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25화 (25/170)

# 25

25화 새로운 시작 (2)

진국의 말에 궁금증이 일은 내가 끼어들어 물었다.

“응, 진짜 치열하대. 저번 시즌 3에 우리 기획사에서 챌린지 참여했던 동생이 해준 얘긴데, 서로 센터 하겠다고 분위기가 살벌한가 봐. 아무래도 생방에 센터 한 번 하면 인지도가 높아지니까.”

“에이. 무조건 시후 형이 센터지. 연습생 자체 평가 비주얼 1위도 시후 형이었고, 노래로 보나 춤으로 보나 무조건 시후 형이야.”

진국의 대답을 들은 하상훈은 입을 오물거리며 미리 센터 자리 포기 선언을 했다.

센터라…….

인지도가 높아지면, 나중에 결승에 가서 생방송을 할 때 유리하게 작용하긴 한다.

생방송은 심사 위원의 점수가 20% 반영되고 80%는 시청자 투표로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승 상금 5억이 걸려 있는데, 그럼 센터는 내가 해야겠네?

그런데.

크게 마음먹은 것과 달리 다행히도 센터 전쟁 따위는 없었다.

물론 경쟁은 있었지만.

센터에 욕심이 있다고 나섰던 5명의 연습생이 있긴 했지만, 한 명씩 돌아가며 안무와 노래를 선보이자 A레벨의 모든 남자 연습생이 만장일치로 나를 찍어주었다.

여자 연습생 중에서는 A레벨 클래스 수업에서 가장 처음 내게 말을 걸어준 김시영이 센터가 되었다.

남녀 센터가 정해지자 오전에 탈락자들을 보낸 슬픔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남은 60명의 연습생은 모두 저돌적으로 생방송 의 무대 준비를 해나갔다.

당장 3일 후에는 생방송 리허설을 하러 공개홀 무대에 서야 했으니 떠난 이들보다는 본인들의 코가 석 자인 것이다.

노래와 랩 부분도 녹음을 끝내고 강당에 모여 동선을 맞췄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챌린지에 참여한 지 6일째가 되던 날 연습생들은 리조트에서 잠시 퇴소하게 되었다.

“시후야, 고생 많았어. 며칠 못 본 동안 얼굴이 더 훤해졌구나? 더 밝아졌어.”

“팀장님이 직접 데리러 오신 거예요? 설마 한가하신 건 아니죠? 진짜 그런 거예요?”

나는 리조트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남규 팀장을 발견하고는 반가움이 밀려와 한달음에 달려갔다.

“밝아진 건 얼굴뿐만이 아닌가 보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말수도 별로 없던 애가 너스레를 떨지?”

차에 시동을 걸며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김남규 팀장은 뭐가 기분이 좋은지 자꾸 히죽거렸다.

낯을 약간 가리는 성격인 나는 이번 챌린지로 인해 많은 사람을 대하며 말수가 조금 많아진 것은 느꼈다. 하지만 김남규 팀장과 장난을 나눌 만큼 사이가 두텁고 그간 들어버린 정이 깊어서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했다.

“일단 집에 가서 쉬고 싶겠지만, 회사에 먼저 들러야 할 것 같아. 임준석 실장님이 먼저 데려오라고 하셨거든.”

“네, 알겠어요.”

* * *

나는 B&M 엔터테인먼트의 사옥에 도착해서 바로 매니지먼트 본부에 있는 임준석 실장을 만나러 갔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저 왔어요.”

“이야, 우리 센터 왔네. 수고했어. 장하다. 장해.”

총괄실장 방의 문을 열자 임준석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반겨준다.

그는 문 앞까지 걸어와 나를 소파에 앉혀놓고는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어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김 팀장도 서포트 하느라 고생이 많아. 아트 개발실에서 할 일도 아닌데 말이야.”

“에이 고생은요. 제가 캐스팅했으니 당연히 데뷔 때까지는 책임을 져야죠.”

김남규 팀장도 손사래를 치며 내 옆으로 앉았다.

내가 봤을 땐 분명 한가한 것이 틀림없다.

“시후 정도면 당연히 센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진짜로 센터 자리를 따올 줄은 몰랐어. 놀랍네, 놀라워.”

“그렇죠, 연습생 기간이 한 달밖에 안 되는데 대단하죠, 우리 시후.”

