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변화
[참가자 란 레이센을 쓰러뜨리셨습니다.]
[3108pt를 획득합니다.]
란 레이센이 쓰러진 순간, 채팅창이 폭발했다.
-와우
-와;;
-ㅁㅊㄷ ㅁㅊㅇ
-란 레이센을 진짜 이겼네
-흐음……!
-이강현 만세에
-소름;;
-투표하러 간다
-나도 투표
-ㄴㄷ…….
…….
올라온 채팅들을 제대로 읽기도 전 새로운 채팅들이 마구잡이로 올라온다.
-빨리 본선 와라 형이 도와줄게
-남궁강룡 이현 알렉시스 란 레이센…….
-명단 소름 돋네;;;
-서브 미션 때부터 응원해왔는데…….
-감동이다ㅜㅜ 진짜 얘가 여기까지 올 거라고는…….
-골수 애청자로서 소름…….
…….
채팅들을 보던 강현은 눈앞의 메시지로 시선을 돌렸다.
[미션이 종료되었습니다.]
[참가자 이강현 님의 기여도는 122,092pt, 순위는 1위입니다.]
[보상을 정산 중입니다…….]
…….
“하아…… 하아…….”
팔다리가 서 있기도 힘들 만큼 후들거리고, 신물이 연신 올라왔다.
마력 또한 한계에 다다라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찌릿해져 왔지만.
“……이겼다.”
강현의 마음을 가득 채운 건 성취감이었다.
F등급에서 시작해, 끝내 두 번째 미션 최후의 1인이 되는 데에 성공했다는 성취감.
그 성취에 몇 년 동안 억눌려 있던 내재된 감정들이 터져 나오기라도 한 걸까.
전투의 마지막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질러버리고 말았다.
-이강현이 저런 소리 지르는 거 처음 봄
-항상 짤막하게만 말하던 앤데
-얘도 무진장 기뻤나 보다
…….
몇몇 시청자들이 그걸 언급하자 살짝 낯부끄러워지기도 했으나, 속은 더없이 후련했다.
슈와아-
느닷없이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전방을 보자 쓰러진 란 레이센이 사라져 가는 중이었다.
얼굴이 지면을 보고 있어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깝겠지.’
강현은 그녀가 아쉬움 가득한, 그러면서도 그걸 티 내지 않으려는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도 그럴 게, 한 끗 차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한 싸움이었다.
그의 체감상 한 시간도 넘게 싸웠던 거 같은데, 그동안 단 한 마디도 말을 주고받지 않았을 정도였다.
오직 주문을 읊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 백광과 화염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을 따름이었다.
‘오브랑 회복구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거야.’
그와 다른 본선진출조들을 동일 선상에 있을 수 있게 해준 오브는 란 레이센과도 대등한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딱 한 번 더 쓸 수 있었던 회복구 역시 화염이 그을린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도와주었고.
근접전에 란 레이센이 취약했던 것도 한몫했다.
끊임없이 순보와 질주로 파고들어 섬광을 날려대면서, 란 레이센의 공격을 천광의 날개와 휘광으로 막아댄 끝에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렇게 승리의 여운에 취해 있었을 때였다.
[소환을 준비합니다…….]
세상이 환한 빛으로 덮여가기 시작했고.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98/200)]
뒤늦게 메시지가 나타났다.
나머지 참가자들을 연거푸 쓰러뜨린 끝에 5단계 직전의 에테르를 앞두고 있었는데, 란 레이센까지 이긴 덕에 5단계를 달성할 수 있을 듯했다.
스아아-
손을 가져가자 메시지가 연이어 떠오른다.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258/200)]
[취한 에테르가 일정 수치를 넘어섰습니다. 다음 단계가 적용됩니다…….]
‘60이나 줬네.’
사도천이 50 정도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란 레이센은 그보다 더했다.
[4단계 → 5단계]
[감각이 대폭 세밀해집니다.]
[에테르 감지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에테르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
“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용의 메시지들에 강현이 눈을 크게 떴다.
여태까지는 기껏해야 인지 범위가 넓어지고 체내의 마력이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거의 모든 메시지에 ‘대폭’이라는 단어가 달렸다.
스아아-
그리고 잠시 후, 강현은 ‘대폭’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쿠오오-
‘이건……!’
인지할 수 있는 범위와 주변의 마력을 느끼는 감각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가늠해 본 강현은 흠칫했다.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늘어났던 폭을 합친 것보다 4단계에서 5단계가 되면서 늘어난 폭이 훨씬 넓었기 때문이다.
만약 근처에 다른 참가자가 있다면, 그쪽을 보지 않고 있더라도 해당 참가자의 수준과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박인데.”
무협지에 나오는 무림인들이 이랬을까 싶었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놀라웠는데, 변화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에테르의 위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또다시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그 내용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강현은 광검을 펼쳐내 보았다.
마력이 바닥이긴 했어도, 기본 스킬이나 다름없는 광검을 발동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스킬, 광검[Lv.8]을 발동합니다.]
슈와아-
그 색이 확연히 진해진 광검을 확인한 강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각성자의 스킬 레벨이 10에 다다르면 ‘스킬 진화’를 거치는데, 레벨이 아직 8이었음에도 ‘스킬 진화’를 한 것처럼 보였다.
[체내의 노폐물을 배출합니다.]
“……!”
이어지는 메시지를 본 그는 재빨리 깃털 갑옷을 벗었다.
스르륵-
갑옷을 벗자마자 체내에서 검은 액체가 새어 나온다.
벌써 세 번째 배출하는 노폐물이어서인지, 아주 새까맸던 지난번에 비해 그 색이 조금 옅었다.
‘언제 맡아도 냄새는 최악이군.’
그래도 냄새는 비슷했기에 강현은 냅다 코를 틀어막으면서도, 이번에는 갑옷을 지켜냈다는 사실에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 노폐물이 빠져나오면서 생겨나는 개운함은 덤이었다.
-몇 단계인데 진화하는 데 저렇게 오래 걸리지?
-강현아 몇 단계냐?
“5단계인데요.”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것이었지만, 채팅창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벌써?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단계 아니었니?
-시간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5단계냐;;;
-와…… 미친 듯이 미션에서 치고받고 싸우더니 에테르 오지게 빨았나 보네
-페이스 말도 안 되는 듯;;
“딱히 그런 것보다는…….”
강현이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슈와아아-
세상이 빛으로 가득 덮였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걸 깨달은 강현은 생각했다.
비록 처음 목표했던 레벨 40은 못 찍었어도, 이 정도면 더할 나위 없이 알찬 미션이었노라고.
그런 그의 생각에 호응하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튜디오로 이동합니다.]
두 번째 미션의 끝이었다.
* * *
슈와아-
던전을 벗어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튜디오로 돌아오자 안정감이 느껴졌다.
[상처의 치유를 진행합니다…….]
지친 심신이 회복되어서인지도 몰랐다.
깔끔한 대리석 바닥과 중앙의 드높은 기둥.
적당한 온도의 대기.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다른 참가자들.
괴수도, 함정도 없는 안전한 공간.
그가 아는 스튜디오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던전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가.’
강현은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어색함을 느꼈다.
며칠 동안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인지, 이 편안함이 다소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물론 어색함을 느끼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소환됨과 동시에 향한 수십 쌍의 눈동자들 또한 그 이유였다.
질투와 감탄, 호기심과 분노가 섞인 시선들이었다.
비단 시선만이 아니라, 저들끼리 쑥덕이기도 했다.
“쟤 도대체 뭐지……? 괴물인가?”
“나도 수재라 불리었는데 저놈은 대체……!”
“말도 안 돼…….”
“분명 F등급이었잖아……! 이게 말이 돼?”
강현은 그 반응을 이해했다.
사도천부터 자니스 라르케치를 단신으로 쓰러뜨렸고, 란 레이센과 동맹을 맺었다고는 하더라도 알렉시스 찬드라스와 남궁강룡, 이현까지 탈락시켜 버렸다.
여기에 란 레이센을 꺾고 최종 기여도 1위까지 차지해 버렸으니, 관심이 없는 게 더 이상했다.
다만.
‘좀 불편한데.’
