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36화 (36/170)

# 36

36화 데뷔 준비 (1)

등급 평가, 레벨 재평가, 듀엣 편곡 평가에서 생존한 연습생 40명.

우리가 받은 다음 미션은 ‘팀 배틀’이었다.

프로그램 운영진에서 지정한 곡으로 노래, 안무, 랩 등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미션.

이를 위해 심사 위원들이 지정한 상위 8명의 연습생이 팀원을 뽑아 하나의 팀로 구성해야 했다.

연습생 5명씩 모인 총 8팀이 이번 미션으로 4팀이 탈락하자 연습생은 20명이 생존했다.

나와 한 팀이 된 진국, 다른 팀으로 결성되어 미션을 수행한 하상훈은 이번 미션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다음에 주어진 일대일 대결 미션.

생방송에 출연하게 될 최종 TOP 10을 선별할 때, 진국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탈락했다.

이로써 총 8주간 진행할 <슈퍼 K-POP 스타 챌린지>는 여정의 절반인 4주를 보냈다.

TOP 10이 완성되자 생존자나 탈락자나 모두 그간 정들었던 리조트를 떠났다.

이제는 K.net 방송국에서 펼쳐질 생방송 무대만 남았다.

시즌 4의 TOP 10으로 선정된 연습생들은 심사 위원들로부터 시청자들에게 선보일 첫 생방송에서 대결을 펼칠 무대를 준비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이로써 각자 11일간 퍼스널 트레이닝 및 준비에 착수했다.

B&M 엔터테인먼트의 사옥.

챌린지가 끝나고 약 10일간 쉬는 날을 받았지만, 고작 하루 쉬었을 뿐이다.

‘피곤하진 않지만 스케줄이 빡빡한 게 은근 스트레스네?’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한 나는 망설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목적지는 빌딩 4층 아트 개발실이었다.

“팀장님, 저 왔어요.”

내가 옆에 서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컴퓨터에 몰입한 김남규는 나를 곁눈질로 힐끗 보더니 다시 하던 일에 열중한다.

“응. 시후야, 잠깐만.”

김남규 팀장은 건성으로 대답을 하더니 커다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뭐 하길래 저러나?

궁금증이 일은 나는 김남규 팀장 뒤에 서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ID:wegwe*** - 이번 주 슈스챌 방송에 TOP 10 발표하는데 시후 오빠 들었으면 같이 투표 ㄱㄱ해요.

뭐야 저게?

댓글 알바인가?

“팀장님 지금 뭐하세요?”

“잠깐만, 3번만 더 올리면 돼.”

“끄응.”

“하하하. 회사에서 하는 일 중에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기다려 봐. 1번 남았어.”

너무나 진중한 모습으로 댓글을 달고 있는 김남규 팀장을 보고는 피식 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다했다! 시후야. 가자”

“어디를요?”

“가서 보면 알아.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

나와 나란히 걸으며 그가 데리고 간 곳은 8층에 있는 음악사업본부 음반 아트 디렉터 룸이었다.

아, 그랬지.

<슈퍼 K-POP 스타 챌린지>가 끝나면 바로 음반이 나올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고 했었지.

“실장님이랑 상의해 봤는데, 일단 싱글 음반부터 가자.”

문을 열고 들어서자 검은 단발머리의 여자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쌍꺼풀이 짙고 큰 그녀의 눈을 보자 성격까지 시원시원해 보인다.

이래서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옅은 화장으로 하얀 피부 톤을 살려서 그런지 깨끗한 인상을 주는 그녀는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나와는 달리 김남규 팀장은 손을 들어 화답했다.

“시후야, 이쪽은 음반 아트 디렉터 최현미 실장님이고, 어려 보인다는 말 좋아하셔. 참고로 서른다섯 살이야.”

김남규 팀장의 소개에 최현미 실장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너스레를 떤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보기에도 어려 보였다. 최대로 봐야 서른 살?

