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으로 차원최강 5권-1장 본선 : 모의차원전쟁(2) (26/51)

각성으로 차원최강 5권

목차

1장 본선 : 모의차원전쟁(2)

2장 본선 : 모의차원전쟁(3)

3장 본선 : 모의차원전쟁(4)

4장 본선 : 모의차원전쟁(5)

5장 복수(1)

1장 본선 : 모의차원전쟁(2)

그로부터 이틀 뒤.

파삭-

영롱한 빛을 내뿜는 주먹만 한 에테르 결정체를 강현의 검이 꿰뚫는다.

[400 에테르를 획득합니다.]

스아아-

흘러나온 에테르는 하늘로 퍼져 나갔다.

강현이 다스리는 종족인, 청인족들의 마을로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에테르 결정체를 부순 강현이 주저앉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이고, 죽겠네.”

말을 하는 그의 뒤로는 그가 ‘뾰족이들’이라고 이름 붙인, 거대한 밤송이처럼 생긴 종족들의 사체 수십 구가 한참에 걸쳐 늘어져 있었다.

-이게 인간종 1위의 힘인가;;;

-이틀 만에 군소종족 두 개를 처리해 버리는 클라스;;

-처음엔 뭐지? 싶었는데 이제는 알겠네. 걍 실력임

-그니깐. 처음부터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었던 듯

…….

시청자들의 말마따나 그는 이틀 동안 또 하나의 종족을 찾는 데에 성공했고, 우여곡절 끝에 에테르 결정체를 부술 수 있었다.

다만 ‘우여곡절’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비교적 쉽게 끝냈던 적인족과는 다르게 이번 뾰족이들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근데 가시에 찔린 데는 괜찮음?

-아, 밤송이들이 날려댄 가시에 맞았음?

-ㅇㅇ 아까 보니까 피 철철 흐르던데

몇몇 시청자가 걱정하는 것처럼, 부상을 받고 만 것이다.

그것도 찰과상도 아니고, 가시에 옆구리를 제대로 긁히는 부상을 받고 말았다.

처음에는 몸통박치기만 하던 뾰족이들이 기습적으로 가시를 발사하면서 벌어진 참사였다.

‘망할 놈의 가시.’

얼굴을 일그러뜨린 강현은 아공간을 샅샅이 뒤졌고, 간신히 상처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걸 발견했다.

[하급 신령초]

-바르거나 섭취하여 가벼운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는 신계의 약초입니다.

예선의 두 번째 미션을 하면서 주웠던 신령초였다.

다 못 쓰고 남았길래 그냥 아공간에 처박아두었는데, 지금 쓰게 될 줄이야.

슥슥-

옆구리에 신령초를 바르자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간다.

스아아-

그렇지만 바로 움직일 만큼은 아니었기에, 강현은 적당한 곳을 찾아 쉬었다 가기로 했다.

“후우, 이제야 좀 살겠네.”

-하마터면 몸져누울 뻔했네;;

-걔들이 대기 타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음

시청자들의 말대로였다.

‘내 존재를 알고 있었어.’

강현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던 적인족들과는 달리, 뾰족이들은 나름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탓에 적인족들보다 훨씬 힘들게 상대할 수밖에 없었고.

-네놈이 모든 적인족을 해치운 건 아니었으니, 살아남은 적인족 일부가 알린 게 아니겠느냐.

엔딜 펠란의 시큰둥한 말에 강현은 턱을 살짝 까딱였다.

‘그런 것 같네요.’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됐다.

즉, 다른 종족들끼리 유기적으로 서로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는 말이었다.

강현은 다시 한번 느꼈다.

그가 만나는 모든 군소종족은 ‘진짜 살아 있는’ 종족이라는 걸.

참가자가 이끄는 종족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은 종족의 명운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다음 종족을 공격할 때는 더 조심히 접근해야겠어.’

하지만 그렇게 다짐하는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다른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청인족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었으니까.

가시에 찔리긴 했어도, 그만큼의 보상을 얻어낸 것이다.

“차원 상태창.”

이름 : 이강현

차원 : 제28-3 차원

차원 등급 : E

종족 : 청인족

종족 특성 : 발현(열화)

인구 : 1,544

보유 에테르 : 912

사기 : 상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역시 차원 등급이 F등급에서 E등급으로 올랐다는 점이었다.

그가 적인족과 뾰족이들을 털면서 700이나 되는 에테르를 얻어낸 덕분이었다.

-농장(5/5), 시장(3/3), 병영(2/2), 교육소(1/1)…….

에테르를 받고선 화들짝 놀란 루루가 지을 수 있는 시설이란 시설은 모조리 짓고 있으니, 차원 등급이 오르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와 상태창 보소

-벌써 E등급 된 거 실화임?

-에테르 봐;; 2등이 아직 200대인데 혼자 네 자리 찍겠네

-사기도 높네.

-여태까지 이런 적이 있었음?

-글게;; 혼자 너무 치고 나가네

-청인족들 당황하겠다 야;;

오죽 발전속도가 말이 안 됐으면, 항상 깔깔대던 시청자들이 질린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물론 당사자인 강현으로서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발전속도였다.

그런데, 상태창을 보던 강현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시청자님들, 인구가 왜 이렇게 빨리 늘어나는 겁니까? 그저께 딱 천 명이었는데 벌써 오백 명이 늘어났는데요?”

그 말처럼, 인구의 성장세가 말도 안 됐던 것이다.