리얼에서는 항상 받아왔던 시선들이었는데도,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 번 보는 것도 아니고 계속 시선들이 머물러 있는 것도 좀 그랬고.
“하하하! 강현! 자네의 믿을 수 없는 활약은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네! 거의 신위에 가깝더군!”
스윽-
시선들이 사라진다.
만약 세르반테가 다가와 주지 않았더라면 필시 이 불편함을 더 느껴야 했을 터였다.
강현은 마침 다가와 준 세르반테에게 감사해하며 그를 맞았다.
“전체 1등이라니! 자네가 이토록 강해진 줄 알았으면 오브 얻는 건 때려치우고 자네한테 향할 걸 그랬네!”
“오브? 미션이 시작되자마자 오브를 노렸던 겁니까?”
“그랬다만…… 으음, 하필 남궁강룡을 마주치는 바람에 그 길로 탈락해 버렸지.”
“아.”
강현은 알렉시스와 싸우던 도중 남궁강룡이 나타났을 때 그의 옷섶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던 걸 기억해 냈다.
해서 누구랑 싸우다가 왔나 싶었는데, 그게 세르반테였던 모양이다.
“일찍 탈락하고서 대기실에서 계속 나머지 참가자들을 봤지. 자네는 굳이 보려 하지 않아도 눈에 띄더구만! 혼자 대체 몇 명을 쓰러뜨린 겐가!”
세르반테가 껄껄 웃었다.
그러더니 입을 가리고 속닥인다.
“그래서인지 자네에게 관심 있어 보이는 참가자들이 아주 많아.”
“그래요?”
강현은 눈알을 약간씩 굴려 자신을 보고 있다는 참가자들의 정보를 파악했다.
[자니스 라르케치, 10위]
[알렉시스 찬드라스, 3위]
[남궁강룡, 1위]
자신에게 탈락해 버린 자니스과 남궁강룡, 알렉시스부터.
[사도천, 5위]
탈락한 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혈룡검까지 빼앗겨 버린 사도천까지 다양했다.
“그중 하나는 보는 걸로는 성에 안 차는지 이쪽으로 오고 있기까지 하군.”
“……?”
고개를 돌린 그는 볼 수 있었다.
[란 레이센, 2위]
스튜디오의 끝에서부터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걸어오는 란 레이센을.
그러나 절반도 채 다가오기도 전, 그녀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핫, 고생 많으셨습니다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공간을 가르며 로독이 등장했으니까.
[그야말로, 이변이 참 많았던 두 번째 미션이라고밖에 할 수 없겠습니다! 던전의 수호자와 아티팩트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아쉽긴 했어도, 보는 내내 즐거웠답니다!]
‘그러고 보니…….’
강현은 던전의 수호자와 아티팩트들이 거의 쓰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 그만 해도 폭발의 비약만을 마셨을 뿐, 다른 아티팩트는 건들지도 않았다.
수호자는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고 말이다.
[하하핫, 그렇지만 이미 지난 일을 붙잡고 있어봐야 의미는 없겠죠! 계속된 미션으로 다들 피곤하실 테니, 얼른 돌려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전에 순위는 보고 가셔야겠지만요!]
“……!”
순위가 언급됨에 따라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로독의 말이 계속됐다.
[미션이 시작되기 전 말해드린 것처럼 전체 참가자 30명 중 14위까지 살아남을 것이며, 순위는 기여도만이 아닌 시청자 투표와 트레이너 평가까지 합산하여 산정하게 됩니다! 아! 투표가 끝났다는군요! 그럼 바로 보실까요?]
딱-
로독이 손가락을 부딪치자 거대한 직사각형의 화면이 떠올랐다.
아직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도화지 같은 화면이었다.
[이번에도 순위가 발표되기 전 본인이 먼저 순위를 확인하는 시간을 드릴 예정입니다. 또 순위를 확인하는 즉시 보상이 지급될 거랍니다!]
[그리고 다음 미션이 예선에서 치르는 마지막 미션인 만큼 많은 변화가 생길 텐데요, 그건 순위 확인이 끝난 뒤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정보를 불러내어 순위를 확인해 주세요!]
“…….”
로독의 말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하나둘 자신들의 정보를 불러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벌벌 떨면서.
누군가는 자포자기하며.
누군가는 체념했는지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순위를 확인했다.
지난 미션 때는 자신도 저들과 비슷했다.
몇 위가 나올지 전전긍긍하며 순위를 확인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강현아 빨리 보상이나 보자
-ㄹㅇㅋㅋ 긴장도 안 되네
-보상 뭐 줄지가 더 궁금함
심드렁한 시청자들의 반응에 피식 웃은 강현은 정보를 불러냈고.
이름 : 이강현
종족 : 인간
차원 : 제3 군소
순위 : 1
“하하…….”
예상대로의 결과에 웃어 보였다.
1위.
바닥부터 올라와서 결국 1위를 차지해낸 것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폐인처럼 살아가던 걸 감안하면, 말 그대로 감개가 무량해지는 순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순위에 따른 보상의 정산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지금 수령하시겠습니까? (Yes/No)]
메시지를 본 강현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순위를 확인했으니, 이제는 달콤한 보상을 즐길 시간이었다.
Yes를 누르자, 새로운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참가자 이강현, 1위 확인.]
[세 개의 보상 중 두 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한 두 개의 보상이 즉시 지급됩니다.]
“오.”
여태까지는 이랬던 적이 없었는데 선택이라니.
1위는 뭔가 다르긴 하구나 싶었다.
이내 보상 목록이 주르륵 나타났다.
[대마법사의 왕관]
-지금은 멸망한 마법계를 주름잡았던 어느 대마법사의 왕관입니다. 비록 대마법사는 한 줌의 먼지로 스러졌지만, 그의 왕관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착용 시 에테르가 대폭 상승하며 에테르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음…….”
강현이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뛰어다니면서 싸우는 그에게는 그다지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벗겨지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강현은 일단 나머지 보상들을 마저 보기로 했다.
[천년 하수오]
-자그마치 일천 년 동안 정순한 기를 흡수한 하수오입니다.
에테르 증진과 더불어 탁해진 심신을 맑게 해주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이거 괜찮네.’
괜찮은 보상을 확인한 그의 입가에 그제야 미소가 걸렸다.
지난번 소환단을 받았을 때도 쏠쏠했는데, 천년이나 묵은 하수오란다.
설명만 봐도 소환단보다 좋아 보였다.
‘이건 챙기고.’
[중하급 수련의 방]
-시간 배율이 현실의 1/15인 수련의 방입니다. 내구도가 다하면 파괴됩니다.
현재 내구도 : 50/50
이어서 마지막 목록을 본 강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안 그래도 이번 미션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처음 목표했던 40레벨을 못 찍었었는데, 이 중하급 수련의 방이라면 찍고도 남을 듯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천년 하수오와 중하급 수련의 방을 선택했다.
[보상으로 천년 하수오 한 뿌리와 중하급 수련의 방이 지급됩니다.]
툭-
허공이 열리며 조그마한 목갑과 고구마 다발 같은 게 튀어나왔다.
-???
-보상 뭐임?
-하수오인가? 몇 년짜리지?
-보상에 나올 정도면 백 년이겠지. 천 년짜리는 아니겠지.
작은 목갑에 비해 천년 하수오는 워낙 눈에 띄었는지 채팅창이 하수오를 물어보는 질문으로 도배된다.
“천 년짜리입니다.”
-천 년?!
-오우 좋은 거 줬네
-1등은 역시 다르네
-보상 쎄다;;;
-흐음…….
-축하합니다
-ㅊㅋㅊㅋ
…….
축하해 주는 채팅창을 흐뭇하게 바라본 강현은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사실 천년 하수오보다 수련의 방이 훨씬 좋을 거라 생각됐지만, 굳이 알릴 필요는 없겠지.
천년 하수오와 수련의 방을 조심스레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있는데, 돌연 코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기요.”
날이 서 있는 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란 레이센을 마주할 수 있었다.
“……?”
그러고 보면 로독이 등장하기 직전에도 이쪽으로 오려고 했었는데, 할 말이라도 있는 걸까.
