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89화 (189/234)

189화 드래곤 알 쿠브라 (2)

놀랍게도 현재 사막 지하에 있는 드래곤 알 쿠브라는 깨어 있었다.

리저드맨들에게 듣기로는 깨어난 지 이미 수년째였지만, 탑의 봉인 때문에 꼼짝달싹 못 하고 있다고 했다.

‘드래곤을 봉인하고 있을 줄이야, 위력이 대단한걸.’

그 말을 들은 카엘은 앤트라이온이 의도를 가지고 공격해 왔다고 직감했다.

드래곤이 불렀거나, 아니면 드래곤의 봉인을 풀고 싶은 자가 동원한 게 분명했다.

그걸 리저드맨 족장들에게 이야기했더니 모두 동의했다.

앤트라이온들이 이 정도로 대규모로 일사불란하게 쳐들어온 적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는 거였다.

어쨌든 탑이 드래곤을 봉인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리저드맨들이 기겁할 만했다.

알 쿠브라가 몇 년 동안 꼼짝 못 하고 갇혀 있으면서 약이 바짝 올라 있을 텐데, 탑이 무너지고 봉인이 풀린다?

알 쿠브라가 리저드맨을 모조리 씹어 먹어 버리려고 할지도 몰랐다.

어쨌든 카엘은 알 쿠브라와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라 키레아스에게 드래곤들이 함께 마왕과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라 키레아스나 영노처럼 마족과 마왕에 대항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봉인을 풀어 줄 생각도 있었다.

리저드맨들은 알 쿠브라의 노예로 살았고, 알 쿠브라는 리저드맨들에 의해 봉인되어 있으니 서로 사이가 극도로 나쁘긴 하지만…….

‘어떻게 방법이 있겠지.’

어쨌든 리저드맨들은 알 쿠브라에게 접근하는 걸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카엘이 드래곤을 만나 봐도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도 부족장들이 결정 못 했다.

각 부족의 원로들이 속해 있는 장로회가 논의해 봐야 한다고 했는데, 다행히 허락이 떨어진 거였다.

[단, 카엘 님 혼자만 허가됐습니다.]

“하지만…….”

“괜찮아. 봉인된 드래곤이 나를 어쩌겠어.”

부아의 말에 걱정하는 소피아를 카엘이 안심시켰다.

실제로 카엘은 이미 소드 마스터를 넘어섰다.

아직 드래곤을 이기긴 힘들었지만, 드래곤에게 허무하게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가죠.]

카엘은 부아의 안내를 받아 지하로 내려갔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는데, 무장한 리저드맨 경비병들이 있었다.

경비병들은 카엘이 온다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는지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방어용 황금 금속기를 내밀었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 쓰십시오. 이건 잠시 대여해 드리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카엘은 사용하지 않고 발목과 손목에 착용했다.

[혹시 사용 방법을 아십니까?]

[아뇨.]

[장착한 팔다리 쪽을 의식하면 됩니다만, 조금 연습이 필요하죠.]

[수동으로 작동 못 해도 괜찮습니다. 위험한 순간이면 자동으로 발동하니까요.]

[이렇게요?]

카엘이 만년설삼의 기를 슬쩍 팔에 내보내니 곧바로 방어막이 펼쳐졌다.

[엇!]

[마, 맞습니다.]

[설명만 듣고 바로 쓰다니. 역시 대단하신 분이군요.]

리저드맨 경비병들이 감탄했다.

그냥 빙한목의 냉기부터 기운을 움직이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었지만.

‘역시나 했는데 원리가 비슷한 모양이야.’

리저드맨 경비병들의 당부는 그거로 끝이 아니었다.

[갇혀 있는 위치 덕분에 알 쿠브라가 드래곤 브레스는 못 쓰겠지만, 드래곤 피어로 공격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방어막이 깨질 텐데, 위험하니 도망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방어막이 깨진다고 도망칠 생각은 없지만. 카엘은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는 한편 황금 금속기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거, 리저드맨들 황금 금속기를 가지고 있어도 드래곤 상대로는 힘들겠네.’

자동으로 방어가 되는 건 좋지만, 드래곤이 피어를 한번 발사하면 방어막이 일단 깨지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문 너머로 가려는데, 부아가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장로회가 허락한 게 카엘 님뿐이라서요.]

[그렇군요. 다녀오겠습니다.]

카엘은 그러면서 문을 넘어갔는데, 경비병들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정말 혼자 보내나 보네.’

