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누가 여우지? (6)
“그럼 부탁드립니다.”
카엘은 그 말을 남기고 영노에게 달려갔다.
사대장군 욕수와 구망, 현명이 정신 차리고 서로 마주 봤다.
“우리는 약속대로 황룡을 막자.”
“어, 저기 방해하러 가네. 정말 저 서방인이 무서운가 봐.”
“…동감이다.”
실제로 황룡은 용을 막겠다는 서방인을 경계하는 듯, 상대하던 여인을 뿌리치고, 서방인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저 서방인이 등에 검을 맞을지도 몰랐다.
“구망!”
“맡겨 두라고. 이길 순 없지만, 막는 것 정도는 이 구망도 할 수 있으니까.”
구망이 평소 내뱉는 말처럼 빠르게 쫓아갔다. 그러면서 검기를 길게 뻗어 황룡의 검을 막았다.
챙!
황룡은 검기를 보자마자 그 정체를 눈치채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구망, 지금 역적의 편을 드는 겁니까?”
“글쎄, 금방 저 용이 궁궐을 공격하는 게 너 때문이라는 소리를 들었거든. 그게 사실이라면 궁궐을 위험하게 만든 네가 역적이 되는 게 아닐까?”
“여전히 헛소리만 늘어놓는군요.”
황룡은 그 말과 함께 검기를 휘어 구망의 뒤를 기습했지만, 무언가에 막혔다.
“욕수까지?!”
“변명 못 하고 입을 막으려는 걸 보니 사실인가 보군.”
욕수가 펼친 검기의 벽이 황룡의 검기를 제지한 거였다.
워낙 황룡의 공격이 강하다 보니 그대로 부서졌지만, 공격을 막아 내는 데는 충분했다.
그러다 황룡이 갑자기 몸을 피했다.
검은 검기가 번뜩이면서 방금까지 황룡이 있던 허공을 물어뜯고 지나갔다.
“이야, 현명까지?! 어떻게 포섭한 건지 몰라도 참으로 대단하군요.”
“…….”
현명은 대꾸도 하지 않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황룡은 소드 마스터급 셋에게 포위당한 상황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원래도 셋까지는 비등하게 싸울 수 있는데, 여의주까지 있으니 이기고도 남았다.
“흥! 안 그래도 못마땅한 자들이 다 역모에 가담했군요. 잘됐군요. 이번 기회에 제거해 드리죠.”
황룡이 검을 휘두르며 공격해 오자, 사대장군들도 맞서 싸웠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그래 너는 평소에 못마땅했거든. 존댓말로 반말하는 게 얼마나 재수 없었다고!”
“…….”
호기롭게 외친 것과 달리 사대장군들은 황룡의 공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긴장했다.
“안 그래도 강한 녀석이 어떻게 단숨에 이렇게 강해지다니.”
“여의주를 훔쳤다더니, 그 힘을 쓰는 건가? 용손이라고 떠들던 게 허풍만은 아니었구먼. 이래서야 오래 버티긴 힘들겠는걸.”
“…세졌어.”
다들 황룡의 공격에 위기감을 느꼈을 때였다.
펑! 펑!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더니 황룡이 공격을 거둬들이며 물러났다.
“정말 귀찮은 계집애군요.”
잠시 밀려난 소피아도 합세하기 위해 나타난 거였다.
“헉. 저 여인이 저렇게 강하다니.”
“우리와 비슷한 무공이라 생각했는데, 저 정도면 황룡에는 못 미쳐도 우리보다 강한 게 아닌가? 서방인들은 하나같이 무공이 고강하오.”
“…칫, 인정.”
한편 타모라국의 말을 모르는 소피아는 눈치껏 황룡을 포위했다.
그리고 넷이서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여의주의 힘을 빌린 황룡은 그런 상황에서도 넷을 압도하고 있다는 거였다.
소피아는 슬쩍 영노에게 달려가는 카엘을 봤다.
‘카엘 님, 오래는 못 버티니 빨리 움직여 주세요.’
* * *
‘가만히 좀 있지.’
드래곤과 용은 엉겨 붙어서 서로 공격을 주고받을 때마다 공처럼 튀었다.
그럴 때마다 궁궐이 부서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탓에 카엘도 가까이 가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카엘은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하고서야 겨우 라 키레아스의 꼬리에 올라탈 수 있었다.
라 키레아스는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지 카엘이 몸통까지 올라왔는데도 눈치 못 채는 듯했다.
‘지금이라면 영노에게 가까이 가도 눈치 못 채겠지. 어서 역린을 찾아야 해.’
카엘은 영노의 목을 살폈다.
아이의 모습일 때 봤을 때 분명 목 왼쪽 부분에 있었다.
문제는 쉽게 눈에 띄진 않는다는 거였다.
