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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준비 (34/51)

4장 준비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2,002/4,000)]

2,000.

그게 단지 ‘핵’을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강현이 얻을 수 있는 에테르의 양이었다.

다만 만약 2,000 에테르를 일시적으로 주는 것만이었다면, 강현은 딱 ‘나쁘지 않네’라고만 생각했을 터였다.

분명 2,000 에테르는 엄청난 양이지만, 그로 인해 딱히 극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기에.

하나 ‘핵’이 그에게 제공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핵’을 지니고 있을 때에 한해, 일시적으로 근력이 10 상승합니다.]

[‘핵’을 지니고 있을 때에 한해, 일시적으로 민첩이 10 상승합니다.]

…….

단순히 ‘에테르의 양’만을 올려주는 게 아니라, 무려 능력치의 상승까지 가져다준 것이다.

1레벨에 능력치가 2씩 상승하니, 총 40이면 거의 20레벨을 올려주는 효과인 셈이었지만.

“능력치는 왜……?”

정작, 강현은 다소 어리둥절한 얼굴을 해 보였다.

에테르의 양과 능력치가 동시에 올랐으니 그에게는 더없이 좋은 일이었지만, 그 이유까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역시 이번에도 그 의문을 해소해 준 건 엔딜 펠란이었다.

-무력만 강하고 ‘격’이 낮은 놈은 있어도, ‘격’만 높고 무력이 낮을 수는 없다. 아마 네놈의 상승한 ‘격’에 맞추어 무력도 일부 끌어 올려진 모양이군.

“아.”

그의 말을 듣자 이해가 됐다.

‘핵’을 손에 쥠으로써 그가 얻을 수 있는 건 일시적인 ‘격의 상승’.

그런데 엔딜 펠란의 말에 따르면, ‘격의 상승’이라는 건 단순히 에테르의 양만 냅다 많아진다고 되는 게 아닌 듯했다.

‘그에 따른 충분한 무력까지 동반되어야 한다는 건가. 그건 몰랐네.’

새로이 알게 된 사실에 강현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성장해 나갈수록 더 많은 정보들이 그에게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뭐가 됐든 하나만은 확실했다.

“상태창.”

팟-

레벨 : 56

고유 특성 : <광검제>

보유 스킬 : 광검[Lv.9], 섬광[Lv.7], 순보[Lv.4], 질주[Lv.3], 참격[Lv.3], 휘광[Lv.3], 광야참[Lv.2], 섬멸의 광창[Lv.2], 하늘을 덮는 빛의 그물[Lv.1], 강림[Lv.1], 여명의 눈[Lv.4]

능력치 : 근력[Lv.26+10], 민첩[Lv.44+10], 체력[Lv.29+10], 마력[Lv.25+10]

노인에게서 받은 [email protected]차원의 핵이, 그에게 있어 더없이 쏠쏠하다는 것.

여기서 더욱 고무적인 건, 그가 능력치를 상승시킬 방법이 [email protected]차원의 핵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여기에 강림, 아르크트의 2단계, 나무토막까지 더해지면…….’

괴물 같던 녹빛의 오크, 그락크의 신체 능력에도 결코 밀리지 않으리라.

게다가 그에게는 모방의 가호와 혈룡검, 역행의 모래시계까지 남아있었다.

그것들까지 고려한다면, 설령 본신의 힘을 모두 해제한 그락크가 달려든다고 해도 해볼 만하리라.

그게 의미하는 바는 컸다.

‘아르크트 2단계를 시동하지 않고는 밀리던 내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다 이거지.’

비록 휘하 차원의 운영을 멍청하게 하는 바람에 떨어지기는 했어도, 그락크는 서브 미션을 5위로 통과했던 최상위권 참가자.

그것도, 오로지 ‘무력’만으로 5위를 쟁취했던 참가자였다.

한데 그 그락크를 상대로, 최하위종인 인간의 몸으로 호각을 예상한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현은 무심코 ‘핵’을 꽉 쥐었……는데.

그때였다.

슈와아아아-

돌연 영롱한 빛이 다시 쏟아져 나옴과 함께.

“어?”

파파팟-

그가 들고 ‘핵’에서부터, 어디서 많이 본 병사 셋이, 튀어나와 한쪽 무릎을 꿇은 것은.

‘저 셋은 분명…….’

통로를 가로질러 노인의 대전에 들어섰을 때, 왕좌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던 병사들이 틀림없었다.

그걸 본 강현은 기억해 냈다.

[email protected]차원을 벗어나기 직전, 노인의 손짓에 따라 대전에 있던 것들 중 ‘일부’가 ‘핵’ 안으로 빨려들어 갔었던 걸.

‘저 병사들도 빨려들어 왔었구나.’

