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46화 (146/234)

146화 누가 여우지? (3)

“음. 다들 보통이 아닌 거 같군.”

카엘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무관들을 바라봤다.

셋뿐이었지만, 하나같이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은 게 일전에 50명이 덤볐을 때보다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맞아. 소드 마스터급은 될 거야.

아조트의 말에 카엘은 전력을 분석했다.

‘소드 마스터급이 셋이라.’

카엘과 소피아가 하나씩.

고여, 모르타, 브로칸이 하나를 상대하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었다.

어림잡아도 비슷한 전력.

하지만 거기에는 드래곤 라 키레아스가 빠져 있었다.

지금까지 부득이하게 도울 일이 아니면 거의 나서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내가 나설 차롄가?’

라 키레아스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는 오랜만에 몸을 풀 기회라 생각하고 기대했다.

생각해 보면 수백 년 만에 잠에서 깬 것치고는 너무 얌전했다.

그걸 깨닫자 한번 시원하게 때려 부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 거였다.

특히 얼마 전 도사가 준 냉차를 마신 뒤 몸 상태가 최고조에 이르다 보니 더욱 몸이 근질근질했다.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눈앞에 나타난 애송이 한둘을 때려눕히는 건 쉬운 일이었다.

‘비등한 상황에서 내가 끼어들면 끝이지.’

문제는 그간 귀찮다고 뒷짐 지고 있었는데 인제 와서 먼저 나서서 싸운다기에는 체면이 서질 않았다.

그때 카엘이 부르는 게 아닌가?

“라 키레아스 님.”

“응? 왜?”

라 키레아스는 혹시나 도와 달라는 소리일까 기대하면서도 무심한 척 대답했다.

먼저 ‘도와줄까?’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오기 직전이었지만, 간신히 삼켰다.

‘그래도 도와 달라고 하면 바로 도와줘야지.’

그러나.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네요.”

“어, 어. 괜찮아.”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도와 달라는 게 아니라 기다려 달라는 게 아닌가?

라 키레아스는 저도 모르게 괜찮다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쩝.’

한편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무관 중에 흰색 옷을 입은 이가 제일 앞에 서서 말했다.

“국왕의 명이다! 역도 무리는 얌전히 오라를 받아라!”

그때 고여가 나서서 무관을 설득했다.

“사대장군님! 비켜 주십시오. 아바마마를 미혹시킨 귀신을 쫓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사대장군들끼리 대화하는 게 아닌가?

“다들 어떻게 생각해?”

“뭐 확실히 그런 소문이 파다하긴 하지. 중전이 구미호라고 하는 이들도 있잖아. 나야 중전을 보진 못해서 뭐라고 하기 어렵지만. 맞다, 너희도 한 번도 못 봤지? 궁을 지키는 황룡만 봤으려나.”

청색 옷을 입은 이가 주절주절 떠들자 라 키레아스는 절망했다.

‘뭐야, 이번에는 싸우지도 않고 설득해서 넘어가는 거야?’

차라리 일전에 50명이 덤볐을 때 슬쩍 한 손 거들걸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그때였다.

흑색 옷을 입은 이가 차갑게 내뱉었다.

“헛소리는 그만해라! 국왕의 명이나 따르면 된다!”

그러면서 기운을 끌어올리는 게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만 같았다.

‘오! 싸우나?’

그때 흰옷을 입은 이가 말했다.

“그냥 저희랑 같이 가시죠. 그러면 되지 않습니까?”

“맞아. 우리는 국왕의 명을 수행하고 공주는 가서 중전이 구미호인지 아닌지는 알아서 밝히시면 되는 거 아니야? 이런 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닌가? 맞지?”

파란 옷을 입은 이가 맞장구쳤다.

‘그러면 안 싸운다는 건가? 왜 이리 뜸을 들여.’

라 키레아스는 저 흰옷과 파란 옷 입은 애를 때릴 일이 생기면 정말 흠씬 때려 주리라 마음먹었다.

다행히 고여가 인상을 쓰며 거부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우리 손발을 묶고 데려갈 거면서 어떻게 정체를 밝히라 합니까!”

‘오! 싸우나?’

“그냥 데려갈 수도 있긴 합니다만.”

‘에이, 좋다 말았네.’

“그러기에는 그쪽도 보통이 아니라서 안 되겠네요.”

‘오?’

“적어도 무장이라도 해체하고 따라오시면…….”

또 싸우나 했더니, 흰옷이 또 절충안을 내려는 게 아닌가?