무언가 머뭇거리는 란 레이센을 보며 강현은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을 추측했다.
‘다음엔 각오해야겠다는 말? 아니면 화를 내려나? 그것도 아니면…….’
그런데.
“……레이센 란이에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다소 뜬금없는 말이었다.
“예?”
“내 이름이요. 란 레이센이 아니라 레이센 란이라구요. 이 망할 메시지에는 계속 란 레이센이라 뜨지만요.”
“아. 그럼 이름이 레이센이고 성이…….”
“란이에요. 원래는 고칠 생각 없었는데 특별히 말해주는 거예요. 다음에 적으로 만나면 두고 봐요. 그럼.”
그 말을 끝으로 란 레이센, 아니, 레이센 란은 가버렸다.
“레이센 란…….”
강현은 새로이 알게 된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확실히, 어딘가 둥글게 느껴지던 란 레이센보다는 세련된 이름이었다.
그건 그렇고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리다니.
‘왜 말해주는 거지.’
이름이 란 레이센이든 레이센 란이든 간에, 제멋대로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통보만 하고 가버리다니. 쓰는 마법만큼이나 성격도 화끈한 아가씨로군.”
세르반테가 껄껄 웃으며 끼어들었다.
[세르반테, 8위]
강현은 새로이 갱신된 그의 순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6위였던 순위가 8위로 밀려나 있었다.
“세르반테, 순위가?”
“도중에 탈락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겠지.”
쩝, 하고 세르반테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이게 기여도보단 높게 나온걸세. 기여도는 13위였는데, 만약 그대로 이어졌다면 턱걸이 합격이었겠지. 남궁강룡과 하루 동안 싸우던 걸 시청자들이 좋게 봐준 것 같더군.”
하긴, 남궁강룡과 그렇게나 싸웠다면 고평가를 받을 만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더 비욘드는 경연이다.
비단 기여도만 쌓는다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보일 퍼포먼스까지 고려해야 한다.
아마 비교적 일찍 탈락한 알렉시스와 사도천도 예측 외의 높은 순위를 차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 맞다.’
불현듯 잊고 있던 게 떠오른 강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알렉시스에게 물어볼 게 있었다.
레이센 란과 그의 합동 공격에 궁지에 몰린 알렉시스가 ‘무언가’를 꺼내려던 순간, 돌연 머릿속에 정체불명의 이명이 들려왔던 것이다.
‘란 레이센, 아니, 레이센 란은 안 들렸었다고 했었지.’
레이센 란과 같이 있던 하루 동안 그녀에게 이명을 물어봤었는데, 그녀는 그런 걸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알렉시스가 꺼낸 ‘무언가’로 인해서 나에게만 이명이 들렸을 확률이 높았다.
알렉시스가 뭘 꺼내려고 했던 건지 알아야 했다.
그가 참가자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위이이잉-
웬 날파리가 날아온다.
날아온 날파리는 자신이 강현과 동등한 관계라는 듯, 강현의 미간 앞에 멈춰 섰다.
-내 검을 내놔라.
놀랍게도 날파리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보자 강현은 날파리에게서 이어진 가느다란 마력의 실이 보였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린 그는 볼 수 있었다.
“…….”
저 멀리서 검은 두건을 푹 눌러쓴 사도천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을.
어찌나 죽일 듯이 노려보는지, 누가 보면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줄 알 것이다.
자신이 잘라냈던 팔 부근이 휑한 걸 보아, 잘린 팔은 회복이 안 되는 듯했다.
‘하아……. 나오라는 알렉시스는 안 나오고 이런 놈이.’
그 증오 어린 시선에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도천의 반응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한쪽 팔이 잘린 데다가 혈룡검까지 강탈당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이해 가는 건 이해 가는 거고, 당연하게도 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내 혈룡검을 내놓으란 말이다! 그걸 얻으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니면 네가 가진 그 검이라도 주든…….
찍!
박수로 날파리를 터뜨려버린 세르반테가 씩 웃었다.
“내가 벌레를 싫어해서.”
“잘하셨습니다. 제가 딱 하려고 했는데.”
“역시 자네는 시원시원하다니까! 하하!”
세르반테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하핫! 모두 순위와 보상의 확인을 마치신 듯하니, 순위를 띄우겠습니다!]
팟-
로독의 말이 끝나자 화면에 순위가 빼곡히 적혀나갔다.
1위 이강현
2위 란 레이센
3위 남궁강룡
4위 알렉시스 찬드라스
5위 로프터스
6위 이현
7위 사도천
…….
“…….”
다들 1위가 누구일지 짐작했는지 별다른 탄성은 없었다.
강현이 1위에 올라설 걸 모두가 받아들였다는 말이었고, 그 사실이 그를 더 기분 좋게 했다.
[자, 더 설명해 드릴 건 없는 것 같네요! 그럼 바로 소환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전에는 순위를 공개한 뒤에도 무어라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런 것 없이 깔끔했다.
슈와아-
환한 빛이 올라온다.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인사를 드릴 시간이네요! 다음 미션이 예선에서 벌어질 마지막 미션이니, 부디 열심히 준비해 오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고생 많으셨다는 말을 드리면서, 저 로독은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보도록 하지.”
“예, 다음에 뵙죠.”
강현은 세르반테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고.
[실시간 시청자 반응을 회수합니다.]
-강바.
-ㄱㅂ
-담에 보자
-얼른 본선 와라
…….
시청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참! 참고로 이번에는 별도의 공지 없이, 시기가 되면 알아서 불러드릴 예정입니다! 다만 넉넉하게 시간을 드릴 것이니,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아주시길!]
로독의 인사를 끝으로, 스튜디오가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강현이 가장 먼저 한 건 날짜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더 비욘드에서의 일주일이 현실의 하루였고, 이번에 그는 더 비욘드에서 일주일가량의 시간을 보냈다.
과연, 달력을 보자 하루가 더 지나있었다.
“……한참 된 거 같은데 겨우 하루밖에 안 지났다니.”
하급 수련의 방에서 15일 동안 처박혀 있어서인지, 체감 시간은 훨씬 길었다.
체감 시간이 긴 만큼, 그에 따른 피로도 상당했고 말이다.
그래도 결국 두 번째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쳐서일까.
강현의 얼굴은 나쁘지 않았다.
다음 미션이 예선에서 치르는 마지막 미션이라는 건 다소 놀라웠다.
예선의 끝이 다가왔다는 말이었으니까.
하나 마지막 미션이 어쨌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언제나 같았다.
레벨을 올려서 더 강해지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
‘레벨만 올리면 충분히 통한다.’
강현은 생생히 기억했다.
폭발의 비약과 오브를 통해 낮은 레벨을 보충하자 다른 본선진출조에게 전혀 꿀림이 없었던 자신을.
즉, 레벨만 올릴 수 있다면 다음 미션에서도 1위를 노려봄 직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수련의 방과 천년 하수오라는, 레벨을 올릴 수단까지 든든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울리는 진동에 강현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이게 다 몇 개야?”
수십 개의 알림을 본 강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34통의 문자와 22건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아, 내가 관리국에 들어갔다는 게 퍼질 수도 있다고 했었지.’
지난 귀환에서 그는 백아영에게 임무선택권을 받는 걸 조건으로 헌터관리국에 들어갔었다.
계약하던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정보가 흘러갈 수도 있다고 했었는데, 이 연락들은 그것 때문인 듯했다.
‘하루면…… 지금쯤 알 사람들은 알겠네.’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업계 사람은 소식을 들었을 만한 시간이었다.
“흐음…….”
문자를 주욱 훑은 그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강현아 너 진짜 각성했냐? 얼굴 한번 보자.
-형 각성했다는 게 사실이에요? 축하드려요. 시간 나시면 연락 한번…….
리얼에서 자신과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들부터.
-이강현 씨, K일보 김상명 기자입니다. 취재 문의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J일보입니다. 인터뷰 요청을 하고 싶은데…….
새로운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들.
-버러지처럼 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각성했다고? 조만간 찾아갈 테니까 기다려라.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까지.
문자를 읽어 내려가던 강현은 직감했다.