강현은 조용히 예를 취하고 있는 병사들을 훑어보았다.

처음 봤을 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이성과 이지를 잃은 채 그에게 달려들던 병사들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얘들도 잘 안 죽으려나.”

그에게 달려들어 산화했던 병사들은 그을리는 곳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이상 죽지 않았었다.

만약 눈앞의 병사들도 그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면, 앞으로 적지 않은 도움이 되어줄 터였다.

-제정신이 아닌 데다 ‘격’까지 빼앗긴 놈들도 그랬으니, 저놈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거기까지 강현이 입가에 짙은 미소를 머금는다.

-뭔가를 하려는 것이냐?

“아, 별건 아닙니다. 그냥, 기왕 눈앞에 있는데 움직여나 보려고요. 어디 보자…….”

강현은 천천히 지시를 내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봐.”

얼핏 본다면 간단한 지시.

그러나 이 지시를 병사들이 이행하는지를 통해, 그들이 강현의 말을 따르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철컥-

그리고 세 병사들이 일제히 일어나면서, 강현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됐네.’

그는 그로부터 다시 앉으라거나 거실을 한 바퀴 돌아보라는 등, 몇 가지 지시를 추가로 내려보았고.

강현은 병사들이 말을 하지는 못해도, 그의 말을 알아듣기는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무슨 지시를 내리든 간에, 로봇처럼 그 지시를 충실히 따라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자리가 마땅치 못해 무력까지는 점검하지 못한다는 점이랄까.

거실에서 치고받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아무래도 병사들의 전투력을 확인하는 건 제대로 된 자리가 마련된 이후로 잡아야 할 듯했다.

‘근데 어떻게 돌려보내지?’

강현이 잠시 ‘핵’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에테르를 한번 불어넣어 봐라.

엔딜 펠란이 말했다.

강현은 그 말대로 ‘핵’에 에테르를 불어넣어 보았고, 과연.

슈와아아-

환한 빛이 일더니, 병사들이 다시금 ‘핵’에 빨려들어 간다.

‘에테르를 불어넣으면 되는 건가.’

에테르를 불어넣자 되돌아가는 걸 보니, 아까 저들을 불러냈을 때도 무의식중에 에테르가 흘러들어 간 것으로 보였다.

슈우우-

병사들이 ‘핵’에 되돌아감에 따라 빛이 멎는다.

-괜찮은 걸 얻은 듯하군.

‘그러게 말입니다.’

강현도 동감하는 바였다.

에테르의 양을 늘리는 것에 더해 능력치를 대폭 상승시켜 주질 않나, 불사에 가까운 병사들까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구성이었다.

물론, 아쉬운 게 없는 건 아니었다.

노인에게서 받은 ‘핵’이 엄청난 성능을 가졌다는 건 틀림없지만, 사용하려면 직접 쥐고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단점은.

-그건 균형의 섬이나 <초월계>에 있을 장인들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군.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뛰어난 장인이라면 그걸 목걸이나 반지 같은 장신구의 형태로 가공할 수 있을 거다.

엔딜 펠란의 말로 인해 없어질 여지가 생겨났다.

‘어차피 장신구로 못 만들더라도 쓸 거였지만.’

강현으로 하여금 한 손에 ‘핵’을 쥐고 싸우는 걸 감수하게 만들 만큼, ‘핵’의 가치는 차고 넘쳤다.

노인이 남긴 정보를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핵’을 품에 갈무리한 강현은 곧장 백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S급 평가 신청이 통과됐는지, 통과됐다면 날짜는 언제인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엇, 딱 메시지 보내려고 했는데. S급 평가 신청이 통과됐어요. 지난번처럼 공증을 위해 협회에서 사람이 나올 거긴 한데, 원한다면 내일부터 게이트 공략에 들어갈 수 있다네요.

“……!”

때마침 백아영이 말해오는 게 아닌가.

그가 원한다면, 내일 당장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다고.

-참고로 내일 바로 솔로 클리어에 들어간다고 치면, 평가가 끝날 거라고 예상되는 기간은 2주일 정도예요.

2주일.

더 비욘드의 소환이 없었다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기간이었으나, 지금의 그에게는 시간을 더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그 시간을 더 줄이는 것도 가능합니까?”

-가능은 해요. 저희가 2주일을 말한 건 당신이 게이트들을 클리어하는 게 그 정도는 걸릴 거라고 예상한 거니까요. 더 빨리 깰수록 평가 기간도 줄어들겠죠.

“…….”

빨리 깨면 평가를 더 빨리 끝낼 수 있다라.

운이 좋았다.

-어쩌시겠어요? 내일부터 들어가실래요? 아니면…….

따라주는 행운에,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내일부터 바로 가죠.”

또 한 번 언론들을 뜨겁게 타오르게 만들 사건의 시작이었다.

