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본선 : 다차원 대난투(1)
미션의 이름을 들은 강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차원 대난투? 어떤 미션인지 감이 안 오는데.’
그간 더 비욘드를 하면서 여러 미션을 접한 그에게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명칭이었다.
주변을 살피자, 다른 참가자들도 매한가지인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해 보이는 중이었다.
그런 참가자들의 반응을 짐작했다는 듯, 엘이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분들도 아실 겁니다. 무력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요. 단순히 ‘격’과 에테르를 다루는 능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죠.]
강현은 황금의 저택에서 만났던 석인들을 떠올렸다.
그에 비견되는 ‘격’을 가진 석인들이 있었지만, 막상 붙어보자 별거 아니었다.
‘확실히 무력이란 게…… ‘격’이랑 에테르를 다루는 능력만을 말하는 건 아니야.’
-그것 말고도, 그 돌덩이들은 네놈을 인정하지 못하고 끝까지 덤볐었지. 판단이라도 잘했으면 목숨은 부지했을 거다.
‘그것도 그러네요.’
그들은 강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채 찍어누르려 했고, 그 판단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즉 자신이 가진 힘을 어떻게 쓰고 전투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
그것들 역시 무력을 구성하는 요소라 할 수 있었다.
[대강 감을 잡으신 것 같군요. 그럼, 바로 미션의 무대로 넘어가겠습니다.]
팟-
무대 뒤의 화면에 드넓은 섬으로 보이는 지형이 내려다보인다.
헌데 보통 섬이 아니었다.
‘저건 대체…….’
난생 처음 보는 모습의 섬에 강현이 눈을 크게 떴다.
마치 여러 개의 고리들이 겹쳐 있는 듯이, 섬의 구역이 나누어져 있던 것이다.
고리는 총 다섯 개였는데, 그 색깔들이 확연히 달랐다.
가장 큰 외곽의 고리 안에 조금 더 작은 두 번째 고리가, 두 번째 고리 안에 세 번째 고리가 있는 식이었다.
[지금 보시는 섬은 ‘다차원 대난투’를 위해 제작한 ‘다차원 섬’으로, 보시는 대로 모두 다섯 개의 차원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면적 자체만 본다면 차원이라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저 다섯 개의 고리들은 분명 각기 다른 차원입니다. 먼저, 제1 구역이라 명명된 외곽의 고리부터 보시죠.]
팟-
섬을 이루는 다섯 개의 고리 가운데, 엘이 제1 구역이라 말한 가장 바깥의 고리가 확대된다.
가장 바깥에 있는 만큼 면적 역시 가장 넓은 녹색의 고리였다.
화면이 더 확대됨에 따라, 강현은 제1 구역이 정글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다수 종족들이 정글이라 부르는 지형으로, 현재는 ‘후라트’라는 외계종이 장악하고 있는 지형입니다.]
과연, 흐물흐물한 오징어처럼 생긴 종족들이 정글을 거니는 게 보였다.
‘정글을 거니는 외계종이라…… 신기하군.’
[다음은 제2 구역입니다.]
외곽에서 두 번째로 가까운 고리가 눈에 들어온다.
곳곳이 온통 사막으로 뒤덮인 지형이었다.
[제2 구역은 사막 지형이며, 다수의 갑각종이 지역의 패자를 가리가 위해 투닥거리고 있죠. 대기가 매우 뜨겁고 건조하기에, 각 참가자들은 신체 상태에 유의해야 할 겁니다. 다음은…….]
엘은 각 고리들의 환경을 하나씩 설명해 나갔다.
제3 구역, 제4 구역…….
이윽고 중앙 구역에 위치한, 널찍한 산맥을 끝으로 설명을 마친다.
[자, 이걸로 각 차원들의 설명은 마쳤군요. 모두 이해는 잘되셨습니까?]
강현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 다차원 대난투라는 미션의 이름을 들었을 때의 의아함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서였다.
다만 모든 의문이 풀린 건 아니었다.
‘차원들이 여러 있는 건 알겠는데…… 어떤 식으로 미션을 하겠다는 거지? 그냥 닥치는 대로 치고받기라도 하라는 건가.’
아직 제대로 된 미션의 진행 방식을 파악할 수 없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미션이 시작되면, 여러분들은 섬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핀 포인트’를 점령해 나가게 됩니다. 점령하는 데에 별다른 절차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손을 일정 시간 이상 가져다 대면 점령할 수 있게 되죠.]
[언제나 그래왔듯이, 더 많은 핀 포인트를 점령할수록 기여도가 높아질 거라는 걸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제1 구역부터 보실까요?]
슈슉-
제1 구역 곳곳에 둥글고 붉은 점들이 찍힌다.
[지금 보이는 제1 구역의 붉은 점들을 점령할 때마다 참가자들은 100pt씩을 얻게 됩니다. 제1 구역의 핀 포인트는 모두 24개이며, 제2 구역은 12개, 제3 구역은 6개, 제4 구역은 3개. 마지막 중앙 구역에는 1개의 핀 포인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이 핀 포인트들을 점령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며, 모든 핀 포인트가 점령되면 임시 정산을 거치게 됩니다.]
“……?”
