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황금의 비밀 (2)
국왕이 승낙하자 이야기는 곧바로 진전됐다.
“그럼 뭐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고민할 필요 있어? 매번 하던 거로 하면 되지.”
“그래, 이번에도 주스트 토너먼트를 하자.”
부족장들의 말에 캬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주스트 토너먼트라고?’
주스트 토너먼트는 일대일로 조를 짜서 승자가 다른 승자와 대결해 나가는 마상창 시합을 뜻했다.
하지만, 이 사막 왕국에 마상창 시합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 없었다.
‘낙타를 타고 싸우는 걸 말하는 건가? 아니, 여기도 말은 있긴 하지만…….’
카엘이 궁금해하는 와중에, 세이비는 전혀 다른 걸 물었다.
“근데 굳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필요가 있나요?”
아무래도 황금 금속기를 부숴 먹은 장본인이니만큼, 또 다른 황금 금속기를 주면서까지 주스트 토너먼트를 벌이는 게 납득이 안 된 모양이었다.
문제는.
“어머, 아직 공부가 많이 필요한 아이네요.”
“저걸 물어볼 정도라니 하우사족의 장래가 어둡네.”
“그러게. 다음 국왕 선출 때 어쩌려고 그러지. 국왕 언니가 걱정이 많겠어.”
그걸 묻자마자 부족장들이 은근히 비웃었다는 거였다.
게다가 국왕은 한숨까지 내쉬었다.
“후. 네게 일을 맡겼는데, 이유조차 모르고 했었더냐.”
“부족장들 앞에서 카엘의 발언권을 높이기 위한 계획인 건 알고 있습니다. 그거랑 별개로 주스트 토너먼트까지 열 필요가 있냐는 거죠. 사람이 많다고 해도 적당히 구경시키면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세이비는 정색하며 항변했다.
그러자 국왕이 이마에 머리를 짚으며 한심하다는 듯 설명했다.
“애당초 왜 발언권을 높이려고 했느냐부터 생각했어야지. 그만큼 외부인의 시선이 중요한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건, 그 사안을 무리 없이 실행하기 위해서고.”
“중요한 사안이요?”
“그래. 우리 왕국의 운명을 결정 지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 말에 세이비는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왜 다른 부족장들까지 거의 다 모여 있나 했더니…….’
그런 세이비에게 국왕이 결정타를 날렸다.
“알았으면, 더는 어미에게 창피를 주지 말고 이만 나가거라.”
“……?!”
세이비는 국왕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붉히더니, 이내 아무런 말 없이 뛰쳐나갔다.
그걸 보며 혀를 찬 국왕은 카엘을 돌아봤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 조만간 자리를 마련할 테니,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는 게 좋겠군.”
“알겠습니다.”
어차피 카엘이 할 이야기는 더욱 은밀히 이야기해야 할 사안이었다.
다음 날.
국왕과 카엘의 예상대로 주스트 토너먼트를 개최한다고 발표하자 사람들의 관심이 거기로 확 쏠렸다.
사람들은 모일 때마다 누가 토너먼트에 참가하고, 누가 우승자가 될 건가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얘들아! 얘들아! 카엘 님과 대결권을 걸고, 주스트 토너먼트가 열린 데!”
“정말? 이게 얼마 만이야! 오랜만에 신나겠는걸.”
“역시 제일 강한 여자가 남자를 차지하는 게 맞지!”
“이번에는 어느 부족이 이길까?”
“나는 역시 풀라니족의 마하마네 님을 응원해야지.”
“무슨 소리야. 제르마족의 디오리 님이 더 세지 않아? 디오리 님이 이기겠지.”
“응원한다니까, 응원.”
“나는 베리베리족의 쿤체 님이 이길 거 같은데. 쿤체 님의 망치를 누가 버티겠어?”
“의외로 단검을 잘 쓰시는 하마니 님이 유리할지도.”
“창을 쓰는 마마누 님이 더 유리한 거 아니야?”
각 부족의 후계자들이 모두 거론됐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주스트 토너먼트에서는 쓸 수 있는 장비에 제한이 없다 보니 황금 금속기를 쓰는 각 부족의 후계자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별 불만이 없는 건, 그만큼 각 부족장의 인심도 괜찮은 편이긴 했으나.
아주 오래전이긴 해도 그런 불리함을 뚫고 우승자가 나타난 역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일반 금속기를 가지고 우승하거나, 심지어 금속기가 없이 우승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막 너머에서 온 이방인이 그 역사에 도전하려고 하고 있었다.
* * *
“주스트 토너먼트에 참가하고 싶다고?”
