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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203화 (203/234)

203화 반기를 들다 (5)

니제르 왕국이 몬스터와 손잡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어떻게 인간과 리저드맨이 소통하느냐는 거였다.

긴급하게 소집된 회의에 모인 관료와 귀족, 기사들은 모두 그 이야기로 수군거렸다.

“정말 들리는 대로 니제르 왕국과 리저드맨이 동맹을 맺은 거요? 리저드맨과 인간이 말이 통하나?”

“아니, 내가 상대해 본 리저드맨은 아니었다. 혹시 착각한 게 아닐까?”

“사막에 살던 변종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 않소.”

“저기 멀리 클리페우스성에서는 라이칸스로프와도 함께 지낸다면서요.”

“그야 그것들은 인간으로 변할 수 있으니까. 인간 말을 하는 거겠지.”

너 나 할 거 없이 한창 수군거리고 있을 때였다.

“황제 폐하 납시오!”

시종의 외침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정숙한 가운데 천천히 걸어 들어온 황제는 옥좌에 앉아서 나직이 말했다.

“계속하라.”

그러자 다들 다시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이 지위 고하를 막론한 난장판 같은 토론은 황제가 장려한 거였다.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있다가 황제가 물었을 때 허둥지둥하면 처형당하기에 다들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참여했다.

“함께 어울려 살았으니 상형문자 비슷한 거로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겠소?”

“하지만 작년만 해도 타우레그 부족이 리저드맨을 사냥하는 데 열을 올렸다고 거기 드나드는 상인에게 들었다만.”

“어쩌면 둘을 교접한 변종이 나타나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을지도 모르죠.”

한 마법사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역겨워.”

작은 목소리였지만 음성을 확대하는 마법이 걸린 황제의 주위에서 난 소리였기에 모두의 주의를 끄는 데는 충분했다.

다들 인상을 찌푸리며 웬 어린 여자가 여기 있나 싶어서 쳐다봤다가 놀란 눈이 됐다.

제국 복식을 하고 있지만, 연한 갈색의 피부가 아무래도 니제르 왕국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황제의 정보원인가.’

‘지금 역겹다고 한 거 맞지?’

‘듣긴 좀 그렇긴 한데, 정보원 주제에…….’

신하들이 수군거리는 걸 보고 황제가 물었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나?”

“…니제르 왕국과 리저드맨이 손을 잡았다길래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는지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거 말인가? 니제르 왕국을 건국한 우스만이라는 자가 인간과 리저드맨이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수화 비슷한 걸 만들었지. 그거로 대화한 걸 거다.”

황제의 말에 듣고 있던 세이비는 깜짝 놀랐다.

니제르 왕국에서도 잊고 있다가 카엘만이 알았던 사실을 황제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동맹을 맺었는지도 안 물어봤던 건가.’

한편 황제의 말에 회의장의 일동이 모두 경악했다.

“그, 그럴 수가.”

“그게 가능하다니 놀라운 일이군요.”

“어떻게 그걸 다 아셨습니까. 역시 황제 폐하십니다.”

황제는 자신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되는 걸 감지하고 차갑게 말했다.

“그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이야기하도록.”

“아, 알겠습니다.”

“일개 왕국이 몬스터와 손잡고 제국에 반기를 든 거니 철저히 짓밟아 둬야 합니다.”

“옳습니다. 브레프니 왕국은 오크에게 대항한다고 라이칸스로프라는 몬스터를 부린 거라 이해해 줄 여지가 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니까요.”

“거기 브레프니 왕국에 대사로 있는 듀리프 후작의 보고에 따르면 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라이칸스로프들은 카엘이라는 자를 따르지만, 그는 브레프니 왕국 내에서도 배척당하는 레오폴드 왕자 쪽 인물이라죠.”

그러고 있을 때 황제가 또 한마디 던졌다.

“이번 일에 그 카엘도 끼어 있다고 한다.”

그 말에 세이비가 경악하며 황제를 쳐다봤다.

‘카엘이 연관되어 있다는 소리는 전혀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이번 사태에 카엘의 지분이 매우 컸지만. 세이비는 일부러 카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카엘이 멋진 남자라 호감을 느껴서는 아니었다.

그의 출신 때문이었다.

