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서브 미션
레이드.
높은 레벨, 혹은 특별히 강한 몬스터를 대규모로 사냥하는 행위.
잡기까지는 많은 고난이 따르지만, 그만큼 보상도 많았다.
때문에 예로부터 RPG 게임에는 반드시 레이드 콘텐츠가 있었고, 그게 거의 게임을 이끌어가는 메인 콘텐츠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건 가상현실게임인 리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더 흥했었지.’
오직 가상현실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스케일과 짜릿한 쾌감, 제작진의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 덕분에 다른 콘텐츠보다 유독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리얼의 정점이었던 강현은, 그 누구보다 레이드를 많이 해왔었다.
새로운 몬스터가 나오면 가장 먼저 공격대를 구성하여 클리어했고, 솔로 레이드를 성공 시킨 적도 있었다.
비록 오 년 전 대격변이 터지면서 빠르게 식어가긴 했어도, 그때 레이드를 뛰던 감각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따라서 이번 미션이 레이드라는 건, 강현에게는 희소식이나 다름없었다.
미션의 형식부터 익숙했으니까.
물론, 당연하게도 모두에게 익숙한 건 아니었다.
“허어……. 어찌 저런 것과 싸운단 말인가…….”
“으……. 한 대 맞으면 바로 지옥으로 가겠는데.”
[하핫! 미션의 내용을 예상하지 못하신 분들도, 꽤나 놀라신 분들도 계시겠죠!]
로독의 말처럼 일부 참가자들은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
강현은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 거겠지.’
아마 저 살벌하게 거대한 크기와 단단해 보이는 신체를 보고 당황한 것이리라.
[하지만 걱정 마세요! 이 로독이 깔끔하게 설명해 드릴 테니까요!]
그런 반응들을 예상했다는 듯 로독이 방긋 웃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제23 정령계에 출몰한 바위 거인은 모두 열여섯! 공교롭게도 아흔여섯의 참가자분들이 여섯 명씩 팀을 구성했을 때 딱 떨어지는 숫자죠! 즉, 참가자분들은 총 열여섯 팀으로 구성되어 바위 거인과 싸우게 된답니다! A등급부터 F등급까지 고르게 분포될 예정이고 또…… 아! 이걸 말 안 할 뻔했네.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을 말씀드려야겠죠?]
[바위 거인과의 싸움을 바탕으로 기여도를 측정하고, 함께 진행될 투표 결과를 합산하여 순위를 집계하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들, 제가 일정 주기로 순위를 발표하게 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이번 순위발표는 모든 조의 미션이 끝나자마자 진행될 겁니다. 자세한 건 그때 가서 알려드릴 테지만요!]
강현은 그가 봤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억해 냈다.
그곳에서도 미션을 바탕으로 점수를 매기고 투표를 했었다.
애초에 둘 다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포맷을 써서인지 유사한 점이 많았다.
이것 역시 강현으로서는 좋은 점이었다.
[미션에 돌입하기 전까지의 일주일 동안 각 등급별로 합숙을 진행하게 되며, 엄선된 엘리트 트레이너들이 여러분들의 적응을 도울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미션과 흡사한 형식으로 실전 훈련도 진행할 예정이니, 준비하는 데에 지장은 없겠죠? 자, 말씀드려야 할 건 다 말한 것 같네요. 그럼, 가 볼까요?]
로독이 손을 휘젓자 광장 한 편에 빛이 일렁이더니, 거대한 문이 나타난다.
짙은 고동빛의 나무문이었다.
[저 문을 넘으면 등급별로 제공된 숙소로 이동하게 됩니다! 곧 트레이너가 도착할 테니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있다면 그때 해소하시면 되겠습니다!]
로독의 말이 끝나자 문이 활짝 열렸다.
참가자들은 하나둘씩 문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누군가는 어금니를 깨물었으며.
누군가는 잔뜩 고양된 표정으로 문을 넘어갔다.
그리고, 강현의 차례도 다가왔다.
문 너머를 주시해 봤지만 시꺼멓기만 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스윽-
그래서일까, 문을 넘는 느낌은 별거 없었다.
평범한 문과 다른 점을 굳이 꼽자면…….
