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99화 (199/234)

199화 반기를 들다 (1)

“크아아아아아아악!”

새로 돋아난 뿔이 박살이 나자 알 쿠브라가 괴로워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피가 어찌나 많이 나오는지 물길을 이룰 정도였다.

이미 승패가 났다고 생각한 라 키레아스와 영노는 조금 물러나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알 쿠브라는 괴로워하면서 소리쳤다.

“위, 위자르샤, 도와 다오! 왜 대답이 없느냐!”

그 소리에 라 키레아스가 다가가 물었다.

“위자르샤? 그게 누구냐. 혹시 마족이냐?”

“그, 그래. 내게 마석을 준 마족이다.”

“지금 어디 있나?”

“몰라! 안 보이니까 찾고 있는 거잖아!”

퉁명스레 대꾸한 알 쿠브라는 지금 모나게 굴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보다 라 키레아스. 나 좀 살려 줘.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

“이미 늦었다.”

그렇게 대꾸한 라 키레아스는 슬픈 눈으로 알 쿠브라의 기다란 전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대로 알 쿠브라의 신체는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마석의 힘으로 견디고 막아 냈던 공격들이, 마석이 사라지자 고스란히 신체에 가해진 거였다.

“아, 안 돼. 살려 줘…….”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알 쿠브라는 라 키레아스를 향해 기어가면서 앞발을 뻗었다.

라 키레아스는 그런 알 쿠브라에게 다가가 안아 줬지만, 알 쿠브라는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다.

라 키레아스는 알 쿠브라의 재가 완전히 흩어질 때까지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 * *

알 쿠브라 사막에 사는 리저드맨과 인간들의 위협이었던 드래곤, 알 쿠브라가 소멸했다.

모두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라 키레아스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 탓에 다들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 침묵을 깬 건 카엘이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다친 분들은 제게 말씀해 주세요.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다친 분들은 제게 말씀해 주세요.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다들 고생했어. 카엘이 저렇게 말했지만, 움직일 수 있으면 그냥 따로 치료받아. 나머지는 여기 수습부터 한다. 대피한 사람들도 데려오고.”

[알겠습니다. 다행히 저희 중 크게 다친 이는 없어 보입니다. 저희는 일단 돌아가겠습니다.]

카엘의 말에 국왕과 붉은 꼬리 족장 부루루아가 대답했다.

그러자 니제르 왕국의 부족장과 후계자들과 리저드맨 부족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래곤 알 쿠브라와의 치열한 전투가 있은 지 며칠 뒤.

강력한 드래곤을 상대로 활약한 이들의 용맹을 기리고,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수도 니아메이에서 커다란 연회가 열렸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리저드맨들의 부족장들도 참석했다.

“아주 멋지게 잘 싸우셨습니다.”

[그쪽이야말로 멋졌습니다.]

신기하게도 카엘이 굳이 중간에서 통역해 주지 않아도 눈치껏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도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카엘의 통역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건 직접 만드신 거라고요.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다르군요.”

[저희는 공유할 수 있게 독특한 능력을 가진 황금 소재는 무장으로 잘 쓰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특이한 걸 잘 활용하는 게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래도 리저드맨 부족장들이 더 강하신 거 같아 보였습니다.”

인간과 리자드맨의 부족장들은 그간의 오해를 푸는 한편, 서로 칭찬하면서 우호를 다져 나갔다.

“기회가 되면 주스트 토너먼트에서 겨뤄 보고 싶습니다.”

[호오, 그런 게 있습니까? 초대만 해 주신다면 기꺼이 참석하겠습니다.]

심지어 피 터지는 전투가 아닌 친선 결투에 우호 경기까지 참석할 정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다 알 쿠브라 덕분이었다.

‘공동의 적과 함께 싸운 경험을 나누게 된 것만으로 한층 빠르게 친해질 수 있게 된 거지.’

거기에는 리저드맨들의 아량이 넓고, 그런 리저드맨을 니제르 왕국 측에서 존경하게 된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황자들이 제국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니제르 왕국에서는 외면했지만.

알 쿠브라가 수도 니아메이에 쳐들어왔을 때, 리저드맨들은 자신들의 비밀 통로를 노출하면서까지 인간들을 대피시키고 알 쿠브라를 해치우는 걸 도왔다.

특히 아무리 니제르 왕국을 건국한 영웅 우스만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리저드맨이 살기 힘든 사막에 적응하면서까지 오랜 시간 저 알 쿠브라를 봉인해 왔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존경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그보다 이거 통역할 사람을 빨리 구해야겠네.’

