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11화 (1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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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인연의 끈 (3)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불안함과 초조한 증세를 보이던 김남규 팀장.

그는 최재우 이사의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이제 거의 우는 표정이 되었다.

“저……. 사실은…….”

“사실은 뭐? 이 친구야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봐.”

김남규 팀장이 대답을 질질 끌자, 임 실장이 재촉하는 기색이 되었다.

“저, 사실은 저 친구 연락처를 모릅니다. 제 명함만 주고 왔어요.”

대답을 마치고 고개를 푹 숙인 김남규를 보며 임준석과 최재우의 표정이 황당해졌다.

“뭐? 연락처도 모르면서 어떻게 데려오겠다는 거야? 대학생인가? 학교는 알고 있고? 아니면 직장인인가?”

김남규가 시선을 땅으로 향한 채 고개만 절레절레 젓는다.

“아무 것도 몰라? 아이고, 이 화상아. 개인 신상도 모르는 친구를 왜 브리핑 명단에 끼워 넣었어? 그리고 저런 실력을 지닌 친구한테 명함만 주고 왔다는 게 말이 되나?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인지 몰라? 아트 개발실에서 팀장이란 직책 달고 그동안 뭐 배웠어?”

임준석은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김남규를 한번 쳐다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할 수 없죠. 명함을 줬다고 하니 연락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하지만, 연락이 안 올 수도 있으니, 일단 후보로 몇 친구 더 봐두시죠.”

“흠흠. 그렇게 하지. 그래도 B&M 엔터의 캐스팅인데 연락이 올 확률이 더 높겠지?”

최재우 이사의 말에 김남규 팀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손에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꽉 쥐고는 알고 있는 모든 신께 기도를 시작했다.

‘제발, 와라! 와라! 전화야, 와라, 와라!’

* * *

밖에는 비가 내리는지 창밖은 어두컴컴하고 창문을 툭툭 때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귀를 간질인다.

선풍기 바람이 선선하게 얼굴을 쓰다듬었고, 나는 잠에서 깨기 싫어서 몸을 더 뒤척이다가 결국 몸을 일으켰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요즘 매일 출석 도장을 찍던 누나와 조카들은 오늘 워터 파크에 놀러 간다고 조용하다.

엄마는 산악회에서 등산을 간다며 어젯밤 늦게까지 입고 갈 옷을 고르시더니 새벽같이 나가셨나 보다.

정신 차려 볼까 하고 세수를 하다가 문득 거울을 들여다봤다.

요즘 신계와 소통하고 내게 주입된 깨달음을 소화하느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인지 눈이 퉁퉁 부었다.

손가락의 반지를 보니 파란색 보석이 보인다.

하급 각성한 엑스트라 링.

중급으로 각성을 하면 파란색 보석이 노란색으로 바뀔 것이라 했다.

얼굴의 물기를 닦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어젯밤 한참 고민하다가 잠들었던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신의 능력은 7품 신수와 6품 천운자의 것.

음악의 성전 소속 신뿐만 아니라 여덟 전당의 모든 신에 해당하는 것이니, 6품, 7품이라 할지라도 그 신의 수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 많은 능력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과연.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찰나, 휴대폰 벨이 울렸다.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 * *

음악의 성전에서 천상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에오스는 짜증이 일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는 마음에 품고 있는 동혁이라는 사내를 지켜보고 있었다.

큰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공연 중인 동혁의 외모는 오늘따라 더욱 빛이 나 보였다.

에오스가 천상의 샘에서 샘물을 퍼다 준 뒤로 동혁의 목소리는 감미롭기 짝이 없었다.

그야말로 천상의 목소리.

에오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천상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보고 있던 커다란 천상경 옆, 여러 개의 작은 천상경 중 한 개가 얼마 전 그녀에게 욕지거리한 인간을 집중적으로 비추고 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가는 작은 천상경을 힐끗거렸다.

전화를 받고 있는 주시후라는 인간.

에오스는 깊은 한숨을 토하며 아예 몸을 돌려 앉아 주시후를 노려보았다.

얼마 전 주신들과의 회의가 끝나고 ‘운명의 신’ 모이라이(Moirai) 3자매가 선인의 초석이 될 인간들 몇 명을 물색해 주시후와 인연의 실로 이어놓았다.

가진 능력은 있지만, 운이 지지리도 없는 인간.

성품은 너무 착하나 남에게 이용만 당하는 인간.

다 가졌는데 스스로 꼭 필요한 것이 모자라다 갈구하는 인간.

누구보다 신을 믿고 인정하며 끝없이 신에게 기도하는 인간.

모이라이는 이자들이 주시후를 선인의 그릇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말했다.

한데, 천상경 속의 주시후가 모이라이의 인연의 실을 툭툭 잡아당기다 못해 가위로 자르려 하는 것이다.

