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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58화 (158/234)

158화 도채비 전설 (7)

그 선두에 선 두억시니가 방망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도오채비들아! 어서 가서 해치워 버려라!”

“알겠습니다! 예끼 놈들! 오늘 다 죽었다고 복창해라!”

“어디 흉측한 것들이 이 땅에 설치느냐!”

“내 몽둥이 맛 좀 보여 줘야겠구나!”

도채비들은 함성을 지르며 괴물들에게 덤볐다.

안 그래도 귀인들 대부분이 단번에 쓸려 나간 탓에 주춤하던 괴물들은.

도채비들의 공세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카엘의 뒤에 느긋하게 나타난 두억시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식들, 별거 아니네.”

여유를 부리는 걸 보며 카엘이 당부했다.

“도망치는 괴물들도 모두 해치워야 합니다.”

“어? 그래?”

“본래 땅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니 숨었다가 이 땅에 뿌리 내릴 테니까요.”

“그건 안 되지.”

순식간에 심각한 표정이 된 두억시니가 소리쳤다.

“야! 싸리비! 놀지 말고 도망치는 것들도 쫓아서 다 해치워 버리라고 해!”

“네, 네. 싹 쓸어버리겠습니다!”

“하핫! 네가 그렇게 말하니 참으로 어울리는구나.”

호탕하게 웃던 두억시니는 카엘에게 감사를 표했다.

“네가 조언해 준 덕분에 살았다. 저 흉측한 괴물들이 이 땅에 뿌리 내린다니, 정말 끔찍한 일이 생길 뻔했군.”

“별말씀을요.”

“겸손하기는, 방금도 네가 한 번에 귀인들을 날려 버린 덕분에 쉽게 이긴 건데. 남은 잔챙이들은 애들 장난이지.”

그러더니 카엘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단 말이야. 만년설삼이라고 해도 겨우 몇백 년짜리를 먹고 그렇게 강해질 줄이야.”

“제가 약효를 좀 잘 받는 편이라서요.”

“한마디로 약발이 잘 받는다 이 말이군. 안 그래도 단피몽두와 싸울 때도 계속 약을 빠는 거 같더니만.”

“그것까지 보셨습니까.”

싸우면서도 주위를 잘 보고 있더니, 다친 와중에도 다 본 모양이었다.

그러고 있으니, 잠자코 카엘과 두억시니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던 욕수가 꾸벅 인사했다.

“사대장군인 욕수입니다. 도채비님, 반갑습니다.”

“그래, 반갑다. 난 두억시니다.”

두억시니는 인사를 받자마자 방망이를 들었다.

“여긴 대충 정리된 거 같으니, 저 아래 마을 구하러 가야겠다. 욕수는 좀 쉬고 있어.”

“아닙니다. 다치고 지친 일부만 남기고 함께하겠습니다.”

“훗. 아까부터 봤는데 제법 근성 있더군. 마음에 들었어. 그럼 먼저 갈 테니 정리하고 따라와!”

칭찬한 두억시니가 발걸음을 뗐다.

두억시니가 내려가는 걸 본 욕수는 카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말 도채비들을 설득해 오셨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가 설득했다기보다는 그쪽도 마족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 방해를 눈치채고 없앴다면 더욱 대단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나?’

그런데 감탄하던 욕수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진 게 아닌가?

“혹시 무슨 다른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 저야 이렇게 카엘 님과 도채비님들이 도와주셔서 살았는데. 다른 동료들이 괜찮을까 걱정이 되는군요.”

“아,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른 곳에는 다른 요괴들이 도와주러 갔거든요.”

“네?! 그게 정말입니까?”

* * *

“장군님! 정찰 다녀왔습니다!”

하얀 갑옷에 눈코입이 없는 반들반들한 하얀 얼굴을 한 백갑신병이 달려와서 금갑장군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금갑장군은 근엄하게 말했다.

“보고하라.”

“적들이 구망 장군이 이끄는 부대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전멸을 피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적의 병력은?”

“괴물이 삼백, 귀인이 열다섯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정도면 되겠군.”

금갑장군이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 두 개를 꺼냈다.

그사이 다른 백갑신병들이 앞에 은그릇을 가져다 놓았다.

금갑장군이 은그릇에 주머니를 터니, 그 안에서 하얀 콩이 우수수 떨어졌다.

떨어진 콩은 은그릇에 닿자마자 밖으로 튀어나가더니, 백갑신병이 됐다.

그렇게 순식간에 만들어진 백갑신병은 모두 5백.

