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29화 (29/170)

# 29

29화 스타 메이킹 (2)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뷰티샵에서 메이크업과 머리를 마친 나는 김남규 팀장과 함께 SAS 방송국에 도착하여 MC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메인 MC인 강화동은 아직 도착 전인가 보다.

텅 빈 대기실의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어! 남규 오랜만이네? 아침부터 웬일이고? 어제 최 이사님한테 전화 받았는데 니가 온 기가?”

강화동이 김남규 팀장에게 반가운 기색을 보였고 그와 동시에 나는 예의를 차려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주시후라고 합니다.”

“아아. 봤다, 실검에서. 계속 1위 하던 금마 아이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거구의 사내는 방송에서 늘 보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형님. 잘 지내셨죠? 이 친구가 오늘 <스타 메이킹> 패널 땜빵으로 온 친구예요.”

“아, 그랬나? 도현이가 음주했다 카더니 빠졌는가 보네. 시후라고? 연습생이라 하던데 역시 B&M이네. 정규방송에 꼽아 넣고.”

“에이! 형님. 막 밀어 넣은 거 아니에요. 시후가 못하는 게 없는 놈입니다. 녹화할 때 다 시켜보세요. 깜짝 놀랍니다. 진짜로.”

김남규 팀장은 내 능력을 다 본 것처럼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강화동의 눈이 이내 반짝거리더니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잘생기긴 했다. 패널들이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선수 쳐서 전투적으로 해야 산다. ‘쟤 뭔데 저래 나대나?’ 싶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하면 내가 거들어줄 테니까 잘해 보래이.”

“감사합니다. 선배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대답이 흡족한지 강화동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런데요, 팀장님. 강화동 선배님이 개인적으로 팀장님을 어떻게 알아요?”

“응, 예전에 화동이 형이 우리 B&M 엔터에 있었거든. 그때만 해도 형이 프로그램을 12개 정도는 했거든. 그러니 회사에서 맨날 화동이 형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신인들 밀어 넣고, 형이 커버하느라 고생 많이 했었지. 저 형이 인상은 저래도 마음이 약해서 말이야.”

확실히 인상이 강하긴 했다.

운동선수 출신이라 탄탄하고 거대한 신체를 지니고 있었는데, 거기에 짧은 머리카락과 찢어진 눈은 깡패로 오인할 만큼 강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패널 대기실 A]

내 이름이 적혀 있는 대기실에 들어서자 TV에서만 보던 여러 명의 연예인이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주시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방송국에 올 때마다 이놈의 허리와 모가지가 펴질 날이 없다.

“아! 주시후 씨. 실제로 보니까 진짜 잘생겼네요. 저번 주에 방송 잘 봤어요.”

방송인 김해나가 내게 웃으며 알은척해 주었고,

“시후 씨가 센터였죠? 에 나오는 거 봤거든요.”

개그맨 송지훈이 반겨 주었다.

그 외에도 몇 명의 연예인들이 더 있었는데 내 인사를 모두 반갑게 받아 주자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방송 들어갑니다. 스튜디오로 모여주세요.”

조연출의 부름에 대기실에 모여 있던 무리가 앞다투어 스튜디오로 이동하여 패널석에 앉았다.

* * *

“화끈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국민 예능 <스타 메이킹>. 즐거운 한 주 보내셨습니까? 오늘은 스타 메이킹의 7주년을 기념하여 평상시보다 훨씬 더 강력한 주인공들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아주 냉철하게 평가해주실 연예인 패널단을 소개합니다.”

MC 강화동의 멘트가 끝나자 카메라가 내가 앉은 패널석으로 넘어왔다.

한 명, 한 명 빠르게 소개하며 근황 토크도 잠시 이어졌다.

그리고 카메라가 내 앞에 멈춰선 순간.

“최근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죠. 타 방송사의 챌린지 프로그램에서 첫 센터를 맡은 주시후 씨를 모셨습니다. 아주 잘생겼어요. 오늘 첫 예능 프로그램 출연인데, 각오 한마디 해 주세요.”

“항상 TV를 통해 보았는데요, 오늘 첫 예능 출연이니만큼 TV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즐기다가 가겠습니다.”

나를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를 힐끗 봤는데 체감상 앵글이 3초 정도 머물다 휙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

이거 생각보다 어려운데? 분량 확보하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네.

“오늘은 첫 번째 참가자는요…….”

