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98화 (198/234)

198화 드래곤의 부활 (4)

한편 드래곤 알 쿠브라에게 습격당했던 제국군은 알 쿠브라가 돌아간 뒤에도 한참 충격에 빠져 있다가 겨우 병력 수습을 시작했다.

그래도 소드 마스터와 마법사들이 드래곤과 싸우다 죽은 탓에 사기가 바닥이었다.

그 와중에 탈프 황자만 목소리 높여 부하들을 다그쳤다.

“이것들아 계속 꾸물댈 거야? 빨리 안 움직여?! 어서 이 지긋지긋한 사막에서 벗어나자고!”

알 쿠브라의 습격에 겁을 먹은 탓에 얼른 돌아가자고 저러는 거였다.

키슬링 황자를 잡고 승리한 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내팽개치고 도망쳤을지도 몰랐다.

한편, 팔을 묶인 채 처량한 포로의 신분이 된 키슬링은 그 광경을 보며 혀를 찼다.

“빨리 가서 뭐 하려고 그래? 어차피 황제 폐하께 혼날 텐데.”

“내가 왜 혼나? 명령대로 탑도 점령했는데.”

“그래도 소드 마스터와 마법사를 잃었는데 안 혼날 리가.”

“그건 내 탓이 아니라 드래곤 탓이잖아……. 맞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지. 황제 폐하의 생각이 중요하지.”

“…….”

그 말에 겁을 먹은 탈프는 키슬링에게 애원했다.

“네가 잘 말해 주면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잘 좀 말해 줘. 응?”

“나는 모르겠으니까, 알아서 해.”

“치.”

키슬링의 냉정한 태도에 탈프가 입을 삐죽 내미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는 게 아닌가?

하늘을 보니 순식간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구름도 거의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불길한데.”

탈프가 눈을 껌뻑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키슬링이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탈프가 피식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보다 더 나쁜 일이야 있겠어.”

그때 기사 블리오가 달려오더니 다급한 얼굴로 외쳤다.

“애, 앤트라이온이 나타났습니다.”

“뭐?! 젠장! 어서 해치워!”

“저, 저하. 소드 마스터님도 안 계시는데 저걸 어떻게 잡습니까?”

“하긴 도리초도 돌아가 버렸지.”

탈프 황자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드래곤 알 쿠브라와 싸우면서 소드 마스터 포를난도와 마법사 트바루드, 링겐이 사망했지만.

도리초는 키슬링 황자를 보호한다고 황자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러다가 키슬링 황자가 잡혀 있는 걸 보고는 인상을 쓰더니, 먼저 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탈프 황자가 놀라서 붙잡았지만.

자신은 키슬링 황자와 계약했을 뿐이라며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검과 하인들을 끌고 이곳을 떠나 버렸다.

“떠났어? 차라리 마검을 주지 그랬어? 그거면 남았을 텐데.”

키슬링이 말하는 건 자신이 썼던 마검 리키드였다.

같은 마검에게 패했지만, 사용자를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검.

도리초가 탐내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탈프도 나름대로 속셈이 있었다.

“이걸 줄 순 없지. 내 몸을 지킬 힘이 필요하거든. 어차피 나중에 내가 황제가 되면 내 명령을 따를 테니 상관없어.”

“그래서 지금은 어쩌려고.”

“…함정에 빠진 병력은 버리고, 나머지는 우회해서 돌아간다.”

그 소리에 키슬링이 비웃었다.

“쯧, 이거로 혼나는 거 확정이네.”

“너도 여유 부릴 때냐? 이대로 돌아가면 너도 무사할 거 같아?”

“이제 네가 책임자인데 내가 왜 혼나?”

“그, 그런가?”

그때 블리오가 다급한 목소리로 탈프를 불렀다.

“저하! 저, 저기…….”

“왜? 또 무슨 일이냐.”

“저기 위에서 뭔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블리오의 말에 고개를 들었던 탈프가 깜짝 놀랐다.

“어, 저건 드래곤이잖아? 젠장. 이게 무슨 난리지.”

탈프는 연달아 닥친 악재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근데, 아무래도 드래곤은 키슬링 님을 도와 아크 리치를 쓸어 버린 그 드래곤 같습니다만.”

“뭐야?! 정말인가.”

“저 붉은 비늘은 화염을 내뿜을 수 있는 레드 드래곤이 확실합니다.”

그 소리에 탈프는 고개를 휙 하고 돌려 키슬링을 쳐다봤다.

“설마?! 네가 부른 거냐.”

“…….”

하지만 키슬링은 대꾸하지 않았다.

자신이 부른 게 아닌 건 확실했지만, 만약 그냥 지나가면 자신이 부른 거라고 허풍을 떨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 이쪽으로 옵니다.”

“뭐라고?! 정말 네가 부른 거냐? 무슨 말이라도 해 봐.”

“…….”

부하의 보고에 놀란 탈프가 채근했지만, 키슬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 블리오가 물었다.

“탈프 저하, 어떡합니까? 싸웁니까?”

