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42화 (142/234)

142화 드래곤과 용 (4)

브로칸이 호랑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어, 신기한 동물이네요. 처음 봐요.”

“저건 호랑이라는 거야.”

카엘의 설명에 브로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래서 호랑이 형님이라고 부른 거였군요.”

한편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눈 호구록모는 이쪽으로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맙다. 이 마을을 요괴로부터 지켜 줬다지. 자다가 요기가 느껴져 부리나케 날아왔건만, 한발 늦었군.”

“별말씀을요. 호구록모 님이 하실 일을 저희가 나서서 뺏은 게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허허, 그럴 리가. 한데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온 건가?”

“저기 서온 마을에서 요괴들을 퇴치했더니, 요괴 중 하나가 여기에 신비로운 돌을 가진 사악한 자가 있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와 봤습니다.”

카엘은 마석, 마족 대신 적당히 호구록모가 알아듣게 바꿔 말했다.

“신비로운 돌을 가진 사악한 자라……. 요설에 속아 넘어갔구먼. 뭘 말하는지는 알겠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네.”

“아무래도 그래 보이는군요.”

“오해가 풀렸으니 다행이네. 그래도 요괴를 퇴치하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여기서 자고 가게. 나도 오늘 기왕 내려온 김에 마을을 지킬 생각이니까.”

그때였다.

-안마귀인아! 안마귀인아!

-안마귀인아! 어디 있느냐!

-숨어 있다면 어서 나오거라!

사방에 날 선 목소리가 메아리치는데, 그 기운이 어찌나 서늘한지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그걸 듣던 호구록모가 불쾌한 듯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요괴야!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정체를 드러내거라!”

쩌렁쩌렁한 외침이 터져 나오자 순간 조용해지더니, 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귀인들과 달리 여성이었는데, 대머리에 얼굴을 하얗게 분칠하고 스님 옷을 걸치고 있었다.

카엘이 귀인에게 소리쳤다.

“안마귀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귀인은 내가 해치웠다!”

그 말에 귀인의 사체로 날아간 여자 귀인이 흐느끼며 섬뜩하게 곡을 했다.

-크흐흐흐흐흑. 안마귀인아! 안마귀인아! 내가 분명 여기 오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와서 변을 당했구나!

그러더니 갑자기 카엘 쪽을 돌아봤다.

-네가 안마귀인을 죽였으니, 이 온나귀인이 복수해 주마!

그러면서 씩 웃는데, 이빨이 시커먼 게 흉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때 호구록모가 카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흥! 누가 그렇게 놓아둔다느냐!”

“엇! 호랑이가 변했어요.”

브로칸의 말대로 호구록모의 털은 어느새 초록빛으로 변해 있었다.

머리에는 뿔이, 몸에는 박쥐 같은 날개가 돋아난 거였다.

호구록모는 브로칸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호랑이가 아니다! 호구록모라 부르거라!”

-이히히히히히히힉!

그러는 사이 온나귀인이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달려와 기다란 손톱을 휘둘렀다.

호구록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박쥐 날개를 퍼덕여 날아오르더니, 온나귀인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순식간에 공중에서 난전이 벌어진 거였다.

그 광경을 보며 아조트가 감탄했다.

-이번에 나온 녀석은 제법 강한데? 고여가 혼자 상대하면 졌겠네.

확실히 온나귀인은 기괴한 모습과 달리 아주 강했다.

마치 하늘을 구름처럼 날아다니며 손톱을 휘두르는데, 어찌나 예리한지 오러를 두른 것처럼 나무를 종이처럼 벴다.

놀라운 건 호구록모도 그런 온나귀인에게 지지 않고 팽팽하게 맞서 싸우고 있다는 거였다.

그걸 보며 소피아가 물었다.

“어떡하죠?”

“전투가 길어질 거 같은데, 도와주자!”

“알겠습니다!”

소피아가 검을 빼 들고 나서려고 할 때였다.

“야, 비켜!”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더니 호구록모가 쾅 하고 순식간에 지면에 처박혔다.

“어? 어떻게 된 거지?”

“호랑이 형님이 다치셨다!”

“아이고, 형님!”

만사태평하던 마을 주민들도 호구록모가 다친 걸 보고 허둥지둥했다.

강한 마을의 수호신이 당한 걸 보고 놀란 거였다.

하지만 카엘은 놀라지 않았다.

‘조금만 더 살살하시지.’

한편 한창 싸우던 호구록모가 사라진 데 놀라서 멈칫했던 온나귀인이 맹렬한 불길에 휩싸였다.

화르르륵

-키에에에에에에엑!

온나귀인이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지만, 그 불길은 도통 꺼질 기미가 안 보였다.

‘그럴 수밖에, 누가 붙인 불인데.’

카엘은 하늘 위에서 온나귀인을 내려다보고 있던 라 키레아스를 쳐다봤다.

