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장 예선 : 두 번째 미션(1) (14/51)

6장 예선 : 두 번째 미션(1)

슈와아아-

세상을 가득 덮은 환한 빛이 스러져가고, 그 빈자리를 눅눅한 공기가 메웠다.

강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찌그러진 투구, 정체 모를 상자, 불길한 괴조의 조각상…….

녹슬고 먼지로 뒤덮인 온갖 잡동사니들이 군데군데 산처럼 뒤덮인 곳이었다.

어찌나 잡동사니들이 많은지, 움직이려면 잡동사니의 산과 산 사이로 지나가야만 할 듯했다.

‘창고 같은데.’

주욱 직진만 할 수 있던 미니 게임의 통로와는 달랐다.

사방이 막히지 않고 뚫려 있어,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미니 게임은 진짜 말 그대로 미니 게임이었군.’

끝이 안 보이는 창고의 넓이에 강현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다른 참가자들과 초장부터 붙여놓지는 않을 테니, 이런 넓이의 공간이 수십 개는 있다고 봐야 했다.

이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중앙의 오브를 향해 나아간단 말인가.

방향도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함에 강현이 눈살을 찌푸렸을 때였다.

[미션의 무대는 <초월자>에게 도전했던 고대 리치의 던전입니다. 안내사항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설명을 보완해 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먼저 지도를 보는 방법입니다. ‘지도’를 소리 내어 말하면, 근방의 지리와 중앙으로 가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도.”

강현이 중얼거리자, 홀로그램처럼 대략적인 지도가 나타난다.

[동부 제5 창고]

제5창고는 현재 그가 위치한 장소의 이름으로 보였다.

가운데 부근에 콩알만 한 붉은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게 나겠구나.”

붉은 점을 자세히 보자 좌측을 향해 화살표가 왼쪽으로 쭉 가면 오브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듯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오브가 위치한 곳입니다. 누군가 오브를 손에 넣게 된다고 해도, 화살표를 이용하여 그 참가자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지도의 상단을 통해 생존한 참가자의 숫자를 알 수 있습니다.]

-남은 참가자 수 : 30/30

“오, 이건 좋은데.”

기여도를 불러내어 알 수도 있겠으나, 일일이 참가자의 수를 세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지도만 불러내면 간단하게 남은 참가자들의 숫자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혹여 추가적인 메시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기다렸지만, 더 이상의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출발하면 되려나.’

지도의 크기로 보아 중앙으로 가는 것만 며칠이 걸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가 화살표가 가리키는 왼쪽으로 발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실시간 시청자 반응을 개방합니다.]

-안녕하세요

-ㅎㅇ

-강하(강현 하이라는뜻)

-강하

-ㄱㅎ

…….

시청자들의 채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지.’

지도니 뭐니, 배울 것들이 있어 까먹고 있었다.

다급했던 첫 번째 미션에서와는 달리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기에, 강현은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강현입니다. 반갑습니다.”

-ㅎㅇ여

-오랜만이다!

-빨리 미션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어요!

-흐음…….

-흐음좌는 좀 가라 말도 흐음밖에 안 하면서

…….

‘흐음좌?’

이상한 게 보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부터 중앙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채팅을 못 봐도 양해해 주시길.”

시청자들의 채팅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보다는 슬슬 미션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여태까지 아무리 잘했어도 여기서 한 번 삐끗하면 그대로 나가리였다.

아티팩트와 던전의 수호자라는 변수까지 생겨났으니,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어떻게 할 건지 계획 설명 좀 해줘라

-계획이 어찌 됨? ㅇㅇ

시청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인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 말했다가 다른 참가자들한테 소문나면 어떡합니까.”

-우리가 왜 소문을 냄? ㅋㅋ

-어차피 그런 것들은 다 스포일러 처리돼서 ㄱㅊ

[email protected]!# 이런 식으로

-ㅇㅇ 이게 마따

강현은 스포일러에 대해 루드스가 말해주었던 걸 떠올렸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빨랑 본심을 드러내라!

-우리는 이강현이 어떤 자세로 미션에 임할 건지가 궁금하다!

-궁금하다!

“그건…….”

그가 입을 열었을 때였다.

“그어어-”

“구오오!”

가까운 곳에서 괴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안력을 돋우어 앞을 주시하자, 50m 전방에서 잡동사니의 산을 배회하는 십여 마리의 구울과 스켈레톤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타깝게도 저놈들을 먼저 처리해야겠네요.”

강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채팅창에서 시선을 뗐다.

더 이상 구울과 스켈레톤에게 쩔쩔매야 하는 레벨은 아니었어도, 그게 방심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스킬, 여명의 눈[Lv.2]을 발동합니다.]

[스킬, 광검[Lv.8]을 발동합니다.]

적들의 약점이 반짝이고, 수수께끼의 검에 찬란한 백광이 깃든다.

슈와아-

수련의 방을 통해 레벨이 2나 증가해서인지 그 빛이 더욱 진해진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스킬, 질주[Lv.2]를 발동합니다.]

타타탁-

그가 지척까지 다다라서야 구울과 스켈레톤들은 적이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어어-”

구울이 질척거리고, 몇몇 스켈레톤들이 낡아빠진 활로 화살을 날려온다.

그러나.

[스킬, 참격[Lv.3]을 발동합니다.]

[스킬, 휘광[Lv.1]을 발동합니다.]

구울은 참격에, 화살은 휘광에 막혔다.

콰쾅!

“그어어…….”

세 마리의 구울이 참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남은 건 두 마리.

[30pt를…….]

무어라 메시지가 나타난다.

강현은 확인하지 않았다.

서걱-

푹-

그저 나머지 구울들을 베고 찔러 정리한 뒤 스켈레톤들에게 달려들 뿐.

[스킬, 참격[Lv.3]을 발동합니다.]

콰콰쾅!

덩구르르-

모든 스켈레톤이 쓰러지자, 강현은 그제야 메시지를 읽었다.

[30pt를 획득하셨습니다.]

[20pt를 획득하셨습니다.]

[30pt를…….]

…….

[총기여도 : 110pt]

110pt.

지금의 전투로 그가 획득한 기여도였다.

그런데 그때.

“……?”

스켈레톤의 뼈 무덤 사이에 웬 가죽 주머니가 보였다.

멀리서 봐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것이, 스켈레톤들이 가지고 있을 퀄리티가 아니었다.

강현은 다가가 가죽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열자마자 개운한 향기가 전해져 왔다.

[하급 신령초]

-바르거나 섭취하여 가벼운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는 신계의 약초입니다.

‘좋네.’

미션은 자그마치 30일 동안 진행된다.

이런 자잘한 약초라도 챙겨두어서 나쁠 게 없었다.

강현은 백아영에게 받았던 아공간 주머니에 약초를 집어넣었다.

-오, 약초 얻었으니까 다쳐도 회복 가능하겠네!

-얼른 다른 참가자들이랑 싸우자!

-세르반테랑 복수전 ㄱㄱ?

…….

‘뭔 약초 하나 얻었다고 싸우래.’

쏟아지는 댓글에 어이가 없어졌지만, 시청자들의 채팅이 이해되기는 했다.

미션이 시작된 만큼 구울이나 스켈레톤 같은 잔챙이가 아닌 다른 참가자들과 싸우는 게 보고 싶겠지.

강현의 계획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레벨을 충분히 올리면서 중앙으로 간다.’

몇몇 참가자들을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과의 싸움도 굳이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브 다음으로 기여도를 빨리 얻는 방법은 참가자들을 쓰러뜨리는 것일 테니까.

그 뒤로도 두 차례의 구울과 스켈레톤들이 덤벼왔지만, 강현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신령초를 주었던 이전 무리들과는 달리, 이후에 만난 괴수들에게서는 잡곡이 들어 있는 주머니와 생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더 걷자, 지형에 변화가 생겼다.

‘저건…….’

저 멀리 창고의 출입구로 보이는 거대한 문이 나타난 것이다.

다행히 살짝 열려 있어, 통과해도 시선을 끌지 않을 것 같았다.

“지도.”

