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으로 차원최강 3권
목차
1장 예선 : 두 번째 미션(2)
2장 변화
3장 복귀 준비
4장 모의전
5장 예선 : 세 번째 미션(1)
1장 예선 : 두 번째 미션(2)
그곳에는 은은한 청록빛을 뿜어내는 큼지막한 구슬이 반짝이고 있었다.
[중급 회복구]
-내/외상을 회복할 수 있는 회복구입니다. 내부의 마력이 모두 소진되면 파괴됩니다.
남은 마력 : 66/100
“오.”
강현이 감탄사를 흘렸다.
비록 영구적인 아티팩트는 아니었어도, 연이은 싸움으로 지친 그에게 가장 필요한 류의 아티팩트였다.
구슬을 들어 올리자 전구가 들어오듯 구슬의 청록빛이 밝아지더니, 청량함이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스으으-
설명에 적혀 있던 대로 외상뿐만 아니라 내상, 즉 진탕된 내장과 무리가 간 근육들이 아물어가는 게 느껴졌다.
‘혹시 모자란 피도 채워 주려나?’
순간 혈룡검이 빨아먹은 피도 보충을 시켜주는 건가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건 아닌 듯했다. 피가 빠져나가면서 생긴 어지럼증은 그대로였다.
회복이 모두 되려면 시간이 소요되는 것 같았기에, 강현은 그동안 할 일들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결국 이기긴 이겼네
-아직 하루도 안 됐는데 벌써 몇 번째 싸움이냐
-일단 물러나야 되는 거 아님?
-누가 노리면 어캄;;
-흐음…….
-자니스처럼 기여도 노리고 오는 애들 더 있을 거 같은데
…….
시청자들의 우려 섞인 채팅들이 올라온다.
쉬지도 않고 치고받고 싸워댔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별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금방 정리하고 갈 거라 아마 괜찮을 거 같네요.”
만약 자니스와의 싸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누군가가 기습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그가 회복구를 손에 드는 걸 보고도 안 나왔을 리가 없다.
어떻게든 튀어나와서 방해하려고 했겠지.
‘적어도 지금은 근처에 아무도 없다고 봐도 돼.’
물론 이곳에 몇 시간 동안 죽치고 있으면 말이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고작 몇 분 더 머무른다고 뭔 일이 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다행이지만…….
-누가 또 올 수도 있으니까 빨리 할 거 하고 가자
-보는 내가 떨리네
안절부절못하는 채팅을 보며 강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말하는 것만 보면 평범한 사람인데.’
<초월자>라는 게 거의 확실한 시청자들이다.
상식적으로 <초월자>들이 이런 미션에 떨릴 리가 없다.
그럼에도 저런 채팅이 계속 올라온다는 건, 그 정도로 저들이 자신에게 몰입했다는 말이리라.
마치 서바이벌 오디션을 보는 시청자들이 응원하는 연습생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듯이 말이다.
일종의 팬들인 셈이었다.
‘초월자들이 팬이라니.’
피식 웃은 강현은 회복구를 그대로 왼손에 쥔 채로 자니스가 서 있던 곳으로 이동했다.
이동이라고 해봐야 회복구를 주웠던 바로 옆이었지만.
‘얘도 튀었구만.’
사도천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제때 기권을 외쳤는지 자니스의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상당한 양의 피가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걸로 보아, 참룡섬에 꽤나 타격을 받은 듯했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62/200)]
강현은 오른손을 뻗어 에테르를 취했다.
스으으-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92/200)]
‘딱 30이라.’
혼자 50을 줬던 사도천보다는 못했다만, 30도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다.
그는 새삼 자신이 어떤 참가자들을 쓰러뜨린 건지를 실감했다.
5위에 올라 있던 사도천에 이어 10위인 자니스까지.
참룡섬이라는 사기에 가까운 스킬로 마무리를 하긴 했어도, 마무리를 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만들어낸 건 자신이었다.
그 사실이 그에게 형용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슈우우…….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회복구의 불이 서서히 꺼지며 청량함이 몸을 빠져나간다.
회복이 완료된 것이다.
강현은 회복구의 남은 마력을 확인해 보았다.
남은 마력 : 36/100
처음 들었을 때 66이었으니, 한 번 회복하는 데에 정확히 30이 소요된 셈이다.
‘한 번은 더 쓸 수 있겠네.’
이곳에 별다른 치유시설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한 번도 만족스러웠다.
“아, 맞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
고개를 돌린 강현은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를 발견했다.
혈룡검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미처 보지 못했던 레벨 업 메시지였다.
‘30부터 진짜배기 스킬들을 배웠었지.’
정확히는, 천광의 날개를 배웠던 30레벨부터였다.
30레벨 전까지 기본에 충실한 스킬들, 기본기를 배웠다면 30레벨부터는 그의 칭호였던 <광검제>에 걸맞은 스킬들을 하나씩 배워나간다.
가령, 지금까지는 고정된 마력을 투입하여 딱 그 정도의 성능을 보여주던 스킬들만 배웠지만…….
[스킬, 광야참[Lv.1]을 습득합니다.]
광야참(曠野斬)[Lv.1]
-전방을 베어 방대한 검격을 쏘아냅니다. 마력을 투입할수록 위력이 강해집니다.
최소 1/10, 최대 1/5의 마력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투입 가능한 마력의 양이 증가합니다.
단순히 백광 세 개를 날리는 참격과는 달리 광야참은 제대로 된 첫 베기[斬] 스킬이자, 첫 충전식[Charging] 스킬이었다.
당연하게도 충전식 스킬이니만큼, 그 위력은 여태까지의 스킬들보다 훨씬 파괴적이었다.
물론 천광의 날개도 그렇고, 이제부터 배우는 스킬들은 필히 마력을 관리해 주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생겨나긴 했다.
쉴 새 없이 사용해도 마력에 별 무리가 없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앞으로는 몇 번 쓰고 나면 마력이 바닥나 버릴 터였으니까.
‘그나저나 벌써 35라고?’
예상을 뛰어넘은 레벨 업 페이스에 강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가 진짜 40 찍겠는데?’
애초에 40을 목표로 삼긴 했으나, 좀 높게 잡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한데 하루도 되지 않아 벌써 2레벨이 올랐다.
상황이 조금 받쳐주기만 한다면 40레벨도 가능할 듯싶었다.
“역시…….”
미션이 시작되기 전에도 생각했던 거였지만, 이 던전은 성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그 기회를 살리려면 최대한, 가능한 한 오래 살아남아야 했다.
‘멀리 돌아가야겠군.’
강현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 그가 위치한 동북부가 아닌 다른 방향을 통해 중앙을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간다고 쳐도, 네 번의 전투를 치르느라 이미 시간이 지체되어 오브를 노리기에는 늦었다고 판단됐다.
또한 자니스 말고도 그의 기여도를 노릴 참가자는 분명 더 있을 텐데, 언제까지고 만나는 모든 참가자와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쏠린 어그로를 분산시켜야 했다.
-남은 참가자 수 : 16/30
팟-
남은 참가자의 수를 확인한 강현의 신형이, 건물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 2일 차.
DBC의 편집실.
-남은 참가자 수 : 16/30
-첫날 버프 끝났네
-따분하다
-노잼이다 돼지야 어떻게 좀 해봐
-다 간만 보고 있잖아
어제와 달리 2일 차가 다 지나도록 한 명의 탈락자도 발생하지 않자, 슬슬 시청자들의 불만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
그럼에도 살짝 웃고 있는 로독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는 프로듀서였고, 이런 일들에 동요해서는 안 됐다.
한때 15%까지 올랐던 시청률이 어느새 10%로 떨어졌다고 해도 참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럴 거면 아티팩트랑 수호자는 왜 넣은 거임?
-ㄹㅇ 참가자들 아무도 관심 없는데
-DBC 빡대가리 인증 오졌고
…….
DBC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아티팩트와 수호자 관련 채팅이 올라오자 처음으로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
“크, 크흠…….”
아티팩트와 수호자의 공기화는 로독을 비롯한 방송국의 실무진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설마 첫날부터 냅다 싸울 거라고는…….’
미션이 시작하기 전, DBC는 이렇게 예측했다.
첫 2~3일 동안은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수색 및 탐색에 집중할 것이고, 본격적으로 싸우는 건 그 이후일 것이라고.
해서 참가자들의 예상 동선을 생각하며 준비해 둔 것들을 적절한 곳에 배치해 놓았는데, 그 예측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첫날에 절반이나 되는 참가자들이 탈락해 버릴 줄이야.’
하루도 되지 않아 14명이 사라졌는데, 남은 16명이 싸우려 들 리가 없었다.
그저 이미 탈락한 참가자들의 기여도를 뛰어넘고자 괴수와 함정이나 처리하면서 자신들의 생존을 공고히 할 따름이었다.
“끄응…….”
그러니 로독이 가만히 있는 것도 당연했다.
할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나마…….’
로독의 눈이 중앙에 설치된 카메라로 이동했다.
콰쾅! 쾅!
현재 그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세르반테와 남궁강룡의 전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처음 세 시간을 싸운 끝에 수세에 몰린 세르반테가 물러나려 했고, 그런 그를 남궁강룡이 가차 없이 쫓으면서 발생한 구질구질한 싸움이 끝나가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오늘 안에는 오브의 주인이 나오겠지.’
오브의 주인이 나타나면 던전의 수호자가 깨어난다.
그때가 되면 시청자들에게 말할 게 생길 터였다.
‘에휴…….’
물론 지금 할 말이 없는 건 똑같았기에, 로독은 남몰래 한숨을…….
“어엇?!”
기죽은 채 지도를 보던 로독이 벌떡 일어났다.
-뭐냐
-또 우리 낚으려고 하네
-양심 ㅇㄷ?
…….
그를 비난하는 채팅들이 마구 올라왔으나, 로독의 입꼬리는 아랑곳 않고 벌어졌다.
그도 그럴 게, 그의 눈에는 중앙을 향해 접근하는 다수의 점들이 보였으니까.
빠르게 구겨졌던 표정을 원상 복귀시킨 로독이 평상시대로의 목소리로 말했다.
“하핫.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시청자님들.”
시청자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최적의 시나리오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현, 11위]
[로프터스, 4위]
…….