“반가워요. 한 회사에 있으면서 이렇게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네? 근데 사진 빨이랑 방송 빨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요? 7층 캐릭터메이킹팀으로 가는 복도에 사진 붙어 있는 건 알죠? 내가 오가다 자주 보거든요.”

말을 하던 최현미 실장은 침침한지 눈을 한 번 비비고는 나를 다시 쳐다본다.

“에이씨. 메이킹 다시 해야겠네. 화면 빨을 진짜 안 받나 보네. 실물이 특급이라 그런가?”

세워 놓고 말했다는 것이 이제 기억나는 듯 최현미 실장은 김남규 팀장과 내게 의자를 권했다.

곧 탁자 위의 다양한 기획안들.

이번 나의 첫 앨범의 콘셉트이자 디자인이었다.

“사실 앨범 메이킹 하기 전에는 가수가 아트 디자이너들과 수차례 만나서 컨셉 회의도 하고 디자인 회의도 해서 제작하는 게 순서거든요. 그런데, 시후 씨 같은 경우에는 무조건 한 달 안에 앨범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해서 시간이 너무 촉박했어요. 김 팀장이 늦어도 2주 후까지는 무조건 앨범이 나와야 된다고 우겨서요. 그래야 남은 2주 동안 재킷도 찍고 앨범 홍보도 하니까요.”

최현미 실장이 말을 하며 김남규 팀장에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

그는 겸연쩍은 표정이 되어 뒤통수를 긁적거린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있어서…”

최현미 실장이 그 장면을 힐끗 보고는 다시 내게 시선을 옮겼다.

“미팅할 시간이 없어서 시후 씨 프로필이랑 방송만 보고 메이킹 한 결과가 이거예요.”

최현미 실장이 내가 잘 보이는 방향으로 기획안을 밀어 보였다.

앨범 재킷으로 사용할 콘셉트.

검붉은 하늘과 어두운 골목이 배경으로 자리 잡은 컷,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의 뒷모습.

무슨 뱀파이어 콘셉트인가?

“사실 영상으로 본 시후 씨의 이미지는 진짜 헷갈렸거든요. 프로필 사진은 섹시, 도발, 유혹 이런 건데, 방송에 나온 모습은 천사 같아서요. 그래서인지 회사에서 시후 씨 별명이 암흑 천사예요. 그래서 이런 콘셉트가 나온 거죠.”

일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 영 귀찮은지 최현미 실장의 표정이 떨떠름하다.

하지만, 프로인 그녀는 곧 다부진 표정으로 말했다.

“다시 하죠! 디자인 미스가 확실하니까. 우리 직원들이랑 이번 주까지 콘셉트 잡고 재킷 디자인 다시 할 거예요. 시후 씨는 음원 녹음을 먼저 하고 재킷용 컷을 따야 할 거 같아요. 김 팀장은 스튜디오랑 날짜 잡아.”

“네! 실장님. 콘셉트 나오면 알려주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남규 팀장이 오버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숙이며 인사한다.

그 모습이 흐뭇한 최현미 실장은 입에 미소를 걸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앨범에 수록할 곡들. 트로피컬 하우스 한 곡, 피아노 솔로 연주곡 하나. 팝 발라드도 들어갈 거고. 총 3곡 어때요? 싱글 커트로 갈 건데. 물론 디지털 싱글이 주가 되겠지만.”

??

어떠냐고? 뭐가?

뭐가 뭔지 알아야 어떤지 알지.

“아! 이런, 내가 처음 앨범 내는 신인한테 너무 몰아붙였나?”

최현미 실장이 볼펜을 하나 집어 들더니 내 앞에 있는 앨범 수록곡 리스트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다시 설명해 주었다.

