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장 준비 (13/51)

5장 준비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숙소로 이동해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졌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음에도 세르반테에게 지고 말았다.

각성을 한 이후 처음 겪은 패배였다.

그래서일까.

한 번도 느끼지 못한 패배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

하나 강현은 빠르게 감정을 털어냈다.

패배에 얽매여 있기보다는, 이 패배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게 나았으니까.

‘보상이나 보자.’

[보상을 정산 중입니다…….]

평소였다면 이미 보상을 확인했을 시간인데, 아직 보상이 지급되지 않았다.

강현은 언제 지급될지 모르는 보상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일단 그의 본능이 시키는 일을 하기로 했다.

‘기록열람실에 가 봐야겠어.’

씩 웃던 세르반테의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폭발에 휘말린 세르반테가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알아야 했다.

“공동훈련장으로 이동한다.”

[참가자 이강현 확인, 공동훈련장으로 이동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고, 강현은 기록열람실로 이동했다.

슈와아-

방금 이벤트 매치가 끝나서인지, 바글거리던 조금 전과는 달리 공동훈련장은 더없이 한산했다.

[제3 기록열람실, 이강현]

강현이 지체 없이 이름을 적고 들어가려던 때였다.

또각, 또각.

저 멀리서, 란 레이센이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새하얀 얼굴이 구겨져 있었다.

강현은 그녀의 목적이 자신과 같음을 직감했다.

‘이벤트 매치를 돌려보러 왔군.’

역시, 2위임에도 조금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다들 치열하게 이 경연에 임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강현은 기록열람실에 들어섰다.

[기록열람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록구에 손을 갖다 댄 뒤, 재생하고자 하는 미션과 시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벤트 매치의 5그룹 결승전, 거기서도 마지막 장면을 보고 싶다.”

지이잉-

기록구에 영상이 떠올랐다.

자신의 검에 세르반테의 어깨에 혈선이 그어진다.

‘여기까지는 예측한 대로였는데.’

딱 한 번의 기세만 잡고 그 기세를 놓치지 않는다면 세르반테가 초승달 검기를 날려 흐름을 돌릴 거라 예측했고, 해서 죽을힘을 다해 몰아붙였다.

쿠오오-

세르반테가 초승달 검기가 아닌, 그보다 더한 검기의 소용돌이를 뿜어낼 줄은 몰랐지만.

쿠콰콰콰-

세르반테의 검에 푸른 소용돌이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다시 봐도 아찔한 광경이었다.

‘나도 미친 짓을 하기는 했다만.’

세르반테가 꺼낸 큰 기술이 완성되기 직전, 보호막 두 개를 두른 자신이 뛰어든다.

콰콰콰쾅-!

엄청난 굉음이 일었고, 자신의 몸이 투명해지며 소환되기 시작한다.

‘여기부터다.’

강현은 세르반테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 정도 폭발에서 살아남았을 정도면, 뭔가 비장의 한 수를 꺼냈을 거라 짐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뭐야.”

세르반테의 행동을 본 강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미친…….”

온몸에 푸른 기운을 잔뜩 끌어올렸을 뿐, 세르반테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워낙 큰 폭발이었기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 같긴 했어도, 몸을 움직이는 데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으하하하! 재밌군!

강현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웃어 보이는 세르반테를 끝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

설마 했는데 그냥 몸으로 때웠을 줄이야.

상상도 못 한 대처였다.

강현은 자신이 저런 폭발로부터 버티려면 체력 능력치가 얼마나 돼야 할지 계산해 보았다.

‘레벨 50은 돼야겠는데.’

그것도 목숨만 부지한다는 가정하에 50이고, 세르반테처럼 호탕하게 웃기까지 하려면 70은 돼야 할 듯했다.

‘저게 6위라니.’

한 방 먹였다고 좋아할 게 아니었다.

역시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세르반테와의 대련으로 가능성은 확인했다.

스킬의 개수, 레벨과 능력치에서는 차이가 났어도, 전투에 대한 감각이나 판단은 비슷하거나 일부 자신이 더 위인 부분이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살리려면…….

