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에테르
휙.
박상철은 공격이 막히자마자 물러났다.
물러난 그의 얼굴에는 강한 불신이 서려 있었다.
“다, 당신……!”
못 볼 거라도 본 표정이다.
옆을 힐끗 보자 백아영도 손으로 벌어진 입을 막고 있다.
그들로서는 충분히 그럴 만했다.
[스킬, 광검[Lv.5]를 발동합니다.]
강현이 생각하기에도, 방금 자신이 보인 ‘흘리기’는 훌륭했으니까.
타이밍, 각도, 힘의 세기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했다.
“어, 어떻게 흘리기를!”
박상철이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모를 소리를 낸다.
강현은 짤막하게 대답해 주었다.
“왕년에 자주 쓰던 기술이라.”
“……!”
박상철의 표정이 한층 더 괴상해진다.
아마 이번 공격으로 이 대련에서의 기세를 잡으려고 세게 나온 것 같은데, 그게 먹히지 않았으니 충격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건 박상철의 사정이고, 강현은 이 대련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객관적인 실력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이번 공격을 막으면서 얼추 감이 잡혔다.
‘대충 30쯤 되겠네.’
강현은 박상철의 레벨을 30 전후로 가늠했다.
레벨은 20이나, 가호 덕에 4가 뻥튀기된 자신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레벨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박상철이 우위에 있기야 하겠다만,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능력치가 유의미하게 차이나지 않는 이상, 비교할 건 전투 센스뿐.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그에게는 리얼에서의 수많은 PVP 경험이 있었다.
아무리 오래전 일이라고 해도, 그 경험들은 그의 본능에 새겨져 절대 퇴색되지 않는다.
박상철이 화를 내는 이유는 대강 파악했다.
실력도 없으면서 과거의 영광에 취해 헛물이 들었다고 여기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 생각을 바꿔주면 되는 일이다.
강현은 박상철을 향해 나아갔다.
“어딜!”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현을 보고 박상철도 정신을 차렸는지 마주 주먹을 내질러왔다.
쾅!
강현의 검과 박상철의 주먹이 맞부딪치며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주르륵-
살짝 밀려난 건 강현이었다.
이번에는 흘리기를 사용하지 않고 정면에서 부딪쳤던 탓이었다.
그런 강현을, 박상철은 가만 놔두지 않았다.
파팟-
바로 따라붙으며 연달아 주먹을 찔러온다.
하나.
휙-
강현은 살짝 밀려난 반동에 몸을 맡겼다.
몸을 아예 뒤로 빼면서 거리를 벌린 것이다.
순식간에 멀어진 거리에 박상철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크윽!”
강현이 그 뒤로도 계속 거리를 내주지 않자, 박상철은 열이 받은 얼굴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콰쾅!
쾅!
강현이 검의 리치를 이용해 한 대씩 공격을 적중시키면서 슬그머니 전세가 바뀌어 갔다.
무서운 기세로 파고드는 박상철과 그저 거리를 벌리는 데에 급급한 이강현에서.
벌린 거리를 이용하여 일방적인 공격을 하려는 이강현과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려는 박상철로.
즉, 공수가 뒤바뀌었다.
위기감을 느낀 박상철은 끈질기게 붙으려 했다.
거리를 좁히려는 자와 거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자.
이강현과 박상철의 손발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채챙- 챙-!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뒤바뀐 형세는 조금씩 기울어졌다.
정확히는, 다급해진 박상철에게서 미세한 실수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큰 실수는 결코 아니었다.
그저 거리계산을 잘못하여 반 발짝 더 나갔다거나, 잠깐 몸이 열린 정도.
그러나 이강현은 그 실수들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공세를 전환했다.
단단한 지공에서,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속공으로.
쾅! 콰콰쾅!
“큭!”
[고유 특성]으로 강화된 박상철의 팔에 하나둘 금이 생겨나더니.
[스킬, 섬광[Lv.4]을 발동합니다.]
콰앙!
“크아악!”
[경화]한 부위들을 흩뿌리며 박상철이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상당한 타격을 받았는지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
백아영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가히 충격적인 결과였다.
‘버틴 것도 아니고 이겨 버리다니…….’
극 초반에는 박상철이 우세한 듯했으나, 그건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이강현은 어렵지 않게 박상철의 공격을 받아가며 자연스럽게 흐름을 잡아나갔다.
거기에, 승기가 기울자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하기까지.
A급 헌터인 그녀도 단번에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수준이 높은 전투였다.
‘도대체 이 남자는…….’
백아영이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았음에도.
“이 정도면 됐습니까?”
이강현은 당연하다는 듯 말할 뿐이었다.
“……네에.”
그 말에 백아영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말할 것 없는, 이강현의 완승이었다.
* * *
대련이 끝나고, 강현은 근처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처리할 일이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백아영의 부탁 때문이었다.