이제는, 그에게 호감 또는 악의를 가진 이들에게 어떤 스탠스를 보일지 정해야 한다는 걸.
문자를 내리던 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마침 적당한 문자가 와 있었다.
-백아영이에요, 등급 재평가를 신청하려는데 원하시는 날짜 있으면 연락 부탁드려요.
-이번 달 임무 스케줄 표도 보내드릴 테니 마음에 드는 임무 있으면 말해주시고요.
‘등급 재평가라.’
강현은 스스로의 수준을 가늠해 보았다.
‘지금 내 수준이…… B급은 되겠지.’
레벨은 아직 C급 헌터의 레벨이었어도 ‘단계’가 5단계였다.
스킬의 위력이 강화되었으니, 적어도 B급은 될 거라 예상됐다.
“잘됐네.”
슬슬 세상에 드러낼 때가 되었다.
리얼의 광검제가 각성자로 돌아왔음을.
물론 더 비욘드를 준비해야 하니 거창한 선포는 지장이 있겠다만, 가벼운 인사 정도는 가능할 듯싶었다.
-일단 만나죠. 지금 가겠습니다.
강현은 그 즉시 백아영에게 답장을 보내려…… 다가, 멈춰 섰다.
“아.”
천년 하수오가 생각난 것이다.
사용하는 데에 하루가 넘는 시간이 드는 수련의 방은 몰라도, 천년 하수오는 섭취하고 가도 될 터였다.
강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천년 하수오를 꺼냈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58/300)]
손을 갖다 대자 메시지가 떠오른다.
그는 곧장 주저앉아 천년 하수오를 받아들였다.
스아아-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일부 충족됩니다.]
느닷없이 메시지가 떠오르는 게 아닌가.
“어?”
강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메시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스킬, 여명의 눈[Lv.3]을 습득합니다.]
[[email protected]의 지배자에 한 걸음 가까워집니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들에, 강현은 눈을 끔뻑였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메시지들이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여명의 눈의 레벨이 어떻게 오르는 건지.
‘역시, 단계와 여명의 눈의 레벨은 관련이 있어.’
지난번 여명의 눈이 2단계가 됐을 때를 돌이켜보면, 소환단을 섭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작스레 레벨이 올랐었다.
지금도 에테르를 섭취하고 여명의 눈의 레벨이 오른 걸 보면, 이젠 ‘단계’에 비례한다고 봐도 될 듯했다.
여명의 눈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떠올려 보면, 이로써 ‘단계’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또 늘었다.
비슷하거나 더 높은 격을 가진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지만, 대신 ‘단계’가 낮은 이들은 더욱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었다.
‘이번에는 뭘 보여주려나.’
여명의 눈이 2레벨이 되면서는 ‘격’이 낮은 상대의 무너진 자세 같은 걸 짚어주었는데, 3단계에서는 또 무엇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다만, 모든 게 명확해진 건 아니었다.
[@#$이 일부 충족됩니다.]
[[email protected]의 지배자에 한 걸음 가까워집니다.]
강현이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노려보았다.
첫 번째 메시지는 그나마 익숙했다.
이것 역시 일정 이상 ‘격’이 올라갈 때마다 나타났었으니까.
그러나 두 번째 메시지인 ‘[email protected]의 지배자’는 그도 처음 보았다.
잠시 고민해 봤으나, 처음 보는 메시지를 보고 생각나는 게 있을 턱이 없었다.
‘결국 또 ‘격’을 올리는 수밖에 없나.’
언제쯤 이 비밀이 밝혀질는지는 기약이 없었지만, 이번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단계를 올리는 것뿐이었다.
스아아…….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208/300)]
그렇게 에테르의 양이 150 늘어난 걸 끝으로 천년 하수오의 흡수가 끝났다.
‘150이나 늘었다고? 100만 더 모으면 벌써 6단계잖아.’
그 어마어마한 에테르의 양에 한 번 더 놀란 강현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천년 하수오였다.
왜 무협지에서 그토록 영약에 집착하는지 잘 알겠다는 생각을 하며 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현실의 일을 처리할 때였다.
* * *
그로부터 잠시 후, 헌터관리국 남부지부의 웅장한 건물에 도착한 강현은 정문을 놔두고 빙 돌아가야 했다.
“……에이씨. 언제 오는 거야?”
“이강현이 헌터관리국에 들어간 건 맞지?”
자신이 들어가려던 남부지부의 정문 앞에 잠복하고 있는 기자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남부지부에 들어간 건 확실해.”
“근데 왜 안 오냐고. 헌터는 뭐 출근도 안 하나?”
“제발 이쪽으로 와야 되는데…….”
가로수 사이나 바위 아래 같은, 무심코 지나가다간 알아차리지 못할 은밀히 곳들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발달한 기감 덕분에 사전에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벌써 연락이 다 돌았나?”
후문으로 돌아가며 강현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의 예상보다 소식이 퍼진 속도가 더 빠른 듯했다.
후문으로 돌아가자, 이번에도 몇몇 기자가 잠복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냥 순보로 넘어가 버릴까.’
강현이 진지하게 순보를 연속으로 사용하여 후문으로 들어가는 걸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덜컥-
후문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더니, 자신에게 곧장 다가온다.
“모시러 왔습니다, 이강현 씨. 가시죠.”
“아, 예.”
어떻게 자신이 온 줄 알았는지는 몰라도, 에스코트를 해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 이, 이강현이다!”
“이강현 씨! 헌터관리국 남부지부에 들어갔다는데-”
“K일보 조성민 기자입니다! 한 말씀 부탁-”
강현을 본 기자들이 벌떡 달려오며 마이크를 들이밀었으나.
“더 붙으면 경비를 부르겠습니다.”
철통같은 직원들의 보호 덕에 시달리지 않고 건물에 진입할 수 있었다.
띵-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친절하게 버튼까지 눌러준 직원의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휴우.”
기자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잘 알고 있는 강현으로서는 안도할 일이었다.
띵-
다시 문이 열리자 탁 트인 사무실이 나왔고, 그는 커피를 홀짝이는 백아영을 볼 수 있었다.
탁-
강현을 본 그녀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CCTV로 보다가 강현 씨가 온 걸 보고 직원들을 내려보냈는데, 괜찮았어요?”
잘했죠? 라고 묻는 듯한 그녀의 얼굴에 강현은 기꺼이 감사를 표했다.
“귀찮아질 뻔했는데 직원들이 딱 왔더라고요.”
“이 정도로 뭘요. 아마 강현 씨네 집에는 흔적이 없대서 이쪽으로 온 걸 거예요. 분명 들어간 게 틀림없는데 아무 흔적이 없다나 뭐라나.”
그녀는 내심 무슨 수를 썼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으나, 대답이 나올 턱이 없었다.
백아영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기사는 보셨어요?”
“무슨 기사요?”
“인터넷 보시면 알 거예요.”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에 들어가자 그와 관련된 기사들이 포털사이트 메인에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기사들이 그렇게 나올 동안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강현 씨가 도통 보이지를 않으니 기자들이 여기까지 오더라구요.”
“…….”
“아직 안 죽으셨던데요? 저희 지부로 연락이 어찌나 오던지, 처음엔 서울에 테러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니까요.”
“아…….”
강현이 질린 얼굴을 해 보이는 걸 본 백아영이 피식 웃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아, 예.”
스윽-
강현이 냉큼 답하자 백아영이 태블릿 PC를 꺼내 들었다.
“임무랑 등급 재평가 중에 뭘 하려고 오신 거죠?”
“둘 다입니다.”
백아영이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등급 재평가 일정부터 알려드리자면 C급은 이번 주에 있어요. 참고로 C급을 신청하려면 그보다 한 단계 낮은 D급 게이트를 솔로 클리어하는 게 조건인 건 아시죠? 지난번에 솔로 클리어하시긴 했지만, 협회 쪽 참관인을 껴서 한 번 더 해야 할 거예요.”
상대평가로 진행되는 A급 헌터 평가와는 달리, B급부터 E급까지는 절대평가로 진행된다.
백아영이 말한 것처럼, 바로 밑 등급의 게이트를 솔로 클리어하면 된다.