“트로피컬 하우스, 이 곡은 소속 작곡가들이 기존에 만들어 놓은 곡을 쓸 거예요. 시원한 느낌보다는 따뜻한 느낌이라, 원래 내년 상반기에 데뷔할 친구들 주려던 건데, 이게 가을에 듣기 좋은 노래라 딱 지금이 시즌이거든.”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나를 보자 만족한 듯 말을 이어나간다.

“피아노 솔로 연주곡은 영화 「피아노의 정원」 OST의 작곡가 콜 루크가 작곡을 거의 끝낸 상태예요. 아마 내일쯤 악보랑 데모를 받아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컨택은 해외기획팀에서 했지만, 이 곡은 시후 씨 실력으로 따낸 곡이에요.”

콜 루크는 자부심이 대단한 작곡가라 가수한테 곡을 주는 일은 한사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던 동영상을 보내주자, 서슴없이 곡을 주겠다고 했다며 최현미 실장이 설명해 주었다.

“팝 발라드는 기성곡을 리메이크 했으면 좋겠는데. 평소 좋아하는 팝 있어요? 뭐 꼭 팝이 아니라도 상관없고. 케이팝도 괜찮아요.”

“내일까지 생각해 볼게요.”

무슨 곡이 좋을까 찰나 고민을 하다가 의문점이 생겼다.

왜 댄스곡은 없…

“댄스곡은 안 넣었어요. 나는 슈스챌 보고 시후 씨의 댄스를 칭찬했는데, 오디션에서 보여줬던 댄스 영상을 본 작곡팀에서는 안전하게 가자고 하네요. 타이틀 곡은 약간 그루브만 타면 될 것 같다며 오케이 했고요.”

최현미 실장이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 독심술을 보여 주었다.

“아, 네.”

이제 나는 댄스의 제왕으로 거듭났다고, 작곡팀으로 쳐들어가서 다짜고짜 무반주 댄스라도 보여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꾹 참는다.

“자 그럼, 시후 씨는 리메이크 할 곡 생각해오고, 내일 다시 회의하죠.”

회의가 끝났음을 알리는 그녀의 말에 김남규 팀장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재킷 사진이라…….”

최현미 실장이 나를 보며 한마디 한다.

“네?”

“기대되는데요?”

* * *

“Baby, I want you. 너의 미소. Baby, I want you. 너의 사랑.

Want you. Want you. 원해. 너의 모든 것. 나만 바라봐 줄래.

라라라. 라라리라라.”

아까부터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던 나는 음악을 무한 재생 중이다.

신나는 비트의 밝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데 후렴구가 후크송마냥 반복되는 꽤 중독성 있는 노래다.

작곡실에서 조금 전 받아온 나의 데뷔곡, 「I want you」다.

다음 주 중에 녹음을 시작할 거라고 데모를 받아온 터다.

사실 이렇게 반복해서 듣지 않아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미 음과 가사는 충분히 익혔다.

그래도 내가 부를 곡이니 목소리와 리듬감도 내가 선택해야 했고 세부적으로 들어갔을 땐 표정이나 제스처도 생각해야 했다.

지금은 무대에서 부른다는 태도로 이미지 트레이닝 중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처럼 생각만 하지 말고 움직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김남규 팀장이 비디오카메라 한 대를 들고 나타났다.

이내 거울 앞에 서 있는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시후 씨, 여기 좀 봐 주세요. 손 좀 흔들어 주세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나는 시키는 대로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홍보 자료로 쓸 클립 영상을 찍을 거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오늘이구나.

“시후 씨,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요.”

나는 연예인들이 짓는 착한 미소를 장착하고 최대한 밝은 톤으로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시후라고 합니…”

띵띠리리리리. 띵띠리리리리.

웬 방송 사고?

김남규 팀장의 휴대폰에서 벨소리가 신나게 울려 퍼졌다.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김남규 팀장이 구석에 있던 피아노의 뚜껑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급하게 나갔다.

뛰는 폼을 보니 중요한 전화인가보다.

