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39화 (139/234)

139화 드래곤과 용 (1)

일주일 뒤.

-도착했다.

방주가 타모라국 서해에 진입했다고 수호병이 알렸다.

그 말에 고여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나 빨리? 우리가 나올 때는 한 달 넘게 걸렸는데.”

“이게 다 방주 덕분이죠.”

-배를 끌고 오지만 않았으면 훨씬 빨리 왔다.

수호병이 말했다.

그 말대로 방주 뒤에 항구도시 아말레이에서 고여와 아파기 공주를 납치하려 했던, 타모라국 함선을 포획해 그대로 끌고 온 참이었다.

배에 타고 있던 도동을 비롯한 무인들과 선원들은 어인족들이 감시하고 있었고, 무술을 익히지 않은 아파기 공주도 같이 왔던 무관들과 함께 배에 남았다.

고여는 기대에 찬 얼굴로 카엘을 바라봤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앞으로 타모라국이 정상화되면 빠른 교류를 기대할 수 있겠네요.”

-타국과의 교역에 방주를 사용할 생각인가?

“아뇨. 아무래도 그건 좀 아니죠.”

카엘은 단호하게 선을 그으면서도 고여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인족들이 도와줄 텐데 그것만 해도 시일이 많이 단축될 겁니다.”

“아, 네. 그러기 위해서라도 타모라국을 빨리 정상화해야겠어요!”

국가가 풍전등화에 놓여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모습이 그리 나빠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보다 어디에 세워 주면 되나?

고여의 말에 따르면 부둣가와 해안가 쪽은 이미 괴물로 뒤덮여 있다고 했다.

“그거 그냥 라 키레아스 님이 쓸어 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브로칸의 말에 다들 뒤편에 있던 라 키레아스를 바라봤다.

확실히 드래곤이 나서서 브레스라도 확 쏴 준다면 어지간한 괴물은 그대로 쓸려 나갈 터였다.

하지만 라 키레아스는 거절했다.

“그래도 되기야 하지만, 여기도 나름대로 자리 잡은 녀석이 있는 거 같아서 말이지. 가능하면 본모습을 드러내 영역 침입하고 싶진 않은데.”

그 말에 소피아와 브로칸이 깜짝 놀랐다.

“네?! 여기도 드래곤이 있단 말입니까?”

“고여 님, 혹시 들어 보셨나요?”

“글쎄요, 드래곤은 잘……. 아, 굳이 따지자면 용의 전설은 들어 본 적이 있긴 해요.”

“용이라…….”

용은 기다란 사슴 수염과 뿔을 가진 거대한 신수.

뱀같이 기다란 몸통 곳곳에는 독수리 모양의 발이 달려 있다.

카엘이 배운 바에 따르면 드래곤과는 아주 달랐지만, 드래곤인 라 키레아스가 동격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면 그에 따르는 게 맞았다.

“그럼 서쪽의 해안 절벽으로 가죠. 거기라면 괴물도 별로 없을 겁니다.”

-알았다.

고여의 말에 수호병이 방주의 뱃머리를 열고 천천히 움직였다.

고여가 알려 준 기암절벽이 보이는 곳에는 확실히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는 발 디딜 데가 거의 없는 수십 미터가 넘는 절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거였다.

카엘 일행에게는 별거 아니었지만.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브로칸은 방주가 절벽 가까이 서자마자, 방주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단번에 절반 가까이 올랐지만, 여전히 모자랐다.

브로칸의 신체 능력이라면 그대로 절벽을 붙들고 올라갈 수 있었지만, 모르타가 부른 바람의 정령이 브로칸을 받쳐서 절벽 위로 올렸다.

브로칸은 절벽 위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살펴보곤 방주를 향해 소리쳤다.

“올라오셔도 됩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말에 따라 나머지 일행도 하나둘 따라 올라갔다.

카엘은 올라가기 전에 수호병에게 인사했다.

“매번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히려 내가 고맙다. 메르 8세가 그렇게 즐거워하는 건 처음 봤다.

라 키레아스와 메르 8세가 처음 만나서 해룡 제피슈에 관해 대화를 나눴을 때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싱거운 녀석. 못 타게 할 때는 언제고.”

뒤편에 있던 라 키레아스가 피식 웃더니 방주 밖으로 뛰어나갔다.

* * *

절벽 위로 올라가니 고여가 카엘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대로 수도부터 가실 건가요? 그편이 나을 거 같은데.”