카엘은 알 쿠브라 사막 반대쪽에 위치한 브레프니 왕국에서도 가장 북쪽 끝에 있는 클리페우스성 사람이었다.

만약 제국에서 카엘이 개입된 걸 알게 되면 남쪽의 니제르 왕국과 북쪽의 브레프니 왕국.

어느 쪽을 먼저 치느냐 의견이 나뉠까 걱정된 탓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일이 훨씬 심각해지는군요.”

“남북으로 동시에 반기를 들다니.”

다들 이야기를 나누면서 황제의 눈치를 봤다.

대부분의 사안이 그렇지만, 황제는 이미 마음속으로 다 결정해 두고 있기에 최대한 거기에 맞춘 대답을 내놓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황제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황제가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오랜만에 재밌군.”

신하들은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재밌다고?’

‘반기를 든 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서 제국의 위상을 드높일 기회라는 건가.’

‘어쨌든 무시하지 말고 공격하라는 거겠지.’

다행히 적이 남북으로 나뉘어 있다고 해도, 남쪽부터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어쨌든 니제르 왕국에 있는 토벌대부터 구출해야지 않겠습니까? 사막 아래로 추락했다고 해도 살아 있는 이들이 제법 된다고 들었습니다.”

“황자들도 무사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인력을 구조하려면 구조에만 한참이 걸릴 텐데요.”

“일단 황자들을 비롯해 기사부터라도 구하죠. 그러고 보니 소드 마스터들은 뭣들 하고 있는지…….”

그때 황제가 말했다.

“거기에 이제 소드 마스터는 없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둔다.”

‘소드 마스터가 없다고? 죽지는 않았을 테고 따로 철수라도 한 건가?’

‘그래도 황자도 구하지 않으시다니 무슨 의도일까.’

다들 의문을 품었다.

이번 토벌대가 망하긴 했지만, 망나니 황자로 유명했던 탈프 황자도 이번에 정신을 차린 듯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줬고.

키슬링 황자도 차기 제위에 가장 가까웠던 만큼 비상한 인재였다.

‘아, 혹시 누가 먼저 거기서 벗어나는지 시험하는 건가.’

‘어쩌면 돌아오는 데까지가 후계자 시험일지도 모르겠네.’

황제는 황자들이 어찌 되든 상관없기에 한 소리였지만, 그걸 모르는 신하들은 오해했다.

‘그렇다면 브레프니 왕국을 먼저 공격하자고 해야 하나.’

‘그래도 니제르 왕국을 내버려 두면…….’

신하들이 결정을 못 내리고 있을 때였다.

“감히 내 앞을 막아요? 신벌이 두렵지 않습니까?”

회의장 밖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며 소란스러워졌다.

그 목소리를 들은 신하들은 곧바로 누군지 알아챘다.

잠시 후.

기어코 회의장 안으로 들어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녀였다.

소녀는 눈부시도록 새하얗고 하늘거리는 옷을 입었는데, 놀라운 건 황금색 머리카락부터 푸른 눈, 새하얀 피부까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는 거였다.

황제는 그 당돌한 소녀를 보며 화내기는커녕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성녀 요안나님, 오랜만이오.”

성녀 요안나는 황제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황제님, 오늘도 신의 축복 덕에 건강하신 거 같네요.”

“동감이오.”

실제로 성녀가 발하는 빛은 신성력 그 자체. 그 근처에서 빛을 쐬기만 해도 통증이 가라앉고 머리가 맑아졌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슨 일이오?”

“아, 맞다! 사악한 몬스터와 손잡은 악독한 이단들을 언제 퇴치하러 가나 싶어서요. 저도 도와야죠!”

단단히 화가 난 듯 말하는 요안나에게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신하들이 논의 중이오.”

“무슨 논의를 하는 거죠? 부정한 것들은 다 없애 버리면 될 텐데.”

고개를 갸웃한 요안나가 이어 말했다.

“어쨌든 신전에서 니제르 왕국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신전과 사제들을 모조리 철수시키겠어요.”

그때 요안나의 뒤를 따라왔던 사제가 조용히 속삭였다.

“니제르 왕국은 신을 믿지 않아 저희 신전과 사제가 없습니다.”

