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반기를 들다 (6)
카엘이 이번 니제르 왕국에서 얻은 것들은 크게 3가지.
얻은 것 중에서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건 앤트라이온의 껍질.
소드 마스터의 오러로도 자르기 힘든 앤트라이온의 껍질을 가지고 방어 장비를 만들어 입으면 어떤 창이나 검과 맞닥뜨려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걸 여덟 개의 마차에 나눠 실어야 할 정도로 많이 얻었다.
원래라면 1년에 한 마리도 보기 힘든 몬스터였지만, 이번에 수십 마리의 앤트라이온이 나타나 리저드맨의 탑들을 무너트리겠다고 덤볐다.
‘아마 마왕의 편으로 전향한 드래곤 알 쿠브라의 봉인을 깨부수고 싶은 마족이 보낸 거겠지.’
그걸 모조리 해치워 얻은 거였다.
가장 값진 건 황금 금속기였다.
이 황금 금속기는 요령만 익히면 어느 정도 무술을 수련한 자가 단숨에 소드 마스터급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장비였다.
다만 어디까지나 위력이 비슷할 뿐.
검술의 깊이와 숙련도가 부족해 평균적으로는 소드 마스터보다는 한층 약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사용자를 강화하는 황금 금속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력이 스며든 황금이 필요했다.
그러나 녹여 버리면 황금 속 마력이 흩어지기에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황금의 크기가 커야 했다.
그걸 카엘이 현자의 돌을 이용해 마력이 누수되지 않게 합치는 데 성공했다.
그 후로 그동안 활용하지 못하고 모아 뒀던 황금 부스러기를 죄다 합쳐서 황금 금속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리저드맨 대장장이가 알 쿠브라가 깨어나기 전까지 쉬지 않고 계속 제작했지만.
결국, 다 완성 못 해서 재료를 마차 하나에 가득 실었다.
그래도 완성된 황금 금속기도 공격용, 방어용 합쳐서 스무 개나 됐다.
총 10명분이었다.
‘나머지는 드워프 대장장이인 블렌트에게 맡기면 만들어 주겠지.’
마지막으로 얻은 건 도리초가 썼던 무기들이었다.
모두 합쳐서 13자루나 되는데, 명색이 소드 마스터가 쓰던 검이니만큼 하나같이 우수했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우수한 건 마검 리키드였다.
‘마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악한 에고소드라서 아무나 못 다루는 게 문제지만.’
어쨌든 이번에 얻은 것들을 이용하면 다들 한층 강해질 수 있었다.
‘잘됐어. 돌아가면 제국과 싸워야 할 테니까.’
그런데.
막상 브레프니 왕국에 돌아갔더니, 제국에 반기를 들기는커녕, 싸울 준비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레오폴드 왕자는 반역죄로 탑에 유폐되어 있다고 했다.
‘설마 반역을 일으키려다가 실패했나?’
카엘은 일단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니제르 왕국에서 가져온 마차들은 소피아더러 클리페우스성으로 가져가라고 하고는 혼자서 왕국의 수도 킹스콧으로 향했다.
카엘은 도착하자마자 도채비 감투를 쓰고, 레오폴드가 유폐되어 있다는 탑으로 향했다.
‘저긴가.’
“휴.”
탑 꼭대기로 올라가니 레오폴드가 어깨를 늘어트리고, 연신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렇게 근심·걱정 가득한 모습은 처음 봤다.
카엘은 일단 감시하는 이가 없는 걸 확인하고, 도채비 감투를 벗으며 말을 걸었다.
“레오폴드 저하.”
“응? 이 목소리는? 카엘인가? 카엘이로군!”
카엘을 발견한 레오폴드가 반색했다.
“정말 반갑네. 니제르 왕국에서의 일은 잘해 줬더군.”
“잘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카엘은 레오폴드가 갇혀 있는 삭막한 탑 내부를 둘러보며 슬쩍 보고는 대꾸했다.
하지만 레오폴드는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예상 이상으로 잘해 줬어. 리저드맨을 쓸어버려서 니제르 왕국의 협조를 끌어내면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둘을 동맹을 맺게 하다니.”
“그 탓에 제국에 명분을 준 게 아닌가 해서요.”
“그게 아니라도 제국에서 마음만 먹었으면 아무런 명분이나 달아서 괴롭혔을 걸세. 무엇보다 제국군에 심대한 타격을 주지 않았나. 훨씬 남는 장사지.”
그렇게 말한 레오폴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 꼴이 된 건 전적으로 내 탓이야.”
“…….”
영문을 모르는 카엘이 멍하니 쳐다보자 레오폴드가 설명했다.
