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210화 (210/234)

210화 마검과 성검 사이 (3)

“저 사람을 찌르라고?”

루크가 놀라서 되묻자, 리키드가 대수롭지 않은 듯 끔찍한 말로 대꾸했다.

-그래. 심장을 찔러야 해.

“그, 그럴 수는 없어.”

-이대로라면 너도 죽을지도 모르고. 다른 인간들을 더 해칠 텐데?

“크윽!”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네 소중한 사람도 해칠 수도 있잖아. 그럴 바에는 한 명쯤 희생시켜서 막는 게 낫지 않겠어?

“…….”

계속되는 리키드의 압박에 루크가 입을 다물었다.

더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거였다.

리키드는 그 모습을 보고 거의 다 넘어왔음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양심의 가책.

그것도 리키드는 손쉽게 해결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쉽게 하지 못하겠지.

“…….”

-못 하겠으면 내가 대신 해 줄게.

그 말에 루크가 움찔했다.

-너는 마음 놓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달콤한 목소리로 말한 리키드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다.

이대로 흔들린 루크가 의식을 조금이라도 놓으면, 자신이 저 몸의 통제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소드 마스터의 신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잔뜩 피를 먹으며 날뛸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아니야. 내가 할게.”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리키드의 제안을 거절했다.

리키드는 내심 감탄했다.

확실히 어리긴 해도 소드 마스터라서 그런지 의지력이 대단하군.

그 결정이 실망스럽긴 해도 리키드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양심을 저버리고, 순간적으로 힘을 얻기 위해 다른 인간을 해치는 거야말로 타락하는 첫걸음이니까.

‘차근차근 무너트리는 재미도 있는 법이지.’

어쩌면 막상 같은 동료였던 인간을 해치우자마자 충격을 받아 단번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도 있었다.

-어서! 온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를 계속 주목하고 있던 리키드가 소리쳤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던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판단을 끝내고 덤벼든 거였다.

“알았어.”

그렇게 중얼거린 루크가 검을 높이 들었다가 그대로 아래로 내찔렀다.

푹!

‘피다! 피!’

리키드는 환호했다.

끈적거리는 달콤함을 느끼며 피를 흡수해 그 안의 생명력을 마력으로 변환했다.

그런데 그 힘이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강한 게 아닌가?

피의 주인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아주 강한 게 틀림없었다.

소드 마스터 정도로.

‘소드 마스터? 이런 미친!’

그제야 리키드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깨닫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루크가 자신을 들고 찌른 건 레인저의 심장이 아니라.

루크의 심장이었던 거였다.

자신의 심장을 찌른 루크는 입가에 피를 흘리며 물었다.

“이래도 되지?”

-되긴 되지만……. 아니, 이러면 안 되지!

리키드가 소리쳤다.

이 미친 녀석 때문에 자신도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분명 피를 마시고 힘을 얻기만 하면 자신이 이 소년의 신체를 움직여 싸울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심장이 멈추고 죽어 버리면 리키드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젠장. 일단 저 녀석부터 해치우고 봐야겠어.’

리키드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루크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 부탁…….”

멋대로 움직이는 자신의 손발을 보던 루크는 중얼거리다 순식간에 시야가 새빨개지는 것과 동시에 의식을 잃었다.

* * *

“헉!”

루크가 깊은숨을 토해 내는 것과 동시에 눈을 떴다.

몸이 가벼운 게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했다.

처음 겪는 신기한 느낌에 손을 들어 보니까 손부터 전신에 희미한 빛이 맴돌고 있었다.

그 빛은 아주 따뜻하고 포근했다.

영원히 잠들고 싶을 정도로.

‘…설마 죽은 건가?’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들었군. 다행이야.”

어느새 나타난 카엘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엘 님, 여기는…….”

“클리페우스성이야. 무사히 돌아왔어.”

“틴달로스의 사냥개는요?”

“틴달로스의 사냥개?”

카엘도 처음 듣는 소리에 되묻자, 아조트가 설명했다.

-마계와 이곳의 차원의 틈을 넘나드는 몬스터야. 여기서는 어지간해서는 볼 일이 없을 텐데.

