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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본선 : 모의차원전쟁(1) (25/51)

6장 본선 : 모의차원전쟁(1)

‘문제라도 있습니까?’

엔딜 펠란의 경악성을 들은 강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여태까지 엔딜 펠란과 함께 열 번도 넘게 보상을 확인했으나, 이 같은 경악을 토해낸 건 지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먼지와 녹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필시 고급스러운 진청색의 갑옷이었을 듯했다.

하나 단지 그뿐,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엔딜 펠란의 말에는 그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떤 경로로 더 비욘드 측이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건 이 몸의 부하가 쓰던 갑옷이다.

‘예? 정말입니까?”

강현은 깜짝 놀랐다.

설마 다른 누구도 아니고, 엔딜 펠란이 거느리던 부하의 갑옷이라니.

-그래. 지나치게 낡아빠져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만 확실하다. 이 몸 밑에 있을 때도 <초월> 직전이었는데, 결국 <초월>에 성공했나 보군.

‘그 정도면…… 꽤 강한 부하였던 거 아닙니까?’

-굳이 따지자면…… 왼팔이었다고 볼 수 있겠군. 괜찮은 녀석이었지.

‘왼팔…….’

강현은 엔딜 펠란의 말을 들으며 갑옷을 다시 찬찬히 뜯어보았다.

처음 갑옷을 봤을 때는 별 볼 일 없어 보였는데, 엔딜 펠란의 왼팔이나 다름없는 부하의 것이었다는 듣고 나자 달리 보인 것이다.

엔딜 펠란이 누구던가.

수만의 악마들을 당당히 거느리던 마계의 대악마다.

그런 그가 괜찮다고 할 만큼의 악마의 아티팩트라면, 필시 대단한 아티팩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부푼 마음으로 갑옷을 살펴보던 것도 잠시, 강현의 표정이 다시 애매해져 갔다.

‘<초월자>였던 악마가 쓴 것치고는 좀…….’

분명, 다시 살펴보자 화려한 장식이나 정교하게 이루어진 사슬의 구조 등, 귀중한 갑옷이었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역시 너무 손상돼 보이는 게 문제였다.

어찌나 낡고 녹슬었는지, 그가 입고 있는 루드스의 깃털 갑옷이 훨씬 나아 보일 지경이었다.

그의 표정이 안 좋아지자 다시 엔딜 펠란이 끼어들었다.

-흥, ‘아르크트’를 공짜로 받고도 표정이 구려지는 건 네놈밖에 없을 거다.

‘아르…… 뭐라고요?’

-‘아르크트’. 천 명의 난쟁이들이 백 일 밤낮으로 두드려 만들어낸 그 갑옷의 이름이지. 네놈의 반응을 이 몸의 부하들이 알게 된다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일 거다.

‘그래 봤자 낡아빠진 갑옷인데 뭐가 좋다는 겁니까. 별 기능도 없어 보이는데.’

강현이 퉁명스럽게 받아쳤을 때였다.

돌연.

-‘시동’을 안 했는데 기능이 발동될 리가.

엔딜 펠란이 코웃음을 치며 말해오는 게 아닌가.

‘시동?’

-그래, 시동. 고귀한 아티팩트들은, ‘시동’을 따로 해주어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보아하니 상당히 파손되긴 했어도, 잠깐 동안은 그 진가를 끌어낼 수 있을 거다.

‘……!’

강현이 눈을 부릅떴다.

‘시동을 따로 해야 한다고?’

그 말을 들은 강현이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데.

팟-

[실시간 시청자 반응을 개방합니다.]

실시간 채팅이 열리며, 시청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ㅎㅇㅎㅇ

-강하(강현 ㅎㅇ라는뜻)

-여기가 인간종이면서 붉은 악마라는 칭호를 갖다 쓴 참가자의 방입니까?

-용자다, 용자야!

…….

몰리는 채팅들을 본 엔딜 펠란이 말했다.

-나중에 따로 알려주마. 지금은 할 일이 많은 듯하니.

‘그래야겠네요.’

쩝, 하고 강현은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서는 갑옷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만, 그러기에는 당장 일이 넘쳐났다.

-서브 미션 마지막에 간지 났었음ㅎ

-뭐 말하는 거?

-요괴 덩어리 그어버리는 거 말하는 거 아님?