지도를 확인하자 저 문을 지나면 제5 창고를 벗어나 ‘하수인들의 제2 처소’로 접어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있는 제5 창고를 제외하고도 하수인들의 제2 처소로 진입하는 다른 갈래의 길이 여럿 있는 걸로 보아, 다른 참가자들과 만날 가능성도 컸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

문을 통과하자마자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콰살린, 15위]

이벤트 매치에서 겨루었던 콰살린이었다.

콰살린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스킬, 여명의 눈[Lv.2]을 발동합니다.]

콰살린의 ‘약점’이 반짝였고.

팟-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 * *

‘그나마 다행이다!’

[이강현, 7위]

큼지막한 문에서 나오는 이강현을 보고 콰살린이 한 생각이었다.

물론 미션이 시작되고 처음 만난 참가자가 본선진출조라는 건 불운이었으나, 이강현은 이미 한 번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다.

지난번 다소 아쉽게 패배했다는 걸 기억해 볼 때, 충분히 해볼 만했다.

게다가 그가 믿는 건 경험만이 아니었다.

“흐흐…….”

[폭발의 비약]

-15분 동안 몸의 활력을 끌어냅니다. 15분 뒤에는 탈진 상태가 됩니다.

이벤트 매치의 보상으로 받은 이 비약이야말로 이강현을 앞에 두었음에도 도망치지 않은 자신감의 원인이었다.

‘이벤트 매치 때와는 다르다.’

-오, 이강현이랑 비벼볼 만하겠는데?

-저번에 박빙으로 싸우다가 아깝게 졌으니까 가능할 듯?

탁-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콰살린은 비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쿠오오-

온몸에 활력이 치솟았다.

15분이라는 제한시간이 있기는 해도 이 정도 활력이면 그전에 끝날 것 같았다.

“지난번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수인족의 손발톱을 꺼내든 그가 이강현을 향해 쇄도했다.

이강현도 백광을 흩뿌리며 그와 맞섰다.

‘흐흐, 아마 부딪쳐보면 느낄 거다!’

콰살린의 손톱과 이강현의 검이 맞부딪친다.

쾅!

그런데.

“큭?!”

콰살린은 이강현과 부딪치자마자 느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그도 그럴 게, 분명 힘에서부터 압도해야 하는데 그저께 치렀던 대련과 똑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비약을 마셨다는 걸 감안할 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하나 이강현에게서 뿜어지는 기세는, 그 일이 사실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비약을 마시고도 압도하지 못한다면 이 싸움의 결과는 뻔했다.

‘도망만이 살길이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콰살린이 급히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어딜.”

파팟-

순식간에 파고들어 온 이강현이 더 빨랐다.

쾅! 콰쾅!

몇 번의 교전 끝에 콰살린이 땅에 처박혔다.

그런 그를 이강현이 짓쳐 들었다.

“크윽……. 대, 대체 뭘 보상으로 받은 거냐!”

이틀 만에 강해졌다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는 성취를 보인 이강현에게 콰살린이 억울한 기색을 내비쳤다.

폭발의 비약을 먹고도 우세조차 점하지 못하다니.

이벤트 매치 보상으로 얼마나 사기 아티팩트를 얻었길래 이렇게 된 건지 알고 싶었다.

“글쎄……. 노가다?”

악을 쓰는 콰살린에 비해 강현의 대답은 짧았지만 말이다.

이어서 그가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기, 기권!”

슈와아아-

빛에 휩싸인 콰살린이 사라진다.

-와, 머임?

-이틀 동안 보이지도 않더니 갑자기 강해졌네?

-이강현 수련하는 거 못 봤음?

-ㅇㅇ 참가자들 수련하는 건 개인 카메라 없자나요. 숙소에도 없던데

-도핑한 콰살린이 상대도 안 되네;;

…….

채팅창에는 연신 놀랍다는 반응이 튀어나왔지만, 강현은 숨을 내쉬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강했어.’

전투가 시작하기 직전 뭘 먹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손톱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일전에 치렀던 대련과는 전혀 달랐다.

레벨과 함께 모든 능력치가 대폭 올랐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힘든 싸움을 이어나가야 했을 터였다.

비록 ‘새 스킬들’을 쓸 만큼은 아니었어도,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다.

강현은 수련의 방을 내려준 DBC에게 감사를 표하며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참가자 콰살린을 쓰러뜨리셨습니다.]

[100pt를 획득합니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47/150)]

수련의 방에서 에테르 결정체를 취한 덕에 다음 ‘단계’까지 3이 남았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다.

강현의 눈이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에테르를 취하다가 기습을 당할 수도 있으니 근처에 참가자들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된 뒤에야 강현은 손을 뻗었다.

스아아-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55/150)]

[취한 에테르가 일정 수치를 넘어섰습니다. 다음 단계가 적용됩니다…….]

[3단계 → 4단계]

[감각이 더욱 세밀해집니다.]

[에테르 감지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에테르 저항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

메시지가 연이어 떠오른다.

감각의 인지 범위가 넓어지고, 체내의 마력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1단계에서 2단계로, 2단계에서 3단계로 갈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로독의 말에 따르면, 이 같은 현상은 ‘진화’의 일환이라 할 수 있었다.

변화는 메시지만이 아니었다.

지난번 소환단을 취하고 나왔던 구정물이 몸에서 새어나온다.

그에 따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개운함과 상쾌함이 뒤따라왔지만, 큰 문제가 생겨났다.

그 탓에 코를 틀어쥐게 되는 악취가 몸에 배어버렸다는 것.

“……내 갑옷.”

반사적으로 코를 막은 강현이 얼굴을 구겼다.

바지는 그렇다 쳐도 갑옷에까지 냄새가 밴 게 치명적이었다.

‘세탁할 곳도 없는데 계속 이 냄새를 풍기면서 다녀야 된다고?’

반면, 평소 무뚝뚝하던 강현이 격한 반응을 보여서일까.

채팅창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ㅋㅋㅋㅋㅋㅋ

-몸에 노폐물이 얼마나 있던 거야ㅋㅋ

-어렸을 때 벌모세수 안 했나 보네ㅋㅋㅋㅋ

-군소차원이라 못한 듯ㅋㅋ

…….

“어디 세탁할 곳은…… 없겠죠?”

-ㅋㅋㅋㅋ 지금 세탁이라 한 거?

-세탁?? 세에타아아악?! 이 피와 살이 튀기는 더 비욘드에서?!

…….

“…….”

채팅장이 또 한 번 폭주했다.

강현은 애써 채팅들을 무시하고는 메시지를 읽어나갔다

.

[참가자 이강현의 현재 단계는 4단계입니다.]

[다음 단계는 취할 수 있는 에테르를 모두 취한 뒤 적용됩니다.]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5/200)]

‘4단계면…… 2단계까지 약점을 볼 수 있다고 보면 되겠네.’

일전에 콰살린과의 대련을 통해 두 개의 ‘단계’가 차이가 나야 여명의 눈이 발동된다는 가설을 세웠었다.

아직 그 가설은 깨지지 않았으니, 강현은 2단계인 참가자의 ‘약점’도 보일 거라 상정하기로 했다.

에테르도 취했겠다, 그렇게 강현이 찝찝함을 뒤로한 채 이동하려던 때였다.

“음?”

콰살린이 있던 자리에 무언가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그러고 보면…… 괴수들도 뭔가를 떨어뜨렸었는데.’

첫 번째 마주쳤던 괴수들은 신령초를, 나머지 괴수들은 식량과 물을 주었다.

‘참가자를 쓰러뜨려도 뭘 주나 보군.’

강현은 다가가 반짝이는 물체를 확인했다.

만화에서나 보던 포션병이었다.

[조금 남은 폭발의 비약]

-3분 동안 몸의 활력을 끌어냅니다. 3분 뒤에는 탈진 상태가 됩니다.

“……이걸 마셨었구만.”

강현은 그제야 콰살린이 갑작스레 강해졌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순 약발이었네.”

물론 폭발의 비약을 챙겨두는 건 잊지 않았다.

위기의 순간에 도움이 되어줄 게 분명했다.

“어디 보자……. 지도.”

출발하기 전, 강현은 지도를 불러내어 남은 참가자의 수를 체크했다.

-남은 참가자 수 : 25/30

미션이 시작된 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섯 명이 줄어 있었다.