[란 레이센, 2위]
[알렉시스 찬드라스, 3위]
[이강현, 7위]
* * *
[북부 중앙방어소]
지도를 본 강현은 미소를 지었다.
돌아오느라 시간이 걸리기는 했어도, 오는 동안 타 참가자를 만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덕에 괴수와 함정을 느긋하게 처리하면서 몇몇 괜찮은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었고.
“중앙방어소라.”
강현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줄지어 늘어진 기괴한 건물 너머에 100m는 돼 보이는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성벽과 자신의 거리는 약 1㎞.
‘저 너머가 중앙인가.’
목적지였던 중앙이 코앞이었지만, 그런다고 그는 별생각 없이 걸어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주변을 경계하며 성벽으로 나아갔다.
오늘 단 한 명의 탈락자도 발생하지 않은 걸로 보아, 참가자 대부분이 간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진짜들만 남았을 거야.’
실제로 기여도를 불러내어 명단을 확인해도 어느 하나 만만한 참가자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근처에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면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기감을 곤두세운 채 성벽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성벽을 50m 남겨두었을 때였다.
쿠르르릉- 쿠릉…….
화르르륵…… 콰콰쾅!
성벽 너머에서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과 귀가 먹을 것만 같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싸움……!”
소리를 듣자마자 그는 성벽을 타기 시작했다.
타타타타-
인간보다는 초인에 더 가까운 신체 덕분인지 그는 무리 없이 성벽을 올랐고.
“저건…….”
볼 수 있었다.
오브가 있는 중앙으로 통하는 길로 보이는 거대한 터널과.
[란 레이센, 2위]
[알렉시스 찬드라스, 3위]
그 앞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펼치는 최상위권 참가자들을.
쿠르르릉!
알고 보니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는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쏘아내는 바람과 번개가.
화르륵…… 콰콰쾅!
귀가 먹을 것 같은 폭발음은 란 레이센의 화염에서 뿜어지는 것이었다.
‘이게…… 본선진출조들의 싸움.’
서로 엄청난 위력의 공격들을 주고받는데, 어느 하나 지금의 그가 받지 못할 파괴적인 공격들이었다.
콰쾅! 쾅!
잠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강현은 알게 되었다.
‘란 레이센이…… 밀리고 있잖아.’
알렉시스 찬드라스의 맹공에, 란 레이센이 주춤거리며 밀리고 있다는 걸.
얼핏 봤을 때는 공수를 주고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란 레이센이 현저히 몰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순간.
“…….”
강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그의 선택에 따라 많은 게 바뀔 수도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상황이 급박해서일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스킬, 천광의 날개[Lv.1]를 발동합니다.]
생각을 마친 강현이, 그대로 날아올랐다.
“…….”
란 레이센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렉시스 찬드라스, 3위]
“뭐 하는 거지? 이게 다인가?”
긴 흑발의 청년,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차가운 냉소를 흘렸다.
그런 그를 보며 그녀는 자신이 오판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던전의 중앙으로 가는 길목에서 알렉시스 찬드라스를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항상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받아왔고, 서로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파악하기로 알렉시스 찬드라스는 자신과 호각이었고, 상황에 따라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실제로 처음에는 호각의 승부를 이어 나갔고.
상황이 반전된 건, 그가 공간을 찢으며 ‘지팡이’를 꺼내면서부터였다.
‘……저 지팡이만 아니었어도.’
그녀의 눈이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들고 있는 지팡이로 향했다.
머리 부분에 주먹만 한 샛노란 보석이 박혀 있는 지팡이였다.
그녀의 차원에서 뇌정석(雷淨石)이라 부르는 보석이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전까지는 바람의 힘만 다루던 그가 벼락까지 휘두르는 게 설명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 벼락은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다루는 바람의 힘과 상승효과를 일으켜, 공격의 위력을 두 배 가까이 올려주었다.
‘저런 걸 이제야 꺼내다니.’
이번 귀환에서 가져왔는지, 아니면 지금껏 가지고 있었으면서 쓰지 않았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는 확실했다.
그가 그녀와 같은 최상위권 참가자들을 위해 아껴둔 아티팩트라는 것.
“대답이 없구나.”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한 발짝 나서며 냉소했다.
지팡이의 뇌정석에 샛노란 빛이 들어왔고, 상공에 인위적으로 형성된 뇌운(雷雲)이 점멸한다.
쿠르르릉…….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급히 주문을 외웠다.
화르르륵!
그녀의 지팡이에서 생겨난 거대한 화염이 주위를 둥글게 뒤덮었다.
화염의 벽이 나타나자마자, 낙뢰가 화염의 벽에 작렬했다.
콰콰쾅!
낙뢰는 화염의 벽을 뚫지는 못했지만,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큭!”
그 충격에 이를 악물면서도 그녀는 지팡이를 움직였다.
화르륵-!
그녀가 지팡이를 움직이자 집채만 한 화염구가 쏘아져 나간다.
처음에는 하나이던 화염구는 수백 개로 분열하여 사방에서 알렉시스 찬드라스를 덮쳤다.
하지만.
“흥.”
쾅!
손을 내뻗은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강하게 방출한 바람이 사방의 화염구들을 쉽게 튕겨냈다.
“오늘에서야 잘못되었던 순위를 뒤집을 수 있겠군.”
오만한 얼굴을 해 보인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다음 벼락을 장전한다.
‘다음 벼락을 막자마자 몸을 피해야 해.’
그와 더 맞붙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고개를 치켜든 그녀가 어떻게 피할지를 고민하던 때였다.
“어?”
뇌운을 주시하던 그녀의 눈에 무언가 들어온 것은.
성벽 꼭대기에서 누군가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건가?’
그녀는 재빨리 그 참가자를 확인했다.
[이강현, 7위]
“……!”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사도천과 자니스 라르케치를 비롯한 참가자 여러 명을 이강현이 쓰러뜨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이강현이 그들 모두를 이겼다는 말이었다.
현재 압도적인 기여도 1위이기도 했으니, 그가 합류한다면 이 위기를 타파해 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봐요! 이쪽이에요!”
란 레이센은 알렉시스 찬드라스에게서 물러나며 크게 외쳤다.
그녀는 방금의 싸움을 봤다면 이강현이 합류할 거라 여겼다.
이강현이 최상위권을 노린다면, 벼락과 바람을 함께 다루는 알렉시스 찬드라스는 너무나도 큰 벽이었다.
생각이 있다면 지금 같은 기회가 왔을 때 그를 쓰러뜨리는 게 낫다고 판단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이강현의 행동을 기다렸다.
슈와아-
이강현이 화려한 순백의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여기까지는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한데 이강현은 싸움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대로 그들을 가로질러 가는 게 아닌가.
“어, 어……?”
생각지도 못한 이강현의 외면에 란 레이센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알렉시스 찬드라스도 그건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 몸이 싸우는 틈을 노려서 오브를 노리려던 건가? 어이가 없을 지경이군.”
코웃음을 친 그가 지팡이를 내리긋자, 그녀에게 날아가려던 벼락이 이강현에게 내리꽂힌다.
콰쾅!
벼락에 직격당하기 직전 이강현은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틀었고, 그 덕에 벼락에 스치는 선에서 그쳤다.
그렇지만 스친 날개가 반파되었기에 날아가던 이강현은 지상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턱-
공교롭게도 란 레이센의 옆이었다.
“…….”
이강현이 입을 달싹였다.
-알렉시스 찬드라스를 물리칠 때까지 동맹을 맺읍시다.
아티팩트라도 사용했는지 입을 달싹이기만 했는데도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라구요?”
싸움에 끼지도 않으려 했으면서 이런 태세전환이라니.
그녀는 이강현의 뻔뻔함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소한 감정낭비를 할 때가 아니었다.
입을 삐죽여대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를 쓰러뜨리기 전까지만이에요.”
그녀의 말에, 이강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스킬, 광검[Lv.8]을 발동합니다.]
대(對) 알렉시스 찬드라스 동맹의 급작스러운 결성이었다.
* * *
“흐음.”
눈앞에서 자신을 향한 동맹이 맺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알렉시스 찬드라스는 별다른 반응조차 없었다.
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걸 말하는 듯, 그저 눈을 가늘게 뜰 뿐이었다.
과도함을 넘어 오만하기까지 한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그게 실력에서 비롯된 자신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강현은 내심 혀를 찼다.
이 최상위권 참가자 둘의 싸움에 껴서 좋을 게 없었기에 가능하면 끼지 않으려 했다.
해서 걸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한 번 가로지르려 해봤는데, 걸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싸워야 할 듯했다.
-저놈의 약점이 뭡니까?
강현은 메시지 아티팩트로 란 레이센에게 물었다.
메시지 아티팩트는 어제 괴수들을 처리하면서 얻었던 아티팩트 중 하나였다.
란 레이센은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더니,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그나마 근접전이에요.
머릿속에 바로 목소리가 전달됐다.
아티팩트로 말하는 건지 마법으로 말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녀도 비슷한 걸 할 줄 아는 것 같았다.
-제일 자신 있는 분야군요.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게 아니고요?
-원거리 전도 잘하는데요.
그에게는 참룡섬과 광야참이라는 훌륭한 스킬들이 존재했다.
물론 참룡섬은 최후의 필살기로 써야 했고, 광야참은 마력의 소모가 너무 컸기에 아껴두어야 했지만.
-아무튼 붙어서 싸워봐요. 엄호해 줄게요.
-엄호만? 그러다가 나만 죽어 나가는 거 아닙니까?
-저 구름도 내가 처리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과연, 하늘을 보자 시꺼먼 구름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강현은 앞으로 내달렸다.
타타타-
‘그러고 보니 제대로 말하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
그는 란 레이센과 제대로 말하는 건 지금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전혀 스스럼이 없는 건, 눈앞에 강적이 있어서일까.
실제로 알렉시스 찬드라스는 자신이 달려들고 있음에도 전혀 위기감을 느끼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 얼굴을 보자 저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강현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위험하다고.
[스킬, 질주[Lv.2]를 발동합니다.]
강현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그 순간이었다.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화르르륵-!
강현의 머리 위를 타는 듯한 화염이 덮었다.