-아 그건 ㅇㅈ이지

-ㄹㅇㅋㅋ

…….

들어오자마자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시청자들도 시청자들이었지만.

반짝-

한마디도 안 하고 그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는 청인족들도 있었으니까.

강현은 갑옷을 집어넣는 한편, 청인족들을 마주 보았다.

강현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청인족들의 반응은 금방 돌아왔다.

“지배자이시여-! 명령을 내려주시옵소서-!”

“명령을 내려주시옵소서-!”

저렇게 말하며 바짝 엎드린 것이다.

아직 그 모습이 살짝 어색했지만, 강현은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일단…… 각자 할 일들을 하고 있으면 좋겠는데.”

“옛!”

우수수 일어난 청인족들이 총총거리며 마을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아까 엘이 틀어주었던 고블린들의 영상을 대입한다면, 아마 농사나 장사 같은 걸 시작할 터였다.

“안녕하세요, 이강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강현은 멀어지는 청인족들의 뒷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힘내세요!

-대박 한번 내보자!

-하위 종족의 희망! 파이팅!

“……?”

그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그들의 반응이 묘하게 호의적이었다.

‘언더독 효과라도 받는 건가.’

아무튼.

대강의 일을 모두 마친 강현은 그제야 다시 차원 상태창을 볼 수 있었다.

이름 : 이강현

차원 : 제28-3 차원

차원 등급 : F

종족 : 청인족

종족 특성 : 발현(열화)

인구 : 1,000

보유 에테르 : 7

사기 : 중

…….

차원 상태창에 더불어 <영웅>과 [종족 특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들까지.

다시 봐도 뭘 해야 되나 싶을 만큼 복잡했다.

-영웅부터 ㄱㄱ

-리더 하나 만들어두고 가즈아-!

-영웅 ㄱㄱ

시청자들은 영웅을 먼저 만들기를 원하는 걸로 보였다.

“그럼, 한번 눌러볼까요.”

별로 어려운 건 없어 보였기에, 그는 Yes로 손을 가져갔다.

[영웅 생성]

[제시된 능력치 가운데, 총 40의 pt를 자유로이 분배하여 종족의 영웅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영웅은 능력치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최초 1회에 한해 무료로 영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차후에는 1,000 에테르가 소비됩니다.

“한 번만 무료라…….”

강현은 메시지를 꼼꼼하게 읽어내려갔다.

[무력]

-신체 : 0/10

-전략 : 0/10

-통솔 : 0/10

[지력]

-외교 : 0/10

-내정 : 0/10

-처세 : 0/10

남은 pt : 40

“뭐가 좋으려나.”

청인족의 ‘격’이 낮다는 걸 고려한 것인지, 다소 심플한 능력치였다.

-보통 첫 영웅은 무력 몰빵이나 문무겸비로 많이들 함.

-ㅇㅇ 굳이 따지면 대부분 무력은 다 찍고 시작하고

시청자들이 재잘거렸다.

강현의 생각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력이랑 지력을 비슷하게 올리는 게 무난하겠는데.’

결정을 내린 그가 능력치를 올리려 할 때였다.

-잠깐.

엔딜 펠란이 끼어들었다.

‘예? 왜 그러십니까?’

-일단 나머지 항목까지 다 둘러보고 결정하지 그러나? 성급하게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 않나.

‘음……. 그러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시청자분들, 먼저 다른 것들도 본 다음에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강현은 상태창의 각 항목을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보유한 에테르의 양을 보고 멈추었다.

보유 에테르 : 7

‘에테르가 조금 늘어 있네.’

아까는 0이었던 에테르가 7이 되어 있었다.

청인족들이 일을 하면서 얻게 된 에테르로 추정됐다.

“나머지는 대충 뭔지 알겠고……. [종족 특성]이 발현? 이게 뭐지?”

그는 청인족의 [종족 특성]을 눌러보았다.

발현(열화) : 제28-3 차원의 지배자가 가진 [종족 특성]의 열화판입니다. 에테르를 끌어와 스킬의 형태로 발현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 발현 가능한 스킬 목록 : X

“오…….”

강현이 무심코 감탄사를 내뱉었다.

미션이 시작되기 전 엘이 말하기는 했다.

다스릴 종족들의 특성이 참가자의 그것과 비슷할 거라고 말이다.

