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부작용 (2)
이대로라면 불리하겠다고 계산을 마친 소통연귀가 소리쳤다.
-에잇! 간간사라! 아자촉누! 우귀! 야공! 나오세요!
타모라국의 우두머리급 요괴들과 카엘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해 둔 전력이었다.
간간사라는 상반신이 무녀, 하반신이 뱀인 요괴. 실제로는 거대한 뱀이 무녀의 하반신을 잡아먹고 조종하는 거였다.
상반신만 남은 무녀는 요력의 영향으로 4개의 팔이 더 돋아나 더욱 기괴한 모습이었다.
아자촉누는 키가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해골 요괴.
전장에서 허무하게 죽은 원혼과 그 뼈다귀들이 뭉친 거였는데, 그 크기만으로도 아주 강력했다.
우귀는 거대한 거미 몸에 소의 얼굴이 달린 요괴로, 일반적인 거미 요괴와 달리 가죽이 아주 단단하고 소뿔로 돌격하면 집채가 무너질 정도였다.
야공이라는 요괴는 효효라는 기분 나쁜 울음을 냈는데, 그보다 더욱 기분 나쁜 건 그 모습이었다.
뱀 머리에 호랑이 몸통, 곰의 다리에 닭 날개 등 온갖 요괴를 뒤섞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요괴를 섞어 둔 만큼 요력도 강하며 그 능력도 다양했다.
이들은 하나하나가 두억시니나 금갑장군, 백포건호급으로 강력했기에, 합세하면 영노도 상대할 만하다고 계산한 거였다.
하지만.
“많이 늦진 않은 모양이네.”
“아군이 전멸하기 전에 와서 다행이로군.”
“빈승이 발을 놀린 보람이 있소이다.”
때마침 두억시니, 금갑장군, 백포건호가 나타났다.
카엘의 뒤를 쫓아 최대한 빨리 달려와 준 거였다.
카엘은 눈앞에 나타난 강력한 요괴들을 가리켰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각자 하나씩 맡아 주세요.”
“오옷. 맡겨 두라고.”
“알겠네.”
“빈승도 거들겠소이다.”
타모라국의 요괴 두령급인 두억시니, 금갑장군, 백포건호가 기꺼이 나섰다.
제일 먼저 백포건호가 간간사라 앞에 섰다.
무녀의 상반신만 남기고 집어삼킨 뱀 요괴를 보며 백포건호가 한탄했다.
“아미타불. 정말 안타깝구려. 도를 닦던 분이 요괴에게 변을 당하시다 못해 시체마저 이용당하다니.”
-크흐흐, 누가 누굴 탓하느냐. 네 놈은 호랑이 주제에 왜 승복을 훔쳐 입고 잘난 체하는 거냐. 땡중을 물어 죽이고 뺏은 주제에.
그 말대로 백포건호는 여기까지 빠르게 달려오느라 호랑이 몸에 승복을 걸친 채였다.
“허허. 모르는 소리.”
간간사라는 그렇게 주의를 끌고 기습했지만, 백포건호는 웃으며 피했다.
“이 승복은 내가 산군으로 있는 암자에서 입적하신 고승께서 물려주신 것이외다.”
백포건호는 자신에게 끝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늙은 고승을 떠올렸다.
비쩍 마른 채로 자신이 우두머리로 있는 산에 올라온 고승을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죽을 자리를 찾아온 줄 알았다.
그러나 죽기는커녕 그 몸으로 산 중턱의 경치 좋은 곳에 암자를 짓는 게 아닌가?
도와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뼈다귀만 남은 육신을 먹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무료한 하루에 나타난 고승이 흥미로워,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했다.
며칠을 고생하더니 비도 제대로 못 막을 허름한 암자를 짓고 만족하는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저런 것도 암자라고 지은 건가.’
하지만 그 실소는 고승이 그 안에서 불경을 외기 시작하자 어느새 사라졌다.
밤낮없이 뜻 모를 불경을 외는 걸 듣고 있으니,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후련해지는 기분이 드는 게 아닌가?
‘허허, 좋구나.’
듣고 있다 보니 어찌나 빠져드는지 귀 기울여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폭풍우가 내리치던 어느 날.
고승은 그 난리 속에도 불경을 외웠지만, 백포건호는 들리지 않아 동굴로 돌아갔다.
동굴에 앉아 누웠더니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백포건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동안 불경에 빠지느라 굶주림을 못 느껴 사냥하지 않았다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러니 저 고승이 비쩍 골았지.’
그런데 다음날 암자로 가니 고승이 비를 잔뜩 맞고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열이 펄펄 끓는 것이 이대로 죽겠구나 싶었다.
‘그러면 누가 이 깊은 산속에 와서 불경을 왼다는 말인가.’
백포건호는 큰일 났다 싶어 사슴을 잡아다가 고승 앞에 내려놓았다.
꼼짝 못 하게 목만 부러트려 놓은 덕분에, 사슴은 아직 팔팔했다.