“이 정도면 충분히 상대하겠지.”

금갑장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부하들을 바라보더니 검을 뽑아 높게 들었다.

“자, 나를 따르라!”

“와아아아아아아!”

제각기 무기를 든 백갑신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저 아래 있는 괴물들을 향해 돌진했다.

-저건 뭐야?

-풍기는 요기로 봐서는 이 지역 요괴들 같은데?

-별거 아닌 거 같은데? 그냥 해치워 버리면 되겠네.

후방에 있던 귀인들은 그걸 보고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하얀 갑옷을 입은 병졸들인 걸 보고 비웃었다.

귀인들의 지시에 따라 안 그래도 포위 바깥에서 놀고 있던 괴물들 일부가 뒤돌아서 병종들을 공격했다.

확실히 백갑신병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나하나는 괴물 하나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적이 온다. 방패 들어!”

척. 척.

돌격하던 백갑신병은 금갑장군의 명령에 순식간에 걸음을 멈추더니 방패를 들고 막아섰다.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되어서 괴물들의 돌격을 견뎌 냈다.

“창병 공격!”

그 명령에 방패병들이 방패를 좌우로 조금씩 움직였다. 창병들이 그 틈으로 괴물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바로 앞의 괴물들이 쓰러지니 주위의 괴물들이 주춤했다.

“지금이다. 보병들은 돌격하라!”

그 틈을 노리고 작은 방패와 검을 든 백갑신병들이 괴물들에게 뛰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창을 회수하고, 방패를 고쳐 든 백갑신병들이 한바탕 돌격 후 뒤로 물러난 보병들을 쫓는 괴물들의 앞을 막았다.

그런 식으로 반복해 적의 병력을 차근차근 줄여 나갔다.

이렇게 백갑신병 하나는 약할지 몰라도 금갑장군의 지휘가 더해지면 강력한 전력이 됐다.

금방 만들어진 병졸이지만, 금갑장군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덕분이었다.

-멍청한 녀석들, 저런 뻔한 수에 당하나.

-내가 나서야겠군.

-그래 어디 한번 실력 좀 보여 줘.

커다란 뿔을 가진 붉은 귀인 하나가 굽은 몸을 일으켰다.

붉은 귀인은 키만 수 미터로 거대했다.

그에 걸맞게 기다란 쇠 방망이를 휘두르자 백갑신병의 방패가 무용지물이 됐다.

-이것들이. 어디서 설쳐.

퍽! 퍽!

쇠 방망이를 휘두를 때마다 백갑신병이 날아갔다.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백갑신병들은 원래대로 하얀 콩으로 돌아갔다.

-이대로라면 나 혼자 다 해치우겠는데?

하지만 귀인은 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엎어졌다.

불현듯 달려든 금갑장군이 단번에 키다리 귀인을 벤 거였다.

“흥! 별것도 아니면서 잔챙이들 앞에서 잘난 척한 거군.”

그렇게 내뱉듯 말한 금갑장군은 다른 귀인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도 싸워 이길 자신 있으면 덤벼라! 한꺼번에 덤벼도 좋다!”

-아니, 이럴 수가.

귀인들은 놀랐다. 방금 귀인이 이 중에서 가장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 봐야 저 요괴는 혼자. 자신들은 아직 아홉이나 됐다.

아홉이 한꺼번에 덤비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한창 인간들의 병졸을 상대하는 다섯 귀인들까지 부를 필요도 없으리라.

귀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사악하게 웃었다.

-크흐흐. 그 말대로 한꺼번에 덤벼 주지.

-인제 와서 치사하다고 해도 안 통한다.

-잘난 체하다가 명을 재촉하는구나!

그러면서 한꺼번에 덤볐지만, 금방 금갑장군의 검에 다섯이 쓰러지고, 넷이 도망갔다.

금갑장군은 나머지 괴물과 귀인들을 뚫고 나아가 구망 장군 앞에 섰다.

“금갑장군이 구망 장군을 도우러 왔소.”

“금갑장군?! 흰콩과 검은콩으로 만든 백갑신병과 흑갑신병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그 금갑장군이라는 말씀입니까?”

“…맞소.”

“평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탐관오리를 엄벌한다든가, 외적이 이 땅에 쳐들어오면 신병들을 이끌고 맞서 싸운 이야기도 유명하죠. 드디어 금갑장군 님께서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일어나셨군요.”

“…그렇소.”