그래도 직접 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레벨 시스템은 없는 것 같긴 해도…… ‘스킬’이 대놓고 적혀 있네.’

-흠……. 네놈의 [종족 특성]에서 스킬만 쏙 빼온 듯한 특성이군. 강화는 언제할 셈이냐?

엔딜 펠란의 말에 그는 [종족 특성] 강화 메시지를 찾아 손을 가져갔다.

[종족 특성 강화]

[제시되는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방향의 선택이 완료되면 해당 종족의 [종족 특성]은 점진적으로 선택한 계열을 향해 나아갑니다.]

*최초 1회에 한해 무료로 [종족 특성]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차후에는 1,000 에테르가 소비됩니다.

[육체계] : [종족 특성]이 신체와 무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달해 나갑니다.

*육체계 선택시 다음 강화 때 [백검(白劍)] 선택 가능

[정신계] : [종족 특성]이 정신과 지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달해 나갑니다.

*정신계 선택시 다음 강화 때 [미약한 염동력] 선택 가능

역시 단순했다.

다만 영웅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리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육체계를 선택합니다.]

그가 고른 건 육체계 강화였다.

현재 미션의 극 초반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머리보단 몸 쓸 일이 더 많을 터였다.

그걸 감안하면 육체계가 여러모로 유용하리라고 판단됐다.

[청인족의 [종족 특성] 강화 중…….]

[청인족 전용스킬, [백경화]를 생성합니다.]

백경화

-원하는 신체 부위를 강화합니다. 해당 신체 부위는 순백의 색을 띠게 됩니다.

[주의 : 교육소를 지어야 사용 가능한 스킬입니다. 교육소를 건설하시겠습니까?]

“……신기한데.”

설명을 읽어보니 순백의 색을 띠게 된다는 점이 광검과 흡사했다.

정말로 자신과 닮은 종족이라는 게 실감됐다.

그렇게 [종족 특성]의 강화를 마쳤음에도 할 일은 많았다.

현재 건설 가능한 시설 목록 : 농장, 시장, 병영, 교육소…….

그 외에도 건설 가능한 것들이 줄지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자 목록이 나열돼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 시설에 들어갈 인원들까지 따로 배정해 줄 수 있었다.

그걸 본 강현은 깨달았다.

‘이거…….’

만약 그가 원한다면, 내정에 아주 깊게 관여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며 청인족들을 살피자, 그가 보기에 미비한 부분이 있었다.

직접적으로 내정에 관여한다면 더 매끄럽게 청인족을 이끌어갈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시청자님들, 지금쯤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좋나요?”

그저, 시청자들에게 의견을 구했을 뿐.

답은 금세 돌아왔다.

-제일 먼저 내정부터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들어야지.

-냅두면 효율이 좀 떨어져서 시간 좀 걸리더라도 짚고 넘어가는 게 나음

“그다음은요?”

-내정 다진 다음? 지도 띄워보셈

강현은 지도를 불러내 보았다.

청인족의 구역을 제외하고는 온통 어둠에 둘러싸여 있는 극히 제한된 지도였다.

-어둠 보이져? 영웅이랑 같이 주변 둘러보면서 어딘가에 있을 군소종족 찾으면 됨. 걔들 정리하면 에테르도 줌.

-ㅇㅇ 그러면서 세력 넓혀가는 게 보통.

-보통이 아니라 거의 다지.

-아, 그러면 정석이라고 정정하겠음

-ㅇㅋ

…….

강현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걸 직감했다.

시청자들의 말대로 내정을 확실히 다지고 시작할지, 아니면…….

‘승부수를 던질지.’

강현은 현재 순위를 불러내 보았다.

팟-

…….

53위 실프네(7)

54위 오색조(7)

55위 이강현(7)

56위 루크탐(6)

57위 레이센 란(6)

…….

엘은 누적 에테르가 기여도의 역할을 하게 될 거라 말했었다.

현재 그가 획득한 에테르는 7이었는데, 다른 참가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참가자가 5에서 9 사이였다.

“…….”

그는 그 순위표를 뚫어지라 응시했다.

분명, 내정을 다진다면 다른 참가자들과 벌어지지 않으면서 착실하게 청인족을 성장시킬 수 있을 터였다.