카엘 외에는 제대로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쉴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다들 금방 술에 취해 아무 말이나 하며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됐다.

카엘은 더는 안 있어도 되겠다고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니 인간 모습으로 폴리모프 한 라 키레아스가 보였다.

라 키레아스는 잠자코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바로 아까 알 쿠브라가 재가 되어 사라진 곳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에 잠자코 있으려니 라 키레아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알아보니까, 다른 드래곤들은 모두 죽었더군.”

그 말인즉 알 쿠브라가 그나마 살아 있던 유일한 동족이었다는 소리였다.

“…유감입니다.”

그 말에 라 키레아스가 고개를 돌려 카엘을 똑바로 바라봤다.

“동족이 모두 죽고 혼자 남았다고 해서 외로운 건 아니다. 어차피 드래곤은 혼자서 오롯이 설 수 있는 존재니까.”

“…그렇습니까?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네요.”

카엘은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 살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구들이 없었다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을 테니까.

그때, 라 키레아스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아쉬운 건 오랜 전우를 잃었다는 거지.”

아무래도 아주 오래전 마왕과 싸웠을 때를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전우를 얻으셨지 않습니까?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요.”

그 말에 라 키레아스가 피식 웃었다.

“전에도 전우라 했었지. 그래, 드래곤을 위로하다니 참으로 대범한 인간이란 말이지.”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다. 종족을 뛰어넘는 측은지심과 자애로운 마음이야말로 지금의 너를 있게 한 거겠지.”

‘그런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라 키레아스가 말했다.

“어쨌든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구나. 고맙다.”

“다행이네요. 그럼 이만 쉬러 가겠습니다.”

카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라 키레아스는 그런 카엘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착한 녀석.”

한편 카엘이 나간 뒤.

국왕과 니제르 왕국의 부족장들 리저드맨 부족장들은 언제 술에 취했었냐는 듯 작당 모의 중이었다.

말은 안 통했지만, 리저드맨 부족장 중에 붉은 꼬리 족장 부루루아가 인간의 글자를 익힌 덕에 필담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걸 보고 국왕이 감탄했다.

“대단하십니다. 글자까지 알고 계시다니요.”

[사실 인간의 작전을 파악하기 위해서 배운 겁니다만. 어려운 건 모릅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주로 카엘에 대한 거였다.

“오늘 저희가 여기에서 무사히 앉아 술잔을 나누는 건 다 카엘 님의 덕 아니겠습니까.”

[동의합니다. 저희 종족의 속박을 풀어 준 은인이시죠. 우스만 님에 이어 저희가 대대손손 기억할 겁니다.]

“앗. 그러고 보니 영웅 우스만 님과의 인연도 있다고 하는데, 혹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으면 좀 알려 주시지요.”

[당연하지요. 다음에 시간을 내서 빠짐없이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어쨌든 말이 나온 김에 리저드맨과 니제르 왕국의 우호를 상징하는 차원에서 카엘의 조형물을 세우려고 합니다.”

카엘이 옆에 있었다면 왜 자신의 조형물이 우호의 상징이 되냐고 따졌을 테지만.

국왕도 그럴 줄 예상하고 카엘이 없을 때 이야기를 꺼낸 거였다.

문제는 리저드맨에게 조형물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거였지만.

[조형물? 그건 어떤 겁니까.]

“인간은 위인을 기리기 위해 그를 닮은 형상을 만들어 둡니다.”

[아, 그런 겁니까? 그렇다면 저희도 찬성합니다.]

“우스만 님 옆에 카엘의 조형물을 세우면 딱 맞을 겁니다.”

[오! 우스만 님의 조형물? 한번 보고 싶습니다.]

“내일 해가 뜨면 바로 보러 가시지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 카엘 은인의 조형물을 세울 때 저희도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더욱 뜻깊은 조형물이 되겠지요.”

그렇게 니제르 왕국과 리저드맨이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고 있을 때.

제국은 탈프 황자의 귀환으로 소란스러웠다.

* * *

탈프 황자군이 알 쿠브라 사막에서 귀환했다는 소식이 온 제국에 퍼졌다.

그 망나니 황자가 황제의 임무를 완수했다는 이야기에 다들 놀라고.

그 과정에서 키슬링 황자를 제압했다는 소식에 두 번 놀랐다.

하지만.

몬스터의 공격에 병사들의 피해가 크다는 말에 다들 역시 무능하구나 하고 혀를 찼다.

그러다가 소드 마스터가 죽었다는 소식에는 다들 탈프 황자를 비난했다.

“아니, 무슨 짓을 했기에 소드 마스터가 죽었대?”