[그리고 임시 정산을 통해 핀 포인트를 점령하지 못한 참가자들은 이번 미션에서 탈락하게 되죠. 여기까지가 이번 미션, ‘다차원 대난투’의 기본 형식입니다.]
“……!”
참가자들이 미미하게 술렁이는 게 느껴진다.
강현이라고 별반 다를 건 없었다.
‘핀 포인트 점령을 못 하면 떨어진다고?’
강현은 엘이 말했던 핀 포인트 갯수를 되짚어보았고, 알 수 있었다.
제1 구역은 24개.
제2 구역은 12개.
제3 구역은 6개.
…….
다음 구역으로 넘어갈 때마다 핀 포인트가 절반씩 줄어든다는 것을.
즉, 하나의 구역에서 다음 구역으로 넘어갈 때마다 최소 절반의 참가자들이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다음 구역으로 진출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핀 포인트를 점령하라는 건가.’
강현은 그제야 이 미션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극단적인 환경들 속에서 펼쳐지는 각 종족들 간의 생존 싸움.
그게 바로 다차원 대난투였다.
‘참가자들의 무력을 평가한다더니 이런 류의 미션을 들고올 줄이야.’
엘이 말을 계속한다.
[이제 몇 가지 자세한 것들을 설명해 드려야 하겠군요. 먼저, 무력 제한에 관련된 사항입니다.]
[이번 미션에서, 참가자들은 5할의 무력을 제한된 상태로 시작하게 됩니다.]
5할.
겉으로 보기에는 많아 보이나, 일전의 미션들에서보다는 훨씬 덜 제한하는 것이었다.
고작 1할, 2할만을 가지고 시작하는 미션들도 있었던 걸 생각하면 매우 양호한 수치였다.
‘게다가 무력을 평가한다고 했으니, 다른 미션처럼 해제하는 게 어렵지도 않을 테고.’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짐작하셨겠지만, 다른 참가자나 각 차원들을 거니는 종족들을 처리함으로써 기여도를 얻어 무력 제한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엘이 그런 말을 해온 것이다.
[참고로 참가자를 처치한다면 해당 참가자가 가진 기여도의 절반을 빼앗아오게 되지만, 해당 참가자가 점령했던 핀 포인트까지는 얻을 수 없습니다. 즉 자신만의 핀 포인트를 하나라도 점령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기여도가 많아도 탈락하게 되죠. 핀 포인트를 점령했던 참가자는 다음 차원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섬에서 탈락한다고 해도 그게 본신의 사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대신 한 번 탈락하게 되면 그대로 대기실로 소환되니, 부디 신중하게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미션을 통해 8명을 제외한 16명은 탈락할 예정이니까요. 그러면 바로…… 아, 이걸 말씀 안 드렸군요.]
“…….”
[이번 미션에서는 최대 3인까지의 팀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그 대신, 팀을 이루면 통상적인 산술치보다 기여도를 적게 획득하게 되죠. 개인이 얻을 기여도를 10이라 가정했을 경우 2인 팀이라면 4, 3인 팀이라면 2.5가량을 얻게 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자, 필요한 설명은 다 드린 듯하군요. 나머지는 미션을 진행하면서 충분히 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슈와아아-
새하얀 빛무리가 대기실을 감싸간다.
바닥에서 일어난 빛무리는, 대기실을 넘어 참가자들이 자리한 역삼각형의 좌석까지 빠르게 잠식해 나갔다.
그런 가운데, 엘의 말이 들려온다.
[미션의 명칭에 ‘대난투’가 들어가는 만큼, 정정당당 같은 건 없다고 여기시는 게 좋을 겁니다. 기습, 암습, 잠행, 배신…… 모든 게 허용된다고 여기고, 최선의 결과를 위해 힘써주시길.]
그 말이 끝남과 더불어.
슈와아아!
빛무리가 대기실을 완전히 메웠다.
본선 세 번째 미션의 시작이었다.
* * *
[참가자 이강현 확인…… 확인 완료. ‘차원의 섬’으로 이동합니다.]
[참가자 이강현의 위치를 설정합니다…… 설정 완료.]
[참가자 이강현에게 배정된 구역은 1-1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쿠오오오오!
몸이 엄청난 속도로 하강하는 감각이 전해져 온다.
‘이건 대체……?’
아래를 본 강현은 자신이 다차원 섬의 어느 지점을 향해 낙하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강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지상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광경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었다.
“미친!”
그가 기겁하며 천광의 날개를 발동하려던 찰나.
[참가자의 안전한 낙하를 위한 낙하 마법을 가동합니다.]
키이이잉-
강현의 등뒤로, 푸른 에테르로 이루어진 낙하산이 나타난다.
스으으…….
빠르게 줄어드는 속도를 본 강현은 뒤늦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깜짝 놀랐잖아.”
낙하산이 생긴 덕에 그는 한결 여유를 가지고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제1 구역인 정글 지형이 천천히 가까워지는 게 보인다.
숨이 막힐 것처럼 습하고, 빽빽할 정도의 밀림이 우거진 정글.
이제 지상에 착지하게 되는 순간, 미션이 시작되는 것이다.
‘저기 말입니다.’
