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55화 (155/234)

155화 도채비 전설 (4)

“우리 도채비들은 도와줄까 했거든. 근데 반대하는 요괴들이 많아서 말이야.”

두억시니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하긴 인간 세상이 혼란스러운 건 도채비들도 원하는 게 아니겠지.’

도채비들은 평소 인간들 주변에서 장난치는 게 낙.

귀인, 괴물에 의해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사람들도 그런 장난을 받아 줄 여유도 사라질뿐더러.

아예 마을을 버리고 도망치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근데 반대하는 요괴들이 있다고?’

다들 영문을 모르는 와중에, 고여가 말했다.

“아마 영춘굴에 있는 요괴들이 반대하나 보군요.”

“그래, 심지어 나더러 괜히 나서면 좋은 꼴 못 볼 거라고도 하더군.”

“아니, 그런 말도 했었습니까?”

“이것들이 정말. 그 말을 듣고 왜 가만히 있었습니까? 저희한테 알려 주시면 쫓아가서 들어 엎었을 텐데요!”

뒤에서 듣고 있던 싸리비와 김 서방이 버럭 화를 냈다.

그걸 보며 두억시니가 손사래 쳤다.

“됐어. 내 체면 세우자고 우리끼리 싸울 필요는 없잖아. 나도 마침 기분 상한 일이 있어서 마뜩잖았고.”

그리 말하며 고여를 노려보자, 고여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카엘이 말했다.

“영춘굴에 가서 한번 이야기는 해 봐야겠네요. 왜 반대하는지라도 알아야죠.”

방관하는 거면 차라리 나았다.

그게 아니라 솔국의 귀인, 괴물들에 협력한 거라고 하면 거기에 맞춰서 대응해야 했다.

그때 두억시니가 나섰다.

“그래? 하긴 나도 다시 한번 이야기하러 가야겠어.”

“가서 말해 주실 겁니까?”

“그래, 이 일이 해결되어야 내 약을 만들어 줄 거 아니야?”

“그럴 리가요. 이 일이 해결되면 아무래도 만드는 게 조금 빨라지긴 하겠지만요.”

“그렇지? 그럼 가자. 따라와.”

두억시니는 그렇게 말하며 힘차게 앞장섰다.

“직접 안내해 준다니, 다행이네.”

무턱대고 나섰다가 헤매는 것보다 도움을 받는 쪽이 훨씬 편했다.

한편 싸리비와 김 서방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저희도 따라가겠습니다.”

“또 무슨 헛소리 하면 그냥 엎어 버리겠습니다.”

“괜찮대도. 어차피 둘이 힘을 합쳐도 못 이기잖아.”

“힝.”

도채비들은 두억시니의 말에 자존심 상한 듯했다.

두억시니는 그들을 향해 웃은 뒤, 카엘의 어깨를 두드렸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 서방인이 도와주겠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카엘이 시원스레 대답하자 두 도채비는 안심했다.

“하긴 여기에는 서방의 용이라는, 드래곤도 있고.”

“나를 씨름으로 이긴 인간도 있으니 문제없겠지.”

싸리비와 김 서방의 말에 두억시니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지금은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

“네!”

힘차게 대답하는 두 도채비를 뒤로하고 카엘 일행은 두억시니를 따라나섰다.

* * *

영춘굴은 금방 도착했다.

두억시니의 뒤를 따라 대나무 숲을 나오니 바로 동굴이 나왔는데, 그 위에 영춘굴이라고 새겨져 있는 거였다.

두억시니가 으스대며 말했다.

“원래라면 한참 가야 했는데, 내 도움 덕분에 금방 온 거야.”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카엘이 인사하는데, 브로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근데 요술인가요? 이 요술이라는 건 마법보다 더 알기 어려운 거 같아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어서 들어가 보자고.”

두억시니가 앞장서자 동굴 내부가 갑자기 확 하고 밝아졌다.

실제로는 수많은 검은 벌레가 동굴 앞을 막고 있다가 흩어진 거였다.

“와! 여기도 드워프가 만든 동굴처럼 환하네요.”

“드워프의 동굴? 거기도 이 정도로 대단한가?”

두억시니가 그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간 브로칸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우와!”

동굴 안에 산과 계곡은 물론 하늘까지 있었다.

산 중턱에 작은 암자가 덩그러니 있었는데, 그 풍광이 어찌나 고풍스러운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여기가 영춘굴이야.”

카엘은 주위를 둘러봤다.

