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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217화 (217/234)

217화 성전 (7)

-그것은?

멈칫한 천사는 순식간에 원래 자리로 돌아와 날개를 펼친 뒤, 수많은 눈동자로 요안나가 들고 있는 주머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역시! 마왕의 마석이로구나!

“마왕의 마석?! 그게 뭐야? 난 처음 듣는데…….”

요안나는 당황하며 주머니 안을 봤다.

그러자 검붉은 빛이 치솟더니 하늘 끝까지 닿는 게 아닌가?

누가 봐도 불길하고 사악한 빛이 청명한 하늘을 더럽혀 붉게 물들였다.

“이,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야. 위자르샤한테 받은 걸 썼을 뿐이…….”

뭔지 모르지만,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걸 깨달은 요안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변명했다.

그러나 천사는 이미 잔뜩 화가 난 듯 중앙의 눈동자가 새빨개지는 걸 시작으로 그 많은 눈동자가 모두 뻘게졌다.

심지어 날개마저 붉은색으로 물들더니 붉은 피를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신의 대리자가 사악한 자의 손에 놀아난 것부터가 잘못이다. 오히려 평범한 이보다 더욱 큰 죄를 범한 것이니…….

“그, 그런.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겁을 덜컥 집어먹은 놀란 요안나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빌었지만, 천사는 분노한 어투로 선언했다.

-용서는 없다. 영원한 죽음으로 속죄하라.

천사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자 맹렬한 불길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아갔다.

쾅!

하지만 그 불길은 요안나가 신성력으로 펼쳐 둔 방어막에 적중했다.

당장 불길을 막아 내긴 했지만, 방어막도 깨졌다.

요안나와 그 주위에 있던 이들은 그걸 보고 기겁했다.

당장은 목숨을 건졌지만, 저 강력한 방어막이 깨진 것만 해도 천사가 진심으로 해치려고 하는 게 증명된 거였기 때문이다.

“꺄아악! 억.”

요안나는 방어막이 깨지면서 충격을 받았는지 비명을 지르며 혼절했다.

그걸 본 모두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이대로라면 모두 죽을 거야.”

“어서 도망치자!”

“요, 요안나님. 도망쳐야 합니다.”

그 와중에 요안나를 추종하던 신전 기사들이 어떻게든 요안나를 데리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천사의 공격은 계속됐다.

-죄인을 도망치게 하는 것도 중죄다!

천사가 피로 물든 날개를 퍼덕이자 핏방울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저건 뭐야. 으악! 내 눈…….”

“뜨, 뜨거워!”

“으아아아아아아악!”

핏방울에 놀라서 쳐다보던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불에 덴 것처럼 아주 뜨거운 데다가 황산처럼 닿은 부분이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갑옷과 방패도 녹아내릴 정도였다.

“아, 안 되겠다. 성녀를 내줘 버려!”

“여기로 못 오게 막아!”

“저리로 밀어내!”

추종자들이 성녀를 감싸 성전군 안쪽으로 파고들려는 걸 다른 이들이 끄집어냈다.

그들로서는 성녀와 함께 죽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에잇. 안 되겠다.”

“우리가 피해야지.”

추종자들이 끈질기게 성녀를 데리고 오자, 다들 포기하고 최대한 성녀에게서 떨어지려고 애썼다.

그때 천사의 불꽃이 다시 한번 성녀에게 쏟아졌다.

“젠장!”

“으아아악!”

“크어억. 성녀님을 지켜라.”

주위에 있던 이들은 모두 새카맣게 불탔다.

추종자들도 불타면서도 성녀를 지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성녀만은 그 불길에 휩싸이고도 신성력 때문인지 무사했다.

그러나 추종자도 대부분 죽거나 다치고, 주변의 사람들도 요안나에게서 최대한 거리를 두려는 상황.

이제 천사가 요안나를 응징하는 데 거칠 게 없었다.

-타락한 신의 대리자여, 영원한 죽음으로 속죄하라!

천사가 준엄하게 일갈하며 다시 한번 불꽃을 내뿜었다.

그 모습을 보며 주위에 있던 성전군들은 내심 안도했다.

성녀가 타 죽으면 응징을 마친 천사가 돌아갈 거라고 기대해서였다.

하지만.