인간으로 변했을 때도 비늘의 모습 그대로였다는 건, 아마도 용으로 변했을 때도 그대로였을 가능성이 컸다.
한마디로 역린은 영노의 손톱보다 작은 크기.
그걸 찾아내야 했다.
다행히 카엘에게는 한 가지 단서가 더 있었다.
‘역린 주위가 시커멓게 부어 있었지.’
카엘은 푸른 비늘 중에서 검거나 어둡게 변한 비늘을 찾았다.
그 사이에 역린이 있을 게 분명했다.
‘저기 같은데.’
카엘은 거의 얼굴 가까운 부분의 비늘이 어두운 걸 발견하고는 아예 영노 쪽으로 넘어갔다.
영노도 라 키레아스와 드잡이질 하느라 카엘이 올라온 걸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었다.
“찾았다!”
카엘은 어두운 비늘 아래에 아주 작은 비늘이 거꾸로 박혀 있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깊숙이 파여 있어서 이대로 손을 뻗어서 역린만 뽑아 내긴 힘들어 보였다.
‘그러니까 뽑으라고 할 때 뽑지.’
카엘은 투덜대며 아조트를 쥐었다.
-저걸 자를 생각인가?
“아니, 잘못 잘랐다가는 뽑기 더 힘들 테니까. 일단 때릴 거니까 너무 날 세우지 마.”
-알았다.
카엘은 찌르기로 역린을 노렸다.
!!!!!!!!!!!!!!!!!!!!!!!!!!!!!!!!!!!!!!!!!!!!!!!!!!!!!!
역린을 공격받은 영노는 감전된 것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곧바로 정신을 잃고 몸에 힘이 빠져 축 처졌다.
라 키레아스의 몸을 휘감고 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추락했을 터였다.
같이 싸우던 라 키레아스도 깜짝 놀랐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역린을 공격했어요……. 그런데 바로 기절할 줄은 몰랐네요.”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을 더 화나게 할 셈인가?’
용손이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들었고, 이미 역린을 한번 공격해봐서 이 이후에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다.
역린을 아주 강하게 건드리면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아 기절하지만, 금방 깨어나서 길길이 날뛴다.
자신도 여의주를 훔쳤을 때 바로 도망치지 않았으면 그 분노에 휩쓸렸을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지금 잔뜩 화가 난 상태로 정신을 차렸다가는 정말 큰일 날 거야. 어서 피해야.’
황룡은 용이 깨어나기 전에 몸을 빼고 싶었지만, 사대장군들과 여인 때문에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한둘을 해치워서 틈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군.’
그러면서 다시 기를 모으려 할 때였다.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황룡의 짐작대로 금방 깨어난 영노가 허공에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천둥과 빗소리도 꿰뚫을 정도라 주위의 모두가 괴로워했다.
심지어 벼락도 더욱 잦아졌고, 빗줄기도 한층 굵어졌다.
그 와중에 제일 괴로운 건 영노에게 몸을 칭칭 감긴 라 키레아스였다.
“어휴. 시끄럽다, 이 자식아.”
결국, 힘으로 뜯어내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콰당! 쿠쿠쿠쿵!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영노는 지면에 추락하고도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카엘은 그런 영노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영노 님! 영노 님!”
카엘의 목소리를 기억한 영노가 멈칫하더니 분노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네, 네가 역린을 공격했냐? 왜?!”
“여길 다 부수기 전에 정신 차리게 한다고요.”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
“절대 용서 못 해요? 그럼 회복 포션은 안 드려도 되나요?”
그 말에 영노는 순간, 회복 포션의 존재를 떠올렸다.
전에도 그걸 역린에 뿌리는 순간 어찌나 시원하던지 와중 와중에도 한결 살 것만 같았다.
“…어서 회복 포션을 다오. 그럼 용서해 주마.”
“근데 작아질 수는 없나요? 그 몸에 바를 만큼 많이는 없는데요?”
“장난치냐!”
영노는 소리쳤지만, 머릿속으로 이해는 했다.
이 거대한 모습에 그 회복 포션이라는 걸 뿌려 봐야 얼마나 효과를 보겠는가.
문제는 지금 이렇게 아픈 탓에 인간 모습으로 변할 수도 없다는 거였다.
“크으으윽. 그러면 무슨 소용이야. 역시 용서…….”
“그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역린을 뽑고 치료하는 게 어때요? 그러면 차라리 덜 아플 텐데.”
“…정말이냐?”
영노는 분노하다가도 덜 아프다는 말에 솔깃했다.
“제가 왜 거짓말하겠어요? 싫으면 말든가요.”
“아, 아니다. 어서 치료해 줘.”
“그럼, 역린을 뽑아도 화 안 내실 거죠?”
“물론이다. 어서 치료해 주기나 해.”
