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장 DBC 스튜디오 (2/51)

1장 DBC 스튜디오

<주간 특집! 잊힌 그때 그 시절의 인물을 찾아서!>

[전 세계를 휩쓴 가상현실게임, 리얼(Real)을 기억하는가?

비록 지금은 사장되었지만, 리얼이야말로 한때 전 세계를 통합시켰던 위대한 게임이었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그 리얼이 낳은 전무후무한 역대 최고의 플레이어다.

광검제(光劍帝) 이강현.

혈혈단신의 몸으로 열여덟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밑바닥부터, 하나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올라갔고 정상에 군림했던 이 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설을 써 내려갔다.

혹시 광검제의 명성을 미처 알지 못하는 어린 독자들을 위해 필자가 직접 광검제의 활약상 일부를 발췌해 왔다.

극히 일부의 것들만 가져오기는 했지만, 광검제가 전성기에 어떤 위상을 가졌는지 파악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신이 내린 재능’

‘슈퍼스타들의 슈퍼스타’

‘광검제와 같은 플레이어는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

일일이 세기가 힘들 지경인 그를 수식하는 문구들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의 랭커들만이 초청된 이번 대회에서조차 기어이 우승하는군요! 광검제 이강현! 대인전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이번에도 지켜냅니다!]

그가 가는 길은 곧 리얼의 역사가 되었으며.

[광검제! 리얼에 최초로 등장한 최흉급 몬스터, ‘데르고스의 악룡’의 솔로잉을 기어코 해냅니다! 그의 신화를 오천만 명이 함께하는군요!]

눈부시리만큼 찬란한 그의 발자취에 전 세계가 열광했었다.

이는 필자가 직접 보고 들으며 겪었던 것으로 아마 그 시절 리얼에 빠져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 속칭 ‘리얼러’라면 공감할 내용이다.

-보스몬스터 솔로 레이드 15회

-랭커전 7연속 우승

-국가대항전 3연속 우승 및 3연속 MVP

…….

수많은 랭커들이 강현의 아성에 도전했음에도 최강은 언제나 광검제였다.

물론 지나치게 막 나가는 언행으로 인해 인성 면에서 종종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광검제, 기자를 폭행하다! 올해만 벌써 세 번째!]

광검제(光劍帝)가 아니라 미칠 광(狂)을 쓴 광검제(狂劍帝)가 아니냐는.

그러나 그가 저지른 각종 사고들은 한낱 해프닝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그 정도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비단 팬들만이 아니다.

현 세계랭킹 13위의 헌터이자 대한민국의 위상을 톡톡히 살려주고 있는 S급 헌터, 강연호가 광검제의 유명한 사생팬이었다면 믿겠는가?

A급 헌터 임서연, A급 헌터 박시우, 헌터부협회장 김가홍…….

대격변 이후, 세계가 ‘헌터와 게이트의 시대’가 된 지금도 그의 팬이었음을 숨기지 않는 현 헌터 계의 거물은 수십 명에 다다른다.

당연하게도 대격변이 벌어지기 전 그가 관계자들로부터 받았던 존경은 엄청나다는 말로는 모자랄 정도였다.

[속보. 한국 최고의 길드, 태극! 광검제를 영입하기 위해 백지수표를 제시.]

[한국 유망주 랭킹 1위 악동 김태성, 포부 밝혀. ‘광검제를 언젠간 뛰어넘겠다.’]

[광검제, 만장일치로 랭커들이 꼽은 ‘최고의 플레이어 상’ 수상!]

누군가에게는 압박과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가 그와 함께했지만, 그는 그 또한 성공적으로 이겨냈다.

[또다시 랭커전에서 우승한 광검제, ‘관심과 압박은 날 더 나아지게 해.’]

스스로에게 쏟아지는 압박감과 부담들을 그는 고스란히 환호와 함성으로 바꾸어내었다.

그렇게 광검제는 언제까지나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고, 실제로도 그리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어그러진 지금,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토록 찬란했던 리얼의 신(神)이, 왜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침묵하고 있는가.

지금부터는 바로 그걸 알아보고자 한…….]

“이런 개같은.”

더 볼 것도 없었다.

벌떡 일어난 강현은 읽던 잡지를 벽에 내던졌다.

퍽-

“후우…….”

오랜만에 자신을 다룬 칼럼이 나왔다길래 한번 봤더니만, 이딴 식으로 물을 처먹일 줄이야.

“……누군 가만히 있고 싶어서 집에만 있는 줄 아나.”

화가 났던 것도 잠시.

머리가 서서히 식어가면서, 잠시 잊었던 현실을 다시 자각하게 된다.

