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208화 (208/234)

208화 마검과 성검 사이 (1)

카엘이 드워프 공방으로 갔을 때, 대장장이 블렌트는 아주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제가 부탁드린 거 다 끝내셨나 봅니다.”

“물론. 심지어 그 이상을 해냈지.”

“네? 정말입니까?”

카엘이 부탁한 건 미처 완성 못 한 황금 금속기의 완성.

리저드맨 대장장이가 제작했던 기간을 생각하면 아직 한창 만들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벌써 다 만든 데다 그 이상을 해냈다니?!

처음 만들어 보는 장비였는데도 그런 성과를 낸 거였다.

‘역시 드워프의 솜씨는 대단하군.’

카엘은 감탄하며 블렌트를 재촉했다.

“뜸은 그만 들이시고, 얼마나 대단한 걸 만드셨는지 보여 주세요.”

“하핫. 그럴까?”

블렌트는 웃으며 카엘에게 황금 금속기 무기를 하나 건넸다.

여러 사람이 두루 쓸 수 있게 검으로 만든 거였다.

“혹시 차이점을 알겠는가?”

“이것만 봐서는 잘 모르겠네요.”

카엘이 잠깐 살펴본 뒤 대꾸하자. 블렌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겉으로는 다를 게 없거든. 한번 작동해 보게.”

그 말에 카엘이 기를 황금 금속기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우웅.

황금 금속기가 발동하며 검신이 찬란한 황금빛을 발했다.

다만, 전보다 검신을 에워싸는 빛이 훨씬 강한 게 아닌가?

“위력이 세진 거 같은데요.”

“맞아. 황금 금속기에 룬을 새겨 넣는 데 성공했거든. 거기다 강화의 룬을 새겼더니 강해졌지 뭐야.”

“정말입니까?!”

카엘은 깜짝 놀랐다.

룬은 드워프만이 새길 수 있는 고대어.

그 글자를 새기는 것만으로 특수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걸 황금 금속기에 새길 생각을 하다니.’

심지어 그 능력도 아주 강력해 보였다.

‘근데 원래 이렇게 강해지진 않을 텐데. 아, 혹시 황금 금속기에 잠재된 마력을 쓰기 때문인가.’

룬만 새겼다고 힘을 발휘하는 건 말이 안 됐다.

룬이 특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건 어디까지나 세상에 맴도는 마력을 끌어당겨 쓰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황금 금속기에는 잠재된 마력이 잔뜩 있어 그걸 끌어다 쓰다 보니 위력이 강화된 모양이었다.

“원래 라이칸스로프들이 쓰는 월도 갑옷에 황금 금속기 재료를 덧대 보려고 했거든.”

“네.”

“그렇게 되면 방어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테니까.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그냥 황금 금속기에 바로 새겨 보니까 되더라고.”

“그 위력은 황금 금속기가 가진 마력 때문에 몇 배로 증가했고요.”

“어. 바로 눈치챘나? 역시 카엘이야. 어때? 이거라면 황금 금속기를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을 거야.”

기뻐하는 블렌트와 달리 카엘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음…….”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월도 갑옷에 황금 금속기를 덧대 보려고 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더 응용할 방법이 있을 거 같아서요.”

“응용?”

황금 금속기에 룬으로 잠재된 마력을 유도해 특별한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단순히 강화 외에도 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카엘은 블렌트에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고 물었다.

“…이런 건 어떤가요?”

“호오. 재밌겠는걸? ”

블렌트가 흥미를 보인 건 다행이었지만, 중요한 건 실현 가능하냐는 거였다.

“이대로 만들 수 있을까요?”

“문제없어. 어떤 의미로는 월도 갑옷을 만드는 것보다 간단하니까.”

블렌트의 호언장담에 카엘은 자신이 들고 온 사진참사검과 마검 아조트와 리키드를 끌러서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맡겨 두라고!”

카엘은 자신감 넘치는 블렌트과 헤어진 뒤,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바로 세계수였다.

* * *

세계수는 회색산맥의 몬스터를 막는 장벽 안쪽에 있었다.

엘프들은 거주 구역이 따로 있음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세계수의 근처에서 보냈다.

지금도 도착하니까, 엘프들 대부분이 나무 기둥과 이파리를 쓰다듬거나 기대어 쉬거나 나무줄기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세계수가 아무리 크고 울창하게 자랐어도 삭막하고 높은 장벽 안쪽에 혼자 덩그러니 있었기 때문이다.