D급 헌터가 되려면 E등급 게이트를, C급 헌터가 되려면 D등급 게이트를 솔로 클리어해야 한다는 소리다.
“D급 게이트 물량은 확보되어 있으니까 임무 선택권으로 선택하셔도 돼요.”
“어, 그래도 됩니까?”
그에게는 재택근무와 함께 원하는 임무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게이트를 혼자 클리어하는 김에 선택권을 써도 되냐고 부탁하려고 하긴 했는데, 선뜻 먼저 말해올 줄이야.
“어차피 그러려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긴 한데…….”
“이제 우리 사람인데 이 정도 편의는 봐줘야죠.”
백아영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D급 게이트를…….”
“잠깐만요.”
강현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편의를 봐준 건 고마웠으나, 그가 노리는 건 고작 C급이 아니었다.
“B급 평가는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강현 씨 설마…….”
백아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현은 씩 웃어 보였다.
“B급으로 가겠습니다.”
“이틀 전에 제가 강현 씨 실력을 봤는데 무슨 B급이에요?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하긴, 그녀로서는 기껏 얻은 초특급 유망주가 스스로 사지로 뛰어들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난번에 보신 것보다 훨씬 강해졌으니까요.”
“그래도…….”
“B급 심사 일정이 있긴 있죠?”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을 한 백아영이 태블릿을 확인했다.
“B급이 다음 주고 A급이 다다음 주니까 시간은 있는데……. 진짜 B급으로 신청할 거예요? C급 게이트는 D급 게이트보다 훨씬 어려워요. 강현 씨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저는 더 여유를 가지고 했으면 좋겠어서 그래요.”
백아영이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강현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마지막 예선이 기다리고 있어.’
더 비욘드가 있는 한, 해치울 수 있는 일들은 후딱 해치워 버리는 게 마음이 편했다.
“C급 게이트 중에 제가 들어갈 곳 있습니까?”
백아영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 유망주의 의견을 꺾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 * *
다행히 일은 금세, 그리고 강현이 바라던 대로 진행되었다.
잔뜩 우려하면서도 백아영은 결국 B급 헌터 평가를 신청함과 함께 C등급 게이트를 내어주었다.
다음 날 무장을 갖추고 서울 근처의 게이트로 이동하자 먼저 와 있던 이들이 강현을 맞아주었다.
“그쪽이 솔로 클리어하다가 실패하면 투입될 A급 헌터 이서준입니다…….”
“혀, 협회에서 공증을 위해 나온 이철성입니다. 게이트 설명을 드리고, 클리어 과정을 직접 참관할 예정입니다.”
먼저 말을 건네온 이서준은 가벼운 옷차림에 만사가 귀찮다고 말하는 듯한 눈을 한 청년이었고, 이철성은 이름대로 깐깐한 인상이었다. 말을 더듬기는 했지만.
“이강현입니다.”
강현은 짤막하게 답하고는 게이트 클리어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철성이 머뭇거리며 펜과 종이를 건네오는 게 아닌가.
“저…….”
“……?”
“패, 팬입니다. 혹시 사인이라도 좀…….”
깐깐해 보이는 것과 다른 수줍은 태도였다.
“아, 주시죠.”
“감사합니다!”
강현은 사인을 받고 좋아 죽는 이철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사인을 받고 기뻐하는 팬이라니.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으하하……! 크흠, 죄송합니다.”
잠시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하던 이철성이었지만, 이내 자신이 너무 들떴다는 걸 깨달았는지 급히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가, 강현 씨의 오랜 팬이어서요. 그럼 바로 게이트 설명에 들어가겠습니다.”
흠흠, 목을 가다듬은 이철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들어가실 C-34 게이트는 C급 게이트로, 며칠 전에 갑작스레 발생한 게이트입니다. 지형은 어두운 미로 지형이며, 스켈레톤과 구울 등이 주로 나올 겁니다. 근처에 다른 C급과 B급 게이트가 몇 개 있기는 하지만, C-34에 들어갈 건 강현 씨 혼자일 테니 너무 신경 쓰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이철성이 하품을 하는 이서준을 가리켰다.
“처치하신 괴수의 사체는 제가 수거할 예정이며, 만약 게이트를 클리어하다가 못 하겠다 싶으면 여기 있는 이서준 헌터에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제 설명은 여기까지인데 혹시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신지……?”
“없습니다. 바로 들어가도 되나요?”
“아, 네, 네. 물론이죠.”
“그럼,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강현은 뒤도 안 돌아보고 쏙 들어가 버렸다.
이철성은 그런 강현의 뒷모습을 걱정 어린 기색으로 쳐다보았다.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강현이 벌써 C급에 들어간다니.
안 그래도 이곳으로 오기 전 서울 남부지부의 백아영 팀장에게서 그의 안전을 신경 써달라는 신신당부를 듣고 온 참이었다.
그 또한 비슷한 의견이었고, 이강현의 오랜 팬으로서 그의 안전을 우선시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귀찮아하는 A급 헌터, 이서준을 굳이 데려온 거였고 말이다.
‘무모했다는 걸 이번 기회에 깨닫겠지.’
그는 이강현의 C급 게이트 도전을 치기로 여겼다.
이미 D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 경험이 있다는 말을 백아영 팀장에게 듣기는 했다.
역시 광검제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재능임은 분명했다.
하나 C급 게이트는 다르다.
특히 조직적인 구울과 스켈레톤은 각성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이강현이 상대하기에는 힘들 터였다.
따라서 그는 이강현이 실패할 거라 예상하면서도, 이강현이 실패하고 얼굴을 붉히더라도 잘 수습해 주기로 했다.
그게 팬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됐으니까.
그런데.
“그어어-”
서걱.
“구으으…….”
푹-
“어……? 저, 저게?”
그의 입이 벌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이강현이 관리국에 들어가면서 받은 조건을 알게 되었을 때, 이철성은 그게 어처구니없는 수준의 특별대우라고 여겼다.
고작 E급 헌터에게 아카데미 생략에 재택근무도 모자라, 임무 선택권까지 안겨주는 곳은 들은 적도 없었다.
웬만한 B급, 아니, A급 헌터들도 따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이강현은, 자신이 그러한 특별대우를 받을 이유가 있다는 걸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고대의 미궁을 연상하게 하는 게이트 내부.
덜그럭덜그럭-
갑옷부터 검, 활 등의 무장을 갖춘 스켈레톤이 조직적으로 진형을 갖추며 달려들고.
그어어…….
스켈레톤들 사이사이를 구울들이 빼곡히 채워 압박감을 더한다.
무려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과 구울 무리가 주는 부피감은, 웬만한 C급 헌터팀도 클리어를 포기하고 도망갈 만한 것이었는데.
팟-
이강현은 별거 아니라는 듯, 광검을 연상케 하는 환한 빛을 검에 띄운 채 구울과 스켈레톤 무리로 뛰어들었다.
서걱-
푹-
“어?!”
그걸 본 이철성의 입에서 된소리가 튀어나왔다.
단 한 번이라도 삐끗하다가는 삽시간에 구울과 스켈레톤에게 둘러싸일 테고, 그 사실은 이강현에게 무형의 압박감을 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러한 걱정도 잠시.
서걱-
푹-
구울과 스켈레톤들을 베고 찌르는 그 동작에는 일체의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구어어…….”
덜그럭…….
이강현의 검이 지나간 자리에, 스켈레톤의 뼈와 구울의 살점 조각이 허공에 난무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학살에 가까운 전투.
어찌나 압도적이었는지 보고 있는 이철성의 입장에서 조금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저, 저게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헌터라고?’
이철성은 옆의 이서준을 바라보았다.
“이, 이서준 씨. 원래 스켈레톤과 구울들이 저렇게 마구잡이로 죽어 나가는 겁니까?”
“그럴 리가……. 원래는 밖에서부터 조금씩 갉아먹어야 되는데…….”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대답하고는 있지만, 눈이 말똥한 걸 보면 평소 만사를 귀찮아하는 이서준도 놀란 게 분명했다.
서걱-
이강현이 단칼에 베어낸 스켈레톤의 머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걸 본 이서준이 물었다.