결국, 참다 못한 라 키레아스가 소리쳤다.

“악! 더는 못 참아! 그냥 싸워! 싸워서 때려눕혀!”

“……?!”

다들 놀라서 라 키레아스를 돌아보는데, 전광석화처럼 라 키레아스에게 달려드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사대장군 중 흑의를 입고 있던 현명이었다.

“선수필승! 이쪽이 제일 강한 줄 알았지.”

예리한 검기를 두른 검이 라 키레아스의 목을 노렸다.

“헉! 라 키레아스 님!”

고여가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나서려는 걸 카엘이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즐기시게 두죠.”

“……?”

고여는 이해가 안 됐다는 얼굴이었지만, 카엘은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기다리는 게 지루해서 소리지르신 거 같은데, 서로 팽팽한 와중에 한 명이라도 꺾으면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캉!

현명의 검이 라 키레아스의 목을 쳤지만, 그대로 튕겨 나갔다.

“아니?!”

현명이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급하게 기를 모았다고 해도 검기를 두른 공격을 튕겨 내다니.

심지어 상대는 기를 모은 거 같지도 않았다.

보통 인간이 아닌 게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귀신을 내쫓는다더니, 되레 이 같은 요괴를 데려왔구나!”

“무슨 헛소리냐. 난 드래곤인데?”

“드래곤?”

드래곤이라는 게 서방의 귀신의 일종인가?

현명이 순간 그런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시야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라 키레아스에게 얻어맞아서 쓰러진 거였다.

그걸 본 백의를 입은 욕수와 청의를 입은 구망도 깜짝 놀랐다.

“현명이 저렇게 쉽게 당하다니!”

“욕수, 조심해라! 눈앞의 요괴는 정말 보통 요괴가 아닌 모양이다. 이럴 때는 둘이서 합심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

“구망, 자네야말로 이럴 때는 말을 좀 줄이게.”

욕수가 그리 말하며 기를 끌어모았다.

그 순간.

퍽!

라 키레아스가 순식간에 가까이 와 욕수의 턱을 후려쳤다.

“커억!”

“욕수! 큭!”

구망이 돕기 위해 움직이려고 하기 전에 이미 복부를 맞고 살짝 허공에 떴다.

퍽! 퍽! 퍽퍽!

살짝 뜬 구망은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얼굴에 네 방을 더 맞고 땅에 처박혔다.

순식간에 엉망이 된 구망은 정신을 잃고 몸을 움찔거릴 뿐이었다.

“이 자식, 계속 나불나불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

“커억. 말도 안 되는…….”

그 소리에 라 키레아스는 고개를 돌려 겨우 일어서려는 욕수를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맞다! 저 자식. 그냥 싸우면 될 텐데 저 자식이 계속 엉뚱한 소리를 했지.”

욕수에게 달려간 라 키레아스는 그대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퍼억!

마지막에는 어찌나 세게 걷어차였는지 나무를 몇 개를 부수고서야 멈췄다.

그 광경을 본 카엘은 깜짝 놀랐다.

‘인간 모습으로도 너무 강한데?’

강할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아무리 상대가 라 키레아스가 드래곤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가 싸운 데다가, 정신없이 몰아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해도 압도적인 승리였다.

카엘은 몰랐지만, 라 키레아스가 원래 강한 것에 더해 냉차 덕분에 유례없이 몸 상태가 좋은 덕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카엘은 라 키레아스의 공격에 의문이 생겼다.

“근데 공격은 저 검은 옷 입은 사람이 먼저 했는데, 왜 흰옷과 파란 옷 입은 무관을 더 때리는 거 같지?”

지금도 라 키레아스는 욕수와 구망을 모아 놓고 때리고 있었다.

라 키레아스가 공격을 멈췄을 때, 두 사람의 옷이 아니라면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음…….”

“너 치료해 줄 생각 하지 마.”

카엘이 욕수와 구망을 살펴보려고 하자, 라 키레아스가 쏘아붙였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팼으니까, 죽을까 봐 걱정 안 해도 돼.”

“…알겠습니다.”

카엘은 자신이 전부터 당부한 대로 죽이지만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사이 현명이 정신을 차렸다.

“큭! 두 사람을 어떻게 한 거냐?”

“나한테 얻어맞았지. 네 덕분에 실컷 팼다.”

“…….”

대강 사태를 파악한 현명이 한탄했다.

“내가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렸구나.”

“무슨 소리야? 드래곤이라니까.”

