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 가다 주운 SSS급 반지-5화 (5/170)

# 5

5화 각성 (2)

양은영이 곧 가수들이 공연할 때 쓰는 무선 소형 마이크 4개를 손에 쥐여 주었다.

“시후 씨는 그거 네 개 다 들고 테스트해 주시면 돼요.”

앰프를 통해 바로 MR이 흘러나왔다.

음악이 강당으로 퍼져 나가며 내 몸에도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테스트 때문에 섰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노래하러 무대에 선 것이다.

큐시트를 읽어 내릴 때와 서 있는 것 자체가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엔 노래방에 왔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불러볼 생각으로 가볍게 올라왔다.

하지만 막상 서고 보니 그동안 접어 두었던 가수의 피가 끓었다.

노래를 시작하자 아주 지겹도록 들어서인지 세뇌당한 것을 읊는 것처럼 랩 부분까지도 막힘이 없었다.

그런데 노래하며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놈이었던가?

음정, 박자가 모두 정확하고 특히 고음 부분은 막힘없이 쭉쭉 올라간다.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인상 깊게 마음에 새겼던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말이 바로 이게 아닌가 싶었다.

호흡이 안정되니 4인조 그룹의 노래를 혼자 부르는데도 힘들지 않았다.

랩 파트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내가 부르는 발음인데도 내 귀에 꽂힐 만큼 딕션이 정확하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목소리도 평상시와는 다르다.

분명 내가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

변성기를 잘못 보내 약간의 탁성이 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청아하고 맑다.

왜 그런 걸까. 앰프가 좋아서? 이퀄라이저와 믹서의 환상의 밸런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을 거다.

노래가 끝나자, 권철용이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나도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동안에도 권철용 이하 모든 스태프들이 일제히 나만 보고 있었다.

“시후, 너 그렇게 노래 잘하는 애였냐?”

눈을 동그랗게 뜬 권철용의 질문이 날 향했다.

너무 잘해서 놀랍기는 나도 마찬가지.

생각지도 않았던 칭찬에 기분까지 좋아진 나는 권철용을 향해 웃어 보였다.

“난 클래식만 듣는 사람이라 요즘 노래 잘 모르는데, 진짜 듣기 좋았어요. 저 친구 진짜 노래 잘하네.”

피아노를 조율하고 있던 어느 조율사가 내 쪽을 보며 칭찬해온다.

무대 한쪽 위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는데, 2부 공연 때 천재 피아니스트 ‘루치오 정’이 쓸 피아노였다.

그는 말을 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았다.

“어제 조율을 하긴 했는데, 어제 조명 탓인지 줄이 조금 느슨해져 있는 것 같네요. 아, 그런데 자네 혹시 피아노 칠 줄 아나?”

“네?”

“아니, 하도 피아노를 뚫어지라고 쳐다보기에,”

당연히 모른다. 배운 적이 없으니.

그런데 입 밖으로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괜찮다면 쳐 봐도 되어요?”

말하고도 내가 놀랐다. 피아노는 어려서부터 가까이 한 적도, 쳐본 적도 없다. 결단코.

“뭐, 괜찮다면 조금 정도야.”

조율사는 내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마음속으로는 절대 피아노 앞에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 조율사의 손짓이 마치 저승사자의 손짓처럼 보였으나 마음과는 달리 자석처럼 몸이 따라간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피아노 의자에 앉은 나는 호흡을 길게 들이쉰 다음 내뱉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피아노는 한 번도 쳐 본적도 배운 적도 없다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의자에 앉자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왠지 될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이미 머릿속에는 수많은 피아노 곡이 실타래 엉키듯 떠올라서 머리가 아파왔고, 눈앞에는 허공에 악보가 떠있는 듯 눈을 괴롭혔다.

“피아노를 아주 잘 치나 보군. 피아노 앞에 앉은 것이 편안해 보이니 말야. 그래, 어떤 곡을 칠 텐가? 어서 한번 쳐 봐. 조율이 잘되었는지 들어보게.”

조율사가 재촉해 온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격정적으로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들이 차분히 내려앉고, 머릿속에 어떤 곡 하나가 거짓말처럼 떠올랐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입술을 축이고, 느릿하게 입술을 벌렸다.

“좀 전에 제가 불렀던 ‘달에서 온 너’를 쳐 보겠습니다.

* * *

강소미는 Q전자 ‘모바일 IT 부분 경영 전략부’에 있는 강 이사의 딸이다.