창밖으로 헌터관리국의 인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도철이 녀석도 저기 어디 있을 수도 있겠네.’
비록 관리국이 크고 인원도 많다지만, 대격변이 일어난 지 오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밖에 있든 안에서 일하든, 도철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터였다.
‘추가 조건으로 재택근무에 선택권을 달아둔 게 신의 한 수였어.’
그러지 않았다면 그도 매일 출근하여 업무에 시달렸을 수도 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휴식을 즐겼다.
잠시 후, 백아영이 머리를 정돈하며 자리에 앉았다.
“상철 씨는 의료진이 데려갔어요. 큰 상처를 입진 않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니까요. 깔끔하게 패배도 인정했고요.”
“그렇군요.”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허무할 정도로 쉽게 패배했으니, 그로서는 인정 안 할 수가 없을 거다.
‘이제 게이트 솔로 클리어만 진행하면 되나.’
그가 앞으로의 일정을 되새기던 그때.
“추가 테스트는 필요 없어 보이는데, 원하시는 조건으로 계약 진행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느닷없이 백아영이 두 번째 테스트를 건너뛰면서까지 계약을 제의해 온다.
“D급 게이트 테스트는 봐도 강현 씨만 힘들고, 의미가 없을 거 같아서요. 저래 봬도 상철 씨가 여유롭게 클리어하는 게 D급 게이트거든요.”
아무래도 박상철과의 대련으로 실력은 입증되고도 남았다고 보는 듯했다.
계약 조건에 무려 임무 선택권이 걸려 있다는 걸 감안했을 때, 명백히 그의 편의를 봐주는 특별대우이기도 했다.
물론, 전날까지 E급 게이트에 들락거렸으면서 박상철을 이겨버린 루키에게는 응당 해줄 만한 대우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니요. 하겠습니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네?”
설마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눈을 깜빡이며 되묻는 백아영에게 강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D급 게이트 솔로 클리어, 꼭 하고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게.
‘게이트 하나를 혼자 쓸 수 있는 기회를 날릴 수는 없어.’
안에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게이트 하나를 독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지난번 E급을 털던 ‘가늘고 길게’ 팀의 평균 레벨이 15였다.
강현의 레벨은 20.
D급 게이트면 아직 그의 레벨에서 괜찮은 사냥터였다.
최소 2~3레벨, 어쩌면 그 이상의 성장을 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다음 소환까지 남은 시간 : 4일 23시간 11분]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만한 사냥터를 독점할 수 있다면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저야 계약만 해주시면 상관없긴 한데…….”
“예, 진행해 주십시오. 최대한 빨리. 계약도 그때 하도록 하죠.”
“게이트가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노력은 해볼게요.”
그렇게 강현은 백아영이 얼떨떨하게나마 하는 확답을 듣고서야 집으로 돌아왔고.
그날 저녁 즈음, 그녀로부터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내일 오후 2시에 시간 되세요? 테스트…… 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약속한 D급 게이트, 확보했어요. 위치는 첨부해 드릴 거고, 제가 단독으로 참관할 예정이에요.
-참고로 임시긴 해도 자격증 발급도 끝났으니까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덧붙여진 문자를 본 순간, 강현은 생각했다.
‘어딜 갔어도 이렇게 빨리 자격증을 얻지는 못했겠지.’
역시, 관리국에서 테스트를 본다는 이번 결정은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 * *
다음 날, 강현은 백아영이 보내준 위치로 이동했다.
경기 남부의 산지였는데.
<통제구역>
들어가는 길을 관리국의 요원들이 엄중히 관리하고 있었다.
강현은 이름을 대고 들어갈 수 있었으나, 허가 없이 들어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딱 맞춰 왔네요.”
도착하자, 미리 와 있던 백아영이 자격증을 건넸다.
“지부장님한테 부탁해서 받아왔어요. 게이트에 들어가는 데에 지장은 없지만, 두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관리국에서 교육을 받아야 해요.”
“괜찮군요.”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 동안 아카데미에 갈 게 두 달씩 일주일에 한 번으로 대체되었다.
현역으로 군대 갈 걸 민방위로 가는 느낌이랄까.
“그럼 가 볼까요?”
백아영이 앞서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진입할 게이트에 대해 브리핑할게요. 아시다시피 D급 게이트고, 리자드맨들이 나와요. D급이니만큼 보스도 존재하구요.”
보스.
D급 이상 게이트부터는 한 마리씩, 다른 괴수들보다 훨씬 강한 괴수가 꼭 나타난다.
가령 고블린이 나오는 게이트에서는 홉 고블린이 나오는 식이다.
그리고 세간에서는 그런 괴수를 보스라고 부른다.
“다 왔네요. 여기예요.”
백아영이 멈춰 선 곳은 경호를 위해 서 있는 요원 말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숲이었다.