[참가자 이강현 확인, F등급 숙소로 이동합니다.]
문을 넘는 순간 메시지가 나타나면서, 몸이 어디론가 이동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뿐.
슈와아아-
그를 감싸오는 환한 빛에, 강현은 가만히 몸을 맡겼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강현은 자신이 F등급에게 마련된 숙소로 이동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아아-
미약한 흙냄새가 코를 간질였고.
“에, 에취!”
옆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재채기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와 같은 F등급일 게 분명한 갈색 머리 소년이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류트라고 하는데…… 아, 안녕?”
어색하게 손을 들어 보이는 류트에게 강현은 짤막하게 대꾸했다.
“이강현.”
“그, 그렇구나.”
딱딱한 단답에 류트가 움찔했다. 강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참가자들과의 관계를 굳이 악화시키려는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살갑게 굴 마음도 없었다.
‘친목을 다지는 것보단 내 실력을 기르는 게 우선이다.’
결국 이 경연에서 올라가기 위해서는 참가자 개인의 강함이 뒷받침되어야 했고, 거기에 다른 참가자들과의 친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됐다.
그때, 뒤에서 가루가 흩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으으-
고개를 돌려 보니 문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옆에 있는 말더듬이 소년이 그의 유일한 F등급 동료인 듯했다.
강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로독은 숙소라고 말했으나, 엄밀히 말해서 숙소라기보다는 공터에 가까웠다.
마치 한적한 숲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달까.
그 사이, 강현은 주욱 늘어진 길을 발견했다.
널찍하게 생긴 것이, 누가 봐도 이쪽으로 오라는 모양새였다.
‘숙소는 저쪽에 있나 본데.’
터벅-
강현이 앞서나가자 류트가 허겁지겁 뒤따라온다.
“어? 가, 같이 가!”
길은 구불구불하게 이어졌다.
그동안 류트는 원체 말이 많은지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F등급이긴 해도 내, 내가 이 경연에 참가하게 되다니!”
“트, 트레이너분은 누굴까? 잘 가르쳐 주시겠지?”
방금 그를 처음 본 강현이 느끼기에도 확연히 들뜬 게 느껴졌다.
필시 이 더 비욘드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아서겠지.
강현이야 리얼을 하던 시절 꽤 자주 방송에 나갔던 적이 있어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나저나.’
오늘부터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된다고 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카메라가 그들을 찍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딜 그렇게 봐?”
“아니야.”
주변을 아무리 열심히 둘러봐도 카메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니지, 꼭 카메라로 찍으리라는 법은 없나.’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해내는 로독이다.
이곳은 아예 다른 차원이기도 하니,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들을 찍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강현이 그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
“숙소는 어떨지 궁금하다. 머, 멋있을 거 같아.”
옆에 있는 류트는 김칫국을 들이켜고 있었다.
강현은 한마디 해주기로 했다.
“너무 기대하진 않는 게 좋을걸.”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느낌이.”
“……?”
류트는 이상하다는 얼굴을 해 보였으나, 강현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어느덧 숙소로 보이는 집이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그리고 숙소에 다다랐을 때, 강현은 자신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참이나 올라간 끝에 마주한 숙소는 더럽고, 냄새나며, 좁아터지기까지 한 움막에 불과했으니까.
“이, 이게 뭐야…….”
류트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풀썩 무릎을 꿇었다.
‘역시나. F등급한테 좋은 숙소를 줄 리가 없지.’
대충 이렇게 될 걸 예측한 강현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늦었군요.”
스윽-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움막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서 강현조차 예상하지 못한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모습을 드러낸 게 인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제 이름은 루드스. 영광스러운 숲의 일족의 일원으로서, 트레이너의 자격을 부여받아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마에는 두 개의 거대한 뿔이 돋아나 있었고, 강현이 한참 올려다봐야 될 만큼 기골이 장대했다.
‘일단 남자긴 남잔데…….’
얼굴 또한 날카로운 인상이라는 걸 빼면,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자신을 루드스라 소개한 트레이너의 눈빛이 결코 곱지 않았다는 것.
아니, 곱지 않은 걸 넘어 흉흉하기까지 했다.
‘이거…….’