-뭐지?
‘저랑 최상위 종족들과의 격차가 어느 정도일 거 같습니까?’
-흠, 아직은 좀 나지만…… 그래도 최근 많이 따라잡았다고 본다. 설령 정면에서 마주친다고 한들, 도망을 칠 정도는 될 거다.
자신을 향한 예상치 못한 고평가에 강현이 눈을 깜빡인다.
항상 아직 멀었다고 말해오던 엔딜 펠란이 이런 말을 해오다니.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래요? 아직 멀었다고 할 줄 알았는데.’
-원래라면 그렇게 말했겠다만, 적흑의 아티팩트들이 컸지. 그리고…….
‘그리고?’
-아니다, 나중에 말해주도록 하지.
말을 얼버무리는 엔딜 펠란.
강현은 굳이 되묻지 않았다.
그가 아는 엔딜 펠란은 캐묻는다고 말해주지 않았기도 했을뿐더러, 지상이 코앞까지 다가와서였기도 했다.
턱-
이어서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메시지가 연달아 떠오른다.
[실시간 시청자 반응을 개방합니다.]
-강하~
-ㅎㅇㅎㅇ
-안녕하세여
…….
채팅창을 보자, 본격적으로 미션이 시작됐다는 게 실감된다.
그리고 그때였다.
타타타탁-
느닷없이, 강현이 전방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나간 것은.
-??
-지금 머 하는 거임?
-오자마자 또 이상한 행동하네 ㅋㅋㅋ
그 뜬금없는 행동에 시청자들의 갈고리가 연달아 나타난다.
엔딜 펠란 역시 궁금한 듯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설마 아무 생각 없이 이러는 건 아니겠지.
당연하게도, 강현은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러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이번 미션에서도 어김없이 미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으므로.
‘엘이 마지막에 했던 말에 핵심이야.’
엘은 스쳐 지나가듯 말했을 뿐이나, 강현은 그 말을 결코 놓치지 않았고.
간파할 수 있었다.
‘이번 미션의 핵심은 ‘동맹’이다.’
인간종으로서 이번 미션에서 치고 나가려면, 설사 얻는 기여도를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위해서라면,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을 모아야 했다.
‘최대한 빨리 다른 인간종들을 찾는다.’
[스킬, 천광의 날개[Lv.2]를 발동합니다.]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강현의 신형이, 거침없이 정글을 헤치며 나아갔다.
쿠오오-
정글을 헤치며 날아가는데, 메시지가 나타난다.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남은 시간: 0일 2시간 0분]
남은 시간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이 시간 내로 핀 포인트를 점령해야 한다는 건가. 시간이 꽤 빡빡한데.’
제1 구역을 통해 이번 미션에 대한 감을 잡아보라는 걸까?
주어진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하기야, 핀 포인트도 24개고 참가자도 24명이니까. 이번에는 인당 하나씩 점령해보라는 걸 수도 있겠네. 일종의 맛보기로.’
-그래서, 대체 무슨 생각이냐. 이번에는 무슨 꼼수를 부리려는 거지?
강현이 짧게 대꾸했다.
‘별 거 없습니다. 어차피 이 미션에서는 별 꼼수를 부릴 것도 없는데요, 뭐.’
-흥, 매 미션마다 갖가지 수를 쓰던 네놈이 할 소리는 아닐 텐데.
‘이번에는 진짭니다.’
빈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미션의 내용은 더없이 심플했다.
기여도를 쌓아 무력을 회복하고, 회복한 무력을 통해 다른 참가들에게서 핀 포인트를 쟁취한다.
단순하면서도, 명백히 힘의 격차를 나눌 수 있는 내용의 미션이었다.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초반이 중요해.’
초반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
다른 참가자들이 어떻게 해나갈지를 골똘히 고민하는 지금.
미션의 핵심을 꿰뚫어 전략을 수립하고, 수립한 전략을 이행하고자 재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미션의 내용이 간단한 만큼, 다른 참가자들 역시 금세 행동에 나서겠지만 말이다.
‘핀 포인트 점령을 못 하면, 본신의 무력이 얼마나 강하든 탈락해버린다는 건 크지.’
그리고 그렇기에 다른 참가자와의 동맹, 즉 팀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흠…… 초반부터 팀을 맺은 적은 없지 않았나? 의외로군.
엔딜 펠란의 말대로, 그가 더 비욘드를 하면서 초반부터 팀을 맺은 적이 전무했다.
예선 두 번째 미션에서는 미션 중후반부에 들어서고 나서야 레이센 란과 동맹을 맺었고, 본선 첫 번째 미션에서도 중반이 넘은 뒤에야 사도천과 동맹을 이루었었으니까.
그랬던 그가 초반부터 팀을 이루려고 한다는 것은, 미션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걸 뜻했다.
엔딜 펠란은 이제 그가 최상위종을 만난다고 해도 도망은 칠 수 있을 거라고 했었으나, 고작 그 정도로는 이 미션에선 살아남을 수 없다.
‘최소 2인, 웬만하면 3인 팀으로 가야 해.’
무력이 모자라는 인간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인간종들과 팀을 맺어서, 어떻게든 다른 참가자들을 찍어 눌러야 했다.