카엘은 소피아에게 되물었다.
주스트 토너먼트 개최 소식이 전파된 날 저녁 무렵, 소피아가 주스트 토너먼트에 참가해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본 거였다.
“네, 카엘 님이 허락만 하면 참가하고 싶어요.”
“참가야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말은 잘 못 타지 않아? 여기서는 낙타로 승부를 볼 수도 있는데.”
“아, 그건 괜찮습니다. 저도 이상해서 알아보니 마상창 시합이 아니라, 그냥 결투장에서 벌이는 일대일 대결이라네요.”
아무래도 그럴싸해 보이는 사막 너머의 단어를 들여와서는 자기네들 입맛에 맞게 쓰는 모양이었다.
“…그렇군.”
카엘이 납득할 때, 잠자코 있던 데키마가 소피아의 뒤로 가서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대회에 참가하신다니, 혹시 소피아 님도 카엘 님의 씨를 노리는 건가요?”
“데키마!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오히려 옆에 있던 노아나가 얼굴을 붉히며 화들짝 놀랐다.
그런 노아나에게 데키마가 호들갑 떨지 말란 투로 대꾸했다.
“대회 상품이 그거잖아. 그게 목적이 아니라면 출전할 이유가 없지.”
“아, 아니에요. 전 어디까지나 카엘 님을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에 어차피 카엘 님이 이길 거 아닌가요?”
“…가 아니라, 더 강해지기 위해, 수련하기 위해서입니다.”
뒤늦게 소피아가 말을 바꾸는 걸 보며 데키마가 짓궂은 얼굴로 킥킥 웃었다.
“잘 피해 가셨네요.”
그걸 본 노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데키마는 꼭 이럴 때만 말이 많아진다니까.”
“언니야말로 참가 안 해? 역시 질 거 같아?”
“글쎄, 내 전력을 다하면 아직 모르지.”
노아나가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아, 하긴.”
데키마도 그 말에 금방 납득했다.
‘뭐지? 뭔가 더 강해지기라도 했나?’
카엘은 의아했지만, 노아나가 더 말할 기미가 안 보였기에 말았다.
‘내키면 알려 주겠지.’
대신 카엘은 소피아를 격려했다.
“어쨌든 열심히 해 봐.”
“네. 꼭 우승할게요!”
‘부담될까 봐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는데, 하긴 한다면 하는 아이니까.’
카엘은 웃고 넘기다가 문득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기왕 참가하기로 한 거. 이것도 쓰게 해야겠네.’
그리고 당연히 사막 너머의 최강 검에 손꼽히는 소드 마스터 소피아의 참가로 주스트 토너먼트의 화제성은 더욱 커졌다.
* * *
주스트 토너먼트는 참가자를 받는 기간에도 계속해서 예선전이 진행된다.
접수 시기에 따라 일대일 혹은 단체전의 우승자가 다음 예선전에 올라갔다.
여기에서 얼마나 이기고 올라가느냐 하는 것만으로도 입대 시 경력이 되기도 하고, 용병의 경우 몸값에 영향을 주기에 제법 참가자가 많았다.
당연히 주최 측에서도 이를 배려하기 위해 금속기를 쓰는 참가자끼리 예선전 초반부터 싸우게 편성하지 않았고, 황금 금속기를 쓰는 부족의 후계자들끼리는 최대한 떨어트려 놨다.
그렇게 편성된 결선은 모두 8개 조.
일곱 개의 부족 후계자에 일반인 참가자가 올라오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소피아가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갔다.
소피아가 첫 예선전 결투장에 섰을 때는, 이미 다 소문이 났는지 일곱 명이 합심해서 소피아를 공격했다.
하지만 소피아는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일곱 명을 쓰러트린 거였다.
그다음 예선전도 오러를 쓰지 않고도 일대일로 가볍게 이겼다.
그러자 마지막 상대는 겨뤄 보지도 않고 기권해 버리기도 했다.
그 멋진 검술에 반한 소피아의 팬이 생길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 날.
대망의 결승전이 시작됐다.
거대한 원형 결투장에서 펼쳐진 첫 번째 결승전의 대결은 1조의 세이비 공주와 2조의 테다족의 하마니였다.
세이비 공주는 카엘의 씨도 탐났지만, 이번에 우승해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려는 목적이 컸다.
‘무조건 이긴다, 무조건. 그래야 엄마한테 조금이라도 덜 혼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곡도를 꺼내 상대를 겨눴다.
그러자 곡도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마른 체구에 짧은 단발머리를 한 하마니가 비웃었다.
