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화 인연의 끈 (2)
조금 걸어서 도착한 집 앞 대로변에 있는 작은 카페.
근처에 유명한 브랜드 카페가 많은 까닭에 이곳은 항상 손님이 적었다.
카페 주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너무 사람이 없고 조용해서 난 누군가와 약속 장소를 잡을때 이곳을 특히 선호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서 입구를 쳐다보고 있던 권철용과 눈이 마주쳤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내가 약속 시각에 늦은 것은 아닌데 먼저 와 있는 그를 보니 나는 표정이 절로 미안해졌다.
권철용도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먼저 말을 열었다.
“내가 좀 일찍 도착했어. 이것도 직업병이라니깐. 우리같은 직업은 약속 시각에 늦으면 절대 안 되거든.”
미안한 표정을 읽었는지, 그는 이렇게 말하며 배려심을 보여주었는데 역시 성격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러니 그 많은 인맥을 만들었겠지.
“근데 만나서 해야 하는 말이 뭐예요?”
주문하고 나서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시후, 너 동영상 봤니? 아웃튜브에 올라온 거 말야.”
“네. 봤어요.”
“네가 본 건 중간부터 찍힌 거지? 풀 영상 한번 볼래?”
원래 손님이 드문 카페라지만, 평일 오후의 집 앞 작은 카페는 정말 한가로웠다.
권철용이 주위를 한번 휙 둘러보더니 우리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그는 내 눈에 호기심이 일자 IN 컴퍼니 현장 보조 팀에서는 자체적으로 모든 행사에서 준비 과정부터 끝날 때까지의 모습을 촬영해 소장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도 처음 보는 동영상의 원본.
나는 처음부터 재생되는 동영상을 보고 다시 감탄하다가 문득 저건 어떤 신의 능력인지 궁금해져 천상경에 울림을 보냈다.
‘이건 어떤 신의 능력인가요?'
“편곡하는 것은 반지 고유의 능력입니다. 선인이라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능력이지요.
다만 저 피아노의 연주는 많은 신의 능력이 상충했지만, 시끄럽지 않고 매력적이군요.
영국의 ‘헤바 빌츠’, 독일의 ‘힙 센트’, 프랑스의 ‘이자벨 카셀’ 등의 능력이군요.
모두 6품 천운자입니다. 이들의 능력이 모두 나온 건 반지가 하급 각성에 이르는 시점에 오류로 튀어나온 듯 보입니다.”
대답이 바로 들려온다. 물론 나에게만 들리겠지만.
재생이 끝나고 나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안을 축인 권철용의 말이 시작되었다.
지금 웹 사이트에 공유된 동영상은 중간부터 찍은 것인지 앞부분이 없다고 한다.
“시후야, 이 원본 공개해도 괜찮겠니?”
“누구한테요?”
눈이 동그래진 내가 되물었다.
권철용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시후 네 동영상을 최초로 배포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아웃튜브 보니깐 ‘영상. 강소미’라고 쓰여 있던데요.”
“응. 그 강소미라는 학생이 네 직캠을 찍어서 블랙 타이거 팬 카페에 올려놓은 게 시초야. 찍자마자 바로 올렸더라고. 그래서 블랙 타이거 소속사인 B&M 엔터테인먼트 기획 팀에서 원본을 보내 달라고 요청이 왔어.”
권철용의 입에서 B&M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살짝 놀랐다.
나랑 뭐가 있나?
권철용의 설명에 따르자면 원칙적으로 저작권자의 허락을 맡지 않고 커버 하여 배포할 경우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겠지만, 음원을 배경으로 깔아놓은 것도 아니고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한 경우라 그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달에서 온 너’가 피아노 버전이 없고 배포자가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웃튜브에 배포된 것 또한 저작권협회와 아웃튜브와의 협약이 있기에 문제 될 일은 없다.
결론은 저작권료 안 줘도 된다.
하지만, 권철용은 B&M 엔터테인먼트에 원본을 주고 싶어 하는 표정이다.
아마도 부탁하는 것을 주고 신세를 지울 모양이다.
어차피 직캠으로 얼굴 노출은 될 만큼 되었는데, 원본이라 한 듯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권철용은 입가에 만족한 듯 미소를 달고, 다시 질문했다.
“그런데, B&M 엔터테인먼트에서 네 신상 정보도 달래. 줘도 될까?”
“…….”
이번 질문엔 말문이 막혔다.
혹시 또 캐스팅인가?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권철용이 입가에 미소를 최대한 유지하며 말했다.
아까와는 뭔가 다른 사악한 미소 같아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인 걸까?