“누가 싸워, 네가?”

“…….”

탈프 황자의 반문에 블리오는 할 말을 잃었다가 저 멀리 레드 드래곤의 움직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 어. 탈프 저하, 저쪽을 좀 보십시오.”

“왜?”

“저 레드 드래곤이 앤트라이온을 공격하려는 거 같습니다.”

“뭐?! 정말?”

놀란 탈프가 돌아보는데, 정말이었다.

레드 드래곤은 앤트라이온에게 화염 브레스를 내쏘았다.

앤트라이온은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화염을 정통으로 몇 번 맞더니 어느새 새카맣게 타 버렸다.

“헉! 단숨에 쓰러트렸습니다.”

“역시 드래곤이군, 그나저나 인제 어쩌지?”

“…….”

감탄한 탈프가 키슬링을 돌아봤지만, 키슬링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야, 갑자기 벙어리가 됐나. 뭐라도 말 좀 해봐.”

답답했던 탈프가 채근하는데, 블리오가 소리쳤다.

“어, 드래곤이 가 버립니다! 저거 알 쿠브라가 간 방향인데요.”

“설마 알 쿠브라를 잡으러 간 건가?!”

탈프의 말에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키슬링이 대꾸했다.

“그렇다!”

“어, 정말? 근데 네가 어떻게 알아?”

“그거야. 내가 지시… 아니 부탁했으니까.”

키슬링은 차마 드래곤에게 명령을 내렸다고는 말을 못 하겠는지 부탁으로 정정했다.

“부탁? 드래곤이 네 부탁을 들어줘?”

“그래. 내가 위기에 처한 걸 보고 구하러 온 거다!”

“그, 그런… 나를 공격하는 건 아니지?”

당당한 키슬링의 말에 탈프가 겁먹었다.

그걸 곧바로 눈치챈 키슬링이 입꼬리를 올리며 요구했다.

“공격받기 싫으면 날 얌전히 풀어 다오. 내 병력도 돌려주고.”

“그럴 수는…….”

“대신 이번 대결은 네가 이긴 거로 해도 좋다. 그거면 되지 않나?”

“음. 그건 그렇긴 해.”

그렇게 대꾸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탈프는 결정을 내렸다.

“알았다. 키슬링! 네 요구대로 할 테니까, 드래곤에게 보복하는 건 관두라고 말해!”

“알았다. 신께 맹세코 보복하지 않겠다.”

“대신, 이번 대결은 내가 이겼다는 걸 확실히 해야 한다.”

“…물론이다.”

키슬링은 아쉬운 듯 대꾸했지만, 속으로 탈프를 비웃었다.

‘바보 녀석. 여기서는 네가 이긴 거로 해 봐야, 황제한테 혼날 뿐인데.’

어차피 황제도 아직 정정한 데다가 이거로 황태자 자리가 확정된다고도 여기지 않았기에 별로 걱정되지도 않았다.

걱정되는 건 따로 있었다.

레드 드래곤이 다시 돌아오면 안 될 텐데. 그 전에 제국으로 피해야 하는 거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뭐 해? 빨리 돌아갈 준비를 해야지.”

탈프는 키슬링의 채근에 의아했다.

“돌아가? 저 레드 드래곤이 알 쿠브라를 해치우는 걸 안 보고?”

“보기는 무슨, 우리가 가기 전에 이미 일이 끝나 있을 거다.”

“하긴…….”

“그러니 어서 돌아가자고!”

“알았다니까!”

탈프는 키슬링의 채근에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 * *

잠시 후.

니제르 왕국의 수도 니아메이에서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라 키레아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저건 또 드래곤?! 이 나라에 드래곤이 셋이나 모이다니.”

[이번에도 우리 편? 아니면 저쪽 편? 걱정됩니다.]

라 키레아스의 정체를 모르는 리저드맨과 니제르 왕국 부족장들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설마설마했는데 알 쿠브라 너였다니……. 오랜만이구나.”

“뭐야? 라 키레아스? 아직 살아 있었군.”

서로 아는 체하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정말 끝장이야.”

[이번에는 저쪽 편이었나 보군.]

다들 절망하는 듯한 소리를 들은 카엘이 얼른 오해를 풀기 위해 나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분은 제 동료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분은 제 동료입니다.]

“정말인가?! 정말 저 드래곤도 우리 편이라니…….”

[은인의 말이면 맞겠지요.]

카엘이 인간의 말과 리저드맨의 말로 해명했지만, 다들 조금은 미심쩍은 듯했다.

다행히 알 쿠브라와 인사를 나눈 라 키레아스가 카엘에게도 말을 걸었다.

“고맙다. 네가 날 치료했다고 들었다.”

“당연하죠. 함께 싸운 전우잖아요. 앞으로도 함께 싸워야 하고.”

“전우라…….”

라 키레아스는 카엘의 말을 곱씹었다.

그런 키레아스에게 카엘이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여기 상황은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아, 정신을 차렸을 때 마침, 영노가 소환된 기운이 느껴져서 쫓아온 거다.”