임준석 실장과 김남규 팀장이 죽이 맞아서는 나를 앞에 두고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아이구, 그만 하세요. 얼굴 따가워요. 아! 그런데 저는 왜 오라고 하신 거예요?”

내 질문에 임준석이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조금 전보다 더 활짝 웃으며 답을 한다.

“이틀 후에 촬영하는 생방송 말이야. 이번 주에 블랙 타이거가 출연하거든?”

“블랙 타이거 선배님들이요? 근데 제가 왜 필요해요?”

대충 짐작은 갔다.

내가 블랙 타이거랑 같이 무대에서 합동으로 노래를 하겠냐? 춤을 추겠냐? 딱 보니 피아노 연주다.

그런데 임준석 실장이 자꾸 음흉하게 웃으며 말꼬리를 흐리니 얄미워서 모르는 척하고 싶어진다.

“타이틀 곡 있잖아. 「달에서 온 너」 그거 피아노 연주 좀 해 줘. 이번 무대는 피아노 연주 콘셉트로 해 보고 싶대. 블랙 타이거 멤버들은 한 무대에서 라이브 연주로 네가 함께해 주길 바라지만, 슈스챌 센터로 네가 무대에 서게 되잖아. 그런데 같은 소속사임에도 블랙 타이거 무대까지 올라가게 되면 자칫 여론이 안 좋아질 수도 있어. 대형 기획사의 밀어주기니 뭐니 하면서 말도 나올 수 있고. 그래서 MR로 진행할 거야.”

“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일 아침에 회사에 나와서 녹음하는 거로 하자고. 내일 블랙 타이거도 시간 내서 회사로 들어오라고 할 테니까 그때 잠깐 맞춰 보도록 하고. 시간 낼 수 있지?”

* * *

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해서 피아노 녹음을 끝낸 나는 아까부터 휴대전화와 스튜디오의 문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다.

덜덜덜.

내 초조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다리 떨림.

“아이고, 빨리 끝내고 가야 하는데…….”

오늘은 슈스챌 시즌 4의 공식적으로 방송 전파를 타는 날이다. 저녁에 아버지 퇴근 시간에 맞춰 가족들이 모두 모여 저녁 식사를 하며 ‘본방 사수’를 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만나기로 한 블랙 타이거가 약속 시각이 1시간이 넘도록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온갖 생각에 빠진 그때,

“시후야!”

기다림의 끝을 알리는 블랙 타이거의 등장이었다.

스튜디오의 문이 벌컥 열리며 서브 보컬인 막내 진우가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 들어왔다.

뒤이어 리더 동혁과 리드 보컬을 맡은 성운, 랩 파트를 맡은 태곤까지 모두 문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드디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안해. 일찍 오려고 했는데 오다가 접촉 사고가 나서 조금 늦었어.”

“정말요? 선배님들 안 다치셨어요? 병원은 다녀오셨고요?”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성운이 사과하자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이 커져 물었다.

내 질문에 진우는 그 귀여운 얼굴로 내 어깨에 한쪽 손을 턱 하니 올리더니 짐짓 형인 척한다.

“아이고, 우리 시후 놀랬구나? 형들은 괜찮아. 병원은 어디 아플 때 가는 거지. 형들은 안 아파.”

“아니 그래도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는데…….”

내 걱정을 싹둑 잘라버리려는 듯 진우는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푸웁.”

“……?”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자 진우가 눈이 동그래져서는 왜 그러냐고 묻는 얼굴이다.

“아, 선배님 죄송합니다. TV를 통해 보던 것처럼 너무 귀여우셔서……. 제가 결례를 했습니다!”

“아, 그것 때문에 웃은 거야? 큭큭큭. 귀여운 건 나도 알아. 근데 너도 귀엽게 생긴 편이니까 기죽지 마.”

진우가 해맑게 웃자 옆에서 지켜보던 태곤이 내 어깨 위에 올라와 있던 진우의 손을 걷어내고 진우를 흘겨보았다.

“야! 눈이 달려있으면 똑바로 보고 얘기해. 귀엽게 생긴 편이니까 기죽지 말라고? 여기 모여 있는 사람 중에 시후가 제일 잘 생겼는데, 뭔 헛소리야?”

“그래! 시후가, 무척 잘생긴 건 아는데, 그래도 나처럼 완전 귀여운 건 아니잖아? 귀여움은 별로 없잖아!”

젠장. 진우는 떼쓰는 것도 귀여워 보였다.