잠시 란 레이센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갸웃거리던 강현은 이내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콰콰쾅!
그의 바로 위로 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벼락과 화염이 충돌하며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쿠콰콰콰-
-뚫리기 전에 빨리 지나가요!
그녀의 말마따나 화염이 막아주고는 있었으나, 오래가지 못할 듯했다.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강현은 순보를 사용하여 알렉시스 찬드라스에게 뛰어들었다.
[스킬, 참격[Lv.3]을 발동합니다.]
알렉시스 찬드라스에게 세 개의 백광이 날아들었지만.
투쾅!
그가 손을 내밀어 무형의 기운을 방출하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그때는 이미 강현의 검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스킬, 섬광[Lv.6]을 발동합니다.]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린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마주 손을 휘둘러 온다.
무형의 기운이 일렁이는 그 손은 얼핏 봤을 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강현은 직감했다.
‘이건…… 맞으면 위험하다.’
그는 그 즉시 섬광을 끊고 휘광을 발동했다.
[스킬, 휘광[Lv.2]을 발동합니다.]
파창-
최대한 한 점에 집중시켰는데도 놈의 손이 닿자마자 휘광이 깨져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위력이었다.
‘이런 미친…….’
그는 절로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삼켰다.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역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쐐애액-
강현은 검을 휘둘렀다.
그의 지팡이와 자신의 검이 맞부딪쳤다.
쩡!
“큭!”
지팡이와 부딪치자마자 속에서 신물이 치솟았다.
하나 놈은 아무런 영향도 없는지, 가소롭다는 얼굴로 재차 지팡이를 휘둘러 왔다.
식겁한 강현은 전방을 크게 베어냈다.
[스킬, 광야참[Lv.1]을 발동합니다.]
[1/10의 마력을 소모합니다.]
쿠콰콰-
거대한 백색 검기가 자신에게 날아오자 알렉시스 찬드라스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지이잉-
그가 허공을 움켜쥐자 그의 주먹으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흘러 들어갔다.
마력이 어느 정도 흘러 들어가자 그가 광야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콰쾅!
무형의 권격이 쏘아지더니, 굉음과 함께 광야참을 상쇄시킨다.
팟-
광야참이 무위로 돌아갔으나, 그 틈을 타 강현은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란 레이센의 옆으로 물러난 그는 숨을 헐떡였다.
“헉…… 허억…….”
단 한 번의 교환이었음에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알렉시스 찬드라스는 강했다. 너무 강했다.
벼락과 바람을 제하더라도 기본적인 능력치만 20~30레벨은 차이나는 듯했다.
-조심해요, 이제 벼락이 떨어질 테니까.
란 레이센의 말에 고개를 올리자 금방이라도 벼락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녀가 구름을 좀 줄였는지, 아까보다 구름의 크기가 다소 작아졌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벼락을 피할 수는 없습니까?
-너무 빠르고 범위도 넓어서 못 피해요.
-저놈한테서 도망칠 수는…….
-우리 둘 중 하나가 시간을 벌어주면 가능하긴 하겠죠.
-…….
도망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번엔 내가 상대할 테니까 숨 좀 추스르다가 끼어들어요. 너무 길게 쉬지는 말고.
말을 마친 란 레이센이 지팡이를 휘저으며 걸어 나갔다.
화륵!
화염의 벽, 화염구, 불꽃 세례…….
무지막지한 화염들이 양옆,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알렉시스 찬드라스에게 내쏘아졌다.
거기에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바람과 벼락으로 대응하면서, 강현에게 잠시 숨을 추스를 시간이 생겨났다.
쾅! 콰쾅!
‘후우, 어쩔 수 없나.’
스르릉-
둘의 싸움을 보던 강현은 혈룡검을 뽑아 들었다.
참룡섬이건 천광의 날개건, 스킬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다만.
‘이길 수 있을까?’
참룡섬으로 놈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여태까지는 참룡섬을 쓰면 이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눈앞의 괴물에게는 그런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 돼.’
강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알렉시스 찬드라스를 이기지 못하면 두 번째 미션은 여기서 끝이다.
이틀 차에 떨어졌다간 40레벨은 물론이요, 자칫하다간 순위까지 주욱 밀려날지도 몰랐다.
콰쾅! 콰콰쾅!
앞을 보자 란 레이센이 아직까지는 잘 버텨주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버텨줄지 알 수 없었다.
‘합류해야겠어.’
그는 뛰어들 타이밍을 잡고자 전방을 주시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쿠콰콰콰-
“……?”
돌연, 던전의 중앙에서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참가자 남궁강룡이 오브를 획득했습니다.]
[던전의 수호자들이 깨어납니다.]
[숨겨진 모든 아티팩트들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현재 주인이 없는 아티팩트의 수 : 53개]
[지도를 확인하여 근처의 수호자와 아티팩트들의 위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메시지를 본 순간 어떠한 생각이 그의 머리를 번개처럼 스쳤다.
그는 즉각 지도를 불러냈다.
[현재 오브를 가진 참가자 : 남궁강룡]
그러자 오브를 가진 남궁강룡이 중앙 깊숙한 곳에 있다는 것과.
반짝-
바로 근처에 아티팩트 십수 개가 반짝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는 재빨리 아티팩트들의 정보들을 읽어나갔다.
[성검 무니타르의 파편]
-천계의 성검, 그 파편입니다. 사용 시 비기 <하늘을 가르는 검>을…….
[중상급 마력 폭탄]
-뛰어난 폭발력을 가진 마력 폭탄입니다…….
[상급 활력구]
-몸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구슬입니다. 사용자의 원기까지…….
[아쉬타의 갑옷]
-드워프 장인이 만들어낸 역작입니다. 장착 시 <웅크리기>를…….
…….
다들 뛰어난 효과를 가지고 있긴 했어도, 그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승부의 추를 되돌릴 만한, 그런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목록을 빠르게 훑던 강현의 눈이 한 곳에서 멈추었다.
[진(眞) 폭발의 비약]
-20분 동안 몸의 활력을 극한까지 끌어냅니다. 20분 뒤에는 심각한 탈진 상태가 됩니다.
‘이거다!’
허공을 보며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던 이강현이 급히 입술을 달싹인다.
-가져올 게 있으니까 버티고 있어 봐요!
-뭐, 뭐라고요? 그게 웬 헛소리예요?
-5분이면 될 겁니다!
“잠깐! 잠깐만요!”
눈을 크게 뜬 란 레이센이 육성으로 외쳤음에도 이강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순백의 날개를 펼쳐 성벽을 넘어 날아갈 뿐이었다.
-미친 거 아냐?!
그걸 본 란 레이센이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분개했지만, 알렉시스 찬드라스를 바로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화르륵…… 콰콰쾅!
다시 화염과 뇌전이 얽히며 폭발음이 터널 근방을 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일들은 모두, 편집실의 화면에 생생히 비추어지는 중이었다.
로독은 화면에서 눈을 떼어 채팅창으로 가져갔다.
갑작스러운 이강현의 행동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이 폭발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ㅋㅋㅋㅋㅋ머임 이거?
-나름 진지한 상황인데 뭔가 웃기네ㅋㅋㅋ
-이강현이랑 란 레이센 케미가 좋은 듯
-? 이강현이 통수 때린 거 안 보임? 완전 죽일 놈인데 뭔 얼어 죽을 케미여
-개같은 이강현.
-흐음.
-어허 흐음좌 보시는데 이강현 욕하기 있냐?
-ㅅㅂ 흐음좌가 누군데
…….
생각하기가 귀찮은 건지 머리를 비우고 본 건지, 곧이곧대로 이강현이 란 레이센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여기는 시청자부터.
-아티팩트 가지러 갔겠네.
-ㅇㅇ그런 듯. 그거 아니면 답 안 보이는 상황이긴 함
-알렉시스가 너무 강하네. 쟤 원래는 안 저랬던 거 같은데
-자기 증조할아버지한테 저 지팡이 얻어와서 그런 듯?
-저것만 아니었으면 란 레이센이랑 이강현이 넉넉하게 이겼겠죠?
-둘이 아니라 란 레이센 혼자도 해볼 만했을걸요.
…….
냉철하게 현 상황을 파악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하는 시청자까지.
가지각색의 반응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반응을 의도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로독이었기에, 그는 기분 좋게 채팅을 훑었다.
-알렉시스 찬드라스 템빨 오지네.
-고작 예선에 뇌운석 가져오기 있기 없기?
-증조할애비가 줬다고 해도 너무한데.
알렉시스 찬드라스의 아티팩트를 성토하는 채팅들이 연이어 올라온다.
로독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실히…… 예선에서 사용되기엔 과도한 아티팩트이긴 하지.’
뇌운석(雷雲石).
말 그대로, 뇌운을 형성할 수 있는 보석이다.
진짜 비를 내리고 번개를 내리는 뇌운보다는 훨씬 작았으나, 뇌운은 뇌운이었다.
매우 귀한 보석이었으며, 한낱 인간이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1 신계를 지배하는 신 중 하나인 알렉시스 찬드라스의 증조부, 바람의 신이 움직인 게 분명했다.
‘여든한 번째 증손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군.’
수천, 수만에 달하는 핏줄 중 하나에 불과할 알렉시스 찬드라스에게 저 정도의 아티팩트를 내릴 줄은 몰랐다.
하나 그 덕택에 알렉시스 찬드라스는 훨씬 강해질 수 있었고, 오브를 손에 넣은 남궁강룡과 더불어 유력한 최후의 1인이 되었다.
-저거 제재 안 함?
-문제 있는 거 같은데.
…….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일부 시청자들이 따지듯 물어왔다.
로독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핫, 이미 던전으로 들어갔는데 저희가 어떻게 개입을 하나요. 메시지 보내는 거 말고는 방송국 차원에서도 개입 못 하는 거 아시면서.”
딱히 제재할 마음은 없었다.
참가자가 자신의 배경을 잘 활용하는 것 또한 능력이기도 했다.
-아니, 프로듀서라는 놈이 밸붕되기 직전인데 방관을 해?
-게시판 테러 간다 돼지 놈아
불만을 표하는 채팅들에도 로독은 태연했다.
여러 반응이 나오면서 의견이 갈리고는 있지만, 그 반응들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중이었으니까.