“드래곤이 공격해 왔다고 하던데, 황자 본인은 무사한 거로 봐서는 무리하게 공격을 시켰나 보죠.”

“안 그래도 최근 소드 마스터들이 많이 죽었는데 조심해서 쓰지.”

그만큼 제국에서 소드 마스터가 갖는 의미가 컸다.

무엇보다 제국군이 전쟁에서 이기는 건 어디까지나 기본이기에 큰 피해를 봤다는 것 자체가 실패한 취급을 받았다.

무엇보다 제국민들이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어쩌죠. 황제 폐하의 상심이 크실 거 같습니다.”

“화내지만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황제가 분풀이 삼아 예사로 마을 한두 개를 날려 버린 게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황제의 분노를 탈프 황자에게 몰아가려고 하긴 했다.

더욱 비난이 거세지는 건 탈프도 느끼고 있었다.

거기다가.

“공동 작전 중에 탈프 황자가 키슬링 황자님을 공격했다면서요? 그렇게 내전을 벌이니 소드 마스터를 잃는 거지.”

“도리초 님은 아예 먼저 돌아와 버렸다지 뭐예요.”

“키슬링 님이 지휘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 와중에 키슬링이 사람을 풀어 더욱 탈프의 험담을 하고, 자신을 올려 쳤다.

사실과 다른 소문이 퍼지자 탈프 황자는 억울했다.

그러나 키슬링이 시간 관계를 뒤섞어서 거짓말 소문을 퍼트리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빠진 여론 속에 제국 수도로 귀환한 탈프 황자는 곧바로 황제에게 불려 갔다. 게다가 키슬링도 함께 있었는데, 혼자만 부른 거였다.

탈프는 이를 악물고 황제의 집무실로 향했다.

‘씨, 혼나 봐야 얼마나 혼나겠어? 그냥 고개 숙이고 흘려 넘기면 되지.’

다른 이 같으면 자신에게 목소리를 높이자마자 같이 드잡이하겠지만 황제에게는 무리였다.

그 앞에만 서면 화내기는커녕 몸이 움츠러들고 머리가 새하얘졌다.

뱀 앞의 쥐 같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각오하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돌아간 소드 마스터 도리초도 불려 왔는지 옆에 서 있었다.

탈프는 도리초를 슬쩍 노려보고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보고했다.

“폐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모두가 혼낼 거라고 한 예상과는 달리, 담담하게 말하는 게 아닌가.

실제 표정도 그런지 궁금했던 탈프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어 황제를 올려다봤다.

심지어 눈을 마주쳤는데도 무례하다고 혼내기는커녕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다고는 할 수 없지.”

“아, 포를난도 경이 사망한 건 참으로…….”

탈프가 변명하려는데, 황제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리저드맨의 탑을 점령했다고 하지만, 도리초가 갔을 때는 리저드맨이 있었다고 했다.”

“네?! 정말입니까?”

탈프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왜 자기한테 말하지 않았냐고 추궁하는 눈빛으로 도리초를 노려봤다.

그러든 말든 황제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탑 하나를 무너트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직 리저드맨의 세력은 굳건하다. 병력을 더 끌고 가서 설욕해 제국의 위상을 드높이도록.”

탈프는 이해가 안 됐다.

리저드맨의 세력이 굳건하다는 걸 아는 이도 거의 없을 텐데, 굳이 당장 설욕할 필요가 있나 싶었던 거였다.

무엇보다 다시 가기 꺼려지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사막에는 드래곤이 두 마리나 있습니다.”

“한 마리는 이미 죽었으니까 괜찮다. 나머지도 곧 떠날 테고.”

그 말에 탈프는 키슬링이 불렀다는 레드 드래곤을 떠올렸다.

‘정말 키슬링이 조종한 게 맞는 건가? 무서운 녀석.’

“어쨌든 도리초와 소드 마스터 둘을 더 데려가서 저 리저드맨을 사막에서 완전히 뿌리 뽑도록.”

“저, 정말입니까?!”

황제의 친위대나 비공식적인 소드 마스터가 더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공식적인 제국의 소드 마스터는 일곱.

거기에 황제까지 포함되어 있는 만큼 실제로는 여섯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중에 셋이 최근 사망했는데 나머지 셋을 붙여 준다는 건 제국에 남은 소드 마스터를 모두 붙여 준다는 거나 마찬가지.

그만큼 탈프에게 힘을 실어 주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카엘이 니제르 왕국을 움직이면?’

리저드맨 정벌은 손쉬운 일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하지만.

탈프 황자의 기대와 달리 카엘은 니제르 왕국을 반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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