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32화 동창회 (2)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구석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강화영의 맞은편에 앉은 나는 정면으로 보이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채 한쪽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아 나를 주시하고 있는 그녀.
평소 여자들이랑 말을 섞어 본 적이 별로 없어서 나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훨씬 예쁘네. 역시 배우는 다르구나.’
이렇게 예쁜 배우가 나를 왜 보자고 한 걸까?
혹시 내 무대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용건은 아니겠지?
아니면 사진을 함께 찍자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갑자기 혈압이 확 올랐다.
아무리 잘나가는 여배우라도 그렇지, 사람을 오라 가라 하나?
이미 와서 앉아 있지만, 자존심이 상한 표정을 드러내자 강화영이 대뜸 물었다.
“주시후?”
“네. 주시후 맞는데요.”
“저 몰라요?”
왜 몰라? TV만 틀면 CF에서 계속 나오는 것을.
“알죠. 배우 강화영 씨. 요즘 TV에 많이 나오시던데 잘 보고 있어요. CF도 잘 보고 있고.”
조금 전에 친구 놈들이 옆에서 인터넷에 떠 있는 강화영의 프로필을 줄줄 읽어 내려간 통에 몰랐다가도 빠삭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질문을 던진 강화영이 내 대답에 묵묵부답이다.
그저 눈을 가늘게 찢고는 나를 뚫어지라고 쳐다만 보고 있다.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소파에 붙이고 있던 등을 떼고는 나와 그녀의 사이에 있는 테이블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잠시의 침묵 끝에 드디어 그녀의 입이 열렸다.
“모르나 보네? 그럼, 송혜진은? 송혜진은 기억 나?”
* * *
5교시는 미친 불독 쌤의 수업 시간이다.
점심을 잘못 드셨는지 오늘따라 갑자기 교과서 없는 학생들은 다 뒤로 나가 서 있으라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가방을……, 책상 속을 아무리 뒤져 봐도 나오지 않는 교과서.
분명 아침에 챙겨 놓았던 것 같은데, 후유. 뒤로 나가 서야 하나?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어디선가 수학 교과서가 내 책상으로 날아들었다.
“어, 어?”
책이 날아온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맨 뒤로 향했다.
점심을 많이 먹었더니 졸려서 못 앉아 있겠다고 조용히 너스레를 떠는 저 아이는.
항상 그랬다.
중3 때 한 반으로 배정받으면서부터 매번 내게 주기만 했다.
없던 체육복도 빌려다 툭 던져주고, 갑자기 비가 오는 날엔 어디선가 우산을 빌려다가 손에 쥐여 주기도 했다.
벌써 2개월 가까이 이어진 선의들.
‘이쯤 되면 사귀어 볼래?’라던가 아니면 좋아한다는 말이라도 속 시원하게 했으면 좋겠건만 저 아이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마음을 어필하지 않았다.
말을 붙이기가 쑥스러운 것인지 항상 필기 노트만 보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묵묵히 잘해 줬다.
3개월이 넘어가자 처음엔 부담스러웠던 호의가 점차 익숙해졌다.
성적도 그냥저냥인 것 같고 외모도 특출나게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호기심이 호감으로 변한 것 같았다.
이를 함께 지켜본 친구들이 요즘 들어서는 자꾸 나를 부추겼다.
“네가 먼저 사귀자고 해 봐. 분명 너 좋아하는 거라니까.”
“아냐. 그런 거. 나 좋아한다고 아직 확실하게 말하지도 않았는데?”
“확실하다니까. 용기가 없나 보지. 요즘엔 여자가 먼저 사귀자고 하는 거 흠도 아냐. 너도 이제 쟤 좋아하는 거 아냐?”
“나는…….”
나도 요즘 부쩍 저 아이가 신경이 많이 쓰이고 자꾸 시선이 가는 걸 보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에이. 그래도 대시는 남자가 해야지.
어쩌면 언제까지나 저렇게 내게 잘해 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나 보다.
같은 반이 된 지 4개월째에 접어든 어느 날, 드디어 그 아이가 내 책상 위로 꼬깃꼬깃 접은 손 편지를 툭 던지고 지나갔다.
[점심시간에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고백하려나 보다.
점심시간이 되자 점심도 먹지 않고 화장실로 뛰어가 거울을 쳐다봤다.
항상 쓰고 다니던 안경도 벗고, 혹시 몰라서 가지고 다니던 콘택트렌즈를 눈에 끼워 넣었다.