두 그루의 거대한 고목 사이, 갈라진 틈이 엿보였다.
철컥-
강현은 수수께끼의 검과 깃털 갑옷을 갖추어 입고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바로 들어가면 됩니까?”
“그야 당연하…… 맞다, 알려드릴 게 있어요.”
백아영이 수락하려다가 멈칫한다.
“……?”
“그저께부터 발생한 게이트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괴수들의 이상행동이 감지된다고 해요.”
“이상행동? 어떤……?”
“땅을 파거나 게이트 내부를 정신없이 돌아다닌다더군요. 그중 일부는 게이트 내부로 진입한 헌터들을 과도할 정도로 미친 듯이 공격한다는데, 위험성이 대폭 증가했다네요. 이강현 씨는 A급 헌터인 제가 함께할 거라 큰 문제는 없을 테지만요.”
“알겠습니다.”
백아영의 말에 강현은 신중하게 답하고는 게이트로 진입했다.
[다음 소환까지 남은 시간 : 3일 20시간 58분]
더 비욘드로 돌아가기까지 3일하고도 20시간이 남은 시점이었다.
* * *
게이트로 진입하자, 군데군데 굴곡진 평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전 빠져 있다가 강현 씨가 위험할 때만 나설게요.”
백아영은 참관에 의의를 두려는 건지 뒤에 멀찍이 서 있었다.
그녀의 실력이 궁금하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봐도 되는 일이다.
‘오히려 좋아.’
지금은 게이트의 괴수들을 독식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근데…… 너무 넓은데? 괴수 찾으려면 한세월 걸리는 거 아냐?’
예상보다 훨씬 넓은 지형에 잠시 당황한 강현이었지만.
“크아아!”
다행히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시퍼런 꼬리를 넘실거리고 손에는 창을 든 리자드맨이 급습을 해왔으니까.
“크와아-!”
지난번 숲의 늑대가 두 발로 선 것 같은 크기의 리자드맨이, 당장에라도 그를 찢어 죽일 듯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눈을 까뒤집으면서 달려드는 것이, 얼핏 봐도 정상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진짜 이상행동이 맞나 본데.’
백아영의 경고를 떠올린 강현은 즉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스킬, 광검[Lv.5]를 발동합니다.]
[스킬, 여명의 눈[Lv.1]을 발동합니다.]
수수께끼의 검에 새하얀 빛이 깃들고, 리자드맨의 약점이 황금색으로 빛난다.
‘머리, 목, 가슴……. 다 보편적인 약점들이네.’
딱히 특별한 약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어도, 급소의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킬, 참격[Lv.1]을 발동합니다.]
강현은 지난 미션의 말미에 습득한 참격을 시전했다.
최대 세 개체에게까지 공격할 수 있지만, 그걸 한 개체에게 집중시킬 수도 있다.
피칭-
그의 검에서 쏘아진 날카로운 백광이 리자드맨의 목과 가슴을 동시에 강타했다.
“크어어…….”
리자드맨이 신음을 내며 쓰러진다.
쿠웅-
급소만을 노린 덕에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깔끔하게 해치울 수 있었다.
“리자드맨을 한 번에……? 말도 안 돼…….”
뒤에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백아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현이 검을 털어내려던 순간이었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에테르를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0/100)]
“어?”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실, 에테르에 대한 의문은 전부터 있었다.
분명 루드스는 에테르를 이렇게 말했었다.
‘약간 다른 점이 있긴 해도’, 에테르는 마력과 내공, 마나와 부르는 명칭만 다른 수준이라고.
루드스가 딱히 강조하거나 부연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기에, 강현도 처음에는 그대로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그간 치러온 미션들이 설명이 되질 않았다.
튜토리얼의 인어들은 왜 에테르에 매몰되어 이지를 상실했을까.
첫 번째 미션의 바위 거인과 바위 정령들은 어째서 에테르를 위해 차원을 파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을까.
이러한 의문들이 강현의 머릿속에 생겨난 것이다.
도대체 마력, 내공, 마나 등과 ‘약간 다른 게’ 뭐길래 인어들과 바위 거인들이 에테르를 그토록 탐했던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만.’
필멸자를 벗어난 <초월자>를 만든다는 더 비욘드는, 그 방대한 스케일에 비해 너무나도 설명이 부실했다.
그간 드루이드의 숲에 처박혀서 성장에만 집중하느라 알아볼 시간이 없던 것도 있었지만, 로독과 시청자, 루드스의 설명이 빈약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 눈앞에 에테르와 관련된 메시지가 나타난 것이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에테르를 취하시겠습니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0/100)]
메시지가 떠오름과 함께, 쓰러진 리자드맨의 시체가 미세하게 반짝인다.