그래, 저 칼럼을 쓴 기자의 말이 맞다.

광검제니 뭐니, 잘나갔던 시기가 있기는 했다.

‘그랬으면 뭐해. 지금은 백순데.’

강현은 쓰게 웃었다.

지금의 그는 퇴물이자, ‘그때 그 시절’의 인물이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정확히는 오 년 전 전 세계에 게이트가 나타나면서 그렇게 되었다.

“빌어 처먹을 게이트.”

대격변이라 회자되는 최초의 게이트가 생성되던 그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호화로운 호텔 최상층에서 와인을 홀짝이던 그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던 것이다.

허공에 생겨난 끔찍하리만치 거대한 구멍과 그 안에서 우수수 쏟아져나오던 수많은 괴물들이.

부르르-

강현은 그 기억을 되새기자 몸이 떨리고 오한이 드는 걸 느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기억이었다.

느닷없이 등장한 괴물들, 일명 ‘괴수’들은 시가지를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비상식적인 일에는 비상식적으로 맞서라는 듯 ‘그들’이 나타났다.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각성’을 하여 보통의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게 된 ‘초인’들이.

게이트와 괴수가 나타났을 때 그들 또한 각성하여 ‘시스템’을 얻었고, 괴수들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선 게이트 내부의 핵을 박살 냈다.

그날 이후 세상은 바뀌었다.

[갑자기 전 세계에 생겨난 게이트와 괴수들, 그리고 그것들을 막아선 ‘초인’들.]

[괴수들에 맞선 영웅들, ‘초인’이란? ‘상태창’부터 ‘특성’까지, ‘시스템’의 모든 걸 세세히 파헤친다!]

[각국, ‘초인’의 명칭을 헌터로 지정하기로 합의.]

괴수를 잡는 ‘사냥꾼’, 일명 헌터의 탄생이었다.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여태까지의 산업 체계가 완전히 재정립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헌터들에게 쏠리면서 리얼은 빠르게 자리를 잃어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리얼에서도 사냥을 하고 플레이어들끼리 대결을 펼칠 수는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이었다.

가상현실게임이 등장하면서 그전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던 게임계가 순식간에 쓸려 나갔듯이, 이번에는 가상현실게임이 쓸려 나간 것뿐이었다.

리얼보다 더 리얼한 ‘진짜’ 현실에 의해서.

그나마 리얼의 랭커들이 헌터가 되는 비율은 매우 높았기에 대부분 먹고살 길을 개척해 나가기는 했다.

아니, 오히려 대다수는 형편이 훨씬 나아졌다.

리얼에서 상대했던 수천 마리 몬스터들과의 전투 경험은 실제 상황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헌터가 된 리얼의 랭커들은 처음 보는 괴수라 할지라도 당황하지 않고 제 몫을 해냈다.

모두가 최강이라 일컬었던 그, 강현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는 각성을 하지 못했다.

따라서 헌터가 될 수 없었고,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사람들은 그를 점차 잊어갔다.

‘왜 나만.’

온갖 시도를 다 했다.

마음을 풀어내고자 세계 일주도 해봤고, 리얼이 망하자마자 군대도 갔다 왔다.

전역을 하고서도 다른 취미와 직업을 가지기 위해 여러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의 환호를 받던 때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장비만 달랑 들고 괴수를 잡으러 나가기까지 했을까.

‘그때는 정말 뒈질 뻔했는데.’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그때를 떠올린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극한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각성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에, 무턱대고 게이트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놈의 연구 결과.’

연구 결과에 눈이 돌아 삽질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력이 풍부한 곳일수록 각성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에 전 세계의 마력 밀도가 높은 곳을 샅샅이 수색했던 적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선택했던 건 지리산이었는데, 그곳에서 자연인처럼 살다가 반달곰을 만나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당연히 각성에는 실패했고.

[다음 소식입니다. 리얼의 상위 랭커였던 한경수 헌터가 이번 홍천에서 발생한 C급 게이트를 홀로 해결했는데요. 여러 번 접촉한 끝에 어렵게 모실 수 있게…….]

구석에 놓여진 텔레비전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한경수.

그의 발끝에 있던 리얼의 랭커였다.

물론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현재의 그는 한국에서 아주 잘 나가는 헌터다.

-반갑습니다, 한경수입니다.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는 한경수.

방청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삑-

보고 있기가 힘들어, 강현은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째깍. 째깍.

정적에 가까운 고요함이 흐르는 가운데, 탁상에 놓인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너무 얄궂잖아…….”

한경수는 잘나가는 헌터가 됐고, 그는 백수가 됐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는가.

‘한경수는 각성을 했고, 나는 각성을 못 했다.’