-아, 그거 더 비욘드 측에서 설정해서 그럴 거임

-ㅇㅇ 건물 짓는 속도나 인구 늘리는 건 가속시켰다고 알고 있음

-안 그러면 몇천 년씩 해야 되니깐

“아, 그렇겠네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정상적인 속도로 미션이 진행된다면 참가자들이 충분히 종족을 성장시킬 때까지 몇백 년, 몇천 년이 걸릴 텐데, 그동안 이 미션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지배자님, 루루입니다!

그때, 루루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재 등급에서 지을 수 있는 기반 시설 건설을 거의 끝냈습니다! 에테르를 더 모으면 [종족 특성] 강화와 영웅 생성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음…….”

강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당분간은 기반 시설을 최우선으로 하고, [종족 특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자. 배치 같은 건 알아서 해주고.”

한국에서 유행했던 RTS 게임인 스페이스 크래프트 및 문명 발전 시뮬레이션 게임을 했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기술의 발전속도였다.

그건 이번 모의차원전쟁에서도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다.

‘여기서는 ‘격’이 기술이나 다름없지.’

종족의 ‘격’이 높아질수록 다른 차원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종족 특성]의 강화가 그 열쇠가 될 터였다.

-넵! 맡겨만 주십시오! [종족 특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에테르가 모이면 다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닷!

힘차게 대답해 오는 루루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아마 지난번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겠지.

“그래, 또 알려줘.”

-넷!

강현은 피식 웃으며 연락을 종료했다.

-뭐야, 지시가 이걸로 끝임? 더 안 함?

-쿨하네

-글게ㅋㅋ 다른 애들은 농장에 몇 명 들어가야 하는지까지 지시하던데

확실히 그는 전체적인 발전 방향만 지시하는 것이었기에, 일부 시청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온종일 달라붙어 있는 대다수 참가자들보다는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긴 했다.

그러나 강현은 개의치 않았다.

1위 이강현(922)

2위 모리아스(230)

3위 바이토넬(225)

…….

이 모의차원전쟁에서 누구의 전략이 맞는지는, 지금까지의 결과가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 2위와 무려 700가량 차이가 났음에도 강현은 안주하지 않았다.

“상처도 나은 것 같으니, 다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간다고?! 내정 안 봄?

-있는 놈들이 더하다더니;;

-이미 상위권 확정 아님? 왤케 여유가 없어

시청자들의 반응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차원 등급을 최대한 빨리 끌어올려야 돼.’

그도 그럴 게, 아직까지 순항을 하고 있기는 하나 그의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한참 모자랐던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정복 전쟁’을 벌이기에는.

그리고 그러려면 더 많은 에테르가 필요했다.

“한 종족만 더 처리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강현은, 다시금 어둠을 헤치며 나아갔다.

* * *

[더 비욘드 본선의 첫 번째 미션인 모의차원전쟁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이틀이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시청자분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발생했었죠?]

[예에, 모의차원전쟁의 초반은 지루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똑같을 거라는 일부의 예측을 깨부순 참가자가 있었죠! 제 말을 들은 시청자분이라면 그게 이강현 참가자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바로 눈치채셨을 텐데요!]

[실제로 이강현 참가자의 청인족이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를 보여주면서, 다소 도박에 가까웠던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상당수의 참가자들이 이강현 참가자의 에테르를 보고는 기절초풍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몇몇 참가자들은 단순히 놀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강현 참가자가 어떤 수를 쓴 건지 눈치를 채기도 했는데요! 직접 내정을 뿌리치고 군소종족을 처리하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은 큰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허탕만 쳐야 했죠. 심지어는 크게 손해를 본 차원도 존재하고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저희도 놀란 이강현 참가자의 현묘한 검술이 없었으니까요!]

[예, 그리고 그 덕분에 이강현 참가자는 다른 참가자들보다 훌쩍 앞서나가는 중입니다! 벌써 두 개나 되는 군소종족을 흡수함으로써, 주변 세력 통합을 목전에 둔 상태니까요!]

[여태까지 저희가 본 이강현 참가자의 성향으로 봐서는 완전히 주변을 통합하자마자 대륙을 통일하려고 나설 거로 보입니다! 대륙을 통일한 뒤에는, 다른 차원과의 교류 및 확장을 시도할 거구요! 타 참가자들은 아직도 내정을 보거나 이제 정찰대를 꾸리고 있는데 말이죠!]

* * *

고오오…….

강현이 앞으로 걸어 나가자, 어둠이 걷혀갔다.

“저기 있네.”

그는 한참 앞에 있는 방책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곳에 있을 군소종족만 처리한다면, 근처를 대강이나마 통합하는 셈이었다.

-오오, 벌써 세 번째라니.

-미쳐따 미쳐써

강현은 호들갑을 떠는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한 차원에 보통 군소종족이 얼마나 있습니까?”

-아마 열 개 조금 안 될 거

-ㅇㅇㅇ 열 개만 처리하면 그 차원에 있는 대륙은 통일하는 거라고 보면 됨

열 개 종족.

생각보다는 적은 숫자였다.

‘아니지, 적당한 건가.’

어차피 이 모의차원전쟁의 주 콘텐츠는 참가자들이 지배하는 차원끼리의 전투였지, 군소종족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그걸 고려한다면 적절하다고 여겨졌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잠깐만. 다른 참가자들이 있는 차원에 연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엘이 그와 관련된 설명을 따로 해주지 않은 탓이었다.