극히 적은 양이기는 했으나, 그간 에테르에서 봐왔던 찬란한 빛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손을 가져감으로써 에테르를 취할 수 있습니다.]
별다른 설명이 떠오르지 않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직접 에테르를 취하면서 알아보라는 것 같았다.
‘나도 이상해지는 거 아니야?’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강현은 빠르게 그 생각을 떨쳐냈다.
더 비욘드가 참가자들에게 해를 끼칠 만한 걸 주지는 않았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냥 설명해 주기나 하지.’
강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리자드맨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스아아아-
리자드맨에게서 반짝이던 에테르가 강현의 몸에 스며든다.
‘이건…….’
뭐랄까.
레벨이 오를 때와 비슷하면서도, 그것과는 약간 달랐다.
활력은 활력인데, 어쩐지 신체에 깃드는 게 아닌 듯한 느낌.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2/100)]
“음…….”
아직은 체감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흡수해 간다면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 터였다.
그때였다.
“방금 뭘 한 거예요?”
어리둥절한 얼굴의 백아영이 다가왔다.
“못 봤습니까?”
“뭘요? 당신이 한 번에 리자드맨을 쓰러뜨리고 허공을 보면서 손을 내민 거?”
“반짝이는 게 보이지 않았습니까?”
“반짝이는 거요? 본 적 없는데요.”
“…….”
백아영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녀의 말을 들은 강현은 깨달았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에테르는 그의 눈에만 보인다는 걸.
‘더 비욘드 참가자한테만 보이나 본데.’
에테르를 취함으로써 어떤 이득을 얻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으나, 나쁠 건 아니라고 생각됐다.
에테르가 보이는 명확한 이유는 몰라도, 예상이 가는 건 있었다.
‘그 메시지가 떠오른 이후부터겠지.’
미션 보상으로 가호를 받았을 때 같이 나타났던 에테르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는 메시지.
그 메시지가 기점일 것 같았다.
‘그럼 혹시 며칠 전부터 발생했다던 이상 현상도 그때부턴가?’
백아영이 말하길, 이상 현상 중 땅을 헤집어대는 괴수들도 있다고 했다.
미션에서 봤던 바위 거인과 똑같은 행동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했죠?”
“네?”
강현의 말에 백아영이 되묻는다.
“괴수들의 이상 현상 말입니다.”
“아, 그저께부터예요. 더 정확히는 그 전날 새벽부터고요.”
대략 사흘 전.
그가 미션을 마치고 귀환한 시간과 거의 일치했다.
‘역시, 이상 현상은 내가 돌아오면서부터 생겼어.’
강현은 잠시 정보를 정리해 나갔다.
그러다 문득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
“괜찮아요?”
코앞까지 다가온 백아영을 볼 수 있었다.
“어디 다친 건…… 아닐 테고. 무슨 일 있어요? 그만 나갈까요?”
강현은 그녀의 얼굴에 깃든 약간의 걱정을 느꼈다.
‘벌써 같은 식구라 이건가.’
슈퍼 루키를 관리하려는 것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그녀가 가진 성격이 애초에 이쪽인 듯했다.
어쩌면 그녀는 도철이 말한 것처럼 냉기 풀풀 흩날리는 완벽주의자는 아닐지도 모른다.
“괜찮습니다. 그건 그렇고, 사체를 담을 아공간 주머니 없습니까?”
“여기 있어요.”
백아영이 고급진 주머니를 건넸다.
철컥-
강현은 사체를 수거하고는 장비를 점검했다.
계속해서 에테르를 흡수하면 어떻게 될지, 괴수들의 이상행동이 더 비욘드와 관련이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돌아가면 알아봐야 할 게 늘었군.’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금 해야 하는 건 정해져 있다.
더 강해지는 것.
“갑시다.”
강현은 앞으로 나아갔다.
* * *
강현이 리자드맨에게 에테르를 흡수하던 바로 그 순간.
“……!”
게이트 핵 근처의 리자드맨은 눈을 떴다.
보통의 리자드맨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다소 투박하기는 해도 철갑까지 갖추어 입은 리자드맨이었다.
이 리자드맨을 바깥의 헌터들이 보았더라면, 필시 ‘리자드맨 킹’이라고 했을 터였다.
그리고 리자드맨 킹은, 지금 매우 분노해 있었다.
“크르르-”
그의 부하들에게서 ‘보물’을 빼앗은 침입자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크르라라-!”
리자드맨 킹이 거칠게 울부짖었고.
푸화악-!
충격파에 전방의 땅이 터져 나갔다.
동시에.
스아아-
터져 나간 땅에서 찬란한 빛이 리자드맨 킹에게로 흡수된다.
쿠드드득-
찬란한 빛이 스며듦과 함께 리자드맨 킹의 크기가 조금씩 커져간다.
이것이 바로 그에게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물질이자, 그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 ‘보물’이었다.