오늘의 첫 번째 참가자는 왼쪽 팔로 강아지를 품고 오른손에는 새장을 들고 등장했다.

딱 봐도 동물들이 주인공이네.

“동물과 소통하고 조련하는 동물 박사 박홍근 씨입니다.”

역시나!

가끔가다가 기상천외한 출연자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7년 동안 방영한 장수 프로그램이다 보니 봤던 재능이 나오고 또 나왔다.

나이가 6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박홍근이라는 출연자는 3살짜리 포메라니안을 땅에 내려놓고 ‘앉아!’, ‘일어나!’, ‘하이파이브!’, ‘돌아!’ 등의 단골 훈련을 선보인 후 비장의 무기라며 원반을 던지고 있다.

그런데 강아지가 시큰둥하게 반응하더니 이내 스튜디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다.

열심히 불러대는 주인과 아무리 불러도 미동도 없는 포메라니안을 보며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무슨 동물 박사냐.

자고로 소통은 서로의 뜻이 통하고 의견을 나눔에 있어서 막힘이 없는 것이어야지.

저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반복 훈련의 성과였다.

출연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곤란함을 느끼자, 나는 반지의 능력 중 7품 신수 ‘작은 동물들의 신’ 라니오리스의 능력을 조용히 소환했다.

‘얀마! 일어나라. 주인 속 썩이지 말고.’

이내 강아지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빛의 속도로 일어났다.

두리번거리던 강아지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는지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쳐다보지 말고!’

강아지가 고개를 슬며시 내리더니 나를 힐끗거렸다.

* * *

계속되는 출연자들.

이번이 8번째인가?

7주년이라 엄청난 주인공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니 평범하기 그지없는 출연자들이 줄을 이었다.

기다리던 끝에 마지막 출연자.

한 명의 장기 자랑만 끝나면 드디어 퇴근이다.

막간을 이용해 기지개를 켜던 나는 무대 위로 오르는 출연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지금 무대로 올라오고 있는 소녀의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발밑을 더듬거리며 무대에 오르는 소녀.

‘앞이 안 보이는 건가?’

김소월이라며 소개된 9살 출연자는 또래의 소녀들보다 더 작은 체구를 하고 있었다. 작년에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안타까운 사연을 품고 있지만, 피아노 신동이라고 했다.

무대 위에 한 대의 피아노가 준비되고 소녀는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젊은 피아니스트 최화홍 있잖아. 작년까지만 해도 TV에 많이 나왔는데…….”

“알아요, 화홍 씨. 미모의 피아니스트라고 유명했잖아요. 피아니스트 이르마와 더불어 감성 아티스트라고 불렸던…….”

“화홍 씨 딸이래.”

패널석에서 조곤조곤 말소리가 들려온다.

불의의 사고로 부부가 사망하고 딸은 실명했다는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

피아노 앞에 앉은 작은 소녀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눈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엄마가 살아있을 때 함께 눌러 보았을 건반을 무심하게 두드리는 소녀에게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확실히 소녀의 피아노 연주는 9살치고는 수준급이었다.

눈이 보이고 안 보이고의 차이는 거의 없는 듯했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선곡이었다. 화려함이 싹 빠지는 바람에 반주만 하듯 반쪽짜리 연주를 하는 느낌이 났다.

더 좋은 곡으로 연주했으면 확실히 빛났을 텐데.

박수와 환호성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지만, 소녀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별 감흥 없는 표정.

그때 강화동의 눈빛이 빛났고 곧 질문으로 이어졌다.

“소월 양, 뒤에 메고 있는 통은 뭐예요?”

강화동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소녀의 등에 꽂힌다.

눈을 꼭 감은 소녀는 대답 없이 등에 메고 있던 통을 앞으로 돌려 끌어안았다.

“소월이 아버지는 국악을 하시던 분이셨는데요. 돌아가시고 난 후에 특히 피아노를 칠 때는 꼭 저렇게 아버지의 악기를 메고 있습니다.”

소녀 대신 그녀의 개인 피아노 선생이 대답했다.

“선생님. 그럼 지금 소월이의 피아노 실력은 어느 정도예요?”

“확실히 또래의 아이들보다 진도가 빨라요. 대부분 몇 번 들으면 비슷하게 흉내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습득력도 좋고요. 이 정도면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운 대학교 입시생 정도의 수준일 겁니다. 소월이가 5살 때부터 레슨을 맡아 왔지만, 앞이 보일 때보다 실명한 지금이 오히려 성장이 빠릅니다. 이대로라면 성인이 되었을 때는 무시무시한 피아니스트가 되어있을 거예요. 그런데…….”