‘레벨을 올려야 돼.’

현재 강현에게 필요한 건 단연코 레벨 업.

각성을 하고 더 비욘드에 참가한 후로 항상 레벨 업의 필요성은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미션을 이틀, 아니, 하루하고 절반 남긴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다.

“문제는 방법이 없다는 건데.”

그런데 그때였다.

[순위에 따른 보상의 정산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지금 수령하시겠습니까? (Yes/No)]

때마침 떠오르는 메시지에 강현은 Yes를 눌렀다.

[보상으로 에테르 결정체(극소)와 하급 수련의 방이 지급됩니다.]

툭-

허공에서 조그마한 보석과 직사각형의 작은 목갑 하나가 튀어나온다.

강현은 먼저 손에 들어온 보석을 들여다보았다.

튜토리얼에서 봤던, 손톱만 한 에테르 결정체와 똑같이 생기긴 했으나, 그 크기가 더 작았다.

[에테르 결정체(극소)]

-극소량의 에테르가 응집된 결정체입니다. ‘격’을 상승시키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에테르를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118/150)]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니 소환단처럼 섭취하면 될 듯했다.

‘이건 넣어두고.’

꼭 지금 할 필요는 없었다.

강현은 일단 보상을 다 확인하기로 했다.

백아영에게 받은 아공간 주머니에 에테르 결정체를 넣어둔 그는 주먹만 한 목갑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련의 방이라…….’

이 목갑이 왜 수련의 방이지?

고개를 갸웃한 강현은 목갑의 상세 설명을 불러내 읽어보았고.

[하급 수련의 방]

-시간 배율이 현실의 1/10인 수련의 방입니다. 내구도가 다하면 파괴됩니다.

현재 내구도 : 50/50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설명인데.

* * *

그 뒤, 강현은 곧장 드루이드의 숲으로 향했다.

루드스라면 수련의 방에 대해 더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물어볼 것도 있었고.

“루드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강현은 루드스에게 사도천이 수수께끼의 검을 탐냈던 일과 하급 수련의 방을 보상으로 받게 되었다는 걸 말해주었다.

“수련의 방부터 말하자면…… 꽤 귀한 아티팩트를 보상으로 받았군요.”

목갑을 자세히 살펴본 루드스가 말했다.

“알고 있는 아티팩트입니까?”

“물론입니다. 수련의 방은 어느 차원에서든 인기 있는 아티팩트이지요. 이게 보상에 포함되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긴 하나……. 남은 시간 동안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되어줄 겁니다.”

루드스가 목갑을 열자, 새하얀 빛이 뿜어졌다.

슈우우-

뿜어진 빛은 이내 프로젝터처럼 한곳에 모여 문의 형상을 갖추어 나갔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됩니다. 시간이 현실의 1/10이라고 했으니, 현실에서의 하루가 저 내부에서의 10일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내구도가 얼마나 빠르게 줄어들지는 모르겠으나, 미션이 시작하기까지는 문제없을 겁니다.”

10배.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극적인 배율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강현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이게 어디야.’

남은 건 이틀, 아니, 하루하고도 절반.

대략 36시간이니, 하급 수련의 방을 통해 360시간, 즉 15일을 번 셈이었다.

그가 각성하고 지금까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걸로 볼 때 상당한 기간이 주어진 것이었다.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괴수까지 넣어줬다면 더 좋았겠다만, 그건 지나친 욕심이었다.

마침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자가 눈앞에 있기도 했다.

“루드스, 부탁이 있습니다.”

“수련에 필요한 피조물을 만들어달라는 거군요.”

“예. 가능합니까?”

그런데, 루드스가 곤란한 기색을 보이는 게 아닌가.

“아시겠지만, 제 [종족 특성]은 숲의 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련의 방 내부는 숲이 아니지요.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숲의 힘은 매우 적습니다.”

“……!”

예상치 못한 난관에 강현이 굳은 순간이었다.

루드스가 손을 휘젓자.

“숲이었다면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피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겠지만…….”

땅의 흙, 수풀 따위가 뭉친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난다.