“먼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겸 괴물부터 보려고요.”

여기까지 와서 공주들을 안 믿는 건 아니지만, 괴물이 얼마나 있고 얼마나 강한지는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방주로 밀고 들어가서 확인해도 됐겠지만, 괜히 방주가 공격당하기라도 하면 미안했다.

천천히 해안선을 따라가니 얼마 안 가서 저 멀리에서 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괴물들은 가죽이 뒤틀리고 불에 덴 것처럼 엉망진창인 게 끔찍한 모습의 짐승이었다.

그 와중에 사람처럼 서 있는 것들이 일부 보였다.

오크와 고블린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외형에 이마에는 뿔 한두 개가 다양하게 달려 있고, 피부는 검은색에서부터 붉은색 파란색 등 천차만별이었다.

거기다 허름한 가죽으로 성기를 가리고 손에는 무시무시한 가시가 돋친 쇠망치를 들고 있었다.

“저것들이 마족인가요?”

브로칸의 말에 카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저건 귀인이라는 솔국의 괴물의 한 종류 같군.”

“앗, 아시나요?”

놀라는 고여에게 카엘이 멋쩍어하며 대꾸했다.

“예전에 책에서 봤습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요.”

괴물들은 고블린보다는 세 보이지만, 오크보다는 약할 거 같았고.

귀인들은 개체마다 강한 정도가 다른 듯했는데, 지금 보이는 녀석만 봐서는 대체로 오크 워리어 정도 되는 거 같았다.

“이런 외곽에도 수십 마리가 떠돌고 있을 정도면, 해안가에는 정말 많겠군요.”

“네. 저희가 탈출할 때만 해도 수백 마리가 쫓아왔습니다.”

고여의 설명에 브로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면 왕국이 완전히 넘어갔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아닙니다! 왕성은 아직 건재합니다. 아직 무관들과 군졸들도 제법 많이 있으니까요.”

확실히 저번에 마주친 검기를 쓰는 무인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싸울 전력이 없는 거 같지는 않았다.

‘그 전력을 쓰려면 국왕을 정신 차리게 하든지 몰아내든지 하는 게 먼저인가.’

고여가 제안한 대로 수도로 가는 게 나아 보였다.

“그럼 고여 님, 안내해 주시죠.”

“네. 일단 잠깐 마을에 들러서 준비하죠. 저기로 가면 저희가 탈출할 때 들렀던 마을이 나올 겁니다. 아직 무사한 곳이 많이 있거든요.”

씩씩하게 말한 고여가 앞장섰다.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작은 마을 앞에서 괴물들이 오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설마 여기까지 당하다니…….”

“아니, 아직 안에 사람들이 살아 있어요.”

냄새를 맡은 브로칸이 보고했다.

확실히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건 최근까지는 무사했다는 이야기였다.

한편 브로칸의 말을 들은 고여는 카엘을 쳐다봤다.

마을을 구해 달라는 의미였다.

그래도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들지 않고 허락을 구하는 건 마음에 들었다.

마을 안에 있는 괴물과 귀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전력으로 못 구할 건 없었다.

‘내버려 두더라도. 먹을 거 챙겨서 숨어 있으라고 하면 되겠지.’

결정을 내린 카엘이 지시를 내렸다.

“저것들을 없애고 사람들을 구합시다. 나랑 소피아와 고여 님이 전면에, 브로칸과 모르타는 뒤로 돌아가서 도망치는 것들 잡아. 여기서 살아남는 녀석이 없어야 마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진다.”

“네!”

다들 힘차게 대답하는 소리를 들은 후 소피아에게 당부했다.

“소피아는 가능한 한 조용히 처리하고.”

“알겠습니다.”

폭발의 오러를 쓰면 인근까지 그 소리가 들려 주변의 괴물과 귀인들까지 끌어들일까 우려한 거였다.

그것까지 해치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괜히 일이 커지면 움직이기 불편했다.

출발하기 전 카엘은 잠자코 있던 라 키레아스를 바라봤다.

“나는 구경이나 할게. 그래도 되지?”

“괜찮습니다. 혹시 이쪽으로 오는 괴물이 있으면 그것만 해치워 주십시오.”

“알았어.”

라 키레아스의 대답을 들은 카엘은 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을에 가까워지자, 소피아가 속도를 높여 카엘보다 빠르게 마을에 진입했다.

-음? 인간이다!