불꽃이 가라앉은 뒤, 요안나의 앞을 웬 소년과 소녀가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닌가?

성전군에서는 누군지 몰랐지만.

아네스와 루크였다.

“고마워, 루크. 네 덕분에 간신히 막을 수 있었어.”

그 말대로 오러를 일으켜 루크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기에 간신히 제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헤헤. 이 정도쯤이야.”

-위엄에 처한 여인을 구하는 거야말로 성검의 도리 아니겠소?

아네스의 인사에 루크가 멋쩍어하는데, 이제 성검을 자처하는 마검 리키드가 초를 쳤다.

한편 천사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의아한 눈빛을 했다.

-그대는 왜 또 타락한 대리자를 막는가. 서로 대립하던 거 아니었나?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요.”

-누구나 생명은 소중하다는 건가. 필멸자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만든 거짓된 말에 불과하거늘.

“그것도 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데…….”

-어쨌든 죄인을 감추는 것 또한 공범. 그대가 신의 대리자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천사는 아네스의 대꾸를 무시하고는 이번에는 핏방울과 불길을 동시에 퍼부었다.

“크윽.”

그걸 막아 내던 아네스의 신성력이 한계에 도달했는지 몸을 휘청였다.

“이런.”

루크는 황금 금속기를 작동하며 오러를 머금은 리키드를 휘둘렀지만, 이내 불길에 밀려 날아갔다.

대신 부서진 황금 금속기의 방어막이 아니었다면 생명이 위험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이번 공격을 어떻게 버텨 냈지만, 다음 공격을 막아 낼 힘은 없었다.

“이제 끝장인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힘인가…….”

루크와 아네스가 천사가 내뿜는 불길 앞에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엄청난 냉기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천사의 불길을 몰아내는 게 아닌가?

자신이 누구 덕분에 살아났는지 확인한 루크가 소리쳤다.

“카엘 님!”

“나서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네스가 미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루크를 데리고, 요안나를 구하기 위해서 달려오면서도 안 도와줘도 된다고 외치고 온 참이었다.

천사를 상대할 자신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간 여러모로 보살펴 준 카엘을 저버리고 멋대로 적을 구하러 가는 셈이라 죄송한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그래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단 말이야. 왠지는 모르지만…….’

아네스는 자신의 뒤에 기절해 있는 요안나를 바라봤다.

그때 카엘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잘했어. 생각해 보면 저 정도 신성력을 가진 아이가 죽어도 곤란하겠더라고.”

안 그래도 마왕의 부활을 막고자 세계에 증가하고 있다는 마력 수치를 신경 쓰고 있는 참이었다.

그런데 무한에 가까운 신성력을 가진 성녀를 그대로 죽게 둔다?

여러모로 손해가 컸다.

반면에 천사는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는 듯 분노하며 재차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잔챙이들이 감히 나를 귀찮게 하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카엘이 얼른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걸었다.

“이쯤 혼내셨으면 성녀도 정신을 차렸을 테니, 이만 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

-신의 징벌에는 가감이 있을 수 없다.

‘역시 안 되는가?’

카엘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천사가 곧바로 거절하자 입맛이 썼다.

아조트의 말에 따르면 천사는 일전에 상대했던 솔국의 대왕이 마왕의 마석을 부착했을 때만큼 강하다고 했다.

그때도 상대가 자신의 신체가 감당 못 할 힘을 발휘하느라 폭주해서 겨우 이겼다.

하지만 천사가 폭주할 리도 없으니 가능한 한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성녀를 둘이나 잃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카엘을 지켜보던 천사의 눈빛에 이채가 어렸다.

-그대는 신기한 존재군. 분명 신의 부산물로 보이는데, 신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 있어.

‘설마 내가 회귀한 걸 눈치챈 건가?’

-그것마저도 신께서 의도한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그분의 뜻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봐줄 기미가 보인다는 거였다.

“그러면 이대로…….”

-하지만 이대로 갈 수는 없으니 그대를 시험하겠다! 받아들이겠는가?

카엘의 말을 끊은 천사가 물었다.

‘시험?’

어쨌든 카엘로서는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좋다.

그 말에 천사는 일순간 여러 개의 눈을 동시에 감았다.

그 순간, 카엘은 사방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가?