* * *

다음 날.

백아영이 알려준 위치로 이동한 그는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난번 B급 헌터 평가를 볼 때 그와 함께 게이트에 진입했었던 이들이 와 있던 것이다.

“이, 이강현 씨! 오랜만입니다……! 활약은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협회에서 나온 깐깐한 얼굴의 공증인, 이철성이 이미지와 안 맞게 말을 더듬는다.

물론 강현은 이철성이 말을 더듬는 것이, 그가 자신의 팬이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철성과 인사를 나누고 옆을 보자, 마찬가지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며칠 전 재앙을 함께 해결한 A급 헌터, 이서준이었다.

“못 본 지 며칠 되기는 했어도 그동안 정우 형님이 이강현 씨 얘기로 노래를 너무 불러대서 어색하지가 않네요, 하하.”

이서준이 나른하게 웃어보인다.

강현도 그와 비슷한 마음이었다.

아무래도 이들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갔다 보니, 모르는 사람보다는 더 편했다.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강현이 게이트로 다가간다.

이철성이 뒤따라오며 설명을 시작한다.

“이 게이트의 지형은 우중충한 대기에 풀 한 포기 안 나는, 마계가 있다면 그렇지 않을까, 라는 말이 나오는 지형입니다. 등장하는 괴수들도 스켈레톤 병사를 기본으로 하는 언데드 계열이고요. 침입자에 대한 민감도가 굉장히 높은 놈들이라, 진입하신다면 아마 곧장 달려들 겁니다.”

“스켈레톤…….”

더 비욘드에서 많이 상대해 본 계열이었다.

더불어, 지금의 강현에게 더없이 적절한 계열의 괴수들이기도 했다.

‘들어가면 일단 자리를 잡은 다음…….’

그가 전략을 짜는데, 이철성이 기쁘다는 듯 말해온다.

“하하, 또 지난번처럼 이강현 씨가 싸우는 모습을 녹화해서 가져갈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A등급 게이트이다 보니 원래라면 실패 시 이강현 씨를 도울 지원팀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관리국에서 이강현 씨에 대한 믿음이 너무 확고한 나머지 소수 인원만 오게 됐습니다. 운 좋게도 저희가 다시 맡게 되었고요. 또 멋진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아, 예.”

그렇게 말한 이철성은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만면에 한가득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긴.’

그간 두 번의 재앙을 통해 그가 보여준 게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한테도 주렁주렁 사람들이 뒤에 달고 다니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아.’

그런 생각을 하며 강현은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고.

이철성이 설명했던 대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마계를 연상하는 고원이 펼쳐진 가운데.

키오오?

크아아아?

강현이 들어서자마자, 근처에 있던 수십 마리 스켈레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나 빠르게 달려드는지, 흡사 좀비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꿀꺽.

놈들을 보며 이철성이 침을 삼켰다.

A등급 게이트에 꼴랑 셋이 들어왔으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래도.

‘이제 이강현 씨가 마주 달려나가서 다 해주겠지.’

이강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으니 상관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런데.

“아티팩트를 써도 됩니까?”

이강현이 마주 달려 나가기는커녕, 이상한 말을 해오는 게 아닌가.

“예?”

뜻밖의 말에 이철성이 되물었다.

이강현의 팬으로서 그의 헌터로서의 활약을 빠지지 않고 체크했으나, 아티팩트를 쓰는 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깨기만 하면 되긴 합니다만…….”

“그럼 됐네요.”

잠시 뒤, 이철성은 이강현이 왜 아티팩트 이야기를 꺼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슥-

그가 품에서 꺼낸, ‘특별한’ 구슬을 볼 수 있었으니까.

슈와아아아-

“와…….”

“저건……?”

뿜어지는 찬란한 빛에, 이철성은 물론이고 이서준까지 감탄을 흘린다.

그도 그럴 게, 저 구슬은 그들이 봐온 그 어떤 아티팩트와도 달랐다.

보는 것만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이 느껴지는 아티팩트랄까.

그 영롱함에 이철성과 이서준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데.

“……나와라.”

빙긋 웃은 이강현이 중얼거리며 구슬을 꾹 움켜쥔다.

그러자 구슬에서부터 특이하게 생긴 병사 셋이 튀어나와.

크어어-

키아아아!

이강현 대신 스켈레톤들에게 마주 달려 나간다.

이철성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역마? A등급 게이트에서 통할 것처럼 생기지는 않았는데…….’

이강현이 사역마를 쓴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도 있었지만, 저 세 병사들의 생김새로 보아 A등급 게이트에서 통할 거라고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어떻든 간에 이강현은 덤덤하게 정면을 응시할 뿐이었고.

채채챙! 채챙!