쿠오오-
그걸 위해 이토록 빨리 날개짓을 하는 것이었고.
-음…… 팀을 맺으면 불리하지 않겠느냐? 기여도를 상당히 낮게 주던데.
‘확실히, 기여도랑 시청자들 투표에도 지장이 있기는 하겠죠.’
팀을 맺어서 활동하는 이상, 기여도도 분배해서 얻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터였다.
-아, 방장이 무슨 생각하는 건지 알겠다
-ㄹㅇ? 머임?
-나도 알 거 같음. 팀 맺으려는 거 같은데
-ㅇㅇㅇ그건 거 같음.
-아 그러네. 팀 맺으려고 빨리 이동하는 거네
-……팀 맺는 거 별론데
-그니깐. 이강현은 혼자 해야 제맛인데 ㅡㅡ
…….
지금도 저들끼리 떠들어대는 시청자들을 보면, 팀을 이룬다는 추측만이 나왔는데도 불만을 성토하는 시청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허나 그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의 비위를 맞추다가 탈락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나은 데다가.
그의 머릿속에는 괜찮은 계획이 있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계획이.
그런 생각을 하던 강현이 눈을 치켜떴다.
가까운 전방에 희끄무레한 인영, 외계종이 보였기 때문이다.
외계종은 허우적거리며 정글 사이를 걸어나가고 있었는데, 직접 보니 화면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컸다.
키가 가히 3m는 되어보인 것이다.
휙-
그때 외계종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퀘엑!
강현을 보고는 곧장 입에서 희색빛의 촉수다발을 날려온다.
슈슈슉!
괴이하게 생긴 눈알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혐오스러운 생김새의 촉수들이었다.
‘누가 외계종 아니랄까봐, 더럽게 흉측하게 생겼네.’
눈살을 잔뜩 찌푸린 강현은 상태창을 불러냈다.
이름 : 이강현
레벨 : 35
고유 특성 : <광검제>
보유 스킬 : 광검[Lv.5], 섬광[Lv.4], 순보[Lv.2], 질주[Lv.2], 참격[Lv.2], 휘광[Lv.2], 천광의 날개[Lv/1], 광야참[Lv.1], 광명의 눈[Lv.2]
…….
‘35라.’
35.
그 숫자를 본 순간, 다가오는 촉수다발에 맞서 어떤 스킬로 대처하면 좋을지가 계산된다.
빠르게 계산을 끝낸 강현이 검을 휘둘렀다.
[스킬, 광야참[Lv.1]을 발동합니다.]
[1/5의 마력을 소모합니다.]
콰우우욱!
강현의 검에서 뿜어진 백색 검기가 단숨에 촉수다발을 집어삼켰다.
콰쾅! 고오오-
폭발음이 터지며, 자욱한 먼지가 정글을 뒤덮는다.
“@#$?”
잠깐 흐려진 시야.
불안함을 느꼈는지, 외계종이 다급히 뒤로 물러나려는 움직임을 취한다.
그러나 강현이 한 박자 빨랐다.
[스킬, 순보[Lv.2]를 발동합니다.]
광야참과 촉수다발이 폭발을 일으키자마자, 순보를 연이어 발동하여 외계종의 지척까지 접근했던 것이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 덕분에 그는 외계종이 미처 몸을 빼기 전에 기습적으로 파고들 수 있었고.
[스킬, 섬광[Lv.4]을 발동합니다.]
이어지는 섬광을, 외계종은 버텨내지 못했다.
서걱-
퀘에에에엑!
목이 그대로 꿰뚫린 외계종이 쓰러진다.
“@# ^# @#……!”
외계종이 표독스러운 샛노란 눈을 부라리며 무어라 괴성을 질러댔으나, 번역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그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뭐라는 거야.”
푹-
강현의 검이 다시 번뜩이며 외계종의 목을 베었다.
완전히 숨이 끊어진 외계종은 이내 회색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스아아…….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걸 잠시 보는 와중, 메시지가 떠오른다.
[10pt를 획득합니다.]
“후, 그럭저럭 상대할 만은 하네.”
무력의 절반이 제한되기는 했어도, 방금 같은 외계종 한두 개체는 무난하게 쓰러뜨릴 수 있을 걸로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설령 더 강한 외계종이 등장한다고 해도, 아니, 최상위종 참가자가 나타나도 당장에는 문제가 없었다.
‘무력은 제한됐지만…….’
품을 내려다본 강현이 입꼬리를 올렸다.
방금 상태창을 확인한 직후 품을 한 번 뒤적이는 과정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레벨이 35로 떨어진 것과는 다르게, 그가 보유하고 있는 아티팩트들에는 제한이 걸리지 않았다는 걸.
손끝에 느껴지는 아티팩트들의 고고한 에테르가 그것을 증명했다.
-호오, 역시 그랬군. 그러면 초반에는 최상위종 참가자들과 싸워도 할 만하지 않겠나?
‘그건 그렇겠지만…… 일단 팀원들을 모으기 전까지는 신중하게 가야겠죠.’
-흥. 쓸데없게 조심스럽구나.
‘미션은 미션이니까요.’