눈을 마주친 라 키레아스는 카엘의 옆으로 내려와서 씩씩거렸다.

“아이고, 열받아!”

“왜 그리 화가 나셨습니까?”

“아오. 저기에 뭔가 있는데, 아무리 불러도 안 나오잖아! 그렇다고 산을 뒤집어 놓을 수도 없고!”

아무래도 산에서 허탕 친 모양이었다.

“크헝!”

땅에 처박혔던 호구록모가 벌떡 일어나서 포효하더니 라 키레아스에게 다가왔다.

한방에 너덜너덜해진 채로 비틀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설마 저런 몸으로 또 싸우려는 건 아니겠지?’

카엘의 우려와 달리 호구록모는 라 키레아스에게 공손하게 몸을 숙이며 인사했다.

“귀하신 분이 오셨군요. 용손을 지키는 호구록모라 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칫.”

그 태도에 라 키레아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덤비면 더 박살 낼 생각이었는데, 상대가 저러는 이상 화내기도 힘들어서였다.

호구록모도 사실 라 키레아스가 봐준 걸 알고 공손하게 군 거였다.

‘마음만 먹었으면 진작에 명을 달리하고 말았을 거야. 그래도 저 인간이 아는 분이라 살았군.’

다행이다 싶었던 카엘은 회복 포션을 꺼냈다.

“많이 다치셨네요. 라 키레아스 님도 그냥 가볍게 밀치시면 될 거 가지고, 호구록모 님은 이것 좀 드세요.”

“어, 음. 고맙네.”

카엘은 나무라면서 호구록모에게 회복 포션을 내밀었다.

엉겁결에 회복 포션을 다 마신 호구록모는 깜짝 놀랐다.

“어, 이게 뭔가? 약효가 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 상처가 벌써 나아 갈 뿐만 아니라, 온몸에 활력이 도는 거 같군.”

“제가 만든 약입니다.”

“정말인가? 실력이 대단하군.”

그때였다.

“호랑이 형님, 호랑이 형님.”

“여기 약을 가져왔습니다.”

마을 주민이 희끄무레한 물을 사발에 담아서 가져왔다.

맞고 쓰러지는 걸 보고 황급히 가져온 모양이었다.

“괜찮다. 이분들께서 약을 주셔서 다 나았다.”

“네?! 정말입니까?”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저희 일행 때문에 다치신걸요. 그보다 그건 뭔가요?”

“아, 이건 선조께서 주신 돌에 물을 탄 겁니다.”

“신기하네요.”

카엘은 사발에 든 희끄무레한 물을 살펴보며 감탄했다.

“이거 호랑이 형님이 안 드실 거 같은데, 따로 담아 드릴까요? 돌은 못 드리지만요.”

“아 그래도 됩니까? 그럼 여기에 좀 부어 주세요.”

카엘이 약을 빈 포션병에 채우는 사이, 호구록모가 라 키레아스에게 물었다.

“위대한 분이시여. 영노 님은 왜 찾으시는지요?”

“영노?”

“저 산에 있는 게 영노라는 거였어? 그런데 왜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지?”

“원래 산 중턱 호수에 사십니다만, 최근 안 좋은 일이 있는지 두문불출하셔서 그렇습니다.”

“아, 아까 호수 봤는데 거기야? 좋아.”

당장에 뛰쳐나가려는 걸, 고여가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라 키레아스님!”

“왜?”

“그 영노라는 분, 아무래도 마족이 아닌 거 같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고여는 대답하는 대신 호구록모에게 물었다

“아까 용손을 지킨다 하셨는데. 영노라는 분이 용 아닙니까?”

“어, 맞습니다. 이 아이들이 영노 님의 후손들이고요.”

막상 용이라고 하니, 라 키레아스는 더욱 관심을 가졌다.

“용이라고? 그럼 한번 봐야지. 안 그래도 한 번도 본 적 없거든.”

“그, 그래도…….”

고여는 난감했다.

왠지 두 강대한 존재가 부딪치면 싸움이 일어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에 어떻게든 만나는 걸 말리고 싶었는데, 오히려 더 관심을 가지다니.

심지어 용은 최근에 안 좋은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카엘마저 부추기는 게 아닌가?

“네, 한번 보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러자 호구록모가 말했다.

“음, 그럼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제가 부르면 나오실 겁니다.”

“그래라, 그럼.”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신 거 같은데, 나중에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고여가 우려하자, 카엘이 설명했다.

“그래도 되겠지만, 영노라는 용이 혹시 마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서요.”

그 말에 라 키레아스는 눈을 번쩍 떴다.

“정말이냐?”

“네, 원래 동방의 용이라는 게 뱀으로 500년, 이무기로 500년을 살다가 여의주라는 걸 얻어서 용이 된다고 들었거든요.”

“어, 맞아요. 어쩜 그리 자세히 아세요?”

“책에서 읽은 거예요.”

놀라는 고여에게 멋쩍어하며 대꾸한 카엘이 설명을 이어 갔다.

