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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38화 (138/234)

138화 타모라 왕국으로 (3)

바닷속으로 들어온 지 한참 뒤.

방주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풍경이 카엘을 맞이했다.

거대한 산호초와 조개 같은 모습의 건물이 곳곳에 늘어서 있는 심해성에 도착한 거였다.

그런데 전과 달리, 어인족들이 잔뜩 나와서 반겨 주는 게 아닌가?

“와아아아! 카엘 님이 도착하셨다!”

“카엘 님, 어서 오십시오!”

“심해성에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치 수도 킹스콧과 하피들의 황금성에서 카엘의 행렬을 축하했던 것과 비슷했다.

그걸 본 라 키레아스가 놀란 얼굴이 됐다.

“뭐야 카엘, 너 여기서 왜 이리 인기가 많아?”

“아, 메르 8세의 지병을 치료해 준 적이 있거든요. 그것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그것만으로 이렇게 인기가 많다고?”

“그게 아니라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때 브로칸이 환호하는 어인들이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걸 봤다.

“어, 저거 포션병 아닌가요? 아무리 봐도 카엘 님이 쓰시던 포션병 같은데.”

“맞아. 같은 포션병이네.”

모르타도 맞장구치길래 쳐다보니 정말 어인들이 카엘을 향해 포션병을 들고 흔들고 있었다.

그것도 안에 물약이 든 포션병부터, 빈 포션병.

물약을 쓰고 다른 걸 채워서 쓰는 건지 못 보던 색의 뭔가가 들어 있는 포션병까지.

다양하게 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카엘의 말에 델라가 끼어들었다.

“어머, 카엘 님은 모르셨어요? 심해성에서 카엘 님의 포션이 얼마나 인기 있는데요. 너도나도 갖고 싶어 해요.”

“아무래도 효과가 좋으니 갖고 싶어 하겠죠.”

안 그래도 회복 포션의 효과를 체험한 어인족이 갖고 싶어 하는 걸 보고, 어인족을 불러 도움을 받을 때마다 보상으로 회복 포션을 줬다.

“아니, 효과도 좋지만 저렇게 빈 병을 들고 있는 건, 다친 어인족들이 포션으로 나은 경우가 많아서 그래요.”

“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바다 위에서는 모르지만, 바닷속 세상도 무척 험했다.

갑자기 수중 화산이 터지거나, 지진이 일어나거나 태풍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바닷속이 뒤집힌다니.

그런 자연재해에 휩쓸려 다치는 어인족들이 많은 거였다.

문제는 그렇게 다쳐도 마땅히 치료할 만한 수단이 없다는 거였다.

왕족은 심장병 아니면 크게 아프지도 않고 오래 살기에 어인족들의 치료 및 회복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였다.

‘그런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비상용으로 회복 포션을 주긴 했는데, 그렇게까지 고마워하다니.’

“뭍으로 따지면 황금보다 더 귀하게 여겨진다고 할까요?”

“허. 그 정도야? 대단하네.”

딱히 칭찬받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라 키레아스도 놀라서 칭찬하니 조금 뿌듯하긴 했다.

“오! 카엘 왔는가! 어서 오게!”

그때 저 멀리서 반기는 음성과 함께,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2배 이상 큰 거인이 달려왔다.

메르 8세였다.

메르 8세가 나타나자마자 수호병이 근엄하게 말했다.

-심해성의 지배자께 예를 갖춰라.

“카엘 브리운이 심해성의 지배자이자, 유일무이한 존재인 해룡 제피슈 님의 후예를 뵙습니다.”

“허허, 우리 사이에 왜 이러나.”

카엘이 전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메르 8세가 웃으며 카엘을 일으켰다.

한편 같이 온 다른 일행도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당연히 라 키레아스는 꼼짝 않고 메르 8세를 쳐다봤다.

수호병이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다시 한번 말했다.

-심해성의 지배자께 예를 갖춰라.

그때 메르 8세가 끼어들었다.

“됐다. 라 키레아스 님이라면 우리 선조와 같은 연배이신데 감히 예를 갖추라고 할 수는 없지.”

“뭔가 좀 아는 녀석이로군.”

흐뭇한 얼굴로 말한 라 키레아스는 메르 8세의 모습을 보며 감회에 사로잡힌 눈빛이 됐다.

“제피슈도 참 지혜로운 녀석이었지. 너도 제피슈의 눈빛을 하고 있구나.”

“앗. 그렇습니까?”

드래곤이었던 선조와 닮았다는 말에 메르 8세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렇다마다. 사안을 바다처럼 깊고 넓게 보는 시야를 가져서 우리 모두의 버팀목이 되었지.”

“오오!”

