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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207화 (207/234)

207화 돌아온 탕아 (2)

아버지의 힐난에 둘째 형 도날이 비릿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다. 아무리 이 대륙 북쪽 끝 외딴곳에 있다고 해도 이 아비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티겔은 도날이 제국의 사주를 받고 왔다는 걸 처음부터 알아서 계속 못마땅했던 티를 냈던 모양이었다.

그나마 자식인 데다가 사랑하는 아내가 좋아하길래 두고 본 거지.

타인이었다면 성에 발을 들인 순간 목을 베었을 수도 있었다.

“그럼, 내 제안을 더 믿을 수 있겠지? 카엘, 제국으로 넘어오거라.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마.”

“제국을 위해 네 형제를 팔아넘기려고 왔느냐!”

티겔의 호통에도 도날은 지지 앓고 대꾸했다.

“제국을 위한 게 아니라, 제 형제 가족들을 위한 겁니다!”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그때 카엘이 끼어들었다.

“저는 믿습니다.”

“음?”

“어?”

티겔과 도날, 모두 예상 밖의 반응이었는지 당황했다.

하지만 회귀 전에 카엘이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안 믿을 수가 없었다.

회귀 전 몬스터 대침공 이후, 스승과 함께 클리페우스성에서 탈출한 카엘은 스승의 도움으로 병을 고치고 약제술을 배워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병력을 모아 오크 군단과 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륙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방심하고 있던 오크들을 상대로 몇 번이고 이겼다.

그 성과 덕분에 오크 군단과 싸우는 신비로운 약제사 카엘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크 로드의 지시로, 오크 워리어들이 집결해 공격해 오자 당시의 카엘로서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제국에서 은밀히 사람이 찾아온 거였다.

바로 둘째 형 도날이 보낸 심부름꾼이었다

제국에 자리를 잡았다는 도날은 카엘에게 그만 포기하고 제국으로 도망쳐 오라고 권했다.

귀여운 막냇동생 먹고살 걱정은 없도록 해 주겠다는 말에 심부름꾼에게 둘째 형에 대해 물어보니, 아무래도 제국의 귀족이 된 듯했다.

그러나.

당시 카엘은 그걸 거절하고 끝까지 싸웠다. 그러다 오크 로드에게 죽었다가 이렇게 회귀한 거였다.

‘그나저나 도날 형이 제국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제국 측에 서서 제안을 해 올 줄이야.’

어쨌든 도날로서는 자신이 제국의 입장을 대변하러 온 게 들킨 만큼 카엘이 경계하고 반감을 품을 거라 예상했고.

티겔도 제국을 싫어하는 카엘이니만큼 도날을 못 믿겠다고 할 줄 알았던 거였다.

카엘의 반응에 용기를 얻은 도날이 목소리를 놀렸다.

“막냇동생으로서도 그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당장 브레프니 왕실에서도 카엘을 못마땅해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박해를 받을 바에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곳에 가는 게 낫죠!”

“끙!”

티겔은 대꾸를 못 했다.

아무래도 그간 브레프니 왕국에서 섭섭하게 군 일이 생각난 탓이었다.

그런 티겔 대신 카엘이 입을 열었다.

“그건 이미 정리가 됐습니다. 왕실에서도 일치단결해서 제국에 대항하기로 했고요.”

“음. 그러냐.”

잠시 고민하던 도날이 한 가지 떠오른 듯 말했다.

“그래도 굳이 나서서 싸울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아예 자리를 피해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면서 익숙한 곳을 거론했다는 게 아닌가?

“동방의 타모라라는 나라가 아주 혼란스러우니, 정체를 숨기고 살기 좋을 거다.”

이미 타모라국을 침공했던 요괴들은 몰아내고, 재건 중이었는데, 얼마 전의 일이다 보니 아직 거기까지 알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티겔이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도망칠 수는 없다. 아니, 도망쳐 봐야 소용없다. 제국의 황제가 마족과 손을 잡은 이상. 언제 마왕이 부활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마족?! 마왕의 부활 말입니까…….”

도날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당황했다.

그런 도날에게 티겔이 쐐기를 박았다.

“그래, 카엘이 제국에서 보낸 마법사를 잡아서 알아낸 거다. 이미 몬스터를 이곳저곳에 푸는 등 마왕을 부활시키기 위해 활동한 정황이 한두 개가 아니다.”

도날이 정말이냐고 묻듯 카엘을 쳐다봤다.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인가 보군요.”

사실 도날은 이곳에 오기 전에 카엘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고, 도날 자신도 여러 경로를 통해 조사했다.

아마 카엘이 겪었던 일 중에 제국이 손을 쓴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한 게 여럿 있긴 했다.

‘그런데 그게 마족과도 손을 잡고 벌인 일이었다니.’

“마왕이 부활하면 여기에 있든 제국에 있든 상관없이 모두 파멸할 거다.”