-아 좀 닥치셈. 이제야 좀 재밌어지는데.
-보기 싫으면 딴 데 가든가
-개꿀잼.
-더 싸워라 더
…….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참가자들이 잔뜩 싸우는 것만큼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는 건 없다.
‘다행히 아티팩트와 수호자의 위치를 밝힌 게 좋게 작용했어.’
야심 차게 준비한 아티팩트와 수호자가 무위로 돌아가는 걸 눈 뜨고 볼 수만은 없었기에 남궁강룡이 오브를 잡는 순간 수호자와 아티팩트 위치를 밝혀버렸는데, 효과가 괜찮았다.
당장 이강현만 해도 드러난 아티팩트를 찾으러 갔을뿐더러, 동서남북에서 깨어난 수호자들은 중앙을 향해 이동하며 버티기만 하려던 얌체 참가자들을 중앙으로 내몰 터였다.
그렇게 된다면 모든 참가자가 중앙에 모이면서 내려갔던 화제성도 다시 끌어모을 수 있겠지.
“으하하…….”
로독은 ‘어떻습니까, 시청자님들! 수호자부터 아티팩트까지 몽땅 살려냈죠?!’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냈다.
어차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두가 알게 될 일이었다.
이제 수호자들에 의해 참가자들은 중앙으로 몰릴 거고, 거기에 오브와 수호자, 아티팩트가 어우러진다면…….
‘그야말로 시청률을 극한으로 뽑아낼 훌륭한 혈전이자 난전…… 음?’
로독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현, 11위]
[로프터스, 4위]
무림과 검계의 전투라 많은 관심을 받으며 격돌하던 두 참가자가 느닷없이 검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여기서는 계속 싸워줘야 되는데……?’
-못다 한 승부를 내고 싶다만, 오브의 주인이 나왔으니 중앙으로 가야겠군.
-동의하는 바요. 승부만 내다가 탈락할 수는 없지. 지금 이 순간에도 오브를 쥔 강룡은 기여도를 취하고 있을 테니.
그러더니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중앙으로 달려갔다.
하필 알렉시스 찬드라스와 란 레이센이 격전을 벌이는 터널 쪽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궁강룡, 1위]
세르반테를 쓰러뜨리고 오브를 손에 넣은 남궁강룡까지 터널로 이동하고 있었다.
저들이 모두 마주친다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로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아직은 안 되는데…….”
아직 수호자들도, 나머지 참가자도 모이지 않았는데 총력전이 벌어지게 생겼다.
어째 예상대로 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 * *
저 멀리 뇌운이 짙게 드리운 가운데, 강현의 눈에 공격을 주고받는 란 레이센과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보이기 시작한다.
날아가고 있어서인지, 거리가 훅훅 줄어든다.
화르륵…….
지팡이에 불꽃을 일으키며 알렉시스 찬드라스에게 달려들려는 란 레이센이 보였다.
강현은 메시지 아티팩트로 외쳤다.
-당장 뒤로 물러나요!
란 레이센이 물러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까 안 된다는 거 알았을 텐데 어쩌려고요! 저 여유로운 면상 안 보여요?
그녀의 말처럼 알렉시스 찬드라스는 어디 올 테면 와보라는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광검을 발동한 뒤.
[스킬, 광검[Lv.8]을 발동합니다.]
그대로 알렉시스 찬드라스와 충돌했다.
콰앙-!
주르르륵-
알렉시스가 눈을 부릅떴다.
“네놈……. 이건 대체?”
놀랄 수밖에 없겠지.
아무리 날아오던 힘이 있었다고 해도, 한참 밀려난 건 다름 아닌 바로 그였으니까.
그걸 보며 강현은 히죽 웃었다.
‘약발 죽이네.’
실제로 지금 그의 몸에는 어마어마한 폭발의 기운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폭발의 기운이 활력을 극한까지 끌어냅니다.]
[남은 시간 : 19분 18초]
아티팩트 목록이 보였을 때 잘하면 도핑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다행히 맞아떨어져 주었다.
그것도 그냥 폭발의 비약도 아니고, 무려 진(眞) 폭발의 비약이었다.
그 덕에 현재 그의 능력치는.
…….
근력[Lv.14 +12], 민첩[Lv.25 +12], 체력[Lv.17 +12], 마력[Lv.13 +12]
무려 24레벨이 올라간 효과를 받은 상태였다.
아까 알렉시스를 보고 기본 능력치 차이만 2~30이 날 거라고 여겼는데, 얼추 능력치가 맞춰졌다.
-어떻게 된 거예요?
궁금한 건 매한가지인지 란 레이센도 물어왔다.
-오브의 주인이 나타나면서 공개된 쓸 만한 아티팩트를 가져왔습니다.
-뭐라구요?
란 레이센이 살벌하게 노려보며 입술을 달싹인다.
-누구는 목숨 걸고 싸우는데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혼자만 잘도…….
쾅!
말을 주고받는 도중 알렉시스가 강현에게 짓쳐 들어왔다.
항상 후공을 선택하던 여태까지와는 달리, 처음으로 선공을 취한 것이다.
-엄호를!
쿠오오-
주먹에 바람의 기운을 담은 알렉시스에 맞서 강현도 광검으로 맞서나갔다.
콰쾅! 콰콰쾅!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손과 순백의 광검이 끊임없이 부딪친다.
한 번 부딪치고 신물을 토해냈던 아까 전과는 다르게 한 치의 밀림도 없었다.
쿠와아-
손과 검이 충돌하는 와중에도 알렉시스는 사방에서 날카로운 바람을 내쏘았다.
펑! 퍼펑!
그렇지만 그것들 중 어느 하나 천광의 날개를 뚫어내는 것은 없었다.
[스킬, 섬광[Lv.6]을 발동합니다.]
콰앙!
“…….”
섬광을 막아낸 알렉시스 찬드라스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걸 보며 강현은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할 만해.’
세르반테, 사도천과 싸우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역시 그가 부족한 건 경험이나 센스가 아니었다.
오직 레벨과 ‘단계’.
그것만이 이들과 자신을 가르는 차이였다.
그리고 그 차이는 지금…….
‘거의 없지.’
‘단계’면 몰라도, 기본 체급이 올라간 지금 무력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팍!
뛰어오른 강현이 크게 허공을 베어냈다.
[스킬, 광야참[Lv.1]을 발동합니다.]
[1/10의 마력을 소모합니다.]
쿠콰콰-
거대한 백색 검기에 알렉시스는 벼락을 내리려는 건지 지팡이를 아래로 내리그었지만.
“……?”
벼락이 내려오는 일은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그가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년이……!”
그도 그럴 게, 란 레이센이 화염을 내쏘아 뇌운을 거의 다 소멸시키는 중이었던 것이다.
쿠오오-
그는 급히 바람의 기운을 끌어모으려 했으나, 광야참은 이미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콰쾅!
“크윽!”
저 멀리 날아간 알렉시스가 땅에 처박히기도 전 강현은 그에게 손을 짓쳐 들었다.
[스킬, 참격[Lv.3]을 발동합니다.]
뒤로 날아가는 알렉시스에게 세 개의 백광이 쏘아진다.
“크아아아!”
그런데 느닷없이 놈이 고함을 지르자.
쿠오오오-
날아가던 놈에게서 엄청난 반발력이 뿜어져 나온다.
“큭!”
어찌나 반발력이 강했는지 강현도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단발성 반발력도 아니고, 마치 태풍을 코앞에 둔 것처럼 밀려나지 않기 위해 발에 힘을 주고 버텨야 했다.
땅에 착지한 알렉시스가 짓씹듯 내뱉었다.
“증조부님의 무기만은 꺼내지 않으려 했건만…….”
쿠구구-
그가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옆의 공간이 찢어지면서, 그의 손이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라.]
강현의 머리가 아파 오면서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기에 강현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막야야 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알렉시스가 꺼내려는 ‘저걸’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저걸 막아야 해요! 뭔지는 몰라도 위험해요!
란 레이센도 필사적으로 바람을 가르며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래. 바…… 거다.]
알렉시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머릿속의 이명이 더욱 심해졌음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알렉시스도 ‘무언가’를 꺼내는 동안은 다른 행동을 할 수가 없는 듯했는데, 강현을 보고는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쿠구구-
그러면서 힘을 더 세게 주기라도 하는지 굉음이 더 심해진다.
그 순간이었다.
쐐애액-
뒤에서 날아든 무시무시한 예기가 알렉시스를 노렸다.
“……!”
알렉시스는 간신히 예기를 피해냈으나, 그 탓에 찢어진 공간에 넣어뒀던 손 또한 빠져 버렸다.
슈우우…….
그의 손이 빠지자마자 공간은 닫혀 버렸고, 그 즉시 두통과 이명이 사라졌다.
예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알렉시스가 분노에 찬 외침을 토해냈다.
“미천한 것이 어디서 방해질이냐!”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강현은 볼 수 있었다.
[남궁강룡, 1위]
곳곳에 상처들이 있긴 해도 맑은 안광을 번뜩이는 오브의 주인, 남궁강룡이 터널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턱-
알렉시스가 뿜는 반발력의 범위에 들어서기 직전 멈춰선 남궁강룡이 입을 열었다.
“뭘 꺼내려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다는 느낌이 저 멀리서부터 전해지더군.”
“네까짓 놈이 방해할 게 아니었다! 저 연놈들을 이 자리에서 해치워야 한단 말이다!”
“보아하니 합공을 당해 궁지에 몰려 있는 것 같은데, 맞나?”
“그건……!”
“그렇지 않다면 그 뭔지 모를 위험한 걸 꺼내려 했을 리가 없지. 내 생각에 그걸 꺼내려면 굉장한 무리를 해야 했을 듯한데.”
“…….”
“정리하자면 그대는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태로군.”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최후의 2인이 남을 때까지 그대에게 동맹을 제안하고 싶다.”
“뭐라고?”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알렉시스가 눈살을 찌푸렸음에도 남궁강룡은 태연했다.
“어차피 나는 오브를 가지고 있으니 다른 참가자들에게 합공 당하겠지. 하나 지금 위기에 몰려 있는 건 그대도 마찬가지. 각자 힘든 싸움을 하다가 탈락할 바에는 힘을 합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여 하는 소리이다만.”
