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장 복수(1) (30/51)

5장 복수(1)

공사라도 하고 있는지,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주변을 둘러본 강현은 집에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으나, 그의 찌푸려진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인사도 못했네.’

망할 엘이 순식간에 참가자들을 돌려보낸 탓에, 이번 미션을 끝으로 탈락하게 된 남궁강룡과 이현을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떨어진 이현과 남궁강룡에게 말도 건네지 못하고 지구로 돌아온 게 짜증이 났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 경연이 끝나고 네놈이 직접 가면 되지 않느냐.

엔딜 펠란의 이상한 말에 놀란 강현이 되물었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다. 네놈이 탈락한 그놈들의 차원에 가면 될 걸, 뭘 그리 호들갑을 떠는 거지?

“아니…….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강현이 얼떨떨하게 물었다.

남궁강룡과 이현의 차원으로 갈 수 있다니.

그로서는 금시초문이었다.

-당연하지. 설마 더 비욘드가 끝나면 끝인 줄 알았느냐? 설령 네놈이 도중에 탈락해서 <초월>에 실패한다고 해도, 다른 차원으로 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아……. 어떻게 하는 겁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네놈이 일정 이상으로 강해지는 거지. 그 강함의 기준은 종족마다 다르기에 정확히 언제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만, 무력과 ‘격’이 일정 경지에 이른다면 모의차원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차원문을 열 수 있을 거다. 두 번째 방법은, ‘연합’에 들어가는 거지.

“연합?”

-그래. <초월자>, 혹은 준초월자들의…… 일종의 길드라고 보면 된다. 더 비욘드 본선진출자라면 잠재력이 상당하다는 뜻이니, 네놈에게도 머지않아 연락이 올 수도 있다. 괜찮은 연합에 들어간다면 그들이 차원을 이동시켜줄 수도 있겠지. 그 거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확실히…… 차원을 건너뛰긴 했죠.”

하긴, 매 미션마다 강현의 방에서 ‘흐음……’을 남발하던 태고의 거인은 차원을 걸어서 건너뛰었었다.

여태까지는 그 거인이 말도 안 되는 존재여서 가능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 같은 최상위 <초월자>가 아니더라도 차원을 이동하는 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다행이네.’

엔딜 펠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서 탈락했던 류트를 비롯한 나머지 참가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될 터였다.

‘나머지 인간종은 다 붙었으니, 일단은 무림이랑 류트가 있는 군소차원에만 가면 되겠군.’

2위인 사도천뿐만 아니라, 세르반테와 알렉시스 찬드라스, 레이센 란도 2~30위권에 안착한 걸 확인한 그였다.

탈락한 참가자 중 그와 친분이 있는 참가자는 류트와 남궁강룡, 이현뿐이었다.

일정 경지까지 강해지거나, 또는 ‘연합’에 들어가기.

강현은 엔딜 펠란이 말해준 방법들을 머릿속에 꾹꾹 되새겼다.

한데 그러던 와중, 문득 의문이 떠올라 엔딜 펠란에게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왜 이런 중요한 정보를 지금에서야 말해주는 겁니까?”

그 말처럼, 엔딜 펠란이 조력자로 합류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오늘에서야 이걸 말해준 것이다.

그가 류트에게 인사를 못하고 후회한 걸 분명 봤을 텐데도 가만히만 있었다니.

그걸 떠올리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거기에 엔딜 펠란이.

-흥, 네놈이 물어보질 않았잖느냐.

코웃음으로 일관해 왔기에 더욱 그랬다.

-지금이라도 알려준 걸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알려줘도 지랄이군.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그렇게 강현이 엔딜 펠란과 투닥거리고 있는데.

팟-

[공지사항이 도착했습니다.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 (Yes/No)]

메시지가 떠올랐다.

문구를 본 강현은 참가자들을 돌려보내며 엘이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전달 사항들은 돌아가서 한꺼번에 알려 준다고 했었나.’

로독이 대부분의 정보들을 주저리주저리 직접 설명해 주고 돌려보냈다면, 엘은 일단 보내고 나중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인 듯했다.

강현은 그대로 메시지를 확인하려다가…….

‘아, 맞다.’

엔딜 펠란과 투덕거리느라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스마트폰을 보자 일주일이 조금 넘게 지나 있었다.

백아영으로부터 몇 개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는데, 지난번 일이 터졌을 때 수십 개가 왔던 걸 고려한다면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닐 거로 보였다.

‘이 정도면 뭐……. 생각만큼 많이 지난 건 아니군.’

그간 한 것들이 많았기에 내심 몇 주가 지났을 수도 있었다고 여겼는데, 일주일이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균형의 탑부터 이번 모의차원전쟁까지.