피아노 선생은 소녀를 한번 바라보고는 한숨을 토했다.

자신의 키만 한 악기 통을 앞으로 끌어안고 무표정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저 소녀는 부모가 죽기 전 합동 무대를 준비하며 매일 연습했던 합주곡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다.

강화동이 소녀에게 다가가 아버지의 유품을 공개해줄 수 있냐고 묻자 소녀는 망설이다가 악기 통에서 한 자루의 악기를 꺼냈다.

‘대금이네?’

악기를 알아본 내 눈빛이 반짝였다.

소녀가 들고 있는 대금에 내가 관심을 보이자 이를 놓치지 않고 강화동이 물었다.

“주시후 씨, 혹시 이 악기가 뭔지 알고 계세요?”

연예인 패널단 쪽으로 다가온 강화동이 내 앞에 섰다.

“네. 대금입니다.”

“그럼 대금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어요?”

“관심이 있어서 조금 알고 있어요.”

“그럼 주시후 씨와 소월 양을 무대로 함께 모셔보겠습니다.”

내가 무대 위로 걸어 나가자 이때까지 무표정이던 소녀의 얼굴이 미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귀가 쫑긋한 것 보니 내가 대금에 관해 안다고 말해 관심이 생겼나 보다.

“시후 씨가 그럼 대금이 뭔지 설명 좀 해 주시겠어요?”

무대에 오른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강화동의 옆으로 선 소녀에게 다가갔다.

“대금을 잠시 봐도 되겠니?”

머뭇거리던 소녀가 대금을 내 앞으로 내민다.

대금을 받아 들어 살피다가 청공에 붙어있는 청을 보고 내가 물었다.

“이 청은 네가 붙인 거야?”

“네에.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시고 나서 구멍이 났어요. 제가 너무 만지작거려서 그런 거라고 할머니가 그랬어요. 그래서 할머니랑 같이 다시 붙였어요.”

소녀는 담담하게 말하는데 오히려 듣고 있는 강화동의 눈가에 살짝 이슬이 달렸다.

“그래.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랬구나.”

소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하는 강화동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TV 프로그램에서 보는 강화동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타 메이킹>에 사연이 있는 아이들이 나오면 자주 눈물을 보였었지.

딸 사랑이 극진한 것으로 알려진 강화동이라서 그런지 남의 일 같지가 않은가 보다.

허공을 보며 눈을 빠르게 깜박거리며 눈물을 날려 보내던 강화동이 내게 조용히 물었다.

“저거 붙인 거 엉망이가? 니 붙일 줄 아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화동이 소녀에게 물었다.

“혹시 소월양 청 가지고 있는 거 또 있어요?”

“네에.”

“있다가 녹화 끝나면 이 오빠가 다시 붙여준대요.”

소녀의 입가에 처음으로 웃음이 걸리며 고개가 끄덕한다.

강화동이 MC로서의 질문이 이어갔다.

“근데 아까부터 청 얘기를 했는데, 대체 대금의 청이 뭐예요? 뭐를 청이라고 하는 거죠?”

강화동이 내 손에서 대금을 받아들고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며 어느 구멍이냐고 묻는다.

“이쪽에 구멍이 많이 뚫려있는 쪽을 오른쪽에 두고 연주하는데 이것을 지공이라고 불러요. 손가락을 올려놓는 부분이죠. 그리고 그 반대쪽인 이쪽이 취구예요. 숨을 불어넣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 이 구멍이 청공이라고 합니다.”

“아아. 그런데 왜 청공에 왜 이런 종이를 붙이는 겁니까?”

“보통 청공에는 갈대의 청을 채취해서 붙이는데, 소리를 불어넣으면 청이 떨리며 대금 특유의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갈대 청은 언제 채취한 것이 가장 좋습니까?”

으응? 이 양반 보게?

갈대 청 농사가 일 년 내내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정확히 알고 던진 질문 같은데?

“단오를 기점으로 일주일 정도입니다.”

“이렇게 대금에 관해서 잘 알고 있는 주시후 씨. 혹시 대금을 불 줄도 아십니까?”

“네에. 조금 불 줄 알아요.”

내 말에 강화동이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저거 소리 나겠나? 엉망이라매?”

청공을 보니 어수룩하게 붙어있는 청의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분다고 소리가 안 날 정도는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