“최근에 몬스터들이 많이 죽어서 나타난 거라고, 리키드가 말했습니다.”

-그래? 어쨌든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나타났다면, 너도 상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겠네. 인간의 힘은 안 통하니까.

아조트가 순순히 납득했다.

“…근데 전 어떻게 여기에 온 건가요?”

“회색산맥에서 구조 신호가 보이길래 소피아, 브로칸과 함께 달려갔거든. 쓰러져 있길래 구해 온 거야.”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카엘은 자신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루크에게 옆을 보라고 눈짓하며 말했다.

“그보다 아네스 좀 말려 봐.”

“아네스요?”

루크는 그제야 자신의 곁에서 기도하고 있는 아네스를 발견했다.

자신의 몸에 맴돌던 희미한 빛은 바로 아네스의 신성력이었던 모양이었다.

“네가 다쳐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울고불고하다가 계속 저 모습으로 기도 중이야. 덕분에 약효가 더 빨리 돌아서 금방 회복하긴 했지만, 너무 무리하면 안 좋으니까.”

“아, 네.”

카엘의 말에 루크는 아네스를 살폈다.

아네스는 무아지경에 빠졌는지 하얀 눈으로 계속해서 입을 달싹거리며 기도하느라 루크가 깨어났는지 모르는 듯했다.

“아네스…….”

루크는 나직이 이름을 부르며 아네스의 한데 모인 두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만해. 난 이제 괜찮으니까…….”

“…….”

그제야 기도를 멈춘 아네스가 루크를 바라보자 이내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다행이야…….”

그러더니 그 말을 끝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아네스?! 아네스!”

루크가 떨어지지 않게 붙잡았는데, 몸을 흔들며 이름을 불러도 깨어나지 않았다.

카엘은 얼른 아네스를 살펴보고 말했다.

“괜찮아. 계속 힘을 잔뜩 써서 피로한 데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거니까. 쉬면 괜찮을 거야.”

“아, 네.”

카엘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루크는 그제야 안심했다.

“일단 좀 더 쉬게 해야겠어.”

아네스를 옆 병실에 편안히 눕히기 위해 데려가던 카엘이 한쪽에 세워진 검을 보며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참, 리키드한테도 고맙다고 해.”

“리키드요?”

“사상자가 여기저기 있어 수습하는 와중에 리키드가 날아와 네 위치를 알려 줘서 빨리 찾을 수 있었으니까.”

“아.”

“심장이 찔렸던데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거든.”

“네…….”

루크는 복잡한 심경으로 대답했다.

서슴없이 자신더러 타인을 살해하라고 하던 마검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다니.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리키드가 세워져 있던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대뜸 고개를 숙였다.

“살려 줘서 고마워.”

-흥, 네가 죽으면 나도 곤란하니까.

리키드는 일부러 잠자코 있었는지 곧바로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놀랐다.

‘정말로 마검인 나한테 고맙다고 하다니…….’

마검으로 살아온 지 수백 년이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하나같이 피를 갈구하고 피를 통해 강해지고 싶은 인간들과만 엮인 탓도 있지만.

어쨌든 그 말이 리키드의 심금을 울린 거였다.

심지어 루크는 그 이후로도 리키드를 애지중지하면서 관리했다.

‘뭐, 내가 마검이라고 불리긴 해도 저 녀석 손에 있을 때는 좀 착하게 굴어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 봤자 몇십 년일 테니까.’

거기에 감명받은 리키드가 이런 마음까지 먹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리키드의 마검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일이 생겼다.

“리키드, 카엘 님이 피를 흡수 안 하고도 네 마력을 보충하는 방법을 찾았대!”

-정말?!

* * *

리키드가 착하게 구는 것과 별개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피나 흡수해서 되는 건 아니었다.

작은 동물이나 새는 의미가 없었고, 적어도 사람이나 곰 같은 강력한 생물의 피를 흡수해야 했다.

특히 강할수록 강한 힘을 흡수할 수 있었다.

아조트가 한심한 듯 말했다.

-나처럼 마력을 흡수할 수 있으면 될 텐데.

-그게 가능하면 진작 그렇게 했지. 나라고 번거롭게 피에 잠재된 생명력과 마력을 빨아들이고 싶겠어?