어찌나 설명이 불충분했는지, 알려준 것보다 알려주지 않은 게 더 많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더 비욘드 측에서도 그걸 아는지 시청자들의 정보를 웬만하면 차단하고 있진 않았기에 별문제는 되지 않았으나, 불만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이번에도 시청자들에게 물어보았고,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게이트를 연결하면 됨

-차원 상태창 보면 있을 거임

강현은 차원 상태창을 살펴보았고.

[제약 해제 : 500 에테르]

[영웅 생성 : 1,000 에테르]

[종족 특성 강화 : 1,000 에테르]

[인근 차원 탐색 : 차원 등급 D 이상]

[인근 차원과 게이트 생성 : 차원 등급 C 이상]

‘인근 차원과 게이트 생성’이라는 항목을 볼 수 있었다.

‘차원 등급이 더 높아져야 된다는 거네.’

문구를 본 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역시, 청인족에게 돌아가지 않고 또 다른 군소종족을 찾아 나선 건 좋은 선택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바깥에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번 종족만 처리하고 돌아가서…….’

그 순간이었다.

퓨퓨퓨퓻-!

돌연, 양옆에서 화살들이 쏘아지는 게 아닌가.

그냥 화살도 아니고, 미약하게나마 에테르가 담긴 화살들이었다.

“……!”

강현은 그 즉시 바닥으로 굴렀다.

파파파팍-

그를 노리고 쏘아진 화살들이 아슬아슬하게 땅바닥에 연이어 처박힌다.

파팟-

가까스로 화살 세례를 피한 강현은 곧장 뒤로 빠졌고, 원래 있던 곳에서부터 멀찍이 물러난 뒤에야 발걸음을 멈추었다.

“헉…… 헉…… 이런 빌어먹을.”

-이번에는 아예 매복을 하고 있었던 듯한데, 다행히 뒤따라올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다행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허억…….”

강현은 숨을 진정시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인간과 흡사하게 생긴 종족 백여 명이 의기양양한 몸짓을 하며 돌아가는 게 보였다.

얼마나 병력이 많았는지, 적인족과 뾰족이들보다 훨씬 큰 규모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거 큰일 난 거 아님?

-강현이한테 방패가 있어, 방어막이 있어!

-제약 때문에;;;

시청자들의 말대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재의 그가 가지고 있는 거라곤 고작 광검과 섬광, 여명의 눈뿐이었다.

셋 모두 화살을 피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휘광이나 순보만 있었어도.’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가진 것들로만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했다.

‘수수께끼의 검의 방어막이 있긴 한데…….’

잠깐 방어막을 두르고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강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오래 지속할 수도 없을뿐더러, 가급적 마지막까지 아껴두어야 했다.

하나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도 마땅한 타개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에 와야 하나?’

후퇴한 뒤 나중을 기약할까 하는 마음이 슬며시 들기도 했지만.

‘아니야.’

강현은 그 마음을 떨쳐냈다.

자신을 내쫓고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던 놈들한테 한 방 먹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흠……. 그러면, 한번 써볼 테냐?

느닷없이, 엔딜 펠란이 툭 하고 말해온 것은.

‘예?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잠깐 어리둥절한 강현이었으나, 이어지는 엔딜 펠란의 말에 눈을 부릅떴다.

-뭘 말하는 것이겠느냐. 그거야 당연히 아르크트의 ‘시동’을 말하는 거지.

‘……!’

그러고 보니 에테르 결정체를 파괴하면 약간 충전할 수 있다고 말했었는데,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충전이 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더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어떻게 쓰는 겁니까?’

-간단하다.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아르크트, 시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낡은 갑옷을 꺼내어 착용한 강현은 즉각 엔딜 펠란의 말을 따라보았고.

‘아르크트, 시동.’

촤라라라라락-

칠흑의 갑옷이 온몸을 빈틈없이 덮은 순간 알게 되었다.

이거라면, 화살 따위는 아무 문제 없이 놈들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자타공인 대륙의 중앙에서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 있는 석인(石人)족의 마을, ‘수르’.

그 ‘수르’의 수장, 이갈론은 광소를 터뜨렸다.

“흐흐흐……. 홍인족과 가시구족을 단신으로 쓰러뜨렸다더니, 별거 아니군그래!”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옆에 있는 부하들 또한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맞습니다! 아무리 놈이 대단해도 우리 석인족의 화살 세례를 견딜 수 있을 리는 없습죠!”

“그야말로 꽁무니가 빠지도록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하하하하!”

그렇게 잠시 석인들의 웃음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진다.

그들이 지금처럼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조금 전 격퇴했던 침입자에 대해, 홍인족과 가시구족에게서 미리 들었던 것이다.

-웬 괴물 같은 놈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우리 종족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놈의 공격에서부터 살아남은 홍인족에 더불어.

-홍인족들의 말을 듣고 대비를 했는데도 놈을 막지 못하고 당했습니다! 석인족도 우리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할 겁니다!

가시구족에게서도 경고의 말을 전해 듣자, 석인족은 이들의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서 놈이 올 곳을 예상하여 병력을 배치해 두었고, 통쾌하게 쫓아내는 데에 성공했던 것이었다.

‘자연의 힘’을 화살에 담아 발사하는 석인족의 [종족 특성]에 화들짝 놀라 도망치던 놈을 끝까지 쫓을까도 고민했으나, 홍인족과 가시구족을 단신으로 초토화시켰다는 말을 이미 들었던 그들이었다.