장벽을 강화하기 위해서 여기에 세계수를 심었는데, 막상 크게 도움이 필요한 일은 발생하지 않은 거였다.

큰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없었어도 이겨 내는 데 문제는 없었다.

한편 카엘이 다가오는 걸 본 엘프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반겼다.

카엘도 인사를 하는데, 엘프 자매 중 노아나와 데키마가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아까부터 저기 계셔서 이쪽을 보고 계신 거 같았는데, 언제 오시나 했어요.”

“…무슨 생각 중이었어?”

카엘은 세계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 들켰나?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괜찮은 위치에 세계수를 심을 걸 그랬다고 조금 후회했어.”

그러자 노아나가 정색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다시는 못 볼 것만 같았던 세계수를 얻게 된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요.”

“…맞아.”

“위치는 다시 세계수의 열매를 얻어 심으면 돼요.”

“…언니 말대로야.”

데키마가 기운 없이 맞장구치는 걸 보고 웃으며 카엘이 물었다.

“세계수의 열매가 나오려면 얼마나 걸려?”

“지금 상황을 봐서는 한 일이 년 정도 걸릴 거 같아요.”

“어, 생각보다 빠르네?”

“다만 열매가 나와도 제대로 된 씨앗이 있는지는 나와 봐야 알아요. 운이 나쁘면 수백 년 동안 씨앗이 하나도 안 나온 적도 있다니까요.”

“그렇군.”

“그래서 매일 정성을 쏟는 중이죠.”

세계수에게 말을 걸고 노래를 부르는데도 그런 의미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참, 콩나무들은 어떻게 됐어?”

금갑장군에게 받은 흰콩과 검은콩은 각각 백갑신병, 흑갑신병으로 변할 수 있었다.

카엘은 그중 몇 알은 쓰지 않고 남겨서 들고 왔다. 이곳으로 들고 와 재배해서 숫자를 늘리려고 한 거였다.

재배는 성공적이었다.

세계수의 강력한 생명력에다가 엘프들이 정성스레 돌보자 아주 빨리 수확할 수 있었는데, 도날이 왔을 때 잔뜩 자라 있던 콩나무들도 어느새 수확이 끝나 있었다.

“수확을 마치고 창고에 보관해 뒀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지금까지 재배한 콩만 해도 흰콩 검은콩 다 합쳐서 수만 개.

어지간한 왕국을 공격할 만큼 많은 병력이었다.

하지만 카엘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참, 내가 말한 대로 해 봤어? 어떻게 됐어?”

그 물음에 노아나는 데키마와 시선을 교환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성공했어요!”

“…보여 줄게.”

노아나와 데키마가 작은 나무 상자를 하나 들고 왔다.

그 안에는 흰콩과 검은콩이 부드러운 천 위에 놓여 있었다.

“내게 보여 주려고 미리 빼 뒀나 봐.”

“네. 헤헷.”

속셈을 들킨 노아나가 멋쩍게 웃었다.

“그럼 써 보겠습니다.”

“…던질게요.”

노아나와 데키마가 각각 흰콩과 검은콩을 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백갑신병과 흑갑신병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과 기운은 평소와 달랐다.

백갑신병의 갑옷은 더 두꺼웠고, 미약하나마 성스러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반면에 흑갑신병의 갑옷 끝은 칼날처럼 날카로워지고 사악한 기운을 풀풀 풍겼다.

얼핏 보면 백갑신병은 성기사로, 흑갑신병은 다크 나이트로 착각할 정도였다.

“백갑신병은 방어력이 상승하고, 축복과 치유를 쓸 수 있게 됐어요. 흑갑신병도 공격력이 강해지면서 마력으로 상대의 투기를 꺾는 기술이 생겼고요.”

“그래? 정말 대단하군. 너희들 덕분이야.”

카엘의 칭찬에 엘프 자매들은 기쁜 듯 웃으면서도 겸손하게 대꾸했다.

“다 카엘 님이 하라는 대로, 물 대신 성수랑 마석수를 뿌려서 키운 것뿐인걸요.”

“…맞아.”

카엘은 금갑장군에게 받은 백갑신병과 흑갑신병에게 마력을 흡수시키고, 성수를 덧바른 적이 있었다.

그러자 더욱 강해지고, 사악한 것들을 상대할 때도 유리했다.

심지어 거대화 포션을 뿌리니 병사들이 커지기까지 했다.