“……?”

* * *

카엘 일행은 라 키레아스가 쓰러트린 사대장군들을 묶어 두고 도성으로 향했다.

도성 안은 앞서 들른 마을처럼 어수선했고, 중전이 구미호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다 조만간에 중형을 지은 자들을 단체로 처형한다는 소식에 고여가 심각한 표정이 됐다.

“분명 인신 공양을 하려는 게 틀림없습니다.”

“인신 공양이요?”

“처형하는 거 가지고 인신 공양이라고 하긴 무리 아닐까요?”

브로칸과 소피아의 의문에 고여가 설명했다.

“저희는 사형 집행을 바로바로 하거든요. 단체 처형을 핑계로 인신 공양을 하려는 게 틀림없습니다.”

“허, 그렇게 사악하다니.”

“카엘 님, 어서 막아야 합니다.”

다급하게 말하는 고여에게 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지요. 저기가 궁궐이죠?”

“아, 네.”

“갑시다.”

“네? 설마 저기로 곧장 가시려고요?”

고여는 카엘이 그대로 궁궐 정문으로 들어가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곧 해가 지는데 어둠을 틈타 궁궐로 잠입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처소에 몰래 들어가기만 하면 귀신에 씐 아바마마를 구할 수 있을 텐데…….”

“이제 바람의 정령도 부를 수 있으니 은밀하게 잠입할 수도 있어요.”

모르타도 거들었지만, 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저희가 오는 걸 알고 있으니 경계가 아주 삼엄할 겁니다.”

“하긴 오는 내내 무관들이 습격했으니 여기도 준비를 안 했을 리가 없죠.”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뭐, 알아서 해.”

라 키레아스는 상관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걸 본 카엘이 고여를 돌아봤다.

“어떡할까요? 고여 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카엘 님 말씀대로 당당하게 정문으로 가죠. 대신…….”

그렇게 말한 고여는 결연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렇게 카엘 일행은 그대로 궁궐로 향했다.

도망쳤던 고여 공주가 궁궐로 향한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수많은 병력이 카엘 일행을 포위했다.

무려 백여 명에 달하는 무관과 천이 넘는 병졸이 포위하는 거였다.

그 앞에 노란색 옷을 입은 무관이 비웃으며 고여를 내려다봤다.

“호오. 쥐새끼처럼 숨어들어 올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그 무관을 보며 중얼거렸다.

“황룡…….”

‘저자가 황룡인가 보군.’

카엘은 미리 고여가 일러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궁궐 경비의 총책임자로 앞서 상대한 사대장군보다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라고 했다.

사대장군 두셋이 붙어도 지지 않을 정도인데,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소문도 돌았다.

고여의 말에 따르면 그 소문은 사실로.

호구록모가 지키던 영노의 후손이 사는 마을처럼. 뭔 옛날 용의 후손이라는 거였다.

라 키레아스가 말했다.

“저 황룡이라는 자 너머에 사대장군과 비슷한 기운을 가진 이가 하나 더 있다.”

앞서 나타나지 않았던 축융이라는 자를 불러들였을 가능성이 컸다.

‘이번에야말로 라 키레아스 님이 나서지 않으면 쉽지 않겠어.’

하지만 그 전에 국왕을 구해서 오해만 풀면 싸울 일도 없었다.

“아바마마는 어디 계신가? 아바마마와 이야기하고 싶다.”

“국왕께서 위험한 역모의 무리 앞에 나올 리가 있겠습니까? 그대들이 나타나면 제압해서 끌고 오라고 하셨으니 금방 뵐 수 있을 겁니다.”

그때였다.

“아니, 옥조여! 위험하다니까!”

저 멀리서 국왕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

황룡이 할 말을 잃었는데, 이어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여 그 아이가 왔다는데 제가 어찌 가만히 누워 있겠습니까.”

“어허, 그대 말대로 확실히 처형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게.”

“아닙니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안심하겠습니다.”

심지어 국왕과 중전이 함께 나타난 거였다.

“카엘 님, 구미호라는 중전의 정체를 밝힐 절호의 기회 아닐까요?”

“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소피아의 말에 카엘은 주섬주섬 요지경을 꺼냈다.

‘조금 미심쩍은데. 정말 구미호 맞아?’

미인이고 매혹적이긴 하나 저렇게 무방비하게 나타나는 게 약아빠진 요괴 같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카엘의 예상대로 중전을 비췄지만, 구미호는커녕 요괴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여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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