알렉시스 찬드라스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인다.
강현은 남궁강룡의 의도를 간파해 냈다.
‘오브를 가지고 있으면 가만히만 있어도 기여도는 오를 테고, 참가자들한테 다굴당할 바에는 한 명이라도 같은 편을 만들어두겠다는 건가.’
문제는 남궁강룡이 합류한다면 그를 상대하게 되는 건 자신과 란 레이센이라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오브로 강해지기까지 했을 텐데, 남궁강룡까지 합류한다면 가망이 없다.
란 레이센도 눈치챘는지 재빨리 말해온다.
-동맹을 맺기 전에 먼저 공격해야 돼요!
-알고 있습니다. 먼저 쳐야 할 건 무조건…….
공격할 준비를 하며 그가 대답하던 때였다.
옆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식으로 동맹을 맺게 둘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늦지 않아 다행이군.”
[이현, 11위]
[로프터스, 4위]
또 다른 참가자들의 등장에 강현이 중얼거렸다.
“……개판이네.”
-뭐야 저기에만 절반 넘게 모였는데?
-오브 갖고 있는 남궁강룡까지 있는데 저러다 결판나는 거 아님?
-서바이벌 미션인데 결판이 어딨음;;
-아니…… 저기서 한두 명만 남을 수도 있자너 걔들이 기여도 다 쓸어버리면 지금 오고 있는 애들은 나가린데
-그건 ㅇㅈ
-30일이나 줬는데 3일 만에 종료될 수도 있겠네
-ㅋㅋ돼지 놈 시말서 쓰는 거 아님?
-크크크
-그나저나 한창 알렉시스 처맞고 있는 거 흐뭇하게 보고 있었는데 웬 방해가;;
-설마 동맹 제안할 줄은 몰랐다
-이현이랑 로프터스가 갑툭튀 할 줄도 몰랐음
-이러다 개싸움 날 듯
-ㅎㅎ 다른 종 보러 갈랬는데 개이득
-ㄹㅇㅋㅋ
…….
‘하아. 시청자들이야 좋겠지, 시청자들이야 좋겠는데…….’
시청자들의 채팅을 바라본 로독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5분 전만 해도 알렉시스 찬드라스와 란 레이센, 이강현만의 싸움이었는데 순식간에 남궁강룡, 로프터스, 이현이 끼어들었다.
몇몇 시청자가 말한 것처럼 이 그림은 그가 절대 의도한 게 아니었다.
벌써부터 이렇게 모이기에는 아직 드러나야 할 것들이 많았다.
‘모든 참가자가 모인 것도 아닌 데다가 던전의 수호자들에, 이름도 안 나온 아티팩트들이 몇 갠데…….’
저 터널 앞에서 이번 미션이 끝나게 생겼다.
‘화면에 수호자 얼굴이라도 비춰야겠어.’
엄중하게 선정한 건 물론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후원까지 받은 아티팩트들도 아깝긴 했다만, 어차피 아티팩트는 미션이 끝나면 회수된다.
반면 수호자들은 다르다.
거대한 구렁이와 해골 기사, 오우거, 골렘.
얼마를 들여서 세팅한 수호자들인데, 시청자들의 화면에 나오지도 못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허탈한 일이 없을 터였다.
타탁- 탁-
울상이 된 로독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허공을 조작했다.
참가자들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 * *
[동서남북에 위치한 수호자들이 더욱 빠르게 움직입니다.]
[수호자들은 중앙으로 이동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파괴합니다. 던전의 외곽에 위치한 참가자들은 서둘러 중앙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이은 메시지가 나타났지만, 그걸 주의 깊게 들여다볼 시간은 없었다.
“…….”
이현과 로프터스가 등장하면서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으니까.
‘저놈들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차림새를 보아하니 방금까지 서로 싸우다 오기라도 한 것 같은데, 등장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태연하게 알렉시스를 기다리던 남궁강룡도 멈칫할 정도였다.
-일단 지켜보죠.
강현이 란 레이센에게 말했다.
원래는 바로 기습하려 했는데, 이현과 로프터스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묘해졌다.
‘상황 돌아가는 걸 좀 봐야겠어.’
생각 외로 남궁강룡의 판을 끌어가는 능력이 상당했다.
-알고 있어요. 그래도 만약 싸우게 된다면…….
-무조건 알렉시스 찬드라스부터 노려야죠.
란 레이센의 말에 강현이 단호하게 답했다.
굳이 그와 란 레이센이 아니더라도 남궁강룡은 참가자들에게 노려지겠지만, 알렉시스는 아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무조건 알렉시스를 탈락시킬 작정이었다.
지금도 보면 숨을 헐떡이고 있고, 눈에 띄게 지쳐 보인다.
알렉시스 정도의 참가자를 저토록 몰아세우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기회가 왔을 때 끝내는 게 나았다.
[남은 시간 : 18분 09초]
다행히 ‘약발’이 끝나기까지는 넉넉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어서 강현은 기여도를 불러냈다.
‘기여도.’
현재 참가자들의 기여도가 이후의 상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었다. 미리 확인해 두어야 했다.
1위 이강현(1,360pt)
2위 남궁강룡(950pt)
3위 알렉시스 찬드라스(660pt)
4위 란 레이센(640pt)
5위 로프터스(550pt)
6 사도천(510pt)(탈락)
7위 이현(500pt)
…….
1위가 아직 자신이긴 했으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어차피 저건 기여도 순위일 뿐, 진짜 순위가 아니다.
게다가 오브를 얻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남궁강룡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980pt, 990pt, 1,000pt…….
대략 5초에 10pt씩은 주는 듯했으니, 그가 오브를 얼마나 들고 있느냐에 따라 단숨에 결과가 뒤바뀔 여지가 있었다.
물론, 이현과 로프터스가 그걸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깔끔한 귀공자처럼 생긴 로프터스가 입을 열었다.
“강룡 자네가 오브를 독식하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으니 부디 이해해 주길 바라네.”
이현도 한마디를 보탠다.
“합공을 당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오브를 두고 물러나시오. 물러난다면 합공을 당할 일은 없겠지.”
그러자 남궁강룡이 물었다.
“하나 물어보도록 하지. 내가 순순히 오브를 내려놓는다면 어떻게 새로운 주인을 정할 생각인지 궁금한데.”
“그건…….”
이현이 얼버무렸다.
사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남궁강룡을 공격하고 싶어 하지, 별로 대화를 하고 싶은 눈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들이 곧장 남궁강룡을 공격하지 않는 건 알렉시스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알렉시스가 동맹을 거절한다면 남궁강룡을 공격하는 데에 하등 상관없겠지만, 그가 동맹을 수락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알렉시스 찬드라스라는 강적까지 상대해야 할 터이니 구도를 다시 짜야겠지.
즉, 알렉시스의 의사를 알기 전까지 저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강현과 란 레이센 또한 알렉시스의 의중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알렉시스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랄하지 마라. 이 몸은 동맹 따위 맺지 않는다.”
싸늘하게 내뱉으며 남궁강룡에게 손을 휘두르는 게 아닌가.
쿠오오-
남궁강룡에게 거친 바람이 내쏘아졌고.
“지금!”
“알고 있다!”
그 순간 로프터스와 이현이 남궁강룡에게 번개같이 쇄도했다.
채챙! 채채챙!
-갑니다! 뇌운과 엄호를!
-알고 있어요!
[스킬, 질주[Lv.2]를 발동합니다.]
강현도 알렉시스에게 달려들었다.
쾅!
개싸움의 시작이었다.
* * *
타타타타-
강현은 질주로 달려가다가.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기습적으로 순보를 발동하여 알렉시스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
“……!”
남궁강룡을 두고 자신에게 올 줄은 몰랐는지, 알렉시스가 다급히 지팡이를 내질렀다.
쾅!
강현은 주르륵 밀려났다.
전방을 보자 알렉시스도 똑같이 밀려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알렉시스가 왜 남궁강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스스로를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품격 때문인지, 라이벌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인지, 혹은 제3의 이유일지는.
확실한 건, 그 선택이 그와 란 레이센에게는 결코 나쁘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강현의 검과 알렉시스의 지팡이가 맞부딪쳤다.
콰쾅! 쾅!
얼핏 봤을 때는 호각을 이루는 듯했던 그 교환은.
화르륵…… 콰쾅!
돌연 알렉시스의 뒤편에 폭발이 일어나면서 기울어졌다. 란 레이센의 마법이었다.
“크윽!”
알렉시스가 튕겨 나갔다.
‘안 놓친다.’
날개를 활짝 편 강현은 그런 그를 바짝 뒤쫓았다.
튕겨 나가면서도 강현을 확인한 알렉시스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쥔다.
꽈악-
쿠르릉…… 콰쾅!
뇌운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하나 그때는 이미.
화르르륵…….
미리 그걸 눈치챈 란 레이센의 화염벽이 강현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
콰앙-!
화염벽의 보호를 받으며 강현이 그대로 짓쳐 들어가자, 급히 땅에 내려선 알렉시스가 고함을 질렀다.
“이 빌어 처먹을 것들! 오브를 가지고 있는 놈을 놔두고 왜 이 몸을 공격하는 것이냐!”
‘역시, 우리가 끝까지 자기를 노릴 줄 몰랐던 건가.’
강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스킬, 광야참[Lv.1]을 발동합니다.]
[1/8의 마력을 소모합니다.]
중간 세기의 광야참으로 응답해 주었을 뿐.
쿠콰콰-
거대한 초승달 모양의 백광에 알렉시스가 휩쓸린다.
“크악!”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기에 란 레이센이 수십 개의 화염구를 날린 것이다.
퍼퍼퍼퍼펑!
“커헉……!”
알렉시스가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지는 걸 본 강현은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달렸다.
[남은 시간 : 16분 02초]
‘이게 계속 유지되는 거였으면 저놈의 말처럼 남궁강룡을 먼저 노렸겠지.’
폭발의 비약의 힘이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면 여유를 가지고서 상황을 재단했겠지만.
16분 뒤 그는 극심한 탈진 상태에 빠진다.
