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94화 (194/234)

194화 다섯 개의 탑 (5)

“앤트라이온이?! 알겠다. 어서 가지.”

카엘이 곧바로 돌아가려 할 때 탈프가 물었다.

“앤트라이온? 그게 뭔가?”

블리오가 얼른 설명했다.

“모래 구덩이 함정을 파고 사람을 잡아먹는 사막의 몬스터라고 합니다. 어찌나 강한지 소드 마스터의 검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뭐?! 그걸 어떻게 상대하려고. 어차피 키슬링도 제압했겠다, 리저드맨의 탑쯤이야 그냥 내버려 둬.”

탈프 황자가 놀라며 만류하자 카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전에도 해치웠으니까요.”

그 말에 주위가 술렁였다.

소드 마스터도 상대하기 어려운 몬스터를 해치웠다니.

마검을 든 키슬링이 한 방에 나가떨어질 만도 했다.

“그, 그래? 그러면 내가 병력을 줄 테니 함께 싸워.”

그 말을 들은 모든 이가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카엘이 키슬링을 제압해 준 덕분에 키슬링을 붙잡긴 했지만.

현재 탈프 황자군은 모래 폭풍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뒤, 모두 흩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다들 모래 폭풍 때문에 정신없으실 텐데요.”

카엘이 사양하자 블리오를 비롯해 키슬링 황자군의 기사들까지 안도했다.

심지어.

“사양 안 해도 되네. 우리 제국의 병사들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으니까.”

“정말 괜찮습니다. 그보다 키슬링 황자군도 접수하셔야죠.”

“아! 맞다! 키슬링 황자군이 있었지.”

재차 권하는 탈프를 구슬리고 화제를 돌리는 걸 보고 모두 감탄했다.

‘완전 손아귀에서 가지고 노는구나.’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만간에 다시 오지요.”

“그래, 무운을 비네.”

카엘은 탈프의 환송을 받으며 자리를 떠나 탑으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앤트라이온이 쳐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전처럼 여러 마리가 쳐들어왔습니까?]

[네. 심지어 다섯 개의 탑이 거의 동시에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큰일이네요.]

[그래도 카엘 님이 제안해 주신 방어책 덕분에 아직까진 막아 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부아의 눈빛은 카엘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했다.

부담스럽긴 해도 저 반응을 봐서는 확실히 여유롭게 방어하는 중인 듯했다.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잘 막고 있다고 해도 언제까지 앤트라이온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렇습니까. 어서 가죠.]

[지하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이대로 가겠습니다.]

지하로 가는 게 모래바람도 없고, 덥지도 않아 몸은 편했다.

그러나 내려가는 시간도 시간일뿐더러, 앤트라이온 방어용으로 출입구를 많이 제거해 아직 남은 출입구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는 카엘과 소피아가 두 발로 뛰는 게 빨랐다.

[알겠습니다. 저쪽입니다.]

카엘의 말에 부아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카엘이 뛰자, 그 뒤를 소피아가 뒤쫓았다.

* * *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데?’

탑 근처까지 곧바로 달려온 카엘은 현재 상황을 보고 감탄했다.

탑 주변에 모래구덩이가 잔뜩 파여 있었지만, 앤트라이온도 그 안에서 허둥대고 있는 거였다.

그러다 한 앤트라이온이 모래 구덩이를 빠져 나와 탑으로 달려들었다.

그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저 거대한 앤트라이온이 허공에 떠서 모래 구덩이에 빠졌다.

황금 소재로 만든 출입구의 특수 기능 때문이었다.

아래에서 건드리면, 입구를 만들기 위해 위에 쌓여 있던 모래를 강력한 힘으로 날려 버린다.

그걸 본 카엘은 탑 주위에 배치해서 앤트라이온을 쫓아내는 용도로 쓰자고 했는데, 뛰어난 위력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앤트라이온을 날려 버릴 줄이야.’

카엘은 앤트라이온의 전진을 막는 정도의 위력이라 생각했고, 조금 더 세 봐야 뒤집는 정도만 가능할 거라 짐작했다.

‘그런데 아예 날려 버리니 부아가 그토록 존경하는 눈빛으로 쳐다봤지.’

문제는 언제까지 저렇게 버틸 수 있느냐는 거였다.

아래에서 출입구를 작동시키는 것도 기력을 소모했기에 앤트라이온이 계속해서 덤벼든다면 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저것들도 지칠 텐데 계속 공격해 오는 거로 봐서는 아무래도 조종당하는 거 같은데.’