돌이켜보면 굉장히 빡센 강행군을 해온 것이다.

그 강행군을 1위라는 최고의 결과로 마쳐서일까.

강현은 무척이나 후련한 얼굴로 Yes를 누를 수 있었다.

그러자.

파팟-

메시지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강현은 그것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순위에 따른 보상을 산정 중입니다…….]

첫 번째는, 역시 보상에 관련된 메시지였다.

‘이건 넘어가고…….’

어차피 산정이 완료되면 따로 알려주기도 하거니와, 거의 열 번 가까이 본 메시지였기에 강현은 곧장 다음 메시지로 시선을 내렸다.

[사흘 뒤부터, 진출자들은 사전에 배정받은 균형의 섬 거주 구역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됩니다. 해당 구역은 더 비욘드에서 탈락하기 전까지 이용이 가능해집니다.]

두 번째 메시지를 본 강현이 눈을 빛냈다.

“오.”

안 그래도 로독이 주었던 토(土)의 성질을 띠고 있는 목걸이를 대체 언제 써보나 했는데, 관련된 메시지가 나타난 것이다.

‘잠깐 머무는 게 아니라 아예 쭉 머물 수도 있나 본데.’

가급적 오랫동안 있고 싶은 그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가 균형의 섬에 가고 싶은 이유는 간단했다.

‘주욱 머물면 꽤 많은 에테르를 올릴 수 있겠어.’

다름 아닌 에테르, 즉 ‘단계’ 때문이었다.

섬 안에서 숨만 쉬어도 에테르가 오르던 게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했다.

그곳에 장기간 머문다면, ‘격’을 충분히 올릴 수 있을 터였다.

현재 그는 갓 8단계에 진입한 상태.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2/2,000)]

9단계로 넘어가려면, 열심히 에테르를 모아야 했다.

[다음 소환까지 남은 시간 : 13일 23시간 56분]

[나머지 공지사항은 추후 전달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남은 시간을 본 뒤 메시지창에서 눈을 돌렸다.

-대충 2주일 정도 남은 듯한데, 그동안 뭘 할 거지?

“음……. 생각해 둔 게 있긴 한데…….”

강현은 일주일 전을 떠올렸다.

벌레들의 대장이었던 개미를 단신으로 쓰러뜨렸을 때, 세간은 그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었다.

‘최단기 S급 헌터가 될 수 있니 없니 했었지.’

거기까지 생각한 강현은 목표를 정했다.

‘역시…….’

다음 소환 전까지, S급 헌터에 도전하기로.

‘잠깐, 근데 조건이 어떻게 됐었더라.’

강현이 S급 헌터가 되려면 어떤 조건들을 달성해야 하는지 기억을 뒤지고 있는데, 엔딜 펠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작해야 한다는 게 하찮은 등급을 올리는 거라니. 아직도 그런 것 따위에 집착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만.

“…….”

그 말에 강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엔딜 펠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법도 했다.

무려 더 비욘드 본선의 미션을 1위로 통과해 놓고, 기껏 한다는 게 헌터 등급 올리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S급 헌터의 위명은 저한테 도움이 안 되지만, 그 평가 항목은 도움이 되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지?

그 물음에 강현은 말없이 스마트폰을 뒤질 뿐,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S급 헌터 평가를 보기 위한 조건을 찾아내어 엔딜 펠란에게 보여주었다.

<오늘의 헌터계 상식, S급 헌터와 S급 헌터가 되기 위한 조건은?>

[안녕하세요, 이웃님들. 오늘은 S급 헌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S급 헌터, 헌터라면 모두가 선망할 S급 헌터는 인류의 보루이자, 헌터의 끝판왕이죠!

따라서 지형과 기후에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게이트를 클리어할 줄 알아야 하며……(중략).

아래가 S급 헌터 평가를 받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입니다.

1. 지형과 기후, 등장 괴수가 각기 다른 A급 게이트 5개 솔로 클리어(게이트는 관리국이 지정).

2. 팀을 이루어 A+급 게이트 2개 이상 클리어(게이트는 관리국이 지정).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건 굵직한 것만 저 두 개이고, 실제로는 인성과 업적 점수까지 포함하여 엄격한 심사를 거치는 게 보통…….]

-네놈, 혹시…….

뭔가 알겠다는 듯한 어투의 엔딜 펠란에게 강현은 빙긋 웃어 보였다.

“예, S급 헌터를 도전하려면 A등급 게이트들을 솔로 클리어해야 되니까요. 그것도 다섯 개나.”

S급 헌터 평가에서 클리어하게 될 A등급 게이트들.

