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38화 데뷔 준비 (3)
블랙 타이거의 응원을 받고 녹음실로 돌아온 나는 다시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다.
곡이 나와 안 맞는 걸까?
아니다. 이건 곡의 문제가 아니라 보컬의 문제인 것 같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깨달음을 얻을 듯 말 듯 확실한 무언가와 자꾸 멀어지는 게 답답하기만 하다.
얼굴을 쓸어내리며 짜증을 참고 있던 그때, 녹음실 문이 열리고 프로듀싱 디렉터와 레코딩 엔지니어가 들어왔다.
식사를 마치고 온 그들은 아까보다 밝은 표정이었다.
역시 휴식은 정신건강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자, 시후 씨. 다시 갈까요?”
디렉터가 녹음 시작을 알리자 나는 녹음 부스 안에 다시 들어갔다.
엔지니어가 손가락으로 신호를 주더니 MR을 깔았다.
“후우….”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몇 번을 더 불러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만 같은데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아니다.
진짜 잘 해내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선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나 음반의 성공 여부가 중요치 않았다.
우연히 반지를 얻었고 신을 만났지만, 그로 인해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후지게 그냥 살다가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내 삶에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기왕이면 멋지게 해내고 싶다는 생각은 평상시에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냥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좋은 음악이 나왔으면 좋겠어. 듣는 사람이 항상 좋아할 만한, 누군가에게 행복한 기분을 선사할 만한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그때였다.
녹음 부스 안이 찬란하고 밝은 노란색 빛으로 가득 물들더니 번쩍하고는 사라졌다.
“허어!”
너무 놀란 나는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비명을 내뱉었다.
“시후 씨. 지금 뭐해요?”
녹음 부스 밖에 바라보니 MR을 중단한 디렉터와 엔지니어가 나를 보며 깔깔 웃는다.
“안에서 귀신이라도 본 표정이네.”
“그러게요. 음반 작업할 때 귀신 보거나 귀신 소리라도 들으면 대박 난다고 하던데. 이거 이번 앨범 대박 나는 거 아니에요?”
녹음 부스 밖의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이 찬란한 빛을 못 본 듯하다.
역시 나한테만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 이런 이상 현상을 겪는 건 나 혼자면 충분하지.
자칫 이상한 놈으로 낙인 찍힐 뻔했던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능청을 떨었다.
“두 분은 못 들으셨나 봐요? 방금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으으. 소오름 끼쳐.”
“에이. 시후 씨 왜 그래요? 무섭게……. 나 오늘 여기서 밤 새야 되는데, 안 되겠다! 우리 커피 한 잔 마시고 하죠.”
프로듀싱 디렉터가 팔에 닭살이 돋는지 양쪽 팔뚝을 쓰다듬으며 녹음실 밖으로 나갔다.
뜻밖의 휴식 시간이 잠시 생긴 나는 조금 전 빛의 출처가 궁금해졌다.
기이한 현상이라면 무조건 반지 때문이겠지.
무심코 왼손에 끼어있는 엑스트라 링을 들여다보자, 어어?
‘반지의 보석 색깔이 바뀌었어. 혹시…….’
나는 다급하게 천상경에 울림을 전달하였다.
‘이게 혹시 그 현상인가요?’
내 질문에 천상경에서 즉답이 들려온다.
“선인이시여. 감축 드립니다. 빛이 발현한 것은 엑스트라 링의 중급 각성 때문입니다.”
손의 반지를 들여다보니, 보석 색깔이 영롱한 노란색으로 변해 있다.
붉은색, 파란색도 마음에 들었지만 노란색도 마음에 드는군.
앨범 녹음이 안 풀려서 애먹고 있는 이 시점에 각성이라니.
대박이다.
‘그런데, 갑자기 반지가 각성한 이유가 뭘까?’
마음속으로 생각한 혼잣말에 친절한 천상경의 사자는 묻지도 않았는데 답을 해온다.
“엑스트라 링은 아시는 바와 같이 신의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누적되는 특수한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엑스트라 링을 윗 단계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인간계에서 소위 말하는 경험치를 달성한 것이죠.’