손에는 친구들에게 빌려온 각종 화장품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만났다.
* * *
나는 두 눈을 가늘게 하고 강화영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혹시……. 혹시?”
내가 말을 더듬거리자 강화영의 입이 열렸다.
“송혜진. 우진중학교 3학년 1반.”
송혜진이 누구더라? 송혜진. 송혜진?
“혜진이? 그 혜진이? 아, 그, 반에서 1등 하던?”
강화영의 고개가 끄덕거린다.
나는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
얘가 그 송혜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중학교 동창 송혜진은 이런 얼굴이 아니었는데?
혹시 어디에 칼을 댄 건 아니겠지?
강화영이란 이름은?
가명인가보다. 하긴, 연예인들이 가명 쓰는 거야 워낙 흔한 일이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며 강화영이 입을 열었다.
“세상 참 좁네. 연예계도 이렇게 좁을 줄 몰랐고. 우연히 슈스챌을 보고 딱 너라는 거 알아봤어. 중3 때랑 얼굴은 거의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분위기가 너무 달라졌어. 근사하고 멋있는 사람이 됐네.”
“아 그래? 고마워.”
그런데 갑자기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던 강화영의 표정이 확 구겨진다.
“아, 맞다.”
뭔가 생각이 난 모양인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보니 좋은 일은 아닌 듯하다.
그녀는 눈을 치켜뜨고는 내게 짜증을 표출했다.
“근데 너는 그때 일은 다 잊었나 봐?”
“응? 그때 일? 잊어?”
내 입에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날…….”
말을 하려다 멈칫한 강화영이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쉰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오래전 얘기니까 편하게 할게. 네가 나한테 쪽지를 준 그날. 나는 네가 고백할 거로 생각했어. 근데 만나자마자 네가 나한테 뭐라고 했더라?”
“내가? 내가 뭐라고 했는데?”
“나 전학 간다. 학교 잘 다녀라.”
“아……. 그랬었나? 그게 뭐?”
“‘그랬었나?’라니……. 좋아하는 여자한테 그건 좀 아니지 않아?”
“누가? 내가?”
“옛날 이야기니까 이제는 그렇게 모른 척하지 않아도 돼. 애들이 그러더라고……. 원래는 네가 나한테 고백하려고 했었다고. 그런데 지방으로 전학 가게 되면 그 후에 내가 상심이 클까 봐 말도 못 하고 애태우다가 갔다며?”
듣다 보니 누가 소설을 써준 건지 참으로 기가 찼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송혜진을 좋아하는 놈이 되어 있었네?
물론 전학을 간 적이 있긴 했다.
아버지가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가족들이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으니까.
일이 잘 풀려서 5개월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그때 엄마가 아빠에게 이사 비용이 얼만 줄 아냐며 바가지를 박박 긁었던 것도 생각이 나네.
어쨌든 강화영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좋아했던 것으로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다.
그때의 상황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확실한 건 나는 그때 송혜진을, 아니 강화영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3인데 성적은 변변찮고, 공부에 관심은 없는데 예술계 고등학교는 가고 싶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전교 등수가 다섯 손가락에는 꼭 들었던 저 똑똑한 친구의 필기 노트가 필요해서 아부를 떨었던 것뿐.
그런데, 내가 좋아했던 거로 착각했나 보다.
“인제 와서 말인데, 사실 고백을 기대했던 나도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고 힘들긴 했어. 너만 힘들었던 건 아니었다고.”
내 표정이 점점 곤란해지는 걸 보고 있던 강화영이 금세 말을 정정했다.
“아니, 그렇게 힘들었던 건 아니고. 지금은 다 잊었어!”
“그래…….”
그래. 그냥 그런 거로 정리하자.
그나저나 크면서 예뻐진 건가? 얼굴 참 많이 변했네.
“너 예뻐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TV에 그렇게 나오는데도 내가 몰라봤으니까.”
강화영이 내 말뜻을 오해했는지 더듬거리며 변명을 한다.
“뭐, 뭐가? 원래 쌍꺼풀도 있었고 코도 높았어. 눈 앞뒤로 약간 튼 거 말고는 없어!”
“어. 누가 뭐래?”
“이마에 지, 지방 넣은 거랑.”
“푸웁.”
누가 왕년에 모범생 아니랄까 봐 거짓말이 얼굴에 티가 난다.
그 뒤로도 강화영과의 수다는 한참 계속되었다.