“제국에서 자네와 나를 잡으라는 지시가 내려온 걸 감지하고 움직이려 했지만, 쇠약해진 아버지를 보니 도저히 왕좌에서 끌어내릴 수가 없더군.”
“쇠약해졌다고요? 국왕께서요?”
카엘은 이해가 안 갔다.
국왕의 안위는 왕국의 안위나 마찬가지.
그 때문에 몸에 좋은 약이나 음식을 빠짐없이 챙겨 먹는 건 물론, 신성력을 가진 사제가 늘 축복해 준다.
그 때문에 가벼운 병도 앓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혹시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해서입니까?”
“아니, 제국의 사제들은 신벌을 받았다고 떠들지만, 그 전에 이미 많이 안 좋으신 듯했어.”
“그렇군요.”
차라리 국왕이 건재했으면 언제까지 제국에 굴종하겠냐고 따지면서 왕위를 찬탈했을지도 모르지만.
국왕이 오늘내일하는 걸 보니 자식으로서 허탈하고 힘이 빠진 모양이었다.
‘아마 여기에 얌전히 유폐된 것도 아픈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겠지.’
그게 아니라면 진작 여길 나가고도 남았을 터였다.
“자네까지 끌어들여 일을 벌여 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문득 내가 잘못한 게 아닌가 후회가 들었네.”
“왜 그렇습니까?”
“사실 내가 제국에 반기를 든 이유는 나라의 위신을 드높인다든가 선조들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었거든.”
그렇게 운을 띄운 레오폴드는 과거를 회상하며 주절주절 이야기해 나갔다.
“아주 어렸을 때였네. 제국에서 후작과 황제의 친인척들이 여럿 놀러 왔지. 얼마나 안하무인이던지 마치 자기네 영지처럼 굴더군.”
“그러다 사고가 터졌어. 친인척 중에서 누군가 사냥 중에 갑자기 튀어나온 고블린에게 놀라 낙마해서 다리가 부러진 거야.”
“그런데 이게 다 몬스터를 내버려 둔 아버지 탓이고, 브레프니 왕국의 책임이라는 게 아닌가.”
“다들 어이없어하거나 장난이라고 여겼지만, 그들은 아니었어.”
“제국에 돌아가자마자 황제에게 고해 우리나라를 짓밟을 거라는 거야. 그러자 아버지가 어떻게 한 줄 아나?”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비셨네. 진흙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자신의 잘못이니, 침공만은 참아 달라고 말이야.”
“그것들은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서야 만족했는지 이번만은 용서해 주겠다고 돌아간 거야.”
“그걸 보고 결심했지. 다시는 아버지가 굴욕을 당하지 않도록 힘을 키우겠다고 말이지.”
“그리고 아버지한테 말하고 싶었다네. 엎드리지 말고 당당하셔도 된다고 말이야.”
그 일념 하나만으로 망나니라는 오해를 참아 가면서 비밀리에 세력을 키운 거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저렇게 돌아가시면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의도치 않았고, 그 덕분에 마족의 음모를 알게 됐지만, 지금 당장 레오폴드에게 그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 보였다.
“확답은 못 드리겠지만, 최대한 안 돌아가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맞아. 내가 괜한 소리 하느라 시간을 끌었군. 안 그래도 자네를 많이 기다렸네. 자네가 의술에 능하니 아버지를 한번 봐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들르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하네.”
레오폴드가 뒤돌아서 가는 카엘에게 간절히 애원했다.
* * *
밖으로 나온 카엘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도채비 감투를 섰다.
‘바로 국왕의 처소로 가 봐야겠네.’
카엘은 은밀히 국왕의 처소로 접근하다가 깜짝 놀랐다.
약재 냄새가 멀리서도 풍겼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치료한다고 독한 약을 쓰는 모양인데.’
그러고 조용히 들어가니 황제가 침대에 누워 간호를 받고 있었다.
그밖에도 계속해서 국왕의 상황을 지켜보는 의원과 사제들이 여럿 있었다.
‘이래서야 이야기하기 어렵겠네.’
카엘이 그렇게 생각하며 국왕에게 다가갔다.
국왕은 마치 늙은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숨도 너무 미약해서 얼핏 보면 이미 한참 전에 죽은 시체처럼 보일 정도였다.
카엘은 국왕을 보자마자 왜 저런지 곧바로 알아챘다.
‘이건 병이 아니군.’
정확히는 어디를 다쳤거나 질병에 걸린 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본 것만으로 자세한 이유까지 알 수 없지만, 생에 의지를 잃어 기력이 쇠한 결과.
그 원인은 대체로 마음의 병이었다.