각성을 하지 못하면 헌터가 될 수 없으니, 그는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한 셈이다.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는데 경쟁할 기회조차 주지 않다니.

“후우.”

이 지긋지긋한 삶이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씨.”

너무 열을 받아서일까.

목이 탔다.

‘물이나 마셔야지.’

그가 부엌으로 향하려던 때였다.

‘그 일’은, 그때 일어났다.

슈우우우-

돌연, 세상이 멈춘다.

“…….”

째애-깍. 째애-애애-깍.

시계의 초침 소리가 늘어난 테이프처럼 늘어져서 들리고, 스스로가 눈을 깜빡이는 순간이 아주 오랜 일처럼 느껴진다.

“어……?”

처음 겪는 현상에 입에서 된소리가 나왔지만.

이상 현상은 끝난 게 아니었다.

눈앞이 새하얘지더니, 의식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의식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어딘가로 이동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휘이이-

피부에 이리도 차가운 공기가 느껴질 리가 없다.

눈을 감고 있다는 걸 자각한 강현은 감고 있던 눈을 떠보았다.

‘안 보여…….’

아무것도 안 보인다.

잠시 당황한 그였으나, 이내 자신이 있는 곳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설마 내가 참가하게 된 건가?! 그렇다면…… 빌어먹을 루드워크 왕국 놈들! 네놈들의 만행도 끝이다!”

“오옷…… 이곳은 혹시…… 매, 맹주님! 우리가 해냈습니다!”

그와 같은 현상을 겪은 걸로 추정되는 이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으니까.

한데 신기한 게 있었다.

‘배운 적이 없는 말들인데 뜻이 머리에 들어오잖아?’

한국어밖에 모르는 그였다.

지금 들린 언어는 전혀 모르는 말들이었는데도 그 의미가 생생하게 전달됐다.

그때.

파파팟-

사방이 환하게 밝아졌다.

“큭!”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눈부심에 그는 눈을 급히 가렸다.

한데 뜬금없게도.

“와아아아아-!”

슈우우- 콰콰콰쾅!

들려오는 건 엄청난 환호성과 폭죽이 터지는 소리였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어마어마한 지상 최대의 축제라도 벌어진 거라 착각할 만큼.

‘뭐야?’

그는 소리가 곧 멎을 거라 예상했지만, 귀를 울리는 소리들은 끝없이 이어졌다.

이쯤 되자 눈부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체 뭐야?’

그는 눈을 떴고.

“…….”

볼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광장에 모여 있는 백 명 가까이의 사람들과.

[아흔아홉 번째 참가자, 인간종(제3군소) 님의 ‘더 비욘드’ 참가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문구를.

강현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건 분명 메시지였다.

눈앞에 떠오른 문구를 본 찰나, 그의 머릿속을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이 장소가 어디인지부터 시작해서, 생전 처음 듣는 ‘더 비욘드’라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나, 인간종이라는 단어에 관한 의문이.

하지만 그가 가장 강하게 느낀 감정은 단언컨대 ‘당황스러움’이었다.

메시지라니.

“……꿈인가?”

팔을 꼬집어도 보고, 뺨도 때려보았다.

짝!

“아, 아프잖아…….”

알싸한 고통만 느껴질 뿐 메시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각성이라도 한 건가?’

잠깐 기대를 한 강현이었으나, 아쉽게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메시지를 받은 건 그만이 아니었다.

“이 이질적인 생김새의 광장과 끌어 올려지지 않는 내공……. 틀림없군! ‘그 경연’이다! 으하하하! 빌어먹을 마교 놈들아! 네놈들도 끝이다!”

“오오, 전설로만 전해져오던 경연에 내가 참가하다니……!”

바로 옆부터 들썩이며 소란이 일어댄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뭔 헛소리를 해댔던 것 같다.

강현은 메시지에서 눈을 떼어 조금 전 마교니 루드워크 왕국이니 떠들어대던 자들을 보았다.

마교 어쩌고 해대는 건 거지꼴을 한 사내였고, 루드워크 왕국 타령을 해대던 이는 얼핏 봐도 고귀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전혀 닮은 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

그러나 공통점은 있었다.

‘더럽게 시끄러운 거랑…….’

누군가를 찾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도, 두 눈만은 그들의 바로 앞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

거기서 어렵지 않게 모두의 눈에 메시지가 보였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나랑 다른 점이라면…….’

아까부터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말을 내뱉는다는 것뿐이다.

그건 청년과 거지만이 아닌 듯했다.

“---!”

분위기가 점차 뜨거워지며 광장 전체가 시끄러워졌으니까.