이 정도 추세면 30일까지 갈 것도 없을 듯했다.

‘기여도.’

1위 알렉시스 찬드라스(480pt)

2위 란 레이센(460pt)

3위 사도천(410pt)

4위 이강현(390pt)

5위 세르반테(350pt)

6위 남궁강룡(340pt)

…….

강현은 자신의 이름이 4위에 안착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세 무리의 괴수들을 처치한 데다가 콰살린을 쓰러뜨려서인 듯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치고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웠지만, 최상위권 참가자들과 생각보다 차이가 난다는 건 신경 써야 할 문제였다.

혹여 지금보다 차이가 더 벌어진다면 3위권을 노리는 그로서는 곤란했다.

‘내 위에 있는 놈들은 얼마나 빨리 해치우면서 다니는 거야?’

누굴 만나든 간에 닥치는 대로 싸우기라도 하는 걸까.

강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역시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럼, 다시 가 보겠습니다.”

강현은 화살표를 따라 발걸음을 떼었다.

하수인들의 제2 처소는, 그 이름답게 수백 개의 움막들이 쫙 펼쳐져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뼛조각이나 정체불명의 가죽 등, 불길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움막들이었다.

그는 주변을 경계하며 조심스레 나아갔다.

만약 기습하려는 참가자가 있다면 이곳이야말로 최상의 조건을 갖춘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들어맞았다.

처소의 중간쯤 왔을 때, 느닷없이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든 것이다.

콰아아-

그 순간 그의 기감이 경고해왔고, 강현은 지체 없이 순보를 사용했다.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그의 신형이 15m 좌측에 나타나자마자 큼지막한 불덩이가 그가 있던 자리를 덮쳤다.

콰콰쾅-!

근처의 움막들이 불타 갔다.

‘마법사!’

강현은 즉시 불덩이가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마법사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공격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바로 옆의 움막에서 누군가 튀어나온다.

푸른 검기가 넘실거리는 예리한 검이 공기를 가르며 들이닥쳤다.

[스킬, 광검[Lv.8]을 발동합니다.]

강현도 광검을 발동하여 맞서나갔다.

챙!

[로우크, 30위]

한 번도 상대해 보지는 않았으나, 이름은 낯익은 참가자였다.

채챙! 챙!

하얀빛과 푸른 검기가 연신 충돌한다.

“크윽!”

당연하게도 금세 수세에 몰린 건 로우크였다.

순위와 강함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해도, 7위와 30위의 차이는 유의미할 수밖에 없다.

[스킬, 섬광[Lv.6]을 발동합니다.]

쾅!

“큭!”

섬광을 견디지 못하고 주르륵 밀려난 로우크의 자세가 무너져내린다.

그 기회를 놓칠 강현이 아니었다.

파팟-

순식간에 쇄도하여 로우크의 목을 노려갔다.

그때였다.

쿠르르릉-!

그와 로우크 사이의 땅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냥 땅도 아니고, 꿰뚫릴 것처럼 끝이 날카로웠다.

“윽!”

하마터면 솟아오른 땅에 부딪힐 뻔한 강현은 급히 순보로 자리를 피했다.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팟-

피하자마자 또다시 불덩이가 날아든다.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죽어라!”

‘빌어먹을.’

불덩이를 피해내는 것만 기다렸다는 듯 이어서 달려드는 로우크를 본 강현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한 명씩 상대하면 금방 쓰러뜨릴 수 있을 텐데, 두 명을 한꺼번에 상대하려니 매우 까다로웠다.

‘그래도…… 대강 뒤에 있다는 건 알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두 번의 불덩이를 피해내며 마법사가 있는 방향을 대충 알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채챙! 쩌엉!

로우크와 검을 나누면서도 강현의 시선은 계속해서 마법사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굴러갔다.

어느 움막 안으로 급하게 몸을 피하는 인영을 본 강현이 눈을 번뜩였다.

[칼리소, 24위]

‘마법사부터 처리한다.’

판단을 내린 강현이 검을 휘둘렀다.

[스킬, 참격[Lv.3]을 발동합니다.]

날카로운 세 개의 백광이 로우크에게 향한다.

콰콰쾅!

“크으윽!”

로우크가 침음을 흘리며 참격을 쳐낸다.

그리고 로우크의 발이 묶인 순간, 강현은 마법사를 봤던 곳으로 내달렸다.

회색 로브의 마법사가 부리나케 도망친다.

파팟-

헤이스트 마법이라도 걸었는지, 마법사답지 않게 움막과 움막을 뛰어다니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강현은 순보와 질주를 연달아 사용하여 빠르게 접근해 갔다.

고개를 돌려 좁혀지는 거리를 본 마법사가 무어라 외쳤다.

“-v, vavtonize!”

파지지직-

뱀 모양의 전격(電擊)이 뿜어져 나왔다.

‘별걸 다 쓰는군.’

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순보로 전격을 지나쳤다.

그런데.

파지직-

뱀 전격이 마치 유도탄처럼 그를 뒤따라오는 게 아닌가.

‘그냥 정면에서 부수는 게 낫겠어.’

[스킬, 휘광[Lv.1]을 발동합니다.]

[스킬, 섬광[Lv.6]을 발동합니다.]

넓게 퍼진 순백의 빛이 일차적으로 뱀 전격을 상쇄했고, 나머지는 섬광이 분쇄해 갔다.

“개, 개같은!”

악을 내지른 마법사가 마법을 몇 개 더 날렸다.

하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쐈기에 위험했던 것이지, 훤히 보이게 날리는 마법은 강현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급기야 마법사는 강현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기권을 외치고 사라졌다.

[참가자 칼리소를 쓰러뜨리셨습니다.]

[60pt를 획득합니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

메시지들이 나타났지만, 강현의 시선은 죽으라 자신을 쫓아오는 로우크에게 향해 있었다.

“헉!”

마법사가 정리되는 걸 본 로우크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겁먹은 얼굴로 말해온다.

“가, 같이 오브를 노려보지 않겠…….”

강현은 무시하고 검을 휘둘렀고, 그게 그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기, 기, 기권!”

[참가자 로우크를 쓰러뜨리셨습니다.]

[40pt를 획득합니다.]

칼리소와 로우크에게 얻은 기여도를 확인한 강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참가자마다 주는 기여도가 달라.’

100pt를 준 콰살린과는 다르게 칼리소는 60pt, 로우크는 40pt밖에 주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여도를 불러낸 강현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9위 콰살린(100pt)(탈락)

…….

28위 칼리소(60pt)(탈락)

29위 로우크(40pt)(탈락)

…….

각 참가자가 가지고 있던 기여도를 그대로 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기여도와는 상관없이 까다로운 전투였다.

설마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대기를 타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5/200)]

주변을 둘러본 강현은 칼리소와 로우크의 에테르를 흡수했다.

스아아-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2/200)]

에테르를 취한 뒤 칼리소와 로우크가 또 무언가 떨어뜨렸나 싶어 그들이 사라진 곳을 살펴봤으나, 이번에는 아무런 물건도 찾을 수 없었다.

-숨 이제 쉰다;;;

-애 떨어질 뻔했네

-깜놀;;;

-정예부대 공작원인 줄

…….

채팅창을 흘끗 훑은 강현은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워낙 시끄럽게 싸워댔으니, 근처에 누군가 있다면 봤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한데 그때였다.

-쾅!

확장된 기감에, 참가자들의 전투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앞이다!’

기감이 말해오는 거리는 전방 1㎞쯤.

강현은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했다.

조금 더 가자 제2 처소를 벗어나게 되었고.

[동부 훈련소]

다시 여러 통로가 합쳐지는 길목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막사로 보이는 어두침침한 건물들이 여럿 있는 훈련소였다.

그리고 시야에 전투의 흔적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그는 볼 수 있었다.

[이사크, 18위]

땅에서 솟아난 거대한 촉수에 목을 졸리고 있는 참가자와.

[사도천, 5위]

음침한 로브를 뒤집어쓴 사도천을.

“끄으으…… 기…… 기…….”

“어딜 도망가려고?”

이사크는 기권을 외치려고 했으나.

꽈악-

사도천의 촉수가 더 세게 목을 조이자 말을 더 내뱉지 못한다.