리키드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두 마검이 티격태격하기 전에 카엘이 끼어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피처럼 힘이 깃든 액체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니까 바로 나오더라고.”

-그래, 그걸 보여 준다고 해서 왔잖아. 어서 꺼내기나 해 봐.

그 말에 카엘은 두 개의 포션병을 꺼내 보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백갑신병과 흑갑신병을 성갑신병과 마갑신병으로 재배하기 위해 쓰는 물약이 있거든. 바로 마석을 물에 녹인 마력수와 성수지.”

-오. 어서 그 마력수라는 걸 줘 봐. 얼마나 강해지는지 확인해 봐야지.

리키드의 재촉에 카엘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마력수? 너는 주로 루크가 쓸 거니까 마력보다는 신성력을 품은 성수가 좋지 않겠어?”

루크는 주로 성기사 프레데릭와 파나틱 신전 기사단, 그리고 성녀 아네스와 함께 지냈다.

게다가 마력보다 얻기도 쉽고, 앞으로 상대할 몬스터들을 생각하면 신성력을 사용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했다.

카엘의 말에 리키드가 움찔했다.

-설마 정말 내게 성수를 먹일 작정인 건 아니겠지?

“한번 먹어 봐. 안 통하면 마력수라도 줄 테니까.”

카엘이 그러면서 성수가 든 포션 병을 들고 접근해 오자 리키드가 통통 뛰면서 도망 다녔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빼지 말고 한 번만 흡수해 봐.”

-싫다니까! 성수에 닿으면 아프단 말이야!

“카엘 님?”

리키드가 고통스럽다는 말에 안쓰러웠는지 루크가 불렀다.

저렇게 싫어하는데 그냥 마력수를 먹여 보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괴로운 거야 지금 마력으로 이뤄져 있어서 그런 거야. 신성력으로 가득 채우면 더 괴롭지도 않을걸?”

-뭐, 틀린 소리는 아니긴 하지. 그렇게 되면 이제 마검이 아니라 성검인가?

“성검…….”

카엘에 이어 아조트까지 거들자 루크도 혹한 듯했다.

“리키드, 한 번만 시도해 보는 게 어때?”

-싫어, 싫다니까. 왜 멀쩡한 마검을 성검으로 만들려고 그래.

“물어볼 게 뭐 있어? 뿌리면 끝인데.”

카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성수를 리키드에게 뿌렸다. 그러자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리키드가 뻘겋게 달아올랐다.

-으악. 뜨거워, 뜨거워.

“어영부영하면 더 괴로우니까 후딱 해치우는 게 나아.”

카엘은 괴로워하는 리키드를 잡아다가 성수 포션에 푹 담갔다.

그러자 연기가 한층 더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처음에는 시커멓던 연기가 점점 하얗게 변하더니. 마지막에는 더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이제 된 거 같은데.”

카엘은 성수 포션이 바닥이 난 걸 보고 리키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검신에서 불길하고 위협적인 마력 대신 따스하고 온화한 신성력이 내뿜어지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아조트가 감탄했다.

-오. 정말 성검이 됐잖아.

“자, 여기 받아.”

카엘이 내민 리키드를 건네받은 루크가 물었다.

“괜찮아? 리키드?”

-훗. 소년이여,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다행스럽게도 이 몸은 이제 깨끗한 몸으로 다시 태어났네. 앞으로는 성검 리키드라고 불러 주면 고맙겠어.

“어, 어.”

난데없이 느끼한 말투에 루크가 움찔했다.

-서, 성격마저 변해 버리는 건 좀 징그럽네.

질색하는 아조트에게 카엘이 물었다.

“어때? 너도 성검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절대 싫어! 차라리 그냥 소멸하고 말지.

아조트가 정색하며 거절하는 걸 보고 카엘과 루크가 웃었다.

그리고 이틀 뒤. 레오폴드가 소식을 전해왔다.

제국 교단의 본대가 드디어 국경 인근까지 도착했다는 거였다.

‘드디어 이쪽도 움직일 때가 됐군.’

카엘은 국경으로 싸우러 갈 지원병을 모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