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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74화 (174/234)

174화 모래 속으로 (1)

카엘은 영노의 도움을 받아 라 키레아스를 바다로 옮기고 어인족을 불렀다.

이대로 대륙으로 옮기는 것도 위험하니 심해성에 맡길 예정이었다.

다행히 라 키레아스는 얼마 전 심해성의 주인 메르 8세와 아주 친해졌다.

소식을 들은 메르 8세는 흔쾌히 라 키레아스를 맡아 주기로 했을 뿐 아니라, 최대한 정성껏 모시겠다며 방주를 보내왔다.

물론, 드래곤으로 변한 상태인 라 키레아스를 방주 안에 집어넣을 수 없어서 위에 실었다.

“라 키레아스 님을 잘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절대로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겠습니다.”

카엘의 말에 회복 포션을 하나씩 받은 어인족들이 힘차게 대답하고는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어인족 몇은 남아서 카엘 일행이 타모라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도록 배를 옮겨 줬다.

그러고 타모라국에 도착해 마을을 지나가다 보니 전과 달리 들떠 있는 분위기가 아닌가?

“무슨 일이지?”

“잠시만요. 제가 알아보고 올게요.”

“저도 같이 갈게요.”

카엘이 궁금해하자 곧바로 브로칸이 나섰다.

고여도 따라가더니 금방 돌아왔다.

“축제 중이라는데요?”

“축제?”

“국왕이 술과 고기를 전국적으로 내려보내서 그걸 가지고 잔치를 벌이라고 했답니다.”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됐다.

“그간 있었던 나쁜 일은 털어 버리고 힘내서 극복하자는 의미겠네요.”

“네, 우리나라의 풍습이라면 풍습이에요.”

“잘하셨네요. 역시 정신만 차리시면 성군이신가 봐요.”

“그렇죠? 헤헷.”

잔치 때문에 눈치 보던 고여는 카엘이 칭찬하자 자신이 칭찬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국왕은 여전히 서귀성에 머물고 있기에 도성으로 찾아갔을 때보다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궁궐 안에서도 연회가 열렸는지 다들 왁자지껄 떠들며 먹고 마시고 있었다.

그걸 구경하고 있으려니 국왕이 카엘과 고여 공주가 왔다는 소식에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겼다.

“카엘, 자네 왔는가. 자! 어서들 안으로 들어가지.”

그러고 안으로 들어가니 막상 마을과 궁궐 내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조용할뿐더러 음식은커녕 금방까지도 들춰 보고 있었는지 각종 서류가 어지러이 쌓여 있는 거였다.

그걸 본 국왕이 멋쩍게 웃었다.

“아차. 여기에는 대접할 게 없군.”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아주 바쁘신가 보군요.”

“잠도 제대로 자지 않으셔서 걱정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푹 쉬고 즐기라며 술과 고기를 하사하셨으면서…….”

마침 안에 있던 공주 아파기가 걱정했다.

확실히 국왕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색이 나빴다.

“나 때문에 나라가 풍비박산이 났는데 어찌 편히 지내겠느냐.”

“그래도 고기라도 좀 드시고 힘을 내셔야죠.”

“괜찮다. 백성을 위해 나라 곳간을 열었으니, 국왕은 더욱 검소하게 살아야 다시 곳간을 채울 게 아니냐.”

그러더니 카엘을 돌아보면서 농담까지 했다.

“맞다. 자네에게 나라를 준다고 일부러 거덜 낸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게나.”

“하핫, 잘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솔국에 갔던 건 어떻게 됐나?”

궁금해하는 국왕에게 카엘은 차분히 솔국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모조리 요괴로 변한 백성들.

대요괴들과의 처절한 싸움.

솔국 대왕과의 전투까지.

이야기를 듣던 국왕이 탄식했다.

“어허, 그런 일이……. 특히 백성을 요괴, 괴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이로군.”

“저희도 다들 놀랐습니다.”

“만약 솔국을 그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다시 쳐들어올 게 분명했겠어. 다들 고생이 많았네. 오늘은 이제 푹 쉬게나. 내일부터 나라의 은인을 위한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라 이르겠네.”

“괜찮습니다. 지금 차려 놓은 것도 많던데요. 부담스럽게 하시면 바로 떠날 겁니다.”

“허, 그래도…….”

“대신 나가서 차려 놓은 잔칫상은 좀 들겠습니다. 국왕님도 함께하신다면요.”

“카엘 님이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조금만 쉬시죠.”