그 눈빛을 본 순간 강현은 일이 쉽게 풀리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고.
“포기하십시오. 당신들의 수준으로는 다른 참가자들에게 민폐만 될 뿐입니다.”
트레이너, 루드스가 차갑게 내뱉었다.
* * *
갑작스러운 루드스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그런!”
그 말에 반응한 건 류트였다.
“저, 저는 선택받았다고요! 튜토리얼도 통과했고! 그, 그런데 갑자기 포기하라니…….”
“류트. 18세.”
“헙…….”
“제5 군소차원 출신. 튜토리얼을 클리어하는 데에 소요된 시간은 39분. 꼴찌를 간신히 면한 한심한 성적.”
냉혹한 평가에 류트는 굳어버렸다.
루드스가 싸늘하게 말했다.
“꼴찌는 당신 옆에 있는 이강현이고, 참고로 평균 클리어 시간은 16분입니다.”
“……!”
16분.
두 명의 F등급이 상당한 평균을 깎아 먹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생각한 것보다도 더한 격차였다.
“당신들의 영상은 잘 봤습니다. 형편없는 수준이더군요. 제가 가르쳐야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으나, 루드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의 실력으로는 다음 미션에 결코 진출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저는, 다른 참가자들에게 폐를 끼칠 바엔 제 선에서 당신들을 끊어내는 게 옳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그렇지만…….”
류트가 우물거렸다.
무어라 받아치고는 싶은데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 같았다.
“포기할 마음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전 이 자리에서 당신들을 포기하게 만들 거니까요. 행여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말을 마친 루드스가 손을 내뻗자.
꾸드드득-
바닥의 나뭇가지와 풀, 흙들이 허공에서 한데 어우러지더니 서서히 늑대의 형상을 갖추어나갔다.
[Lv.15 숲의 늑대]
늑대라기보다는 곰이나 호랑이에 더 가까운 크기였다.
“크와아-!”
늑대가 울부짖자 주변의 공기가 요동친다.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차원이 달라.’
눈앞의 늑대가 일전의 인어 전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하다는 걸.
루드스가 선언하듯 외쳤다.
“저를 한번 설득시켜 보십시오. 당신들을 가르쳐야 할 이유를 말입니다!”
[서브 미션]
-주제 : 인정
-내용 : 숲의 드루이드, 루드스가 시련을 내렸습니다! 고귀한 드루이드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를 납득시켜야 합니다. 동료와 함께 숲의 늑대를 쓰러뜨리세요!
-성공 시 : 루드스의 인정
-실패 시 : 탈락
스으으-
말을 마친 루드스의 신형이 일렁이더니, 빠르게 모습을 감추어간다.
“…….”
남은 건 그와 류트.
크르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늑대뿐.
“으, 으…….”
옆을 보자 류트는 주저앉기 직전이었다.
거기서 강현은 류트에 대한 기대를 일단 접었다.
“후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쉬고, 광검의 자세를 취한다.
‘무구를 착용하고 오길 잘했군.’
그들을 가르쳐야 할 트레이너가 갑자기 왜 이렇게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진심이야.’
루드스에게서 한 줌의 거짓도 느낄 수 없었다는 것.
그 말은, 저 늑대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정말 끝이라는 걸 의미했다.
그렇다면 해야 했다.
아니, 해내야 했다.
‘전력으로 간다.’
그 순간 늑대가 강현을 향해 달려들었고.
[스킬, 광검[Lv. 3]을 발동합니다.]
그에 맞서 강현의 검이 맞부딪쳐 갔다.
그리고 그 싸움을, 뒤로 물러난 루드스는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기어이 어리석은 선택을…….’
그가 봤던 이강현은 [종족 특성]을 늦게 깨달았을뿐더러, 그마저도 보잘것없었다.
숲의 늑대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그는 이 전투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쾅!
콰쾅-!
“……!”
루드스의 표정이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을 소환하기 전, 트레이너들을 불러모은 프로듀서 로독은 이렇게 말했었다.
[참가자들이 오면 시련을 내리는 겁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고 상관하지도 않을 테니, 시련을 내리기만 하라고.
그 말에 누군가는 그 시련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참가자의 안위가 보장되지 않는다며 꺼림칙한 기색을 내보였지만.