카엘은 주위를 둘러봤지만,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일단 저것부터 해치워야지.’

그렇게 생각한 카엘이 뛰어가며 말했다.

“소피아, 가자!”

“네!”

카엘이 자취를 감추자 허공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마족 위자르샤였다.

-음. 은신을 들킨 줄 알았군.

위자르샤는 어느새 저 멀리 뛰어가는 카엘을 바라봤다.

금방 두리번거리다가 눈을 마주쳤을 때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놀란 게 얼마 만이지…….’

그러는 사이에 카엘은 소피아와 함께 앤트라이온을 한 마리 해치웠다.

이번에도 동족의 죽음에 놀란 앤트라이온들이 도망치려 했지만, 위자르샤가 막았다.

카엘은 전과 달리 계속 덤비는 앤트라이온에 의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앤트라이온들이 카엘이나 소피아를 해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카엘이 다른 탑에 오는 시간을 늦추도록 발목 잡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결국, 얼마 안 지나 앤트라이온들이 모조리 쓰러졌다.

카엘은 이어서 소피아와 함께 다음 탑으로 달려갔다.

위자르샤도 그 뒤를 따라가 앤트라이온을 조종했다.

이번에는 아예 카엘을 공격했지만, 오히려 더 빨리 당했다.

그다음 탑에서는 소피아를 노려 봤지만, 역시 실패했다.

네 번째 탑에서는 카엘을 무시하고 전 앤트라이온이 탑을 일제히 공격하도록 조종했다.

하지만 리저드맨들의 저항도 워낙 격렬했던 탓에 탑을 무너트리지 못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탑에서는 위자르샤도 거의 포기 상태였다.

카엘이 지키고 있는 이상, 앤트라이온을 아무리 보내도 탑을 쓰러트리긴 힘들 거 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제는 카엘이 없어도 시간을 끌면서 방어를 해낸 거였다.

위자르샤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걸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이대로 끝은 아니었다.

‘이제 기대할 건 황제의 수완뿐인가.’

* * *

황자들끼리의 전투와 앤트라이온의 습격이라는 난리 속에 카엘도 미처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탈프 황자군과 키슬링 황자군에 황제가 붙여 준 소드 마스터와 마법사들이었다.

키슬링이 탈프 황자를 공격한다는 말에 내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진영을 벗어나 한데 모이고 있었다.

“어휴,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사막에서 벗어나겠네.”

“이거야 원. 하는 일 없이 왔다 갔다 하는군.”

도리초와 포를난도가 한마디씩 하는데 마침 마법사 트바루드가 탈프 황자 진영에 있던 마법사 링겐을 데리고 다가왔다.

“다 왔나? 이제 가지.”

“그래, 돌아가자고.”

“아니,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제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나?”

도리초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묻자 트바루드가 말했다.

“황제 폐하께 따로 받은 명령이 있다. 황자들이 탑을 점령하는 걸 끝내면 가서 아예 부숴 버리라고 하셨다.”

“정말인가?”

“나도 그리 들었네.”

탈프 황자 쪽 진영에 있던 마법사 링겐도 말했다.

“그래? 음, 그렇다면 하는 수밖에.”

“근데 괜찮은 건가? 탑은 이미 니제르 왕국에서 다 점령했잖아. 그걸 냅다 부숴 버리면 문제가 될 텐데.”

포를란도가 우려했지만, 트바루드는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다. 어차피 탈프 황자에게 바친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걸 받을 탈프 황자가 잡히거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이 순간 두 황자군이 맞붙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는 트바루드나 포를난도 모두, 탈프 황자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황자에게 바친다는 건 즉, 황제에게 바친다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만약 불복하면 힘으로 눌러 버려야지.”

트바루드가 완강하게 말하자 포를난도는 쉽게 납득했다.

“하긴 더 말해 봐야 뭐 하겠나.”

“그래, 어서 가서 해치우고 돌아가자고.”

도리초도 포기하고, 황제의 명에 따르는 쪽에 섰다.

그렇게 넷은 각자 믿음직한 부하 몇몇을 추려서 이끌고 움직였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가 탑에 도착했는데 전혀 상상도 못 한 상황이 벌어져 있는 게 아닌가?

탑 주위에는 여러 개의 모래 구덩이가 파여 있고, 리저드맨들이 거대한 몬스터의 사체를 끌어낸다고 낑낑대고 있었다.