“저 사람이 게임에서…… 엄청 대단했다고요?”
“아, 이서준 씨는 리얼을 잘 모른다고 했죠?”
“예에……. 어려서부터 운동만 해서…….”
“그, 그러면 모를 만도 하죠. 저 모습도 대단하지만 리얼에서와는 비교가 안 되죠.”
광검제를 언급하자 살짝 흥분한 이철성은 떠올렸다.
이강현이 리얼에서 군림하던 시절을.
광검제로서 신화와 전설을 쌓아가며, 만인의 관심을 독차지하던 순간들을.
오랜만에 광검제를 떠올려서일까.
이철성은 사냥을 마무리하는 이강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래전 그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었던 무언가가, 슬며시 다시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 * *
[Lv.25 흘러내리고 있는 구울]
[Lv.27 낡은 무장의 스켈레톤]
…….
[스킬, 섬광[Lv.6]을 발동합니다.]
“그어어-”
털썩.
마지막 구울과 스켈레톤들을 처리한 강현이 검을 털어내고 있는데, 메시지가 떠올랐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208/300)]
손을 내밀자 에테르가 빨려 들어온다.
스아아-
에테르를 느끼며 강현은 숨을 가라앉혔다.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218/300)]
“후우.”
스켈레톤과 구울들은 두 번째 미션의 던전에서 실컷 싸웠던 괴수들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여명의 눈이 컸어.’
3레벨이 된 여명의 눈의 도움도 컸다.
무너진 자세 같은 걸 짚어주던 2레벨 때보다 한층 더 나아가, 스켈레톤들의 진형에서 보이는 약점까지 알려준 것이다.
그 약점을 믿고 지체 없이 적진 한가운데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5단계에 이르면서 에테르의 위력이 상승했다는 메시지를 봤었는데, 그것 역시 톡톡히 체감이 됐다.
‘단계가 오르면서 스킬 레벨이 못해도 3씩은 오른 느낌이야.’
광검은 더욱 예리해졌고, 섬광은 날카로워졌으며, 휘광은 단단해졌다.
가뜩이나 광(光) 속성에 약한 스켈레톤과 구울들이다.
여기에 스킬까지 강화가 되니, 놈들이 버틸 재간이 없었으리라.
이후의 전투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기본적으로 2~30마리씩 뭉쳐 다니는 스켈레톤과 구울들이었지만, 강현에게 그리 어려운 상대들은 아니었다.
물론 아예 스킬을 쓰지 않고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참격과 순보, 질주 등을 꺼냈는데, 그때마다 장난감을 보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는 이철성이 살짝 부담되기는 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스킬, 광검[Lv.9]을 습득합니다.]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248/300)]
그래도 레벨이 1 올라 36레벨이 되고 다음 ‘단계’가 가까워지는 등, 소기의 성과들을 거두는 데엔 지장이 없었다.
“……이제 심층부네.”
파죽지세로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심층부가 바로 앞이었다.
지난번 D급 게이트를 솔로 클리어했을 때는 던전 구석구석을 쓸며 모든 괴수를 처리했던 그였으나, 이번에는 굳이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미로 지형이라 길을 헤맬 우려가 있기도 했고, 사냥을 계속하며 그의 머리에 하나의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고 A급 평가를 신청해야겠어.’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에는 C등급 게이트면 현재 실력에 적당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C등급 게이트가 아니라 B등급 게이트에 갔어야 했다.
레벨은 36으로 C급 헌터의 범주에 속하긴 했어도, 레벨을 뛰어넘는 ‘강함’이 그에게는 있었으니까.
그는 그 이유를 ‘단계’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1, 2단계에선 티가 나지 않았지만, 5단계에 접어들자 슬슬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러니 어찌 보면 강현이 괴수를 쓸어나가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 기세는, 게이트의 심층부에 진입해서도 꺾이지 않았다.
[Lv. 50 해골 기사]
쿵-
게이트의 핵이 중앙에서 빛나는 가운데, 키가 3미터는 되어 보이는 해골 기사가 거대한 장검을 들고 위압감 있게 서 있었음에도 강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팟-
[스킬, 여명의 눈[Lv.3]을 발동합니다.]
땅을 박차며 해골 기사에게 달려들 뿐이었다.
강현이 빠르게 접근하자, 해골 기사가 장검을 휘둘러 온다.
부우웅-
덩치에서 오는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자칫 스치기라도 하면 몸째 날아가 벽에 처박힐 게 보이는 위력적인 공격.
그 공격에.
[스킬, 참격[Lv.3]을 발동합니다.]
강현은 참격으로 맞서 나갔다.
슈슈슉-
세 개의 백광이 여명의 눈이 가리키는 해골 기사의 약점 중 손목과 팔꿈치, 어깨를 가격하자 순간적으로 해골 기사의 자세가 무너진다.
강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놈의 바로 앞으로 이동하여.
[스킬, 섬광[Lv.6]을 발동합니다.]
전면에 보이는 투구와 갑옷의 이음새, 즉 미세하게 드러난 목을 찍어버렸다.
푸욱-
“크아아-!”
해골 기사가 몸을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강현은 악착같이 찔러넣은 검을 휘저으며 놓아주지 않았다.
크으…….
그러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여겼는지, 해골 기사가 검을 마구잡이로 휘저었다.
정해진 패턴이 없는 공격이었기에 이번에는 강현도 잠시 몸을 뺄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
그러나 끝이 잠시 늦추어진 것뿐, 달라질 건 없었다.
쾅! 콰콰쾅!
강현의 검과 해골 기사의 장검이 연이어 맞부딪쳤다.
그때마다 강현의 매서운 검격에 해골 기사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어어?”
뒤로 밀려나던 해골 기사는 어느새 자신이 벽에 몰려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 순간.
[스킬, 광야참[Lv.1]을 발동합니다.]
[1/10의 마력을 소모합니다.]
강현이 코앞에서 날린 광야참을 끝으로.
쿠우웅…….
해골 기사가 쓰러졌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C등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였다.
“그럼 이제 핵을…….”
강현이 게이트의 핵을 부수려던 때였다.
반짝-
쓰러진 해골 기사에게서 무언가가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해골 기사의 핵이라도 나온 걸까 하며 다가간 강현은.
“……?”
사과만 한 크기의 둥근 흑옥(黑玉)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이철성과 이서준도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
“기록은 잘되었고 수거한 사체는 최대한 빨리 정산하여 계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정말…… 정말 멋진 활약이었습니다. 다시 강현 씨의 활약을 볼 수 있어서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검은 구슬은……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밖으로 나온 뒤 연신 말을 토해내던 이철성이 머뭇거렸다.
“혹시 필요하시면 감정사에게 감정이라도…….”
“괜찮습니다.”
강현이 손을 내저었다.
이철성이 말한 것처럼, 해골 기사에게 얻은 검은 구슬이 뭔지는 이서준과 이철성도 알지 못했다.
듣기로는 보스들은 종종 아티팩트를 떨구고, 최근에 A급 던전의 레드 드래곤에게서 비슷한 게 나왔다는데, 강현이 쓰러뜨린 건 비교적 쉬운 해골 기사였다.
해골 기사를 쓰러뜨리고 나온 게 뭐 대단할까 싶으면서도, 아주 매끄럽고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는 걸로 봐서는 보통 물건이 아닌 듯싶기도 했다.
지금 알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서준이 물어왔다.
“저기…… A급…… 도전할 거죠.”
“A, A급 말입니까?!”
이철성이 화들짝 놀랐으나, 강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 내로 B등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를 도전해 보려고요.”
A급 헌터 평가는 상대평가로 진행되고, B등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와 더불어 다른 A급 헌터 후보자들과 대련을 치러 극히 일부만 선발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나 방금의 C등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면서 강현은 직감했다.
자신이 충분히 그 과정을 뚫어낼 수 있을 거라는 걸.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서준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해왔다.
그때였다.
“---!”
저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왁자지껄한 걸로 보아 여러 명이었다.
“다른 게이트에 진입했던 헌터들이 클리어를 끝낸 모양입니다. 저쪽은 B등급 게이트가 있던 곳이니…… 아마 3대 길드 중 하나인 태극인 듯하군요. A급 헌터를 양성한다고 B등급 게이트를 잔뜩 입찰해 갔으니까요.”