[아무 의미 없죠! 중요한 건 내려진 시련을 참가자들이 극복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으음? 참가자들의 안전이요? 당장 중요한 건 방송이지 참가자 개개인이 아니에요! 오히려 좀 죽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디멘션 넷(Dimension net)에 이슈라도 퍼지면 땡큐죠!]
로독은 이러한 말들로 불만들을 일축하며 시련을 내릴 것을 종용했다.
[그러니 살로바, 부탁해요? 루드스…… 당신이야 뭐, 다음 미션이 미션이니만큼 제가 따로 부탁은 안 해도 되겠지요.]
그러니 난이도는 제각기 달라도, 지금쯤 모든 참가자는 트레이너들의 시련을 마주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루드스는 트레이너 중 몇 안 되는, 처음부터 시련을 찬성한 쪽이었다.
다음 미션은 정령계를 바위 거인에게서 구해내는 것이었고, 드루이드인 루드스는 정령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그는 가급적 최선의 참가자들만 미션에 참가시키고 싶었다.
이강현과 류트의 영상을 본 그는 진정으로 그들이 다른 참가자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여겼다.
같은 이유로 가르쳐야 하는 필요성 또한 느끼지 못했다.
해서 저들의 수준으로는 절대 쓰러뜨리는 게 불가능한 시련을 내렸다.
[Lv.15 숲의 늑대]
즉석에서 만들어내느라 많은 힘을 부여하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니고 있다.
정순하고 맑은 숲의 원기(元氣)로 빚고 다듬은 가죽에는 단단함이, 발톱에는 용맹함이 깃들었기에.
‘E등급 참가자는 능히 이길 테고 일부 D등급 참가자와도 자웅을 겨룰 만하다.’
이게 숲의 늑대에 대한 루드스의 평가였다.
그리고 류트가 벌벌 떠느라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빼면, 처음에는 생각했던 대로 대결이 진행되는 듯했다.
퍽!
“큭!”
숲의 늑대의 강력한 돌진에, 이강현이 맥을 못 추리고 연이어 나가떨어진다.
대미지를 흡수하면서 날아가는 것도 아니다.
늑대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해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쾅!
그때마다 이강현도 한 번씩 검을 찔러넣기는 했지만, 단단한 가죽으로 무장한 늑대에게 이렇다 할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따라서 루드스는 이 대결이 금세 끝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그로 하여금 이강현의 수준을 다시 평가하게 만들었다.
쿠구구-
여느 때처럼 늑대가 이강현을 향해 달려든다.
육중한 무게에 가속까지 붙은 돌진.
그러한 돌진에 강현은, 정면으로 맞서나갔다.
위로 솟구쳐 돌진을 피하면서 늑대의 목덜미를 노린 것이다.
비록 늑대가 몸을 비트는 바람에 목덜미가 아니라 등에 닿기는 했어도, 피해는 있었다.
쾅!
쿠와앙-!
순백의 검과 늑대의 가죽이 부딪치며 폭음이 터져 나왔고, 늑대가 고통에 찬 울음을 토해냈다.
물론 강현이라고 완전히 늑대의 공격을 피한 건 아니었다.
퍼억!
늑대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쳐 가는 강현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고.
“큭!”
그 꼬리에 빗겨 맞은 강현은 한참 뒤에 있는 두꺼운 고목에 처박혀야 했으니까.
그러나.
“말도 안 돼.”
루드스의 눈에는 안도가 아닌 경악이 차올랐다.
일방적인 늑대의 공격에서 점차 서로 한 대씩 주고받아 간다는 것.
그는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숲의 늑대가 이강현을 압도하지 못한다고?’
아니지, 압도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다.
이강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숲의 늑대와 대등하게 겨루어가고 있다.
‘내가 잘못 파악한 건가?’
루드스는 이강현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참가자 이강현. 25세. F등급. 제3 군소차원 출신. 튜토리얼 탈락자 셋을 제외한다면 전체 참가자 중 꼴찌.’
심지어 튜토리얼을 쉽게 클리어한 것도 아니다.
그는 똑똑히 기억했다.
