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30화 스타 메이킹 (3)
“가능해요.”
내가 확신하며 대답하자 강화동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 그럼 주시후 씨에게 연주를 한번 부탁드려보겠습니다.”
나는 강화동에게 대금을 받아들고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내가 한번 불어 봐도 될까?”
소녀의 고개가 한 번 더 끄덕거렸다.
나는 여섯 개의 지공에 양 손가락의 검지, 중지, 약지를 올리며 오른쪽 팔꿈치를 천천히 들어 올려 왼쪽에 둔 취공에 입술을 가지고 갔다.
옆으로 가늘게 찢은 입술 사이로 바람을 내뿜었더니 청아한 소리가 ‘우웅’ 하고 들려온다.
가볍게 손을 풀어볼까 하고 생각나는 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는데 그럴싸한 연주가 되었다.
그리고 꽤 만족한 나는 소녀의 표정을 살폈다.
눈을 꼭 감고는 있었지만, 이 소녀도 실로 오랜만에 아버지의 악기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좋았던 모양인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지켜보던 나는 소녀의 보호자에게 물었다.
“아이의 부모님이 합동으로 공연하려 했던 그 곡 말인데요. 혹시 악보가 있습니까?”
“보면 할 수 있어요? 우리 아빠가 했던 것처럼 대금 불어줄 수 있어요?”
대답은 소녀에게서 들려왔다.
“물론이지.”
툭!
작은 소녀가 악기 통을 거꾸로 뒤집어서 탈탈 터니 둘둘 말린 악보가 땅으로 떨어졌다.
빠른 속도로 훑어본 나는 악보를 덮고 대금을 집어 들었다.
“아까 쳤던 피아노곡 다시 쳐 볼래?”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를 옆에 두고 서서 나는 신라 시대 대금의 명인이었던 6품 ‘유택(遺澤)’의 능력을 소환했다.
반지의 고유 능력으로 모든 악기를 다 다룰 수는 있지만, 피아노의 리드에 따라 가려면 정확한 전문가를 소환해야 했다.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앞으로 평생 깜깜한 세상 속에서 살아나가야 할 소녀에게 부모님을 추억할 만한 작은 선물.
쿵쾅쿵쾅 울리는 피아노 소리가 시작되자, 내 입술이 취공에 가까이 가서 붙었다.
피아노 소리를 반주 삼아 그 위에 대금으로 멜로디를 얹었다.
‘우웅’ 하고 낮은 바람 소리가 일었다.
머리카락이 ‘살랑!’ 하고 바람에 움직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대금의 음공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는 잔잔하고, 애절했다.
원래 국악기의 소리가 그렇다. 한이 많고, 슬픈 감성이 짙고…….
대금 끝으로 향한 내 오른쪽 어깨와 팔을 흔들어 농음을 넣을 때마다 피아노를 치는 소녀의 어깨도 흠칫 떨리는 듯 보였다.
잔잔한 작은 개울 위로 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지듯 조용하고 외로운 느낌의 연주는 계속되었다.
꽃잎은 홀로 강으로 흘러 들어가 조금 더 거세진 물살에 이파리를 모두 떨쳐내고 혼자 남았다.
물살에 가라앉은 이파리들을 두고 꽃잎은 몇 개의 수술을 단 채 강물을 따라 흘렀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바람이 꽃잎을 애잔하게 여겨 강가에서 건져내 땅에 던졌다.
그리고 수술에 머물던 꽃가루는 처음부터 다시 꽃을 피울 준비에 들어갔다.
이것이 이 연주의 스토리였나 보다.
연주가 끝이 났을 때 소녀는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너도 느꼈지? 다시 힘을 내볼까?”
내가 조용히 다가가 등을 토닥이자 소녀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 * *
<스타 메이킹>의 모든 녹화가 끝이 나고 카메라 뒤쪽 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던 연예부 기자 두 명이 오늘 있었던 녹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제 실검에 뜬 거 봤지?”
“주시후요?”
“응. ‘스타 경향’에 아는 선배가 담당인데, 그 선배가 쓴 기사를 보고도 사실 긴가민가했거든. 빛나는 외모에 신이 내린 천재 피아니스트라고 했던가? 그런데 오늘 실제로 보니까 진짜 얼굴에서 빛이 나던데?”
“아 선배님은 슈스챌 안 보셨나 보네요. 노래랑 춤도 끝장이에요. 심사 위원들이 괜히 극찬하고 괜히 센터가 된 게 아니겠죠. 그런데 오늘 마지막 출연자랑 합주하고 나서 다독여주는 걸 보니 인간성도 됐더라고요.”
“그랬지. 아, 생각할수록 음악 천재 같아. 맨 마지막에 시각 장애인 소녀 나왔던 무대 말이야. 와아, 나는 진짜 깜짝 놀랐잖아. 어떻게 악보를 한 번 보고 탁 덮더니 대금을 후후 불 수가 있냐는 거지? 심지어 너무 잘 불어서 깜짝 놀랐네. 국악 전공자인 줄 알았다니까.”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연예부 기자 한 명이 말에 끼어들었다.