머리를 굴리던 강현이 다시 발걸음을 움직이려다가…… 잠깐 멈칫한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에테르를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719/8,000)]
연기로 화해 사라진 외계종이 있던 자리에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여태까지의 본선들과는 달리, 이 미션에서는 각 차원의 종족들로부터 에테르를 얻을 수 있는 듯했다.
스아아-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724/8,000)]
에테르 흡수를 끝마친 강현은 다시 날개를 펼쳐 정글 사이로 나아갔고, 1시간 가량을 날아간 끝에 볼 수 있었다.
가로와 세로, 높이의 길이가 5m 정도 되는 피라미드 모양 건축물을.
[1-1번 핀 포인트를 발견했습니다.]
메시지를 통해 강현은 저 피라미드가 핀 포인트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곧장 핀 포인트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또 다른 문구가 나타난다.
[1-1번 핀 포인트를 점령하시겠습니까?(Yes/No)]
강현이 지체없이 Yes를 선택했을 때였다.
키이이이잉-
돌연 강현의 손바닥이 닿은 피라미드의 벽면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나오더니.
[참가자 이강현(1)이 1-1 핀 포인트를 점령 중입니다…….]
[지도에 1-1 핀 포인트의 위치가 표시됩니다.]
[남은 시간 : 0일 0시간 30분]
강현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보이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한 참가자가 핀 포인트의 점령을 시도한다면, 근방의 다른 참가자들에게 이 같은 메시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주어진 시간이 2시간인데 30분이나 걸린다고? 맛보기라서 이런 건지 원래 이런 건지는 몰라도…… 점령하는 데에 시간이 너무 짧게 걸리는 것보다는 낫네.’
점령하는 데에 시간이 짧다면, 지금은 아니어도 차후에는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누군가 핀 포인트를 점령할 기회만을 노리며 근처에 숨어있다가, 남들이 싸우는 틈을 타 핀 포인트를 점령하고 도망가버린다면 곤란할 터였다.
‘흐음, 혹시 모르니까 점령되는 30분 동안은 기감을 끌어올려야겠군.
맛보기라고 생각은 하고 있어도, 가만히 있기에는 뭔가 찜찜했다.
고오오오-
강현이 기감을 가득 끌어올리는데, 시청자들의 채팅이 빗발친다.
-ㅋㅋㅋ우리 방장 뭐 함?
-누구 올까 봐 잔뜩 기감 세우고 있네ㅋㅋㅋ
-ㅋㅋ아직도 감 잡게 도와주는 거라는 걸 눈치 못 챈 건가?
-방장님, 안 그래도 돼용. 진짜는 두 번째 차원부터임.
-ㅇㅇㅇ 첫 번째 차원은 걍 맛보기임.
-편하게 있어도 됨ㅎㅎ
그를 머쓱하게 만드는 웃음기 가득한 채팅들이었다.
“……크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맛보기일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놀림을 받자 머쓱했다.
강현이 뒤통수를 긁적이는 사이, 시간은 금세 흘러갔고.
[남은 시간 : 0일 0시간 0분.]
[참가자 이강현이 1-1 핀 포인트의 점령을 완료했습니다.]
이윽고 핀 포인트의 점령을 끝마쳤다.
[100pt를 획득합니다.]
[일정 이상의 기여도를 획득하셨습니다.]
[제한된 무력의 20%를 해제합니다.]
쿠오오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연이어 떠오르는 메시지들.
남은 시간을 보자, 고작 20분 정도가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뭐 할 시간도 없네.
제1 구역에서의 활동은 여기서 끝이니, 제2 구역에서부터 제대로 해보라는 거겠지.
‘괜히 빨리 이동했네.’
강현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크흐흐, 잔머리 굴리다가 꼴 좋게 됐구나!
‘……다음 차원부터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흐흐, 탈락하기 싫다면 그래야지.
강현은 잠시 통쾌하다는 듯이 말해오는 엔딜 펠란과 투닥거렸고.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남은 시간: 0일 0시간 0분]
얼마 지나지 않아, 제2 구역으로의 소환이 시작됐다.
* * *
제2 구역은 엘이 설명했던 대로, 뜨겁고 건조한 사막 지형이었다.
휘이이이-
숨이 막혀오는 열풍에 얼굴을 구기며 강현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남은 시간: 2일 23시간 59분]
제1 구역은 2시간이더니, 제2 구역으로 넘어오자마자 3일이 주어졌다.
지금부터가 진짜 미션이라는 소리였다.
본격적인 미션도 시작됐겠다, 강현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날개를 펼쳐 빠르게 사막을 가로질렀다.
이번에도 목적은 아까와 똑같이, 가급적 빨리 인간종 참가자를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를 날았을 때였다.
[참가자 하르크마타가 2-4 핀 포인트를 점령 중입니다…….]
[지도에 2-4 핀 포인트의 위치가 표시됩니다.]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다.
재수 좋은 참가자가 찾은 걸로 보였다.
‘지도.’
강현은 곧바로 지도를 펼쳐 2-4 핀 포인트를 찾았고, 그곳을 향해 전속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거의 다 도달했을 때였다.
쾅! 콰쾅!