그 과정은 필시 안정적일 거고, 어쩌면 평화로울 수도 있겠지.

하나.

‘이건 경연이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것도 좋지만, 이건 경연이었다.

참가자는 아흔일곱.

따라서 차원도 아흔일곱 개나 존재한다.

그가 지난 서브 미션을 3위로 통과했다고는 해도, 엘은 몇 명이 <초월>하게 될 건지 말해주지 않았다.

10명이 될 수도 있지만, 1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초월>을 하는 게 1명이 된다면, 그가 3위를 유지한다고 할지라도 그냥 나가리였다.

즉, 현실에 안주하는 건 금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강현은 미션에 들어오기 전 엔딜 펠란이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대국적으로 보라고 했었지.’

그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강현은 잘 알았다.

그가 잘할 수 있는 건 내정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정에 시간을 쓸 바에는 차라리…….

턱-

강현은 차원 상태창을 과감하게 내리고 즉시 영웅 생성을 눌렀다.

[무력]

-신체 : 0/10

-전략 : 0/10

-통솔 : 10/10

[지력]

-외교 : 10/10

-내정 : 10/10

-처세 : 10/10

[해당 능력치로 영웅을 생성하시겠습니까? (Yes/No)]

그런데 아까 그가 만들려던 영웅과는 반대였다.

지력에 극단적으로 치우쳐진 영웅을 만들려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시청자들은 기겁했다.

-잠깐, 잠깐!

-진심임?

-이걸 이렇게 한다고……? 극 초반인데?

-무력에 몰빵하는 건 많아도 지력에 몰빵하는 건…….

-세력 확장 안 하게여?;;;

그러거나 말거나 강현은 Yes를 눌렀고.

슈와아아아-

“안녕하십니까, 지배자님! 루루라고 불러주십시오!”

똘똘해 보이는 청인족, 루루가 나타났다.

강현은 곧장 지시를 내렸다.

“당분간 모든 내정을 맡아줘.”

“맡겨만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습니다!”

자그마한 주먹을 힘껏 쥐어 보인 루루는 뽈뽈거리며 사라져갔다.

능력치를 내정에 만땅 투자했으니, 이제 강현이 건드리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돌아갈 것이었다.

-와, 내정은 아예 안 건드리게?

-그동안 님은 뭐하게요?

올라오는 질문에, 강현은 담담하게 답했다.

“전 군소종족을 털 겁니다.”

-……?

-…….

-아니;;;

-님;; 님 약해졌어요. 그건 알고 저런 영웅 만든 거죠?

채팅을 본 강현은 레벨을 확인했다.

레벨 : 10

[현재 제약은 열 개, 500 에테르를 사용하여 첫 번째 제약을 풀 수 있습니다.]

레벨이 겨우 10이라니.

예상보다 심한 제약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게, 이 정도 제약이라면 참가자들 대부분이 내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뿐더러.

스킬 : 광검[Lv.1], 섬광[Lv.1], 여명의 눈[Lv.4]

처음부터 그는, 레벨이 몇인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보면 아실 겁니다.”

강현이 예선을 1위로 뚫고 본선에서도 3위에 올라 있는 것, 그것은 단순히 무력만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결코 아니었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과 적절한 타이밍에 던지는 승부수.

저 둘이야말로 그를 여기까지 올려준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미션에서도 다를 건 없었다.

‘다른 참가자들보다 압도적으로 청인족을 성장시켜서, 성장 차이로 찍어누른다.’

그리고 그러려면 남들과 똑같이 행동해서는 안 됐다.

“바로 가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강현이 발걸음을 떼었다.

그 목적지는, 지도에 잔뜩 보이는 어둠이었다.

<초월자>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디멘션넷.

많은 <초월자>들이 기다려왔던 더 비욘드의 본선이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큰 반응은 없었다.

아니, 반응이 있기는 했다.

그저 그 반응이, 긍정적이지 않은 게 문제였을 뿐.

[아 심심하다]

-대체 언제 초반이 끝나는 거지? 애들이 허구한 날 상태창만 쳐보고 있으니까 노잼이네

└그니까ㅋㅋ

└오늘 시작했는데 진짜 개노잼임

└다섯 명 들가봤는데 다 똑같더라

[이거 원래 이렇게 지루함?]