여긴 인간 세상과 비슷했지만, 온갖 기괴한 외형의 요괴가 모습을 드러내고 돌아다니는 게 달랐다.

“평화로운 곳이네요.”

카엘이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소피아도 한마디 했다.

“이렇게 평화로우니까, 동굴 밖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잘 모르나 봐요.”

“그렇지는 않아. 알면서 자기들끼리 저렇게 지내는 거야.”

두억시니가 그런 요괴들이 마음에 안 드는지 투덜댔다.

카엘이 물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이 있을 거 같은데, 여기 우두머리는 누구인가요?”

“금갑장군, 백포건호, 단피몽두 이 셋이다. 이 셋이서 의논해서 결정하지.”

말만 들어서는 잘 모르겠는데, 두억시니가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금갑장군은 생전 호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장군. 백포건호도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관청의 말은 순순히 듣는 편이지.”

“반대하는 건 단피몽두라는 요괴겠군요.”

“그래, 단피몽두가 둘을 뭐라고 구워삶았는지 몰라도 셋 다 반대하고 있어. 인간들이 썩었으니 어디 한번 큰코다쳐 봐야 정신을 차린다나?”

“음.”

이유를 들어도 딱히 이해되진 않았다.

인간에게 실망하거나 원한을 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본성은 그대로였을 텐데, 갑자기 저러는 건 다른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두억시니처럼 뭔가 안 좋은 일을 겪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에 살면서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게 아니라면 한 가지밖에 없는데…….’

카엘이 잠깐 고민하다가 두억시니에게 말했다.

“일단 단피몽두를 설득하는 게 우선이겠군요.”

“그래? 금갑장군과 백포건호부터 찾아가 보지 않고?”

“그쪽을 설득해 봐야 어차피 다시 단피몽두와 담판을 지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럴 바에는 한꺼번에 이야기하는 게 낫죠.”

“알아서 해.”

두억시니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주변에 있는 요괴들을 둘러봤다.

주변에는.

하얀 갑옷을 입은 병졸.

금털의 돼지 얼굴을 한 장정.

뒤통수에 뿔이 난 서생이 있었다.

아까부터 카엘 일행의 주위를 맴돌고 있던 요괴들이었다.

두억시니는 그중에서 뒤통수에 뿔이 난 서생에게 손을 저으며 불렀다.

“어이, 강수선생. 단피몽두는 어딨는가?”

“저기로 가시면 됩니다!”

강수선생이 대답하면서 암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암자로 향하는 길이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닌가?

“고맙네.”

“별말씀을.”

두억시니의 말에 꾸벅 고개를 숙인 강수선생은 종종걸음으로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그러자 하얀 갑옷을 입은 병졸과 금털의 돼지 얼굴을 한 장정도 이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길 안내를 위해 여기 있던 모양이었다.

‘병졸은 금갑장군 쪽이고, 돼지 장정은 백포건호 쪽이려나.’

카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두억시니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보기에는 아주 멀었지만, 요술 덕분인지 몇 걸음 안 걷고 암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암자 안에는 갑옷을 입은 장군과 스님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걸 얼굴을 전부 가리는 모자를 쓴 사내가 구경 중이었다.

두억시니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게, 나 왔네. 두억시니가 왔어!”

그러자 얼굴을 전부 가리는 모자를 쓴 사내가 고개를 들고 대꾸했다.

“두억시니?! 여긴 무슨 일이오.”

“흥! 단피몽두. 다 알면서 의뭉스럽게 묻기는.”

“훗.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니 그렇게 날 선 반응을 할 필요까진 없잖소.”

단피몽두는 그리 말하더니 카엘 일행을 쳐다봤다.

“손님을 잔뜩 데려왔구려.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버려 두자고 합의하지 않았소? 인제 와서 인간들을 데려와 설득할 생각이오?”

그 말에 바둑을 두던 장군도 입을 열었다.

“단피몽두의 말이 맞다! 조정이 이미 썩었거늘,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 줘 봐야 뭐가 바뀌겠나? 제대로 망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빈승도 동의하오! 백성들이 고통도 다 그들이 자처한 게 아니겠소.”

아무래도 그간 조정의 폭정에 여러모로 분노했던 모양이었다.

요괴가 분노하는 건 이상했지만, 생전에 장군이었던 자와 중생을 돌보는 스님의 한탄이라면 이해할 만했다.

‘그렇다고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건 동의할 수 없지만.’