여전히 시선은 노트북 화면에 고정한 채 양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말했다.
“혹시 조금 전부터 올라오는 기사 확인해 보셨어요? 빨리 쓰셔야 할 것 같은데."
“기사?”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기자 한 명이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조금 전 업데이트 된 주시후에 관련된 기사들이 주르륵 떠 있는 게 보인다.
아까까지만 해도 못 보던 것들.
[주시후 데뷔 전 예능 프로그램 <스타 메이킹> 패널 출연.]
[슈스챌의 센터, 주시후. 맹인 소녀와 눈물로 이룬 무대.]
[스타 메이킹, 주시후 출연자와 서양, 국악의 한마당.]
기사를 확인한 기자들의 손가락이 빨라진다.
“에잇! 한발 늦었네. 멘트를 다 가져다 쓰면 우린 어쩌라는 거야?”
투덜거리는 기자의 말을 끝으로 빈 세트장에는 급하게 타닥타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커져 갔다.
* * *
“여기쯤인 거 같은데?”
시끌벅적한 홍대의 중심가에서 조금은 벗어난 한적한 골목.
나는 아까부터 즐비하게 늘어선 간판들을 들여다보며 오늘의 약속 장소를 찾고 있다.
“챌린지가 다시 시작되기 전 한 번은 봐야 하는데.”라던 친구 놈들이 마침 불금을 이용해 고등학교 동창회를 하겠다고 알려온 것이다.
신의 축복을 받은 후부터는 몸매가 되니 거적때기를 걸쳐도 핏이 살았다.
그렇다고 정말 거지같이 입고 나온 것은 아니었고.
오늘은 청바지에 흰 티셔츠, 스니커즈를 신은 가벼운 차림으로 밖에 나섰다.
슈스챌로 방송을 타고 K팝 카운트다운 생방송에서 얼굴을 알리자 요 며칠 길을 걸을 때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되었다.
모자를 쓰고 나오길 잘했지.
지금도 간판을 들여다보는 내 주위에 몇 명의 소녀들이 몰려들었다.
‘여기네.’
나는 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쓰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예상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술집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보인다.
테이블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종업원들을 지나치자 아는 얼굴이 나를 반겼다.
“어, 왔냐?”
최정근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아직 아무도 안 왔네? 애들은 언제 온 데?”
“야! 7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5시에 도착해서는 애들을 찾냐? 몰라. 약속 시각이 되면 나타나겠지. 이거나 좀 도와줘.”
한강에서 버스킹 한다고 모였을 때 이후로 몇 달 만에 처음 보는데도 어제 본 것처럼 시키는 데 서슴없다.
반가움도 잠시, 나도 팔을 걷어붙이고는 테이블을 집어 들며 물었다.
“뭔데 이 난리야?”
“우리 부모님 태국으로 여행 가셔서 내가 며칠 봐야 하거든? 아버지가 단골손님 중에 오늘 카페를 통째로 빌린 사람이 있다고, 한 팀만 받으면 된다고 해서 널널하게 서빙 좀 봐주고 가게 다 털어먹으려고 오늘 겸사겸사 여기서 모이기로 한 건데. 씨이. 가게 와서 실장 형한테 들어보니 예약은 한 팀이 맞는데 인원이 50, 60명이래. 놀려고 왔다가 코 꿰였어. 그러니까 빨리 도와줘 인마.”
편안하게 놀아보자고 최정근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홍대까지 왔건만, 전세를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테이블을 번쩍 들고 옮기고 있는 내게 갑자기 최정근이 묻는다.
“근데 너 티셔츠 어디 브랜드냐?”
“이거? 몰라. 고등학교 때부터 입던 거 같은데?”
최정근이 갑자기 테이블에서 손을 떼더니 허리를 쭉 펴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너, 운동하냐?”
“응.”
운동하지. 숨쉬기 운동.
확실히 옷 태가 살긴 하나 보다. 이 티셔츠 후줄근하다고 창피하니까 갖다버리라고 난리에 난리 치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얼추 카페의 내부 정리가 끝나자 한숨을 돌린 나는 카페 내부를 찬찬히 뜯어봤다.
“야 정근아, 여기 라이브도 해?”
카페 안에 자그마한 무대가 있었는데 드럼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다른 악기 세팅은 되어있지 않아서 그 쓸모가 조금 궁금해졌다.
나는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최정근에게 물었다.
“주말에만 해. 아휴! 악기 세팅도 해야 하는데 개 바쁘네. 쉴 틈이 없네.”
어느새 기타를 집어 든 최정근이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간다.
그러더니 투덜투덜하는 말투와 다르게 섬세한 손길로 악기를 하나씩 세팅해 나갔다.
“뭐 좀 도와줄까?”