뭍을 올라와 [종족 특성]을 잃어버린 인어 전사 하나에게 유린당하다가, 죽기 직전에야 간신히 [종족 특성]을 깨닫던 이강현의 모습을.
그 이후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나쁘지 않을’ 뿐이었다.
칼질 한 번, 마법 한 번으로 인어 전사들을 쓸어버리던 상위 등급 참가자들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지는 실력이었다.
그리고 숲의 늑대는 인어 전사 따위와는 궤를 달리하는 강함을 가지고 있으니, 이강현쯤은 압살해야 정상이었다.
한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그새 성장했다고?”
인어 전사들과 부대끼던 이강현이, 숲의 늑대와도 맞설 만큼 성장했다는 것.
튜토리얼이 끝나고 고작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성장 속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쾅-!
이강현은 지금도 조금씩 늑대에게 적응해 가고 있다.
마치 어떻게 해야 가장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바로 그 점이 루드스를 납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종족 특성]을 깨달은 지 하루 사이에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
격전으로 치닫는 강현과 늑대의 대결을, 루드스가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만약 이강현이 정말로 하루 만에 이런 성장을 한 거라면, 그리고 이러한 성장세가 지속된다면…….
‘로독, 어쩌면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참가자가 여기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 * *
“쿨럭!”
몸을 일으키려는데 입에서 피가 새어 나온다.
아무래도 내장이 흔들린 듯했다.
잠시 쉬어준다면 괜찮아지겠지만, 추스를 시간은 없었다.
“가, 강현! 늑대가!”
“크르르-”
멀찍이 물러서 있는 류트가 다급하게 외치는 것처럼 늑대가 다시 달려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오자 아주 살짝 후회가 됐다.
‘그냥 순보도 쓸 걸 그랬나.’
하나 그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순보를 아낀 탓에 실컷 얻어맞긴 했어도, 대신 ‘설계한 대로’ 싸움을 전개시킬 수 있었다.
“후.”
강현은 숨을 크게 내쉬어 몸을 진정시킨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부라리는 거대한 늑대를 보고 있자니 다시 실감이 된다.
‘더럽게 강하네.’
인어 전사니 불도룡뇽이니, 여태껏 상대해 온 괴수들과는 레벨이 달랐다.
비교적 쉽게 타격을 줄 수 있었던 그들과는 다르게 유효타를 먹이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강철과도 같은 가죽에 폭발적인 빠르기까지.
괴물 그 자체였다.
‘보스 잡는 것 같네.’
보스 몬스터.
강현이 보기에 눈앞의 늑대는 그렇게 불릴 만한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똑같다.’
동시에 그는 알고 있었다.
게임의 보스 몬스터든 현실의 괴수든 간에, 그 본질은 같다고.
정형화된 패턴이 있다.
약점이 있다.
그는 계속해서 전투를 치르며 늑대에 대해 파악을 마친 상태였다.
다른 부위와는 달리, 늑대가 목덜미와 얼굴만은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걸 간파한 것이다.
즉, 약점은…….
‘목덜미나 얼굴.’
어찌 보면 당연한 약점이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기초적인 것부터 확인하는 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럼 이제…….’
약점을 파악했으니 남은 건 약점을 공략하는 것.
보다 정확히는.
‘약점을 노릴 빈틈을 만들어내는 것.’
여기서 강현은 혼자가 아닌 것에 감사했다.
현재 늑대와 강현의 수준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호각.
이대로 저 늑대가 그에게만 집중했다면 그는 빈틈을 만들지 못했을 거고, 패배하는 건 결국 타격이 누적되어가는 강현일 터였다.
‘혼자였다면, 말이지.’
다행히 그는 혼자가 아니었으며, 빈틈을 만들 방법 또한 생각해 놓은 지 오래였다.
그가 고개를 돌려 크게 외쳤다.
“류트!”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류트를 향해서.
“으, 응?!”
“늑대한테 달려가!”
“뭐, 뭐?”
류트가 화들짝 놀란다.
“늑대한테 달려가라고! 내가 지켜줄 테니까!”
“나, 난 못 해…….”
울상을 지으며 시선을 돌리려던 류트였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떨어질래?”
“……!”
이어지는 강현의 말에 움찔했다.
