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7화 (7/170)

# 7

7화 신을 만나다 (1)

촬영자가 중간부터 촬영해서인지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음악에 취해 연주하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헉!

나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내뱉는 것도 잊었다.

이게 나라고?

내가 치는 거라고?

일단 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배운 적도 없고, 쳐본 적도 없으니까.

혹시 배우지 않아도 천재성만 있다면 누구나 이만큼 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주 잠시나마 내 안의 잠재력을 의심해 보았으나,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어제 행사장에서 피아노 연주를 마치고 일어났을 때 그 연주를 들은 권철용과 스태프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 연주는 범인이 하기 힘든 연주였으리라.

특히 피아노 조율사는 손에 들고 있던 공구가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고 했다.

‘이렇게 피아노 치는 사람은 실제로 처음 본다.’라고 했던 어제의 그 말들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아마 그들의 표정과 지금 내 표정이 같지 않을까?

동영상 재생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요를 즉석에서 편곡해서 이렇게 피아노로 칠 수 있나?

분명 뭔가에 홀린 것이 아니라면,

“내가 미친 거지.”

“그래. 너 좀 미친 것 같다. 뭐야? 저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뒤를 돌아보니 누나가 모니터를 보며 멍하니 서 있다.

“아! 깜짝이야! 누나 언제 들어왔어? 인기척을 내야 할 거 아냐?”

“얘 봐라? 방에 들어와서 몇 번을 불렀는데. 근데 너 피아노 배웠어? 언제?”

누나의 질문에 숨이 턱 막혔다.

이런 질문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1, 2년 배워서는 저 정도 연주가 어림없다는 건, 어린 애도 알겠다.

웬만한 거짓말로는 이 상황을 모면하기 힘들 것이다.

“어?… 고딩 때 나 알바 많이 했잖아. 그게 다 피아노 배우려고 한 거지.”

“아 그래? 그랬구나. 엄마랑 나는 네가 알바비 벌어서 PC 방에 다 갖다 바치는 줄 알았지.”

심하게 정곡이 찔렸다.

하지만 누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다만 그 학원 어디냐? 개인 레슨이냐? 네 조카들 보내게 알려줘 봐’라는 둥 귀찮게 했다.

누나가 방에 들어온 목적인 누나의 휴대폰을 손에 쥐여 주고 방 밖으로 내보냈다.

진짜 어떻게 된 걸까?

휴대폰을 보니 아직도 틈틈이 전화가 오고, 통장에 이자 붙듯 읽지 않은 메신저 톡도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난리 났구나.’

하지만, 진짜 난리는 신계에서 났다.

* * *

신계에는 8개의 성전이 있는데, 각 성전을 관장하는 신들은 총 8명으로 이들을 주신(主神)이라 부른다.

또한 신계에는 품계가 있지만 제왕 제우스를 비롯한 8명의 주신, 그 외 태초의 신들과 티탄 신들의 직계까진 신족이라 부르며 품계가 없다.

신계의 품계를 만든 신족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신계의 지배자였다.

음악의 성전.

신탁에 둘러앉은 주신들과 몇몇 신족은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들이다.

“…… 사태가 이러하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아폴론이 먼저 입을 뗐다.

“저 인간을 죽여 버리면 안 된다고 하니, 그럼 손가락만 잘라 오면 되겠군.”

에오스의 대답에 신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잠자코 있던 ‘태초의 성전’을 관장하는 ‘물의 여신’ 테티스(Tethys)가 에오스에게 쏘아붙였다.

“경거망동 말거라, 에오스. 내가 지금 네 어머니를 보아 참고 있으니 말이다.”

그 말에 에오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딱 붙이며 자숙하는 자세를 취했다.

에오스에게 주의를 준 테티스는 곧이어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며 모든 신을 둘러보았다.

“아폴론의 성전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곳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하지만 소속을 따지자면 에오스는 우리 태초의 성전에 속한 신이니 대책을 함께 강구할 것이다. 반지가 음악의 성전의 것이기는 하나, 각인되면 모든 성전에 영향을 미칠 터. 방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니 여덟 주신은 모두 협조하게.”

테티스의 말에 성전에 모인 모든 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누구이던가, 티탄 12신의 본체이며, 태초에서 탄생한 위대한 신.

인간계의 항렬로 따지자면 제왕 제우스의 이모 혹은 고모뻘이 된다.

아폴론의 주도로 회의는 계속되었다.

테티스가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니 다른 신들도 적극적이었다.