나도 아폴론 님에게 부탁해서 귀여움의 축복도 받게 해 달라고 해야 하나?

“근데 시후가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잘생겨지기는 한 것 같아. 챌린지 나가면서 카메라 마사지를 받아서 그런가?”

진우가 또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제기하자 끝난 듯싶었던 언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야! 바보냐? 며칠 카메라 받았다고 그렇게 되게? 시후야. 피부 마사지 받았지? 그치?”

“아니에요, 선배님.”

이어서, 성운이 장난기 섞인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던데……. 계속 선배님이라고 하면, 우리도 너한테 시후 씨라고 부를지도 몰라”

“아니요! 아닙니다. 형.”

“그래, 듣기 좋네.”

멤버들의 이런 행동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는지 동혁은 전혀 말릴 생각이 없는 듯했는데, 내가 당황의 눈빛을 보내자 장내를 한마디로 정리해 버렸다.

“그마안!”

간단한데?

“시후야, 지금 챌린지 중이지? 정신없을 텐데 시간 내줘서 너무 고마워. 한 무대에 서고 싶은데 임 실장님이 안 된다고 하셔서 너무 아쉬워.”

동혁이 감사와 아쉬움을 내비친 후 스튜디오에 모여 있는 모두를 한번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구체적인 연습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시후가 녹음해 놓은 MR을 들어보고 난 후에, 형들이 목소리 톤이나 소리 크기를 조절해 볼게. 시후는 피아노 플로우랑 목소리 밸런스가 맞는지 체크해 줘. 감정이 플로우를 벗어나면 과장되게 들리니까.”

동혁은 말을 마치고 스튜디오 유리문 너머로 앉아 있는 엔지니어에게 사인을 보냈다.

스튜디오 안의 작은 무대 위에 블랙 타이거의 멤버들이 올라서자 스피커를 통해 내가 아침에 녹음한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왔다.

호오!

도입부가 시작되자 누군가의 입에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조심히 멤버들의 표정을 살폈는데, 이들이 점차 음악에 빠져드는지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 경이로움 그리고 분위기 깨는 흥얼거림까지.

녹음된 피아노 연주가 끝나자 블랙 타이거 멤버들이 얼굴에 함박웃음을 달고 감탄하며 손뼉을 쳤다.

“야. 대박이네. 이번 무대는 진짜 대박이겠다.”

“맞아. 관객 반응 안 봐도 딱 알겠네.”

“나는 시후가 앞에 있어서 그런지 직접 연주하는 거 한번 보고 싶어. 실제로 한번 들어보면 안 될까?”

“그래. 한 번만 쳐줘. 응?

멤버들의 부추김에 마지못해 나는 그랜드 피아노 앞으로 가서 앉았다.

B&M 엔터테인먼트에서 딱 한 개 보유한 그랜드 피아노가 스튜디오 D룸에 있다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였다.

아침에도 여기서 녹음을 했다.

먼저 나는 가볍게 손을 풀고 건반 위에 손을 얹었다.

악보는 머릿속에 들어있으니 필요 없었고 그저 저번 행사 때 「달에서 온 너」를 연주했던 피아노의 신 헤바 빌츠, 힙 센트, 이자벨 카셀의 능력을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어떤 준비도 필요하지 않았다.

띵. 띠링.

맑고 높은 소리로 시작하여 투명하고 감미롭게 연주가 진행되더니 열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웅장하고 풍부한 소리가 펼쳐졌다.

점점 크고 강렬하게 격하게 머리를 흔들어대며 연주하던 내 모션이 점차 작아지더니 다시 처음의 아름다운 선율이 스튜디오를 감쌌다.

그리고 연주가 끝났다.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는 나를 보고 그때 동혁의 입이 떨어졌다.

“내가 이 연주를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시후야. 진짜 대단하다 너.”

“MR로 듣는 것도 좋았는데 직접 들어 보니까 소름 돋아. 진짜 진심 너무 좋다.”

래퍼 태곤이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진우와 성운 또한 같은 표정인 것이 같은 마음인 듯싶다.

그런데 이런 극찬을 받은 나는 정작 방금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현듯 천상경의 사자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저 피아노의 연주는 많은 신의 능력이 상충했지만, 시끄럽지 않고 매력적이군요.”

상충이라면 서로 맞지 않아서 어긋났다는 뜻인데, 그런데도 이런 연주가 나왔다면 서로 어우러지게 뭔가 더 조화롭게 연주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렇지! 근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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