“경험치? 네. 그렇게 이해하시는 것이 편하시다면. 선인께서는 각성의 요건이 충족 될 만큼의 경험치를 쌓으셔서 엑스트라 링이 중급으로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4품 운백(沄魄)’과 ’5품 신장(神仗)’ 신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능력의 리스트는 이미 깨우치셨을 것입니다.”
나는 급하게 4품, 5품 신들의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어떤 신이 있을까?
심장이 콩닥콩닥 거린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어보는 어린아이의 마음 같달 까?
5품 신장은 신의 무기라는 품계 이름처럼 무신들이 많았다.
그중 잘 알고 있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였던 관우(關羽).
하지만, 내가 말에 올라타서 청룡도를 쓸 일이 있을까 싶다.
와……. 이거다! 이거지!
반면, 4품 운백의 리스트를 떠올리고 나는 쾌재를 불렀다.
모든 인간들의 감정, 감성, 정신에 관여하는 에로스(Eros), ‘큐피드’로도 알려진 사랑의 신.
드디어 찾던 신의 능력이 여기 있었다.
잠시 후 프로듀싱 디렉터가 커피 한잔을 들고 녹음실로 들어왔다.
뒤에 따라 들어온 김남규 팀장과 밖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둘 다 매우 심각한 표정들이다.
이윽고 김남규 팀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한다.
헤드폰을 벗고 녹음 부스 밖으로 나온 나는 김남규 팀장을 보고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채근했다.
“시후야. 내가 조금 전에 알게 된 사실인데, 너 기타 잘 치더라? 그것도 엄청?”
“네?”
“한번 해 보자. 기타로.”
잠시 후 다시 시작된 앨범 녹음 작업.
김남규 팀장의 제안으로 MR 반주 대신, 내가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녹음하게 되었다.
어디서 뭘 보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날 뭘 믿고…….
전에 연습실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I want you」 어쿠스틱 버전을 연주해 본 적이 있지만, 똑같은 음악이 나올지는 나도 의문스러웠다.
워낙 즉흥적인 것이었으니…….
하지만 한번 들으면 외워버리는 것이 반지의 고유 능력이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긴, 조금 달라진다 한들 내가 한 편곡이니 똑같지 않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냐만.
아까와는 사뭇 다른 자신감을 가진 나는 4품 운백 에로스의 능력과, 전에 시험해 보았던 6품 핑거 스타일의 기타리스트 마이클 헤지스의 능력도 함께 장착하였다.
녹음 부스 밖에서 시작 사인이 들어오자, 기타를 끌어안고 있는 나는 천천히 기타를 무릎 위에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디딩- 딩딩디디딩-.
오른손으로 줄을 뜯을 때마다 경쾌하면서도 따뜻한 기타 소리가 퍼져 나간다.
핑거 스타일 주법으로 손가락이 화려하게 움직이는 만큼 귀에 들리는 기타음도 풍요롭고 꽉 차 있는 느낌이 든다.
짧은 인트로를 연주하고선 입을 마이크에 가져갔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 심정으로, 사랑을 전파하는 신의 마음을 담아 한 소절씩 불러나갔다.
“뒤 돌아보면 손에 잡힐 듯 항상 곁에 있는 너.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너의 존재는 항상 힘이 돼.
이제는 내가 널 응원할게. 내게 기회를 줘.
항상 너와 함께 할 거야. 찬란한 우리의 청춘.”
눈을 감고 끝까지 심혈을 기울여 노래를 부른 나는 스스로 만족스러워 입가에 미소가 지었다.
청춘들에게 희망을, 연인들에게 사랑을 전달한다.
사랑의 신은 전령이 되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 마음도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더니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휙휙!
손부채질로 곧 나오려는 눈물을 말리며 녹음 부스 밖을 바라보았다.
‘흐미. 다 큰 남자들이.’
녹음 부스밖에 김남규 팀장이 엄청나게 감격한 표정으로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있다.
그 옆을 보니 프로듀싱 팀도 휴지를 가져다가 코를 푸는 모양들이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나는 피식 새어나가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마이크에 대고 물었다.
“오케이?”