시간이 명확하게 제한되어 있는 이상, 그전까지 최대한 많은 참가자들을 떨어뜨리는 게 나았다.
가령, 폭발의 비약이 끝난다면 도저히 이길 각이 안 나오는 알렉시스라든지.
팟-
강현이 다시 날아들려던 때였다.
투쾅!
옆쪽에서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왔다.
“……?”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자 이현과 로프터스, 남궁강룡의 치열한 승부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콰아아아-
찬란할 정도로 푸른빛을 뿌리는 남궁강룡의 검에 맞서, 이현과 로프터스가 조심스레 치고빠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대충 봐도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강현은 남궁강룡의 검을 주시했다.
푸른 검기…… 라기에는 그 형태가 지나치게 뚜렷했다.
‘설마…… 무협지에 나오는 검강이라도 되나?’
로프터스와 이현이 쉽사리 다가가지도 못하는 걸 보면 그럴지도 몰랐다.
-빨리 저자를 정리하고 남궁강룡까지 끝내야 돼요!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지만, 강현도 빨리 알렉시스를 정리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바였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알렉시스에게 접근한 강현은 검을 내찔렀다.
[스킬, 섬광[Lv.6]을 발동합니다.]
푸욱-!
복부를 찔린 알렉시스가 피를 토해냈다.
“큭……! 네놈들, 기억해 두겠다……!”
슈와아아-
기권을 외친 알렉시스가 사라져 간다.
[참가자 알렉시스 찬드라스를 쓰러뜨리셨습니다.]
[란 레이센과 기여도를 나누어 가집니다.]
[52% 분배, 343pt를 획득합니다.]
‘후우. 결국엔 쓰러뜨렸군.’
한숨을 내쉰 강현이 남궁강룡 쪽을 쳐다보았을 때였다.
채챙!
휙-
“이런!”
로프터스와 이현의 합공에 남궁강룡의 품에서 오브가 튀어 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뎅구르르-
오브가 저 멀리 튀어 나간다.
그리고 그 순간, 강현은 본능적으로 내달렸다.
[스킬, 질주[Lv.2]를 발동합니다.]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 빠르게.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마치 한 점의 빛살처럼.
“멈춰!”
로프터스를 베어버린 남궁강룡이 마주 달려온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오브를 획득하셨습니다.]
오브는 강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동시에.
쿠오오-
폭발의 비약과는 차원이 다른 활력이 몸을 휘감는 게 느껴졌다.
[근력이 20 증가합니다.]
[민첩이 20 증가합니다.]
[체력이 20 증가합니다.]
[마력이 20 증가합니다.]
…….
[10pt를 획득합니다.]
[10pt를 획득합니다.]
…….
“…….”
강현의 손에 오브가 들린 것을 본 남궁강룡이 멈춰 서면서, 자리에는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어…….”
강현은 손에 쥔 오브를 내려다보았다.
탁한 회색빛의 주먹만 한 구슬.
비록 오브를 둔 남궁강룡이 바로 앞에 있기는 했어도 딱히 적극적으로 오브를 노리려던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오브를 죽으라 노리지 않더라도 그의 기여도는 1위였고, 설령 남궁강룡이 그를 제친다고 하더라도 처음 목표였던 3위 안에 들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때문에 남궁강룡을 앞에 두고도 알렉시스를 끝까지 공격하여 탈락시킨 것이다.
또 오브를 쥐어봤자 다른 참가자들의 공적이 될 게 뻔한데, 굳이 죽어라 노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막상 바로 눈앞에서 오브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걸 보자 자신도 모르게 전력으로 달려가 버렸고, 잡아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쿠오오-
각성하고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활력이었고.
무어라 말을 주고받는 남궁강룡과 이현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강현은 재빨리 상태창을 불러냈다.
…….
근력[Lv.14 +32], 민첩[Lv.25 +32], 체력[Lv.17 +32], 마력[Lv.13 +32]
능력치를 확인한 강현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 참.”
모든 능력치 20 증가라니.
모든 능력치를 12 올려주었던 폭발의 비약과 합산하면 대충 계산해도 거의 100레벨에 육박하는 능력치였다.
‘100레벨이면…….’
세르반테의 초승달 검기 폭발을, 아니, 검기 자체를 맞아도 멀쩡할 터였다.
‘참룡섬을 맞아도 버틸 거 같은데.’
사도천과 자니스 라르케치를 끝장냈던 참룡섬도 지금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의 능력치 상승 폭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와우…….
-이런 하이재킹을?!?!?
-오브 놔두고 알렉시스만 죽어라 공격하길래 별로 관심 없어 보였는데 막상 기회 오니까 귀신같이 달려드네ㅋㅋㅋㅋㅋ
-그니까ㅋㅋㅋ 나는 알렉시스만 집요하게 노리길래 뭔 생각인가 했는데
-이게 다 절묘한 노림수였던 거임 ㅎㄷㄷㄷ
-알렉시스 노리는 척하면서 오브를 노리고 있었던 거네?ㅋㅋ
-성동격서 ㅎㄷㄷ
-거기에 홀라당 속아 넘어간 란 레이센 표정 보소ㅋㅋㅋ
그 말에 뒤를 돌아보자, 란 레이센이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렉시스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으면서 막상 오브가 보이자마자 득달같이 튀어 나간 걸 봤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강현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최후의 2인이 남을 때까지 동맹을 맺읍시다.
이중 도핑까지 했으면서도 란 레이센에게 동맹을 맺자는 이유는 간단했다.
100레벨에 달하는 능력치는 분명 어마어마했지만, 그게 저 셋을 상대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당장 조금 전까지 오브를 들고 싸우던 남궁강룡만 하더라도 이현과 로프터스를 상대로 큰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결국 로프터스를 쓰러뜨리긴 했어도, 오브를 떨어뜨리고 말았고.
‘이현, 남궁강룡은 손잡을 가능성이 커.’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 검을 휘두르긴 했다.
그렇지만 그건 오브 때문이었고, 그 오브는 강현의 손에 있다.
저 둘만 해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만약 란 레이센까지 저기에 합류한다면?
‘탈락으로 가는 직행 티켓이지.’
게다가 자신에게는 시간제한까지 있다.
[남은 시간 : 15분 17초]
혼자서 하려다간 알렉시스 찬드라스, 로프터스의 뒤를 따라 기권을 외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강현은 란 레이센이 그와 동맹을 맺겠다고 한다면 싸우고, 그러지 않겠다고 한다면 천광의 날개로 도망갈 작정이었다.
당연하게도 도망가는 것보단 저 둘을 여기서 쓰러뜨리는 게 백 배 나았다.
도망가도 오브를 가지고 있는 이상 저들은 쫓아올 거고, 폭발의 비약의 남은 시간이 끝나면 끝장이다.
그러니 란 레이센과 동맹을 맺을 수 있다면 반드시 맺어야 했다.
-내가 왜요?
물론, 란 레이센은 삐딱하게 대답할 뿐이었지만.
-여태까지 저희의 동맹은 알렉시스 찬드라스를 쓰러뜨릴 때까지였으니, 갱신하자 이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왜요? 여차하면 저기랑 연합해서 그쪽부터 끝장내면 되는데.
-어차피 나한테서 오브를 빼앗아도 다시 셋이서 오브 두고 싸울 거 아닙니까. 또 구질구질하게 눈치 보면서 셋이서 싸울 바에야 차라리 깔끔하게 다 정리하고 나랑 일대일로 겨룹시다.
란 레이센이 기가 차다는 듯이 그를 노려본다.
-참나, 그쪽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알아요? 혼자 싸우면 질 거 같으니까 날 끼워 넣으려는 거잖아요! 그딴 남 좋은 일을 내가 왜 해요? 지금도 기여도가 따박따박 오르고 있구만.
-…….
[10pt를 획득합니다.]
[10pt를 획득합니다.]
…….
란 레이센이 열변을 토해낸 것처럼, 기여도가 쉬지 않고 들어오고 있기는 했다.
1위 이강현(1,883pt)
2위 남궁강룡(1,740pt)
3위 란 레이센(957pt)
4위 알렉시스 찬드라스(660pt)(탈락)
…….
남궁강룡에게 잠깐 빼앗겼던 기여도 1위도 되찾았고.
하나 강현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걸 티 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내색하지 않았다.
-잘 생각해 보면 그쪽에도 이득이 될 겁니다. 만약 우리가 동맹을 맺고 이긴다면…… 아무튼 생각해 보시죠. 저쪽에 붙을 거면 공격하기 전에 말이라도 해주고요.
강현은 그녀에게 하려던 말을 중간에 끊었다.
파팟-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남궁강룡이 검을 휘둘러 왔다.
저들이 바로 덤벼오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던 강현으로서는 의외의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게, 란 레이센이 어디 붙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데 딱히 포섭하려고도 들지 않고, 다짜고짜 공격부터 해오다니.
‘아예 적이라고 규정을 해놓은 건가?’
그건 모를 일이었지만,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한 강현으로서는 대처하기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분명 반응하기 힘들 만큼 빠른 쾌검이었으나, 민첩이 58이 된 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던 것이다.
자신의 목을 노린 남궁강룡의 검이 호(弧)를 그려오는 것이.
챙!
강현이 그걸 막아내자, 남궁강룡의 얼굴에 약간의 놀라움의 빛이 깃들었다.
“무림도, 검계 출신도 아닌데 이걸 막아내다니…….”
쿠오오…….
남궁강룡의 검에 푸른빛이 일렁인다.
그나마 아까 봤던 검강은 아니었다.
챙! 채채챙! 채챙!
‘이현보다 더 강하다.’
몇 번 부딪쳐 본 강현은 남궁강룡이 이현보다 더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유려하고 부드러움에 치중하던 이현의 검과는 달리, 힘으로써 상대를 무릎 꿇리겠다는 광오함이 느껴지는 검이었다.
미션에 들어가기 전에 만났더라면 손을 쓸 틈도 없이 밀리기만 했을 듯했다.
하지만.
카가가각-
그런 남궁강룡의 광오한 검을, 강현이 밀어내기 시작했다.
챙! 채채챙!
쩌-엉!
강현의 거센 밀어붙이기에 두어 걸음 물러난 남궁강룡이 흠칫한다.