이 와중에 니제르 왕국군은커녕 인간은 하나도 안 보였다.

포를란도가 의아해할 때, 같이 살펴본 도리초가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니제르 왕국군이 점령한 게 아니었나?”

“음, 그래도 저기에는 여전히 니제르 왕국의 깃발이 꽂혀 있긴 한데.”

“속인 게 아니면, 그사이에 리저드맨들이 탈환한 거겠군.”

“그보다 저것 봐. 저 대형 몬스터, 앤트라이온이잖아.”

“앤트라이온?”

앤트라이온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준 건 링겐이었다.

“저 모래 구덩이 함정을 파서 먹이를 잡아먹는 몬스터인데, 아주 단단해서 소드 마스터의 검도 안 들어간다고 하지.”

“그래? 이거 승부욕을 자극하는 발언인걸.”

“아무리 그래도 내 검 중 하나는 들어갈 거 같은데.”

포를난도와 도리초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때 포를난도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근데 하나같이 껍질이 부서진 채 죽어 있는데?”

“그건 이상하군. 사실 저렇게 여러 마리가 있는 것도 이상해. 분명 저렇게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몬스터도 아니거든.”

“어쩌면 새끼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중요한 건 저 탑을 부숴 버리는 거다.”

그렇게 주변인을 조용히 시킨 트바루드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가 주문을 마치는 즉시, 다들 공격하도록.”

트바루드가 지팡이를 들며 주문을 중얼중얼 외우자 지팡이 끝의 보석이 번뜩였다.

동시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점점 빨라지는 게 아닌가?

모래 폭풍이 만들어진 거였다.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링겐이 나서서 중얼거리자 모래가 단단하게 뭉쳐서 거대한 모래 거인으로 변했다.

“…….”

포를난도가 아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오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 오러는 어느새 거대한 검 모양으로 변했다.

“47번 가져와.”

도리초가 하인들에게 손짓하자 하인 여럿이 허겁지겁 커다란 상자를 짊어지고 왔다.

그건 검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망치였다.

아주 무거워 보였지만, 도리초가 오러를 두르고 들자 가볍게 들어 올려졌다.

각자 전투태세를 갖춘 걸 본 포를난도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황제 폐하께서 왜 우리더러 나서라고 한지 알겠는걸.”

하나같이 대인전보다는 탑을 부수는 데 효율적인 능력을 갖춘 거였다.

그리고 그 능력은 지금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먼저 트바루드가 소환한 거대한 모래 폭풍을 날려 보낸 뒤, 링겐이 만든 모래 거인이 돌격했다.

그 뒤에 대검을 든 포를난도와 대형 망치를 든 도리초가 뒤를 따랐다.

난데없이 불어닥친 모래 폭풍에 리저드맨들은 난리가 났다.

그래도 모래 폭풍에는 익숙했기에 소란은 잠깐뿐, 이내 다들 숨을 곳을 찾아 몸을 낮추고 피신했다.

평소보다 몇 배나 거친 모래 폭풍이었지만, 몇몇만 휩쓸리고 나머지는 안전하게 대피했다.

앤트라이온의 사체를 옮기던 일부는 그 품속에서 날아가지 않도록 버텼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모래 폭풍이 끝나 갈 때쯤 고개를 들었더니 거대한 그림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내가 잘못 봤나?’

리저드맨 하나가 눈을 깜빡였지만, 거대한 그림자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어. 어…….]

그러는 사이 리저드맨을 밟아 버린 거대한 그림자, 모래 거인은 그대로 탑에 돌진했다.

탑에 있던 리저드맨도 깜짝 놀랐다.

[뭐, 뭐야. 막아!]

[저걸 뭐로 막으려고.]

심지어 지면에 닿는 부분이 넓은 앤트라이온과 달리, 천천히 달려오는 모래 거인은 출입구로 날리기도 어려웠다.

[안 되겠다! 내가 나서겠다. 다들 지원이나 요청해!]

탑의 경비대장이 황금 금속기를 발동하며 나섰다.

금속기를 쓰는 다른 리자드맨들도 모래 거인에게 덤볐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래 거인이 끝이 아니었다.

소드 마스터 포를난도과 도리초가 들이닥치자 모두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리고 포를란도의 대검과 도리초의 대형 망치와 함께 모래 거인이 탑을 공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탑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온 사막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래곤 알 쿠브라를 억누르던 봉인이 무너지기 시작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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