한데 그 ‘보물’이 지금 침입자에게 약탈당하고 있다.
“…….”
리자드맨 킹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가만히 기다린다면 언젠가 침입자가 이곳으로 온다는 걸.
하나 리자드맨 킹은 그때까지 잠자코 기다릴 마음이 없었다.
침입자에게 ‘보물’을 실컷 약탈당해서 좋을 게 없었다.
쿠웅- 쿵-
생각을 마친 리자드맨 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욱 찢어진 샛노란 동공이 번뜩였다.
* * *
그 이후, 강현의 행보는 순조로웠다.
바로 게이트의 핵으로 진입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외곽부터 싹 돌기로 했다.
처음에 게이트가 지나치게 넓은 것에 대해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그가 외곽에 있든 중앙에 있든 리자드맨들이 알아서 나타나 준 덕분이었다.
‘기왕이면 한 바퀴 꼼꼼하게 도는 게 낫지.’
달려드는 리자드맨들은 보통 한 마리였으나, 때로는 두세 마리까지도 등장했다.
공통점은, 모두 강현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는 것.
한 마리는 애초에 문제가 없었고, 20레벨을 달성하면서 배운 참격은 최대 세 마리까지는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스킬, 참격[Lv.1]을 발동합니다.]
피칭-
강현의 검에서부터 날카로운 백광이 쏘아졌다.
쏘아진 백광은 그대로 기세 좋게 달려들던 두 마리의 리자드맨들의 목을 갈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스킬, 참격[Lv.2]을 습득합니다.]
‘이걸로 21.’
강현은 만족스럽게 끄덕이며 리자드맨의 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아아-
어김없이 미약한 빛이 그의 몸으로 스며든다.
스윽-
사체 수거까지 마친 강현이 에테르의 양을 확인했다.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38/100)]
‘벌써 이만큼이나 모았네.’
사냥을 하면서 강현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건 같은 리자드맨이라도 가지고 있는 에테르의 양이 각각 다르다는 점이었다.
최소 1이었고, 많으면 3, 4까지의 에테르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사냥한 리자드맨은 열 마리를 조금 넘길 뿐이었으나, 취한 에테르는 그보다 훨씬 많았다.
강현으로서는 전혀 나쁠 게 없었다.
괴수를 잡기만 하면 레벨도 오르고 에테르도 취할 수 있으니, 그는 시원시원하게 전진해 나갔다.
“보면 볼수록 말이 안 돼…….”
백아영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강현은 그 이유를 대강 짐작했다.
‘아마 너무 쉽게 잡아서 그런 거 같은데.’
그녀로서는 놀랄 만도 할 것이다.
리자드맨 몇 마리가 덤비든 한 호흡을 넘기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괴물…….’
쉬지도 않고 리자드맨을 베어 넘기는 이강현을 보며 백아영은 생각했다.
‘내가 봐도 흠잡을 데가 없잖아.’
동작은 간결했으며, 스킬의 사용도 완벽했다.
그래서일까, 사냥이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열 마리가 넘는 리자드맨을 잡아냈다.
물론 이런 퍼포먼스는 ‘여명의 눈’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백아영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헌터로서의 성공이 리얼에서 잘나갔던 것에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는 해도…….’
장담컨대 이강현 같은 케이스는 없었다.
C급 헌터인 상철을 이긴 것도 모자라서, D급이긴 해도 이런 압도적인 활약이라니.
“……꼭 알아봐야겠어.”
그녀는 이강현이 리얼에서 어떤 활약을 보였었는지 철저히 알아보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쿠웅-
백아영의 기감에, 이 게이트에서는 들릴 리가 없는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강현 씨!”
그녀가 재빨리 외쳤지만, 강현은 이미 그 방향으로 몸을 돌린 상태였다.
몸을 돌린 그는 볼 수 있었다.
쿠웅!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여태까지의 리자드맨들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리자드맨을.
“오우……. 뭐 저리 커?”
어찌나 컸는지, 100m는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 크기가 쉬이 인지되었다.
“어떻게 보스가 이런 외곽에……?”
백아영이 중얼거렸다.
‘보스?’
보스는 보통 게이트의 핵에 위치한다고 알고 있었으나, 강현은 납득했다.
저게 보스가 아니라면, 이 게이트가 D급도 아니었을 터였다.
물론 신기하긴 했다.
보스가 외곽까지 나오다니.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까?”
“아뇨, 전례가 없는 일이에요. 또…….”
쿠웅!
“저런 식으로 방향을 정하고 오는 것도요. 우리한테 볼일이 있는 거 같은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백아영의 말처럼 게이트의 보스와 그들의 거리는 꽤 떨어져 있었음에도, 보스의 발걸음은 정확히 그들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쿵- 쿠쿵-
뛰다시피 다가온다.
