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22화 챌린지 (3)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나들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조훈, 영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혹시 전에 데뷔했었어요? 낯이 익어서 프로필 살펴보니까 전에 ‘히든 보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한 것으로 되어있네요?”
“아……. 네. 작년까지는 저희 둘 다 5인조 그룹 히든 보이 소속이었습니다.”
“일단 준비한 무대 먼저 볼게요.”
앰프를 통해 강렬한 느낌을 주는 비트가 흘러나오자 조훈과 영표는 익숙한 듯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로 안무를 시작했는데, 마치 관록이 쌓인 아이돌 그룹 같았다.
심사 위원석을 보니 모두 환한 표정으로 머리를 맞대고 속닥거리고 있다.
저들은 분명 A등급 받겠구나.
그들의 무대가 끝나고 심사 위원들은 두 명 모두에게 정말 A등급을 주며 물었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아이돌 그룹에서 왜 다시 연습생이 된 거예요?”
전 소속사의 대표가 구속되며 멤버 전원이 함께 이적하려 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자연스레 해체되었다고 대답하는 조훈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배정윤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선 심사 위원들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진짜 이 바닥은 운도 있어야 해.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저런 케이스가 많다니까. 쟤들 좀 안타깝다.”
등급 평가가 치러진 이후 시즌 첫 번째 A등급을 받은 연습생들이 나오자, 그게 물꼬를 터준 것인지 아니면 조금 전 인터뷰로 심사 위원들의 짜증이 누그러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 뒤로 계속해서 A등급을 받는 연습생들이 나타났다.
“시후야 이제 무대 뒤에 가서 준비해야 해. 지금 21번째 순서야.”
김남규 팀장의 재촉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안녕하십니까? B&M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주시후입니다.”
발아래 있는 심사 위원들에게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한 나는 정면에 있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MR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연습생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지 않자, 심사 위원들은 책상 앞에 놓인 내 프로필 파일과 나를 번갈아 가면서 힐끔거렸다.
“뭐지? 유명한 친구야? 연습생들은 다 알아보는 것 같은데?”
“와! 얘 프로필 사진 봐요. 완전 섹시하죠? 느낌 장난 아닌데? 그런데 실물 한번 보세요. 남자애가 저렇게 깨끗한 느낌을 주는 건 처음 봐. 그쵸? 사진이랑 완전 다르죠?”
“모니터 봐봐. 그건 또 달라. 생긴 건 무조건 100점 만점이네.”
“실력만 받쳐주면 이번 시즌은 저 친구가 평정할 텐데. 생긴 것만큼 잘했으면 좋겠다.”
시작부터 강렬한 MR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4박자의 무거운 쿵쾅거림이 내 심장으로 전해지자 손끝에 가벼운 떨림이 일었다.
기분 좋은 엔도르핀이 온몸을 돌기 시작하고 나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뒤 노래를 시작하였다.
무대 밑의 심사 위원들은 나를 빤히 응시하며 저마다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닥거리거나 볼펜으로 지휘하고 있다.
내가 준비한 노래는 아이돌 보이 그룹 BTB의 「Fire? Fire!」였다. 처음 이 곡을 선택했을 때 기획사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
7인조 그룹의 노래를 혼자 다 부르고 안무까지 소화해 내야 한다는 걱정 때문이었겠지만.
“노래 잘 들었습니다. B&M 엔터테인먼트의 주시후 연습생. 첫인상만큼이나 강렬한 무대였어요. 혼자 선 무대였는데도 무대 위가 빈다는 느낌이 안 들었어요.”
“보컬이 흠잡을 곳이 없네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저런 게 바로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거예요. 흉성, 두성 할 것 없이 모든 발성법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저 역시 정확한 힘 조절로 랩을 가지고 노는 모습에 깜짝 놀랐어요. 딕션은 말할 것도 없고요. 힙합계의 새로운 킹이 탄생하는 건 아닌지 기대가 큽니다.”
“역시 B&M 엔터테인먼트는 저희를 실망하게 하지 않는군요. 저희 심사 위원은 만장일치로 A등급을 드리겠습니다.”
심사평이 끝나고 나자 프로듀서 박준영이 한마디 더 보탰다.
“주시후 연습생, 프로필 특기란을 보니까 피아노를 아주 잘 친다고 되어 있는데, 저도 아웃튜브에서 그 영상 봤거든요. 챌린지 중에 꼭 볼 수 있기를 기대할게요.”
소속사의 걱정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나는 A등급을 받았다.
무대 뒤편으로 내려가서 스태프들이 건네주는 알파벳 ‘A’가 적혀 있는 스티커를 쥐고는 두리번거리니 곧 저쪽에서 김남규 팀장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잘했어, 시후야. 고생했어.”
등을 툭툭 두드려주는 김남규 팀장의 손길에 온정이 가득하다.