-처음 보는데 내가 평소에 우리 애들한테 하는 거랑 별로 다를 게 없는데? 이걸 왜 봐야 함?

└초반은 원래 그럼

└참가자들이 안정화돼가면 슬슬 더 비욘드 측에서 애들끼리 부닥치게 만들 거임

└그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아시는 분?

└적어도…… 며칠은 걸릴 듯?

└오우 쉣;;; 그럼 그냥 다큐멘터리 아니냐;;

└ㄹㅇㅜㅜ

‘모의차원전쟁’이라는, 더 비욘드에서 내건 본선의 첫 번째 미션 때문이었다.

모의차원전쟁은 대부분의 <초월자>들에게 익숙한 형식의 미션이었기에 시청하는 입장에서 초반에 이렇다 할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그 초반이 지루하기까지 했으니 더욱 그러했다.

[존버간다]

-차원 게이트만 하나둘 열어가면 거기서부터는 꿀잼 시작임. 좀만 참자

└그건 맞는데…….

└확실히 나중 가면 재밌어지는 건 맞음.

몇몇 시청자들이 말했듯, 분명 미션이 진행될수록 흥미가 붙을 것이긴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의차원전쟁은 하나의 종족을 맡아 키워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거의 무궁무진한 변수가 생기게 마련이었고, 거기에 경연의 특정이 더해진다면 다양한 재미를 보장해 줄 터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였다.

당장의 재미에 목이 마른 시청자들은 불평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참가자의 종족이 무엇이든 간에 하는 행동은 하나같이 비슷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얔ㅋㅋ 어떤 미친놈이 미친 짓한닼ㅋㅋ]

-지력 몰빵한 영웅한테 내정 맡기고 혼자 군소종족 털러 나감 개또라이임ㅋㅋㅋㅋㅋ

틱 하고, 하나의 글이 올라온 것은.

다소 뜬금없는 제목과 내용이었으나, 심심해 죽던 시청자들의 관심을 잡아끌기에는 충분했다.

└??

└누가?

└빨리 말해주셈;;

└이강현이라고, 3위한 애임. ‘붉은 악마’.

└아~ 그 인간이면서 악마 사칭한 놈?

└ㅋㅋㅋㅋ지금 봤는데 진짜네

└ㄹㅇ 미친놈이네 이거ㅋㅋㅋㅋ

└나도 들가본다

…….

의외의 행동을 의외의 참가자가 해서일까.

폭발적인 반응이 뒤를 이었다.

당연하게도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근데 걔가 군소종족 잡을 능력이 되긴 함?

└그러게. 최상위종들도 다 내정에 집중하는 판국에?

└보여준 건 있긴 한데, 좀 무리수 같은데;;

상당수의 시청자들이 이강현이라는 참가자에 대해 큰 믿음이 없는 게 그 이유였다.

서브 미션을 진행하며 몇몇 재치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어도, 단지 그뿐이었던 것이다.

하나.

└진짜라니까;;

└ㅋㅋㅋ그럼 노잼 방송 계속 보든가

디멘션넷에 계속해서 글이 올라오자, 그들도 알게 되었다.

-무슨 이강현 얘기밖에 없냐;;

-하……. 걍 궁금해서라도 한번 가 본다

그의 방송을 직접 보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그렇게 누군가는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또 누군가는 반신반의하면서.

이강현의 방에, 시청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 * *

-ㅎㅇ

-와 진짜 밖으로 나왔네……?

-님 뭐임? 무슨 근거로 이런 선택을 한 거?

…….

확연히 늘어난 채팅을 본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시청자가 왜 이렇게 늘어났지?’

처음엔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분 탓이라기에는 채팅이 너무 많아졌다.

하나의 댓글을 미처 읽기도 전 새로운 댓글들이 올라와 제대로 읽지도 못할 정도였다.

-네놈의 특이한 전략 때문인 듯하군.

나직이 말해온 엔딜 펠란의 말을 듣고서야 강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특이한 거였지, 다른 참가자들은 한창 내정에 힘을 쏟고 있을 시간이었다.

신선한 걸 원하는 시청자들이 그의 방에 몰려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뭐, 나쁠 건 없지.’

더 비욘드의 순위를 결정하는 건 기여도와 시청자들의 표.

시청자들이 많이 쏠릴수록 표를 받을 확률도 덩달아 높아진다.