“그렇겠죠.”

도날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 반응에 표정이 누그러진 티겔이 제안했다.

“그러니 제국에서 나와서 이곳에서 함께 지내자.”

하지만 도날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걸 알게 된 이상, 여기에 안주할 수 없죠. 저도 제 위치에서 마왕의 부활을 막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도날의 눈빛은 결연했다.

티겔은 그 눈빛만으로 자신의 자식이 진심으로 마음을 돌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다음 날.

도날은 할 일이 있다면서 돌아가 버렸다.

어머니는 아쉬워하다가 도날의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들르겠다는 약속에 마냥 기뻐했다.

하지만 도날은 떠나기 전에 티겔과 카엘에게 알려 준 제국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도날이 파악하기로는 현재 제국군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는 교단.

교단의 성녀가 이단을 척살하는 성전에 나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거였다.

‘어쩐지 레오폴드 왕자와 나를 이단이라며 압송하라고 하더니, 성녀의 독단적인 생각이었나.’

문제는 성녀의 주장대로 교단에서 성전을 준비하고 있는 조짐이 있다는 거였다.

제국 각지의 사제와 신전 기사들이 수도로 모이는 상황.

거기다 타국의 신전 기사와 사제.

그뿐만 아니라, 나름 신실하다고 자처하는 기사와 전사들도 성전 소식을 듣고 수도로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언제 성전을 선포하고 침공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

도날이 떠나고 일주일 뒤.

도날의 말대로 제국의 교단에서 성전을 선포했다.

신의 뜻을 거스르는 부정한 존재인 몬스터와 손잡은 브레프니 왕국과 클리페우스성을 신의 이름으로 처단하고자 하니, 신의 뜻을 따르는 자들은 무기를 들고 나와 함께하라고 선언했다.

심지어 황제는 제국군이 참전하진 않겠지만, 신의 뜻을 받드는 자들을 돕겠다며 브레프니 왕국으로 향하는 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몬스터와 몬스터와 손을 잡은 악을 척결할 것을 맹세하고 교단의 깃발 아래 모였다.

공식적으로 성전이 선포되자 성전에 참석하겠다고 수도에 있었던 이들 말고도, 훨씬 많은 이들이 성전에 가담하겠다고 나섰다.

그 수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어림잡아도 10만은 넘어갔다.

성녀의 한마디에 한 나라를 정벌하고도 남을 대규모 병력이 움직인 거였다.

그 소식에 브레프니 왕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레오폴드는 그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카엘을 만나기 위해 클리페우스성으로 달려왔다.

“직접 오시다니. 부르셨으면 제가 달려갔을 텐데요.”

“아니야. 아직 교단이 이끄는 본대가 오려면 한참 남았거든. 그래도 골치 아픈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카엘의 말에 레오폴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인근에 있던 기사와 용병들이 성전 기사단을 자처하며 국경 근처의 마을을 약탈하고 있나 보군요.”

카엘의 말에 레오폴드가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본 것처럼 이야기하나.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실제로 본 건 아니지만, 실제로 겪은 일이긴 해서였다.

몬스터 대침공에 클리페우스성이 무너지자 타국의 의용병들이 몬스터와 싸우겠다며 나섰다.

문제는 그들은 몬스터와 싸우기보다는, 불안해하는 마을 주민들이 반갑게 맞으면 가진 걸 다 내놓으라며 약탈하기 일쑤였던 거였다.

‘생각해 보면 그때 성녀는 도리어 잠잠했지.’

그때가 더 성전을 일으킬 명분이 컸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이 기회에 브레프니 왕국이 멸망하실 바랐던 황제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경비대가 잘 쫓아내고는 있어. 교단이 이끄는 성전 기사단 본대가 다가오는 걸 너무 걱정해서 그렇지. 사제, 특히 성녀한테 검을 겨눌 수는 없다나.”

아무래도 신의 힘이 현세에 펼쳐지는 걸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일상인 이상.

신의 대리자에 대항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성전의 대상자가 되다니 정말 예상 밖이네요.”

“그래. 나도 제국군이 쳐들어오면 쳐들어왔지, 교단이 움직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 그래도 너무 나쁘게 볼 것만은 없어.”

“왜 그렇습니까?”

“이번 공격까지 무사히 막아 내서 패퇴시킬 수만 있으면 니제르 왕국 외의 다른 동맹국들도 제국에 반기를 들 수 있을 거야. 오히려 제국의 콧대를 꺾을 절호의 기회지.”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카엘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준비를 잘해서 제국에 본때를 보여 주자고.”

“네. 알겠습니다.”

카엘의 대답을 들은 레오폴드 왕자는 교단의 본대가 오기 전에 준비를 마치고 출동해 달라고 한 뒤 돌아갔다.

***

‘그럼, 어디 한번 다들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살펴볼까.’