“B&M 엔터테인먼트 기획 팀에서 네 휴대폰 번호를 물었는데, 아무래도 피아노 편곡 때문인 것 같아. 마음에 들었나 보더라고. 살짝 악보 얘기를 꺼내는 것 같았는데 연주한 악보가 필요한 게 아닐까? 아니면 혹시 너한테 공연을 부탁한다거나……. 이러나저러나 너한테는 괜찮은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아……. 네. 알겠어요.”
캐스팅은 아니구나.
하긴, 아웃튜브에 돈 직캠은 내가 한 피아노 연주뿐이었지.
내가 수락하자 권철용은 또 한 번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미소와 상반되게 그는 입가가 쓴지 쓴 입맛을 다셨다.
권철용은 기획사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이벤트 회사라서 소속 연예인은 한 명도 두지 않은 컴퍼니였다.
눈앞의 인재를 직접 키우고 싶은 욕심이 일지만,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아서 놓치는 것이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권철용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이미 머릿속엔 B&M 엔터의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자꾸 엮이는 게 희한하긴 하지만, 별일이야 있겠나?
* * *
일본과 중국으로 뻗어 나가는 한류.
동남아시아를 넘어서 전 세계로 진출하는 한국의 영화, 드라마, K-POP이 수출 가도를 달리고 있고, 문화와 음식, 가전제품 또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중 한류 열풍의 중심인 K-POP.
대한민국에 수많은 연예 기획사가 있다지만, 그중에서도 3대 기획사라 불리는 B&M 엔터테인먼트는 일본과 중국에 가장 먼저 K-POP을 진출한 대형 기획사이며 보유하고 있는 소속 연예인이 가장 많았다.
현재 음원 차트를 쓸고 있는 걸 그룹 ‘스와니’와 역주행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블랙 타이거.
국민 MC라 불리는 유재승, 신동연 또한 B&M의 소속이었고, 다른 톱 배우들과 방송인들도 인기가 좀 있고 명성이 좀 있다 싶으면 모두 B&M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다.
이 연예인들이 B&M 엔터에 있다고 하여 기획사가 빛을 보거나 덕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소속된 모든 이가 B&M 엔터에 들어온 후 가치가 높아지고 유명세가 더해지니 이쯤 되면 연예인을 지망하는 연습생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기획사였다.
B&M 엔터테인먼트 7층 회의실.
진중한 분위기 속에 3명의 사내가 한곳을 쳐다보고 있다.
회의실 한쪽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영상 한 편이 재생되고 있다.
몇 분 후.
“난 저 친구 마음에 드네요. 괜찮은데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저 정도 실력이면 무조건 데리고 와야죠. 외모가 평범하긴 하지만.”
손가락으로 볼펜을 휙휙 돌리며 말을 시작한 임준석의 시선은 아직도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다.
매니지먼트 본부 총괄실장 임준석과 B&M 최재우 이사는 아트 개발실 팀장 김남규의 브리핑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최재우 이사.
B&M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이종사촌 동생으로 기획사 안팎으로의 힘이 막강하다.
하지만, 대표의 동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이사 자리에 올랐기에, 일 처리에 있어서만큼은 전 직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가진 힘을 멋대로 휘두르지 않고 때론 나눠 쓰고 때론 강하게 발휘하는 현명한 관리자이기도 했다.
최재우 이사는 임 실장의 입에서 긍정의 소리가 나오자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나도 저 친구가 가장 좋은데? 보다시피 딱 봐도 실력은 충분한 것 같은데, 챌린지 나가도 예선 탈락할 것 같지는 않아 보여.”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이 친구로 정할까요?”
임준석 실장과 최재우 이사의 대화가 계속 될수록 김남규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 갔다.
“그러지.”
최재우 이사의 승낙이 떨어지자, 임준석 실장은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다.
“일단 오디션 한번 보죠. 실제로 봐도 실력이 좋을 것 같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평가하고 넘어가야죠. 혹시라도 오디션 결과가 영 별로라면, 회사 대표로 나가는 건데 먹칠을 하게 둘 순 없잖아요.”
“아휴. 회사에 확신할 만한 아이들이 그렇게 없나? 내보낼 만한 애들이 이렇게 없어?”
최재우 이사의 한숨에 임준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쩔 수 없죠. A 클래스에 있는 연습생 애들은 거의 데뷔조예요. 2달, 3달씩 걸리는 챌린지에 내보내면 타격이 크거든요. 다행인 건 저 친구가 A 클래스 연습생들보다 보컬 실력이 훨씬 낫네요. 뭐 한 곡 들어서는 확신이 안 서지만.”
임준석의 말을 마치고 아까부터 눈에 거슬린 옆의 김남규 팀장을 바라보았다.
“자네, 아까부터 왜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