그러더니 다시 알 쿠브라를 쳐다봤다.

“오는 길에 마족의 흔적이 느껴지는 앤트라이온이 있길래 해치우고 왔는데. 여기에서 알 쿠브라를 만날 줄이야.”

그렇게 말하는 라 키레아스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예전에 봤을 때도 정신을 못 차리더니, 이제는 아예 마왕의 부하가 된 거냐!”

“흥! 네가 나를 욕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너희와 모습이 좀 다르다고 괴롭힌 주제에!”

“괴롭혀? 다 너를 돕기 위한 일이었다.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으려 들었다가는 모두를 적으로 돌렸을 테니까.”

“더는 도울 필요 없다! 난 이제 너보다 더 강해졌으니까.”

그렇게 말한 알 쿠브라는 전신의 기운을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아니, 오히려 너를 잡아먹고 더 강해지겠다!”

그러더니 입을 쩍 하고 크게 벌리며 라 키레아스를 흡수하려 했다.

“네 주제에 나를? 어림없다.”

라 키레아스는 곧바로 화염을 내뿜어 대응했다.

그러나.

알 쿠브라는 그대로 화염을 삼켜 버리더니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이따위 장난은 더는 안 먹혀.”

“큭.”

라 키라에스는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걸 보고 오랜만에 만난 동족이 확실히 강해진 걸 깨달았다.

‘저걸 어떻게 해치운다.’

라 키레아스가 고민하는 와중에 허공에 떠 있는 영노가 눈에 들어왔다.

“영노, 거기서 뭐 해?”

“…금방까지 내가 싸우고 있었거든.”

영노는 삐친 듯 대꾸했다.

한창 알 쿠브라와 싸우다가 라 키레아스의 등장에 겨우 한숨을 돌린 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노로서도 라 키레아스 혼자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알았으니까, 도와줘.”

“진작에 그럴 것이지.”

라 키레아스의 말에 영노가 벼락을 알 쿠브라에게 내던졌다.

아무리 알 쿠브라라도 곳곳에서 날아오는 영노의 벼락을 모두 먹을 수는 없었다.

“큭! 치사한 녀석.”

열받은 알 쿠브라는 기다란 몸을 최대한 높이 들어 영노를 공격하려 했다.

“어어.”

영노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알 쿠브라에게 잡혀 지면에 추락했다.

그러는 사이에 라 키레아스가 달려들었다.

라 키레아스는 알 쿠브라를 몸으로 누르고 앞발과 꼬리로 후려치고 이빨로 깨물었다.

“젠장! 아프다고.”

알 쿠브라가 짜증을 내면서 라 키레아스를 깨물려고 했다.

그렇게 드래곤(?) 세 마리가 격렬하게 싸우니 지진이 난 것처럼 지면이 흔들렸다.

어찌나 격렬한지 니제르 왕국과 리저드맨 부족장들은 그 전투에 한 손 보태기는커녕 휘말릴까 봐 가까이 갈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

그 와중에 카엘은 전투를 지켜보면서 틈을 노리고 있었다.

현재 상황은 2 대 1임에도 라 키레아스와 영노가 약간 밀리는 중.

그만큼 마석의 힘이 강한 거였다.

오히려 영노와 라 키레아스에게 그동안 여러 강자와 싸운 경험이 있는 덕에 버티는 거였다.

카엘 자신이 저기에 끼여서 싸워도 엇비슷하거나 약간 밀릴 것만같이 느껴졌다.

그 때문에 물러서서 급소를 노릴 작정이었다.

빙한목의 냉기에, 만년설삼의 기를 능력을 증폭하는 사진참사검에 불어넣어서 치면 타격을 입힐 자신이 있었다.

드래곤의 급소라고 할 수 있는 건 드래곤 하트.

다만, 눈앞의 식룡 알 쿠브라는 도통 어디에 드래곤 하트가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딱 노리기 좋은 급소가 있지.’

카엘이 노리는 건 마석을 흡수한 뒤 나타난 알 쿠브라의 뿔이었다.

자신 있게 드러낸 만큼 아주 단단하겠지만.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카엘이 뒤를 돌아보자 시선이 마주친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귀찮게!”

쉽게 쓰러트릴 줄 알았던 영노와 라 키레아스가 끈질기게 따라붙자 알 쿠브라가 소리치며 사방에 가시를 내뿜었다.

“지금이다!”

알 쿠브라가 보인 빈틈을 파고든 카엘은 검을 들고 뿔에 공격을 명중시켰다.

쾅!

강력한 공격이 적중했지만, 파괴되진 않았다.

그러나 아직 공격이 끝난 건 아니었다.

펑!

소피아의 오러가 카엘이 공격한 직후에 터졌다.

마검 아조트에다가 소드 마스터인 소피아의 오러를 더한 추가 공격이 작렬한 거였다.

그 결과.

쩌적. 쩌저적.

마석의 뿔이 갈라지면서 깨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