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43화 우승은? (3)
“어우. 뭔가 치유받은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저만 그런가요?”
무대가 끝난 후 함성이 가라앉자 마이크를 잡은 특별 심사 위원 허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감정을 지배하는 신 에로스를 소환하여 심사 위원 박준영과의 듀엣 곡을 끝낸 후 듣게 된 첫 번째 심사평이었다.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듣는 사람의 행복을 염원하는 듯한 느낌의 노래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감동을 받았거든요. 사실은 걱정을 좀 했었어요. 저는 챌린지 프로그램의 심사 위원은 처음이라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자작곡은 위험 부담이 좀 있지 않나요? 대중의 호응을 얻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 같아요. 처음 듣는 가사와 멜로디에도 상당 부분 공감하고 힐링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무대였습니다. 제 점수는……. 9.8 드리겠습니다.”
특별 심사 위원 중 한 명인 임재훈의 평가였다.
허강도 높은 점수인 9.7을 준 상황.
옆에 보니 박준영이 침을 꼴깍 삼키는 것이 보인다.
마지막 특별 심사 위원이 만만찮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타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 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국민 가수 이선휘.
전적을 봤을 때 정확한 곡 분석력과 보컬에 대한 날카로운 평가로 그녀의 심사평이 주는 파급은 대단했다.
하지만 박준영이 긴장하는 더 큰 이유는 이선휘가 데뷔한 지 30년이 넘은 원로 가수이자 대선배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저 정도는 되어야 천하의 박준영에게 이러니 저러니 평가할 수 있겠지.
“좋네요. 저는 점수를 먼저 드리고 심사평을 하겠습니다. 제 점수는요……. 9.6입니다.”
마이크를 심사 위원 이선휘가 점수를 발표하자 긴장하고 있던 박준영의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한다.
“저는……. 진심으로 감탄했습니다. 무대 시작 전에 영상으로 보니 이 곡은 박준영 씨 혼자 쓴 곡이 아니라 주시후 씨와 함께 만든 곡이던데요. 두 분이 쿵! 하면 짝! 하면서 뚝딱 곡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도 놀라웠어요.
특히 주시후 씨의 목소리에는 매력을 넘어서 마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들을수록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마성의 목소리였습니다. 후배 가수들이 저에게 롱런의 비결을 알려달라고 할 때 항상 진정성 있는 노래를 부르라고 이야기해 주는데요. 30년 넘게 노래를 부르면서 정작 제 자신은 진정성 있는 노래를 얼마나 부르고 있었나 돌아보게 하는 무대였습니다. 듣는 내내 행복한 노래 잘 들었습니다.”
이선휘의 긴 심사평이 끝나자 김상주 MC가 박준영 옆으로 다가갔다.
“자 그럼 무대에서 주시후 씨와 함께 미션 곡을 불러주신 박준영 심사 위원님의 소감을 한마디 들어 볼까요? 오늘 무대 만족하십니까?”
김상주의 질문에 박준영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먼저 특별 심사 위원들의 점수가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분명 좋은 무대가 나올 거라고 생각은…….”
박준영의 소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무대가 나왔기 때문이다.
무대 밑으로 내려와 마이크를 반납하며 박준영이 내 어깨를 툭 쳤다.
“시후야. 너무 잘했어. 음원 풀리면 대박 날 것 같은데 살짝 배 아프려고 그런다.”
“설마! 수익금이 아까워서 그런 건 아니시겠죠?”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닌데? 쓴 입맛을 다시는 것 같아 보이는데.
있는 사람이 더하다는 말이 사실인가보다.
그나마 박준영은 심사 위원으로 출연하면 출연료라도 받지.
씨이! 나는 출연료도 없이 8주간 개고생 중인데…….
* * *
이어지는 무대를 지켜보던 나는 살짝 위기감을 느꼈다.
역시 조훈의 무대가 참 좋다.
심사 위원 재규와의 힙합 무대에 나도 살짝 흥이 오를 뻔했으니 즐기기로 작정하고 이곳을 찾은 관객들은 어떠하겠는가?
엉덩이를 들썩이고 두 손을 머리 위로 흔들고 난리도 아니다.
그러나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은 것치고는 심사 위원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 이선휘가 흥은 돋웠으나 기억 나는 것이 없는 무대였다며 진정성을 들먹이면서 8.7이라는 낮은 점수를 줬다.
그러고 보면 노래라는 것이 참 어렵다.
잘 불러야 하고, 맛있게 불러야 한다.
무언가를 전달해야 하고 마음을 움직여야…….
“형!”
옆에서 하상훈이 나를 흔들어 상념을 흩어 놓았다.
“응?”
“우리 부모님 오셨어요. 좀 전에 무대에 섰을 때 봤거든요. 형네 부모님은 안 오셨어요?”
“오셨을걸. 오늘 마지막 생방이라 오신다고 했어.”
챌린지가 마지막에 접어들면서 K.net에서는 TOP 4의 가족들을 초청했는데, 아까 무대에 섰을 때는 어디에 계시는지 찾지 못했다.
‘아마 오셨겠지?’
그러고 보니 다행이다.