검술 실력이고 뭐고, 능력치가 뒤받쳐 주니 일대일 대결에서는 압도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번에는 이현이 급작스럽게 쇄도해 온다.
강현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챙! 채챙!
“아무리 오브가 도와줬다고 해도 이게 무슨……?”
강현과 검을 맞부딪친 이현의 눈이 커진다.
지난번에 겨루어봤던 것과 아예 다른 사람이기에 그런 거겠지.
채챙!
“큭!”
몇 번 수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이현이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지금이다.’
파팟-
그 틈을 강현이 파고들려는데.
“이현! 내가 버티고 있겠다!”
그 사이를 남궁강룡이 절묘하게 끼어들었다.
채채챙! 채챙!
남궁강룡이 버텨주는 동안 이현이 다시 합류하면서, 2대 1의 치열한 공방이 오고 갔다.
공방이 이어짐에 따라 남궁강룡과 이현의 얼굴에 해볼 만하다는 기색이 깃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저들의 장점이 무공이라면, 강현의 장점은 스킬.
이중 도핑으로 마력량까지 대폭 늘어난 마당에 스킬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스킬, 광야참[Lv.1]을 발동합니다.]
[1/10의 마력을 소모합니다.]
[스킬, 참격[Lv.3]을 발동합니다.]
[스킬, 섬광[Lv.6]을 발동합니다.]
쿠와아-
“……!”
연이은 스킬 세례에 남궁강룡과 이현이 당황했을 때였다.
그런 그들에게.
화르르륵……!
거대한 두 개의 화염구가 쏘아졌다.
“큭!”
“크악!”
강현의 스킬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무방비로 화염구에 적중당한 남궁강룡과 이현이 저 멀리 날아간다.
그 순간 강현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화염이 저들을 공격한다는 건, 란 레이센이 그와 동맹을 맺기로 결정했다는 소리였으니까.
과연, 입술을 삐죽 내민 란 레이센이 이현과 남궁강룡에게 지팡이를 겨누고 있는 게 보였다.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강현은 그 즉시 란 레이센의 옆으로 이동했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뭐라는 건지. 그냥 그쪽이 이길 거 같아서 붙은 거거든요?
란 레이센이 쏘아붙였음에도 강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이유가 뭐든지요.
-몸을 일으키고 있는데 집중 좀 하죠?
그녀의 말에 전방을 보자 남궁강룡과 이현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그걸 본 강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저놈들이 일어나면 남궁강룡부터 노려야 됩니다.
-알고 있어요.
-도망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도망을 못 가게 할 수는 없습니까?
-……기다려 봐요.
강현의 말에 란 레이센이 주문을 외우자, 그와 그녀를 중심으로 근방을 뒤덮는 광범위한 반구(半球)가 형성됐다.
“이건 또 무슨……!”
바로 뒤가 화염으로 뒤덮이자 이현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남궁강룡이 낭패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여차하면 튈 생각하고 있었나 본데.’
-오래는 유지 못 하니까 최대한 빨리 쓰러뜨려야 돼요.
-얼마나 유지할 수 있습니까?
-10분 정도?
-10분이면…….
충분하겠는데요, 라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92/200)]
잊고 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 맞다.’
강현은 아까 알렉시스 찬드라스를 쓰러뜨리고 에테르를 취하지 못했었다는 걸 기억해 내고는 곧장 손을 가져갔다.
슈와아-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18/200)]
‘118이면…… 24쯤 준 건가.’
아마 기여도도 란 레이센과 나누었으니, 에테르도 비슷할 거라 생각됐다.
[남은 시간 : 11분 38초]
남은 시간이 어느새 1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음에도 강현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 혼자서도 박빙이었는데, 란 레이센까지 더해진다면?
결과는 뻔했다.
물론 그렇다고 방심하거나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모든 힘을 다해야겠군.”
“나도 마찬가지요.”
퇴로가 막혀서인지, 남궁강룡과 이현은 더없이 비장해 보였다.
파팟-
팟-
그렇게 남궁강룡과 이현이 란 레이센에게 달려들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집요하게 란 레이센을 먼저 처리하려고 했으나, 그걸 두고 볼 강현이 아니었다.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쾅! 콰쾅!
아무리 저들이 빠르게 움직여도 아예 단거리 순간이동인 순보를 따라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놓고 앞을 막아서며 스킬을 퍼부어대는 강현과 강현의 보호를 받는 란 레이센이 각종 화염 마법으로 끊임없이 괴롭혀대자 승부의 추는 금세 기울어졌다.
[참가자 남궁강룡을 쓰러뜨리셨습니다.]
[란 레이센과 기여도를 나누어 가집니다.]
[58% 분배, 1009pt를 획득합니다.]
[참가자 이현을 쓰러뜨리셨습니다.]
[란 레이센과 기여도를 나누어 가집니다.]
[60% 분배, 300pt를 획득합니다.]
“후우.”
여러 조건들이 웃어주긴 했어도, 난적은 난적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18/200)]
스아아-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69/200)]
남궁강룡과 이현의 에테르를 흡수했을 때였다.
[24시간 뒤 중앙을 제외한 모든 구역은 수호자들에 의해 폐쇄될 예정입니다.]
[참가자분들은 늦지 않게 중앙으로 이동하여 주십시오.]
메시지가 나타났다.
‘하루라.’
강현도 중앙으로 오는 데에만 꼬박 하루가 걸렸으니, 외곽에 있던 참가자라면 지금부터 열심히 와야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DBC 측에서 미션을 끝내려나 본…… 잠깐만.’
그 순간이었다.
‘하루’라는 시간이 강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이동에 전념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이미 중앙에 있는 그와 란 레이센은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주어진 하루를, 다른 참가자들을 맞이할 준비하는 데에 쓸 수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남은 참가자 수 : 10/30
남은 참가자 수를 확인한 강현이 눈을 빛내며 란 레이센에게 말했다.
“괜찮은 계획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죠.”
슬슬, 이 미션을 끝낼 때가 된 듯했다.
파파팟-
저 멀리 드높은 성벽이 보이는 가운데, 그곳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일련의 무리가 있었다.
[한림, 14위]
[백청, 17위]
[이립, 19위]
[티그리스 아그리파, 25위]
[루시타르, 17위]
[연청, 12위]
[리라스테, 22위]
중앙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강현과 란 레이센을 제외한, 미션의 남은 참가자들 전부였다.
하루 안에 중앙으로 이동하라는 메시지가 나타난 이후 외곽을 전전하던 참가자들은 한꺼번에 중앙으로 쏠리게 되었다.
운신의 폭이 제한되다 보니 중앙으로 향하던 참가자들은 서로를 만날 수밖에 없게 되었고, 하나둘 손을 잡아 어느새 그 수가 무려 일곱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도중에 동맹을 거부하던 참가자 하나를 쓰러뜨릴 수밖에 없긴 했어도, 여덟 명이나 일곱 명이나 다를 건 없었다.
일곱 명의 참가자 동맹이 공통적으로 결의한 것은 하나였다.
‘이강현의 오브를 빼앗은 뒤 우리끼리 싸우자.’
현재 오브를 쥐고 있는 이강현을 끌어내리고, 오브의 주인을 새로 가리자고.
그리고 일곱에 달하는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무리 없이 그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나마 본선진출조 중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강현이었으니까.
남궁강룡과 알렉시스 찬드라스, 로프터스, 이현이 어떻게 모조리 떨어져 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은 그중 가장 뒤떨어진다고 여기던 이강현이 오브를 차지한 것에 절반의 행운과 절반의 질투를 느꼈다.
정황상 란 레이센과 이강현이 동맹을 맺은 것 같기는 했지만, 워낙 숫자 차이가 컸기에 문제는 없었다.
해서 발걸음을 서둘렀고, 반나절을 조금 넘긴 지금 중앙을 눈앞에 둘 수 있었다.
다만, 걸리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제 저 성벽만 넘는다면 중앙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오. 도망을 준비하거나 어디 한 곳에 자리를 잡았을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해야 할 거요.”
“……예.”
“아, 예.”
“…….”
동맹을 맺은 참가자들 중 두 번째로 높은 순위이자, 실질적인 지휘자를 맡게 된 한림은 밋밋한 다른 참가자들의 반응에 눈살을 찌푸렸다.
강적을 코앞에 두었는데도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보였다.
“……리라스테가 정령을 보내 기본적인 정찰을 한 뒤에 성벽을 넘긴 할 터이나, 그렇다고 해서 방심과 안심은 금물이오. 리라스테, 부탁하겠소.”
“예.”
한림의 말에 리라스테라 불린 청년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스으으-
그러자 피부를 스치던 바람에 윤곽이 잡히더니, 리라스테가 손짓하자 바람에 섞여 성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
일행 사이에 감도는 기이한 기류를 느낀 한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강현과 란 레이센에 대한 긴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무리를 지어 쑥덕이며 다른 참가자들을 알게 모르게 경계하고 있다.
‘이강현만 있는 것도 아니고 란 레이센까지 함께 있을 게 뻔한데도 단합이 안 되다니.’
준비를 철저하게 하기는 했다.
아티팩트가 드러나게 되면서 각자 아티팩트 한두 개씩을 챙겼고, 전략도 대강 짜두었다.
그러나 준비를 잘한 것과 전력을 다하지 않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한숨을 쉬는 그에게 백청과 이립이 다가와 속닥였다.
“한 형,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이강현과 싸워봐서 알지만, 일곱이나 되는데 놈한테 질 리는 없습니다.”
“백 형의 말이 맞습니다. 이강현보다는 이기고 나서 어떤 구도를 만들지 같은 선계 출신으로서 함께…….”
같은 선인이랍시고 다가온 백청과 이립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적들을 쓰러뜨린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겼다고 상정한 채 선계 출신으로서의 유대감이나 강조해 대고 있다.
“됐소, 일단은 눈앞의 적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오.”
한림은 그들을 뿌리치고는 바람의 정령이 올라간 성벽을 주시했다.
지금쯤 이강현도 그들을 대비하고 있을 터였다.
‘기여도.’
1위 이강현(112,192pt)
2위 란 레이센(2,210pt)
3위 남궁강룡(1,740pt)(탈락)
4위 알렉시스 찬드라스(660pt)(탈락)
5위 로프터스(550pt)(탈락)
…….