* * *
“좋아. 이렇게 가는 거로 해요.”
음반사업본부 음반 아트 디렉터 최현미 실장이 책상을 탕탕탕! 세 번 쳤다.
그녀의 얼굴은 높은 만족도만큼이나 싱글벙글이다.
엑스트라 링의 중급 각성 이후 녹음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다만 원래 구성될 예정이었던 3곡 중 타이틀 곡인 「I want you」는 작곡가의 허락을 구해 어쿠스틱 버전으로 변경되었다.
콜 루크가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이 두 번째 수록곡이었는데, 이것도 문제가 생겼다.
피아노 곡을 녹음하다가 신의 능력이 살짝 편곡해 버렸는데 바뀐 곡이 더 좋다는 의견들 때문이었다.
곡에 대한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이 대단한 콜 루크는 음표 하나, 박자나 세기 하나 변경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편곡해 버렸으니 이를 허락할 리가 없다는 의견들이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녹음 연주를 들은 콜 루크가 극찬하며 격앙된 목소리로 ‘오케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3번째로 수록하기로 했던 리메이크 곡은 가수 윤종실의 ‘아주 오래전 그날’로 정해서 녹음을 마쳤다.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윤종실의 소속사인 ‘미스터 엔터테인먼트’에 녹음 파일을 보내주었더니 내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노래라며 흡족해 했다고 한다.
음반사업본부 디지털마케팅 김수연 실장은 이번 디지털 싱글의 수록 곡 하나하나 대박 날 것이라며 호언장담했고, 음반 아트 디렉터 최현미 실장은 재킷 디자인이 끝났다며 촬영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데뷔 곡 녹음을 끝내고 나니 이제 <슈퍼 K-POP 스타 챌린지> 생방송 무대가 걱정이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슈스챌.
이것은 내일 저녁 7시에 K.net 방송국 공개홀에서 치를 예정이다.
나는 슬슬 초조해졌다.
‘데뷔 곡 준비하느라 슈스챌을 너무 소홀했어.’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지만, 돌이킬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경민 대표가 더 이상 챌린지 순위에 신경 쓰지 말고, 데뷔 준비에만 전념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상금이 5억인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마침 걱정하는 김에 휴대폰으로 슈스챌 사이트에 접속해 본다.
일주일 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사전 온라인 투표’ 상황이 궁금해서였다.
“으잉?”
생각 외로 흘러가는 투표 결과에 조금 놀랐고 의문이 떠올랐다.
1위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들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조훈이었다.
하지만 곧 이해되었다.
오늘 잠깐 들렀던 홍보마케팅본부 직원들이 하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기존에 아이돌로 그룹 ‘히든 보이’로 활동을 했던 조훈과 영표는 해체로 떠났던 팬들이 조금씩 다시 돌아오고 있어서 표를 많이 받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2위에 올라있는 내 이름을 확인하자 의지가 불타올랐다.
이번에 확실하게 보여주면 되지 뭐!
그나저나 내일 무대에서 치를 미션 지정 곡을 어쩐다?
생방송 1차 미션은 추억의 명곡 미션이었다.
심사 위원들이 TOP 10의 연습생들에게 명곡을 각각 지정해 주었는데, 내가 받은 곡은 스트라이퍼(stryper)의 「In god we trust」였다.
미국의 오래된 메탈 밴드.
메인 보컬의 음역대가 매우 높다고 알려진 크리스찬 대표 밴드로, 빌보드 차트에 앨범을 올릴 만큼 확실히 인기가 있고 실력이 뛰어났다.
심사 위원들이 이번에 내게 원하는 것은 그냥 제일 높은 곡이었나 보다.
내 음역대를 시험해 보고 싶다나? 이것이 「In god we trust」가 미션 곡이 된 이유였으니.
물론 어렵진 않겠지. 내 음역대는 상상 그 이상이니까.
확실히 이번 미션에서 곡을 선정해 준 심사 위원들은 짓궂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들어보려 귀에 이어폰을 끼워 넣었다.
‘드디어 내일이 첫 번째 생방송이구나.’
반지가 중급 각성에 들었겠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결의를 다지고 나서 플레이 버튼을 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