시청자 수의 증가는 좋으면 좋았지 나쁜 일은 결코 아니었다.

‘보여주기만 하면 되겠는데.’

시청자들이 몰려들면서 조건은 갖추어졌다.

남은 건, 잔뜩 모인 시청자들에게 그가 승부수를 던진 근거를 보여주는 것뿐.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임?

“일단 어둠을 밝히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중입니다. 겸사겸사 근처에 있을 군소종족도 찾고요.”

채팅창의 물음에 답하며 강현은 눈앞의 어둠을 향해 걸어 나갔다.

스아아-

그가 걸어 나가자 눈앞의 어둠이 걷혀나가면서, 근처의 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숲과 평야가 드러났고, 저 멀리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강도 보였다.

‘진짜 지구랑 비슷하네.’

참가자의 종족과 비슷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엘의 말처럼, 지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루루는 잘하고 있으려나?’

강현은 걸음을 늦추지 않으며 순위를 불러내 보았다.

팟-

57위 레이센 란(13)

58위 야롱(13)

59위 조르망테(12)

60위 브루스트리온(12)

61위 이강현(11)

…….

‘61위면…… 잘해주고 있구나.’

출발하기 전 55위였던 것에 비한다면 다소 떨어진 순위이기는 했어도, 그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고, 애초에 참가자인 그가 내정에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루루에게 맡겨놓은 걸 생각한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때, 저 앞에 울타리 같은 게 보였다.

“……저긴가?”

가까이 다가간 강현은 그게 울타리가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진 방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방책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리는 절대 없으니, 이 너머에 다른 종족이 거주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오, 드디어 발견!

-꽤 가까이 붙어 있네

-지금부터가 진짜닷!

뭐가 그리 좋은지, 신이 난 시청자들의 채팅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신났다고 해서 그 또한 흥에 몸을 맡긴 채 마구잡이로 쳐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그는 차분하게 방책 너머를 살펴보았고.

철컥-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중세를 보는 듯한 건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온몸이 시뻘건 데다가 호전적으로 생기기까지 한 인간종들을.

‘적인족이라고 부르면 되려나.’

키와 덩치가 작은 청인족과는 다르게, 적인족은 못해도 2m는 돼 보였다.

또 청인족이 아직 어엿한 병사도 없는 반면, 적인족은 대부분이 갑주를 입고 창을 들고 있기까지 했다.

비록 종족의 수는 백이 채 안 되는 듯했어도, 말이 군소종족이지 청인족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강해 보였다.

‘소수정예구만.’

내부의 경비가 나름 철저한 것 같았기에, 그는 병력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물었다.

“보통 군소종족을 흡수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일단 길 막는 애들 다 치우면서 핵까지 가면 됨. 리더가 갖고 있을 거임

-ㅇㅇ 그 핵을 부수면 에테르가 흡수되고.

“아, 핵이 있구나.”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균형의 탑 6층의 두꺼비 요괴가 가지고 있던 요구와 비슷한 듯했다.

-그걸 왜 모름? 보통 자기 종족 둘러보면서 알게 되지 않나?

-그거야…… 확인조차 안 하고 바로 튀어나와서 그렇답니닷!

-엌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근데 이강현이 쟤들을 잡을 수는 있을까?

-제약이 있긴 해도 1분 정도 싸우면 한 명은 이길 듯

-1 대 1밖에 못 이김? 그럼 싸우다가 지원군 오면 어떡함?

-뭘 어떡해? 뒤져야지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저들끼리 떠들었으나, 강현은 채팅창에서 눈을 돌렸다.

이제는 집중할 시간이었다.

다만 본신의 힘이 제약된 만큼, 현재 쓸 수 있는 것들이 뭔지 정확히 파악하고 가야 했다.

방책을 넘기 전 강현은 가진 것들을 점검해 나갔다.

‘레벨이랑 격이 낮아져서 나무토막은 못 쓰고, 모방의 가호는…… 되네. 맞다, 갑옷이 있었지.’

아까 엔딜 펠란이 ‘시동’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기도 했기에 강현은 곧장 말을 꺼냈다.

‘아까 ‘시동’이란 말을 들었는데, 정확히 어떻게 하는 겁니까?’