동창회에 와서 또 다른 동창을 만난 것뿐이었지만, 다른 의미로 보면 방송계에 또 다른 인맥이 생기는 일이었다.
“시후야. 자리 옮길 건데 계속 거기 있을 거야?”
이광택이 구석에 강화영과 마주 앉아 있는 나를 부르더니 손짓한다.
아주 표정에 부러워 죽겠다는 생각이 다 드러나 있다.
에휴, 2차로 자리 옮기고 나면 무슨 얘기를 했냐며 한참 들들 볶이겠지?
“친구들이 부른다. 이만 가야겠어.”
“그래. 내가 슈스챌 보면서 응원할게. 꼭 우승해라.”
강화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게 덕담을 던지며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핸드폰 번호 주고 가.”
“그래. 종종 연락하자.”
* * *
“티케 님 오셨습니까?”
우아하게 파란색 드레스를 걸치고 음악의 성전에 발을 디딘 티케는 천상경을 지키는 사자에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사를 받았다.
“아우. 진짜 뭐 하는 거야?”
천상경 앞에 앉아 주시후의 거울을 내려다보고 있던 에오스의 입에서 짜증이 튀어나왔다.
“새벽의 여신이여. 오늘은 또 왜 그렇게 화가 나 있지?”
티케가 에오스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아니, 선인이 되려면 피땀 흘려 노력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저 녀석 하는 꼴 좀 봐. 연애라도 하려는 건가?”
“우습네? 저 인간이 연애하건, 사랑하건 무슨 상관이지?”
“그, 그야 하루라도 빨리 저 녀석이 선인의 그릇을 갖춰야 우리 신계에서도 한시름 놓게 되니까.”
“저 인간이 유명해지든 아니든, 선인으로 발탁된 건 기정사실이라고. 그릇을 갖추든 유명해지든 아니든 간에 저 인간은 지금 선인이고, 사후에는 신이 된다는 사실. 잊었나?”
“알지. 그래도 저 녀석이 선인의 자격을 완벽히 갖추고 신계에 올라와야 반지를 잃어버린 나도 면목이 설 거 아니야?”
“잘도 끼워 맞추는군. 저 인간에게 관심이 생긴 건 아니고?”
사실 그랬다.
티케 자신이 음악의 성전에 들릴 때마다, 에오스는 동혁이라는 인간보다는 주시후를 보여 주는 천상경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가 훨씬 많았다.
“그게 무슨! 사랑이 어떻게 변하지?”
티케는 어째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에오스에게 당부하였다.
“에오스여, 그 마음 변치 않기를 바랄게.”
* * *
<슈퍼 K-POP 스타 챌린지>가 3주 차에 접어들며 다시 녹화가 시작되었다.
잠시 헤어진 지 일주일도 안 되었건만, 다시 만난 연습생들의 분위기는 거의 개학한 학교 모습이었다.
그 화두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어제 전파를 탄 <스타 메이킹>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시각 장애인 소녀와 대금, 피아노 합주를 한 것이 인상적이었는지 수다가 끊이질 않고 있다.
“어, 어?”
하지만 누군가의 의문 섞인 목소리에 끊기지 않을 것 같았던 수다가 일제히 멈춰졌다.
리조트에 있는 강당에 집합한 60명의 연습생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반가운 얼굴들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며칠 전 있었던 생방송 무대가 끝나고 8명의 연습생이 건강상의 이유나 회사 사정으로 인해 챌린지에서 중도 하차했고, 심사 위원들의 자체 심사를 통하여 1차 탈락했던 8명의 연습생이 다시 합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강당 무대 위에 김상주 MC가 올라섰다.
“100명으로 시작한 <슈퍼 K-POP 스타 챌린지>는 1차 탈락자 40명을 제외하고 총 60명의 연습생만이 생존해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 생방송에서 시청자들의 평가 받을 수 있는 연습생은 단 10명! 다시 미션을 통해서 2차 탈락자를 선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에 든 대본을 한 번 더 훑어본 후 김상주가 말을 이었다.
“여기 남아있는 60명의 연습생이 치를 다음 미션은 ‘듀엣 편곡 평가’입니다. 이 평가는 모레 아침에 심사 위원들이 대강당 무대에서 평가하게 될 겁니다.”
듀엣 편곡 미션은 연습생들이 두 명씩 팀을 이룬 총 30팀으로 진행되며, 심사 위원의 최하점을 받은 하위 10팀이 탈락하게 되므로 편곡과 무대도 중요하지만, 같은 팀 연습생들의 호흡과 실력도 매우 중요한 미션이었다.