나는 다시 음악을 틀어놓고 이리저리 동선을 짜 봤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잘 되어 있어서인지 처음치고는 어색하지 않았다.

“아. 옛날에 이런 거 많이 했는데.”

「I want you」 간주 부분에 기타 솔로가 나오는데, 어렸을 적 놀던 생각이 나서 한쪽 다리를 쫙 펴고는 그걸 기타삼아 긁는 시늉을 했다.

잠깐 장난을 치다 보니 피아노 옆에 있는 기타가 눈에 들어온다.

진짜 이 부분을 무대에서 기타로 쳐 볼까?

음악을 꺼버린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기타 앞으로 다가갔다.

기타를 잡는 순간 머릿속으로 복잡한 악보가 떠오른다.

‘이거 괜찮은데?’

* * *

일주일 후.

“오케이. 시후야. 이번 것 괜찮아. 진짜 괜찮다니까?”

내 귀에 걸린 헤드폰으로 김남규 팀장의 애타는 목소리가 여과 없이 들려온다.

“아뇨. 팀장님 다시 해 볼게요.”

프로듀싱 룸의 녹음 부스 안에서 나는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바락바락 우겼다.

김남규 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내 옆에 있던 레코딩 엔지니어가 체념한 표정으로 다시 곡을 플레이 했다.

지금은 타이틀 곡 「I want you」의 녹음을 하는 중이다.

프로듀싱 디렉터와 김남규 팀장은 내가 곡을 부를 때마다 좋았다고 ‘오케이’라고 한다.

‘하지만 뭔가가 성에 차지 않는걸?’

나는 계속해서 부르고 엔지니어는 계속해서 녹음하고.

이런 반복 행동이 벌써 스무 번을 넘기고 있다.

생애 첫 앨범인데, 이게 어디 대충 할 수 있는 일인가?

사실 대충은 아니다.

아침부터 스무 번이 넘게 불러 녹음한 곡들도 심혈을 기울여 잘 부르긴 했다.

김남규 팀장과 디렉터와 엔지니어도 녹음해 놓은 것들이 전부 다 좋아서 어느 것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할 지경이었으니.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다 좋은데 그중 한 개만 써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스무 번 넘게 녹음한 이 앞의 것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녹음 부스 밖에 보니 김남규 팀장과 프로듀싱 디렉터, 레코딩 엔지니어의 표정이 가관도 아니다.

듣기 좋은 노래도 한 번, 두 번이지.

아침부터 장장 4시간가량 녹음 부스에서 불러대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 셋 다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것도 이해된다.

하지만, 처음에 계획했던 2주가 거의 끝나가는데 녹음이 잘 풀리지 않자 나는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간 줄도 모르고 노래했네.

일단 밥은 먹여야겠지?

나는 헤드폰을 벗고 녹음 부스 밖으로 나왔다.

“죄송해요. 제 욕심 때문에 식사 시간이 지났는지도 몰랐어요.”

“아냐. 시후야. 첫 앨범인데 욕심내는 게 당연하지. 밥 먹고 와서 다시 하자.”

“전 입맛이 없어서요. 여기 조금 혼자 있고 싶어요.”

내 대답에 프로듀싱팀 사람들과 김남규 팀장이 뒤도 안 돌아보고 프로듀싱 룸을 빠져나간다.

식사하라며 안 보냈으면 어쩔 뻔했나?

조용해진 룸 안에서 나는 의자에 털썩 앉아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대체 문제가 뭐란 말인가?

노래는 내가 들어도 흠잡을 데 없이 무척 잘 불렀는데.

감흥이 없달까?

이보다 더 정확한 기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음정 박자 리듬 모두 정확하게 불렀는데, 마음에 와닿는 것이 없다.

진짜 답답하구만.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신의 능력을 살펴보아도, 이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신의 능력이 마땅치 않다.

에잇. 모르겠다.

계속 부르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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