“원래 선인에게 돌아갈 반지였으니, 그를 ‘선인’으로 추대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재물의 성전’을 관장하는 ‘풍요의 신’ 플루토스(Plutus)가 신들에게 물었고, 이 질문이 시발점이 되어 토론이 활발해 졌다.

“하지만 엑스트라 링은 인간세계에서 추앙받는 이들 중에서도 선발된 선인에게 내려지는 것입니다. 반지를 가진 그자가 그만한 그릇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씀이 옳습니다. 선인이 될 만한 그릇도 못 되는 자가 사후 신계에 올라온다면 모든 신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후에 신계에 올라올 만한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 인간을 선인의 재목으로 만들자는 것입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릇이 될 만한 인간으로 만들어야겠군요. 선인의 충족 요건은 채워야 하니까요.”

“먼저 인간계에서 뛰어난 존재로 탈바꿈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신들의 얘기를 듣는 아폴론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한다.

본래 엑스트라 링은 선인에게 돌아갈 반지.

선인은 성전의 모든 신의 투표를 거쳐 선발해야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반지의 주인을 선인으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은 계획 같았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아폴론의 입이 열렸다.

“그럼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정해졌군요.”

모든 신의 머릿속엔 한 단어가 떠올랐다.

뒤치다꺼리.

* * *

오후 7시가 넘었는데도 해가 질 생각을 안 한다.

확실히 여름이라 무덥고 해가 길지만 오랜만에 나온 ‘한강시민공원’에 강바람이 불어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는 친구 놈들이 악기 세팅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다.

친구 놈들이 난데없이 한강시민공원에서 버스킹을 하겠다며 준비해 온 터다.

하긴, 영 뜬금포는 아니다.

고등학교 동창인 이놈들은 나와 함께 가수라는 꿈을 쫒던 놈들이다.

어려서부터 기타를 쳐 왔던 정근이는 대학교에 진학해 현재 실용음악과에서 기타를 전공 중이고, 키보드를 들고 온 광택이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를 기가 막히게 친다.

보컬인 병준이는 대형 기획사는 아니지만 어쨌든 기획사의 연습생이다.

22살의 나이에 아직도 7년 차 연습생인 것이 함정이지만.

나만 제외하고는 아직도 나름대로 음악을 하고 있는 녀석들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초·중·고·대학교의 방학 시즌이라 그런지 이번 주 내내 한강시민공원에서 야시장이 열린다고 하여 오랜만에 포식하려고 따라온 참이다.

“야! 공연하려면 사람 많은 데다가 판을 깔아야 할 거 아냐?”

악기가 세팅된 맞은편 관람석에서 자리 깔고 앉아 있던 나는 답답한 마음에 내가 물었다.

멀지 않은 곳에 많은 사람이 텐트를 치거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스팟이 보인다.

벌써 두 곡이나 불렀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이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진득하게 듣고 있는 사람도 나 혼자라는 뜻이다.

“푸드 트럭 앞쪽에는 8시부터 다른 팀이 버스킹 할 거라 안 돼. 이게 또 나름 룰이 있거든.”

병준이의 말이다.

어려서부터 노래 좀 한다는 소리를 듣더니 이내 작은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학창 시절엔 키도 182cm나 되고 춤도 꽤 잘 추는 편이라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았었다.

그런데 변성기를 잘 못 보낸 후유증으로 보컬에게 제일 중요한 목소리가 망한 놈이다.

곽병준이 주위를 한번 ‘휙’하고 둘러보더니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시간엔 원래 저녁 식사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 좀 있으면 많아질 테니까 기다려 봐.”

하지만 그 뒤로 3곡이나 더 불렀음에도 관객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친구 놈들은 평일이라서 그럴 것이라며 자기들끼리 위로했지만, 그중에 이 그룹의 실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광택은 생각이 달랐다.

‘니들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드냐?’라는 표정이다.

키보드를 맡고 있던 이광택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관객석에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왔다.

“야, 주시후. 네가 한 곡 해라. 터치감이 틀리겠지만 그래도 비싼 키보드라 소리는 괜찮을 거야.”

새벽부터 아웃튜브에 내 동영상이 올라왔다고 처음 전화해 준 놈이다.

한강 시민 공원에 오는 내내 언제 그렇게 피아노를 배웠냐고 꼬치꼬치 물어봐서 나를 진땀 빼게 하더니 이번엔 연주하라고 진땀 빼게 한다.

나는 광택이에게 등이 떠밀리다시피 키보드 앞에 끌려와 의자에 앉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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