더 쫓아갔다가는 역으로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존재했기에 석인족의 구역에서 몰아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물론 그냥 만족한 건 아니었고, 놈에게까지 들리도록 잔뜩 비웃어준 건 덤이었다.

이갈론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피부색이 황색인 종족은 들은 적도 없는데. 대체 어디 출신이지?”

그의 의문은 일리가 있었다.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종족은 모두 그들이 알고 있었거늘, 피부가 황색인 인간 종족은 듣도 보도 못했다.

‘아니지, 어차피 어디서 왔든 상관없다.’

하지만 그 황색의 인간 종족에 대해 생각하던 것도 잠시, 이갈론은 고개를 저었다.

“어디 종족인지는 몰라도, 잔뜩 병력을 끌고 오지 않는 이상 어림도 없다!”

“맞습니다!”

“위대하신 이갈론 님께 이 영광을!”

또 한 번 함성이 회의장을 채운 순간이었다.

벌컥-

“크, 큰일 났습니다!”

문이 벌컥 열리며 병사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아까 그놈으로 추정되는 놈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뭣이! 당장 안내해라!”

이갈론은 벌떡 일어났고, 그들은 병력을 이끌고 침입자가 오고 있다는 마을의 외곽으로 이동했다.

“이번에야말로 놈을 죽이자! 등에 화살을 꽂자!”

“와아아아-!”

백여 명에 이르는 ‘수르’의 궁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이어서 다가오는 인영의 차림새를 본 이갈론의 눈이 번쩍였다.

‘음?’

아까와는 다르게, 전신에 시꺼먼 갑옷을 착용한 게 눈에 띄었다.

얼핏 봐도 보통이 아닌 갑옷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나, 그는 코웃음을 쳤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껏 석인족의 화살을 막고자 각종 갑옷을 입고 덤벼온 놈들이 한 무더기였던 것이다.

그 시도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저딴 갑옷 하나로 우리들의 화살을 막으려 하다니, 꼬치구이로 만들어달라고 작정을 했구나! 일발 장전!”

“장저-언!”

이갈론의 명령에 백여 명의 석인들이 일제히 화살을 장전했다.

꽈악-!

거기에 석인들의 [종족 특성], ‘자연의 힘’이 화살에 담긴다.

스아아-

하나하나가 특출나게 강력하진 않았어도, 백여 개가 모이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발사하…….”

이갈론이 ‘발사하라’라는 지시를 내리려던 때였다.

쾅!

느닷없이, 기습적으로 땅을 박찬 인영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는 게 아닌가.

가히 생전 처음 본다고 할 수 있을 만한 폭발적인 기세였지만, 이갈론은 손을 내리그었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발사하라-!”

지금 도망가도 목숨을 부지할지 장담할 수 없는데, 오히려 달려들다니.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이었다.

퓨퓨퓨퓨퓻!

화살의 비가 인영에게 짓쳐 들었다.

‘자연의 힘’이 담긴 화살은 삽시간에 인영을 덮어버렸고,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쿠오오-

이갈론은 고슴도치가 되어버렸을 인영을 상상하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엇?!”

스윽-

처음 기세 그대로 먼지를 가르며 쇄도해 오는 인영을 보기 전까지는.

“다, 당장 장전하라! 발사해!”

당황한 이갈론의 지시에 석인들이 허겁지겁 화살을 발사했지만.

팅팅팅팅-!

인영의 갑옷에 닿기가 무섭게 화살들은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걸 본 이갈론은 경악했다.

“저게 무슨……! 후, 후퇴! 거리를 벌려라!”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한 이갈론이 뒤늦게 고래고래 외쳤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스킬, 광검[Lv.1]을 발동합니다.]

서걱-

푹-

어느새 거리를 모두 좁힌 인영, 강현의 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 * *

그 이후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나 다름없었다.

화살이 주력인 놈들에게 있어, 화살이 통하지 않는 강현의 존재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도, 도망쳐!”

“괴물! 괴물이다!”

적들은 활이고 화살이고 내팽개치며 다들 도망을 갔고, 그 탓에 진영이 삽시간에 와해되어 양 떼에 늑대를 풀어놓은 것과 다를 게 없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

[스킬, 섬광[Lv.1]을 발동합니다.]

푸욱!

“끄헉……!”

대장으로 보이는 놈과 놈이 가지고 있던 에테르 결정체까지 파괴하는 데에 성공했다.

퍼석-

[600 에테르를 획득합니다.]

자신들의 대장이 당하든 말든, 도망가느라 바쁜 적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현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조금만 더 시간이 끌렸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도 그럴 게, 충전시켜두었던 아르크트 내의 에테르가 다 떨어지기까지 남은 시간이 아슬아슬했던 것이다.

아르크트의 ‘시동’이야말로, 강현으로 하여금 화살 밭으로 뛰어든다는 과감한 선택을 하게 만든 이유였으니까.

스르르르르륵-

과연,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전신을 덮었던 칠흑의 갑옷이 낡은 갑옷으로 되돌아간다.

엔딜 펠란이 충전시켰던 에테르가 다 떨어진 것이다.

물론 이미 적들이 꽁무니가 빠지도록 도망가는 지금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흥, 아르크트에 담긴 ‘격’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화살이나 쏴대다니. 미개하기 짝이 없군.

멀어지는 적들을 본 엔딜 펠란이 거들먹거리며 조소했다.

평소라면 한마디 쏘아붙여 줄 만도 하건만, 이번에는 강현도 부정하지 않았다.