[Lv.18 숲의 늑대]

“힘을 약간 더 불어넣긴 했지만, 저 내부에서 제가 부를 수 있는 건 이 녀석뿐입니다.”

숲의 늑대를 본 강현이 얼굴을 구겼다.

‘또 이놈이냐.’

첫 번째 미션을 하기 전에도 숲의 늑대로 노가다를 했던 그였다.

한데 이번에도 숲의 늑대와 어우러져야 한다니.

게다가 첫 번째 미션을 준비할 때는 레벨이 낮기라도 했지, 현재 그의 레벨은 25.

레벨을 올리기 위한 경험치의 양은 훨씬 많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오기는 했어도 별수 없었다.

그나마 늑대의 레벨이 15레벨에서 18레벨이 된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 듯했다.

‘그럭저럭 레벨이 오르기는 하겠네.’

숲의 늑대조차 공급받을 수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스윽-

강현의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루드스가 품에서 웬 나뭇가지를 꺼냈다.

“이 나뭇가지에 숲의 힘을 담아드릴 테니, 제 도움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숲의 늑대 정도는 생성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예…….”

흐뭇하게 말해오는 루드스에게, 강현은 떨떠름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사도천이 그 검을 탐냈다고 했던가요?”

루드스의 시선이 강현의 허리춤에 매어진 검을 향했다.

“예, 자기가 갖고 있는 검과 바꾸자고 하던데요.”

“음……. 딱히 밝혀진 정보가 없어도 그 검은 무려 천마대전의 유물. 어쩌면 그는 저와 당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루드스가 단호한 얼굴을 해 보였다.

“하나 그의 성향은 악하기 그지없으니, 당신의 검에는 그가 좋아할 만한 악한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악한 거라면, 악마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강현은 반쯤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루드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요. 만약 당신이 본선으로 진출하게 된다면, 이 하위 차원과 <초월계>의 중간차원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다른 예선의 진출자들과 본선을 진행하겠죠.”

“……!”

처음 듣는 말에 강현이 눈을 크게 떴다.

“저희는 그곳을 %$라고 부르는…… 이런, 스포일러군요.”

“스포일러?”

“불필요한 정보를 방송국에서 통제하는 겁니다. 예선에는 예선 수준의 정보만 말하라는 거지요.”

“그런 게 있었다니…….”

충분히 있을 법했으나,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현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 루드스가 말을 계속했다.

“아무튼,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면 그 검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이 좁은 스튜디오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저도 가 본 적은 없기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본선에 진출해야 수수께끼의 검에 대해 알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본선이라.’

본선에 진출하려면 일곱 명 안에 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강해져야 한다.

‘다시는 지고 싶지 않아.’

강현은 방금 겪었던 세르반테와의 대련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졌다.

그의 각오를 느꼈는지, 루드스가 희미하게 웃으며 나뭇가지를 건넸다.

“이 나뭇가지에 에테르를 불어넣으면 늑대가 나타날 겁니다. 남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죠.”

루드스와 인사를 주고받은 강현은 목갑이 생성한 문으로 들어섰다.

스르르-

강현이 목갑이 만든 문으로 들어서자 목갑은 어느새 그의 손에 쥐어진 상태였다.

‘다시 목갑을 열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구나.’

나가는 방법을 알게 된 강현은 정면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공간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서 15일을 보내야 한단 말이지.’

강현은 나뭇가지에 에테르, 그러니까 마력을 불어넣었다.

스아아-

허공에서부터 늑대의 형상이 차츰 생겨 나간다.

다행히 하나가 아니라, 여러 마리였다.

늑대가 만들어지는 걸 주시하며 강현은 상태창을 불러냈다.

이름 : 이강현

레벨 : 25

고유 특성 : <광검제>

보유 스킬 : 광검[Lv.6], 섬광[Lv.4], 순보[Lv.2], 질주[Lv.1], 참격[Lv.2], 여명의 눈[Lv.2], 휘광[Lv.1]

능력치 : 근력[Lv.10], 민첩[Lv.20], 체력[Lv.16], 마력[Lv.12]

“25라.”