핀 포인트 부근에서부터, 굉음들이 터져나오는 게 아닌가.
“……!”
기척을 죽인 채 굉음의 근원지로 이동한 강현은 볼 수 있었다.
“으하하하! 웬 하찮은 인간종 따위가 이 몸을 막고자 찾아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연신 강기가 서린 팔을 휘두르는 온몸이 시퍼런 참가자와.
“크윽!”
그에 맞서 푸른 검을 휘두르는 인간종, 세르반테를.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군.
엔딜 펠란의 말대로였다.
콰쾅! 콰-앙!
“크헉!”
시퍼런 참가자에게, 세르반테가 처참하게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깨닫자마자.
스윽-
강현은 놈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음?”
세르반테를 몰아붙이려던 놈이 강현을 보고는 경계심 서린 얼굴을 해보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흐흐, 또 인간종인가.”
강현의 종족을 확인하고는 삽시간에 표정이 풀린다.
“네놈 따위가 달려든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듯싶으냐? 어디 한 번 들어와봐라! 네놈들 따위는 한꺼번에 상대해도 상관없으니까!”
명백한 비웃음 어린 도발.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분노를 느끼게 할 법한 도발이었지만.
그 도발에, 강현은 별도의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품을 뒤져.
촤라라라라락-
아르크트, 그리고.
진홍빛 불꽃이 담긴 적흑의 투구와 망토를 꺼내, 묵묵히 무장을 마칠 뿐.
“……!”
범상치 않은 아티팩트라는 걸 눈치챘는지 놈의 얼굴이 굳은 순간이었다.
“……간다.”
진홍빛 화염과 칠흑의 갑주, 순백의 빛을 두른 강현의 몸이, 포탄처럼 내쏘아졌다.
사방에 모래사장이 펼쳐진 가운데, 뜨거운 열풍이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지만.
강현은 거침없이 그것들을 뚫고 쇄도했다.
“뭘 그리 덕지덕지 꺼낸지는 몰라도…… 수작부리지 마라!”
놈의 파란 손날에서 더 시퍼런 강기가 피어오른다.
강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힘이 절반이나 제한됐는데도 강기를 꺼낸다고?’
만전의 상태에서도 아직 강기, 광검의 진화 스킬을 습득하지 못한 그였다.
한데 힘의 절반만으로도 강기를 꺼내는 걸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 이미 놈에게 달려들고 있는 이상, 그에게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뭐…… 알아서 상쇄시켜 주겠지. 일단 간다.’
오로지 아르크트 1단계와 적흑의 투구, 망토 등, 자신이 가진 힘들을 믿고 부딪쳐 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허억…… 헉…….”
저 옆에서 헉헉대고 있는 세르반테가 아직 전투에 참가할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스킬, 광명의 눈[Lv.2]을 발동합니다.]
이윽고 광명의 눈이 발동됨과 동시에, 놈의 새파란 강기와 강현의 순백의 검이 맞부딪쳤다.
쾅! 쾅! 콰쾅!
첫 번째 폭발음을 시작으로, 연이어 충돌이 이어진다.
‘생각보다는…… 더 할 만하군.’
분명 강기와 검기의 차이는 매우 컸다.
그러나 전신의 방어력을 올려주는 아르크트 1단계가 충격을 상쇄해 주고, 광명의 눈으로 놈의 허점을 훤히 볼 수 있어서일까.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버틸 만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쿠오오-
강기에 맞부딪치는 광검을 부서지지 않게 하고자 마력을 아낌없이 투입하고 있긴 했지만, 그것 또한 나쁘지 않았다.
“이놈……. 어떻게 강기를 막아내고 있는 거냐……!”
강기 어린 손을 마구 내지르는 놈도 마찬가지로, 강기를 유지하는 게 버거워 보였으므로.
깜빡-
지금도 보면, 강기가 일시적으로 꺼졌다가 놈이 이를 악문 뒤에야 다시금 손에 깃든다.
장시간 강기를 지속할 수는 없다는 증거였다.
그때 얼굴을 일그러뜨린 놈이 손을 내찔러온다.
여태까지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시퍼런 강기가 서린 손날.
그런데.
‘음?’
강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손날을 내밀어오는 놈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마치 필살의 한 방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랄까.
‘뭔가를 준비하는 건가?’
그의 추측은 현실이 되었다.
평범하게 다가오던 손날의 강기가 돌연 거대한 푸른 주먹의 형상을 이루더니.
쿠콰콰콰-
강현에게 쏘아진 것이다.
명백히 위협적인, 놈이 심혈을 기울였을 한 수.
“강현!”
뒤편에서 세르반테의 외침이 들려온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는 광명의 눈을 통해 다가오는 강기의 주먹만을 침착하게 주시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건 다음 순간이었다.
슈와아아-
적흑의 망토와 투구가 무시무시한 화염을 머금더니, 강현이 어깨를 틀어 정면에 망토를 펄럭이자 그대로 화염을 뿜어낸 것이다.
콰아아앙!
화염과 강기가 상쇄되면서 엄창난 소음이 일어난다.
후우욱-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
그 속에서, 강현의 입꼬리가 조용히 올라간다.
‘쏠쏠하군.’