“올라가고 싶다며? 거기 가만히 있으면 올라갈 수 있을 거 같아?”
“…….”
“이대로 가면 우리 둘 다 죽는다는 것만 알아둬!”
“으, 으…….”
류트의 몸이 앞으로 갔다, 다시 돌아왔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언가 결심한 듯하더니.
“이, 이야아아!”
눈을 감고 늑대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빈틈투성이에다, 자세부터 속도까지 형편없는 돌격이었다.
늑대도 그 생각을 했는지, 머리조차 돌리지 않고 가볍게 꼬리만 휘두른다.
퍽!
“으아악! 지, 지켜준다며!”
꼬리에 얻어맞은 류트가 저만치 날아간다.
그리고 늑대의 꼬리가 류트에게 적중하는 그 찰나.
스윽-
강현은 포착했다.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던 늑대의 눈동자가, 아주 살짝 류트에게로 움직이는 것을.
‘지금!’
그게 바로 강현이 기다리던 빈틈이었고, 그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스킬, 순보[Lv. 1]를 발동합니다.]
아껴두었던 순보를 발동하여.
파팟-
늑대의 바로 위로 떨어져 내림으로써.
“크르?”
그보다 한 박자 늦게 늑대가 그를 알아챘으나.
[스킬, 섬광[Lv.2]를 발동합니다.]
이미 벼락같은 일섬이 늑대의 목덜미를 파고들고 있었다.
“크어어…….”
강현의 검이 목덜미를 완전히 관통하자 늑대는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었고.
[레벨이 올랐습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결국 서브 미션을 클리어해 낸 것이다.
[숲의 늑대를 물리쳤습니다!]
[서브 미션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을 정산합니다…….]
여기까지가, 그가 예상했던 메시지.
[압도적인 기여도를 달성하였습니다.]
“응?”
예상하지 못했던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다수의 시청자들이 당신의 활약에 감탄합니다.]
[추가 보상을 정산합니다…….]
“으…… 으아…….”
늑대의 꼬리에 제대로 맞았는지 한쪽 구석에서 류트가 신음하고 있었지만, 그쪽을 신경 써줄 여유는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들에 강현은 눈을 깜빡이고 있었으니까.
압도적인 기여도를 달성했다는 것까지는 무리 없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시청자에 추가 보상이라.’
나머지 메시지들은 그렇지 않았다.
시청자들이 그의 활약에 감탄해서 추가 보상을 준다?
그건 곧, 그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훤히 보여지고 있다는 말이었기에.
‘아까 로독이 오늘부터 촬영이 시작된다고 말할 때부터 느낌이 오더라니…….’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 갑작스럽게 루드스가 시련을 내린 경위는 짐작이 갔다.
‘방송 때문인가.’
다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내려진 시련에 의구심을 품었었는데, 일부러 연출한 상황이라면 설명이 갔다.
“뭐 이리 설명이 부실해.”
난데없이 죽음의 위기에 던져 버린 방송국 측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말이다.
“말 그대로입니다. 이번 시련에서 당신이 아주 인상 깊은 활약을 선보였고, 그로 인해 더 비욘드의 시청자들이 당신을 주목했다는 거죠.”
멀지 않은 곳에서 루드스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아마 그의 눈에도 이 메시지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자세한 건 내일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지만, 아마 추가 보상을 받게 된 참가자는 한 손에 꼽을 겁니다. 뭘 줄지는 저도 모르겠군요.”
오늘 밤이나 내일 내로 지급이 되기는 할 테지만요, 하고 루드스가 덧붙였다.
스으으-
그가 손을 휘젓자, 바닥의 소복이 쌓여 있던 늑대의 가루가 바람에 휘날려 사라져간다.
잠시 멈춰 서서 가만히 그걸 지켜보던 루드스는, 이내 강현을 응시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오판했습니다. 당신들, 아니, 당신을.”
“…….”
“F등급을 담당하게 된 트레이너로서 당신을 인정하고, 예선이 종료되는 날까지 성실히 교육에 임할 것을 신성한 숲의 이름으로 약속하겠습니다.”
슈와아아-
루드스의 말이 끝나자 그의 몸이 영롱한 청색으로 빛났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던지.