날고뛰는 실력으로 편곡 잘해 놓으면 뭐 하나.
같은 팀원이 가사를 잊어버리는 실수라도 하게 되면 둘 다 탈락을 면치 못할 테니 말이다.
“자 그럼 각 팀의 조장은 레벨 재평가 미션 때 심사 위원들이 평가했던 점수로 결정하겠습니다. 52위부터 31위까지의 연습생에게 조장이 되어 조원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1위부터 30위까지는 조원이 되는 거고요, 새롭게 합류한 8명의 연습생에게는 53위부터 60위까지의 등수를 드렸는데, 이분들은 제일 마지막에 조원 선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52위부터 호명하겠습니다.”
김상주가 손에 든 대본을 신중히 보고 52위부터 순위를 발표했다.
“52등은 NOW 엔터테인먼트의 정수아 연습생입니다. 앞으로 나오세요.”
정수아가 맨 앞으로 나가 연습생들을 훑어보자, 각자 나름대로 상위권이라고 생각하는 연습생들은 눈을 피하느라 바쁘다.
모두 52위보다는 31위랑 함께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저는 저희 NOW 엔터테인먼트의 송재경 연습생과 함께하겠습니다.”
송재경이 앞으로 나와 정수아의 옆에 섰다.
이를 지켜보던 김상주가 손에 든 대본을 힐끗 보더니 마이크를 잡는다.
“송재경 연습생은 48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등수를 당겨 30등의 연습생도 조원을 선택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자 다음은 51등 연습생입니다.”
계속해서 김상주의 호명이 이어지면서 팀이 하나둘 생겨났다. 어떤 팀은 남녀 혼성 듀오가 되었는가 하면 래퍼와 댄서로 팀을 이룬 연습생들도 있었다.
“야, 애들이 왜 너는 안 뽑아가지?”
옆에서 진국이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의아하다는 듯 말을 한다.
벌써 34등 연습생까지 호명이 끝났는데도 아직 내 이름이 불리지 않고 있다.
“여자 연습생들이 시후 형을 부담스러워 하나 보죠.”
옆에서 나 대신 대답하는 하상훈 또한 꽤 높은 등수일 것으로 예상이 되는 게 그의 이름도 아직 호명되지 않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금 34등까지, 순위와 이름이 불린 연습생들은 대부분 여자 연습생이었는데, 편곡 미션이다 보니 혼성은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나랑 짝을 이뤄 록을 할 거야? 댄스를 할 거야?
또한, 혼성 듀오의 단점은 편곡이 까다롭다는 점이었는데, 음역이 다른 남녀가 듀엣을 하다 보면 화음과 전조는 필수였다.
그리고 이미 이름이 불린 남자 연습생들은 대부분 특기가 비슷한 연습생끼리 짝을 이뤄 갔는데, 래퍼는 래퍼와 팀을 이루고, 춤 잘 추는 비보이는 동종의 연습생과 스텝을 맞추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야 편곡 방향을 정하기도 쉽고, 편곡하기도 쉽고.
그래 봤자 호명된 남자 연습생이 몇 명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나 같으면 무조건 시후를 데려갈 텐데. 여자애들이 제정신이 아니네.”
“안 돼! 진국이 형. 시후 형은 내가 데려갈 거예요.”
진국이 혀를 끌끌 차며 하는 내뱉은 말에, 옆에서 하상훈이 단호한 표정으로 내 팔짱을 끼었다.
“상훈아. 내가 볼 때 너는 최소 10등 안에 든다. 너는 조장 될 가망성이 없으니까 시후는 내가 모셔갈게.”
둘의 대화를 듣고 그래도 기분 좋은 웃음이 피식 나왔다.
“자 다음은 33등입니다. 가로수 엔터테인먼트의 진국 연습생.”
김상주의 호명을 받자 진국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찼다.
발랄하게 뛰듯이 빠른 걸음으로 연습생들이 서 있는 맨 앞에 도착해서는 큰소리 말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저는 B&M 엔터테인먼트의 주시후 연습생과 함께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국은 함박웃음을 짓고는 내게 나오라고 손짓한다.
“형도 참. 33등에서 이름 불린 게 뭐가 그리 좋다는 건지.”
내가 앞으로 나가며 흘리듯 내뱉은 말에 하상훈이 부러운 표정으로 진국을 바라보았다.
“좋지. 왜 안 좋아요? 시후 형이랑 같이 할 수 있는데……. 진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