마지막 곡을 엄마에게 바칠 수 있어서.
“형. 다행이네요. 막 곡이 「사랑하는 어머님께」여서……. 저는 이승완의 「가족」 불러요.”
하상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킥킥 거린다.
마지막 곡 미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노래였는데, 오늘 같이 가족들이 죄다 모인 날 친구에게 또는 애인에게 노래를 바치게 된다면 집에 가서 찬밥도 없을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자고로 엄마의 심기는 어지럽히는 게 아니지.
슈스챌 마지막 생방송의 두 번째 미션이 이어졌다.
하상훈은 앞서 말한 대로 「가족」이라는 곡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시켰고, 평점 9.2의 높은 점수를 얻었다.
조훈은 보이 그룹으로 활동 했을 당시 뿔뿔이 흩어진 멤버들을 위한 무대를 선보였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도 음악을 포기 않아서 기특하다는 심사 위원들의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함소은은 어린 시절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소질도 남달랐는데, 가난한 형편에도 댄스 학원을 다닐 수 있게 경제적인 도움을 준 중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바치는 노래로 무대를 꾸몄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이번 슈스챌 시즌4의 마지막 생방송 무대.
이것만 끝나면 오디션 프로그램은 바이바이다.
참가자들을 웃기고 울리는 이런 심적으로 힘든 프로그램은 다시는 안 할 것이다.
훗날 심사 위원으로 참석하라고 해도 안 한다 안 해!
“생방송 <슈퍼 K-POP 스타 챌린지> 시즌 4의 마지막 한 곡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이 곡만 끝나면 장장 8주간의 챌린지가 끝이 나며 우승자와 준우승자 그리고 3등과 4등을 가리게 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마지막 무대의 주인공을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상주의 멘트가 끝나자 무대 조명이 잠시 꺼졌다.
대형 스크린에서 나의 우승을 응원 하는 이들의 메시지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나는 무대에 올라섰다.
‘어? 아빠도 오셨네. 바빠서 못 오실 것 같다고 하더니.’
첫 번째 미션곡으로 무대에 섰을 때는 두리번거려도 찾기 힘들었던 가족이 한눈에 딱 들어왔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었지만 7품 신수 카이엘의 능력으로 시력을 올린 것이다.
엄마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는데 기왕이면 방향이라도 알고서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누나와 조카들은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팔이 떨어지라 흔들고 있다.
짜식들.
블랙 타이거 응원 피켓 들고 방송국 쫓아다닐 때부터 알아봤지만, 피켓 참 잘 만들었네.
바빠서 못 올 것 같다고 하셨던 아버지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무슨 딴따라를 하겠다고 그러냐며 꼭 옛날 사람처럼 말씀하시더니 그래도 아들 놈이 카메라 앞에 서서 노래하는 것이 싫지는 않으신가 보다.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 계셨지만, 자세히 보니 입꼬리를 씰룩거린다.
마지막 무대라서였을까?
아니면 너무나 유명한 가수가 부른 엄청 유명한 노래라서였을까?
도입부가 시작되자마자 객석 반응이 뜨겁다.
노래는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우리 엄마의 눈시울은 벌써부터 벌게져 있었다.
‘4품 운백 에로스 소환.’
“신 에로스가 소환을 허락합니다.”
나는 마이크를 꽉 잡고 입으로 가지고 갔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나지막이 내뱉으며 노래가 시작되었다.
* * *
“여태까지 주시후 연습생의 무대를 쭉 지켜보면서 매번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는 수준의 무대구나. 이미 저 친구는 훌륭한 가수구나. 이렇게 말입니다. 오늘도 역시 흠잡을 곳이 없는 무대를 보여줬고요, 아주 멋졌습니다. 연습생이라는 호칭도 아마 오늘이 지나면 무색해질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한마디 하자면, 시후야! B&M 엔터에서 데뷔 안 시켜 주면 우리 회사로 와. 내가 당장 데뷔시켜 줄게.”
박준영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심사평을 마쳤다.
물론 김경민 대표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방송에서 너스레를 떤 것이지만, 어쨌든 대형 기획사의 대표가 바로 데뷔시켜 주겠다며 이적하라고 권하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찬사였다.
박준영은 점수판에 10점을 띄웠다.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슈스챌 시즌 4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만점이기 때문이다.
소란스러웠던 장내 분위기가 삽시간에 조용히 가라앉았다.
특별 심사 위원 이선휘가 마이크를 잡아서였다.
박준영이 10점을 내어 준 이 상황에 이선휘는 어떤 평가를 할 것인가를 두고 모든 이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음……. 시후 씨가 노래하는 동안 제가 진짜 많이 울었는데 혹시 보셨을지 모르겠네요? 분명 시후 씨는 어머님께 바치는 노래였을 텐데, 제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그런 건지 너무 감정이입이 되었어요. 제 아들이 불러주는 노래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마 이 노래를 들으신 모든 어머님들은 다 공감하셨을 거예요. 제가 어머님들을 대신해서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아들아! 오늘 무대 너무 훌륭했어. 수고했고, 고맙다! 음정, 박자, 전달력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무대였습니다. 제 점수는요…….”
