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반기를 들다 (4)
카엘은 저 멀리서 사막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걸 바라봤다.
온 사막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지만, 정확히는 드래곤 알 쿠브라의 둥지 부분만큼 아래로 꺼진 거였다.
다섯 개의 탑이 모두 무너지면서 사막의 지면을 받치던 마법도 같이 해제된 탓이었다.
그 결과.
5만에 달하는 제국의 병력이 일시에 사막 아래로 떨어진 거였다.
사상자가 일부 나오긴 했지만 대부분 무사했다.
모래와 함께 비교적 완만하게 추락하다가 리저드맨 거주 구역에 착지한 거였다.
함께 떠밀려 온 많은 모래는 구멍이 난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 구조니까 사막을 오가면서도 주거지에 모래가 안 쌓이는 거겠지만.’
그 바닥까지 부숴 뒀으면 이들을 몰살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카엘로서도 바라는 바는 아니었다.
대량의 죽음이 발생하면 부정적인 기운이 급증하는 건 상식.
그로 인해 언데드 몬스터도 쉽게 발생했다.
게다가 현재 마족이 암약하는 걸 아는 상황에서 대량의 사망자를 냈다가는, 마족이 그걸 마왕이 부활하는 데 이용할지도 몰랐다.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옆에서 함께 구경하던 리저드맨 부아가 물었다.
현재 토벌대는 완전히 혼란에 빠진 상태.
이 상황에서 공격하면 손쉽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애당초 그럴 거면 진작에 몰살하고 말았을 거였다.
[일단 항복을 권유할 생각입니다. 항복하면 일꾼으로 쓰거나 제국을 공격하는 데 쓸 수도 있겠죠. 거부하면 여기에 내버려 두고요.]
그렇게 5만의 대군을 묶어 두는 것만 해도 아주 유리했다.
어차피 리저드맨의 안내가 없으면 공동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은 나오겠지. 저렇게.’
카엘은 거대한 모래 구덩이 아래에서 뛰어 올라오는 이들을 바라봤다.
탈프 황자와 도리초라는 소드 마스터였다.
‘그 옆의 둘도 소드 마스터겠군.’
카엘은 본 적 없지만, 예상대로 소드 마스터인 조프레와 루델이었다.
그들은 모래투성이가 된 채로 겨우 위로 올라와서 모래를 털었다.
‘가까이 올라왔으면 공격했을 텐데 아쉽게도 꽤 멀군.’
카엘이 그러면서 쳐다보고 있는데, 겨우 정신을 차린 탈프 황자가 카엘을 발견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자식 카엘! 나를 배신한 거냐!”
‘확실히 발전하긴 했네.’
카엘은 솔직히 감탄했다.
자신이 리저드맨과 같이 있는 걸 보자마자 이게 전부 자신의 계략이었다는 걸 간파한 거였다.
물론 카엘도 할 말은 있었다.
“세상에 떠오르는 태양이 2개일 수는 없으니 하나는 꺼트릴 수밖에 없다면서?”
그 말을 들은 탈프가 움찔했다.
자신이 카엘을 제거하겠다며 키슬링에게 읊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저걸 언제 들었지? 염탐당하고 있었나?’
하지만 이내 의연하게 말했다.
“대의를 위한 희생은 당연한 거다.”
탈프는 그러면서 도리초에게 마검 리키드를 내밀었다.
“자, 이걸 줄 테니 반드시 카엘을 해치워라.”
“아, 알겠습니다!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마검을 받고 신난 도리초가 힘차게 외쳤다.
“조프레, 루델. 너희들도 돌아가면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겠다. 반드시 카엘을 해치워라!”
“앗. 정말입니까?”
“그 말씀 안 했으면 섭섭할 뻔했네요.”
소드 마스터들이 전의를 불태우며 카엘을 향해 달려왔다.
특히 마검 리키드를 든 도리초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았다.
“후후. 내가 왜 명검에 집착하는지 아느냐?”
“뭐? 네가 명검에 집착하는지 전혀 몰랐는데?”
“…….”
카엘의 말에 도리초가 순간 할 말을 잃고 발걸음을 멈췄다.
상대가 저렇게 대꾸할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으하핫! 아무리 네가 소드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모두 너에 대해서 알 거라고 여긴 거야?”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어찌 됐든 한 방 먹었네.”