이 사슴의 피를 빨아 마시면 금방 나을 게 분명했다.
고승도 백포건호가 사슴을 물어온 의도는 눈치챘는지 물었다.
“이 사슴의 피를 마시란 말이냐?”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아직 말을 하지 못 했던 백포건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순 없다.”
그 말에 백포건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죽은 목숨인데 왜 피를 마시지 않느냐는 거냐? 목숨을 헛되이 하는 게 아니냐고?”
백포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걸 받으면 앞으로 네가 내가 아플 때마다 사슴을 물어올 게 아니냐? 앞으로 벌어질 살생을 부추기는 셈이니 못 받는 거다.”
‘어, 그렇게 되나.’
백포건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고승이 사슴에게 다가갔다.
“사슴아, 미안하다. 저 호랑이가 나를 위해 이런 짓을 저질렀구나. 내가 해 줄 건 이것밖에 없다.”
그러면서 무슨 힘이 났는지 사슴의 멱을 맨손으로 따 버리는 게 아닌가?
그러고 한 달쯤 염불을 안 하더니, 어느새 다시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포건호는 수시로 찾아가서 불경을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아니 몇십 년이 지났을까?
불경을 듣던 백포건호는 호랑이로 늙는 대신,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다닐 수 있게 됐다.
그러더니 어느새 사람 말도 할 수 있게 된 거였다.
그러고 나서는 고승 옆에서 그간 지겹게 들었던 불경을 따라 외웠다.
처음에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고승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게 왠지 쑥스러워 암자를 뛰쳐나갔다.
그다음 날에는 아무 일 없는 척하고 다시 앉아서 불경을 외웠지만.
그렇게 영원할 것 같았던 고승과의 삶은 정말 불현듯 끝났다.
어느 날 불경이 멈췄나 싶더니 고승이 가부좌를 튼 채로 꼼짝하지 않는 게 아닌가?
이 세상을 떠나 열반에 들어간 거였다.
거기다 어디서 구했는지 깨끗한 승복과 함께 서신 하나가 남아 있었다.
네가 부처가 되는 걸 못 보고 떠나는 게 아쉽구나.
‘내가 부처가 되고 싶은 걸 어떻게 알았지?’
나는 속세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이곳에 와 깨달음을 얻었으나.
너는 이곳에서만 살았으니 속세로 내려가면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이걸 입고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되, 관청의 일에 협조하면 쓸데없는 말썽은 없을 거다.
…라고 선물과 함께 애정 어린 조언이 쓰여 있었다.
그길로 백포건호는 승복을 입고 하산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거였다.
그 때문에 백포건호에게는 고여가 검기를 쓰듯이 요력말고도 법력을 펼칠 수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백포건호가 불경을 외기 시작했다.
경쾌하면서도 또렷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간간사라의 상반신만 남은 무녀의 표정이 굳더니 서서히 일그러지는 게 아닌가?
종국에는 갑자기 발작하듯 몸부림쳤다.
간간사라는 자신의 조종이 먹히지 않자 당황했다.
-왜, 왜 이러는 거냐.
“자신이 부정한 것에 억죄어 있는 걸 깨닫고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거지.”
-이, 이런 쓸모없는 것이.
간간사라는 뒤늦게 무녀를 토해 내려 했지만, 몸부림이 너무 심해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호랑이들아! 저 부정한 것들을 물어뜯어 버리거라!”
그 탓에 백포건호의 명령을 받은 호랑이들이 공격해 와도 꼼짝없이 당할 뿐이었다.
간간사라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왜 반응을 하는 거지? 서로 계통이 다른 게 아닌가?
“고승이 말했지. 모든 깨달음은 하나로 통한다고.”
그렇게 대답한 백포건호는 간간사라에게 달려들어 꼬리를 물어뜯었다.
간간사라는 쿠에엑 괴성과 함께, 무녀를 토해 내며 쓰러졌다.
* * *
한편 백포건호가 불경을 외는 소리를 들은 금갑장군이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제 실력을 낼 생각인가. 그렇다면 이쪽도 질 수 없지.”
금갑장군의 상대는 거대한 해골 요괴인 아자촉누!
금갑장군도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될 정도로 컸지만, 아자촉누는 그 이상으로 컸다.
심지어 그 뼈다귀를 구성한 원혼들이 끔찍한 목소리로 울어 댔다.
원혼들은 대부분 솔국에서 끊임없이 벌어진 전쟁에 휘말린 희생자들이었다.
그 때문에 내는 목소리는 하나같이 자신을 전쟁에 내몬 위정자들을 원망하거나, 남에게 좌지우지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거였다.
“원입골수(怨入骨髓)라는 딱 어울리는 요괴로다.”
한마디로 원망이 골수에 사무친 거였다.
죽어서도 그 원망마저 타인에게 이용당한다는 점에서 최악이었다.
금갑장군은 혀를 찼다.