엔딜 펠란의 말대로, 직접 체감한 ‘시동’한 아르크트의 위력은 그의 예상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1단계로도 쓸 만하잖아?’

조금 전, 엔딜 펠란은 아르크트의 힘을 총 3단계까지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었다.

다만 2단계부터는 더 많은 에테르와 마기(魔氣)가 필요하다고 하기에 1단계만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고도 했었고.

하나 저 화살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1단계로도 충분했다.

전신을 보호하는 것 외에 특별한 효과는 없었어도, 고작 화살이나 쏴대는 놈들을 상대하기에는 그걸로도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시청자들에게도 느껴졌는지.

-와 저 갑옷 튼튼하네

-그니깐;; 저거 하나로 걍 다 뚫었네;;

-에테르 담긴 화살들을 계속 맞았는데 끄떡없누;;

강현이 세 번째 에테르 결정체를 파괴했건 말건, 그들의 관심은 온통 갑옷에 쏠려 있었다.

-갑옷 이름이 머임?

-어디서 난 거예요?

심지어 갑옷의 신상을 묻는 채팅도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기에.

“제 차원에서 가져온 겁니다.”

강현은 얼버무리며 재빨리 아르크트를 아공간에 집어넣어 버렸다.

‘설마 한두 번 보고 알아보지는 못하겠지.’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다행히 아르크트가 지나치게 낡고 녹슨 게 도움이 될 듯했다.

아르크트를 알아봤던 엔딜 펠란조차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으니 말이다.

‘시청자들이 몰려들기 전 보상을 수령해서 다행이군.’

그가 보상으로 아르크트를 받자마자 ‘시동’하면서까지 활용한다는 걸 시청자들이 알게 된다면,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가령, 아르크트가 ‘시동’할 수 있는 갑옷인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같은 질문을 해온다든가.

엔딜 펠란이라는 존재와 함께하고 있다는 걸 흐음좌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강현으로서는 대답이 궁해지는 질문이었다.

-다시 쓸 수 있게 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거다.

‘괜찮습니다. 틈틈이 충전이나 해주시죠.’

충전이 따로 필요하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시동’한 아르크트의 튼튼함을 제대로 맛본 그로서는 감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강현의 시선이 전방을 훑었다.

스윽-

슬금슬금 다가와 포위망을 형성하려는 활잡이 종족이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몇몇 적인족과 뾰족이들이 보인다.

아무래도 잔당들이 저 활잡이 종족에게 붙은 모양이었다.

-아직 잔당이 꽤 남은 거 같은데 어떻게 할 거지? 바로 들어갈 건가?

‘아르크트도 못 쓰는데 어떻게 들어갑니까. 마을에 남은 게 몇백 명은 되는 것 같은데 다 때려잡을 수도 없고요.’

엔딜 펠란의 말에 강현이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 말처럼 활잡이 종족은 숫자가 많을뿐더러, 제약을 하나도 해제하지 못한 맨몸으로 달려들기에는 화살이 문제였다.

다만.

‘수장이랑 에테르 결정체는 처리했으니.’

에테르를 턴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본거지를 공격할 이유는 없었다.

‘나중에 다시 와야겠군.’

저들은 근방을 통합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방해세력이 될 것이었기에, 머지않아 다시 와야 할 것이긴 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강현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오, 드디어?

-이제 돌아가나?

-돌아가서 두근두근 개발 라이프 시작하는 거??

시청자들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돌아갑니다.”

청인족 마을로의 복귀.

자그마치 세 개 군소종족을 처리한 뒤에야 내린 결정이었다.

‘얼마나 바뀌었으려나.’

강현은 청인족들이 얼마만큼의 성장을 이루어냈을지를 상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 * *

[아, 드디어 많고 많은 시청자 여러분들이 고대하시던 일이 일어나는군요! 이강현 참가자가 드디어 청인족들의 마을로 돌아갑니다!]

[다른 참가자들은 이제야 내정 점검을 마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정말이지 놀라운 격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놀라울 만합니다! 왕복 달리기로 친다면 한 바퀴, 아니, 두 바퀴는 차이나는 셈이니까요!]

[뿐만 아니라 세 군소종족을 처리하면서 자그마치 1,300에 달하는 에테르를 얻은 이강현 참가자인데요!]

[예에, 다음 전략은 무엇일지, 또 어떤 방향으로 청인족을 이끌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물론, 그전에 바뀌어 가는 청인족들의 마을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요 감상 포인트가 되겠지만요!]

* * *

“거의 다 왔네.”

‘지도’를 띄운 강현은 청인족들의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이라는 걸 확인했다.

실제로 저 멀리 건물로 보이는 것들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마치 버섯을 보는 듯한 독특한 양식의 건물들이었다.

그가 떠나기 전까지의 청인족 마을이 그냥저냥 평범한 마을이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사이 저 정도 높이의 건물들이 지어졌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가 던진 이른 승부수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

가까워지는 건물들을 보자 왠지 모르게 뿌듯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차원 상태창.”

팟-

이름 : 이강현

차원 : 제28-3 차원

차원 등급 : E

종족 : 청인족

종족 특성 : 발현(열화)

인구 : 3,201

보유 에테르 : 1,812

사기 : 최상

차원 상태창을 본 강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직 차원 등급은 그대로였어도, 사기가 최상으로 오른 데다가 인구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이었다.

‘이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갈 수 있겠어.’

강현은 이 모의차원전쟁에 대해 시청자들이 알려주었던 몇몇 정보들을 떠올렸다.