어쩌면 그런 점이 요괴들이 취할 수 있는 관점일지도 몰랐다.

“네가 한마디 하겠나? 참고로 저쪽이 금갑장군, 저 중이 백포건호다.”

“네.”

두억시니의 제안에 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엘은 둘이 백성들이 아니라, 조정을 탓하는 데에 주목했다.

“다들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그간 조정의 폭거는 국왕이 구미호에게 당한 탓이었습니다. 지금은 구미호도 내쫓고 국왕도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런가? 하긴 최근에 도성에서 아주 난리가 난 걸 감지하긴 했지.”

“빈승도 느꼈소. 구미호의 싸움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커다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만.”

카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마석이라는 귀물로 강화한 구미호라서 그렇습니다.”

“마석?”

“힘을 강화해 주지만, 의지를 잠식해 들어 가는 돌입니다. 솔국의 귀인과 요괴들이 마계에서 온 마족이라는 것과 한패를 먹고 마석을 받은 듯합니다.”

“솔국의 요괴들이 어찌 설치나 했더니 거기까지 손을 댄 모양입니다.”

카엘의 설명에 금갑장군과 백포건호, 둘 다 반응했다.

하지만 단피몽두가 곧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긴 한데, 우리가 꼭 나서야 할 이유는 안 되는 거 같군. 오히려 제대로 망해야 정신 차릴 게 아닌가?”

그러자 금갑장군과 백포건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차린 국왕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여러분께 도와 달라고 했는데도요?”

그 말이 뜻밖이었는지 금갑장군의 눈이 커졌다.

“국왕이 그런 말까지 했나? 이 땅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한테까지 도와 달라고 하니, 정말 정신을 차렸나 보군.”

정확히는 도채비에게 말한 거였지만, 어차피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려는 거니 상관없었다.

“조정에서 직접 도와 달라고 하면 모른 척하기 그렇지.”

백포건호까지 수긍했다.

그걸 본 카엘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반대하는 건 단피몽두 때문인가 보군. 그럼 다시 단피몽두가 반대하고 나서겠네.’

카엘의 예상대로 단피몽두가 입을 열었다.

“잠깐. 당신들 말만 듣고 믿으라고? 그걸 믿는다 해도 국왕이 오진 못해도 대신이 와서 부탁하는 성의는 보였어야지. 지금은 우리를 무시하는 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때 고여가 나섰다.

“제가 타모라국의 공주로 아바마마를 대신해 왔습니다.”

“음, 그대는 구미호가 아닌가? 구미호가 어떻게 조정을 대표한단 말인가.”

단피몽두가 부정했지만, 이번에는 금갑장군, 백포건호 모두 고여의 손을 들어 줬다.

“아니야. 귀티가 나는 게 신빙성이 높아 보이는군.”

“저 구미호의 말에 빈승의 요력이 반응하는 걸 보니 맞는 거 같소.”

그때 브로칸이 계속 킁킁대더니, 라이칸스로프의 모습으로 변해서까지 냄새를 맡는 게 아닌가?

“넌 왜 그래? 뭔가 수상쩍은 냄새라도 맡았어?”

“네, 확실합니다.”

“뭐가 확실하단 말이야?”

브로칸이 단피몽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에게서 마석 냄새가 나요.”

“그래? 한번 확인해 봐야겠네.”

카엘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조트를 뽑아서 단피몽두에게 휘둘렀다.

요괴들은 다들 예상 밖이었는지 아조트를 막으려고 나서질 못했다.

“카엘 님?!”

거침없는 행동에 막상 말을 꺼낸 브로칸마저 놀랐을 정도였다.

“뭐냐? 공격하는 거냐!”

“이건 빈승을 무시하는 처사지요!”

뒤늦게 금갑장군과 백포건호가 반응해 벌떡 일어났다.

금갑장군은 점점 커지더니 사람의 두 배 정도로 커지면서 갑옷에 황금빛을 발했고.

백포건호는 어느새 중에서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전에 아조트가 단피몽두의 모자를 베어 버렸지만.

모자가 떨어지자, 그 안에 감춰져 있던 흉측한 얼굴이 드러났다.

거기다 브로칸이 의심한 대로 이마에 마석이 박혀 있었다.

그것도 제법 커다란 마석이.

‘역시나. 마족으로부터 뭔가를 받았군.’

이해가 안 되는 일에는 남모를 돈이나 보물이 오갔다고 보면 대체로 맞는다더니, 정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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