그는 궁전 최상층에 있던 이틀 동안, 놀고만 있던 아니었다.
‘오히려 바쁜 시간이었지.’
그는 그곳에서 가진 것들을 점검하고, 앞으로에 대한 계획을 세웠으며, 새로 얻은 것들을 손에 익히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적흑의 천사가 애용하던 화염이 그 성과 중 하나였다.
비록 아티팩트의 원주인인 ‘적흑의 천사’가 쓰던 위력에는 한참 모자란 데다가, 강현이 아직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저놈이 내쏜 강기의 주먹을 막아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화아아악-
상쇄의 여파로, 강현과 퍼런 놈의 몸이 한꺼번에 밀려난다.
밀려나는 놈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당혹과 경악이 담긴다.
“미, 미친!”
보통의 전투였다면 잠깐의 소강 상태가 벌어질 게 틀림없는 밀려남.
하나 강현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스킬, 순보[Lv.2]를 발동합니다.]
[스킬, 순보[Lv.2]를 발동합니다.]
두 번의 순보를 통해, 그의 신형이 퍼런 놈의 코앞에 나타났다.
화르르륵!
강현이 망토를 펄럭임에 따라 다시 한번 진홍빛 화염이 놈을 덮친다.
“크윽!”
눈을 부릅 뜬 놈 역시 다시 주먹 형상의 강기로 맞받아친다.
쿠오오오-!
맹렬하게 부딪친 화염과 강기가 서서히 상쇄되어 간다.
얼핏 본다면 방금 전과 다를 것 없어 보였으나.
이번에는 명확히 다른 점이 있었다.
화염과 강기가 부딪치며 생긴 틈을 노린 강현이.
[스킬, 순보[Lv.2]를 발동합니다.]
[스킬, 참격[Lv.2]을 발동합니다.]
순백의 검을 내세운 채, 놈에게 기습적으로 파고든 것이다.
“……!”
어찌나 갑작스러웠는지, 놈이 반 박자 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놈!”
그렇게 외치는 놈에게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쾅! 콰쾅!
강현의 기습으로 시작한 두 번째 충돌.
[스킬, 섬광[Lv.4]을 발동합니다.]
그 두 번째 충돌은, 놈의 어깨에 혈선이 그어지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
핏-
“크아아악!”
다급하게 뒤로 물러난 놈이 죽일 기세로 강현을 쏘아본다.
‘흐음, 할 만하군.’
강현은 그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놈을 훑어보았다.
[하르크마타, 10위.]
온몸이 파란 걸로 보아 외계종으로 추정되었고, 순위는 꽤 높았다.
‘종족 특성은…… 아마 주먹 형상 강기를 쏜 것과 연관이 있겠지.’
아마 에테르를 원하는 형상으로 가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흠, 이 몸은 기억난다.
‘뭐가 말입니까?’
-저 시퍼런 놈을 말하는 거다. 네놈과 음침한 놈이 모의차원전쟁에서 짓밟지 않았느냐.
‘음…….’
그 말을 듣고 보니, 지난번 모의차원전쟁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기억 안 나는 거냐?
‘……그때 워낙 많이 쓰러뜨렸어서 그런지 잘 안 나네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참가자를 탈락시켰던 강현과 청인족이었다.
그걸 고려한다면 눈앞의 하르크마타의 이름이 낯선 것도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강현! 괜찮나?”
세르반테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시선은 여전히 하르크마타에게서 떼지 않은 채였다.
“당신이야말로 괜찮습니까?”
“자네가 막아준 덕에 그럭저럭 살 만해졌네만…… 방금 보여준 그 화염들은?”
세르반테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자신과 더불어 임무에 투입되었던 세르반테이니 만큼, 적흑의 투구와 망토를 알아본 거겠지.
“……어쩌다 보니 얻게 됐습니다.”
“어쩌다 보니? 폭발에 휩쓸렸을 때 얻게 된 건가?”
“예. 이상한 장소로 튕겼더군요.”
짧게 대답하던 강현이 눈을 치켜 떴다.
‘응?’
채팅창을 보자, 자신이 얻은 아티팩트에 놀란 건 비단 세르반테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음? 저거 적흑의 천사가 쓰던 거 아님? 어제까지 권역에서 난리가 아니었자너
-그니깐ㅋㅋ 신계 인간종, 석인들, 고블린들 수십이 죽어나갔다는데
-그걸 방장이 가져갔었네ㅋㅋㅋㅋㅋ
-가짜 아님?
-ㄴㄴ 보니까 아직 손에 안 익어서 그렇지, 진짜인 거 같음.
-ㅋㅋㅋㅋ그럼 진짜 개대박이네
-와;; 미쳐따리!!!!
…….
아티팩트를 알아본 시청자들의 채팅들이 끝도 없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강현은 채팅창의 분위기를 유심히 살폈다.
자신이 적흑의 아티팩트들을 가져갔다는 것.
그게 고까운 시청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대부분 놀라기는 했어도 딱히 안 좋은 마음을 품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크흐흐……. 반응도 좋은데, 왕관까지 꺼내보지 그러나?
엔딜 펠란이 클클댄다.