“어, 어?”

당황하고 있는데 솔국의 대왕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마왕의 마석을 부착한 채로.

‘설마, 이 녀석과 싸워서 이기라는 소린가?’

승산이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싸우기 위해 힘을 끌어모으려고 했다. 하지만 텅 빈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이런.’

결국, 피하지도 못하고 대왕의 공격을 받은 카엘의 시야가 캄캄해졌다.

‘설마 실패? 그럼 이대로 죽은 건가?’

그 순간.

눈앞에 밝아지며 다른 상대가 나타난 게 아닌가?

드래곤 모습의 라 키레아스였다.

“잠시만요, 라 키레아스님.”

카엘이 아는 체하며 불렀지만, 라 키레아스는 무심한 얼굴로 입을 쩍하고 벌리더니 드래곤 브레스를 쏟아 냈다.

“으아아아아아악!”

불꽃에 휩싸인 카엘이 괴로워했다.

그대로 몸이 불타서 죽나 싶었는데 다시 시야가 캄캄해지더니, 다른 상대가 나왔다.

그렇게 카엘을 아라흐레나 히드라를 비롯해 마주쳤던 각종 몬스터들과 싸우고, 수십 번의 죽임을 당했다.

심지어 그때마다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기한 인간이로군. 그렇게 죽고도 정신이 온전한 건가.

카엘은 기가 막혔다.

죽음의 고통을 겪게 하면서 그걸 버틴다고 신기해하다니.

하지만 이 정도의 고통은 회귀 전 카엘이 아파서 누워서 겪었던 고통과 클리페우스성이 무너질 때 느꼈던 무력감에 비교할 바가 못 됐다.

그때였다.

이번에는 오크 로드가 상대로 나타났는데, 뭔가 예전과는 다른 게 아닌가?

인간에게 뺏은 듯 금은보석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아. 이 녀석은…….’

분명 회귀 전에 자신을 죽였던 오크 로드였다.

‘이 녀석만은 어떻게든 이기고 싶은데…….’

카엘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제까지와 달리 전의를 불태우며 달려들었을 때였다.

서로 부딪치기 직전, 오크 로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게 아닌가?

카엘은 어느새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음? 어떻게 된 거지?”

뜬금없는 상황에 의아한 얼굴로 천사를 바라보는데, 천사가 말했다.

-이제야 그대의 정체를 깨달았다.

“……?!”

-다시 얻은 기회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해도 될 것을. 그대는 인간을 뛰어넘는 희생정신을 가졌구나.

‘그걸 희생정신이라고 할 수 있나?’

몬스터 대침공에 이어서, 마왕의 부활까지.

카엘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사는 세상의 멸망을 막으려고 애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해는 안 갔지만, 분위기상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천사의 시험에 통과하긴 한 모양인가 보네.’

-내 힘이 필요로 할 때 이걸 불태우도록.

천사는 그 말과 함께 그대로 허공으로 올라갔다.

뭔가 받을 거라고 기대했던 카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태우라는 거지?’

그때, 깃털 하나가 살랑살랑 내려오더니 카엘의 손에 조용히 안착했다.

그러는 사이 천사가 하늘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드디어 저 끔찍한 천사가 돌아간 거였다.

* * *

한편 위자르샤는 성전군의 진영 바깥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기회에 성녀를 제거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실패하다니.’

안타까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둘이나 제거할 기회였는데 무산된 거였다.

‘아쉽군.’

그러면서도 그렇게 훼방 놓은 인간을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카엘이라는 인간인가.’

강림한 천사를 설득해 돌려보낼 수 있는 인간이 있으리라는 건 위자르샤도 예상 못 한 거였다.

‘전성기의 마왕님도 차라리 싸워서 쫓아내는 건 모를까. 대화로 돌려보내다니…….’

카엘이 고통 속에서 수십 번을 사망했지만, 바로 깬 것처럼 보였기에 대화한 거로 오해한 거였다.

어쨌든 위자르샤도 어디까지나 카엘 개인에게 조금 흥미가 생겼을 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당기려던 마왕님의 부활 시기가 조금 늦춰졌을 뿐 계획에 큰 차질은 없으니까.

“그때까지 즐기는 게 좋을 거야.”

위자르샤는 카엘을 향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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