금갑장군은 순간, 이 떠버리가 진정 장군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 한 가지 말을 빼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나선 건, 카엘 님께 은혜를 갚기 위해서기도 하지.”

그 말에 구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엘 님? 그 고여 님과 함께 온 카엘 님 말씀입니까? 어찌 된 영문인지 제게 이야기 좀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말에 금갑장군은 확신했다.

이 떠버리는 장군의 탈을 쓴 이야기꾼 전기수라고!

* * *

“허허, 여긴 이미 늦었구려.”

흰 두건을 쓴 스님 하나가 마을 입구에서 탄식했다.

한창 인간을 뜯어먹으며 만찬을 즐기던 괴물과 귀인 중 몇몇은 새로운 먹잇감이 나타난 걸 발견하고는 스님에게로 다가왔다.

그걸 본 스님이 눈을 감으며 한탄했다.

“빈승이 시주를 받으러 왔는데. 보살님은 없고 요상한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케케케, 이것 봐라? 이런 늙은 중이 재수 없게도 여기까지 구걸하러 왔구나.”

“밥맛 떨어지게 맛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게, 너 살려 줄 테니까 그냥 가라.”

“아니야. 우리도 시주할 수 있지. 저기 먹다 남은 아이의 허벅지 좀 가져와라.”

스님을 보며 조롱했다.

반대로 스님도 지지 않고 이죽거렸다.

“괜히 귀인이라 불리는 게 아닌 듯, 정말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구려. 하긴 그러니 그런 추악한 모습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놓고 다니는 거겠지!”

-이것이! 배불러서 봐주려고 하니까.

-안 되겠다! 먹진 않더라도 머리통을 뽑아다가 공놀이라도 해야지.

그러면서 한 귀인이 스님을 해치려고 나서는 순간.

덥석.

어느새 뒤에서 집채만 한 호랑이가 나타나 귀인의 머리통을 집어삼켰다.

그러더니 그대로 우걱우걱 씹더니 고개를 흔들어 몸통을 바닥에 던졌다.

-아니, 호랑이가 왜 갑자기 나타나? 그것도 엄청나게 크잖아.

-잠깐 옆을 봐 봐, 호랑이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어.

-뭐라고?!

귀인은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수십 마리의 호랑이들에게 포위당한 거였다.

하나같이 낌새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인 거였다.

그때 스님이 흰 두건을 벗으며 말했다.

“빈승은 백포건호. 우리 땅에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미물을 단죄하기 위해 왔소!”

그러면서 어느새 호랑이 인간에서 호랑이로 변하는데, 지금 나타난 여느 호랑이 요괴보다 크고 강력해 보였다.

“어흥!”

호랑이로 변한 백포건호가 포효하자 호랑이들이 일제히 귀인들을 덮쳤다.

잠시 후.

흑갑을 입은 사대장군 현명이 마을에 나타났다.

그 입구에는 스님 복장을 한 호랑이 인간이 서 있었고, 그 뒤에는 귀인과 괴물들의 끔찍한 잔해가 잔뜩 쌓여 있었다.

최초 정찰을 나갔던 병사의 보고로는 분명히 마을이 귀인과 괴물들에게 점령당했다고 했다.

이를 퇴치하기 위해 병력을 움직였는데, 공격하기 직전에 받은 보고로는 호랑이들이 귀인과 괴물들을 모조리 물리쳤다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하려고 단신으로 이곳에 온 거였다.

정작 확인당한 건 현명이었지만.

“그대가 현명이오?”

“…그렇다.”

호랑이 스님의 물음에 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늦었구려. 빈승은 백포건호. 나를 따르는 호랑이들과 함께 이 마을의 괴물을 모두 쫓아냈소.”

하지만 현명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대가 귀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백포건호가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 주며 말했다.

“카엘이라는 서방인이 이걸 보여 주면 믿음이 갈 거라고 하더군.”

현명은 곧바로 그게 뭔지 알아봤다.

자신도 마시고 회복한, 회복 포션이었다.

이 땅에서 카엘 일행이 아니면 저걸 따로 들고 다닐 리 만무했다.

“도채비를 설득한다더니 성공했나 보군. 협력에 감사한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다른 마을을 구하러 가는 게 어떻겠소?”

“…당연하다. 따라와.”

백포건호의 제안에 대답한 현명은 곧바로 다음 목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타모라국 전역에서 사대장군과 도채비와 각종 요괴들이 귀인과 괴물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거기에 구원받은 백성들 사이에서 한 가지 전설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한 서방에서 온 도채비에 대한 전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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