‘이 분위기 안 보입니까? 적흑의 투구랑 망토만 꺼냈는데도 이 정도인데 왕관까지 꺼내면 진짜 난리납니다.’
-그러니까 하는 소리다.
‘…….’
누가 악마 아니었달까 봐, 악질 그 자체인 사악함이 느껴진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강현이 덧붙였다.
‘게다가 그건 이 자리에서 쓸 게 못 되지 않습니까.’
궁전의 최상층에 있는 동안 왕관의 쓰임새는 알게 됐다만, 이 자리에서는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흐흐, 설마 진지하게 받아들인 거냐? 그냥 해본 소리다.
엔딜 펠란의 말을 한 귀로 흘린 강현은 시선을 하르크마타에게로 다시 돌렸다.
전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으니까.
“…….”
하르크마타는 무언가 기회를 엿보고 있는지,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놈을 주시하며 강현이 입을 열었다.
“세르반테, 몸이 괜찮아졌다면 동맹을 맺는 게 어떻습니까?”
“동맹? 나야 좋지! 몸 상태도 문제가 없네! 어떻게 맺는지 알기만 하면-”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강현이 입술을 달싹였다.
엘에게 설명을 들은 적은 없었으나, 그간 더 비욘드를 해온 짬밥이 있었다.
“……세르반테와 동맹을 맺겠다.”
팟-
[참가자 세르반테에게 동맹을 제의했습니다. 참가자 세르반테가 수락한다면 동맹을 이루게 됩니다.]
“수락했네!”
[참가자 세르반테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40%의 기여도를 획득하게 됩니다.]
[최대 3명까지 동맹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인원(2/3)]
세르반테와 동맹이 맺어졌음을 확인한 강현은 곧장 달려나갔다.
동맹도 맺었겠다, 더 이상 멀뚱히 서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바로 가죠!”
“화끈하군. 알겠네!”
강현의 망토가 휘날리고, 뒤따라 온 세르반테의 검이 허공을 베어내린다.
화르르륵!
쿠오오오-
그에 따라 생성된 화염과 푸른 검기의 소용돌이가 하르크마타를 덮쳐간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크으윽!”
하르크마타가 느닷없이 강기를 돗자리의 형상으로 만들어 그 위에 올라타더니.
슈슉-
“두고 보자!”
짓씹듯 내뱉은 외침을 끝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기 시작한다.
강현은 그제야 놈이 왜 이곳저곳을 살폈는지 눈치챘다.
‘도망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나……. 저런 속도면 못 잡겠는데.’
10m, 20m, 50m…….
강현은 하르크마타의 속도를 보고는 쫓아갈 마음을 빠르게 접었다.
자신이야 천광의 날개를 펼친다면 따라갈 수는 있겠지만, 정작 서포트해주어야 할 세르반테는 쫓아올 수단이 없었다.
또, 추격전을 펼치는 동안 다른 참가자들을 만날 수도 있다는 변수가 존재하기도 했고 말이다.
‘여기 있는 핀 포인트도 점령을 해야 되고. 아쉽긴 하다만…….’
적흑의 시리즈의 화염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하고, 세르반테와 동맹을 맺었다는 점에서 만족하기로…….
그때였다.
“세르반테, 뭘 꺼내려는 겁니까?”
세르반테가 품을 뒤져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는 걸 보고 강현이 물었다.
“흐흐, 저놈을 붙잡을 아티팩트지!”
“예?”
이어서 세르반테가 꺼낸 물체를 본 강현이 눈을 깜빡였다.
[천둥을 묶는 밧줄]
한눈에 보기에도 진귀해 보이는 밧줄이 세르반테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 밧줄은……?”
“으흐흐, 임무가 끝나고 소환되기 직전 알렉시스에게 받았지! 잘 보게나!”
세르반테가 밧줄을 휘둘렀다.
촤라라라락-
그러자 밧줄이 끝도 없이 늘어나며 이제는 점처럼 보이는 하르크마타에게 쭉 뻗어가더니, 놈의 발목을 잡아챈다.
“……크아악!”
바람에 실려오는 하르크마타의 비명.
“으하하하! 두 번밖에 못 쓰기는 해도, 반경 1㎞ 내에서 도망치는 놈들을 잡아채는 아티팩트라네! 어떤가, 이 정도면 쓸 만하지?”
씩 웃어보인 세르반테가 물었고.
“……그러네요. 이러면 말이 달라지죠.”
강현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럼, 가볼까요?”
“오우, 좋네!”
* * *
[아…… 하르크마타 참가자, 꼼짝없이 붙들려 끌려갑니다!]
[몸상태가 정상이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겠지만, 정신이 구석에 몰린 채 도망에만 열중한 나머지 붙잡힌 모습이네요! 결국 이강현 참가자의 손에 탈락하고 맙니다!]
[그사이 세르반테 참가자가 핀 포인트의 점령을 완료함으로써, 제3 구역으로 넘어갈 기반을 다진 인간종 동맹입니다!]
[당연하게도, 핀 포인트 하나의 점령에 그치지 않고 곧장 다른 참가자들을 탐색하는 이강현 참가자네요! 이번 미션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눈을 돌릴 수가 없겠는데요!]
-각성으로 차원최강 8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