“그럼 하는 수 없군.”

고여까지 그렇게 권하자 국왕은 마지못해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카엘은 다른 일행과 함께 궁궐 내에서 실컷 먹고 마시며 편히 쉬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카엘이 떠날 준비를 하려 하니, 국왕이 일하다 말고 뛰쳐나와 붙잡고 하루만 더 쉬다 가라고 했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카엘은 중전 때문에 폐쇄됐다가 근래에 다시 운영을 시작한 궁궐 내의 약제소로 향했다.

거기에서 몇 가지 약재와 도구를 빌려 약환을 만들었더니, 고여가 찾아와 국왕이 찾는다고 했다.

“그래, 와 줘서 고맙네.”

역시 얼굴색이 안 좋네.

카엘은 자신을 향해 힘없이 웃으며 인사하는 국왕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얼굴색이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게 많이 무리하는 모양이었다.

카엘은 만들어 온 약환을 내밀었다.

“마침 이것 좀 드십시오. 기력이 많이 쇠하셨습니다.”

“오, 그대가 만들어 온 약인가? 고맙네.”

“고맙다고만 하지 마시고, 하루에 한 알씩 꼬박꼬박 드셔야 합니다. 국왕께서 무리하다 쓰러지면 국가가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정말 고맙네. 안 그래도 의원들에게 빼어난 조제법을 전수해 줬다면서.”

일한다고 바빠 보였는데, 카엘이 한 일에 대해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카엘은 겸손히 말했다.

“너무 거창한 말씀이십니다. 그저 제가 아는 몇 가지 중에 널리 쉽게 쓰일 만한 걸 알려 드린 것뿐입니다. 마침 제가 배운 것도 동방의 약제술을 기반으로 한 거라 알려 드리기 쉬웠고요.”

“고생해서 배운 기예를 남에게 나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네. 충분히 존경받을 일이야. 나도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해야겠지.”

그렇게 말한 국왕이 소리쳤다.

“이리 가져오너라!”

“음?”

“그대가 이 나라에 해 준 것에 비교할 바는 못 되겠지만, 보답으로 선물 하나를 준비했네.”

그러는 사이 무관들이 고풍스러운 장식의 기다란 상자를 하나 가져왔다.

그 뚜껑을 여니 안에는 타모라국의 검이 들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검신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사진참사검(四辰斬邪劍)이다. 용의 해(辰年), 용의 달(辰月), 용의 날(辰日), 용의 시(辰時)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사진검이라고도 하지.”

그렇게 말한 국왕이 검을 집어 들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한쪽에 글자가 새겨진 검을 뒤집자 별자리 문양이 보였다.

“우리나라 최고 장인이 딱 한 자루 만든 신검이야. 사악한 귀신을 베고 재앙을 물리치는 힘을 가졌다네.”

국왕의 설명이 없어도 검신에 새겨진 글자와 문양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게 신성한 힘을 품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성물 중에서도 최상급 성물.

그걸 본 브로칸이 입이 간지러웠는지 한마디 했다.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좀 꺼내 주시지.”

“브로칸!”

“…죄송합니다.”

카엘이 나무라자 브로칸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요괴들과 생사를 넘나드는 힘겨운 전투를 치르고 왔으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지.”

국왕은 멋쩍게 웃으며 사진참사검을 다시 상자에 곱게 내려놨다.

“대대로 내려오는 신성한 검이라 당연히 솔국으로 간다 했을 때 내줄 생각이었다네. 창피하게도 중전이 불길하다 하여 누구도 모르게 깊이 숨겨 두는 바람에… 오늘에야 간신히 찾았다네.”

아무래도 이걸 찾느라 카엘더러 떠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붙잡았던 모양이었다.

받기 미안할 정도로 아주 귀한 국보 같았지만, 앞으로 치를 전투를 생각하면 아주 귀한 무기였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애지중지 모셔 놓는 것보다 그대가 요긴하게 쓰는 게 선조께서도 기뻐하실 거야.”

국왕은 흡족한 얼굴로 웃었다.

“그럼 이만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그대도 바쁠 테니 내 더 붙잡지 않겠네.”

정말로 사진참사검을 주기 위해서 카엘을 기다리게 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다음에 우리나라에 왔을 때는 아주 놀랄걸세. 요괴도 없고 나라도 아주 부강해 있을 테니 말이야.”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러고 나오니까.

타마모와 고여가 따라 나왔다.

이 둘은 앞으로 카엘을 따라다니려나 싶었는데 뜻밖에도 아니었다.