카엘이 드래곤과 무슨 이야기를 할 줄 알고 혼자 보내는 건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드래곤과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네.’

문 너머에는 또 한참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내려갈수록 아주 강한 존재감이 느껴졌는데, 알 쿠브라가 틀림없었다.

계단의 끝으로 내려가니 아주 거대한 공동이 나왔는데, 그 안쪽에는 작은 산을 옮겨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대한 드래곤이 있었다.

그 모습은 라 키레아스와 영노를 반반 섞어 넣어 놓은 듯 긴 머리와 몸통 꼬리를 똬리 틀고 있는 게, 얼핏 뱀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알 쿠브라는 공동 한쪽 구석에 거대한 황금으로 도배된 방 안에 있었는데, 전면에도 황금으로 된 창살이 있는 게 감옥을 방불케 했다.

거기다 아주 좁아서 거기서 옴짝달싹하기 힘들어 보였다.

‘저래서 드래곤 브레스는 못 쓴다고 한 모양이군.’

카엘은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위대하신 고룡, 알 쿠브라 님. 카엘 브리운이 인사드립니다.”

“음? 인간이었어? 인간이 여기 무슨 일이지? 리저드맨들은 어쨌나?”

알 쿠브라는 이쪽을 돌아보지도 못하고 곁눈질로 쳐다봤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묻는데, 아무래도 안에 갇힌 신세다 보니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카엘은 알 쿠브라의 속내도 떠볼 겸 친절하게 대답했다.

“여기에 알 쿠브라 님이 갇혀 계신다기에 리저드맨의 허락을 받고 들어온 겁니다.”

“뭐야. 허락을 받았다고?”

알 쿠브라는 적잖게 실망한 듯했다.

리저드맨으로부터 자신을 구하러 온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해서였다.

“하지만 상관없지. 하찮은 미물이여, 위대한 드래곤을 경외하며 무릎을 꿇거라!”

파칭!

드래곤 피어가 발동하는 것과 동시에 황금 금속기의 방어막이 부서졌다.

앞서 리저드맨 경비병들은 위험하니 도망치라고 했지만, 카엘은 가만히 서서 알 쿠브라를 바라봤다.

다시 드래곤 피어는 물론, 만약 저 창살을 뚫고 드래곤 브레스를 날려도 막을 자신이 있어서였다.

한편 알 쿠브라는 카엘이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자 불쾌한 듯 으르릉거렸다.

“설마 나를 구경하러 온 건가? 어차피 마왕님이 깨어나면 너희들은 모두 다 죽은 목숨이다.”

‘마왕?!’

어떻게 알 쿠브라를 달래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 고민하던 카엘이 움찔했다.

“마왕을 몰아내기 위해 싸우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 다른 녀석들이 하도 닦달해서 하는 수 없이 싸운 거지. 그러던 녀석들도 다 죽었잖아! 지금은 한둘 남았으려나. 근데 지금 마왕이 부활하면 누가 막을 수 있겠어?”

‘그래서 마왕 편에 붙은 건가?’

이기적이지만, 한편으로 현실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드래곤들도 여럿 있고 전설로 내려오는 용사도 있었지만, 지금 마왕이 나타나면 누가 상대한단 말인가?

그렇기에 어떻게든 부활을 막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저드맨 부족과 니제르 왕국과 협력 관계를 만든 다음.

제국에 반기를 들고 압박해 움직임을 막고, 마족을 찾아 마왕의 부활을 저지해야 했다.

그래도 한 가지 이해가 안 가긴 했다.

“전향한다고 마왕이 받아 줍니까?”

진심이 아니라 등 떠밀려서 싸웠다고 해도 무려 자신을 해친 존재였다.

“물론이다. 마왕님은 아주 마음이 넓으시거든. 게다가 마족과도 이야기가 끝났거든.”

“설마 앤트라이온이 이곳을 공격하는 것도?”

“그렇다. 크흐흐.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카엘은 그 말에 위기감을 느꼈다.

자신에게 대놓고 말해도 못 막을 거라는 자신감에서 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카엘 님! 카엘 님.]

저 위에서 희미하게 부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무슨 일입니까? 지금 올라갑니다.]

[카엘 님! 카엘 님!]

카엘이 빠르게 위로 되돌아가면서 소리쳤지만, 부아는 계속해서 카엘을 불러 댔다.