세 병사들과 스켈레톤들이 부딪친 순간, 이철성은 알게 되었다.

왜 이강현이 직접 나서지 않고, 사역마를 내보냈는지를.

이강현이 불러낸 병사들이 검을 휘두른다.

검과 방패, 창, 때로는 활을 쥔 스켈레톤들이 그에 맞서갔지만.

퍽! 퍼퍽!

병사들의 검에 뼈도 못 추리고 나가떨어진다.

크어어어-

그으윽…….

어찌나 병사들의 검술이 깔끔한지, 스켈레톤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몇 합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이철성은 거칠게 길을 열어가는 세 병사들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뜯어보았다.

‘처음 보는 종류의 사역마인데 저런 강함이라니…….’

공증인을 맡으며 식견이 풍부해진 그로서도 처음 보는 사역마들이었다.

피부는 지나치게 투명했고, 양팔은 땅에 닿을 것처럼 기형적으로 길었다.

그와 대비되듯 두 다리는 매우 짧아, 마치 흰 긴팔원숭이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건 생김새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푸푸푸푹! 서걱!

스켈레톤들의 날카로운 검에 베여도, 길쭉한 창에 찔려도, 저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 다발에 꿰뚫려도.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채 묵묵히 학살을 계속해 나간다는 점이었다.

분명 병기들이 몸을 난자해 가는 게 훤히 보이는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마치 죽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 불사신이라도 되는 건가? 어떻게 저런…….”

고작 세 명의 병사들에게 스켈레톤들이 서서히 밀려나기까지 하자, 그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처음 몰려온 스켈레톤만이 아니라, 지금도 곳곳에서 스켈레톤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세 병사들에게 밀리고 있는 것이다.

“……A등급 게이트가 저렇게 쉽게 깨나갈 수 있는 거였나?”

옆에서 이서준이 중얼거린다.

이철성도 그 말에 동감하는 바였다.

‘제약 약한 스켈레톤들이라고 해도 A등급 게이트인데…….’

사역마 세 명 풀어놓는 걸로 A등급 게이트를 진행해 나갈 수 있다면 그게 A등급이겠는가.

물론 아직 극초반에 불과하기에, 추후에 가서야 ‘진짜’ A등급에 걸맞은 괴수들이 등장할 것이기는 했다.

가령 스켈레톤 나이트라든가, 스켈레톤 리치 같은 괴물들 말이다.

하나, 그렇다고 초반이 쉽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아무리 스켈레톤들이 허약하다고는 해도, 저런 식으로 뭉치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된다.

‘인류 최후의 보루’라는 S급 헌터들이 A등급 게이트를 솔로 클리어한다고 해도, 뭉쳐오는 스켈레톤들에게 초반부터 버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스켈레톤 나이트 같은 단일 개체보다, 초중반에 나오는 기본 스켈레톤들이 더 힘들다고 말하는 헌터들이 있을까.

헌데 이강현은 그런 A등급 게이트를 겨우 사역마들로만 진행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철성 씨.”

“예, 예?”

그때, 병사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이강현이 물어온다.

“제가 A등급 게이트는 처음이라 그런데, 일반적으로 게이트 구조가 어떻게 되죠?”

“아, 대부분의 스켈레톤 게이트는 복잡한 미로식 구성이 많이 나오지만, 다행히 이번 게이트 같은 경우에는 고원이 대부분이기에 쭉 가면 될 거 같습니다. 또 보통은 일곱 개 가까이 되는 ‘구역’으로 진행 상황을 구분하는데, 이 게이트는 구성이 단순해서인지 네 개밖에 없고요.”

“그렇군요. 그 ‘구역’이라는 건 그냥 쭉 가다 보면 알아서 바뀌는 겁니까?”

“예, 등장하는 괴수의 수준이나 바뀌는 주변 환경에 따라 구분하기는 하는데…… 협회에서 임의적으로 나눈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촬영분을 분석하기에 편하거든요.”

이철성이 어깨에 켜놓은 고성능 카메라를 들어보이며 웃었다.

강현이 재차 물었다.

“최단 시간에 A등급 게이트를 솔로 클리어한 기록이 어떻게 되죠?”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A등급 게이트를 솔로 클리어 하는 데에는 평균적으로 3일 이상은 걸리니, 최단 기록이라고 해도 이틀은 소요됐을 겁니다. 숙영이 필요하죠.”

이철성이 배낭에서 캠핑 도구를 슬쩍 보이며 말했다.

숙영하는 데에 필요한 건 자신에게 다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투였다.

“든든하네요.”

강현은 병사들이 여는 길을 따라가며 안력을 끌어올렸다.

9단계로 오르며 더욱 상승한 안력이, 지평선 너머를 꿰뚫어본다.