“끄억…….”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라.”

뿌드득-

결국 이사크의 목이 부러지고 나서야 촉수는 그를 놓아주었다.

털썩-

이사크를 쓰러뜨린 사도천은 유유히 길목의 입구로 향했다.

입구를 틀어막고 중앙으로 가려는 참가자들을 하나씩 해치울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가 입구에 도달하기 직전.

쐐액-

하얀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난데없는 급습에 사도천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퍼퍼퍼퍽-!

이사크를 끝장냈던 해신(海神)의 촉수들이 펄떡거리며 흉수에게 쏘아진다.

하지만.

서걱-

흩뿌려진 백광은 촉수들을 단번에 가르고는 그대로 사도천에게 내찔러졌다.

“이강현……!”

슈슉-

흉수를 확인한 사도천의 몸이 꺼지듯 사라지더니 조금 뒤에서 솟아오른다.

‘실패했군.’

강현이 혀를 찼다.

기습을 시도해 봤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다만.

‘나쁘지는 않아.’

물론 타격을 입혔다면 좋았겠다만, 사도천에게도 자신의 순보와 비슷한 기술이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소기의 성과는 거둔 셈이었다.

“호오……. 먼저 기습을 해오다니.”

사도천이 같잖다는 기색을 보인다.

“순위가 비슷하다고 실력도 비슷한 줄 아는 건가? 서로의 속성이 상극이라지만 주제를 모르는구나.”

“…….”

“찾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군. 너를 죽이고 네 검을 빼앗겠다.”

쿠오오-

사도천에게서 사악한 기세가 폭증했다.

대기가 어둠으로 뒤덮이고, 땅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세르반테와 대련할 때와는 또 다른, 닿기만 해도 스러질 듯한 음울한 기세.

그러나.

“그것 참 우연이네.”

강현의 얼굴에는 변화가 없었다.

확실히, 사도천의 말에 일리가 있긴 했다.

광(光)속성은 암(暗)과 마(魔)속성에 상극이지만, 모든 빛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빛이 반짝인다 해도, 그 빛이 반딧불이라면 세상을 뒤덮은 어둠에 대항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괜히 사도천 앞에 나타난 게 아니었다.

반딧불로 모자라다면, 그 크기를 더 키우면 그만이다.

어둠을 밀어낼 때까지.

그리하여, 어둠이 완전히 자취를 감출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말도 그거였는데.”

사도천에게 담담하게 고하며, 강현은 새 스킬을 꺼내 들었다.

[스킬, 천광의 날개[Lv.1]를 발동합니다.]

슈와아-

강현으로부터 퍼져 나가는 찬란한 광채에 주변을 잠식하던 시꺼먼 기세가 걷혀 나갔고.

천광(天光)의 날개

-날카로운 빛으로 이루어진 한 쌍의 날개를 생성합니다. 암(暗)과 마(魔) 속성에 강한 저항력을 가집니다.

영롱함을 담은 순백의 날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

‘천광의 날개’의 등장에, 사도천이 살짝 경계하는 태세를 보인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스으으…….

사도천이 발산하는 어둠을, 천광의 날개에서 뿜어지는 광채가 밀어내는 중이었으니까.

리얼에서도 사기(邪氣)를 쓰는 자들에게 근처를 잠식하는 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곳에서도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였다.

슈와아-

빛이 어둠을 끊임없이 몰아낸다.

딱히 강현이 무언가를 해서 날개의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패시브 효과랄까.

환한 빛 주변이 어두워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물론, 그게 천광의 날개가 말도 안 되는 규격 외의 스킬이라는 말은 아니다.

천광의 날개는 그저 상세 설명에 나와 있는 대로 날개를 만들 뿐인 스킬이다.

날개로 상처를 줄 수 있고 근처의 사기를 몰아내 주기는 해도,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스킬.

하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 어떤 스킬보다도 유용했다.

팟-

강현은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천장이 매우 높아 나는 데에 지장은 없었다.

슈와아-

높게 치솟았던 강현이, 지상으로 급강하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목적지는,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는 사도천.

[스킬, 질주[Lv.2]를 발동합니다.]

여기에 질주까지 더해지자 그 모습이 한 줌의 빛살과도 같았다.

사도천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쿠콰콰-

땅에서 고동색의 촉수 다발이 솟구쳐 온다.

쐐애액-

강현은 화려하게 촉수들을 피해가며 사도천에게 달려들었다.

빠르게 자신과의 거리를 좁혀오는 강현을 보며 사도천이 뱀처럼 속삭였다.

“saavateo…….”

쿠르릉!

땅에서 거대하면서도 흉측한 손아귀가 튀어나온다.

흡사 거인의 손이 있다면 저 크기일 것 같았다.

[스킬, 참격[Lv.3]을 발동합니다.]

퍼퍼퍽-

강현이 참격을 날렸음에도, 손아귀는 아랑곳하지 않고 덮쳐왔다.

저 손아귀에 잡힌다면 온몸이 한순간에 으스러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강현이 손아귀를 피했을 때였다.

“버러지 같은 것이 그깟 날개 하나 펼쳤다고 날뛰는구나.”

스스스-

바로 앞에 사도천이 나타났다. 그 손에는 어느새 새까만 기운이 둘려 있었다.

검을 쓰는 자신에게 먼저 접근해 오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는 선택이었다.

그만큼 그가 강현을 낮게 보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애초에 상성적으로 극히 불리한데도 불구하고 싸움을 피하지 않은 것부터 강현을 지나치게 얕보고 있다는 거였지만 말이다.

물론 이 기회를 놓칠 마음이 없는 강현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검게 물든 사도천의 손과 강현의 검에 둘린 백광이 연이어 충돌했다.

콰콰쾅! 쾅!

콰살린, 로우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묵직함에 강현이 이를 악물었다.

속성에서 이점이 있다고는 해도, 손에 깃든 새까만 기운의 절대적인 양이 엄청났다.

하나 이를 악문 건 사도천도 매한가지인 듯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보다 더해 보였다.

“……빌어먹을 빛.”

예상보다 반발력이 더 전해져 오는지, 두건 밑으로 살짝 보이는 입꼬리가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다면…….’

강현은 지금이 흐름을 탈 기회라는 걸 직감했다.

하늘로 다시 날아오른 강현은 검을 휘두르며 쏜살같이 쇄도했다.

[스킬, 참격[Lv.3]을 발동합니다.]

참격이 사도천의 이마와 명치, 고간을 노리고 날아든다.

카카캉!

사도천이 손으로 참격을 쳐낸다.

그렇지만 참격은 빈틈을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

그때는 이미 강현이 벼락처럼 파고드는 중이었다.

[스킬, 섬광[Lv.6]을 발동합니다.]

강현의 검이, 참격을 쳐내느라 자세가 약간 흐트러진 사도천을 찔러 갔다.

사도천이 급히 손을 들어 방어태세를 취했으나, 이미 자세는 무너져 있었다.

콰앙!

“큭! 이놈!”

한참을 날아간 사도천이 빙글 뒤돌아 착지했다.

‘역시 근접전에 약해.’

강현이 계속해서 몰아붙이려던 순간이었다.

후두둑-

사도천이 품에서 하얀 가루들을 뿌려대며 외쳤다.

“죽은 자여, 그 썩어 문드러진 몸을 일으켜라!”

그러자.

쿠르르르…….

돌연 땅에서부터 스켈레톤과 구울이 올라오는 게 아닌가.

어림잡아 수십은 되는 숫자였다.

“그어어-”

“키아악-!”

다가오는 스켈레톤과 구울들을 보며 강현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가지가지 하는군. 선인이 아니라 네크로맨서였나?’

고행을 쌓는 선계의 선인을 상대하는 건지, 사이(邪異)한 네크로맨서를 상대하는 건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폴짝 뛰어오른 강현이 허공을 힘주어 밀어냈다.

쾅!

그의 몸이 질풍처럼 쏘아졌다.

한 쌍의 날개와 검이 환한 빛을 뿌리며 망자(亡者) 사이를 휘젓기 시작한다.

서걱-

푸욱-!

수십에 달하는 망자들이 순식간에 치워져 간다.