-시동어를 말하면 아르크트의 본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식이지만……. 지금 발동할 수는 없을 것 같군.

‘예? 못 쓴다고요?’

강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발동하려면 할 수는 있겠다만, 충전된 에테르가 너무 적어서 유의미한 시간은 못 쓸 거다.

‘얼마나…….’

-3초 정도 되겠군.

3초.

안 쓰느니만 못한 시간이었다.

‘충전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저놈들이 가지고 있는 에테르 결정체를 부순다면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거다.

결국, 일단은 적인족을 처리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후우, 가 볼까.”

크게 심호흡을 한 강현은 바로 방책을 넘어갔다.

턱-

“누구냐!”

어떻게 그가 넘어왔다는 걸 알았는지, 근처의 적인족 한 명이 접근해 왔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기어오느냐!”

적인족이 창을 찔러온다.

[스킬, 광검[Lv.1]을 발동합니다.]

어차피 처치해야 할 적이었기에, 광검을 발동한 강현 역시 지체 없이 검을 휘둘렀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함

-ㄹㅇ 1분 컷은 해줘야 됨

-ㅇㅇㅇ그래야 치고빠지면서 갉아먹기라도 할 수 있음

-쉿, 조용!

이 싸움에 많은 게 달려 있는 만큼, 보는 시청자들도 숨을 죽였다.

그런데.

챙! 채챙! 푹!

강현의 검이, 단 두 합 만에 적인족을 꿰뚫어버린 게 아닌가.

“커헉……!”

털썩-

그렇게 적인족이 쓰러진다.

-……?

-어?

-방금 뭐야?

그 이후.

“누구냐!”

“침입자! 침입자다!”

다섯 명의 적인족이 한꺼번에 몰려왔음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채채챙! 채챙!

“크윽…… 어디서 이런 놈이…….”

털썩.

털썩.

…….

순식간에 다섯 명을 추가로 쓰러뜨린 강현이 재빨리 적인족의 건물에 숨어들었다.

-저기요;; 아까 1분 컷은 해줘야 된다면서요? 지금 보니까 5초 컷인데요?

-그러게;;; 대체 뭐지……?

-흐음.

-아니;; 제약이 있는데 이게 말이 돼?

예상을 뛰어넘는 강현의 선전에 시청자들은 적잖이 당황한 듯했지만, 강현에게 이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첫 적인족과 검을 맞대기 직전.

[스킬, 여명의 눈[Lv.4]을 발동합니다.]

강현와 다른 참가자들을 차별화시켜주는 스킬, ‘여명의 눈’이 발동한 이상은.

여명의 눈으로 ‘약점’을 보면서 제압해 나가는 것.

이게 바로, 그로 하여금 시작하자마자 군소종족을 찾아 나서게 만들 수 있게 한 결정적인 근거였다.

“그럼, 핵이 있는 곳까지 밀고 나가 보겠습니다.”

채팅창을 보며 씩 웃어 보인 강현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더 비욘드 본선 첫 번째 미션의 중계를 맡은 TBC 방송국의 룽입니다!]

[XBS의 터크입니다. 처음 ‘모의차원전쟁’ 발표되자, 미션이 궤도에 접어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거로 보였는데요. 하지만 지금 그러한 순리에 거스르는 참가자가 있다는 소식에 엄청난 관심이- 아, 말씀드린 순간 이강현 참가자! 치고 나갑니다!]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우르르 몰려오는 적인족들을 빠르게 쓰러뜨리고 있어요!]

[정말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 어엇! 적장! 적장이 나왔습니다! 적장을 본 이강현 참가자가…… 쏜살같이 적장을 처리해 냅니다!]

[이어서 에테르 결정체까지 파괴하는군요! 획득한 에테르가…… 300! 무려 300의 에테르를 얻어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다른 참가자들은 10 에테르를 캐려고 농장과 시장을 짓고 있는데, 한 번에 300의 에테르를 얻어내다니요! 그것도 단신으로 군소종족 하나를 무릎 꿇리면서 말이죠!]

[예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단번에 1위에 등극한 이강현 참가자입니다! 심지어 큰 수확을 올렸음에도 곧장 다른 군소종족을 찾아 나서기까지 하네요! 청인족의 영웅, 루루가 들어온 에테르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집니다!]

-각성으로 차원최강 5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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