다행히 카엘은 이런 경우에 잘 듣는 약재를 마침 가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
국왕이 입을 열어 뭐라고 말을 했지만,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도록.”
“네? 금방 뭐라고 하신 거 같은데.”
국왕이 재차 말하고서야 시녀가 눈치채고 다시 한번 말해 달라며 귀를 갖다 댔다.
국왕의 말을 들은 시녀는 조금 주저하더니 방 안에 있는 의원들에게 말했다.
“모두 잠시 자리를 비워 달라고 하시는데요.”
“안 됩니다. 상태가 위중한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무슨 용무 때문이지? 누구를 불러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시려나.”
“그래도 혼자 두는 건 너무 위험한데.”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이자. 국왕이 기어코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나가라니까.”
“이크, 화내시면 더욱 위험합니다.”
“안 되겠다. 일단 자리를 비켜 드리자.”
“필요하시면 종을 흔들어 주세요. 바로 들어오겠습니다.”
그렇게 모두 자리를 비운 후.
고요해진 방 안에서 국왕이 물었다.
“혹시 카엘인가?”
“…네.”
국왕의 말에 카엘은 놀라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어떻게 도채비 감투를 쓰고 있는데 내가 온 걸 안 거지?’
국왕은 그 생각마저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죽을 때가 다 되어 가니까 감각이 아주 예민해지더군. 왠지 자네가 들어와서 지켜보는 게 느껴졌어.”
“그러셨군요.”
“그래, 그 아이가 보내서 온 거냐? 이 아비가 언제 죽는지 알고 싶어서.”
그 아이라는 건 레오폴드를 말하는 거였다.
아무래도 여전히 적대시하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왕자가 제국에 반기를 드는 바람에 난리가 난 거였다.
망나니짓을 했을 때는 혼내고 말 일이었지만, 이번 일은 왕국의 안위가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다 밝히는 게 좋겠지.”
“오해이십니다. 레오폴드 님은 전하의 안위를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식이 아비 속을 그렇게 썩여? 쿨럭쿨럭.”
“괜찮으십니까?”
카엘은 다가가서 국왕을 진정시켰다.
지금은 몸이 아주 쇠약한 상태라서 당장 회복 포션을 먹일 수도 없었다.
“어쨌든 내가 죽거든 자네가 레오폴드를 제발 좀 설득해 주게.”
그 말에 카엘은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클리페우스성에 오크를 사냥하겠다고 찾아온 레오폴드가 벼락에 맞아 떨어져서 죽을 줄 알고 자신의 정체를 비롯해 온갖 비밀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었다.
“아무리 제국이 밉다고 해도 괜히 제국에 대항해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말이야.”
“나도 젊었을 적에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써 봤지만 무리였어. 괜한 희생만 생겼지.”
“자네도 그렇고 제국 측에는 내가 따끔히 혼낸다고 말해 뒀으니 조용히 지내기만 하면 별일 없을 거야. 그래야 그 녀석도 목숨만은 건지지 않겠나.”
국왕도 나름대로 자식을 위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괜히 제국에 대항해 봐야 무의미해.”
“백성들이야 자기가 사는 땅의 국적과 누구한테 세금을 내는지만 바뀌는 게 아닌가?”
“괜히 전투가 벌어지면 얻는 것도 없이 희생만 늘어날 뿐이다.”
그 때문에 차라리 조금 굴욕적이라도 평화롭게 지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레오폴드 왕자와 국왕.
신념의 차이라 평소라면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하지만 제국의 황제는 마족과 결탁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마왕을 부활시킬지도 모릅니다.”
“…그게 정말인가.”
국왕도 마왕에 대해서 잘 아는지 곧바로 심각한 얼굴이 됐다.
인간들끼리의 다툼에서야 누가 왕이 되는지 중요하지 않겠지만.
마왕의 경우는 달랐다.
인간을 그저 자신이 경멸하는 신이 만든 존재로 여기고, 먹잇감이나 장난감으로 봤으니까.
“레오폴드 녀석이 말한 거면 안 믿겠지만, 자네가 한 말이니 안 믿을 수가 없겠군.”
그렇게 말한 국왕이 탄식했다.
“그런 내막을 모르고 레오폴드를 그토록 억압했다니…….”
레오폴드도 알고 한 건 아니었지만, 카엘은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말에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사과하고 싶지만, 이제 곧 죽을 테니 안타깝구나.”
그러면서 눈을 감는 게 아닌가?
이대로 두면 스스로 죽음에 빠진다고 믿고 죽을지 몰랐다.
카엘이 얼른 국왕을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곧 죽다니요. 낫게 해 드릴 테니 정신 차리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음? 정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