그것들이야말로 그가 S급 헌터 평가를 받으려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남은 시간은 2주 남짓. 그동안 최대한 강해져야 돼.’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고, 그는 아직도 약했다.

‘상위종들과의 차이는 상당해.’

모의차원전쟁을 하면서 느꼈던, 상위 종족들과의 격차.

그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히려면, 최대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취해야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A등급 게이트들을 솔로 클리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확실히…… 그렇겠군. 역시, 언제나처럼 약아빠졌구나.

‘약아빠졌다는 것보다는 최선의 선택만 한다고 해주시죠.’

직전까지 툴툴대던 엔딜 펠란이 수긍할 정도였으니,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는 거겠지.

다만 걸리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아무나 평가를 못 보는 걸로 알고 있는데…….’

A~E급 평가와는 다르게, S급은 개나 소나 볼 수가 없던 것이다.

아까 인터넷 글에 나와 있던 것처럼, 인류의 마지막 보루라고까지 불리는 S급 헌터였으니 이해가 가기는 했다.

그러나 이어진 백아영과의 통화에서, 그는 자신이 시험을 보지도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뉴스 안 봤어요? 지금 여론이 당신을 S급 헌터로 올리라고 난리예요!

참으로 운이 좋게도, 마침 여론이 그를 도와준 덕분이었다.

실제로 인터넷 뉴스를 보자, 들끓고 있는 여론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곤충들의 재앙’을 끝낸 이강현을 S급 헌터로 임명해야 한다는 의견, 설문조사 결과 ‘92%’.]

[사이코메트리 각성자, ‘만약 이강현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수도권은 반파됐을 것’.]

[국민들의 거센 요구에 헌터관리국, ‘이강현, 원한다면 S급 헌터 평가를 볼 수 있다’는 입장표명.]

…….

아무래도 B급 헌터 팀을 전멸시킨 개미 괴수를 혼자 처리한 게 크게 작용한 듯했다.

-나라가 뒤집어지려던 걸 당신이 혼자 막아준 셈이니까요. 사람들이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더라구요.

“아…….”

강현은 개미를 상대하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는 애초에 벌레들이 침략한 게 더 비욘드 때문이라는 걸 알았기에 열심히 나선 거였는데, 사람들은 그걸 다르게 봐준 모양이었다.

-아무튼, 약식으로 신청은 넣어둘게요. 그래도 제대로 신청하려면 관리국으로 오셔야 돼요.

“예, 뭐 제가 할 일은 없습니까?”

-임무 선택권도 몽땅 쓰셔서 올해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분이 왜 이러실까? 어차피 지금 다들 시가지 복구하는 데에 온 힘을 쏟고 있어서 딱히 할 일도 없어요.

“……!”

뭔가 떠오른 강현은 백아영과의 통화를 종료하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복귀했을 때 들었던 소음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쿠르르릉!

지이잉- 지이잉-!

저 밑에서, 포크레인이 삽을 푸고 인부들이 자재들을 쉴 새 없이 나르는 게 보였다.

그 대상은, 그 빌어먹을 벌레들의 침략에 의해 폐허가 되어버린 그의 집 근처였고.

그걸 보는 강현의 얼굴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크흐흐, 살던 동네가 다 박살 나서 기분이 안 좋은 것이냐?

“……별생각 없었는데, 직접 보니까 그러네요.”

확실히 녹지와 상가, 학교 등, 자신이 기억하던 광경들이 깡그리 박살 난 곳을 내려다보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순위에 따른 보상의 정산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지금 수령하시겠습니까? (Yes/No)]

그의 기분을 풀어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강현은 즉각 Yes를 눌렀다.

무려 본선 1위의 보상이었으니, 쓸 만한 게 나올 거라 예상됐다.

과연.

[에테르 결정체(중)를 획득합니다.]

주먹만 한 에테르 결정체를 본 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쁘지 않군.”

채워야 할 에테르가 한참이나 남은 상황에서, 더없이 적당한 보상이었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2/2,000)]

그런데, 그가 손을 내밀어 에테르 결정체를 흡수한 순간이었다.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002/2,000)]

에테르가 1,000이나 늘어났다는 알림과 함께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렸다.

팟-

[현 시간부로 한 번에 한해, 다른 차원으로의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가장 최근 연결이 있었던 차원으로의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제245 군소차원에 게이트를 생성하시겠습니까? (Yes/No)]

메시지를 본 강현이 눈을 깜빡였다.

“어?”

정확히는, 제245 군소차원이라는 단어를 보고 나서였다.

“이거 혹시…….”

그의 짐작이 맞다면 제245 군소차원이라는 곳은, 그 망할 벌레들의 차원일 것이었기에.

-각성으로 차원최강 6권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