‘보통은 군소종족을 털면서 힘을 기르고, 대륙을 통일한다고 했었지.’

다른 차원의 탐색 및 교류는 그 뒤에 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시청자들은 말했었다.

하나 강현은 남들처럼 천천히 할 생각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차원 등급을 올린다.’

가급적 빨리 차원 등급을 D까지 올린 뒤, 대륙 통일을 생략하고 인근 차원을 탐색하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대륙을 통일하면서 힘을 기르는 게 아니라, 다른 차원을 턺으로써 그걸 대신하려는 것이었다.

‘도착하면 일단 마을을 한번 돌아보고 바로 [종족 특성] 강화를…… 음?’

그때, 전방을 본 강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배자니임-!”

거기에는, 루루가 요란스럽게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강현을 보고선 우다다다 달려오고 있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머리에는 흰 고깔모자까지 쓴 상태였다.

‘왜 여기까지 나온 거지?’

마을에 진입하기도 전에 마중을 나온 루루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강현은, 이어지는 루루의 외침에는 더 큰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이름을, 마을 이름을 지어주셔야 합니다! 저희 마을에 활기가 넘치게요!”

“이름이라니?”

루루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강현이 물었다.

갑자기 이름을 지어달라는 게 다소 뜬금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루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허리에 양손을 올리며 씩씩하게 말했다.

“일족을 이끌어가는 분이 마을의 이름을 지어주시면, 마을에 활기가 넘치게 되거든요!”

“아, 일종의 전통 같은 거구나.”

“넷! 위대하신 지배자님이 직접 이름을 지어주신다면 마을에 더더욱 활기가 돌 거예요!”

강현은 그제야 왜 루루가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좋은 기를 받으려고 하고자 하는 듯했다.

하나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지을 수는 없었다.

“한번 둘러보고 정할게. 그래도 되지?”

“물론입니다! 그러면 얼른 모시겠습니다! 따라와 주시길!”

루루가 한참을 앞서 달려 나간다.

그에 따라 루루가 쓴 흰 고깔이 덜렁거렸다.

‘파란 꼬마에 흰 고깔? 어디서 많이 본 조합인데.’

분명 낯이 익었는데, 기억나지는 않았다.

“빨리 와주세요, 지배자님!”

어느새 마을 입구에 도달한 루루가 뒤를 돌아 손을 흔든다.

강현은 루루를 따라 청인족들의 마을로 진입했다.

탁 트인 도로의 양옆으로 버섯을 연상시키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가득 펼쳐진 가운데, 청인족들이 뽈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와……. 그저께랑은 아예 달라졌네.’

늘어진 건물의 숫자와 도로, 시설, 청인족의 숫자 등, 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달라진 모습이었다.

마을 전체에서 활기가 느껴진달까.

-오 건물들 양식이 신기하네

-그러게ㅋㅋㅋ 귀욤귀욤한데?

시청자들도 그와 비슷한 걸 느꼈는지, 신기하다는 채팅이 연이어 올라왔다.

“이쪽입니다, 지배자님!”

루루를 따라가는데, 강현을 알아본 청인족들이 명랑하게 배꼽 인사를 해온다.

“지배자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

강현은 청인족들의 인사를 받으며 루루에게 다가갔다.

“그럼, 지배자님이 주신 에테르로 가꾼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닷!”

그 후로 루루는 마을 시설 곳곳에 강현을 데려가 간략한 설명을 해주었다.

“여기부터는 쭈욱 농장이고, 저긴 시장입니다! 또 저 건물들에서는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농장과 시장에서는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는 청인족들을 볼 수 있었고, 병영과 교육소에서는 일족을 지킬 청인족 병사들이 늠름한 자태를 뽐냈다.

“마을 전방위로 도로를 새로 깔고 있고, 요새와 연구소도 곧 완공될 예정입니다, 또 저쪽을 보시면…….”

루루의 설명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내정을 잘 모르는 강현이었지만, 루루가 잘해주고 있다는 것만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강현에게 설명을 해주는 동안에도, 루루는 끊임없이 상태창을 띄워서 조작하는 중이었다.

“으음……. 이건 나중에 짓고…… 숙소를 하나 더…….”

뭔가를 바쁘게 누르는 루루를 본 시청자들이 감탄했다.

-오오 지배자가 할 걸 다 해주네

-와 근데 벌써 교육소를 지었다고?

-농장이랑 시장도 ㅈㄴ 많아 미쳤어

-다른 참가자들이 보면 의욕 털리겠는데;;

-내정하는 거 보니까 웬만한 하위권 참가자들보단 잘하는 거 같은데?

그건 강현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루루는 잘해주고 있었다.

“고생했겠네.”

“아닙니다! 지배자님이 보내주신 에테르 덕분인걸요!”

물론, 루루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부인했지만 말이다.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이런 기세면, 며칠 뒤면 마을이 아니라 도시라고 불러야 될 거…… 음?’

그때, 강현의 눈이 한곳을 향했다.

저 멀리 버섯 모양의 건물을 짓고 있는 청인족 인부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망치질을 하고 자재를 나르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이다.

아니, 그냥 빠른 수준이 아니라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그 공사 현장 옆을 지나가는 청인족들은 여느 때처럼 걷고 있는데, 건물을 짓고 있는 청인족들만 누군가 가속을 걸어놓기라도 한 듯 어마어마한 속도로 건물을 짓고 있었다.