‘약속을 어기면 죽는 주문이라도 발동시킨 건가.’
이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방금의 약속을 어긴다면 제힘의 근원이자 [종족 특성]인 숲의 힘이 사라질 터. 그러니 결코 가볍게 하는 약속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오판에 대한 사죄…… 라고 해두죠. 이걸로 당신의 마음이 가라앉는다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방송이라고는 해도 뜬금없는 서브 미션에 내심 불만이 있던 참이었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갚을 줄이야.
‘방송 때문에 시련을 내린 게 아닌가?’
강현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루드스는 딱히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보상을 정산할 시간이군요. 당신의 기여도에 따른 보상은 추가 보상으로 산정될 테니, 저는 원래 제가 준비해 놓았던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숲의 원기가 당신을 돌봅니다.]
스아아-
“시련으로 생긴 상처가 회복될 겁니다.”
강현의 몸에 푸른 기운이 스며들었다.
강현은 늑대에게 치여 생겼던 상처들이 실시간으로 아물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때랑 비슷한 보상이군.’
튜토리얼을 클리어하고 로독이 내려주었던 에테르의 가호와 흡사했다.
“하나 더.”
휙-
루드스가 손을 휘젓자 허공에서 언뜻 봐도 귀해 보이는 갑옷이 나타났다.
그가 알지 못하는 소재로 짜인 사슬 갑옷이었는데, 어깨에 달려 있는 고급스러운 청록색 장식이 일품이었다.
[부드러운 깃털 갑옷]
-숲의 원기가 담긴 갑옷입니다.
놀랍도록 가벼우면서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이 갑옷은, 섬세한 손길을 가진 드루이드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원래 이건 드릴 생각이 없었지만…… 역시 제 오판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드리겠습니다. 드루이드들 사이에서도 괜찮게 평가받는 갑옷이니, 그 헤진 가죽 갑옷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그제야 자신의 행색을 내려다본 강현은 가죽 갑옷이 군데군데 찢어지고 헤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늑대에게 몇 번 얻어맞는 과정에서 손상된 듯했다.
‘확실히 좋아 보이긴 하네.’
갑옷을 받자, 이름대로 깃털처럼 가벼웠다.
또한 성능 역시 루드스가 보증했으니 그가 입었던 가죽 갑옷보다 뛰어날 터였다.
“이제, 운 좋게 통과한 저 참가자의 차례군요. 당신이 거의 견인하기는 했으나, 동료와 함께하라는 게 미션의 내용이긴 했으니.”
싸늘한 시선으로 류트를 내려다보던 루드스가 손을 내젓자 쓰러진 류트를 푸른 기운이 감싸갔다.
“…….”
새액- 새액-
류트의 숨결이 한결 편안해진다.
‘회복뿐인가.’
그것 외에 류트에게 주어지는 별도의 보상은 없는지, 루드스가 뒤를 돌았다.
“해야 하는 것들은 다 마쳤군요. 본격적인 교육은 내일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슈욱-
“편안한 휴식 되시길.”
루드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보상 정산까지 끝났으니까…….’
비로소 서브 미션이 완전히 끝난 셈이었다.
그리고 그걸 인지하자마자.
털썩-
강현은 저도 모르게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아.”
긴장이 풀려서인지, 루드스가 상처를 회복시켜준 것과는 별개의 피로감이 몰려온 것이다.
‘몸도 잠시 쉬어줘야지.’
지친 몸에 휴식을 부여해 주어야 할 듯했다.
그렇게 편하게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어쩐지 루드스가 바로 가더라니. 그 사람도 쉬고 싶었던 건가.’
거구의 루드스가 하품을 하며 침대에 눕는 상상을 한 강현은 피식 웃었다.
실없는 상상이었지만 뭐 어떤가. 본인이 재밌으면 됐지.
그가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사이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저녁이 찾아왔다.
더 비욘드에서 처음 맞는, 피곤한 저녁이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해가 지평선을 넘어갈 때 즈음 류트는 정신을 차렸다.
딱히 보고 있던 것도 아닌 강현이 그걸 어떻게 알았냐 하면…….