그러자 저 멀리, 지금의 고원보다 음울한 분위기가 풍기는 메마른 땅이 눈에 들어왔다.

‘괜히 ‘구역’을 나누는 게 아니군.’

아마 게임에 나오는 스테이지(Stage)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될 듯했다.

강현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이번 구역은 저 병사들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현재 병사들은 별 무리 없이 스켈레톤들을 처리하면서 전진해 나가는 중이었다.

벌써 쓰러진 스켈레톤들의 수가 백여 마리 가까이 됐는데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기에, 이번 구역은 저들에게 맡겨도 될 거로 보였다.

-흐흐, 저놈들에게 아예 다 맡겨버릴 작정이냐? 하인에게 일을 떠넘기는 못된 주인 같군.

혼자 웃긴 상상이라도 했는지 엔딜 펠란이 클클댄다.

‘아, 그건 아니고요. 같이해야죠.’

-음? 어차피 같이할 거면 지금은 왜 가만히 있는 거지?

엔딜 펠란의 말에, 그는 살짝 웃어 보였다.

그가 지금 가만히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이틀을, 하루로 줄여보려고요.’

이철성과 이서준에게, 최단 시간 A등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를 보여주려는 것이었으니까.

본래 최단 기록까지는 생각에 없었으나, 세 병사들이 예상보다 훨씬 선전해 주는 걸 보자 욕심이 난 것이다.

해서 힘을 비축해 놓기 위해서, 지금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고.

스윽-

곧이어 다음 구역에 진입하자, 기본 스켈레톤만이 아니라 멧돼지를 타고 다니는 스켈레톤 지휘관, 불덩이를 쏘는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펑!

으으…….

불덩이를 얻어맞은 병사 하나가 비틀거린다.

에테르가 담겨서인지, 전신이 살짝 그을려 있었다.

그걸 본 강현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고.

[스킬, 광검[Lv.9]을 발동합니다.]

찬란한 빛을 흩뿌리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email protected]차원의 핵을 쥠에 따른 ‘격’의 상승 덕분일까.

서걱-

푸화악!

별다른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날아드는 불덩이들을 뚫고 단숨에 스켈레톤 메이지와 지휘관을 베어버릴 수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

오랜만에 보는, 승전보와 같은 레벨 업 메세지가 떠오른다.

이걸로 레벨은 57.

‘이번 평가로 60 딱 찍고, 균형의 섬으로 넘어간다.’

강현은 그런 다짐을 하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러 나갔다.

[스킬, 섬광[Lv.7]을 발동합니다.]

크어어어!

메마른 어둠의 고원에서, 스켈레톤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크아아아아아!

선두에서 달려오는 스켈레톤 나이트가 울부짖자, 마력의 기파가 초음파처럼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 뒤를, 수백 마리에 달하는 스켈레톤들이 뒤따른다.

정면에서 마주하기에는 절로 위축이 되는, 실로 가공할 기세.

보는 것만으로도 등에 축축하게 땀이 차올랐건만, 이강현의 검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파팟-

순백의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오른 이강현의 검에서 거대한 초승달 모양의 백색 검기, ‘광야참’이 뿜어진다.

쿠콰콰콰- 콰콰쾅!

단번에 후방의 스켈레톤 궁수들과 메이지들이 반파당한다.

단 한 번의 광역기로 이루어낸 성과였으나, 이강현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팟-

곧장 강하하여, 스켈레톤 나이트에게 파고든다.

쾅! 콰쾅!

스켈레톤 나이트도 마주 검을 휘두르면서, 폭발음이 터져 나온다.

다만, 서로의 전력 차이는 명확했다.

크어어어!

스켈레톤 나이트가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켈레톤 나이트가 어떤 공격을 하든 이강현의 가벼운 찌르기 한 번에 맥이 끊겼고, 압도적인 방어력으로 유명한 흉갑이 두부처럼 잘려나간다.

이강현이 스켈레톤 나이트를 말 그대로 박살 내는 동안, 나머지 스켈레톤들이 그를 포위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이강현과 스켈레톤 나이트의 앞에 나란히 선 세 병사들이, 그럴 가능성을 원천봉쇄한다.

네 명과 수백 명의 전투.

거기서 파생되는 소음만 듣는다면, 치열한 격전이라도 되는 양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무했지만, 승기는 명백히 네 명에게로 기울어져 있었다.

‘버, 벌써 세 번째 구역을 다 클리어해 간다고……?’

그 모습을 멀리서 보는 이철성의 입이 떡 벌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옆에 있던 이서준도 전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중이었다.

아직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다.

몇 번 쉬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네 개 구역 중 세 번째 구역을 클리어해간다니.

이 속도로 가다가는 기껏 챙겨온 캠핑 장비가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물론 그걸 다르게 말한다면, 이강현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레벨만 낮았지, 리얼에서랑 별로 차이가 없잖아…….’