-저게 시간 가속임

-ㅇㅇ 몇 달 걸려서 지을 거 하루면 짓더라

채팅을 본 강현은 저게 더 비욘드 측이 설정해 놓았다던 ‘시간 가속’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저런 게 된단 말이야……?”

자재를 나르는 청인족 인부의 잔상을 보며 강현이 중얼거렸다.

예선의 DBC도 전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본선에 비하면 양반인 것 같았다.

시간을 부분적으로 가속시키다니.

이거야말로 신에 가까운 권능이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흥, 이 몸도 [권역]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까?’

-흠흠. 목이 아프군. 이 몸은 좀 쉬어야겠다.

‘…….’

그 자존심 강한 엔딜 펠란이 목이 아프다는 헛소리를 하면서 대답을 회피하는 걸 보면, 역시 아무나 ‘시간 가속’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걸로 보였다.

“이제 거의 다 왔답니다!”

그렇게 말한 루루는 강현을 마을의 중앙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어느 휘황찬란한 버섯 건물 앞에서 멈추어 섰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 버섯 지붕이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짜잔, 이곳이 소개해 드릴 마지막 곳이자, 지배자님이 머무실 건물입니다! 지배자님의 노고에 모두 감사해하고 있답니다!”

“……!”

루루의 말에 강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딱히 한 거라곤 에테르를 얻어다 준 것뿐인데 이렇게나 감사를 표하다니.

-아무리 내정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해주는 경우가 있나?

-글쎄;; 3일 차에 에테르 1,300을 가져다준 건 이강현이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다른 참가자들은 다 지가 건물 짓던데, 이강현은 루루가 걍 해주네

채팅을 힐끗 본 강현은 웃어 보였다.

“잘 쓸게.”

“헤헷! 넷!”

강현의 얼굴을 뿌듯하게 바라본 루루가 신나게 소리쳤다.

“이걸로 루루의 마을 설명은 끝났답니다! 이제 마을 이름을 지어주세요! 활기가 마을 전체에 감돌게요!”

그들의 지배자가 훌륭한 이름을 지어줄 거라 확신하는지, 루루의 눈이 반짝거린다.

“으음…….”

강현은 턱을 괸 채 머리에 떠오르는 몇몇 이름을 읊어보았다.

“청인들이 사는 마을이니까…… 청인촌(靑人村)? 아니면 청리(靑里)?”

그런데, 채팅창이 질색을 하는 게 아닌가.

-으엑; 청인촌이랑 청리가 뭐냐;;

-작명 센스 뭔데ㅋㅋㅋㅋㅋㅋ

-루루 울겠다 이놈아! 잘 좀 떠올려!

실제로 루루를 보자.

“우, 우으…….”

이름이 별로인지 반쯤 울먹거리는 중이었다.

그걸 보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제대로 지어야겠네.’

그렇지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도 청인촌을 뛰어넘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ㅋㅋ 울상 지은 루루를 보고도 괜찮은 이름 하나 못 떠올리네

-인간치고는 무뚝뚝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까 걍 로봇인 거 아님?

-ㅋㅋㅋㅋ로봇ㅋㅋ

-미션 하는 기계인 거임ㅋㅋㅋ

“……조용히 좀 하시죠.”

놀려대는 시청자들에게 강현이 쏘아붙였다.

사람한테 로봇이라니.

로봇은 지구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시청자들도 다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뭐라고 짓지…….’

강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알록달록한 버섯 건물들이 보였고, 그 사이를 온통 시퍼런 청인족들이…….

‘시퍼레? 파란색?’

그 순간, 어떤 이름이 강현의 머리를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럼 블루 빌리지(Blue Village)는 어때?”

블루 빌리지.

그게 강현이 생각한 이 마을의 이름이었다.

한자어를 영어로 바꾼 정도의 차이였으나, 어감은 나쁘지 않았다.

-오, 어감은 괜찮은데?

-청인촌에서 약간 바꾼 거 같은데 느낌이 확 달라지네

-ㅇㅇ 좋은 듯

블루 빌리지와 청인촌이 어떻게 다르게 들린 건지는 몰라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또한 시청자들에게만 그럴싸하게 들린 건 아닌 것 같았다.

루루의 표정도 활짝 펴진 것이다.

“블루 빌리지…….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지배자님! 모두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리도록 할게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루루가 허공에 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조작했을 때였다.

[청인족의 마을 이름이 <블루 빌리지>가 되었습니다.]

[<블루 빌리지>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블루 빌리지> 내 청인족의 활력이 증가합니다.]

[<블루 빌리지> 내 청인족의 사기가 상(上) 아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연달아 메시지들이 떠오르면서.

-해가 창창한 어느 날, 마을을 둘러보신 지배자님께서는 명명하셨지~

-블루 빌리지! 블루 빌리지! 푸르고 푸른, 푸르디푸른 마을이라고~

사방에서 청인족들의 노래가 들려왔다.

마구잡이로 부르는 듯했어도, 신기하게도 나름의 운율이 존재했다.

-블루 빌리지! 블루 빌리지!

“…….”

마을의 이름을 지어준다면 더욱 활기차질 거라는 루루의 말을 들어서일까.

그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활기가 한층 더해진 느낌이었다.

* * *

루루는 그 뒤로도 ‘블루 빌리지, 블루 빌리지!’를 연호하며 한참을 방방 뛴 끝에야 업무를 하러 돌아갔다.

“그러면, 저는 다시 가 보겠습니다! 블루 빌리지 안에서는 절 소환하실 수도 있으니,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그래.”

루루를 보낸 강현은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행시킬 준비에 착수했다.