촤라라랑-

도중에 사도천이 땅에서 쇠사슬을 소환하고, 사념이 담긴 구체를 쏘아 보내기까지 했음에도 소용없었다.

그 사실에, 사도천의 얼굴이 차츰 굳어가기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사도천을 상대로 한 이강현의 명백한 선전.

그것이 사도천은 물론이요, 시청자들까지 예측하지 못했던 양상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 * *

-와, 혹시나 했는데 진짜 이강현이 이기겠네

-진짜 소름이다 상극이긴 해도 실력 차이가 얼마였는데

-저 날개가 사도천 입장에선 진짜 까다로울 듯

-이강현 종족 특성은 원리가 짐작도 안 가더라 ㅈㄴ 신기함

-ㄹㅇ임 이거. 볼 때마다 쑥쑥 강해져 있음ㅋㅋㅋㅋ

-돼지야 돼지야 이강현한테 대체 뭘 준 거니?

-보상으로 뭘 줬길래 이틀 동안 코빼기도 안 보여놓고 저리 강해져서 튀어나옴?

-수련의 방이라도 줬나?ㅋㅋㅋ

-에이 설마. 악마종 예선에서도 안 뿌리는 걸 이강현한테 줬겠음?

…….

본선진출조인 사도천과 이강현의 충돌은 당연하게도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로독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

수십 개의 화면을 볼 수 있었음에도, 한참 전부터 그의 눈은 오롯이 이강현과 사도천의 전투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로독은 치솟아 오르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억눌렀다.

시청자들이 뻔히 보는 가운데 박장대소라도 했다간 프로듀서의 체면이 남아나질 않았다.

그러나 이강현의 선전은, 로독에게 프로듀서의 체면을 생각하게 할 만큼 만족스러웠다.

‘세르반테와의 대련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너무 훌륭하잖아!’

로독의 시선이 시청률 그래프로 향했다.

미션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13%가 채 되지 않던 시청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14.8%…… 14.9%…… 15%. 무려 상위권 예선의 입구라는 15%를 돌파했다.

15%를 끌어낸 것만으로도 이강현에게 지급했던 하급 수련의 방이 아깝지 않았다.

-이대로 걍 압살하는 거 아님?

-그러게. 사도천이 뭘 꺼내든 다 카운터 처맞는데

-솔직히 상성이 너무 안 좋네

-사도천이 길목 틀어막고 오는 참가자 다 죽이겠다는 멍청한 짓만 안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ㄴㄴ 그래서 더 재밌는 거임. 그거 아니었으면 이강현한테 참교육 당할 일도 없었을 듯

…….

상당히 많은 시청자들은 이강현의 승리를 내심 바라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곧 이강현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응원하는 참가자가 떨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엄밀히 말해, 이강현과 사도천은 둘 다 시청자들에게 아낌없이 매력을 발산하는 흥행카드들이다.

이 오디션을 총괄하는 로독으로서는 둘 중 누가 이기더라도 좋았다.

거기에 누가 이기든, 지금처럼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것보단 치열해질수록 더 좋았다.

‘사도천이 뭔가 한 번 더 톡! 쏘는 걸 해주면 좋을 텐데…….’

로독이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마침 사도천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고.

“오호…….”

그걸 본 로독의 조그마한 눈에 흥미로운 기색이 감돌았다.

뭔가,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흥행에 도움이 될, 아주 재미있는 일이.

* * *

자신의 술법을 요리조리 피하며 망자들을 정리해 나가는 이강현을, 사도천은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악귀처럼 우그러진 얼굴이 현재 그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이……!”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상성의 차이를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다고 여겼건만, 저 빌어먹을 날개 때문에 그 예상은 수포로 돌아갔다.

망자를 일으켜도, 사념의 손아귀를 꺼내도, 죄악의 사슬을 내쏘아도 통하지 않았다.

도리어 저 눈이 멀 것 같은 빛만 진해졌다.

꺼내지 않은 법보가 몇 개 더 있긴 하나, 저 날개가 사기를 밀어내는 한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컸다.

으득-

사도천이 어금니를 부서질 듯 깨물었다.

“……해보자 이거지.”

스윽-

그러더니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품에서 검붉은 장식의 검을 꺼낸다.

일전에 이강현에게 교환을 권했던 바로 그 검이었다.

[혈룡검]

-천년 묵은 이무기를 벤 전설의 보검이다. 피를 먹일수록 강한 위력을 내뿜는다.

특수 기능 : 참룡섬, 용살자(상시 발동)

참룡섬 : 광범위한 찌르기를 시전한다.

…….

지금까지는 사용을 꺼렸다만, 상황이 상황이었다.

핏-

사도천의 팔에 긴 상처가 생겨난다.

망자를 거의 다 정리하고 짓쳐 들어오는 이강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그는 상처에 혈룡검을 가져갔다.

한때 인세를 혼란으로 치닫게 했던 마검이 게걸스럽게 피를 빨아들여 갔다.

츠츠츠츳-

“크으윽!”

그에 따라 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사도천은 이강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피를 먹였다.

이내 효과는 나타났다.

쿠오오-

어마어마한 기운이 검에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

뒤늦게 무언가 벌어졌다는 걸 파악한 이강현이 급히 날아오르며 품을 뒤지는 게 보였다.

하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윽고 충전을 마치자, 혈룡검에 은은한 핏빛이 감돌았다.

콰아아-

급하게 쓰느라 최대치로 충전한 게 아닌데도, 그 기운만으로 근처의 바닥이 으깨지며 파편이 비산한다.

“어디, 이것도 피하나 보자고.”

비릿한 미소를 지은 사도천이 나직이 속삭였고.

“……참룡섬.”

이름은 가느다란 찌르기[纖]를 뜻했으나, 결코 가느다랗지 않았다.

콰콰콰콰-!

핏빛 강기의 폭풍이, 전방을 휩쓸었다.

* * *

슈우우-

터져 나온 굉음에 귀에서는 이명이 들려왔고, 먼지로 사방이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끝을 모르고 길게 그어진 거대한 자상만이, 거대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는 걸 짐작하게 할 따름이었다.

그야말로, 마검에 의한 끔찍한 참상의 흔적.

“허억…… 헉…….”

그러나 숨을 몰아쉬던 사도천은 더없이 만족스러운 광소를 터뜨릴 뿐이었다.

상대가 이강현이든 누구든, 참룡섬을 받고도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크하하하! 고통스럽게 죽었겠구나! 역시 이걸 피할 리가 없…….”

서걱-

사도천의 웃음이 채 멎기도 전, 검을 든 그의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끄헉?!”

사도천의 신형이 허우적대더니 한참 뒤에 나타난다.

나타난 두 눈은 경악에 물들어 있었다.

“너, 너…… 대체 어떻게?”

그도 그럴 게.

찬란하던 날개는 다 찢어지고, 온몸이 피투성이였긴 했어도.

눈앞에 서 있는 건 틀림없는 이강현이었으니까.

“…….”

도핑, 이라고 답해주고 싶었지만, 강현은 대답하는 것보단 다른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스윽-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워.

마지막 순간 봤던 대로, 혈룡검을 온몸에 난 상처 중 한 곳에 가져다 대는 것.

츠츠츠츠-

혈룡검이 피를 무섭게 빨아들이는 걸 본 사도천이 다급하게 도망을 치기 시작했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충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완료되었다.

멀어지는 사도천을 무심히 바라보며, 강현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게 얼마나 아픈지는…….”

쿠콰콰콰-

“네가 한번 맞아보고 판단해 봐라.”

콰아아아-

조금 전 근방을 초토화시킨 참룡섬이 그 방향만을 바꾸어 사도천의 뒷모습을 쓸어버렸고.

잠시 후,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참가자 사도천을 쓰러뜨리셨습니다.]

[510pt를 획득합니다.]

짜릿한, 승리의 메시지였다.

슈우우…….

먼지가 걷히자, 참룡섬이 휩쓴 거대한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와우

-와…….

-갑자기 머임?????

-이강현 방에만 있었는데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네

-대충 사도천이 마검 꺼내서 스킬 갈긴 거 같은데? 이강현이 그거 버티고 역으로 공격해서 똑같이 복수해 줬고.