섬광, 순보뿐만 아니라 천광의 날개, 광야참, 섬멸의 광창, 광살포…….

광검제를 대표하던 스킬들을 사용하는 그를 보자, ‘리얼’에서와 딱히 다를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유수의 헌터팀도 바깥에서부터 조금씩 갉아먹을 수밖에 없을 스켈레톤 군단을 상대로 정면돌파를 해버리기까지 하니, 말 다 했다고 할 수 있겠지.

‘카메라가 없었으면 안 믿었겠는데.’

이철성은 새삼 자신이 이강현의 활약상을 촬영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만약 촬영을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을 정도였다.

이철성은 이곳으로 오기 전, 상사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철성아, 인원이 너무 적은 거 같은데, 혹시 빡세거나 위험하면 바로 보고해라. 응? 가뜩이나 인원 딸리는데 너한테 뭔 일 나기라도 하면 진짜 놀란다.

이강현에 대해 그다지 믿음이 없는지, 상사는 이런 말을 하며 그의 안위를 걱정해 주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4구역까지 진입한 이강현이 이 게이트의 보스, 스켈레톤 리치까지 해치우는 걸 보면서 이철성은 확신했다.

‘깜짝 놀라시겠네.’

그의 상사가, 다른 의미로 놀랄 것이라고.

퍼석-

이강현의 검이 깔끔하게 게이트의 핵을 가른다.

하루도 채 걸리지 않은, 필시 최단시간일 게 분명한 솔로 클리어.

쿠르르릉-

밖으로 나온 이강현이 정중하게 인사해 보이고는 먼저 걸어 나간다.

“고생하셨고, 다음 게이트에서 또 뵙겠습니다.”

“예…….”

멀어지는 이강현의 뒷모습을 보는데, 이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우 형님! 방금 이강현 씨가 게이트 솔로 클리어하는 거 봤는데요…… 미쳤어요!”

평소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눈은 온데간데없이, 이서준이 열변을 토해낸다.

그에 질세라 이철성도 전화를 걸었다.

그 목적지는 당연히 그의 상사였다.

-어, 그래. 지원 필요하지? 몇이나 보내줄까?

“……그게 아닙니다.”

-음?

반쯤은 흥분, 반쯤은 얼떨떨한 기색을 억누른 이철성은 방금 찍은 녹화본을 상사에게 보내주었고.

잠시 후.

-야! @#$! 이, 이게 대체……? 이거 진짜야?!

이내 상사의 괴성과 함께 협회 전체가, 아니, 전 세계가 뒤집혔다.

당연하게도 시작은 협회부터였다.

“이, 이것 좀 보십시오!”

“음? 뭔데 그렇게 호들갑을…… 어, 어엇!”

처음 이강현의 영상을 본 이철성의 상사를 필두로, 한국 헌터 협회에서 난리가 난 것이다.

난리가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처음 보는 방식의 최단시간 솔로 클리어에 그들은 하나같이 경악했고, 그중 일부는 SNS로 유출되었다.

그리고 유출된 영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협회의 모든 부처, 언론, 길드까지.

-이강현이 제대로 하나 터뜨렸다! 그것도 A등급 게이트를 전 세계에서 최단시간 솔로 클리어하면서!

-기존의 1일 22시간 17분 11초의 기록을 23시간 58분이나 줄였다!

이내 그 영상들은 세계로 퍼져나가 하루도 되지 않아 각종 동영상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기존의 최단시간 기록을, 그것도 한국 최단시간도 아니고, 전 세계 최단시간 기록을 하루 가까이 줄여버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영상이 유명해질수록 그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는 했다.

-지형이 잘 맞았던 거 아닐까?

-이강현이 무언가 속임수를 써서 카메라를 속여버린 게 아닐까?

-한국이 이강현과 짜고치는 게 분명하다!

워낙 놀라운 일이어서인지 이 같은 주장들이 속속들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기껏 나온 것이 무색하게도 그 의문들은 금세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강현, ‘남은 A등급 게이트, 신분만 확실하다면 얼마든지 참관해도 상관없다’]

[이강현, 기록을 1시간 9분 단축하며 두 번째 A등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 완료!]

당사자인 이강현이 더없이 자유로운 참관을 허용한 덕에, 전 세계에서 온 수십 명의 기자들은 두 번째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었고.

참관을 마친 그들은 영상까지 첨부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Espn의 기자 존 레놀드, ‘이강현은 괴물이다. 그와 같은 헌터는 본 적이 없다’]

[BBC의 간판 앵커, 이강현을 언급하다! ‘오늘, 세계 헌터사에 굵직한 기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가상현실게임 ‘리얼’에서 광검제라 불리던……’]

…….