“서, 설마 내가 참가하게 되다니!”

“조상님,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누군가는 제 뺨을 꼬집었고, 누군가는 믿기지 않는지 입을 쩍 벌렸으며, 어떤 이들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이 자리의 대부분은 이곳에 대해 아는 듯했다.

‘뭐 하는 곳인지라도 알아야겠는데.’

납치된 건지 뭔지는 모르겠으니 그거라도 알아야 될 것 같았다.

강현은 봉두난발의 거지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 보았다.

“저기요. 여기가 정확히 어디죠?”

“으하하하하…… 음?”

혼자 미친놈처럼 웃던 거지가 얼굴을 바짝 들이댄다.

“그걸 모른단 말인가?”

“네.”

“짐작조차 안 간다고?”

“……그런데요.”

“네 세계에는 퍼지지 않은 모양이군. 이 전설이.”

“그러니까 무슨 전설…….”

이냐고요, 라고 하려는데, 뒤에 있던 어떤 중년인이 격앙된 어조로 끼어들었다.

“으하하! 애송아, 잘 들어라! 잘 모르겠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이건 엄청난 행운이니까!”

중년인의 말에 거지가 느닷없이 두 손을 위로 치켜든다.

“하하하! 그쪽은 알고 있는 듯하군! 그래, 이 자리의 모두는 어마어마한 기회를 손에 쥔 셈이지! 그건 그렇고, 설마 무림에서 온 건가?”

“그렇다만……. 혹시 그쪽도?”

“하하하! 바로 보았네!”

그러더니 둘은 얼싸안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

갑작스러운 상황에 강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그리고 그때, 화룡점정을 찍는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쿠구구구-

돌연 광장의 중앙에 드높은 기둥이 솟아오르더니.

턱-

아기자기한 인영이 그 위로 폴짝 올라선 것이다.

“어?”

기둥에 올라선 이를 확인한 순간, 강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분홍빛이 만연한 토실토실한 볼.

웃고 있는 듯한, 솟아오른 입꼬리.

“……돼지?”

기둥에 폴짝 올라선 건 누가 봐도 돼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만 돼지의 머리를 달고 있는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꼬마의 체형에 돼지의 머리가 달린 기형적인 모습이었는데, 한눈에 봐도 가면이나 탈은 아니었다.

게다가 한 손에 든 짤막한 마이크는 또 뭔지.

“…….”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고 했던가.

강현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의 당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아아, 마이크 테스트.]

돼지는 지금 그가 학창시절 수련회에서 자주 들었던 익숙한 문장을 말하고 있었다.

[여러분들, 잘 들리십니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명백한, 인사말이었다.

* * *

“…….”

갑자기 등장하여 말을 건네는 돼지.

이런 상황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들떠 있던 광장 안의 이들은 빠르게 조용해져 갔다.

춤을 추던 중년인과 거지도 그랬고, 강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이게 무슨 개같은 일이지.’

생각을 해보라.

정신을 차려보니 처음 보는 광장으로 이동해 있는 데다가, 주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잔뜩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느닷없이 10m가 넘어 보이는 기둥이 나타나질 않나, 그 위에는 돼지머리를 단 꼬마가 올라서 있다.

스스로를 정상인이라 생각하는 그로서는 무어라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고작해야 눈을 깜빡이는 정도.

‘꿈도 아닌 것 같고.’

아까 스스로를 꼬집고 때렸을 때 생생한 아픔이 느껴지던 걸 생각해 보면, 지금 그가 겪는 이 모든 일들은 현실이었다.

급작스럽고, 당황스러운 현실.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현재 강현에게 필요한 자세는 딱 하나였다.

‘집중.’

정보를 조합해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했다.

가급적 몸 성히 돌아가는 쪽으로.

그는 돼지의 입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귀를 기울였다.

[음……. 이 돼지(pig)라는 생명체는 여기 있는 종족들 모두가 잘 알고 있을 테고……. ‘통합 언어팩’도 잘 작동하고 있네요.]

무어라 혼잣말을 한 돼지는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대고 크게 외쳤다.

[그럼 들리는 건 문제없는 걸로 알고,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자- 신사 숙녀 여러분!]

돼지가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DBC(Dimension Broadcasting Corporation)에서 이번 경연을 맡게 된 연출 프로듀서, 로독이라고 합니다. ‘더 비욘드’에 참가하신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자신을 로독이라 소개한 돼지가 입가를 쩍 벌리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돼지의 머리에 인간의 웃음이 깃든 그 모습이 강현에게는 더없이 기괴하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소환에 당황하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눈치가 빠른 분들은 짐작하고 계실 테지요. 그래도 다 같이 아는 게 좋겠죠?]