“그가 아니었다면 마왕 퇴치도 실패했을 거야. 특히 앞뒤 안 가리던 나는 제일 먼저 목숨을 잃었겠지.”

“허. 그런 일이 다 있었군요.”

메르 8세는 연신 감탄했다.

“지금 와서는 옛날이야기일 뿐이지만.”

“그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심해성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서요.”

메르 8세의 말에 라 키레아스가 놀랐다.

“기록을 남기지 않았어? 그 꼼꼼한 녀석이?”

“…네.”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도 자기가 한 일을 남기는 게 부끄러웠나 보군. 안 그래도 모든 게 끝나면 조용히 바닷속에서 살고 싶다고 여길 만든 거기도 했지.”

“아, 그렇습니까?”

“마왕이 쓰러지고 나면, 인간들은 서로 다투느라 세상이 시끄러울 거라 했거든.”

제피슈의 말이 틀린 게 아닌 게 마왕이 사라진 후에도 인간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한 녀석은 그게 시끄럽다고 마왕이 두고 간 오크들을 이끌고 인간들과 싸우다가 퇴치당한 녀석도 있었지.”

카엘은 방금 이야기도 어떤 건지 짐작이 갔다.

‘그 일로 클리페우스성이 만들어지고 장벽이 세워졌지.’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제가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럴까.”

그러고 심해성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막상 들어가니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카엘의 혼담으로 넘어가는 게 아닌가.

메르 8세가 자리에 앉자마자 물은 거였다.

“그래 우리 딸아이는 어떤가?”

“아, 그게…….”

카엘이 뭐라고 하기도 대답하기도 전에 메르 8세가 주절주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좀 엉뚱한 구석이 있긴 해도 오히려 그 점이 재밌지. 같잖은 혈통을 자랑하는 인간의 공주보다 훨씬 근본도 있지 않나? 만약 후사를 보다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그대가 충분히 보살펴 줄 수 있고.”

카엘은 메르 8세가 생각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서 순간 당황했다.

거기다가 라 키레아스가 기름까지 붓는 게 아닌가?

“그래. 내가 지켜보니 이 친구 인간치고는 참 쓸 만하더구먼. 어지간한 드래곤보다 나아.”

드래곤으로 할 수 있는 극한의 칭찬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메르 8세가 카엘을 보고 더욱 군침 흘리게 됐다.

선조와 같은 연배의 드래곤이 인증한 신랑감.

이보다 더욱 괜찮은 신랑감이 어딨단 말인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같은 식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델라를 보냈는데.”

“지금 친하게 지내지 않습니까?”

카엘의 말에 메르 8세가 은근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혹시 델라가 마음에 안 드나? 마음에 안 들면 아직 여섯이나 남았으니…….”

“아빠!”

“이크. 농담이야, 농담.”

델라가 듣고 소리치자 메르 8세가 시선을 피했다.

“저도 델라 님이 나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아직 결혼 생각이 없습니다.”

사실 일전에 자신의 경쟁자가 납치되는 상황에서 어인족을 움직여 도와준 것만 해도 호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혼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정작 메르 8세는 다르게 받아들인 듯했다.

“하긴 자네 같은 영웅호걸이면 결혼해서 목매는 것보다 여러 여자를 섭렵하는 것도 나쁘지…….”

“아빠!”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왕족부터 귀족까지 난잡한 사생활은 유명하지만, 카엘은 서로 죽고 못 사는 잉꼬부부인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에 결혼에 대해서 그리 비관적이지 않았다.

중요한 건 배우자를 잘 만나는 거라고 믿었다.

“일단 당장 들어온 혼담은 좋은 인연이라 생각하고, 시간을 두고 결정할까 합니다.”

“그러다 너무 늙어 버리면 곤란한데. 인간은 워낙에 빨리 늙으니.”

메르 8세가 아쉬워하는데, 라 키레아스가 마무리 지으려 했다.

“그쯤 해 두게. 카엘도 다 생각이 있을 테니.”

“그래도 너무 지체하면 나이가…….”

엘프들이 카엘의 짧은 수명을 걱정하듯이, 메르 8세도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라 키레아스는 그 말을 무시하고 아예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여기에 제국의 마법사를 붙잡아 뒀다고 들었는데.”

안 그래도 라 키레아스가 그 이야기를 꺼내 줘서 다행이었다.

심해성에 온 건 좋았지만, 여기서 너무 오래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바다 위에서 고여와 아파기 공주는 하루라도 빨리 타모라국으로 돌아가 괴물들을 해치우고 백성들을 구하길 바라고 있을 테니까.

“제국의 마법사라면 전에 카엘이 보낸 녀석이요. 근데 왜?”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는데 좀 데려와 봐.”