그는 차원 상태창을 띄워 보유 에테르를 확인했다.

보유 에테르 : 1,877

“1,877이라…….”

이미 루루에게 얼마든지 에테르를 써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상태였기에, 에테르를 사용하는 데에 지장은 없을 것이었다.

-흑흑 불쌍한 루루

-기껏 차곡차곡 모아뒀더니 애먼 놈이 와서 다 써버리겠네 ㅜㅜ

‘로봇’ 이후로 강현을 놀리는 데에 재미가 들린 듯한 시청자들의 채팅은 무시하자.

강현은 곧바로 [종족 특성] 강화창을 불러냈다.

그의 목표는 한시라도 빨리 차원 등급을 올리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청인족들의 ‘격’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격’을 올리려면, [종족 특성]을 강화시켜야 했고 말이다.

[종족 특성 강화]

-제시되는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방향의 선택이 완료되면 해당 종족의 [종족 특성]은 점진적으로 선택한 계열을 향해 나아갑니다(1,000 에테르 필요).

[육체계] : [종족 특성]이 신체와 무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달해 나갑니다.

*육체계 선택 시 이번 강화 때 [백검(白劍)] 획득 가능, 다음 강화 때 [백궁(白弓)] 선택 가능

[정신계] : [종족 특성]이 정신과 지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달해 나갑니다.

*정신계 선택 시 다음 강화 때 [미약한 염동력] 선택 가능

강현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육체계를 선택합니다.]

[1,000 에테르가 차감됩니다.]

아직도 미션이 초반부인 만큼 청인족들이 몸을 쓸 일도 많을 터였으니, 당분간은 쭉 육체계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청인족의 [종족 특성] 강화 중…….]

강현이 강화가 완료되기를 기다리는데, 어이없다는 채팅이 연달아 터져 나온다.

-??

-강화를 또 한다고? 벌써??

-다른 애들은 이제 군소종족 하나 진득하게 물고 있을 시간인데;;

[email protected]#이는 아직도 내정 보는데 말이 되나;;

-ㅋㅋㅋㅋ ㄹㅇ?

-그렇다니깐;;

하지만 시청자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그가 강화를 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팟-

[청인족들의 ‘격’이 미세하게 높아집니다.]

[청인족 전용 스킬, [백검]을 생성합니다.]

백검

-순백의 색을 불러내 검을 강화합니다. 강화된 검은 강한 절삭력을 가집니다.

“……진짜 광검이랑 비슷하네.”

청인족들의 신체 부위를 강화시켜 주는 백경화를 처음 봤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청인족들의 스킬은 그의 스킬들과 흡사했다.

검을 강화시켜 주는 이번 백검은 더욱 그러했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두 번째 [종족 특성] 강화를 이루어냈습니다.]

[현 시간부로 ‘차원탑’을 지을 수 있게 됩니다.]

[차원탑을 건설하면 차원 등급이 D등급으로 상승합니다. 또한 인근 차원 탐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차원탑(300 에테르)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게 해주는 시설입니다. [종족 특성]의 두 번째 강화를 마치면 개방됩니다.

“아……. 이걸 지으면 차원 등급이 D등급으로 오른다는 거구나.”

강현은 즉시 300 에테르를 소모하여 차원탑 건설을 눌렀다.

뚝딱뚝딱-

그러자 강현의 집 근처에 몇몇 청인족들이 달려와 건물의 터를 잡더니, 어마어마한 속도로 건설을 시작했다.

-차원탑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 23시간 59분

이걸로 여태까지 모았던 1,877 에테르 중 순식간에 1,300 에테르를 사용한 상황.

-와 하나도 안 아까운가 봐

-ㅋㅋㅋ 2등이 700 모았던데

-노빠꾸네 진짜ㅋㅋㅋㅋ

시청자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아직 강현의 소비는 끝난 게 아니었다.

[제약 해제 : 500 에테르]

[500 에테르를 사용하여 제약을 해제하시겠습니까? (Yes/No)]

마지막으로, 첫 번째 제약까지 해제하려던 것이다.

‘에테르가 딱 되네.’

살짝 미소지은 강현은 지체 없이 Yes를 눌렀다.

[첫 번째 제약을 해제합니다.]

쿠오오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스킬, 순보[Lv.1]를 획득합니다.]

[스킬, 질주[Lv.1]를 획득합니다.]

[스킬, 참격[Lv.1]을 획득합니다.]

레벨이 20까지 오른 걸 확인한 강현이 미소를 머금었다.

보유 에테르 : 80

보유 에테르를 대부분 쓴 셈이었나, 그 결과가 꽤나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이걸로 당장 할 건 거의 다 했고…… 딱 하나 남았네.’

대강의 준비를 마쳤으니, 차원탑이 지어지는 동안 청인족들의 무력을 확인하면 될 것 같았다.

그가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하고 있을 때였다.

-근데 님, 대륙 통일 안 해여?

-차원탑은 원래 천천히 짓는 건데;;

-ㅇㅇ 세력 넓히는 데에 도움 안 될 거

채팅을 본 강현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시청자들에게 그의 차후 계획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걸.

‘뭐, 어려운 건 아니니까.’

마침 강화와 제약도 해제했겠다, 이 자리에서 말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해서, 그는 담담하게 선포했다.

“대륙을 통일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다른 차원을 공격하는 걸로 그걸 대체할 생각입니다.”

초패스트 차원 침략.

초패스트 군소종족 공격에 이은, 그의 새로운 전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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