로독이 두 팔을 쫙 벌리며 외쳤다.

[‘더 비욘드’란 수백 개의 종족이 <초월>이라는 목표를 두고 경쟁하는, 전 차원 최고의 서바이벌 오디션!]

[하하, <초월>이 정확히 뭐냐는 의문을 품으시는 분이 계시겠죠.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각 종족들의 한계를 돌파하게 해준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마디로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강해지는 것이죠! 종족을 <초월>한 ‘초월자’분들은 모두 위대한 초월계로 올라갈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아흔아홉의 인간종 여러분들은 스스로의 종족, 나아가서는 차원의 대표로서 바로 그 ‘더 비욘드’의 예선에 참가하게 될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분은 여러 미션을 통해 여러분들 스스로를 증명해 나가게 될 겁니다. 이 예선에서 일곱 명 안에 들면 본선에 진출하게 되어 <초월>에 한 발짝 가까워지게 됩니다! 와우! 정말 대단하죠?!]

짝짝짝짝-!

로독이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손뼉을 쳐댄다.

[형평성을 위해 모든 경연 과정은 저희 DBC에 의해 전 차원으로 송출될 것이며, 시청자 투표와 성적을 합산하여 일정 주기로 순위를 발표하게 됩니다. 순위가 높으면 살아남고, 낮으면 탈락하겠죠?]

속사포처럼 내뱉은 로독이 활짝 웃었다.

[아직 적응이 안 된다는 표정들이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당장 모든 걸 알아야 할 필요는 없기도 할뿐더러, 앞으로 차근차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도울 테니까요. 가령, 오늘 준비한 미션처럼요!]

[오늘의 미션은…… 바로,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간단한 튜토리얼입니다-!]

로독이 손짓하자 허공에 거대한 영상이 나타났다.

해가 쨍쨍한 어느 해변이었다.

[아름다운 해변이죠?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나름의 고충이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제 곧 저 해변으로 이동하여 튜토리얼을 수행하게 될 겁니다. 앞으로 진행될 미션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여러분 개개인의 수준을 평가하는 개별 평가를 진행하기 위함입니다!]

“……!”

[내용은 모두 공통이며, 각자 치르게 됩니다. 튜토리얼인 만큼 안내 메시지를 첨부해 드릴 예정이니 그다지 혼란스럽지는 않을 거랍니다! 오늘 촬영이 진행되지는 않을 예정이니 너무 긴장하지 말아주시고요! 그럼 이만…… 아! 가장 중요한 내용을 넘어갈 뻔했군요.]

로독이 씩 웃었다.

[튜토리얼을 수행하는 과정은 한 분도 빠짐없이 저희 트레이너들이 체크하여 등급을 부여할 예정이니 그 점을 꼭! 참고해 주시길!]

[아쉽게도 저희가 오늘 준비한 건 이 튜토리얼뿐이기에, 미션을 완수한 참가자들은 다시 원래 차원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촬영은 하겠지만, 따로 내보내지는 않을 거구요! 모두 이해가 되셨나요?!]

로독의 말에 누군가 쭈뼛거리며 질문했다.

“그…… 튜토리얼이란 걸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겁니까? 만약 통과하지 못한다면 어찌 되는지…….”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로독의 눈이 광장의 몇몇 곳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안타깝게도 더 비욘드에 참가할 수도, 원래 차원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겠죠.]

착각일까.

“……?”

강현은 그 순간 로독의 시선이 자신에게도 향한 것 같다고 느꼈다.

하나 그것은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

그가 로독의 시선을 느꼈을 때, 어느새 로독은 시선을 거두고는 어깨를 으쓱이는 중이었다.

[말이 길어지면 좋을 게 없죠. 알려드려야 할 건 알려드렸으니, 아무래도 여기서부터는 직접 체험해 보는 게 낫겠네요.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니까요. 자, 그럼…….]

말을 마친 로독이 손가락을 맞부딪치며 딱 소리를 내자.

슈우우우-

하얀 빛무리가 올라왔다.

‘이건…….’

강현이 눈매를 좁혔다.

처음 자신이 소환될 때 봤던 그 빛이었다.

슈와아아-

빛이 순식간에 광장 전체를 감쌌다.

[다시 좋은 모습으로 만나 뵙기를 바라면서, 갑니다! 여기까지 로독이었습니다!]

빛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로독이 뱉은 신명 난 인사와 함께.

슈아아아-

강현은 다시 의식이 어디론가 향하는 걸 느꼈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로독이 설명했던 해변으로 이동했다는 것과 미션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경위는 간단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가 코와 귀를 간질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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