뚝딱 키보드 세팅까지 마친 것을 보니 딱히 도와줄 것은 없어 보였지만 예의상 물어봤다.
“됐어 인마. 다했어. 혼자 앉아 있기 정 미안하면 나중에 확 뜨고 나서 종종 들러. 공짜로 노래나 몇 곡 해주고 가면 더 좋고.”
“오냐. 알았다.”
딱히 혼자 앉아있기 미안한 건 아니었지만, 친구 사이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애들 오려면 1시간은 더 남았네. 예약한 팀도 7시로 잡혀있고, 밴드 첫 팀 공연도 7시에 시작하고, 손님도 없고. 심심하면 노래라도 한 곡 하고 있던가.”
시계를 보니 아직 6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무대 위에는 당장 사용할 수 있도록 건반, 드럼, 기타가 세팅되어 있었다.
베이스기타는 휴대가 용이하기에 연주자들이 직접 들고 다니며 관리하는 편이나, 드럼과 건반은 미리 세팅된 가게 거를 빌려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진짜 수준급 연주가들은 차에 자신의 악기를 싣고 다니기도 하는데 이런 작은 홍대 카페 지하실에서 연주하는데 그렇게까지야.
멍석도 이미 깔려있으니, 시간도 때울 겸 무대 위로 올라섰다.
제일 먼저 키보드가 눈에 들어왔는데, 요즘에 건반은 많이 두들겼기에 패스.
나는 한쪽에 최정근이 세워 놓은 클래식 기타를 집어 들고, 줄을 뜯으며 조율했다.
‘디리링-’ 하는 기타 소리가 좁은 공간 속을 헤집다 흩어진다.
그 사이 테이블 정리가 끝나고 소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던 직원들이 기타 소리가 들리자 일제히 내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오? 기타 쳐 보게? 좀 늘었냐?”
무대 밑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최정근이 묻는다.
나는 대답 없이 씩 웃으며 의자에 앉아 자세를 잡고 기타를 무릎 위로 올렸다.
아마 깜짝 놀랄 거다. 학창 시절에 코드 잡으며 허덕거리던 내가 아니라고.
숙덕거리며 잔뜩 기대하는 종업원들의 표정이 보인다.
6품 천운자 중에서 기타에 관련된 신을 찾으며 무슨 곡을 쳐볼까 고민을 하던 내 눈에, 보면대에 적당히 펼쳐진 악보가 확 들어왔다.
‘「La Catedral」. 대성당이라…….’
제목이 내 마음에 쏙 들었지만, 그보다도 이 곡의 작곡가인 ‘어거스틴 바리오스 망고레’가 6품 신 중에 속해있다는 것이 곡을 선택한 제일 큰 이유였다.
나는 빠른 속도로 악보를 휙휙 넘겨보았다.
작곡가인 망고레를 직접 소환하게 되면 악보는 필요 없겠지만,
‘큰 공연도 아니고 잠시 노는 건데, 그냥 능력만 가져다 쓸까?’
이런 생각으로 악보를 빠르게 외워 버렸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기타를 다부지게 잡았다.
왼손으로 코드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기타 줄을 뜯어본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기타의 선율이 무대 위에서 서서히 퍼져 나가자 모든 이의 시선이 내 손가락에 집중된다.
파도가 일렁이는 듯 고요하면서도 힘 있는 중독성 있는 연주가 계속되자 듣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듯 엄숙하게 귀를 기울였다.
‘아 지루할 틈이 없네.’
손가락을 따라 퍼져 나가는 선율은 잔잔하고 조용했지만, 내 손가락은 무지하게 바빴다.
무슨 기타곡이 피아노곡처럼 여유가 없이 빡빡하다.
내가 저 악보 위에 빼곡하게 인쇄된 음표를 보고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데…….
연주가 어렵기보다는 코드를 잡는 손가락이 점점 아파 왔다.
기타 좀 친다 하는 녀석들의 손에 굳은살이 한가득 잡힌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물집 잡힐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기타 연주는 어느덧 3악장으로 들어섰다.
딴.따라라라라라라. 딴.따라라라라라라.
급격히 빨라지는 곡의 흐름에 내 오른쪽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뭐야?”
무대 아래서 듣고 있던 최정근이 큰 소리를 내어, 내가 연주를 멈추지 않고 입을 뻥끗하며 물었다.
‘왜?’
하아!
허공을 바라보고 헛웃음을 토하는 최정근이 얼굴을 쓸어내리는 게 보인다.
뭐야? 왜 저래?
정신없이 기타 줄을 뜯다 보니, 어느새 연주가 마지막에 이르렀다.
연주가 끝났을 무렵에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와’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기타를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끝난 건가?
내 손가락들을 보니 벌겋게 부어 올라있었다.
물집 잡힐 것 같은데? 앞으로 종종 연습해야겠네.
무대 밑으로 터덜터덜 내려오면서 최정근을 보니 그의 눈빛이 아까 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