그걸 보며, 강현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백 팀장님, 저 혼자 상대해 보겠습니다.”
“저건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강현의 말에 백아영은 잠시 갈등하는 듯했지만.
“……솔로 클리어하기로 했으니 끼어들지는 않을게요. 당신이 죽기 직전까지 몰리는 것만 아니면요.”
이내 물러나 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고서는 리자드맨을 응시한 강현은 깨달았다.
“……!”
지금까지 모은 에테르를 합친 것과 비슷한 양의 에테르가, 저 리자드맨에게 깃들어 있던 것이다.
‘왜 오는지는 모르겠다만…… 저놈이 대어네.’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일 건 없었다.
[스킬, 질주[Lv.1]를 발동합니다.]
검을 치켜든 채 마주 달려 나간 강현은, 달려드는 리자드맨에게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스킬, 광검[Lv.5]를 발동합니다.]
“크르르르!”
강현을 본 리자드맨 킹이 가소롭다는 듯 충격파를 내뿜는다.
쿠콰콰콰-
충격파가 닿은 모든 걸 박살 낸다.
그것은 리자드맨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진화’의 증거.
그러나.
“…….”
강현은 그 자리에 없었다.
[스킬, 순보[Lv.2]를 발동합니다.]
그는 어느새 리자드맨 킹의 뒤로 이동하여.
[스킬, 섬광[Lv.4]를 발동합니다.]
여명의 눈이 비추어준 약점, 목덜미에 검을 찔러가고 있었으니까.
푸욱!
백광이 급소에 파고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
리자드맨 킹은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다.
하나 강현은 수수께끼의 검에 깃든 보호막까지 써가며 끝까지 검을 놓치지 않았고.
쿠웅-
결국 급소를 공략당한 리자드맨 킹이 쓰러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다소 허무하리만치 쉽게 끝난 싸움.
하지만 그 싸움의 승자가 강현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취할 수 있는 에테르가 감지되었습니다. 에테르를 취하시겠습니까?]
승리의 보상에 강현은 손을 가져갔다.
스와아아-
그 순간.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58/100)]
[취한 에테르가 일정 수치를 넘어섰습니다. 다음 단계가 적용됩니다…….]
강현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단계 → 2단계]
[감각이 더욱 세밀해집니다.]
처음 보는 메시지들이 떠올랐지만, 강현은 미처 그것들을 볼 틈조차 없었다.
그것보다 더한 일들이, 다름 아닌 그의 몸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슈와아-
시야가 또렷해지고, 냄새와 들리는 소리만으로 주변이 파악된다.
몸의 구석구석이 확장되어, 공기의 흐름까지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마치 두꺼운 허물에서 벗어나, 난생처음 세상을 마주한 느낌.
여기까지만 해도 놀랍기 그지없었지만, 변화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에테르를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메시지가 나타나기 무섭게, 또 하나의 감각이 눈을 떴다.
지금까지의 오감이 아닌, 여섯 번째 감각.
‘이 느낌은…….’
강현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몸을 끊임없이 순환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결코 뚜렷하게는 아니었고, 오히려 미세한 쪽에 가까웠지만.
‘마력, 인가.’
그의 몸을 돌고 있는 마력, 메시지대로라면 에테르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강현 씨! 괜찮아요?”
강현은 고개를 돌려 빠르게 다가오는 백아영을 바라보았다.
‘……느껴져.’
그녀의 몸을 흐르는 마력도 감지할 수 있었다.
자신보다 더 강대하면서도, 부드러운 마력이었다.
‘마력감응력은 타고나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
마력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세간에서는 마력감응력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 마력감응력은 선천적인 요소가 크다고도 알려져 있고.
‘나는 못 타고난 줄 알았는데…….’
그런데 지금 그 마력감응력이 생겨났다.
[참가자 이강현의 현재 단계는 2단계입니다.]
[정보를 불러내어 본인의 단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취할 수 있는 에테르를 모두 취한 뒤 적용됩니다.]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58/100)]
강현은 메시지를 따라 순위를 확인했을 때처럼 정보를 불러내 보았다.
이름 : 이강현
종족 : 인간
차원 : 제3 군소
순위 : 7
단계 : 2
지난번에는 순위까지만 보였는데, 어느새 ‘단계’가 추가되어 있다.
‘단계는 또 뭐야?’
강현은 관련된 메시지가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더 이상의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망할 더 비욘드.’
느닷없이 사람 몸에 이런(?) 변화를 일으켜놓고 한마디 설명도 없다니.
불친절함의 끝인 더 비욘드 측에 강현이 속으로 욕을 퍼붓고 있을 때였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저 리자드맨이, 아니, 리자드맨 킹이라고 불려야 하나. 아무튼, 리자드맨 킹이 충격파를 쐈을 땐 깜짝 놀랐어요.”
백아영이 그를 꼼꼼하게 살피며 말했다.