기특한 아들을 칭찬하는 아빠의 손길이랄까?
내 손에 들려있는 A 스티커를 들여다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쭉 펴졌다.
총 100명의 연습생들이 등급 평가를 모두 마치니 아침 일찍 시작된 챌린지가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많이 먹고 힘내. 진짜 경쟁은 지금부터니까.”
등급 평가가 끝난 후 배정된 부스 안에서 잠시 기다리자 김남규 팀장이 저녁 도시락 두 개를 모두 내 앞으로 몰아주었다.
나는 행여 김남규 팀장이 걱정할까 봐 도시락을 입안에 욱여넣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각 소속사의 매니저들이 돌아간 후 연습생들은 각자의 숙소를 배정 받았는데,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배정했고, 건물도 나뉘어 있었다.
‘이야, 깔끔하게 잘 돼 있네?’
내가 배정 받은 방은 침대 6개와 사물함이 놓여 있는 곳이었다.
침대 위에 백팩을 내려놓고 같은 방을 쓰게 된 연습생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나 외에 A레벨의 연습생은 한 명도 없었고, 크게 눈에 띄었던 친구들도 없었다. 한번 보면 잊어버리는 않는 것이 음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던지 등급 평가 당시 보았던 룸메이트들 모습이 모두 기억 속에 있었다.
그때, 무섭게 방으로 카메라가 들이닥쳤다.
방에 들어와 짐을 내려놓은 지 불과 5분도 안 돼서 다시 촬영이 시작된 것이다.
‘후우. 또 시작이네. 저놈의 카메라.’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체력적 휴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나 익히 듣기는 했지만 챌린지 프로그램은 정말 숨도 못 쉬게 연습생들을 몰아붙였다.
“자 지금부터 휴대전화 수거할게요. 꼭 필요한 개인 물품 외에는 가지고 계시면 안 됩니다. 챌린지 중에는 음주나 흡연도 금지예요. 휴대전화 소지도 안 됩니다. 차후에 발각되면 퇴소 처리될 수도 있습니다.”
스태프들이 퇴소를 운운하며 엄포를 늘어놓아서인지 모두 휴대전화를 꺼내어 제출했는데, 슬금슬금 소주팩이나 담배를 꺼내는 이들이 꽤 있었다.
옆을 보니 나와 같이 방을 쓰게 된 UH 엔터의 하상훈이 가방에 손을 넣고는 안절부절못한다.
머뭇거리며 결국 꺼내놓은 것은 비비크림.
스태프들이 요즘엔 남자들도 그 정도는 바른다며 괜찮다고 말하자 얼굴이 이내 환해졌다.
소지품 검사가 끝나고 나자 연습생 전원에게 5일 동안 합숙하는 데 필요한 생활용품, 세면도구 그리고 활동복 등이 줬다.
“아까 등급 평가 끝나고 받은 스티커는 지금 나눠드린 활동복에 붙이시면 됩니다. 자 그럼 30분 후에 리조트 1층에 있는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숙소 내의 간단한 룰과 주의해야 할 점을 설명한 스태프들이 방을 나가고 나자, 비비크림을 가방에 집어넣던 하상훈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잘 부탁드려요. 저는 하상훈이에요. 19살이에요.”
“네. 손에 들고 계신 네임 카드에 적혀 있네요. 저는 주시후라고 합니다. 22살이고요.”
“알고 있어요. 아! 다른 연습생들도 알고 있을걸요? B&M 엔터가 워낙 대형 기획사라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아웃튜브 때문에 워낙 유명하셔서…….”
하상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똘똘한 막내동생 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170cm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키 때문인지 귀여움이 묻어났다.
그때 이미 활동복으로 갈아입은 또 한 명의 연습생이 나와 하상훈 곁으로 다가왔다.
“저는 25살이에요. 같이 있는 동안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근데 우리 빨리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요? 30분 안에 모이라고 했는데, 늦으면 나중에 곤란해 질 거예요. 편집할 때 일부러 지각생들 더 부각시키고 그러더라고요. 흠잡히면 안 좋잖아요.”
가슴팍에 붙어 있는 네임 카드에 ‘진국’이라 쓰여 있는 연습생은 조금 전 등급 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는지 이름 옆에 스티커를 붙이며 알은척했다.
“진짜요? 그럼 빨리 가요. 우리”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첫 만남부터 붙임성 좋게 다가온 하상훈과 오지랖 넓은 진국과 함께 1층 강당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늦지 않게 도착한 강당은 등급 평가하던 대강당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편이었다. 100명의 연습생들과 스태프들이 모두 들어서도 좁다는 생각을 뒤로한 채 아늑함마저 들었다.
잠시 후 대부분 연습생이 모두 집합했지만, 과연 진국의 말대로 시간 내에 오지 못한 지각생들에게 카메라맨들이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