“안 그래도 남자한테 처참하게 졌다지?”
“너도 상대해 보면 알아. 그 단검 같은 건 바로 깨질걸.”
그 말대로 하마니가 든 황금 금속기는 단검으로 세이비가 부숴 먹은 것 정도로 작았다.
이론상 황금 금속기에 들어가는 황금 덩어리가 클수록 강력했다.
“하지만 내 단검은 특별하거든.”
하마니의 단검에서 황금빛이 번쩍이더니 빠르게 세이비에게 날아갔다.
세이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볍게 피했다.
“일대일에서 그런 기습이 통할 거 같아?”
“이건 통할걸.”
그러면서 허리춤에서 새 단검을 꺼내서 덤볐다.
“하나 더 있는 건 알고 있었다!”
세이비가 나서면서 그 단검을 상대하고 있을 때였다.
어, 어!
장외에서 구경꾼이 놀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등 뒤에서 충격과 함께 쨍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황금 금속기의 방어막이 깨지는 소리였다.
“헉!”
놀란 세이비는 얼른 거리를 벌려서 경기장 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살펴보니, 자신이 있던 자리에 단검이 하나 더 있었다.
아무리 봐도 먼저 던진 단검이 돌아와 방어막을 깨부순 거였다.
“큭. 되돌아오는 단검이라니. 저런 것까지 됐었나?”
“응. 이번에 만든 단검 중에 저런 기능이 있더라고.”
“이번에 만든 단검 중에?!”
“그럼. 너희만 황금 금속기를 더 만들려고 애쓰는 줄 알아?”
그렇게 말한 하마니는 단검을 하나 더 꺼내더니 허공에 세 개의 단검을 번갈아 가면서 던지는 재주를 부렸다.
“다음에는 어떤 공격을 펼쳐 볼까. 이거로 끝내야겠네.”
그 말에 세이비는 ‘아뿔싸!’ 했다.
한번 깨진 황금 금속기의 방어막이 복구되는 데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그사이에 공격을 한 번 더 받으면 패배하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러면 위험해.’
그러는 사이 하마니가 던진 단검이 날아왔다.
‘일단 이걸 쳐 내고, 다음 공격을 대비하고 있다가 피하자.’
그렇게 계획하고 곡도를 휘두르는 순간.
단검이 쪼개져서 두 개가 되더니 세이비의 양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악!”
“중지! 승자는 하마니 님입니다!”
심판이 선언하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아니야. 아직 싸울 수 있어!”
세이비가 심판의 판정에 불복하고 나선 거였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싸늘한 시선과 함께 야유가 퍼부어졌다.
“…아.”
세이비는 아차 싶었다.
아무리 수도에서 열리는 주스트 토너먼트에 공주가 참가한 거였지만, 결투 결과에 불복하는 건 대중들의 반감이 컸다.
이 자리에 자신의 편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공주의 호위병이 결투장 근처까지 달려와 소리쳤다.
“…공주님, 이만 내려오시죠.”
“그래…….”
세이비는 어깨를 늘어트리며 결투장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승자인 하마니에게 더욱 큰 함성이 쏟아졌다.
그걸 들으며 세이비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난 이제 끝났어.’
* * *
“아쉽게도 정말 안 오나 봐.”
시종을 불러 혹시 연락이 온 게 없나 확인한 국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주스트 토너먼트를 하면서도 곧바로 부족 회의에 들어가지 않은 건.
이 자리에 오지 않은 제7의 부족, 사막을 떠돌며 유목 생활을 하는 타우레그족의 부족장을 기다린 거였다.
하지만 국왕과 부족장들이 제각기 사람을 보내 연락을 취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래, 더는 기다리기 힘드니 회의를 시작하자고.”
“작년에도 안 오고 우리끼리 했어도 큰 문제 없었잖아.”
“맞아. 어차피 결정도 다수결로 이뤄지잖아. 3 대 3 동률만 아니면 별문제 없을 거야.”
다른 부족장들이 연달아 동의하자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가벼운 것부터 이야기해 볼까?”
그렇게 국왕의 주도하에 부족장들의 회의가 시작됐다.
광산의 관리, 통행세 증감, 사막 주위의 방위, 각 부족의 애로 사항 등.
아무래도 7부족이 만에 하나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하에 평소에 논의하던 사안들에 다룬 거였다.
그 논의들이 모두 끝날 때까지도 타우레그 부족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기다렸던 카엘은 국왕과 부족장들에게 폭탄을 던졌다.
바로 리저드맨들과 동맹을 맺자고 제안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