소드 마스터 조프레와 루델이 비웃었다.
그러면서도 제법 가까이 온 조프레와 루델이 공격을 개시했다.
먼저 공격한 건 루델이었다.
루델은 달려오다 멈추더니 바닥의 모래에 검을 꽂았다.
그러자 카엘의 그림자에서 검 끝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앗! 카엘 님, 위험합니다.]
난데없는 기습에 옆에 있던 부아가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시야 밖에서 들어오는 기습은 카엘에게는 별문제가 안 됐다.
마검 아조트가 충분히 막아 내 주니까.
캉!
카엘이 공격을 막아 내는 순간.
“잡았다.”
두 개의 검을 든 조프레가 덤볐다.
“어딜 잡아?”
카엘은 반대편 손으로 사진참사검을 빙한목의 냉기를 담아 휘둘렀다.
“큭.”
조프레는 쌍검을 교차하고서야 겨우 막아 내고는 뒤로 물러났다.
“역시 보통이 아닌데.”
“소드 마스터보다 센 거 같은데, 말도 안 돼.”
루델과 조프레가 투덜댔다.
그러다가 조프레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오러는 아니고, 비슷한 기운을 쓰던데 혹시 동방의 무술을 익혔나?”
“비슷해.”
“아. 역시 그러면 말이 되지.”
아무래도 조프레한테는 그게 중요했던 듯 속이 후련한 얼굴이 됐다.
“다들 비켜라! 나 혼자서 상대하겠다.”
뒤늦게 도착한 도리초의 말에 조프레가 물었다.
“왜? 혼자 싸우려고 그래?”
“혼자 쓰러트리고 카엘이 들고 있던 검을 다 차지하려는 거겠지.”
거기에 대답한 건 루델이었다.
“음. 함께 싸우라고 했는데.”
“너희도 공방을 주고받았으니 함께 싸웠다고는 해 주지.”
여전히 걱정하는 조프레에게 도리초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루델이 먼저 한 발짝 물러났다.
“나는 상관없어. 강한 녀석과는 별로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오러의 특성이 그렇지.”
조프레가 핀잔을 주면서도 자신도 물러났다.
도리초가 카엘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후후. 내가 왜 명검에 집착하는지 알려 주지.”
“아니,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이번에는 도리초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될 거야!”
도리초가 검을 위로 들자 여러 개의 검이 허공에 떠올랐다.
“내 장기는 여러 개의 검에 깃든 힘을 오러로 묶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거다. 그렇기에 명검이 많을수록 나는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러면서 검을 휘두르는데 여러 개의 검이 화살처럼 카엘을 향해 쏟아졌다.
그 공격이 어찌나 맹렬한지 카엘은 사진참사검과 아조트를 휘두르며 겨우 막아 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죽어라!
어느새 카엘의 빈틈을 노리고 마검 리키드가 날아온 거였다.
심지어 도리초의 오러에 싸인 검들과 함께였다.
카엘은 기를 발끝에 터트려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걸 보며 도리초가 여유롭게 웃었다.
“이렇게 에고소드를 활용하면 두 개의 머리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 내 힘이 배가 되는 거다.”
그걸 보며 조프레가 감탄했다.
“역시 대단하군.”
조프레가 순순히 물러난 건, 도리초가 충분히 카엘을 이길 수 있다고 여겨서였다.
“도리초는 정말 강하지. 나도 기습이 아니면 도리초를 이길 자신이 없어.”
루델의 감탄에 이어 카엘마저도 감탄하며 말했다.
“와! 그러면 아조트도 있으면 힘이 세 배나 되는 건가?”
“그렇다. 그렇게 되면 내가 최강의 소드 마스터가 된다.”
그 말에 카엘은 의문을 품었다.
“지금도 그 정도면 최강인 거 같은데. 아닌가?”
“아직 황제 폐하한테는 못 미친다.”
“황제가 그렇게 강해? 주의해야겠네.”
“굳이? 주의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이곳에서 죽을 텐데.”
“그거야 이쪽에서 할 말이지.”
“혼자서 꽤 자신 있어 보이는군. 우리 셋이 덤비면 어떻게 이기려고.”
“혼자? 혼자가 아닌데?”
“응? 설마…….”
그 말에 놀란 도리초는 주변을 둘러봤다가 깜짝 놀랐다.
강력해 보이는 리자드맨과 이곳 전통 복장을 입은 여인들이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어서였다.