[“나는 가수는 아닌 것 같아. 아직 잘 모르겠어. 기획사라는 곳은 이제 좀 망설여지네. 내가 예전에 좀 많이 까였어야지.”]

에오스는 기가 찼다.

다른 인간들은 기회를 못 잡아서 안달인데, 이 인간은 반지의 능력을 확인하고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물론 운명의 신 모이라이가 인연의 실로 운명을 묶어 놓은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B&M 엔터와 주시후는 무조건 엮이게 되어 있었다.

주시후가 마음먹기에 따라 내일이 될 수도 있고, 일 년 후가 될 수도 있고.

하지만 에오스는 저 사내놈이 하루라도 빨리 선인의 그릇이 되어 만인의 존경을 받는 인간이 되었으면 싶었다.

그래야 자신도 관심을 끄고 손을 뗄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아직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하는 천상경 속의 사내를 보며 짜증이 일었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주시후!”

* * *

“아직 잘 모르겠어. 기획사라는 곳은 이제 좀 망설여지네. 내가 예전에 좀 많이 까였어야지. 너는 그래도 ‘떡’하니 기획사에 들어갔잖아.”

“야! 그래도 나는 아직 연습생이잖아. 언제 데뷔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너는 무려 B&M에서 캐스팅 제의 받은 거라고. 잘되면 더할 나위 없지만, 일단은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노래를 다시 할 수 있는 기회잖아. 너 빼고 우리 셋만 노래하러 다니는 것도 얼마나 마음에 걸렸었는데. 그리고 혹시 아냐? 너 잘되면 언젠가 네가 나한테도 기회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우……. 모르겠다. 아직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챌린지에 나가야 한다니까 더 쫄려서 그래. 일단 알았어. 생각해 볼게.”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착잡한 표정이 되었다.

한강시민공원에서 B&M 엔터 명함을 받을 때 옆에서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던 곽병준.

이놈이 B&M 엔터에 전화해봤냐고 자꾸 물어온다.

물론 오래전 친구 놈들과 함께 가수를 꿈꿨던 학창 시절도 있었다.

친구들은 아직도 꿈을 좇고 있지만, 노래도, 춤도, 외모도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던 나의 가수의 꿈은 군 입대와 함께 끝이 났다.

성적이 변변치 못해 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엔터테인먼트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보고 신나게 낙방을 하며 자신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궁금하기는 했다.

반지의 각성 능력을 아주 약간 보여준 것만으로도 B&M 엔터에서 캐스팅이 되었고, 다들 내게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내가 만일 가수를 한다면 반지의 능력으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에 와서? 반지의 능력까지 얻었는데?

선인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 이름을 널리 떨쳐야 한다던데 차라리 세계적인 재벌이 된다든가, 명망 높은 자리 하나를 꿰차는 것이 편하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때,

“주시후!”

천상경을 통해 울림이 전달되었다.

누구지? 평소 듣던 사자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날카롭고, 짜증 섞인 듯한…. 어디선가 들어 본적이 있는 목소리.

“저런 답답한 인간! 깨우침을 아무리 전달해도 반도 못 깨닫는 인간! 그때 네 손가락을 잘랐어야 했다.”

분명 이 목소리는…!

나는 못들은 척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딴청을 피웠다.

이 여자의 목소리는 앞선 경험상 못들은 척하는 게 답이다.

“아닌 척 해봐야 울림으로 전해진 목소리가 안 들릴 리가 없지? 대체 왜 아직도 너의 운명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지? 네가 선인이 되어야 모두가 평안해 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야?”

에오스의 질문을 받은 나는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천상경의 사자가 보내준 깨우침. 이것으로 알게 된 에오스의 성격은 아주 화끈했다.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의 혀를 뽑아 버리고, 영원한 어둠속에 던져 버리질 않나.

온갖 저주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살게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난 반지를 손에 끼운 순간 이미 찍힌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저 여자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새벽의 여신, 에오스님. 그전에는 몰라뵙고 제가 이년, 저년 하여 송구스럽습니다.’

나는 천상경을 통한 울림으로 뜻을 전했다.

저쪽에서는 말 대신 씩씩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온다.

내 말이 다시 에오스의 화를 돋웠나 보다.

잠시 후 에오스가 마음을 가라앉힌 듯 화가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그건 됐다. 용서하마. 그런데, 엑스트라 링에 대해서는 전부 숙지한 것이냐?”

‘네, 뭐. 어느 정도는요. 음악의 성전을 관장하시는 아폴론 님께서 의지로 만들어 낸 반지이고 백 년마다 한 번씩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그 귀한 것을 에오스 님께서 훔치시는 바람에 기나긴 사연을 통하여 제게 온 것이죠.’

내가 미쳤구나.

생각하고 입 밖으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울림으로 전달하다 보니, 속마음이 걸러지지 않고 막 튀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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