“알겠습니다.”

메르 8세가 손짓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어인족들이 마법사 푸글리니를 데려왔다.

푸글리니는 전과 달리 피골이 상접하고 눈빛이 어두운 게 처참한 몰골이었다.

하지만 카엘은 조금도 안쓰럽지 않았다.

‘이자가 아라흐네를 풀어서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약과지.’

푸글리니는 옆의 어인족들이 멈추자마자 똑바로 서지 못하고 그대로 엎어졌다.

“어이, 마법사. 이분께서 물어보실 게 있단다.”

“어… 으음…….”

메르 8세가 말했음에도 푸글리니는 몸을 꿈틀거리면서 끙끙댈 뿐이었다.

“이래서야 아무런 말도 못 하겠군.”

“카엘이 죽든 말든 내버려 두라고 해서…….”

“제국의 마법사라면 이런 꼴을 당해도 싸긴 하지.”

메르 8세가 변명하자 라 키레아스가 곧바로 카엘을 두둔하고 나섰다.

“하는 수 없군요.”

카엘은 회복 포션을 푸글리니에게 조금 먹였다.

“아이고, 저 아까운 걸.”

옆에서 지켜보던 어인족들이 탄식했다.

한편 회복 포션을 조금 마신 거로 기력을 약간 회복한 푸글리니는 카엘을 향해 이마를 땅에 박았다.

“가, 감사합니다.”

그걸 본 라 키레아스가 말했다.

“저 정도면 이제 대화할 수 있겠네. 카엘, 네가 물어봐.”

“알겠습니다.”

카엘은 푸글리니 앞에 가서 물었다.

“혹시 타모라국에 대해서 알고 있나?”

“아, 알고 있습니다. 저 멀리 동쪽의 섬나라인데…….”

“아니, 그런 거 말고. 제국의 마법사들이 왜 타모라국에 갔는지, 얼마나 갔는지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지 궁금한데.”

“글쎄요, 그런 것까지는…….”

“몰라? 이거 영 쓸모가 없네.”

옆에서 듣고 있던 라 키레아스가 혀를 찼다.

거기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푸글리니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 타모라국은 모르지만, 여러 나라에 마법사들이 파견 가긴 했습니다.”

그 말에 카엘은 깜짝 놀랐다.

다른 나라에도 그 짓을 하다니.

“그 말은 제국이 타국에 일부러 몬스터를 풀어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건가?”

“…네.”

“대체 무슨 목적?”

“글쎄, 거기까지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타국이 몬스터로 어지러워지면 제국의 도움을 바랄 거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건 카엘도 짐작한 거였다.

브레프니 왕국에 혼란을 일으키려던 이유와 같았으니까.

브레프니 왕국이 몬스터로 혼란에 빠지면, 키슬링 4황자가 나서 정리한 뒤 황위를 인정받기 위한 업적으로 삼으려고 한 거였다.

‘설마 다른 나라에도 같은 시도를 하고 있다니.’

그 말을 들은 메르 8세와 라 키레아스도 기가 막혀 했다.

“겨우 그런 이유로? 한심한 인간들!”

“몬스터가 늘어나면 이 세계가 위험해지는 걸 모르는가.”

라 키레아스가 탄식했지만, 막상 카엘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몬스터가 너무 많아지면 전 세계에 마기가 넘쳐나게 되는 건 알지?”

“음, 그렇다고는 들었습니다.”

“그 마기를 모아서 마계로 여는 문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거야. 마왕 부활은 물론, 마계 대침공이 일어나겠지.”

마계 대침공!

몬스터 대침공을 막는 거로 끝인가 했는데, 마계 대침공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니.

큰일이었다.

마족이 황제에게 협조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자신들이 가장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만약 다시 마왕이 부활하면 정말 끝장이야. 그때에 비하면 드래곤도 많이 죽었고, 인간들도 많이 약해졌으니까.”

“…….”

“…….”

“…….”

드래곤의 진단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라 키레아스는 주변의 반응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봐야 부활하긴 힘들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마족에 대해서 수소문하고 알게 되는 게 있으면 알려 줘. 몬스터도 보이는 대로 해치우고.”

“네! 안 그래도 바닷속은 제가 꽉 틀어잡고 있습니다.”

“그래. 잘했다. 역시 제피슈의 후예야!”

“후훗.”

라 키레아스의 칭찬에 메르 8세가 우쭐해졌다.

그런 둘을 보던 카엘이 말했다.

“그럼 어서 타모라국으로 가죠. 거기서 몬스터도 해치우고, 제국의 마법사를 잡으면 마족의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좋아. 가자!”

카엘의 말에 라 키레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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