레오폴드가 떠나자마자 카엘이 움직이려 할 때 엘프 세 자매 중 막내, 모르타가 다급하게 카엘을 찾았다.

“카엘 님! 카엘 님! 어서 좀 나와 보세요!”

“왜? 무슨 일 있어?”

“브로칸이, 라이칸스로프 일족이 떠난대요. 어서 말려 주세요.”

“떠난다고? 뭐 때문에?”

“자기들 때문에 전쟁이 벌어졌으니 여기에 더 있을 수 없다고요.”

아무래도 성전 소식을 전해 듣고, 죄책감을 느끼고 떠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지금 바로 가 보자.”

“네, 어서요.”

카엘은 곧바로 라이칸스로프의 거주지로 향했다.

가니 정말로 라이칸스로프들이 짐을 꾸리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라이칸스로프가 카엘을 보고 움찔하더니 브로칸을 데려왔다.

브로칸은 뒤의 모르타를 슬쩍 노려봤다.

“말하지 말랬더니…….”

“왜 갑자기 떠나려고 하는데?”

“저희 때문에 전쟁이 벌어졌다는데, 어떻게 여기에 더 있겠습니까.”

브로칸은 모르타가 전해 준 그대로 말했다.

“괜찮아. 너희 탓이 아니야.”

“마음씨 착하신 카엘 님이야 그렇게 말씀해 주시겠지만, 저희 마음이 불편해서 안 됩니다.”

카엘이 말릴 줄 알기에 알리지 않고 떠나려고 한 모양이었다.

카엘은 다시 한번 말렸다.

“너희 일족을 걸고넘어진 건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이야. 라이칸스로프들이 없었다고 해도 다른 핑계로 공격해 왔겠지.”

“맞아 우리랑 드워프 아저씨들도 안 떠나잖아.”

옆에서 모르타가 거들자, 브로칸이 대꾸했다.

“엘프, 드워프와 우리는 다르잖아.”

“뭐? 다르다고… 흑.”

모르타는 브로칸의 말에 놀란 눈을 하더니 이내,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억누르며 뛰쳐나갔다.

아무래도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낸 만큼, 다르다는 말이 상처가 된 모양이었다.

“모르타…….”

브로칸은 그런 모르타의 뒷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중얼거렸지만, 독하게 마음먹었는지 쫓아가진 않았다.

그걸 보며 카엘이 한마디 더 했다.

“엘프와 드워프뿐만 아니라, 하피들과도 협력 관계고 이제 리저드맨과도 동맹인데도?”

“하피랑 리저드맨…….”

브로칸이 미처 염두에 두지 않았던지 중얼거렸다.

하피야, 일전에 카엘이 약을 먹고 라이칸스로프처럼 완전히 인간으로 변할 수 있게 해 줬기에 크게 처지가 다르지 않았지만.

리저드맨은 달랐다.

두 다리로 서는 것 외에는 외형적으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런 종족과도 동맹을 맺는데, 라이칸스로프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국이 아니라, 교단 측에서 공격해 온다면서요. 그거면 몬스터 문제가 맞죠.”

브로칸은 궁색했지만, 끝까지 강경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반드시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듯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다 방법이 있지.’

카엘은 자신이 졌다는 듯 브로칸에게 말했다.

“알았어. 더 말리지 않을게.”

“가, 감사합니다.”

“하긴 곧 처절한 싸움이 시작될 테니까. 괜히 싸움에 휘말리기 싫으면 피하는 게 나을 거야.”

그 말에 브로칸이 움찔하더니 중얼거렸다.

“저희만 떠나면 성전을 취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했잖아. 그냥 전투를 피하는 거지. 전투가 싫을 수도 있으니까 이해해.”

“저희가 겁쟁이도 아니고, 전투를 피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좋아해요.”

“겁쟁이라고는 안 했어. 어쨌든 안 싸워도 되는 건 사실이니까.”

“싸우겠습니다! 싸워서 겁쟁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겠어요!”

그렇게 외친 브로칸은 주변의 라이칸스로프에게 소리쳤다.

“다들 뭐 해? 우리도 남아서 싸워야 하니까, 어서 짐을 풀어!”

‘이번에도 잘 통했네.’

이렇게 브로칸의 자존심을 건드려 다루는 건, 스승인 디오네가 잘하던 거였다.

카엘은 속으로 웃으며 브로칸에게 말했다.

“그 전에 모르타부터 달래 줘야 하지 않겠어?”

“앗! 맞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브로칸은 그렇게 말하더니 모르타가 사라진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다른 라이칸스로프들도 웃으면서 짐을 다시 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다들 내심 떠나기 싫었던 거 같았다.

‘그럼 이제 진짜 준비가 잘 되어 가나 볼까?’

카엘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로 근처에 있는 드워프 대장장이 블렌트를 찾아갔다.

그런데 블렌트가 보여 준 성과는 카엘이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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