-켈켈켈. 맛 좋은 인간 여자가 나타나다니. 이게 웬 떡이냐.

-당장 잡아먹자!

귀인들은 소피아를 보고 군침을 흘리며 쇠 방망이를 흔들었다.

그러자 괴물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달려든 괴물들은 그대로 토막 나서 바닥에 나뒹구는 처지가 됐지만.

카엘이 조용히 해치우라고 당부하지만 않았으면 가까이 오기도 전에 터져 나가고도 남았다.

나머지들도 카엘과 고여의 공격에 허무하게 쓰러졌다.

귀인들은 소피아와 고여의 오러를 보고 소리쳤다.

-무, 무인들이다!

-켈?! 우리로는 상대하기 힘들다!

-도망치자!

귀인들은 괴물들을 내버려 두고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괴물들은 무턱대고 카엘 일행을 공격해 왔다.

언데드 몬스터처럼 목이 베여도 끝까지 덤벼들어 완전히 해치우는 데 은근히 애를 먹었다.

‘이건 차라리 힘으로 눌러 버리는 게 낫겠는데?’

그렇게 생각한 카엘은 아조트의 옆면으로 괴물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악! 그렇게 무식하게 쓸 거면 다른 무기를 써.

아조트가 치욕스럽다는 듯 소리를 질렀지만, 카엘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휘둘렀다.

그러다 도망치는 귀인들을 보며 소피아에게 말했다.

“소피아는 귀인들이나 해치워. 자칫하면 도망치겠다.”

모르타와 브로칸, 둘의 실력도 꽤 향상되어 귀인 셋까지는 충분히 상대했다.

다만, 셋이 지금처럼 한꺼번에 도망치면 놓칠 가능성이 컸다.

카엘이 고여와 함께 괴물들을 모조리 해치우고 가니 소피아가 귀인들을 끌고 왔다.

“다 잡았구나.”

“잡은 건 라 키레아스 님이에요. 제가 갔을 때는 이미 잡혀 있었어요.”

가만히 있겠다더니만, 그쪽으로 도망친 게 아니었는데도 도와준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뭐, 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아, 그렇죠.”

도와주는 핑계를 대는 걸 모른 체하고 넘겼다.

이런 외딴 마을의 습격을 맡은 귀인들이 뭔가를 알 거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걸 잡아서 물어볼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생포하라고 했겠지.’

어쨌든 라 키레아스는 귀인을 툭툭 치며 물었다.

“야, 마족은 어디 있나?”

-모른다.

-우리 같은 말단은 모른다.

-나도 몰라.

카엘의 짐작대로 귀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나?”

-솔국에 있다고 들었다.

“이곳에는 전혀 없나?”

-모른다.

“쓸모없는 녀석들.”

라 키레아스는 열받는지 그대로 손날을 휘둘러 귀인들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러는 사이 고여가 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소리쳤다.

“여러분, 타모라국의 공주 고여입니다! 괴물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이제 안전하니 밖으로 나오셔도 됩니다!”

그 말에 집안 바닥에, 창고에 숨어 있던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뭐? 안전하다고?”

“정말 공주님이 우리를 구하러 오셨어?!”

“공주님이 맞네, 맞아.”

“나라를 구할 영웅을 데려오신다니 정말 구해 오셨나 봐.”

주민들이 다들 반기는 모습에 카엘은 조금 놀랐다.

‘그래도 나름대로 인기는 있는 듯하네.’

그때였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저 멀리서 한 무리의 무관이 말을 타고 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군졸들이 따르고 있는데, 아무래도 타모라국의 경비병들 같아 보였다.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리에 온 건가? 그래도 괴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고 있긴 한가 보네.’

“어, 전 잠깐 숨을게요.”

카엘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아무래도 들키면 곤란한지 고여가 몸을 감췄다.

마을 주민들도 익숙한지 금세 아무것도 아닌 척했다.

잠시 후.

다가온 무관들이 말 위에서 주변을 살폈다.

늘어져 있는 괴물들의 사체와 안심하고 나온 마을 사람들.

누가 봐도 카엘 일행이 괴물을 해치우고 마을을 구한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선두에 선 무관이 작은 봉으로 카엘 일행을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치는 게 아닌가?

“이 무뢰한들이 무기를 들고 설친 모양이구나! 뭣들 하느냐? 어서 포박하지 않고?”

그 말에 카엘이 기가 막혔다.

‘이것들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