아주 다급한 일이 생긴 모양인데, 차마 내려와 보진 못하고 위에서 외치고만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카엘이 모습을 보이고 나서야 부아의 외침이 멈췄다.

[무슨 일입니까?]

[쳐, 쳐들어온답니다.]

‘설마 니제르 왕국이?’

대화하기로 해 놓고 다시 공격해 온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카엘의 믿음을 배신하는 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대신 부아는 더욱 놀라운 소식을 말했다.

[제국에서 쳐들어온답니다! 지금 사막에 제국군이 나타났습니다.]

[뭐라고요?!]

* * *

카엘은 안내를 받아 황급히 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부족장들이 모여 있었는데, 마음이 급했던 카엘은 대뜸 물었다.

[제국군이 쳐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 목표는 아십니까?]

사막에 제국이 쳐들어왔다고 해도 꼭 리저드맨을 공격하는 게 목적이 아닐 수도 있었다.

황금이 풍부한 니제르 왕국도 아주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었으니까.

‘물론, 제국의 성격상 니제르 왕국을 공격한다고 해도 후방의 위협이 될 리저드맨들을 가만히 둘 리는 없겠지만.’

적의 목적에 따라 공격 범위나 정도는 달라지니 파악할 수 있으면 좋았다.

[리저드맨 토벌이라고 합니다. 니제르 왕국에서 알려 준 거니 틀림없습니다.]

[니제르 왕국 측에는 리저드맨을 토벌할 테니, 제국군이 사막에 있어도 놀라지 말라고 연락을 해 왔다고 합니다.]

부족장들이 차례로 대답했다.

그 정도면 확실히 목표가 리저드맨인 게 틀림없었다.

‘앤트라이온이 실패하자 제국군을 움직인 건가?’

드래곤이 자신할 만도 했다.

한편으로 제국이 마족과 결탁했다는 걸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한 가지는 안심이 됐다.

아직 레오폴드 왕자가 제국에 반기를 든다는 이야기를 제국이 눈치를 못 챈 게 틀림없었다.

‘그걸 알면 제국에서 브레프니 왕국을 먼저 칠 테니까.’

지금 리저드맨을 공격할 여력이 없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안도할 일도 아니었다.

[니제르 왕국에서는 또 뭐라고 합니까?]

[제국에서 협조해 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합니다. 다만, 저희를 도와주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건 이해가 갔다.

아직 정식으로 동맹을 맺은 것도 아닌 데다가, 리저드맨을 대놓고 지원했다가는 몬스터와 협력한다는 오명을 쓸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제국을 대륙의 공적으로 만들려던 계획 대신, 오히려 니제르 왕국을 징벌하자는 이야기로 바뀔지도 몰랐다.

문제는 리저드맨들도 이해할 수 있느냐는 거였다.

[어쩔 수 없죠. 아직 신뢰를 쌓은 것도 아니니.]

[같은 인간을 돕지 않는다는 것만 해도 큰 결심 아니겠습니까?]

다행히 이해하는 듯했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저희 힘만으로 제국군을 막을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들리는 바로는 제국군은 두 개의 탑으로 병력을 나누어서 쳐들어오는데, 탑마다 쳐들어오는 병력이 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럼 동원된 병력이 합쳐서 2만이나 된다는 소리였다.

사막에 익숙지 않을 테다가 모두 강병은 아니겠지만. 그 숫자는 무시 못 했다.

하지만 그거로 끝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두 부대에 각각 소드 마스터에 마법사까지 동행한 거 같다고 니제르 왕국에서 알려 왔습니다.]

소드 마스터에 마법사까지라면 정말 제국에서 각오하고 탑을 무너트리려는 모양이었다.

‘이거 큰일이네.’

니제르 왕국 덕분에 적의 정보를 빨리 파악할 수 있게 된 건 좋았지만, 워낙 절망적인 상황이다 보니 다들 벌써 좌절하는 분위기였다.

카엘은 다시 리저드 부족장에게 물었다.

[혹시 쳐들어오는 소드 마스터나 지휘관에 대해서는 못 들었습니까?]

[아, 그것도 들었습니다.]

[황제의 명령으로 각 부대를 황자들이 지휘한다고 하는데. 키슬링 황자와 탈프 황자라고 합니다. 저희는 잘 모릅니다만.]

‘탈프 황자!’

오랜만에 진성 망나니 황자의 이름을 들은 카엘은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내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탈프 황자라면 충분히 자신이 이끄는 토벌군을 망쳐 놓고도 남을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