그녀는 이번 기업 행사에 블랙 타이거가 출연한다는 정보를 듣고 부모님과 함께 왔다.

평상시 같았으면 절대 부모님 손을 붙잡고 따분한 이런 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강소미는 블랙 타이거의 팬클럽인 '블랙 클라우드'의 회원인데, 팬클럽 애들과 학교 친구들이 데리고 가달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고3인데, 아이돌 따라다니는 걸 싫어하시는 아버지의 눈치가 보여 데리고 오지 못했지만.

1부 순서에는 거의 졸았다.

꾸벅거리다가 엄마의 팔꿈치 어택에 정신을 차린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기업의 창립… 어쩌구. 기업 포부… 저쩌구. 우수사원 표창장 수여식 기타 등등.

옆자리에 보니 다섯 살 아래인 여동생도 고개를 꾸벅거린다.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부모님은 동생을 데리고 간단히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자고 했고, 강소미는 속이 좋지 않다며 그냥 여기 있겠노라 했다.

가족들을 보낸 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

SNS 메신저와 팬클럽 카페에 글이 쇄도한다.

‘오늘 옵하들이 설 무대, 기대하고 이써용♡’라며 무대 배경으로 셀카 한 장을 찍어서 올려놓은 후폭풍이다.

- 오빠들 언제 옴?

- 언니~ 직캠 올리실거죠? 기다리고 이써용~^^

- 얌 나 떼 놓구 가니깐 좋냐?ㅋㅋㅋㅋㅋ

- 청담동에서 오빠들 화보 촬영 끝나고 지금 출발!

- 아까 샵 앞에서 동혁 오빠한테 눈도장 찍었다는. 오늘 개간지 쩔었음.

- 타이거 오빠들 출발. 지금 수원으로 가는 중.

난리 났네. 알았다, 이것들아. 곧 오빠들 공연 직캠을 하사하마.

팬 카페에 블랙 타이거의 거취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팬클럽 회의를 통해 사생 팬은 엄격히 금지했는데, 조용히 따라다니는 애들은 어쩔 수 없다.

강소미는 배터리가 53%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산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휴대폰.

약정 기간도 훨씬 전에 끝났지만, 고장난 곳이 없으면 그냥 쓰라며 엄마가 사주질 않는다.

다른 부분은 괜찮은데, 요즘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아서 짜증이 났다.

특히 오늘처럼 블랙타이거의 직캠을 촬영해야 하는 날엔 더욱더.

“하아암.”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기지개를 켰다.

1부 순서가 많이 지루했고 블랙 타이거의 무대는 2부 제일 끝이지만, 강소미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사실 팬클럽이라고는 하나 임원도 아닌 그녀는 블랙 타이거를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많지가 않으니까.

아버지의 ‘이사님’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2층,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VIP석에서 오빠들을 볼 수 있으니, 낳아 주신 은혜 키워 주신 은혜보다 새삼 더 큰 은혜를 느끼는 그녀였다.

‘화장실이라도 다녀올까?’

강당 출구 쪽으로 걸어 나가다가 1층 무대 쪽에서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본 강소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1부 순서에 무대에서 MC를 보던 남자가 손에 마이크를 잔뜩 들고 무대 위에 서 있었다.

뭘 하려나 본데?

갑자기 강당 스피커에서 블랙타이거의 ‘달에서 온 너’가 흘러나온다.

처음 시작하는 도입부는 언제 들어도 흥겨웠다.

이번 타이틀 곡을 너무 잘 뽑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설마?

“아직도 나는 가끔 그때 꿈을 꿔. 달이 빛나던 그날 밤의 꿈을~.”

무대 위의 남자가 노래 부른다.

강소미의 눈이 별안간 동그랗게 커졌다.

“에엑? 우리, 오빠들 노래 아니야?”

스스로 느끼기에도 목소리 데시벨이 너무 높았는지 강소미는 자신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저 노래 어렵다고 오빠들이 방송에서 이야기했는데…….”

‘하우스의 일종으로 보면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탄력적으로 불러야 해서 너무 힘든 곡이에요. 고음도 너무 높고 많아서 녹음하다가 목이 쉴 지경이었죠. 안무를 짜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템포가 느리기 때문에 리드미컬한 보컬을 잘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녀는 얼마 전 ‘뮤직 토크’ 프로에서 블랙 타이거가 이번 타이틀 곡을 부르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고충을 늘어놓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당연히 평범한 사람은 잘할 수 없는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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