“리자드맨이 충격파를 쏘는 경우가 없습니까?”
“당연하죠! 애초에 파충류 계열 괴수들은 아무리 강해져봤자 힘이 더 세지거나 무구가 좋아지는 수준이라구요. 조금 전처럼 충격파로 땅을 박살 내버린다는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리자드맨 킹을 보고 정말 놀랐었는지, 백아영이 열변을 토해냈다.
그러더니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목소리를 확 낮춘다.
“흠흠. 그래도 리자드맨 킹이 충격파를 쏘던 것치고는 다행히 다친 곳이 없네요.”
“뭐, 충격파가 위협적이긴 했어도 안 맞았으니까요.”
강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여명의 눈’ 이 아니었다면 꽤 질척거리는 싸움을 해야 했을 터였다.
리자드맨 킹의 공격 패턴과 사정거리, 충격파를 재사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등을 세세하게 파악해야 했을 테니까.
목덜미가 약점이라는 건 대충 알아도, 그 목덜미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공략하지는 못했겠지.
‘방금처럼 순간적으로 뒤로 파고들었어도 한 번에는 못 죽였을 거야.’
어느 정도 타격을 줄 수 있었겠지만, 전투 시간은 훨씬 길어졌을 것이다.
하나 ‘여명의 눈’ 덕분에 그는 싸움이 리자드맨 킹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에 검을 찔러넣을 수 있었고, 그게 그대로 승패를 갈랐다.
‘물론 이상하긴 해.’
강현이 물었다.
“리자드맨이 충격파를 쏘던 것도 이상 현상과 관련이 있는 걸로 보이십니까?”
“글쎄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이곳에서 나가면 적정 등급보다 한 등급을 높여서 진입시키라고 해야겠어요.”
백아영은 당장 조치를 취하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게이트 내부에서는 외부와 통신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리자드맨 킹이 충격파를 쏜 것도 에테르 때문인가.’
그것도 이상 현상의 일환이니, 틀림없이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됐다.
“…….”
옆에 있는 백아영의 얼굴에서 약간의 초조함이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게이트에 들어가고 있는 부하들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먼저 가시죠.”
강현이 제안했으나, 그녀는 남겨진 그가 위험할 수도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외곽은 거의 다 돌았잖아요? 심층부 핵만 파괴하면 될 듯한데요.”
과연, 맞는 말이었다.
‘이제 끝내러 가야겠군.’
리자드맨 킹의 사체를 수거한 강현은 심층부로 이동했다.
* * *
게이트의 심층부로 다가갈수록 주변은 달라져 갔다.
미국이나 호주의 풍경에서 흔하게 보던 건조한 평지에서, 점차 어두워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게이트 내부를 구성하는 핵 근처에 제대로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쿵- 쿠쿵-
물론, 리자드맨들이 덤벼오는 것만은 똑같았다.
이곳에 들어온 목적이 레벨을 올리는 것이었기에, 강현은 달려드는 리자드맨들을 지나치거나 피해가지 않았다.
게다가 에테르를 모으면서 생긴 변화 덕분에, 이전보다 더 쉽게 리자드맨을 사냥할 수 있었다.
“크르르!”
원래 그가 가지고 있던 전투 센스가 더욱 발달했으니까.
갑자기 나타난 리자드맨이 창을 찔러왔음에도, 강현은 느긋하게 대처했다.
리자드맨의 손끝과 발의 위치, 시선을 모두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도 읽을 수는 있었으나, 한층 더 명확하게 파악이 가능해졌다.
‘내 목을 노리고 있으니까…….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명치를 찌른다.’
푸욱-
스물다섯 번째이자, 또 한 마리의 리자드맨이 나가떨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스킬, 광검[Lv.6]을 습득합니다.]
“……결국 24까지 올리긴 했네.”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 2~3레벨이 오를 걸 예상했었는데, 그걸 넘어서 24를 달성했다.
강현은 손을 내밀었다.
스아아-
[현재 취한 에테르의 양(91/100)]
‘벌써 이만큼이나 모았나.’
앞으로 9만 더 모으면, 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쿠오오-
비록 게이트의 핵이 바로 앞에 있었기에, 더 이상 리자드맨을 잡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대략 리자드맨의 90%를 정리했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강현은 눈앞의 핵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이게 핵인가.”
게이트의 핵은 등급에 따라 그 색깔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들어온 D등급 게이트의 핵은 축구공만 한 크기에,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핵을 구경하고 있는데 백아영이 다가왔다.
“그거 알아요? 혼자 한 것치고는 엄청 빨리 핵까지 온 거.”
“몰랐는데요.”
당연하게 말하는 강현을 본 백아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차하면 도와주려고 했는데, 어제부터 계속 놀라기만 하고 제가 한 게 없는 수준이니 말 다 했죠. 그건 그렇고 당신, 스킬을 대체 몇 개나 쓰는 거예요? 10레벨대 아니었어요?”