-아니ㅋㅋㅋ 그니까 그걸 어떻게 버텼냐고

-이 레벨에선 거의 결전 병기 수준인데?ㅋㅋ

-훈련소 부지가 걍 평지가 돼버렸자너

-근데 피 먹이는 거 반동 장난 아닐 듯

-그거야 뭐 이강현이 알아서 할 일이지

-ㄹㅇㅋㅋ

-흐음.

-흐음좌는 좀 가라

-흐음좌 뭐라 하지 말고 니나 가라

…….

몇몇 시청자들이 말한 것처럼, 참룡섬은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을 하나쯤은 그냥 날린다고 했던 게 진짜였잖아.’

지난번 수수께끼의 검과 바꾸자고 할 때 사도천이 말했던 그대로였다.

방금 자신이 당했을 때는 그저 죽을 수도 있겠다고만 느꼈었는데, 참룡섬을 날리는 입장이 되니 공격 범위가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피를 먹인 팔뚝이 아직도 아려왔지만, 그만큼 위력은 보장되는 듯했다.

‘앞뒤로 초토화가 되어버렸네.’

사도천의 참룡섬이 후방을, 자신의 참룡섬이 전방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지형이 아예 바뀌어버렸을 정도였다.

사도천이 틀어막으려던 길목이 뻥 뚫렸을 뿐만 아니라, 훈련소 건물의 삼 분의 일 가까이가 스러진 것이다.

“……이걸 내가 버텨냈다니.”

그걸 확인한 강현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스킬, 휘광[Lv.2]을 습득합니다.]

뜬금없이 레벨 업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참가자는 경험치를 주지 않으니, 자신이 날린 참룡섬이 미처 다 해치우지 못한 구울과 스켈레톤을 해치운 게 아닐까 생각됐다.

“상태창.”

이름 : 이강현

레벨 : 34

고유 특성 : <광검제>

보유 스킬 : 광검[Lv.8], 섬광[Lv.6], 순보[Lv.3], 질주[Lv.2], 참격[Lv.3], 휘광[Lv.2], 천광의 날개[Lv.1], 여명의 눈[Lv.2]

능력치 : 근력[Lv.14 +8], 민첩[Lv.25 +8], 체력[Lv.17 +8], 마력[Lv.13 +8]

거기에는, 참룡섬에 휩쓸리기 직전 강현이 마신 폭발의 비약, 즉 ‘도핑제’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비록 능력치가 상승하는 시간은 3분에 불과했지만, 살아남기에는 그 정도도 충분했다.

“모든 능력치 8 증가라니, 미친 거 아니냐고…….”

다시 봐도 어이가 없어지는 상승치였다.

미니 게임의 오브가 5씩 증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했다.

단순 레벨로만 쳐도 16이 증가한 것이었으니까.

그 정도면 거의 50레벨에 육박한 셈인데, 50레벨이면 코앞에서 오러의 폭풍을 견뎌냈던 세르반테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걸 처먹었으니 자신감이 안 붙을 리가 있나.’

그제야 콰살린이 갑자기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와 그가 보였던 과도한 자신감을 이해한 강현이었다.

‘나도 그 덕을 톡톡히 보긴 했다만.’

피투성이가 되긴 했어도, 폭발의 비약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게 폭발의 비약 덕분인 것은 아니었다.

천광의 날개로 몸을 감싸고, 휘광과 수수께끼의 검의 보호막이 이중으로 완충제 역할을 수행해 준 것도 컸다.

슥슥-

그는 피투성이가 된 온몸에 하급 신령초를 치덕치덕 발랐다.

스르르…….

상처부위가 개운해지면서, 시뻘건 피로 뒤덮였던 몸이 서서히 아물어간다.

이걸로 내상은 좀 있겠으나, 활동하는 데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신령초를 거의 다 발랐을 때였다.

[3분 동안 탈진 상태에 접어듭니다.]

온몸에 차올랐던 활력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면서, 그 자리를 무력함과 공허함이 대신했다.

폭발의 비약으로 얻은 약속의 3분이 끝난 것이다.

“윽.”

강현은 휘청거리려는 무릎을 붙잡았다.

시청자들에게 꼴사납게 주저앉는 모습을 보여 좋을 게 없었다.

다만 남은 기운이 한 번에 쭉 빠져나갔기에, 3분 동안은 제자리에 있어야 할 듯했다.

‘그나마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야.’

참룡섬으로 앞뒤를 싹 날려 버린 탓에, 누군가 숨어 있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참가자 중 누군가가 기습을 하려고 했다면 참룡섬에 쓸렸을 테고, 지금쯤 골골대고 있거나 죽었을 터였다.

[탈진 상태가 종료됩니다.]

스아아-

3분이 지나고 강현은 몸을 일으켰다.

강현의 시선이 조금 전 참룡섬을 날렸던 방향을 훑었다.

저 멀리, 사도천이 두르고 있던 걸로 추정되는 로브 쪼가리가 눈에 들어왔다.

강현은 즉각 발걸음을 떼어 그곳으로 이동했다.

내심 참룡섬에 휩쓸려 죽었기를 바랬는데, 아쉽게도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기권했나 본데.’

죽기 전에 기권을 외치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탈락은…… 안 하겠지.’

그는 사도천을 쓰러뜨리고 510pt에 달하는 기여도가 들어왔던 걸 기억했다.

그걸로 미루어보아 비교적 이른 기권이었다고는 해도, 이번 미션에서 사도천이 14위 안에 못 들 것 같지는 않았다.

‘다음 미션에서도 얼굴을 보겠군.’

불편한 사실에 강현이 얼굴을 미세하게 찌푸린 순간이었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2/200)]

때마침 메시지가 나타난다.

강현은 사도천의 로브 조각 근처에서 반짝이는 에테르로 손을 가져갔다.

스아아-

본선진출조인 사도천의 에테르여서 그런 건지, 한눈에 봐도 상당한 양이 흘러들어온다.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62/200)]

“50……?”

흡수가 끝나고, 에테르를 확인한 강현이 눈을 크게 떴다.

사도천 혼자 50이라니.

앞서 쓰러뜨렸던 콰살린과 로우크, 칼리소가 합쳐서 15를 주었던 것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양이 아닐 수 없었다.

‘따로 떨군 건 없고.’

사도천이 있던 자리에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손에는 무려, 참룡섬을 날릴 수 있는 혈룡검이 들려있었으니까.

가뜩이나 광역기의 부재에 골골대던 강현이었다.

그런 그에게 참룡섬이라는 무지막지한 위력의 광역기가 생겨났으니, 가히 최상의 아티팩트를 얻었다고 할 수 있었다.

‘뭐, 많이 쓰지는 못하겠지만.’

빨려들어 간 피의 양으로 봤을 때 느낌상 한 번의 전투에서 쓸 수 있는 참룡섬은 많아야 두 번까지인 듯했다.

당연하게도, 그 파괴력을 직접 체감한 강현으로서는 두 번도 만족스러운 횟수였다.

“가 볼까.”

정리를 마친 강현이 발걸음을 움직였다.

탁-

발걸음을 떼자 승리의 성취감이 스르르 전해져 온다.

‘이겼다.’

사도천을 이겼다.

여러 조건이 웃어주긴 했어도, 처음으로 본선진출조를 쓰러뜨린 것이다.

‘기여도.’

1위 이강현(1,000pt)

2위 알렉시스 찬드라스(570pt)

3위 란 레이센(550pt)

4위 사도천(510pt)(탈락)

5위 세르반테(430pt)

6위 남궁강룡(420pt)

…….

1위에 오른 자신의 이름이 그걸 증명했다.

그렇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미션은 이제 시작했고, 기여도는 무조건 높다고 좋은 게 아니었다.

최상위권을 노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했다.

‘단계’가 높은 참가자라면 꽤 멀리 있었을 지라도 조금 전의 전투를 느꼈을 것이다.

사도천의 기여도가 고스란히 흡수되었으니, 다른 참가자들의 표적이 될 위험이 컸다.

‘하이에나들이 올 수도 있어.’

그의 기여도를 노린 참가자들이 올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하나였다.

하이에나들이 감히 노리지 못하도록,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는 것.