‘결국,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는 게 중요한 것을.’
사실 금갑장군은 인간인 적이 없었다.
요괴가 되기 전 금갑장군은 말 그대로 금갑.
황금으로 만든 갑옷이었다.
한 부호가 나라가 위기에 처한다면 입고 나겠다면서 호기롭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그 부호는 생전에 갑옷을 입지 못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지 않은 게 다행인 게 아니라, 갑옷 역할을 하기 힘든 허세용 갑옷을 입고 전장에 안 나가게 된 게 다행이었다.
그 금갑은 대대로 내려오면서 전장에서 쓰이기는커녕 일종의 부적처럼 여겨졌다.
금갑에게 가족을, 가문을, 마을을, 국가를 지켜 달라며 정성스레 치성을 드리고 제사를 올리다 보니 어느새 금갑도 의식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금갑에게 치성을 올리고 제사를 지낼 때마다 금갑의 기운은 강력해졌지만 그래도 갑옷일 뿐이었으니까.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어느 날 외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리에 부호의 후손이 금갑을 입고 뛰쳐나간 거였다.
다행히 요력을 가지게 된 금갑이 보통 황금과 달리 창과 칼을 굳건히 막아 줬다.
그것만으로는 무술에 재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후손의 목숨을 부지하게 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후손은 눈먼 화살에 얼굴을 맞아 사망했다.
금갑은 그 와중에 한탄했다.
‘어찌 이렇게 검을 못 다룰 수가 있나, 이럴 거면 차라리 내가 나서서 싸우고 말지.’
그렇게 마음먹어서였을까?
갑옷에 손발이 돋아나더니 어느새 사람의 형상을 하게 됐다.
그 뒤로 외적이 나타났다는 말이 들리면 쫓아가 무찔렀다.
그러다 보니 금갑장군이라고 불리게 된 거였다.
정작 금갑장군은 자신을 장군으로 부르는 걸 썩 마음에 들어 하진 않았다.
‘따르는 병졸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장군이란 말인가.’
그러다 인간들이 줄이 그어진 나무판에 백돌과 흑돌을 놓고 승부를 겨루는 걸 떠올렸다.
‘일종의 전투를 형상화한 거랬지. 다음에 하나 갖다 달라 해야겠군.’
금갑장군은 당장에 기분을 내기 위해 사람들이 바치고 간 공물을 살펴봤다.
‘백돌과 흑돌 대신 이걸 쓰면 되겠군.’
하얀 콩을 바닥에 내려놓으니 불쑥 하얀 갑옷을 입은 병졸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어, 이게 뭐야?”
금갑장군이 원하자 그 요력이 하얀 콩을 병졸로 바꾼 거였다.
백갑신병의 등장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검은 콩을 던졌더니 흑갑신병이 나타났다.
흑돌이 유리하다더니, 흑갑신병이 조금 더 강했다.
어쨌든 그렇게 금갑장군과 백갑흑갑신병대가 탄생한 거였다.
그리고.
“마음먹기에 따라 이런 것도 가능하지.”
금갑장군은 허리춤의 주머니들을 잔뜩 열어서 바닥에 흩뿌렸다.
백갑신병을 부르는 하얀 콩뿐만 아니라, 그보다 강한 흑갑신병을 소환할 수 있는 검은 콩도 잔뜩 뿌렸다.
그러자 백갑신병과 흑갑신병이 잔뜩 소환됐다.
그런 금갑장군을 아자촉누가 비웃었다.
“졸개들이 아무리 많아 봐야 쓸모없다는 걸 아직 모르겠느냐?”
그 말대로 거대한 아자촉누가 한걸음 내딛기만 하면 백갑신병이나 흑갑신병이나 할 것 없이 짓밟혀 버릴 것만 같았다.
“안다. 하지만 이러면 어떨까?”
금갑장군이 손을 하늘로 뻗어 대(大)를 만드니, 백갑신병과 흑갑신병이 우르르 금갑장군에게 몰려드는 게 아닌가?
덤비는 게 아니라, 하나둘 금갑장군에게 달라붙어 발이 되고.
몸이 되고.
손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갑장군은 아자촉누에 걸맞을 정도로 거대해진 거였다.
“봤느냐?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런 것도 된다.”
-큭.
“그럼 한판 붙어 볼까?”
금갑장군은 흑갑신병으로 만든 거대한 흑도를 아자촉누에게 휘둘렀다.
그 의지가 어찌나 강한지. 아자촉주의 원한은 흩어져 나갔다.
아자촉누가 공격하며 소리쳤다.
-이럴 수가! 어찌 이런 요물 따위에게 내가 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지? 그러니 창피하게 여기거라.”
금갑장군은 그렇게 흑갑신병도를 세로로 내려치며 아자촉누를 반 토막 냈다.
그렇게 금갑장군이 아자촉누를 해치우는 사이.
두억시니와 카엘도 각각 특귀급 요괴인 우귀와 야공을 상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