“아.”
이철성의 말에 강현이 알겠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게이트에 진입하기 전, 이철성은 이 근처에 다른 게이트들도 몇 개 있다고 했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가까워져 오는 이들의 휘황찬란한 갑옷과 무기는 누가 봐도 자신들이 헌터라 말해오고 있었다.
어깨의 휘장에 태극기를 새긴 걸로 보아 태극이라는 길드도 맞는 것 같았고.
“음?”
무리를 훑어보던 강현의 눈이 살짝 떠졌다.
헌터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임에도 알아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쪽에서도 강현을 발견했는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 * *
이강현이 광검제라 불리며 리얼의 전설이었던 건 사실이나, 모두가 그를 칭송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업적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면서도, 녀석이 가진 것에 비해 과분한 관심을 받는다며 고깝게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전 리얼의 랭커이자 현 태극(太極)의 특급 유망주, 김태수도 그중 하나였다.
김태수는 저 앞의 이강현을 보고 치솟으려는 입꼬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저놈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리얼이 망한 이후 폐인처럼 살며 고통받는다길래 딱히 건들지는 않았었다.
한데 최근에 각성했다는 소식을 보고 언제 한 번 얼굴이나 보러 가려고 했는데, 설마 오늘 마주칠 줄이야.
다다음 주에 있는 A급 평가를 앞두고 B등급 게이트에 매진하면서 쌓인 피로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잠깐 친구 좀 보고 올게.”
일행에게 말한 그는 이 뒤바뀐 처지를 상기시켜 줄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하여 이강현에게 다가갔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열등감이라 말하겠다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는 촉망받는 특급 유망주이고 이강현은 갓 시작한 햇병아리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을 거고, 벌어진 그들의 차이는 영원히 좁혀지지 않겠지.
“오랜만이다?”
“그러게.”
그의 말에 이강현이 짧게 대답했다.
김태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눈빛이 살아 있잖아.’
자신이 나타났다고 해서 딱히 신경 쓰는 눈이 아니었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눈이었고, 이강현의 주눅 든 얼굴을 원하던 김태수로서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해서 그는, 마력을 살짝 흘리기로 했다.
많은 양은 아니었어도, E급인 이강현이 절대 받아내지 못할 양의 마력이었다.
쿠오오-
“내가 다다음 주에 A급 평가를 보는데, 시간 있으면 구경하러 와. 내가 허락하면 참관 정도는 가능할 테니까.”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올리며 말한 김태수는 상상했다.
마력을 감당하지 못한 이강현이 몸을 부들거리는 모습을.
그런데.
쿠오오오-
“A급 평가를 신청하려고 한다고?”
분명 마력이 피부를 찌르고 있을 텐데도 이강현은 전혀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살짝 웃어 보이기까지 한다.
“나도 A급 신청하려고 하는데 잘됐네. 잘하면 대련에서 만나겠는데?”
그것도, 말도 안 되는 헛소리까지 하면서.
“뭐, 뭐라고?”
이강현의 말을 들은 김태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잠시 뒤 그가 어이없다는 듯이 토해냈다.
“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금 장난하냐?”
김태수가 으르렁댔다.
바로 이틀 전 기사로 이강현이 E급이라는 소식을 접한 그였다.
그런데 뭔 자기도 A급 평가를 신청하려 했는데 잘됐다느니, 잘하면 대련에서 만날 수도 있겠다느니 개소리를 하고 앉아 있으니 말이 곱게 나갈 수가 없었다.
당장 김태수 그조차도 각성한 지 2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B등급 게이트에 들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진짠데.”
이강현은 심드렁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자 김태수는 정말로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강현이 진심으로 저 소리를 하는 건지, 오랜만에 만난 그를 앞두고 허세를 부리는 건지.
그나저나.
쿠오오-
‘이놈은 왜 마력에 영향을 안 받는 거지?’
마력을 계속해서 내뿜고 있는데도 멀쩡해 보이는 이강현을 본 김태수는 내심 당황했다.
‘저럴 리가 없는데……?’
그도 E급이던 시절이 있었고, C, B급이 뿜는 마력에 움찔했던 적도 많다.
선배들이 뿜어내는 마력에 지려서 바지를 갈아입었던 적도 있었다.
해서 자신보다 능력치가 높은 헌터가 뿜는 마력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고 있었는데, 눈앞의 이강현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으니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도리어.
“…….”
무심한 눈으로 자신을 보기까지 했으니까.
이강현의 눈을 마주친 김태수는 순간 흠칫했다.
나 따위는 자신의 목표가 아니라는 듯한 저 무심한 눈.
리얼에서 자신을 보던 눈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이놈이…….’
김태수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간단한 무력행사라도 하고 싶었으나, 옆에 있는 이서준은 그도 잘 알고 있는 정부의 A급 헌터. 섣불리 나설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강현에게 ‘네가 나보다 위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일까.
“아무리 센 척을 하고 싶어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A급 평가 본다는 건 선 넘은 거 아니냐?”
이강현을 향해, 지금까지보다 한 차원 높은 마력이 뿜어진다.
쿠오오-
대기가 미약하게 흔들리고, 바닥의 흙이 튀어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일행이 후다닥 달려와 그를 잡아끌었다.
“김태수! 너 미쳤어? 마력을 왜 방출해?”
일행의 손에 이끌린 김태수가 이강현에게서 멀어진다.
하나 끌려가면서도 김태수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그딴 거짓말을 왜 하냐? 리얼에서처럼 나보다 위에 있고 싶다 이거야? 여기는 리얼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딴 식으로 나불대면-”
“야, 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자!”
그대로 일행에 의해 멀어지려는 김태수에게, 강현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 어차피 A급 평가 때 볼 거잖아?”
“이 새끼가 끝까지……!”
김태수가 무어라 더 외치려 했지만, 다른 일행들까지 합세하여 그를 끌고 갔다.
강현은 멀어져 가는 김태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김태수.
리얼에서 그에게 열등감과 분노를 가지던 랭커들 중 하나였다.
방금 김태수가 보인 다소 뜬금없는 마력분출도 그 열등감에서 기인한 거겠지.
김태수가 뿜던 마력에, 그도 똑같이 마력을 내뿜어 맞대응할 수 있기는 했다.
다만 일부러 버티는 선에서 그쳤다.
지금 보여주는 것보다는 대련에서 보여주는 게 더욱 임팩트가 있을 터였으니까.
“리얼과 현실의 차이라…….”
김태수를 보며 강현이 중얼거렸다.
그의 말처럼, 이곳은 리얼이 아니라 현실이긴 했다.
단지, 그 상대가 김태수가 아니었을 뿐.
‘너무 나오는 게 없으면 없던 말도 생겨나는 법이니까……. 먹이를 주긴 줘야겠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강현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포털사이트에 짤막한 단신 여러 개가 올라갔다.
* * *
[이강현,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각성한 건 한 달이 되지 않았다. 현재 실력은 B급 정도. 빠르게 성장하여 다다음 주에 있을 A급에 도전할 것.’]
[이강현, ‘리얼에서의 경험이 각성해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린다.’]
-와……. 이강현을 다시 본다고? 미쳤다 진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실력 B급이라는 게 말이나 됨?
-무조건 주작임. 3대 길드에서도 몇 달 몇 년 동안 죽어라 키워서 만드는 게 B급인데
-구라도 정도껏 쳐야지 ㅅㅂ 각성한 지 한 달 안 됐다는 게 구라거나 B급 실력이라는 게 구라다
-둘 다 구라거나
-ㄴㄴ 리얼에서 이강현이 보여줬던 거 보면 가능성 있음 그때도 성장 속도가 걍 수직이었음
-ㅇㅇ리얼에서도 주작 의심했었는데 주작 아닌 걸로 판명 났자너
-아니 그건 게임이자너;;; 이건 현실이고
-아무리 헌터 등급이 재능 탄다고는 해도 벌써 B급은 좀;;
…….
“……라는데, 진짜 A급에 도전할 거예요?”
