은 긴 시간 차량에 앉아 있거나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생겨난 변비였다.

“형, 저희 집 앞 산책로 앞에 세워 주세요. 배 속이 더부룩해요.”

“큭큭. 알겠어. 가는 데 3시간은 걸릴 거야. 이제 고속도로 타니까.”

“아! 왜 웃어요! 방귀 폭탄 한번 맞아 볼래요?”

로드 매니저 김훈은 뭐가 웃긴지 킥킥거리며 웃는다.

“어머, 시후야. 그 잘생긴 얼굴로 방귀라니. 화장실도 안 갈 것처럼 생겨서 왜 그러니? 안 어울리게.”

나의 방귀 발언에 스타일리스트 김혜경이 눈을 껌벅거리며 정색한다.

어휴.

사내들만 있으면 시원하게 방귀라도 뀌겠는데 스타일리스트가 신경 쓰여 앞으로 3시간을 참아야 한다.

저 누나는 한 달을 함께 지냈는데 아직도 나에 대한 환상이 대단하다.

내가 참아야지 뭐.

“참, 내일모레 뮤직비디오 찍을 거라고 내가 말했었나?”

차량 보조석에 앉은 김남규 팀장이 스케줄 표를 들여다보다가 생각난 듯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팀장님. 그런데 뮤비 촬영 전에 제가 부탁한 기타가 도착할까요?”

“내일 훈이가 직접 찾으러 갈 거니까 가능해. 그렇지 훈아?”

운전대를 잡고 있는 김훈이 김남규 팀장을 힐끗 보더니 대답한다.

“걱정하지 마. 내가 오전 중에 받아 올게.”

“다행이네요.”

김훈의 확신에 찬 대답까지 듣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야, 나는 오늘 연주회처럼 네가 피아노 반주에 「I want you」 부른 것도 너무 좋더라.”

김남규 팀장이 뒷좌석에 있는 나를 돌아보며 눈빛을 반짝거린다.

저 인간이 욕심을 부릴 때는 꼭 저런 눈빛을 발산하곤 했었지.

“저도 좋았어요. 오랜만에 소월이도 만나고, 같이 연주도 할 수 있어서…….”

오늘의 마지막 스케줄은 한국 맹인음악협회로부터 게스트로 초대를 받아 연주회에 참석하는 일이었다.

전에 <스타 메이킹> 프로그램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김소월과 합주했던 인연으로 기꺼이 재능 기부를 하고 온 참이다.

“훈이 형, 가다가 휴게소가 보이면 잠시 들러 주세요.”

“왜? 배 아파?”

“아뇨!! 목 말라서요!!”

나는 운전석에 앉은 김훈을 마구 째려보았다.

“차가 조금 막히네.”

김훈의 말마따나 신나게 달리던 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러다가는 집에 도착하려면 3시간이 아니라 훨씬 더 걸릴 것 같은데.

차창 밖을 내다보다 금세 지루해진 나는 눈을 감았다.

물론 잠은 안 오지만, 명상이라도 할 요량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눈을 감자마자 김남규 팀장의 휴대폰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진다.

“응. 아직 강원도야. 이제 고속도로 탔지. 뭐? 또? 도망갔다고? 야. 스케줄은? 아휴……. 너도 참 딱하다. 우리 시후는 착해서 내가 고생이 없지. 알겠어. 주소 보내. 어휴.”

통화를 마친 김남규 팀장의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김훈을 보며 말을 이었다.

“훈아, 이 주소로 좀 가자. 다음 톨게이트에서 빠져나가야 할 거야. 시후야, 들릴 곳이 있는데 잠깐이면 되거든. 괜찮겠지?”

“네. 상관없어요.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이번에 회사에 채설아 계약한 건 들어서 알고 있지?”

“네. 들었어요. 영화 찍는 도중에 이적해서 인터넷에도 도배되었잖아요.”

아역 배우 출신의 채설아.

6살 때 데뷔해서 지금까지 18년 동안 연기에만 올인한 톱스타다.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던 중 성인이 되어 출연한 영화들마다 천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자타 공인 흥행 메이커의 히로인이 되었다.

내 대답을 들은 김남규 팀장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 망나니……. 아니 채설아 씨가 아까 낮에 촬영장에서 감독님이랑 다툼이 있었나 본데, 매니저 차 끌고 촬영장을 이탈했대.”

“와아……. 망나니 맞네요. 대박이네.”

“채설아 본가가 속초에 있는데 거기 자주 간다니까 잠시만 들렀다가 가자. 짜증 나는 일이 있으면 꼭 거기 가서 집밥을 먹는다나?”

말을 하는 김남규 팀장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나를 보는 눈빛은 따뜻하기 그지없는데 미간에는 짜증이 가득하다.

알겠어요. 나는 속 안 썩일게요.

“아무래도 저 앞에 사고가 난 것 같은데요. 어쩐지 퇴근 시간도 아닌데 차가 너무 막히더라니.”

김훈의 말에 나와 김남규 팀장과 스타일리스트까지 정면을 주시한다.

7품 신수 카이엘이 능력으로 시력을 돋워 바라보았지만 앞차들에 가려 상황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 내려 보라고! 차를 들이박았으면 내려서 먼저 사과해야 할 거 아냐? 젊은 사람이 아주 못 배워 먹었구만. 인성이 덜 됐네. 쯧쯧”

나이가 느껴지는 중년의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내가 왜 내려요? 보험 불렀다니까요? 위험한데 왜 고속도로 위에서 내리라 말라예욧!”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대충 이런 상황이군.

뒤에서 들이박은 여자가 차에서 안 내리고 보험 회사 직원을 부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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