“괘, 괜찮아……?”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류트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하고 있었기에.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 그, 그리고…….”
동시에.
“고, 고마워.”
퍽 고마운 얼굴을 하고 있기도 했다.
“고마워할 필요는…….”
“자, 잠깐만 기다려!”
진심으로 고마운 건지 강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 류트는 어디론가 튀어가더니, 순식간에 강현의 앞에 모닥불을 피워낸다.
화륵-
“히, 힘들었지? 이제 밤이니까 이러면 따뜻하게 쉴 수 있을 거야!”
류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조금씩 공기가 차가워져 가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모닥불이 생기자 확실히 따뜻해졌다.
‘그러면 아예 밥도 먹을까.’
강현이 가방을 뒤져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집에서 챙겨온 에너지바와 생수였다.
아그작-
에너지바를 한입 가득 머금는데, 시선이 느껴진다.
입을 헤- 벌린 류트가 빤히 에너지바를 보고 있었다.
“먹을래?”
강현이 에너지바를 하나 더 꺼내 건네자, 류트는 머뭇거리면서도 조심스레 받았다.
아삭-
아그작-
“…….”
고요한 숲에, 잠시 에너지바를 먹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 흐름을 깬 건 강현이었다.
“그런데 너, 대체 어떻게 튜토리얼을 통과한 거냐?”
늑대에게 달려가는 폼을 봤을 때부터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아무리 봐도 기본적인 자세조차 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통과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그게…… 사실 내 [종족 특성]은 노래야…….”
“노래?”
반문하는 강현에게 류트가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차원은 으, 음유시인의 차원이야. 노래로 ‘마나’를 움직여서 불가능한 것들을 해내.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노래가 그중 하나인데…….”
그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노래를 불러 인어 전사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사이에 제압했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 그런데 나는 아직 초보 음유시인이라 그런 공격계 노래는 아무한테나 적용 못 시키거든……. 그래서 아까 그 늑대한테는 안 통한 거야.”
“적용시키는 조건이 있다고?”
“응……. 나는 아직 약해서 일정 이상 지성이 있으면 안 돼.”
“얼마나 지성이 낮아야 먹히는데?”
“이, 인어 전사들 정도.”
“…….”
에테르에 매몰되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던 인어 전사가 마지노선이란다.
강현이 생각하기에 끔찍한 조건이었다.
게다가 말을 더듬는데 [종족 특성]이 노래라니.
‘음.’
그가 이상한 얼굴로 쳐다봤음에도 류트는 해맑게 웃을 뿐이었다.
“꼬, 꼼짝없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네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괜찮아.”
짤막하게 답한 강현이 힐끔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평소였다면 버스를 탄 거나 다름없는 류트가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일부 시청자들이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일부 시청자들이 당신의 동료를 한심하게 바라봅니다.]
[일부 시청자들이-]
…….
아까 그의 활약에 감탄했다는 메시지가 나온 이후, 비슷한 메시지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어, 어딜 보는 거야?”
류트에게는 안 보이는 모양이니, 혼자 깨다시피 한 시련에 대한 또 하나의 보상이라고 봐도 될 듯했다.
그리고 그 보상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보상이었다.
리얼의 밑바닥부터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사람들의 관심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력이 뒷받침돼야겠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쏟아지는 관심을, 함성과 환호로 바꿀 자신이.
에너지바를 다 먹은 뒤 강현과 류트는 모닥불 옆에 누웠다.
움막 안으로 들어가 봤으나 공기가 차가웠다.
모닥불 옆에서 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에너지바를 먹는 내내 고마움을 표하던 류트는 금세 잠이 들었다.
“…….”
하지만 강현은 쉬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러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늑대를 만들어내던 루드스.
그런 루드스를 한낱 트레이너로 고용한 방송국.
그 방송국조차도 고작 예선을 운영하는 거라 했다.
그렇다면 본선은 누가 운영할까.
다른 참가자들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하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 또 다른 의문이 다시 생겨났다.
그중 답이 내려지는 건 없었다.
“일단 자자.”
억지로 생각을 그만둔 강현은 잠에 들었다.
* * *
그리고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그는 알 수 있었다.
[추가 보상의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추가 보상의 정산이 끝났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