그렇게 마지막 남은 의구심까지 해결이 되자.

이강현의 이름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 *

소파에서 인터넷을 훑어보던 강현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5일간 다섯 개의 A등급 게이트를 솔로 클리어한 그였다.

그것도 자신이 세운 최단시간 기록과 엇비슷한 속도를 내면서.

그래서인지 인터넷, 뉴스, 예능, 신문, 기사…… 심지어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집 앞에서 상시 대기 중인 기자들을 제외하더라도, 어딜 가도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중이었다.

‘이제는 ‘리얼’의 이강현이라고도 안 하네.’

‘리얼’의 광검제보다는, ‘헌터’로서의 이강현에 초점을 맞추는 느낌이었다.

더이상 광검제의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이슈를 끌 수가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오직 하나.

‘관심만 따지면 예전보다 훨씬 더한 거 같은데.’

‘리얼’에서 한창 광검제라 불리던 때 이상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환호를 받고 있다는 것.

그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흐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들 사이에서의 지위에 집착하더니만, 결국 이뤘군. 지금 기분이 어떻지? 날아갈 것 같나?

엔딜 펠란이 킬킬대며 물어온다.

“어떻냐고 하면…… 좋기는 좋은데 복잡하네요. 미묘하기도 하고.”

강현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방에서 언급을 해대는데 좋으면 좋았지, 기분이 나쁠 리는 없었다.

결국 ‘리얼’에서의 관심을 다시 되찾는다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그닥 기쁜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왜일까.

‘이제 이런 걸로는 만족이 안 되는 건가.’

더 비욘드를 통해 그는 각종 종족들과 경쟁을 했으며, <초월자>인 ‘태고의 거인’과 [email protected]차원의 지배자를 만난 그였다.

그 과정들을 겪었는데 고작 이런 관심에 좋아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이름이 지나치게 오르내리는 것에 대한 번거로움을 느낀다면 몰라도.

-크흐흐, 그럼 다 싫으니까 귀찮게 하지 말라 이거냐?

“그건 또 아니죠. 목적은 달성했으니까요.”

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깃들었다.

“상태창.”

그가 상태창을 불러내자 단순히 S급 헌터라는 ‘언론에서 말하는 성과’가 아닌, 지난 5일 동안의 ‘진짜’ 성과가 떠올랐다.

파앗-

레벨 : 59

고유 특성 : <광검제>

보유 스킬 : 광검[Lv.9], 섬광[Lv.8], 순보[Lv.5]…….

레벨을 2 더 올려, 드디어 목표로 삼았던 60레벨을 목전에 두게 된 것이다.

게다가 59레벨이 된 지도 꽤 오래됐으니, 마지막 게이트를 통해 60레벨을 찍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광검도 곧 10레벨을 찍을 거고.’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광검의 레벨도 머지않아 10이 되어 ‘스킬 진화’를 할 수 있게 될 듯했다.

‘스킬 진화’를 통해 광검이 지금보다 한층 강해진다면, 그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겠지.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029/4000)]

여기에 다섯 개의 A등급 게이트로부터 1000이 넘는 에테르까지 흡수했으니, <초월자>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email protected]차원의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지구를 관리하게 될 터였다.

-이 몸도 그때가 궁금하긴 하구나. 네놈이 어떻게 지구를 다스릴지를.

“어떻게 다스리다뇨, 그야 그 노인이랑 비슷하겠죠.”

강현은 노인이 어떻게 [email protected]차원을 다스렸는지를 떠올렸다.

‘직접 나서지는 않고, 뒤에서 [email protected]차원을 관리했었어.’

강현도 노인과 비슷하게 할 생각이었다.

왕이나 황제로 군림하기에는 지구의 인구가 지나치게 많았다.

-흥, 싱겁기는. 이 몸은 수백만의 악마들을 직접 거느렸었다. 말 그대로 마계의 왕이나 다름없…….

“그거는 인구가 수백만에 그쳐서 그런 거고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의 강현이 받아친 순간이었다.

지이잉-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확인해 보니, 이철성에게 온 메시지였다.

-이강현 씨! 이제 마지막 게이트만 남았네요! 밀림 지형의 게이트로 결정이 났고 위치는…….

강현은 이철성이 보내준 위치를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이네.”

이제 저 게이트까지 클리어한다면, S급 헌터가 되는 것이다.

허나 한때 간절히 바라던 지위였음에도 강현의 얼굴은 담담했다.

지금의 그는 S급 헌터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을 보고 있었기에.

그로부터 약 하루 뒤.

[까다로운 밀림 지형도 거뜬! 이강현, 최단기 S급 헌터 달성!]

강현은 깔끔하게 60레벨을 달성하며 마지막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이강현 씨, 인터뷰 한 번만……

-소감이 어떠십니까!