이강현이라는 참가자가, 자신들이 노릴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걸 알리는 것.

그 사실을 상기하며, 그는 앞으로 나아갔다.

오브가 있는 중앙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 * *

이강현의 생각대로 그와 사도천이 벌인 전투의 여파는 꽤나 멀리까지 퍼져 나갔고, 상당히 많은 참가자가 알아차렸다.

‘기회다.’

슈우우-

몸을 부양시킨 채 빠르게 날아가고 있는 자니스 라르케치도 그중 하나였다.

정령사인 그는 마력의 파동에 민감했고, 이강현과 사도천의 싸움으로 거대한 마력이 뿜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1위 이강현(1,000pt)

…….

이강현의 기여도를 본 자니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10pt도, 100pt도 아닌 1,000pt다.

북쪽에서 중앙으로 향해 가고 있던 그는 이강현의 기여도를 보자마자 방향을 틀었다.

이강현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곳까지는 다소 돌아가야 했으나, 그는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1,000pt라는 숫자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른 참가자들이 가기 전에 내가 먼저 가야 한다.’

물론, 단지 기여도를 얻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그가 이강현을 노리는 건 아니었다.

여기에는 이강현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도 한몫했다.

자니스는 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 번째 미션에서, 이강현이 바위 거인을 썰어버린 그 순간부터 놈이 싫었다.

마치 빌빌 기던 벌레가 어쩌다가 눈에 띄어 나대는 느낌이랄까.

“군소차원 주제에…….”

더 짜증나는 건 그가 보기에 이강현은 속이 텅 빈 거품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놈에게 관심과 환호를 보낸다는 점이었다.

그게 자니스의 심기를 더 뒤틀리게 했다.

-이강현이 순위 더 높지 않나요?

-니가 질 수도 있지 않음?

…….

일부 시청자들이 걱정을 표한다.

그들의 말대로 순위는 이강현이 더 높긴 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차원, 제2 정령계에서 손꼽히는 가문의 장자였고, 이강현은 듣도 보도 못한 차원의 벌레였다.

게다가 미니 게임과 이벤트 매치를 살펴본 결과, 이기기에 그닥 어렵지도 않을 것 같았다.

슈우우-

이강현을 반드시 잡겠다고 다짐하며, 그는 쉬지도 않고 나아갔다.

이동하는 도중.

[카로크 살리스, 27위]

“주, 죽어!”

숨어 있던 참가자 하나가 튀어나오며 공격을 해왔지만.

“크어억……!”

자니스가 불러낸 바위 정령에 의해 목이 비틀렸다.

“……쓰레기가.”

그 뒤로도 그는 몇 시간을 날아갔고, 그 끝에 발견할 수 있었다.

[이강현, 7위]

터벅터벅 마주 걸어오는 이강현을.

“멈춰라.”

슈우우…….

이강현의 앞에 자니스가 스르르 내려섰다.

“어떻게 사도천을 이겼는지는 모르겠다만, 네 목과 기여도는 내가 거두어주마.”

“……벌써 왔나.”

“뭐? 뭐라고 한 거냐.”

“아무것도 아니다.”

이강현이 손을 절레절레 내젓는다.

그 손짓에 자니스가 발끈했다.

“건방진 놈!”

자니스가 양손을 움직이자.

쿠르릉-

“키오오!”

집채만 한 땅의 정령과 늑대 형상의 불의 정령이 나타났다.

“정말이지……. 스스로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군. 죽어라.”

자니스의 말에 정령들이 이강현에게 쇄도한다.

“하아.”

달려드는 정령들을 보며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노리는 하이에나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으나,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한숨을 쉰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스킬, 광검[Lv.8]을 발동합니다.]

광검을 발동하며, 강현은 땅을 박찼다.

[스킬, 여명의 눈[Lv.2]을 발동합니다.]

반짝-

[Lv. 25 중급 불의 정령]

[Lv. 26 중급 땅의 정령]

골렘을 보는 듯한 땅의 정령의 가슴팍, 늑대 형상을 한 불의 정령의 옆구리가 반짝인다.

정령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약점이 한 군데씩밖에 보이지 않는 걸 보면 핵이라도 되는 거겠지.

뒤편을 보자 정령들 너머, 자니스 라르케치가 거만하면서도 분노가 담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강현은 저 눈빛을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해 냈다.

두 번째 미션에 들어가기 전 이유도 없이 자신을 노려보던 놈이었다.

‘그나마 잘됐군.’

당연하게도, 강현도 자니스가 마음에 들지 않던 참이었다.

어차피 하이에나가 찾아올 거라면 마음에 안 드는 놈을 상대하는 게 더 나았다.

강현은 기록열람실에서 봤었던 자니스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불과 땅의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

10위라는 순위에서 알 수 있듯 결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스킬, 질주[Lv.2]를 발동합니다.]

크아아-

강현이 질주를 발동함과 동시에 숲의 늑대보다 곱절은 큰 늑대, 불의 정령이 달려든다.

25m, 20m, 15m…….

불의 정령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그는 질주하던 속력을 늦추지 않다가.

[스킬, 순보[Lv.3]를 발동합니다.]

순보로 순간적으로 늑대의 옆에 나타나, 그대로 여명의 눈에 비친 옆구리의 약점을 그어버렸다.

키아아…….

하나뿐인 약점을 적중당한 불의 정령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그는 그 기세를 이어 나가 땅의 정령에게 뛰어들었다.

목표는 가슴팍에 위치한 핵.

하나 땅의 정령이 선수를 쳤다.

그어어-

괴성을 지르며 두 손으로 바닥을 엎어버림으로써.

파파파팍-

날카롭게 쪼개진 바닥의 파편이 강현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강현은 태연했다.

몸집이 거대해지면 둔해지게 마련이고, 둔할수록 약점을 볼 수 있는 그에게는 유리했다.

팟-

강현은 순보를 연달아 사용하여 그대로 파편을 피한 뒤.

[스킬, 섬광[Lv.6]을 발동합니다.]

땅의 정령이 미처 가슴팍을 막기 전, 핵을 꿰뚫어버렸다.

그어어-

땅의 정령이 그 자리에서 엎어진다.

쿠우웅-

강현이 전방의 자니스를 주시하자, 놈은 어느새 멀찍이 물러나 무어라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벌레 주제에 제법이구나……. 어디 이번에도 버티나 보겠다!”

쿠르르릉-

[Lv. 27 중급 불의 정령]

[Lv. 27 중급 불의 정령]

[Lv. 27 중급 불의 정령]

…….

방금의 싸움을 보고 땅의 정령은 별로라고 판단을 내렸는지, 불의 정령들만이 잔뜩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와 다른 샐러맨더 형상을 하고 있는 데다가, 그 숫자가 이십여 마리에 달했다.

크르르-

샐러맨더들이 강현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그 수가 워낙 많아, 얼핏 보면 자칫 자니스가 전력을 다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강현은 똑똑히 기억했다.

놈이 소환할 수 있는 정령은 비단 중급 정령들만이 아니다.

미니 게임을 돌려보면서, 자니스가 그 이상의 정령을 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눈앞의 샐러맨더 무리보다 훨씬 위협적인 정령들이었다.

즉, 말로는 거만해 보이면서도, 놈은 아직도 수를 아끼고 있었다.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지.’

강현의 시선이 샐러맨더 무리를 넘어 자니스에게로 향했다.

말투나 몸짓은 거만하기 짝없어 보이나,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고 있다.

한참 전에 자신에게서 안전거리를 확보했을뿐더러, 눈으로는 냉정하게 자신을 훑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철저하게 재고 있는 거다.

물론 자니스가 머리를 굴리는 것처럼 강현에게도 계획은 있었다.

그가 봤던 자니스는 최고의 정령들을 소환하는 데에 꽤나 시간이 걸렸었다.

그러니 그가 결정적 한 방을 날려야 할 때는 바로…….

그때였다.

크르릉-!

커헝!

간을 보던 새빨간 샐러맨더들이 사방에서 달려든다.

파팟-

강현은 순보를 사용하여 허공으로 피했다.

그러자.

화르르륵-

샐러맨더들의 아가리가 일제히 하늘을 향하더니 불꽃을 쏘아낸다.