댓글 창에서 눈을 뗀 백아영이 물었다.
“네, 그래서 왔지 않습니까. 어제 영상도 보내드리고.”
강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어제저녁 인터뷰를 마치고 이철성이 보내준 게이트 솔로 클리어 영상을 백아영에게 전송한 뒤, 날이 밝자마자 백아영을 찾아온 상태였다.
“보긴 했는데……. 그러고 보니 어제 늦게까지 인터뷰했는데 피곤하지도 않아요?”
“할 일이 많은데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계속 언론을 피했다간 괜한 억측이 나올 거 같기도 했고요.”
강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인터뷰를 해서인지 정신적인 피곤함이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어제 김태수를 만나고 느낀 바가 있었기에 늦은 시간임에도 인터뷰를 감행했다.
사람들이 씹고 즐길 최소한의 떡밥은 던져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기야, 추측성 기사가 쏟아지려고 하긴 했죠.”
백아영도 공감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도 기사를 보고 다시 한숨을 푹 내쉰다.
“그건 그렇고 A급 도전이라니 이걸 좋아해야 되는 건지 아닌 건지…….”
C등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를 하러 간 게 어제였는데 오늘은 B등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를 하겠다니 그럴 만도 했다.
이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 아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성장 속도라 하기도 좀 그렇겠지.
당장 C급 헌터인 그녀의 부하와 투덕거리던 게 현실의 시간으로는 고작 며칠 전이었으니까.
강현이 한숨을 쉬는 그녀를 보고 있을 때였다.
‘아, 맞다.’
어제 해골 기사가 떨군 흑옥이 떠올랐다.
이철성과 이서준은 몰랐지만, 백아영은 또 다를 수도 있었다.
“팀장님, 혹시 이게 뭔지 아십니까?”
“네? 뭐가요?”
강현은 흑옥을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흐음…….”
턱을 괸 백아영이 뭔가 아는 것처럼 흑옥을 응시한다.
그걸 본 강현의 마음속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부풀어가는데.
“모르겠는데요.”
돌연 맥빠지는 소리를 해오는 게 아닌가.
“…….”
강현이 실망하는 얼굴을 해 보이자, 그녀가 급히 말해왔다.
“대, 대신 알 만한 사람이 있어요!”
“예?”
그녀가 뒤에 있는 프로젝터에 지도를 띄웠다.
지이잉-
산 중턱에 위치한 흰색 건물이 나타났는데, 얼핏 보기에도 연구소로 보였다.
“각성자와 괴수를 다루는 제2 국립이능연구소예요. 박사님 한 분을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데 원하시면 소개해 드릴게요. 워낙 박식하신 분이라 아마 아실 수도 있을 거예요.”
“괴수를 연구하는 연구소라고 하셨습니까?”
“네에.”
강현이 반색했다.
정체불명의 흑옥은 차치하고서라도, 안 그래도 기껏 얻은 수련의 방을 사용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차였다.
루드스가 준 나뭇가지에 미약한 숲의 힘이 남아 있기는 했어도, 중하급 수련의 방을 다 쓰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괴수 연구소라는 말을 들으니 왠지 이 고충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견학으로 신청을 넣어둘 거고, 연구소에서 답이 오면 알려드릴게요. 대신 답신이 오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려요. 대략 1~2주 정도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부탁드립니다.”
탁- 타닥-
백아영이 컴퓨터로 견학 양식을 작성한다.
그러면서도 뭘 생각한 건지 강현을 질린 눈으로 쳐다본다.
“……정말, 믿기지가 않아요. 강현 씨 같은 헌터는 본 적이 없어요. 아무리 리얼의 신이었다고 해도 벌써 A급을 신청한다는 게…….”
말을 잇지 못하던 그녀는 심호흡을 한 후에야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후……. 그래도 뭐, 우리 쪽 사람이니까 좋은 게 좋은 거죠……. 아무튼 일정을 말씀드리자면, C급 게이트를 혼자 클리어하셨으니 다음 주에 있는 B급 평가는 잘 처리될 거예요. 문제는 다다음 주에 있는 A급 평가인데……. 그전까지 B등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 가능하시겠어요?”
백아영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어왔다.
하긴, C등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만 하면 됐던 B급 평가와는 다르게, A급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B급 헌터들과의 대련에 더해 B등급 게이트까지 솔로 클리어해야 한다.
물론, 강현이 할 대답은 하나였지만.
“당연하죠.”
* * *
그 이후, 시간이 흘러 다음 주가 되었다.
강현은 무사히 B급 헌터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고, 언론은 연일 최단기 B급 헌터니 뭐니 시끄러웠다.
물론 그런 것에 휩쓸릴 강현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묵묵히 B등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 결과, C, D등급 게이트보다는 난이도가 있긴 했어도 강현은 어렵지 않게 B등급 게이트 클리어에 성공할 수 있었다.
38레벨을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게이트에 더 들어가고 싶긴 했지만, 근래 게이트 품귀 현상이 일어나 관리국조차 일정에 맞추어 들어가야 한다는 말에 포기해야 했다.
그 이외의 시간에는 그의 지인들을 만났다.
각성했다는 소식에 워낙 많은 곳에서 연락이 온지라,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다.
그렇게 강현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자, 지금부터 제14회 A급 헌터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어느새 A급 헌터 평가 날이 다가왔다.
* * *
못해도 수백 평은 되어 보이는 흰색 바닥의 드넓은 링.
이곳이 바로 A급 헌터 평가를 위한 평가장이었다.
평가장에 강현을 포함하여 약 10여 명의 B급 헌터들이 자리한 가운데,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단체 대련은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진행되며, 총 두 번 치러집니다. 11명의 B급 헌터 중 3명이 A급 헌터가 될 것이며, 그 모든 과정은 협회에서 나온 심사위원들에 의해 평가될 것이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가 항목은 기본적인 대인전 능력, 판단력, 각성자로서의 전투법…….”
강현은 중앙에 선 사회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 쓰러뜨리면 된다는 거군.’
꼭 필요한 말만 해주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어디에 있는 어떤 돼지머리와는 달랐다.
“대련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살상기는 용인되나, 상대가 전투 불능이 되었다면 불필요한 살상기는 자제해 주십시오. 제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시작하시면 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헌터들이 하나둘 몸을 풀어나간다.
강현도 몸을 풀고 있는데, 확장된 기감에 평가장에 있는 참관인들이 쑥덕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기에 이강현이…….”
“벌써 A급이라고? 최단기잖아.”
“한번 지켜봐야겠는데.”
…….
‘목에 공무원증이 있는 걸 보면 협회 쪽 사람들이겠네.’
아마 강현의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를 전해 듣고 한번 보러온 이들이 아닐까 싶었다.
“10초 뒤 대련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10…….”
강현은 사회자의 카운트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
대부분 쓸 만한 아티팩트를 가져왔는지 온몸이 광으로 번쩍거린다.
누군가는 저걸 보고 템빨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강현은 딱히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좋은 아티팩트가 있다고 해도, 그걸 잘 다루기 위해서는 능력치와 센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던 그때였다.
마찬가지로 번쩍거리는 차림을 한 김태수가 그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김태수의 입가에 기분 나쁜 미소가 걸린다.
어찌 됐건 간에, 자신이 있다는 것일 터.
강현은 그 자신감의 근원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아티팩트랑 레벨에서 차이가 난다 이건가.’
아티팩트도 아티팩트지만, 확실히 김태수를 포함한 이 자리의 헌터들의 레벨은 강현보다 높을 것이다.
C급 헌터의 평균 레벨이 30대이니 적어도 4, 50은 될 거고, 그에 따른 상당한 능력치 차이가 있긴 하겠지.
하지만.
씨익-
강현은 마주 웃어주었다.
김태수가 아티팩트와 레벨을 믿는 것처럼, 그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다.
비슷한 무력을 가진 이들의 급을 나누는 차이.
더 비욘드를 거치면서, 그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삐이이익-!
[스킬, 광검[Lv.9]을 발동합니다.]
슈와아아-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순백의 백광이 강현의 검에 깃들었고.
[스킬, 여명의 눈[Lv.3]을 발동합니다.]
동시에, 모두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