비록 숲의 늑대가 경험치를 많이 주지 않는다고 해도, 얼마나 성장할지는 전적으로 그의 노력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강현은, 오직 사냥에만 매진할 생각이었다.

[Lv.18 숲의 늑대]

[Lv.18 숲의 늑대]

[Lv.18 숲의 늑대]

…….

“크아아-”

어느새 완성된 늑대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스킬, 광검[Lv.6]을 발동합니다.]

강현 또한 마주 달려들었다.

지독한 노가다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강현이 노가다를 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이틀이 흘러가, 두 번째 미션 당일이 되었다.

* * *

드루이드의 숲, 어느 공터.

“…….”

장대한 기골의 사내가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찌르르…….

그런 사내의 이마에 솟은 두 뿔에, 참새가 쓰러지듯 착지한다.

루드스는 참새가 날개를 다쳤다는 걸 확인하고는 손을 휘저었다.

슈우우-

푸른 기운이 참새의 날개에 스며든다.

“짹짹짹-”

잠시 후 기운을 차린 참새는 활기차게 지저귀며 루드스의 곁을 떠났다.

힘차게 날아가는 참새를 보며 루드스가 중얼거렸다.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두 번째 미션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곧 참가자들의 소환이 시작될 터였다.

류트에게는 이미 격려를 마쳤으니, 이강현의 차례였다.

“하급 수련의 방이라…….”

이틀 전 목갑을 열고 들어간 뒤, 이강현은 두어 번 나뭇가지의 재충전을 위해 나온 것 외에는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여태까지 나뭇가지에서 생성되는 숲의 늑대와의 싸움만 반복한 것이다.

루드스는 이강현의 독기에 새삼 감탄했다.

‘한 번쯤 휴식을 하기 위해 나올 법도 한데.’

시간을 느리게 흘러가게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효과 때문에 굉장히 인기가 많은 수련의 방이었지만, 온전히 사용하는 사용자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강현이 그 온전히 사용하는 사용자 중 하나라는 걸 루드스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곧 진행될 두 번째 미션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미션들을 합친 것보다 더한 난이도였다.

루드스는 바로 어제, 두 번째 미션을 설명하며 기괴하게 웃던 로독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번 미션으로 인간종 예선은 상위권에 도약할 수 있을 거예요! DBC의 모든 프로듀서들이 달라붙어서 고안해 냈거든요!]

로독의 설명을 들은 루드스는 두 번째 미션이 분명 <초월자>들의 디멘션넷에서 충분히 화제가 될 거라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게, 인간종이 아닌 악마종이나 요괴종에서나 나올 법한 내용의 미션이었으니까.

달리 말해, 그 미션에 참가할 참가자들의 고난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툭.

돌연 허공에 목갑이 나타나더니, 새하얀 문을 만들어낸다.

덜컥-

이어서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이강현을 본 순간, 루드스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피로가 누적된 것 같기는 해도…….’

아무리 수련의 방을 사용했다고는 해도 고작 15일이 지났을 뿐인데, 이강현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확연히 달랐다.

이강현이 숲의 늑대의 소환에 사용한 나뭇가지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충전해 준 숲의 힘을 다 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잘 썼습니다.”

루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예?”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드루이드의 힘이 깃든 물건은 그 가치가 높으니까요. 언젠가 쓸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강현이 품에 나뭇가지를 집어넣었다.

동시에.

스르르-

그를 스튜디오로 이동시켜줄 ‘문’이 나타났다.

“갈 때가 되었군요.”

“그런 것 같네요.”

담담하게 대답하는 이강현에게 루드스가 물었다.

“수련은 잘 되었습니까?”

루드스의 말에, 이강현이 씩 웃었다.

“물론이죠.”

[참가자 이강현 확인, 스튜디오로 이동합니다.]

* * *

슈슈슉-

참가자들이 빠르게 스튜디오로 나타난다.

생존과 탈락이 결정될 두 번째 미션을 코앞에 두어서일까.

“…….”

긴장감으로 공기가 무거웠다.

다만.

“하아, 진짜 뒈지는 줄 알았네.”