사방에서 내쏘아진 불꽃.

[스킬, 휘광[Lv.2]을 발동합니다.]

강현은 휘광을 둥글게 펼쳐냈다.

슈와아아-

덮쳐드는 불꽃을, 환한 빛으로 이루어진 둥근 보호막이 막아나갔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긴 했어도, 불꽃들은 휘광을 뚫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크르르…….

화염 발사가 무위로 돌아가자 샐러맨더들은 다시 포위망을 짜려는 건지, 조심스레 접근해 온다.

하지만, 강현은 같은 공격을 두 번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간다.”

쾅!

그 말을 끝으로 허공을 박차, 샐러맨더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 * *

파팟-

서걱-

이강현이 샐러맨더들 사이를 헤집는다.

샐러맨더의 모습을 한 불의 정령들이 계속해서 나가떨어졌다.

“이런 죽일 놈이!”

자니스는 그런 이강현을 보며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처음 놈이 샐러맨더들에게 뛰어든 걸 봤을 땐 싸움이 끝났다고 여겼다.

제 발로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야말로 최악의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심 놈이 정령들을 내버려 두고 곧장 자신에게 올 수도 있다는 걸 대비하던 자니스로서는.

‘내가 놈을 너무 높게 본 건가?’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강현은 무모해 보였던 행동의 결과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서걱-

푹!

보이는 것도 아닐진대, 오직 불의 정령의 핵만을 베고 찌르며 순식간에 절반 가까이를 줄인 것이다.

으득-

자니스는 이를 갈았다.

‘저놈이 저렇게나 성장했다고……?’

쉽게 놈을 죽이고 기여도를 빼앗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치열하게 놈과 싸우고 있다니.

이강현을 아래로 봐왔었던 그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희망의 신은 자신에게 웃어주고 있었다.

불의 정령도 절반으로 줄였겠다, 슬슬 자신에게 달려들 법한데도, 저 멍청한 놈은 아직도 정령들과 드잡이질이나 하고 있었으니까.

어찌나 멍청해 보이는지, 누가 보면 마치 공격해 주기를 바라는 걸로 착각할 수도 있어 보였다.

자니스는 이강현의 멍청함에 감사하기로 했다.

“네놈에게 꺼낼 줄은 몰랐다만…….”

영광으로 여겨라, 라는 말을 삼키며 자니스는 대량의 땅의 정령을 불러냈다.

[Lv. 10 하급 땅의 정령]

[Lv. 10 하급 땅의 정령]

[Lv. 10 하급 땅의 정령]

…….

쿠르르릉-

수십 마리에 달하는 땅의 정령들이 땅을 뚫고 올라온다.

그어-

올라온 땅의 정령들은 자니스의 주변을 둘러싸 방벽을 형성했다.

샐러맨더들과 놀고 있는 이강현이 올 것 같지는 않다만, 정령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안전이다.

이 방벽이라면 이강현이 별짓을 다 해도 뚫을 수 없을 터였다.

안심한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태초 정령과 인간이 맺었던 맹약에 의해 그대를 부르노니…….”

쿠오오오-

자니스가 주문을 읊어가자 허공이 찢어지며 강대한 마력의 파장이 퍼져 나온다.

현재 그가 소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정령인, 중상급 정령을 불러내는 것이었다.

지난번 미니 게임에서 그 괴물 같은 남궁강룡을 상대로도 선전한 중상급 정령이니, 이강현 따위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고 예상됐다.

비록 한 번 불러내는 데에 온몸의 모든 마력을 쥐어 짜내야 하기는 했다만, 그는 이강현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꾸드드득-

찢어진 허공에서 거대한 손 형상의 불꽃이 튀어나온다.

그 손은 어깨로, 몸통으로 이어졌다.

“큭!”

자니스는 마력이 급속도로 빨려 들어감을 느꼈으나,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너무 소환에 집중해서일까.

“언제 부르나 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츠츠츠츳-

그가 중상급 정령의 소환을 시작하자마자, 번개처럼 검붉은 검을 뽑아 든 이강현이 검에 피를 먹이고 있었다는 걸.

그 사실을 자니스가 알아차리기도 전, 이강현이 내뱉었다.

“……참룡섬.”

쿠콰콰콰-!

천년 묵은 이무기를 찢었다는 강기의 섬격(纖擊)이 땅의 정령이 만든 방벽을 휩쓸었고.

[참가자 자니스를 쓰러뜨리셨습니다.]

[140pt를 획득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네 번째 승리였다.

동시에.

“우웩!”

강현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나왔다.

* * *

던전의 중앙 부근.

쿠르르릉…….

던전의 정중앙으로 갈수록 어두컴컴해졌음에도, 마력의 파장은 선명하게 전해져 왔다.

“흐음, 또 시작인가……. 기여도.”

1위 이강현(1,140pt)

…….

기여도를 불러낸 방랑기사, 세르반테는 걸쭉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재밌어.”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다른 참가자와의 싸움에서 연전연승을 하고 있다니.

어떤 수련을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부쩍 강해진 게 틀림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찾아가 보고 싶다만…… 어쩔 수 없지.”

세르반테는 아쉬움에 입술을 핥았다.

이강현과 싸우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앞에 있었다.

턱-

던전의 정중앙에 다다른 그는 정면을 주시했다.

스아아-

그로서는 한참을 올려다보아야 하는 거대한 왕좌에, 주먹만 한 구슬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탁한 회색빛의 구슬, 던전의 오브였다.

‘설마 리치의 라이프베슬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키득대던 세르반테가 오브에 다가가려던 순간이었다.

터벅-

들려오는 발소리에, 그는 멈춰 서서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몇 걸음 되지 않아, 이내 잘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수려한 이목구비.

깔끔한 도복.

잘 정돈된 한 자루의 검.

“……하필 와도 자네가 오다니. 이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세르반테의 말에 남궁강룡이 나직이 대답했다.

“피차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소만.”

스르릉-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듯, 남궁강룡이 말없이 검을 뽑아 든다.

“…….”

그런 남궁강룡에게.

팟-

세르반테는 마주 검을 뽑으며 먼저 달려들었다.

“으하하하! 그렇지, 모든 건 검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이 과묵함! 이게 남궁강룡이지!”

세르반테의 격렬한 검과 남궁강룡의 광오한 검이 맞닿았다.

쾅! 콰콰쾅!

푸른 검기가 연이어 얽히며 폭음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쾅! 콰쾅!

그렇게 던전의 중앙에서부터, 또 하나의 마력 파장이 퍼져 나갔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

레벨이 올랐음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걸로 레벨은 35.

기다리던 레벨 업이었지만, 지금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헉…… 허억…… 미친…….”

강현은 턱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였다.

스스로를 볼 수 없었음에도, 온 얼굴이 창백해져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아…… 하아…….”

잠시 뒤에야 그는 숨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창백해진 얼굴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거…… 문제 있다.’

강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참룡섬을 쓰면서 깨달았다.

사도천에게 썼을 때보다, 피를 갈구하는 혈룡검의 게걸스러움이 더욱 증대되었다는 걸.

혈룡검이 빨아들인 피의 양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참룡섬에 필요한 피의 양이 두 배가 되었다는 말이었고, 그게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막 쓰다간 뒈지겠구나.”

네 번째 참룡섬이 될지 다섯 번째 참룡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참룡섬을 난사하다간 조만간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괜히 사도천이 안 쓰던 게 아니었군.’

S급 명검을 얻은 줄 알았더니만, 그 검이 사실은 요사스러운 마검이었다는 걸 알게 된 강현이 얼굴을 구겼다.

“개같은…….”

욕이 절로 튀어나왔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두 번의 참룡섬을 날렸고, 그건 되돌릴 수 없었으니까.

‘두 번째 참룡섬만 해도 이렇게 몸이 후들거리는데…….’

아마 세 번째 참룡섬을 날리는 순간 몇 시간은 정양해야 할 것 같았다.

“아쉽긴 해도…….”

스킬을 쓰다가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때였다.

반짝-

바로 앞, 자니스가 사라진 곳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의 득템인가.’

쓸 만한 아티팩트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강현은 물체를 확인했다.

-각성으로 차원최강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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