“분명 영노 님이 뽑아 달라고 하신 겁니다.”
“그래, 어서 뽑아! 뽑으라고!”
그러다가 문득 처음 카엘이 해 준다는 치료를 거부했을 때가 떠올랐다.
‘내가 뽑아 달라고 하는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뽑아 달라고 빌 게 되다니.
“알겠습니다. 지금 뽑을게요.”
그 말에 일전에 이야기한 마취제가 떠올랐다.
“잠깐만! 뽑을 거면 덜 아프게 마취라도 해 줘.”
“그 몸에 쓸 만큼 마취약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원래 뽑을 계획이 없어서 준비 안 했는데요.”
“그, 그런.”
자신이 말해 둔 게 있어서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영노는 절망적인 상황에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그때였다.
툭.
“악!”
카엘이 아조트를 지렛대 삼아 비늘 하나를 뽑는 게 아닌가?
그것도 심지어 안 그래도 아픈 역린 근처를.
“아니, 역린을 뽑는다며…….”
“너무 작아서 손이 안 닿아서요. 이제 정말 뽑겠습니다.”
“…….”
화를 내기에는 역린을 뽑아내는 고통이 두려웠던 영노가 입을 닫았다.
카엘은 품속에서 재생 포션과 회복 포션을 꺼냈다.
“이제 준비 다 됐습니다. 뽑을게요.”
“어, 그래. 언제 뽑을지 숫자를 세어 줘. 마음의 준비를 하게.”
“알겠습니다.”
“다섯.”
“넷.”
“셋.”
“둘.”
…까지 센 카엘은 괴력을 이용해 그대로 역린을 뽑아냈다.
!!!!!!!!!!!!!!!!!!!!!!!!!!!!!!!!!!!!!!!!!!!!!!!!!!!!!!
충격을 받은 영노가 다시 기절했다.
카엘은 그사이 재생 포션을 있는 대로 부었다.
그러자 역린뿐만 아니라, 옆의 비늘도 빠르게 다시 나기 시작했다.
카엘이 짐작한 대로 역린도 바르게 다시 나면서 옆 비늘만큼 커졌다.
“됐다.”
카엘은 비늘이 혹시나 비뚤게 자라지 않도록 지켜봤다.
여차하면 조금 잘라 낼 작정이었지만, 다행히 완전히 커졌을 때는 다른 비늘과 구분도 안 될 정도로 제대로 났다.
“끝났나?”
“네. 이제 깨워 보세요.”
“어이, 일어나. 다 끝났단다.”
카엘의 말에 라 키레아스가 영노를 흔들었지만, 깨지 않고 끙끙대기만 했다.
“안 일어나는데? 아무래도 충격이 컸나 보다. 회복 포션이라도 한번 부어 봐.”
“그래야겠네요.”
카엘이 회복 포션을 부어 봤지만, 여전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여의주가 있어야겠네요.”
용의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여의주로부터 힘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빈사 상태일 때도 깨끗이 나을 정도라니까.
그렇다는 건.
라 키레아스의 시선이 한창 싸우고 있는 황룡에게로 향했다.
황룡과 싸우고 있던 4인은 밀리는지 하나같이 상처투성이었다.
진작에 나가떨어졌을 수도 있었지만, 소피아를 필두로 하나같이 필사적으로 황룡을 붙잡는 중이었다.
“기왕 이 모습이 된 김에 내가 저 녀석을 잡아 오지.”
라 키레아스는 그렇게 말하며 황룡에게 다가갔다.
드래곤이 다가오는 걸 진작에 눈치챈 황룡은 이를 악물었다.
‘큰일이다. 이것들이 귀찮게만 안 했으면 진작에 도망쳤을 텐데.’
그때였다.
“황룡 님! 제게 여의주를 주세요!”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황룡은 화색이 돌았다.
황룡은 여의주를 품속에서 꺼내 머리 위로 던졌다.
“여깁니다. 이거 받으세요!”
“뭐지? 포기한 건가?”
라 키레아스가 위로 던져진 여의주를 받기 위해서 속도를 높이려는 순간, 시커먼 구름 속에서 나타난 손이 낚아채 버렸다.
“뭐야?! 안 내놔?”
화르르륵.
난데없는 적의 등장에 라 키레아스가 드래곤 브레스를 뿜었다.
“어머, 들켜 버렸네요.”
구름이 타면서 고여와 닮은 여우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꼬리도 여러 개인 게 구미호임이 틀림없었다.
다만 여우답지 않게 털이 황금색인 데다가 특이하게 얼굴이 하얬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 하얀 이마에 마석이 박혀 있었다는 거였다.
카엘은 마석과 꼬리가 다섯 개인 걸 보고 확신했다.
‘저게 이번 일의 흑막인 여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