“용이 가진 그 여의주라는 게 마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럴까? 그럴싸하긴 한데.”

“여기 얻은 물약에서 마력이 좀 느껴지기도 하고요.”

카엘이 마을 주민에게 받은 약물이 든 포션병을 흔들었다.

그걸 유심히 본 라 키레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어.”

마석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계에 마기가 늘어난다.

그러다가 마왕이 부활하고 마계에서 몬스터들이 침공해 올지도 몰랐다.

마석이라는 걸 확인하면 제거하는 편이 좋았다.

‘마석이 아니어도 신비로운 소재긴 하단 말이지.’

사실 카엘은 여의주가 마석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단 말이지.’

카엘이 그러면서 타라비산을 바라봤다.

호구록모가 갈 채비를 하자 마을 주민이 소리쳤다.

“호랑이 형님, 잘 다녀오십시오!”

“일이 다 끝나면 오세요. 좋아하시는 떡도 준비해 뒀습니다.”

“오냐!”

그렇게 대답한 호구록모는 카엘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 * *

카엘 일행은 그대로 산으로 날아갔다.

얼마 안 지나 호구록모가 말한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는 어찌나 고요한지 밤하늘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그런 호수를 향해 호구록모가 소리쳤다.

“영노 님, 저 왔습니다! 얼굴 좀 봅시다!”

정작 대답이 돌아온 건 호수 옆의 거목 쪽이었다.

“왜 왔어? 한동안 혼자 있고 싶다고 했잖아.”

“어머, 귀여워라!”

앳된 목소리다. 하고 생각하며 거목 쪽을 바라봤던 소피아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 말처럼 나온 건 이제 갓 서너 살 되었을까 싶은 동자였다.

그걸 보며 카엘이 말했다.

“용이 되신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모양이네요.”

“맞습니다. 용이 된 걸 모르고 제가 덤볐다가 져서 저 마을을 지키게 됐으니 이제 40년은 됐나?”

뱀으로 500년 살다가 이무기가 되면 다시 이무기로서 1살부터 500년을 산다더니, 용으로서도 처음부터 사는 모양이었다.

한편으로 이해가 안 가는 건 더 있었다.

“근데 왜 저 마을 사람들을 용손이라 부릅니까? 후예를 남기기에는 너무 어린데.”

“아, 그건 이무기 때 인연을 맺은 곳이라 그런 겁니다.”

원래 이무기손이었다가 용손이 된 모양이었다.

카엘과 호구록모가 이야기를 나누자 영노가 버럭 화를 냈다.

“왜 불러 놓고 너희끼리만 떠들어?”

“아. 죄송합니다, 영노 님.”

카엘이 사과하고는 솔직하게 말했다.

“괴물과 귀인을 해치우던 차에 이곳에도 귀인 같은 자가 있는 제보를 들어 찾아오게 됐습니다.”

“뭐라고?! 그럼 내가 귀인이란 말이냐?!”

“어디까지나 오해였지만요.”

“사실입니다. 제가 가기 전에 귀인들을 해치웠더군요. 악!”

호구록모가 거들어 주는데, 영노가 호구록모의 꼬리를 꽉 잡으며 호통쳤다.

“넌 똑바로 안 지키고 뭐 했어?”

“호구록모 님이 늦은 건 아닙니다. 저희가 있던 참에 해치웠던 것뿐이죠.”

“그래? 그건 고맙군.”

영노는 호구록모의 꼬리를 놓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걱정 안 해도 된다. 내가 조만간에 내 영역은 침입하지 말라고 담판 짓고 올 테니까.”

그 말에 잠자코 있던 고여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요괴들과 협상할 거란 말입니까? 고통받는 백성들을 내버려 두고요?”

영노는 그런 고여를 차갑게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내 역린을 건드리고 여의주까지 훔쳐 간 놈들이다. 죽든 말든.”

여의주를 도둑맞다니!

‘이런, 여의주가 마석인지 확인하려던 계획은 일단 물 건너갔네.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한편 그 말을 들은 호구록모가 더욱 호들갑을 떨었다.

“헉. 정말입니까? 왜 제게 아무런 말씀도 안 하셨습니까?”

“용이 여의주를 잃어버렸다고 창피해서 어떻게 말해?”

“저한테 찾아 달라고라도 하셨어야지요. 여의주를 잃어버린 채로 있다가는 다시 이무기가 될지도 모르는데.”

“…나도 알아.”

시무룩하게 대꾸한 영노는 자신의 목을 짚으며 투덜댔다.

“하지만 아직도 욱신거려서 움직이기 힘든데 어떻게 해?”

그 말을 들은 카엘이 나섰다.

“그거 제가 고쳐 드릴까요?”

“괜찮아 놔두면, 나으니까.”

“고쳐 드린다는 건 역린을 똑바로 나게 고쳐 드린다는 말입니다.”

“뭐, 그게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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