15일 동안 갇혀 있다시피 하다가 바깥으로 나온 강현에게는 예외였다.

루드스 앞에서 의연한 척을 하기는 했으나, 수련의 방에서 보낸 15일은 지옥과도 같았다.

말이 15일이지, 체감상으로는 150일은 된 듯했다.

잠을 줄여가며 숲의 늑대를 사냥하겠다는 다짐을 하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숲의 늑대와 싸우는 것밖에 없다는 게 그렇게 힘들 줄이야.’

리얼에서 했던 수많은 노가다와는 느낌이 또 달랐다.

그야말로 지루함과 따분함으로 가득 채워진 인고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하나 그런 시간들을 보냈음에도, 강현의 얼굴은 좋았다.

‘그래도…….’

15일이 그의 생각보다 훨씬 길었던 만큼, 예상했던 것 이상의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름 : 이강현

레벨 : 33

고유 특성 : <광검제>

보유 스킬 : 광검[Lv.8], 섬광[Lv.6]…….

비록 50이었던 수련의 방의 내구도가 3밖에 남지 않기는 했어도, 레벨을 무려 8이나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으하하하! 여기 있었군!”

뒤를 돌아보자.

[세르반테, 6위]

세르반테가 부리나케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보고 지난 대련을 떠올린 강현은 얼굴을 살짝 구겼다.

세르반테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 게 아니라, 지난 대련에서의 패배감이 되살아나서였다.

타이밍이 절묘하여 자칫 자신을 보고 얼굴을 구기는 걸로 오해할 법도 했건만, 세르반테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숙소는 물론이고 온 공동훈련장을 뒤져도 안 보이던데, 그동안 어딜 갔던 건가?”

“수련하느라 잠깐…….”

지난 대련 이후로 격식을 완전히 벗어던진 건지, 세르반테가 호쾌하게 웃으며 강현의 어깨를 팡팡 두드려댔다.

“함께 복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네! 그렇지 않은가? 하하하!”

그러더니, 강현의 귀에 빠르게 속삭인다.

“……사도천이 자네에게 다가가고 있더군. 놈과 독대하고 싶지 않다면 나와 잠시 어울리는 게 좋을걸세. 물론 사도천만 자네를 주시하는 건 아니네만.”

“……!”

세르반테의 말에 강현은 눈알을 굴려 주위를 둘러보았고, 볼 수 있었다.

“……칫!”

[사도천, 5위]

음침한 기운을 내뿜으며 멀어지는 사도천을. 그리고…….

[란 레이센, 2위]

홱-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빠르게 돌리는 란 레이센을.

“으하하! 자네가 궁금한 건 저자들도 매한가지인 듯하다만, 직접 나설 용기를 갖춘 건 이 몸밖에 없는 것 같군!”

“아, 예.”

강현이 얼떨떨하게 답했다.

웬 오지랖인가 싶기는 했어도, 사도천을 막아준 것에는 고마움이 일었다.

당연히 같은 경쟁자인 만큼 세르반테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사도천보다는 믿음직했다.

사도천의 제안을 거절하면 그의 원한을 사게 될 거라는 세르반테의 말을 들어서인지, 사도천을 마주하기 껄끄럽기도 했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뒤통수가 따가워진다.

“……?”

강현이 고개를 돌리자, 참가자 하나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자니스 라르케치, 10위]

‘저놈은 또 뭐야?’

적의가 담긴 눈빛을 보면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듯했는데, 정작 강현은 그와 말 한 번 섞어본 적 없었으니 황당하기만 했다.

“흠, 자네는 미션 전마다 매번 어디 틀어박혀 수련만 한 걸로 아는데 신기하게도 적이 많구만. 역시 자네는 재밌어!”

세르반테는 껄껄 웃어댔지만 말이다.

자신의 뭐가 그렇게 싫길래 노려보는 건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슈슈슈슉-

[참가자 여러분! 오랜만에 뵙습니다! DBC의 프로듀서, 로독입니다-!]

마이크를 꼬나쥔 돼지머리, 로독이 공간을 가르며 튀어나왔으니까.