그 숫자가 스물은 넘었는데 하나같이 강력했다.
거기다가.
“카엘 님, 늦었습니다.”
“아, 괜찮아.”
카엘의 뒤에 서는 미모의 여인도 아주 강력했다.
그 뒤에 따라서 온 엘프들이 되레 약해 보일 정도.
리저드맨 부족장들을 물론, 니제르 왕국의 국왕과 부족장과 그 후계자들까지.
니제르 왕국의 공주 세이비를 제외하고 알 쿠브라 사막에서 황금 금속기를 쓰는 모두가 나타난 거였다.
“아니, 이럴 수가…….”
“이 정도로 강한 자들을 어떻게 한데 모았지?”
조프레와 루델이 놀란 것처럼, 소드 마스터를 일시에 모으는 건, 황제의 명령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의문을 품는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에게 니제르 국왕이 웃으며 말했다.
“카엘은 그만큼 멋진 남자니까.”
그 소리를 알아들은 니제르 왕국 쪽 여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카엘은 멋쩍어하며 화제를 돌리기 위해 소드 마스터들에게 말했다.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그래? 난 항복.”
루델은 곧바로 검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손을 들었다.
하지만 도리초와 조프레는 전투태세를 풀지 않았다.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 주겠지만, 우리 힘을 뺏겠지.”
“그렇다.”
당연한 일이었다.
소드 마스터를 생포해서 묶어 둬 봐야 힘으로 풀어 버릴 수 있는 상황. 같은 소드 마스터가 지키지 않는 이상 무리였다.
그런데도 항복을 받는다는 건 그 힘을 없앤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말이었다.
“그럴 바에는 죽겠다.”
“끝까지 해보자고.”
그렇게 말한 도리초와 조프레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반대 방향으로 튀었다.
어떻게든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포위한 황금 금속기 사용자는 너무 많았다.
조프레와 도리초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목이 잘리는 걸 피하지 못했다.
루델은 순순히 오러를 포기했지만, 난동 부리는 탈프와 함께 감금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루델을 풀어 주면 니제르 왕국이 리저드맨과 손잡았다는 소식이 흘러갈지도 몰라서였다.
다행히 아직 그 이야기가 제국에 흘러가지 않도록 잘 막고 있었다.
‘게다가 리저드맨의 토벌이 이렇게 처참하게 실패했으니 당분간은 다시 쳐들어올 힘도 없겠지.’
무엇보다 현재 제국은 황제를 제외한 공식적인 소드 마스터들을 모두 잃은 상황.
제국의 힘이 빠진 틈에 최대한 힘을 기를 작정이었다.
그러다 레오폴드 왕자가 적절한 시기에 제국에 반기를 들면 여러 왕국이 함께 반기를 들기로 했다.
하지만 카엘도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주스트 토너먼트 이후로 자취를 감춘 세이비 공주의 행방이었다.
* * *
“…….”
저 멀리서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세이비 공주는 은밀히 제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갖은 고생 끝에 황제 앞에 설 수 있었다.
“니제르 왕국의 세이비 공주라고 했나.”
그렇게 말을 거는 황제는 어찌나 위엄이 넘치는지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꼭 말해야 했다.
“…외람되오나 공주라고 안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공주는 무슨.
어차피 현 국왕이 퇴위하면 다음 국왕은 부족의 후계자들끼리 경쟁해서 뽑는다.
이대로라면 풀라니족의 마하마네에게 패해서 뺏길 게 뻔한 상황.
그러면 현 국왕인 어머니부터 자신의 부족인 하우사족까지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게 볼지 두려웠다.
그 불안감은 본격적으로 주스트 토너먼트가 벌어지고, 본 실력을 드러내자 더욱 극심해졌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좋은 황금 금속기 하나만 얻으면 이길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자신의 예상보다 마하마네가 훨씬 강한 거였다.
심지어 다른 후계자들도 마찬가지.
어찌나 고민이 깊어졌는지 먹을 것도 거를 정도였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모조리 사라져 버렸으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힘이 필요했기에 여기까지 온 거였다.
“그래, 무슨 용무인가.”
서늘한 황제의 목소리에 세이비는 문득 자신이 실수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세이비는 내뱉듯 말했다.
“니제르 왕국이 리저드맨들과… 몬스터와 내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제국이 완전히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