우아! 하는 환호성이 방청석에서 터져 나왔다.
깐깐한 국민 가수 이선휘가 준 점수는 10점이었다.
“주시후!! 주시후!!!”
방청석에서 내 이름이 계속 나왔는데, 더러 보이는 피켓과 플래카드를 머리 위로 치켜든 사람들도 보인다.
분위기에 휩쓸려서인지 심사 위원들의 점수가 10점이 많았다.
처음부터 어차피 우승은 나라고 생각했지만, 이쯤 되면 우승 확정이다.
슈스챌 시즌 4의 마지막 미션 평가를 모두 마치고 나자 김상주 MC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지금까지 TOP 4의 모든 미션 곡을 들어보았고요. 이제 마지막으로 순위 발표와 최종 우승자 발표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럼 우선 TOP 4를 무대 위로 모셔 보도록 하겠습니다.”
TOP 4들이 무대 위로 오르는 동안 김상주의 진행은 계속되었다.
“먼저 이 자리에 서 계신 <슈퍼 K-POP 스타 챌린지> 시즌 4의 TOP 4에게는 K자동차의 최신 모델인 하이브리드 7을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상주의 멘트를 들으며 무대 위에 다시 서니 감회가 새롭다.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석에서는 자신들이 응원하는 연습생에 대한 열망이 보인다.
그리고 바로 내 발 아래.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카메라맨들과 방송 관계자, 스태프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두 손을 꼭 모으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김남규 팀장.
언제 왔는지 초조해 보이는 임준석 실장도 함께 서 있다.
그걸 보고는 갑자기 마음이 울컥해졌다.
항상 뒤에서 서포트 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 주는 이들.
순식간에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앞으로 갚아나가면 되지.’
허공을 쳐다보며 눈을 깜박이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조훈 연습생. 이 네 명 중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라이벌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서로 너무 친해서 라이벌이라기보다는, 그냥 우승자를 점쳐 본다면 주시후가 될 것 같습니다.”
MC 김상주의 질문에 조훈이 대답한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아무래도 그동안 시후가 보여줬던 무대를 보면 누구든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오늘 미션으로 심사 위원님들께 받은 점수와 인터넷 사전 투표 결과만 봐도 우승자는 제가 아닌 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전 준우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조훈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포부를 밝히자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네. 준우승자 또한 우승자 특전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최대 K팝 콘서트인 ‘BIG MAMA’ 무대에 설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가 있죠. 그럼 주시후 연습생에게도 같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김상주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다.
“음……. 솔직히 말해서 우승 욕심이 없으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누가 우승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 있는 TOP 4들은 누가 우승자가 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실력을 가진 친구들이니까요. 이 자리까지 올라와 있는 것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누가 들어도 경연 프로그램의 정답을 말한 것이겠지만, 나는 그새 또 거짓말이 늘었음을 느꼈다.
우승은 무조건 내 꺼지.
“자 그럼 지금부터 심사 위원 점수 50%, 관객 평가단 점수 40%, 사전 온라인 투표 수 10%를 합산한 총점으로 4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사전 온라인 투표 수 480만, 관객 평가단 점수 평점 89.4, 심사 위원 점수 평점 9.1을 받은 TOP 4입니다. 4위는…….”
4위는 함소은이었다.
씩씩한 미소와 함께 짧고 굵은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상했던 결과였는지 꽤 흡족해 하는 모습이었다.
3등은 안타깝게도 하상훈이 지목되었다.
심사 위원 점수가 꽤 높았지만 온라인 사전 투표 결과가 생각보다 낮게 나온 것이다.
3등에 그친 하상훈은 마이크를 잡은 시간에 비례해 수상 소감이 매우 짧았다.
펑펑 우느라고 제대로 소감을 말하지 못한 것이다.
하긴. 19살이면 아직 멘털이 약한 나이인데, 치열한 챌린지 생태계에서 부대끼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3, 4위가 결정이 나자 남은 것은 우승과 준우승.
두 개의 자리를 놓고 조훈과 나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조훈의 표정을 보니 우승은 나의 것이라더니 조금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자, 이제 우승자를 가릴 마지막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저 역시 매 시즌마다 이 순간이 가장 떨리고 긴장이 됩니다. 우승자에게는 5억 원의 상금과 특전으로 아시아 최대 K팝 콘서트인 ‘BIG MAMA’의 초청장을 받게 됩니다. 준우승자에게는 1억 원의 음원 지원금을 주고 특전으로는 우승자와 마찬가지로 ‘BIG MAMA’의 초청장을 드리겠습니다. 자, 과연 누가 <슈퍼 K-POP 스타 챌린지> 시즌 4의 우승자가 되어 우승 상금 5억 원의 주인이 될 것인지! 지금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방청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를 비추는 핀 조명만 여러 개가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며 무대를 비춘다.
심장박동 수를 증가시키는 긴박감 넘치는 음악이 장내에 흐른다.
모든 사람들이 김상주에게 눈과 귀를 집중하며 긴장감에 쌓여 있다.
이윽고 김상주가 나와 조훈을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60초 후에 공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