[거두절미하고 지금부터, 두 번째 미션의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

로독의 등장에 참가자들이 자세를 바로 하고 시선을 중앙에 집중한다.

쏠리는 관심에 기분이 좋아지기라도 했는지, 로독이 활짝 웃었다.

[하핫! 미션의 기본적인 틀에 관해서는 지난번의 미니 게임과 비슷합니다! 참가자분들은 리치의 던전에 떨어질 것이며, 중앙의 오브나 괴수, 함정을 통해 기여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참, 오브가 대폭 강화된다는 건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여기에 더해, 몇 가지 추가사항이 있어 그것에 대해 알려드리려 합니다!]

딱-

로독이 손가락을 튕겼다.

광활하다고 해도 모자란 던전의 지도가 나타났다.

[첫 번째 미션과 같이 시청자분들과 실시간으로 소통을 할 수 있게 될 건 아시겠고……. 아! 아무래도 마법계를 주무르던 리치의 던전이었다 보니 전체적인 너비가 매우 넓습니다! 미니 게임을 치렀던 원형경기장보다 수십 배가량 넓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곳곳에 저희가 마련한 아티팩트들이 숨겨져 있으니, 한번 찾아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그러자 몇몇 참가자들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대충 너무 넓은 게 아니냐는 불만이었다.

그걸 놓치지 않은 로독이 과장되게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취했다.

[하하, 크기가 저렇게 넓은데 아티팩트로는 심심할 것 같다구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지이잉-

지도가 확대되며 던전의 동서남북에 위치한 괴수들을 비추었다.

거대한 구렁이와 해골 기사, 오우거, 골렘이었는데, 모두 몸이 석상처럼 굳어 있는 상태였다.

[동, 서, 남, 북에 하나씩! 던전의 수호자들을 배치했답니다! 미션이 시작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깨어날 예정이며, 이들을 물리친다면 뛰어난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게 쉽지만은 않겠지만요!]

‘변수를 일으키려고 작정을 했군.’

강현은 DBC에서 배치해 두었다는 아티팩트들과 저 괴수들이 투입된 의미를 간파했다.

뜻대로 흘러가는 미션보다는, 보다 자극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미션을 추구하겠다는 거겠지.

그의 예상을 뒷받침하듯, 로독의 말이 이어졌다.

[또한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큰 부상을 입으셨을 때는 주저하지 말고 ‘기권’이라고 외치세요! 그 즉시 소환이 이루어질 겁니다. 다만 기권하신다면 더 이상 미션에 참여할 수 없을 테니, 판단은 스스로 내리셔야겠죠?]

저 말이, 강현에게는 ‘유사시에는 기권할 수도 있으니 실컷 싸워주길 바랍니다’라고 들렸다.

[주어진 시간은 30일이며, 최후의 1인이 남거나 30일이 모두 지나면 미션이 종료됩니다!]

[미션이 종료된 후에는 기여도와 투표, 트레이너들의 평가를 합산하여 순위를 매기가 될 것이며, 생존자는…….]

[정확히 14명! 14위까지입니다! 안타깝게도 15위부터는 탈락하게 되겠습니다!]

“---!”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숫자가 탈락한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몇몇 참가자들이 웅성거린다.

그러나 그건 일부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차분함을 유지했다.

당장 바로 옆의 세르반테만 해도 미동도 없었다.

강현도 마찬가지였다.

도리어 그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참가자와 괴수라는, 레벨을 올릴 수단도 충분한 데다가 30일이라는 긴 시간까지 주어졌다.

성장을 거듭하여 상위권을 노리기에 최적의 조건이 조성된 셈이다.

그리고 그는, 이 최적의 조건을 결코 헛되이 보낼 마음이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더 비욘드의 인간종 예선, 그 두 번째 미션을 시작하겠습니다아-!]

슈와아아-

환한 빛이 참가자들을 감싸 갔다.

[참가자 이강현 확인, 고대 리치의 던전으로 이동합니다.]

스튜디오를 가득 뒤덮은 빛을 보며 강현은 각오를 다졌다.

‘40 찍고, 최소 3위를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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