…….

당연히 수많은 매체로부터 연락이 쏟아졌다.

하지만 강현은 곧장 백아영에게 연락하여, 당분간 자리를 비울 테니 모든 매체 출연 제의를 거절해 달라는 부탁을 할 뿐이었고.

[균형의 섬으로 가시겠습니까?(Yes/No)]

Yes.

로독이 준 목걸이를 꺼내든 채 홀연히 균형의 섬으로 이동했다.

[참가자 이강현 확인, 균형의 섬으로 이동합니다……]

슈와아아-

[다음 소환까지 남은 시간 : 3일 4시간 21분]

온 지구가 자신의 이야기로 들끓고 있는 가운데, 다음 미션이 시작되기까지 약 사흘 남았을 때의 일이었다.

* * *

스아아아-

차원을 뛰어넘는 느낌과 함께 눈앞에 여러 개의 메시지가 나타난다.

[참가자 이강현으로부터 황(黃)색 목걸이 확인.]

[참가자 이강현에게 배정된 구역은 토(土)입니다.]

정신을 차린 강현은 자신이 처음 보는 방으로 이동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찜질방에서나 보던 토굴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5평 정도 되는 공간에 매끈한 흙으로 된 침대와 책상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토 속성이라서 다 흙으로 만들어놓은 건가.’

정말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주변에 온통 흙냄새가 나기는 했다.

다만, 그가 이곳 균형의 섬까지 온 이유는 고작 토굴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후우……”

그는 일전에 로독이 알려주었던 균형의 섬만의 특징을 떠올리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스아아아-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032/4000)]

에테르가 미세하게 오르는 게 보인다.

‘이거지.’

균형의 섬은 하급 차원들보다 <초월계>에 훨씬 가깝고, 그 덕에 에테르의 밀도가 매우 높다.

그 높은 에테르의 밀도야말로, 그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호오, 그럼 남은 3일 동안 숨이나 쉬면서 죽치고 있을 작정이냐?

“그래야죠. 공짜로 에테르를 주는데.”

강현은 아예 자세를 잡고 에테르를 조금씩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035/4000)]

…….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038/4000)]

…….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042/4000)]

에테르를 더 잘 느끼고자 기감을 끌어올린다.

끌어올린 기감은 자연스레 사방으로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때였다.

-피, 피하게!

-이 아저씨가 진짜! 여기까지 와서 어디로 피하라는……

상승한 청각에, 낯익은 목소리들이 희미하게 들려온 것은.

“……!”

그 소리들을 듣자마자 강현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파팟-

토굴을 벗어나자 고대 원시 문명을 보는 듯한 화려한 건축물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목각 인형처럼 생긴 토인(土人)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다른 차원의 문명을 처음 보는 강현으로서는 틀림없이 입이 절로 벌어질 만한 광경이었지만.

지금 강현의 관심사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세르반테, 39위]

[레이센 란, 28위]

저 멀리 있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세르반테와 레이센 란을 보는 강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콰콰쾅! 콰쾅!

거대한 목각 인형을 상대로 세르반테가 연신 검을 휘두르고, 레이센 란이 불덩이를 쏘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방금 들었던 소리는 저들이 저 괴물을 사냥하면서 낸 것인 듯했다.

‘아니지, 사냥이라기보다는……’

거의 결투 수준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목각 인형은 거대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매우 빨랐던 것이다.

“강현?!”

강현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를 알아본 세르반테가 크게 외친다.

급박한 와중에도 그의 표정에는 반가운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어엇!”

레이센 란도 그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뜬다.

허나 강현이 무어라 답하기도 전,

“얼굴이 멀쩡한 걸 보니 잘 지낸 듯하군! 제2식! [파도 베어내기]!”

세르반테가 목각 인형에게 푸른 검기를 쏘아 보내며 외쳤다.

“만나자마자 좀 뜬금없을 수는 있겠다만, 좀 도와주게! 자네에게도 절대 나쁠 게 없을 터이니!”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참가자 세르반테, 레이센 란의 인간2팀에 합류하시겠습니까?[Yes/No)]

[현재 인간2팀은 오행 중 토(土) 2단계를 도전하고 있습니다.]

[오행을 모두 순회한다면, 그 순위에 따른 보상을 획득하게 됩니다.]

[인간2팀의 현재 순위는 41등입니다.]

그리고 메시지를 본 순간 강현은 직감했다.

‘뭔가 있다.’

뭐가 뭔지는 정확히 몰라도, 저들이 괜히 저러고 있는 게 아닐 거라고.

그렇다면 더 생각할 건 없었다.

[스킬, 광검[Lv.9]를 발동합니다.]

강현은 검에 빛을 휘감은 채,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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