“……아.”
백아영의 말을 들은 강현은 깨달았다.
‘내 레벨을 말해준 적이 없구나.’
도철에게 10이라고 말했었던 것과 달리, 백아영에게는 레벨을 말한 적이 없었다.
리자드맨을 쓸어버림으로써 핑계도 생겼겠다, 강현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24입니다.”
“2…… 뭐라고요?”
백아영이 고개를 끄덕이려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24요. 리자드맨들을 잡으면서 올랐습니다. 쭉쭉 오르더군요.”
“무슨 속도가…….”
백아영이 입을 몇 번 뻐끔거렸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어울리지 않는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강현의 레벨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거겠지.
“와…….”
“그쪽은 몇입니까?”
A등급 헌터인 백아영의 레벨이 몇인지 궁금했다.
“아, 저는 87이에요.”
“……87이면 많이 높은 거 같은데요.”
“그렇겠죠? 지난번 정기심사에서 전 세계에서 100등 안에는 들었으니까요.”
87.
아득히 높은 레벨이었다.
강현은 그녀와의 차이를 새삼 실감했다.
‘아직 멀었네.’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긴 했어도, 한참 전부터 달려온 강자들을 따라잡기에는 턱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헌터의 등급은 비단 레벨로만 갈리는 게 아닐뿐더러, 그에게는 더 비욘드가 있었으니까.
“여기에 검을 찔러넣으면 됩니까?”
“네. 그러면 게이트가 무너지기 시작할 거고, 그전에 다시 입구로 빠져나가면 돼요.”
그녀의 말을 들은 강현은 망설이지 않고 핵에 검을 찔러넣었다.
푹-
쿠구구구-
그렇게 강현은, 첫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데에 성공했다.
[다음 소환까지 남은 시간 : 3일 15시간 2분]
다시 더 비욘드로 돌아가기까지 사흘가량이 남았을 때였다.
* * *
게이트를 클리어하자마자 백아영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관리국으로 이동했고, 강현도 집으로 돌아가 여러 정보들을 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틀 뒤, 그는 백아영과 다시 만나 계약을 체결했다.
“피해를 받은 팀은 없었어요. 이상 현상은 계속 알아보는 중이구요.”
“그거 다행이군요.”
강현의 말에 백아영이 싱긋 웃더니 계약서를 내밀었다.
“여기, 대부분의 길드에서 쓰는 표준계약서예요. 저희가 제시하는 계약서랑 비교해봐도 좋아요. 요구하신 선택권이랑 재택근무도 넣었구요.”
선택권과 재택근무가 중요한 거였기에, 강현은 독소 조항의 유무만 확인하고선 바로 도장을 찍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관리국의 식구가 됐네요.”
도장을 찍자 백아영이 뭔가를 잔뜩 건네준다.
“이거 받으세요. 이것도.”
복주머니처럼 생긴 포켓과 카드였다.
“이건 최대 200㎏까지 담을 수 있는 아공간 주머니고, 카드는 복지카드예요. 어제 게이트를 파괴한 것에 대한 임무 수행비가 이번 주 내로 들어갈 거구요.”
“오…….”
그것들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백아영이 덧붙인다.
“둘 다 원래는 D급 헌터 이상한테만 지급하는 것들인데……. 당신 실력을 봤으니까 그냥 지금 드리는 거예요. 조만간 등급 재평가를 신청할 거기도 하고.”
강현에게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알아서 해주시죠.”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아, 그리고 하나 더요. 저희랑 계약한 거 관련해서인데요. 당신이 워낙 유명해서 며칠 동안은 기자들이 달라붙을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요?”
백아영이 살짝 염려스러운 눈빛을 해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과거를 좀 더 깊게 알아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영원히 숨길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한 데다가, 그에게는 확실한 해결책이 존재했다.
“당분간 도망가있으면 되죠.”
“기자들이 얼마나 독한지 알지 않아요? 웬만한 곳은 다 포진하고 있을 텐데?”
“절대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면 됩니다.”
“……?”
무슨 말이냐고 백아영이 눈으로 물어왔으나, 강현은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남은 시간 동안 강현은 지친 심신에 휴식을 부여하는 한편, 여태껏 습득한 스킬들을 연습하며 시간을 보냈고.
[다음 소환까지 남은 시간 : 0일 0시간 0분]
남은 시간이 모두 소진된 순간, 환한 빛이 그를 감쌌다.
슈와아아-
더 비욘드로의 세 번째 소환이었다.
“…….”
그리고 그가 떠난 직후, 인터넷에 짤막한 기사 한 줄이 올라왔다.
-리얼의 신 이강현, 최근 헌터관리국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져.
대한민국 헌터계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기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