그걸 본 카엘은 만약 처음부터 성수와 마석수로 콩을 기른다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궁금해 엘프 자매들에게 부탁해서 실험한 거였다.

그 결과 이렇게 신성력을 가진 백갑신병과 마력을 가진 흑갑신병이 탄생한 거였다.

“이건 앞으로 성갑신병과 마갑신병으로 불러야겠다.”

“그럼 이대로 계속 재배할게요!”

“그래. 부탁할게.”

신나서 말하는 노아나에게 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며칠 뒤.

드워프 대장장이 블렌트가 찾아와 검들을 돌려 주면서 황금 금속기 제작과 개량까지 모두 마쳤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따로 부탁드린 것들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건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거 같아. 꼼꼼히 만들고 싶기도 하고.”

“그렇군요.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만들어 주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한 카엘은 블렌트와 드워프들이 가져온 각종 장비를 살폈다.

황금 금속기만 해도 공격용이 34개에 방어용이 30개. 라이칸스로프용 황금 금속기 월도 갑옷이 6벌이나 됐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소드 마스터급 전력이 40명분이나 생긴 거였다.

‘이 정도면 드래곤을 잡고도 남겠는데.’

하지만 일전에 상대했던 마석을 장착한 솔국의 국왕이나, 드래곤 알 쿠브라를 생각하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카엘은 일단 황금 금속기를 분배했다.

아버지 티겔과 큰형 브란, 셋째 형 막시마 그리고 루크와 소피아까지 황금 금속기 다섯 세트.

거기서 클리페우스성의 기사들과 경비대장들과 레인저 중대장과 조장들 몫으로 여덟 세트.

프레데릭과 파나틱 신전 기사단 다섯 명용으로 여섯 세트.

엘프와 드워프, 라이칸스로프에게 각각 6개, 8개, 6벌을 나눠 줬다.

그러고도 하피에게 우호의 표시로 선물해 줄 1세트가 남았다.

그렇게 다 나눠 줬나 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프레데릭과 파나틱 신전 기사들이 마력이 들어간 황금 금속기를 못 쓰겠으니 안 받겠다고 나선 거였다.

‘아무래도 찜찜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앞으로 나타날지도 모르는 강력한 적을 상대하려면, 그에 버금가는 강력한 장비를 준비해도 모자랐다.

카엘은 프레데릭과 신전 기사단을 찾아갔다.

“이번에 드린 무기를 도저히 못 쓰겠다고요.”

“네. 호의는 고맙지만, 사악한 힘이 담긴 걸 쓸 수는 없습니다.”

프레데릭의 말에 파나틱 신전 기사단의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러분의 신앙심을 고작 그 정도로 흔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물론입니다만, 부정한 것을 가까이하다가 신의 노여움을 사면 어떡합니까?”

‘신은 인간들에 무관심하고, 그저 인간들에 기도와 수양에 반응할 뿐인데…….’

카엘은 거기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괜히 더욱 반발할까 봐 참았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렇다면 이것도 시련이라고 여기시면 어떻습니까?”

“시련 말입니까?”

“네.”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이게 사악한 힘으로 여러분을 유혹하고 타락시킬까 두려워해 멀리하기보다는, 오히려 가까이서 그런 유혹을 이겨 내면 신앙심을 증명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흠?”

카엘의 말에 프레데릭과 파나틱 신전 기사들은 혹하는 표정이었다.

그걸 본 카엘이 한마디 더 했다.

“신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시련을 주신다고 하셨죠. 이 악의 힘이 유혹하는 시련을 이겨 내는 것도 신이 미리 안배한 길인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악이 유혹하는 시련을 이겨 내며 신의 뜻을 따른다.

궤변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신실한 성직자들에게는 매번 통하는 아주 달콤한 말이었다.

“카엘 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저희가 생각이 짧았던 거 같군요. 이걸 쓰고도 심신이 흐트러지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프레데릭과 파나틱 신전 기사단은 그렇게 황금 금속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작 실제 악이 유혹하는 시련을 이겨 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만.’

카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프레데릭에게 물었다.

“루크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루크는 카엘이 발견해서 데려온 소드 마스터의 재능을 가진 아이로.

나이가 어려서 잘 데리고 다니지 않았지만, 현재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음, 특별한 일 없으면 신전의 뒤편 훈련장에 있습니다만. 왜 찾으십니까?”

“줄 게 있어서요.”

카엘은 마검 리키드를 루크에게 줘 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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