“뭐야? 원래부터 이단이었어? 그런데 왜 지금까지 놔두고 있었지?”

“그게…….”

사제가 쩔쩔매면서 설명 못 하자 황제가 한마디 했다.

“리저드맨이 가로막고 있어서 전도가 쉽지 않아서 그랬을 거요.”

“아! 그래요? 어쨌든 잘됐네요. 이참에 모두 몰살해 버리면 되겠네요.”

성녀 이전에 소녀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운 과격한 발언이었지만, 주위에서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매번 저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토를 달 수는 없었다. 잘못했다 성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는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기 일쑤여서 적당히 비위만 맞춰 주면 됐다.

한편 그 말을 들은 황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훗.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소.”

“역시 신실하신 황제님답게 신의 뜻을 잘 헤아리고 계시군요.”

그렇게 칭찬하는 요안나에게 황제가 물었다.

“한데 브레프니 왕국은 어쩌면 좋겠습니까?”

“브레프니 왕국?”

그러자 사제가 빠르게 설명했다.

“이번 일에 브레프니 왕국 공작가의 카엘이 연루되어 있다고 합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클리페우스성에서 오크 로드를 상대하고…….”

“아, 알지. 그자는 선한 자가 아니던가? 언데드 몬스터도 퇴치했다고 기억한다만.”

“다만 라이칸스로프와 같은 몬스터와 친하게 지내긴 합니다.”

“친하게 지내? 노예로 부리는 게 아니라?”

요안나는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상식으로 신의 저주를 받은 존재나 다름없는 몬스터와 친하게 지내는 건 전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노예로 부리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브레프니 왕국도 마찬가지로 이단으로…….”

그렇게 말하려던 요안나가 사제에게 슬쩍 물었다.

“거기에는 신전이랑 사제 있죠?”

“네.”

“좋아. 그럼 이단으로 규정하고 철수를 명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만.”

“뭔가요?”

“브레프니 왕국에서는 카엘과 그의 배후인 레오폴드 왕자를 배척한다고 합니다만.”

“그 말인즉, 브레프니 왕국이 전부 거기에 가담한 게 아니다, 라는 말이죠?”

“네.”

“그럼. 그 둘을 잡아다 내놓고, 클리페우스성의 라이칸스로프들을 모조리 해치우면 용서해 주죠.”

성녀 요안나의 말에 사제를 비롯한 신하들의 시선이 황제에게 향했다.

정말로 저러면 되는 건지 황제의 재가를 기다린 거였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전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겠어요. 오늘도 신의 이름 아래 착한 일 하나 했네.”

요안나는 희희낙락하며 그대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쯧쯧. 저런 게 성녀라고.’

황제는 그런 요안나의 뒷모습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신의 사자라 불리는 성녀가 저런 멍청이인 게 한심한 거였다.

‘역시 앞으로는 마왕의 시대가 열릴 거다.’

황제는 자신의 선택이 다시 한번 옳았음을 확인했다.

* * *

이제는 대형 상단의 상단주가 된 매킨더가 니제르 왕국에 머물고 있던 카엘에게 은밀히 서신을 보내왔다.

그걸 읽은 카엘은 아차 싶었다.

제국이 니제르 왕국과 리저드맨의 관계는 물론, 거기에 카엘이 관여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딘가에서 정보가 새어 나갔나 보네.’

어쩔 수 없었다.

금남의 나라, 니제르 왕국에서 사내로서 여기저기 활동을 했는데 안 들키는 게 이상했을 정도니까.

문제는 교단 측에서 브레프니 왕국에 내건 조건이었다.

이단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클리페우스성의 라이칸스로프들을 모두 해치우고, 이단 심문을 해야 하니 자신과 레오폴드 왕자를 잡아서 보내라고 한 거였다.

카엘은 그 소식을 니제르 왕국의 국왕과 리저드맨 부족장에게 알렸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일단 돌아가서 상황을 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해. 이쪽은 걱정하지 말고.”

[네! 저희는 문제없습니다.]

다음 날.

카엘은 니제르 왕국 측과 리저드맨 부족장들의 환송을 받으며 길을 나섰다.

‘그래도 이번에 얻은 게 많네.’

카엘은 뒤따라오는 짐마차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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