고여는 결의에 찬 얼굴로 말했다.

“카엘 님, 저는 여기 남아 다시 카엘 님을 뵙기 전까지 아버님을 도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국왕께서도 분명 든든하게 여기실 겁니다.”

타마모도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여기에 있을 거야. 지금 내 힘으로는 별로 도움이 못 되잖아. 적어도 원래 힘은 되찾아야지.”

아무래도 꼬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니 다시 꼬리를 늘릴 작정인 듯했다.

그 소리에 고여가 반겼다.

“아, 그런 거면 저도 도와드릴게요. 사실 저도 이번에 미력함을 느끼고 더 힘을 쌓을 생각이었거든요.”

“앗 정말? 고마워, 언니.”

“어, 언니?”

“왜 나보다 나이 많잖아. 무려 치…….”

고여는 황급히 타마모의 입을 틀어막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니는 무슨, 그냥 우리 친구 해요. 알. 았. 죠?”

“으, 응.”

고여의 미소에서 살기를 느낀 타마모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떠나려는데 찾아오는 이가 많았다.

함께 싸웠던 사대장군 셋과 두억시니와 금갑장군, 백포건호까지 배웅하겠다고 온 거였다.

소피아는 그게 마음에 드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여기 분들은 사람이나 요괴나 할 거 없이 하나같이 다정한 거 같아요.”

“그걸 여기에서는 말 그대로 정이 많다고 하더라고.”

“아. 그렇군요.”

* * *

그길로 타모라국을 떠난 카엘은 일단 항구도시 아말레이에 도착해 클리페우스성으로 돌아갔다.

심해성에 맡겨 둔 라 키레아스가 걱정되었지만, 치료약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사진참사검 외에도 타모라 국왕은 이런저런 특산물과 보물을 많이 챙겨 줬다.

카엘은 그걸 항구도시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프리츠와 거인들에게 일부 주고, 나머지는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선물로 줬다.

다들 신기한 물건을 보고 놀라고, 브로칸이 떠드는 모험담에 다시 한번 놀랐다.

몇몇은 아무리 영웅 카엘이 겪은 일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카엘은 그런 반응도 이해했다.

돌이켜 보면 자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 투성이였으니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여러 가지 일로 아주 바쁜 상황이었다.

제일 먼저 신경 쓴 건 라 키레아스의 치료약이었다.

아무래도 드래곤인 상태라 그 크기에 걸맞게 약도 아주 많이 만들어야 했다.

당연히 클리페우스성 내의 약재로는 부족해서 전국적으로 끌어모아야 했는데, 맥킨더 상단의 도움을 받아서 간신히 약을 만들어 심해성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 밖에도 금갑장군에게 받은 백갑신병, 흑갑신병으로 변하는 하얀 콩과 검은 콩을 재배했다.

그걸 엘프 세 자매 중, 물을 다루는 데키마가 담당하고 싶다고 해서 맡겼다.

세계수의 힘이 잘 미치는 곳에서 엘프가 돌보다 보니 금방 싹이 트고, 매일 볼 때마다 쑥쑥 자라고 있었다.

그걸 본 카엘이 기뻐했다.

‘이거면 얼마 안 돼서 수확할 수 있겠는걸.’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엘은 새로 얻은 능력인 만년설삼의 기를 바탕으로 검술 수련을 시작했다.

소드 마스터를 육성한 마검 아조트에 소드 마스터 소피아와 루크에게 배우자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났다.

‘내가 이 정도로 검을 다룰 수 있게 될 줄이야.’

카엘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한 번은 역시 소드 마스터인 아버지 티겔도 카엘이 훈련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며 아주 흡족한 얼굴로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우리 가문에 소드 마스터가 한 명 더 나오겠구나.”

그렇게 바쁜 세월을 지내는 와중에도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스승님은 대체 언제 돌아오시는 거지?’

스승 디오네는 엘프답게 느긋하고, 한번 여행을 떠나면 몇 년 동안 안 돌아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돌아오지도 않는 데다가 도통 소식도 없으니 괜스레 아쉬웠다.

‘현자의 돌이나, 세계수의 씨앗도 있으니 언젠가는 꼭 돌아오겠지만.’

그러는 와중에 클리페우스성에 은밀히 찾아온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레오폴드 왕자였다.

한 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조용히 찾아온 레오폴드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카엘, 때가 왔네.”

레오폴드가 말한 때라는 건,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드디어 제국에 반기를 드실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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