이제 겨우 반나절이 조금 넘었건만, 이강현은 독보적인 기여도 1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으음…….”
이강현의 기여도를 본 한림은 턱을 괴고는 상념에 잠겼다.
다른 참가자들과 싸우라는 미션의 의도를 따르기보다 동맹을 택하기는 했으나, 이게 과연 잘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노잼이다
-뭉치기만 하고 왜 암것도 안함?
-이게 정치여 서바이벌이여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시청자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싶었고.
‘역시, 동맹을 맺지 않는 게 나았으려나.’
그때였다.
“바, 바람의 정령이 돌아오질 않습니다!”
리라스테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뭐라고?”
한림은 급히 그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거나, 주변의 이상을 알리는 마법이나 술법을 설치한 게 틀림없…….”
그 순간이었다.
화르르륵…… 콰콰콰쾅!
쿠와아아-
성벽 꼭대기에서부터 백색의 초승달 검기와 화염 세례가 급작스럽게 날아 들어왔다.
한두 개도 아니고, 이 일대를 쓸어버리기에 충분한 공격들이었다.
“모두 전투 준비를!”
한림이 소리를 질렀다.
설마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도 먼저 기습을 해올 줄은 몰랐다.
“기습이다! 대비해!”
다행히 집중이 제대로 되어 보이지 않던 것과 다르게 참가자들은 빠르게 대응했다.
쿠르릉-
한림과 이립, 백청이 수결(手決)을 맺으며 각각 나무, 바람의 칼날, 푸른 화염을 소환했고.
지이잉-
나머지 참가자들도 바위와 물, 검기, 정령을 불러내어 기습에 맞서나갔다.
슈우우-
그들의 [종족 특성]과 백광과 화염이 부딪치며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백광은 도중에 멎었으나, 화염은 마치 지옥의 겁화처럼 끝도 없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사방이 붉게 물들고 폭발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림이 크게 외쳤다.
“피해는? 각 참가자들은 본인들의 상황을- 큭!”
하지만 그는 말을 끝까지 이어 나가지 못했다.
슈와아-
[이강현, 7위]
어느새 백색의 날개를 활짝 편 이강현이 자신에게 짓쳐 들어왔으니까.
쾅!
섬뜩하게 내찔러져 오는 백색의 검에, 한림은 하려던 말을 멈추고 수결을 맺어 술법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쿠구구-
땅에서 순식간에 나무가 자라나 이강현의 검을 막아섰지만.
쐐액-
이강현의 검에서 뿜어지는 백광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스윽-
나무와 백광 너머, 이강현이 무섭도록 차분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한다.
“……!”
이강현의 눈을 본 한림은 깨달았다.
‘불과 백광으로 혼란을 만든 틈을 타 지휘자인 나를……!’
하나 이미 때는 늦었다.
화염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고, 일행은 그런 화염에 대처하기에도 급급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피어오른 먼지로 인해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데다가, 굉음에 의해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일도 알 수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어서 이쪽을…… 컥……!”
한림이 소리치려 했으나, 강현의 순보를 막지는 못했다.
[참가자 한림을 쓰러뜨리셨습니다.]
[340pt를 획득합니다.]
지휘관인 한림을 쓰러뜨린 강현은 정령사인 리라스테까지 쓰러뜨린 뒤, 유유히 사라졌다.
“무, 물을 뿌릴게요!”
“저도 보태겠습니다!”
쏴아아-
얼마 지나지 않아 화염을 가라앉히는 물이 쏟아지면서, 그제야 남은 참가자들은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알아챘다.
“한 형과 라리스테가 당했다!”
“이, 이런……!”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강현은 자취를 감춘 뒤였다.
* * *
성벽을 넘어 터널의 어느 한 부분.
“후우.”
어제 란 레이센에게 말할 때는 괜찮은 계획이라고 했었지만, 딱히 별 묘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매복과 기습을 통해 적들의 중요인물들을 처리하는 것 정도.
그럼에도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쳐서인지, 기습을 마치고 터널 근처의 은신처로 돌아온 강현의 얼굴은 밝았다.
란 레이센은 그렇지 않은지, 삐딱하게 말해왔지만.
“뭐가 좋다고 헤실거리고 있어요? 마력은 어때요?”
수호자 때문에 중앙을 벗어날 수도 없겠다, 강현과 란 레이센은 마력의 회복만 마치면 곧장 나머지 참가자를 찾아갈 계획이었다.
강현은 근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훌륭하게 기습을 마쳐서 그런 겁니다. 마력은 조금만 쉬면 될 거 같고요.”
“기여도가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걸 보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요? 아니면 날 속인 게 너무 통쾌해서 그러신가?”
“어허, 속였다뇨.”
강현이 미간을 찌푸렸음에도 란 레이센의 뚱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사실, 강현도 그녀가 저러는 이유를 알긴 했다.
‘억울하기야 하겠지.’
강현은 어제 남궁강룡과 이현을 이긴 뒤 찾아온 탈진 상태가 때 란 레이센이 짓던 표정을 기억해 냈다.
한 방 먹었다는 분노와 당황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죽일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거 같긴 한데.’
극도의 탈진 상태 동안 강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기에, 만약 그녀가 그를 쓰러뜨리고 오브를 차지하고자 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강현이 추측하기로는, 만약 혼자 남게 된다면 그녀 혼자서 남은 참가자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들을 이긴다는 확신이 없어서인 듯했다.
-ㅋㅋㅋㅋ란 레이센 삐진 거 오래가네
-속으로 어제 이강현 선택하지 말걸 하고 백 번은 후회했을 듯ㅋㅋㅋㅋ
-10분만 버텼으면 꽁으로 처리하는 건데 나라도 그랬겠다ㅋㅋㅋ
-그래도 강현이 안 죽인 거 보면 착하긴 한 거 같은데
-ㄴㄴ 착하고 말고가 어딨음. 다 계산한 거임
-혼자 다 상대하다가 탈락하는 거보단 강현이랑 둘이서 다 처리하는 게 낫다고 계산했을걸
-ㅇㅇ 그다음 일대일 하면 되겠다고 각 세웠겠지
채팅창도 비슷한 예측을 하고 있었고 말이다.
당연하게도 강현은 그 예측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튼, 이 일은 나중에 톡톡히 받아낼 테니까 그런 줄 알아요.”
물론 혼자 땅을 마구 밟거나 돌멩이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등, 어제부터 시작된 란 레이센의 분을 삭이려는 모습을 보며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하나씩 줄어들었고, 이제 그와 그녀를 제외하고는 단 다섯만을 남겨두었다.
두 번째 미션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강현은, 이 끝을 질질 끌 마음이 없었다.
“마력은 다 채웠습니까? 그쪽만 괜찮으면 가려고 하는데.”
“내가 딱 그 말 하려고 했거든요.”
란 레이센이 코웃음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강현 또한 마주 일어났다.
“그럼, 갑시다.”
[스킬, 천광의 날개[Lv.1]를 발동합니다.]
강현이 날아올랐고, 란 레이센도 마법을 이용하여 그 뒤를 따랐다.
그다지 넓지 않은 중앙이었기에 나머지 참가자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고.
[스킬, 광검[Lv.8]을 발동합니다.]
강현은 란 레이센의 엄호를 받으며 즉시 파고들었다.
“큭! 이강현이다!”
“란 레이센도 있다!”
참가자들은 분전했으나, 일곱 명도 아니고 다섯 명으로는 강현과 란 레이센을 막아낼 수 없었다.
[참가자 백청을 쓰러뜨렸습니다.]
[란 레이센과 기여도를 나누어 가집니다.]
[62% 분배, 198pt를 획득합니다.]
[참가자 이립을 쓰러뜨렸습니다.]
[란 레이센과 기여도를 나누어 가집니다.]
[60% 분배, 186pt를 획득합니다.]
[참가자 루시타르를 쓰러뜨렸습니다.]
[란 레이센과 기여도를 나누어 가집니다.]
[58% 분배, 139pt를 획득합니다.]
…….
그렇게 나머지 참가자 전부를 쓰러뜨린 자리에, 이강현과 란 레이센이 마주 보았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동맹 제안을 수락한 거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됐고요, 안 봐줄 거니까 죽기 전에 알아서 기권해요.”
“그거 우연이네요.”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란 레이센의 말에.
“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강현은 씩 웃어 보이고는 달려들었다.
팟-
* * *
쾅! 콰콰쾅!
백광과 화염이 얽히고설키는 걸 보며 로독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강현이 이렇게까지 미션을 씹어먹을 거라고는…….’
거듭 생각하는 것이지만, 로독을 포함한 방송국이 의도한 건 이 그림이 아니었다.
오브를 두고 벌이는,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쟁탈전.
혹은 난전.
또는 혈전.
적절한 환기를 위해서 아티팩트와 수호자까지 넣어 독주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완전히 어그러져 버렸다.
하지만.
‘이것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기도.’
벌써 한 시간도 넘게 전개되고 있는 싸움을 보며, 로독은 저도 모르게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쾅!
이강현이 흩뿌리는 백광에 란 레이센이 점차 버거워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사방에서 화염을 퍼부어댐에도 이강현의 날개는 굳건했다.
즉, 치열한 싸움의 추(錘)가 아주 천천히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의미하는 것.
아무리 오브의 도움이 있다고는 해도, 이강현이 란 레이센을 밀어붙인다는 것.
이건,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로독과 DBC, 시청자들까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나팔 소리나 다름없었다.
푸욱-
그리고 마침내 이강현의 검이 란 레이센을 꿰뚫은 순간.
“……!”
로독은 몸에 전율이 돋는 것을 느꼈다.
튜토리얼과 서브 미션, 실전 훈련, 첫 번째 미션……. 그가 봐왔던 모든 이강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F등급에서 여기까지 오다니…….’
어쩌면 자신은, 수천 년에 한 번 나오는 괴물을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
-으아아아아! 이겼다!
새롭게 탄생한 스타, 이강현이 포효를 내질렀고, 로독은 그런 그를 눈에 새길 듯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미션이 종료되었습니다.]
[참가자 이강현 님의 기여도는 122,092pt, 순위는 1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